유이화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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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말부터 하고 싶다. 정말 흥미진진했고, 감동적이었다. 별 생각없이 읽다 그만 놀라버렸다. <유이화>, 정말 멋진 작품이다. 처음 작가 조두진님이 연륜이 꽤 되는 분으로 알았다. (솔직히 말하겠다. 박두진 시인과 헷갈렸다-_-) 하지만 <도모유키>로 한겨례문학상을 받은 젊은 작가란 것을 알고 또한번 놀라버렸다. 왜 아직까지 몰랐던가.

<유이화>의 특징을 몆가지 항목으로 나눠 살펴보겠다. 첫째, <유이화>는 긴장감이 넘치고 재미있다. 조선과 일본을 넘나드는 속도감 있는 이야기전개는 특히 인상적이다. '임진왜란 발발, 진주성 대전 - 포로가 된 철영과 이화 - 일본으로 끌려간 이화 - 다이묘의 스승이 되어 일본으로 가는 철영 - 이화의 힘겨운 일본생활 - 도모유키와 이화의 만남 - 재회 - 선택'. 한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는 대단한 몰입력을 보여준다.

둘째, 포로가 된 조선인들의 고난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코와 귀가 베이고, 갖은 노역에 시달리는 포로들, 일본군의 노리개가 되어버린 여인들의 신산스런 삶, 일본으로 농노로 팔려가 갖은 고생을 하는 조선인들, 저자의 엄청난 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철영'과 '도모유키' '동구'의 모습이 대조되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철영은 가족보단 국가와 임금을 중시한다. 초반 도망가던 동구를 닥달해서 성안으로 끌고 온 것과 사경을 헤매는 아이와 부인을 뒤로하고 성으로 향하는 것은 그런 맥락이다. 반면 동구는 가족이 우선이다. 동구가 아내에게 주기위해 주먹밥과 옷가지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그의 가족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도모유키 역시 아시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적인 인물이다. 이런 대립적인 인물 사이에서 유이화는 갈등하는 것이다.

넷째, '유이화의 갈등'은 이 소설의 핵심. 고향을 등지고 머나먼 일본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죽은 아들 편윤과 사라진 남편, 힘겨운 농노생활, 양반가에서 곱게 자란 그녀에겐 얼마나 힘겨웠을까? 유이화는 '전남편 철영, 죽은 아이 편윤'과 '일본인 남편 도모유키, 아들 시로즈' 사이에게 큰 갈등을 하는데, 그녀의 고통과 내면적 슬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선조임금과 대신에 대한 풍자, 조소. 이 부분은 <유이화>의 또다른 묘미다. 저자는 선조, 신하들을 신랄하게 풍자, 조소하고 있다. 전란에서 공을 세운 의병장들과 이순신을 잡아들이고, 한창 전쟁중임에도 종이를 만들고, 물고기를 잡아서 보내라고 채근하는 임금. 그것이 조선의 현실이었다. 조금 노골적이지만, 어느 하나 허구인게 없다. 전부 사실이다.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의병장들은 나중에 핍박을 받았다. 난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하지만 사실은 도망만 다니던 자기들의 위엄과 권위에 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선조가 종이를 만들어 보내라고 했던 것, 물고기 잡아 올리라고 했던 것, 전부 역사적 사실이다. 그가 명나라로 도망치려 했던 것, 그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모두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쉬웠던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유이화(아시타)'의 내면묘사나 심리적 갈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책 제목이 무었인가?? 바로 '유이화'이다. 하지만 그에 걸맞지 않게 그녀의 비중은 미미하다. 유이화는 전쟁으로 일본으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고, 새로운 남자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가 보았던 것, 들었던 것, 느꼈던 것을 좀 더 강하게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유이화>, 깊은 감동을 준 작품이다. 거창한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회의하고 구체적인 인물들에 집중하는 시각이 정말 마음에 든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도모유키>부터, 다른 작품모두 하나씩 읽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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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넘기는 남자
이청해 지음 / 문이당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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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넘기는 남자>는 탄탄한 작품집이다. 수록되어 있는 7편의 단편 모두 고른 완성도를 보여준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30,40대 중년이라는 점, 인생의 쓸씁함 특히 밥벌이 문제가 바닥에 깔려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청해작가는 이제껏 알지 못했는데, 다른 작품들도 빨리 접하고 싶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후의 빛], [두 사람], [생의 한가운데].

[오후의 빛]은 작품 전반에 흐르는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놀라운 작품이다. 큰 욕심없이 좋아하는 테니스 하나만으로 행복을 찾는 교사 강희섭, 그에게 옛 동료였던 신선영이 연락을 한다. 전에 근무했던 은산학교에 가고 싶다는 것. 선영과 만나 추억을 반추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점점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두 사람] 잠이 들어 종착역을 지나쳐 버린 두 남녀, 열차가 기지창에 들어가기 전 겨우 내린다. 하지만 그들이 내린 곳은 길도 나 있지 않은 외딴 곳. 여자의 말을 들어보자. '서울에 어떻게 이런 장소가 있었을까? 시간이라는 필름을 40년이나 50년쯤 거꾸로 돌린 것 같았다. 하천 부지인지 야산 자락인지 불모지인지 알 수 없었으나 주변은 온통 잡초들이 거칠게 우거져 있었고, 자갈밭과 어빡자빡한 둑, 둔덕, 물 고인 웅덩이들이 지옥으로 가는 길목처럼 얼기설기 버티고 있었다. 유에프오를 타고 불모의 혹성에 불시착한 기분이 이럴까.'(p.132,133) 불모의 혹성을 헤쳐나오는 두 남녀의 이야기. 흥미롭다.

[생의 한가운데] 여고졸업 25주년 기념행사 뒤풀이에서 다시 만난 여고동창 윤주. 홀로 자식을 키우며 힘들게 살아왔던 '나'에 반해 윤주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뒤풀이 후 윤주에게 연락이 오고 둘은 자주 만나게 된다. 쇼파위에 누워 있는 윤주를 보며 자신을 발견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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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2-18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 읽고 잇는 피아노치는 여자와 어쩐지 커플같은 제목...^^

쥬베이 2009-07-24 22:25   좋아요 0 | URL
ㅋㅋ그렇네요^^
<피아노치는 여자> 찾아보니 노벨문학상 수상작, 나중에 읽어야지ㅋㅋ
 
눈의 여행자
윤대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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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에 대한 고민없이 시간만 흐르길 바랬던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감동했다. 환상적인 눈 이미지가 어찌나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지, 두고두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여러차례 다짐했었다. 삶의 한페이지를 함께 했던 친구같은 책. 

저작권관리 에이전시 직원인 K의 방문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정체불명의 소녀와 함께, 평소와는 다른 조급한 모습으로 소설가인 화자를 찾은 K. 그는 에이전시로 보내진 '숫자놀이 책'과 편지를 전하며 일본으로 갈것을 청한다.

'선생님은 언젠가 눈雪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겠죠? 그렇다면 이 편지가 어쩌면 선생님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략) 숫자놀이 책에 적혀 있는 메모는 보름 동안 눈을 다라다니며 기록한 것들입니다. 제가 눈을 따라 여행한 곳은 일본 동북부에서도 특히 눈이 많이 내리는 곳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끝내 눈 속에 버려진 아이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터무니없이 들리겠지만, 혹시 선생님이라면 그 아이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편지를 써 보냅니다.'(p.22,23)

이제부터 본격적인 일본여정의 시작이다. 숫자놀이책에 적혀있는 메모를 따라, 눈과 아기 울음소리를 따라. '기린 한마리, 코끼리 두마리…'식의 목차는 숫자놀이책에 적힌 메모를 따라 일본을 누비는 여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메모에 적힌 여정대로, 선 루트 호텔에 투숙(p.42)하고, 술집 '설의 음'을 찾고(p.49), 얼음장같은 오가호텔 306호에도 투숙(p.60)하며 화자는 여성과 아기의 흔적을 더듬는다. 이런 여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동시에 메모속 여성의 행적을 뒤쫒는 모습에서 추리소설적 향취를 강하게 느꼈다. 숫자놀이 책을 보낸 여성의 정체, 그녀가 들었다는 미스터리한 아기울음소리의 비밀, 환상적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학의 탕'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본여성 '사와구치 아이'(p.98). 전형적인 일본여성인 그녀와 무뚝뚝한 화자가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흥미롭다. 이들의 관계는 아기울음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함께 숲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정점에 오르는데, 소설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들이 더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는게 아쉬웠음. 또한 이 부분은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절정으로,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화자의 '외사촌 누이와 수'는 구성상 하나의 축이다. (화자와 외사촌 누이의 관계등은 언급하지 않겠음) 주목할 것은, '숫자놀이 책 메모속 여성'과 '외사촌 누이와 수'가 묘하게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화자는 메모속 여정을 쫒으며, 외사촌 누이와 수의 여정을 생각한 건 아닐까?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느낀 건 아닐까? 둘 사이의 관련은 깊게 생각할 부분이다. 이런 관점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 있다. 사와구치 아이가 "'당신아이' 꼭 만나고 가요"(p.195)라고 하자 얼어붙는 화자의 모습, 메모속 여성이 아이의 이를 각지에 묻는 것처럼, 수를 만난 다음 빠진 이를 눈속에 묻는 장면(p.276)이 그것이다. 마지막 장면인, 빠진 이를 눈속에 묻는 행동의 상징성은 역시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메모속 의문의 여성은 '남원집'이 등장(p.147)하면서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데, 나중에 읽으실 분을 위해 남겨두겠다. (결국 p.224이하에서 명확한 정체가 드러나며, 사건의 비밀등 모든 의문이 밝혀진다.)

'눈을 소재로 소설을 쓰겠다'던 저자의 의도는 멋지게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환상적이며,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눈이미지를 절절히 느꼈다. 정말 아껴두고 읽고 싶은 책, 나아가 눈의 여행자가 되어 책속 여정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겨울철에 읽는다면 한층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 한국계 일본작가 '사기사와 메구무' 이야기(p.99이하)가 등장한다. 흥미로운건 저자의 다른 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에서도 사기사와 메구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관심작가?^^ <웰컴 홈>이나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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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2-11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대녕, 꽤 오래전에 즐겨 읽던 작가입니다. 여행, 우연히 만난 여인, 여관, 엇갈림, 환 그리고 일상 속에 비죽 고개를 내미는 환타지... 윤대녕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콘이었는데... 여전한 것 같군요. 아이쿠~ 그리고 보니 이 작품은 2003년작이네요. 오랜만에 이 작가의 책이 궁금해지네요.

쥬베이 2008-02-12 09:21   좋아요 0 | URL
<눈의 여행자> 참 멋진 소설이에요.
윤대녕작가 좀 읽어볼려고요^^ <사슴벌레 여자>도 읽었는데, 소재가 충격이네요ㅋㅋ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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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조경란 작가는 대화체를 좋아하지 않나 보구나.' <혀>엔 등장인물간 대화가 거의 없다. 그나마 몇 안되는 대화도 밋밋하다. (애당초 등장인물도 몇 안되지) 남자친구(한석주)와 헤어진, 요리사 정지원이 시종일관 이야기한다. 어릴적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와 추억, 등장인물들과의 만남, 그리고 요리이야기. 읽기 힘들었다. 일방적으로 토해내는 정지원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었다.

<혀>가 '요리'를 소재한 소설임을 알고 큰 기대를 했다. '다 읽고 나면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p.345)는 저자의 바램이 내 안에서 간단하게 이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군침은 돌지 않았다. '요리'는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이었다.

이 소설을 너무 가볍게 본 거 같다. 깔끔한 양장에 부담없는 편집, 인상적인 표지일러스트. 외양을 보고 즐겁게 손에 잡은, 아주 가볍게 손에 잡은, 이것이 문제였다. <혀>는 요리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오감-특히 미각과 후각-을 근원부터 건드리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예외없이 미각과 후각으로 연결되어 있고-하물며 개 폴리까지-소설 전체를 미각과 후각이 지배하고 있다. 뭘 이야기하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

핵심 서사는 요리사인 정지원의 '노베'(음식점 이름)생활. 뭐 당연하지만. 여기에 정지원-한석주-이세연간 애정문제, 정지원과 삼촌의 관계등이 얽히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뭐낙 소설 전체를 휘감는 미각과 후각이 강렬해 이런 서사구조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지만을 떠올리며 읽어 내려간다해도 뭐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읽다 순간 깜짝 놀라버린 부분이 있다. 바로 한석주와 이세연의 섹스를 묘사한 p.76이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의 관계를 요리와 교차시킨 이 부분은 충격 그 자체다. '대화가 부족하니 밋밋하니' 이상한 소릴 늘어놓았지만, 조경란 작가의 숨 막히는 묘사력과 이미지 형상화 능력은 탁월했다.

<혀>는 독특한 소설이다. 소재부터,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후각, 미각까지. 그렇기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런 독특함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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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무진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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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 집중분석

주목되는건 극렬한 대립구조다. 병든 아내와 추은주, '내면여행'과 '가벼워진다'. 병든 아내의 몸은 나무토막(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집 p.45)같고, 추은주의 몸은 조바심이 일정도로 완연(p.26)하다. 똥냄새를 풍기는 아내와 젖냄새를 풍기는 추은주. 이런 노골적인 대립구조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위적이란 느낌이 너무 강했다.

추은주를 향한 화자의 시선은 충격적이다. '부하여직원을 향한 상사의 비뚤어진 시선'으로도 볼 수 있지만, 화자는 무관심으로 가장하고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일종의 반동형성. 오쿠다 히데오의 <마돈나>도 이와 유사하게 '부하여직원에 관심을 가지고 상상속 연애를 즐기는 직장남성'이 등장하는데, 약간은 코믹하게 그려진 그와 이 작품의 화자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웠음.

후각적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된다. 추은주 몸에서 나는 젖내(p.28), 호스티스 음부에서 풍기는 냄새(p.31), 아내가 풍기던 죽음의 냄새(p.45)등. 후각중추가 교란되어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하는 아내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이런 냄새를 맡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생명적 이미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김훈의 다른 작품들에서 이어졌던 후각적 이미지가 이번에도 여지없이 부각되고 있다.

'내면여행' '가벼워진다'중에 고민하던 화자는 마지막에 '가벼워진다'를 선택(p.49)한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딸을 시집보내고, 아내가 키우던 개 '보리'마저 안락사시킨 화자는 가벼워진 것일까? 홀가분 해진 것일까? 화자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그리 ‘가벼워’질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를 괴롭히는 방광염까지 떠올린다면 더더욱.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난 병든 아내와 추은주를 대립구조가 아닌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싶다. 즉, 유년의 모습(추은주가 낳은 여자아이) -> 성년의 모습(추은주 혹은 화자의 딸) -> 노년의 모습(아내) -> 화장(죽음). 이런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화장’은 삶을 마무리하고 육체를 태워버리는 동시에, 새로운 탄생을 위한 필수이다. 그렇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아내가 키우던 개의 이름이 ‘보리’인 것은 이런 순환적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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