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430
강성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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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집을 읽고 단 한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언제나 기대이상이었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렇다고 해서 선뜻 시집에 손이 가지도 않는다는 거다. 바쁘게 살면서, 조용히 시를 읽는 습관을 잊어버린 듯하다. (이건 정말 '습관'의 문제다) 뭐 아무튼. 강성은 시인의 <단지 조금 이상한> 역시 기대에 200%이상 부응했다.

 

2. 가장 놀란 건, 掌篇소설 같은 장시(산문시)가 절반이상이라는 점이다. 처음엔 페이지를 적시하려 했지만, 그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다. 혹시 "그래서 산문시 많은 게 불만이야??"라고 묻는다면, "아니!! 절대 아냐. 강성은 작가덕에 산문시 매력에 푸욱~ 빠졌다니까. 정말 좋았어^_^"라고 답하겠다. <단지 조금 이상한>의 산문시들은 관념의 나열이 아니라.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그래서 훨신 덜 부담스럽고, 읽는 재미까지 있으며, 더 많은 걸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셔틀콕](p.16)에는 아버지와 배드민턴을 치던 딸이, 숲속으로 사라진 셔틀콕을 찾으러 숲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 설정은 워낙 독특하고 기묘해서 미스터리 소설과 같은 긴장감이 느껴진다. 또, 갑자기 사라진 셔틀콕과 어두운 숲의 상징성 / 딸과 아버지가 배드민턴을 치는 행위의 의미 / 지루한 듯 바라보는 어머니의 존재 / 등을 생각하게 했다. 

 

[밤이 간다](p.30)에는 외숙모와 아궁이 불을 지피며 조청을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저 많은 조청은 누가 다 먹나요?" "이가 없는 노인들에게 먹여야지" 같은 대화가 이어져, 진짜 소설같은 느낌이 난다. 강성은 시인은 이런 설정으로 독자를 매혹시키고는, 슬쩍 지나가는 어투로 한마디씩 던지는데, 이게 참 놀라웠다. 가슴에 콕콕 박힌다. 한 부분을 보자. 화자인 '나'가 외숙모에게 "조청 속에는 무엇이 들었나요?"라고 묻자, 외숙모는 "죽은 사람들의 그림자들이지"라고 한다. 다시 '나'는 "나를 집어넣을 건 아니죠?"라고 묻자, 외숙모는 "저런 어쩌다 너는 이렇게 늙은 게냐"라고 한다. 놀랍다. 어린 시절 외숙모를 돕던 '나'는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유년시절의 향수, 어른이 된 현실의 허무 같은 게 느껴진다. (물론, 작품내에는 일체의 문장부호가 없다,)

 

3. 수록 작품을 몇 가지 군으로 묶어 보았을 때 가장 주목되는 건, 1) 초현실적이고 SF적인 작품이다. [환상의 빛](p.14)은 초현실적이고, 자아의 분열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 운전 중이지만, 왜 운전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옆에 사람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미지의 상태에서 차를 달려가고, 밤하늘을 푸른 박쥐들이 날아다닌다. 몽환적이고, 마치 환상의 늪을 보는 듯 하다.

 

[안녕 나의 외계인 아기](p.36)는 '외계인 아기'가 등장하기에 일견, SF적인 작품으로 보이나, 아니다. 도리어 사회비판의식 같은 걸 느꼈다. 이를테면, 임신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특히, 다문화 가정의 임신여성), 미혼모에 대한 멸시 등. 마지막 [안녕 지구 나는 이제 다른 별로 간다 어둠 속에서 달이 내 손을 슬며시 끌어당겼다]에서는, 비판의식이 극에 달해, 거의 관조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2) 어린 시절의 향수, 가족애를 다룬 작품도 눈에 띈다. [겨울방학](p.38)은 어린 시절의 향수와 괴담이 결합된 듯한 작품이다. 겨울 산에 토끼를 잡으러 간, 나와 동생, 사촌동생은 길을 잃는다. 그때 나타난 한 남자. 아이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데, 과연 남자의 정체는? [여름 한때](p.54) 가족애가 정반대에서 그려진다. 비록 '극'이라 설정했지만, 가족 공동체에 대한 비판의식이 절절하다.

 

[세계의 끝으로의 여행](p.58)은 거대한 바다 / 세계의 끝으로 가는 기차 / 등의 SF적 설정이 인상적이며,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큰아버지와 강하게 대조된다. 시인은 [큰아버지는 원래 이런 사람이죠 /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손목시계를 끌러 주고 / 동생을 너무 많이 닮은 조카를 보고 뒤돌아서 우는]이라고 하는데, 큰아버지에 대한 애잔함, 고마움 같은 걸 느꼈다.

 

4. <단지 조금 이상한>을 통해, 다시금 시를 읽는 즐거움을 느꼈다. 특히 산문시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강성은 시인의 시는, (굳이 비유를 하자면) 미지의 섬에서 아무도 모르게 자라나는 달콤한 열매 같다. 그 달콤함은 은밀하고, 초현실적이다. 다른 시집도 읽어보리라.

 

 

 

 

* 같은 제목-[환상의 빛]-의 시가 3편.(p.14,22,50) 세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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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성은 시인님 너무 아름다우셔~ ^_^
    from 알라딘에 쥬베이가 왔다!! 2013-08-15 00:20 
    <단지 조금 이상한> 서평 쓰고, 책 소개 페이지 가보니 왠 미녀분이 ^_^강성은 시인님 정말 아름다우시다ㅋㅋㅋ 무슨 영화배우 같으세요. 강성은 시인님 기사 읽고 기분 좋았던 게 있어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0534492 기사중에 [어릴 적에 슬픈 미학과 정서가 담긴 북유럽 동화를 무척 좋아했던 그는
 
 
 
도착하지 않은 삶
최영미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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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들어가서 처음 좋아했던 아이는 책을 많이 읽었다. 많은 기억이 사라졌지만,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품고 다니던 모습만은 뇌리에 남아 있다. '서른'과 '대학새내기'라…도대체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이 미스터리했다. 그애는 최영미 시인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래서 나도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읽지 못했다. 왜 읽지 못했는지, 그 애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됐는지, 기억 자체가 흐릿하다. 좋은 기억이라면 추억으로 남았을테니 분명 그리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 뭐 아무튼.

말이 길어졌지만,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도착하지 않은 삶>이 처음 읽은 최영미 시인의 작품이라는 것, 그 유명한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읽지 못했다는 것. 두 작품을 비교해 가며 최영미 시인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피는 것도 좋았겠지만, 지금은 무리라는 것까지.

<도착하지 않은 삶>의 느낌은 좋았다. '최영미 시인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구나'란 생각도 들었고,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얼른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했다. 1) 가장 마음에 든 건, 일상적인 소재를 친근하게 풀어낸 시다. 관리실 방송을 듣고 웃음을 터트리는 내용의 [한가한 오후](p.49), 귀여운 조카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는 [행복](p.72), 조카와 영화 '미이라3'를 본 에피소드인 [극장](p.76) 같은 것들. [한가한 오후]의 일부를 소개한다.

406동에 사는
세준이 어린이는 지금 즉시
큰엄마네 집으로 가기 바랍니다

?
관리실에서 내보내는 우리말을 이해하고
웃음의 꼭지가 터져 책상이 뒤집힌다
엄마도 아니고 왜 하필 '큰엄마'인가?

(…)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하하. 관리실 아저씨의 약간은 어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 않은가? 방송을 듣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작가의 모습도 보인다. 친구 집에서 게임에 몰두중인 세준이 어린이도 보인다. 관리실에 전화해 세준이를 찾는 큰엄마의 모습도 보이는 듯 하다^^

2) 시인의 의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시도 상당수다. [2007년의 사포](p.24)는 시인의 다짐이다. '너는 나를 짓밟지만, 나는 / 화려하게 지구를 물들일 거야.'인 둘째 문단이 아주 인상적이다. 상당히 마음에 든다. 특히 '…짓밟지만 / 나는 화려하게…'가 아니라, '…짓밟지만 나는 / 화려하게…'부분에서 입술을 꽉 깨문 시인의 의지가 전해졌다. '나는......' 이렇게 다짐에 다짐을 하는 거다.

3) 특징적인 시도 있다. 미국산 소고기반대 촛불집회를 소재로 한 [2008년 6월, 서울](p.52)은 촛불집회와 함께 역사에 남을만한 시다. (혹시 이를 소재로 한 다른 시도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인상적인 구절은 '유모차 부대를 호위하는 청년들이 어찌나 멋있던지! / 한국 남자들의 품종이 눈부시게 개량됐어 / 역사는 이렇게 진보하는 거야'이다. '품종개량'이란 구절이 참 재미있지 않은가? 뭐 분노하는 남자도 있겠지만.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대한 [지상 최대의 쇼](p.54)도 멋지다. 개막식의 아름다움과 강렬함에 영감을 받은 시라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그리 간단하지 않다. 다시 읽어보니 비판의식이 깔려 있었다. 화려한 겉치례나 서양문물에 대한 무분별한 동경이 곱게 보이지 않은 듯 하다. 일부를 소개한다.

(…)
서양의 근대문물이 얼마나 신기했으면,
봉건제에서 포스트모던으로 건너뛰어
2008년의 첨단기술로 버무린 무협지를 과시하는가.
백년의 어둠을 깨고
허공을 불지르며 질주하는 열차에
나는 브레이크를 걸고 싶었다.

4) 4부는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국제적인 시가 많다. 교토의 사찰 용안사를 소재로 한 [아름다움이 너희를 자유롭게](p.91), 스페인 연안 항구도시 알리칸테의 풍경에 눈에 선한 [4월의 알리칸테](p.96) 등등. 이런 시는 이국적인 풍경이 생생하다 못해, 이국의 열기나 숨결까지 전해졌다. 여행을 소재로 한 시를 거의 읽지 못해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굉장히 좋았다.

최영미 시인의 작품은 처음이었지만, 단순히 처음으로 끝날 거 같지 않다. <도착하지 않은 삶>은 시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문단(일본을 포함한)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내겐 무관한 작품이었다. 반면, 이 작품의 강렬한 향기는 멀리 퍼지기 전, 내가 먼저 맡아 버렸다. 행복하다. 홀로 느끼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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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걸어서 온다 - 윤제림 시집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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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수첩에 시를 옮겨 적고 틈틈이 음미하던 문학소년(ㅋㅋ)이었지만, 시집은 참 오래만이다. 시집을 리뷰하는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일단 소설을 읽는 것처럼 쭈욱 읽어 나갔다. 그다음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한음절 한음절 다시 읽었다. 조금 낮설기도 했지만 시를 읽는다는 것, 좋았다.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다시 발견한 느낌.

첫 작품부터 놀랐다. '윤제림 시인과 뭔가 인연이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 하면, 시속에 내 이름이 나온 것이다. [제춘이 엄마](p.13)엔 이런 대목이 있다. "가서 보아라, 갑수 엄마가 쓴 최갑수, 병섭이 엄마가 쓴 서병섭 / 상규 엄마가 쓴 김상규, 병호 엄마가 쓴 엄병호" 정신이 바싹 들었다.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재춘아, 공부 잘해라!" 다시 한번 정신이 바싹 들었다. 아무래도 윤제림 시인과 뭔가 인연이 있는 듯하다. 이 시엔 자식이름을 따 가게이름을 짓는 어머니의 모성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시인은 말한다. 더 멋진 이름이 없어서, 생각나는 이름이 저것밖에 없어서 저런 이름을 정하는게 아니라고. 그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 끝없는 사랑인 것이다.

이어지는 [공군소령 김진평](p.14)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우리나라 비행기는 전부 / 진평이가 몬다"라고. 이런 것이다. 군에서 사고가 생기면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 같은, 우산장수 아들을 둔 부모가 날씨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 이치인 것이다. 이런 '모성애'는 '가족애'적 관점으로 확대된다. [가족](p.16)엔 자기 옷을 입은 아버지, 자기 옷을 입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옷이란 매게물을 통해 가족 3대가 끈끈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작품도 있다. [친구의 집을 지나며](p.24)는 어린시절을 보냈던 마을을 찾은 화자의 쓸쓸함이 묻어난다. 친구네 마당에 남은 녹슨 경운기, 학교에 덩그러니 남은 이승복 어린이 동상, 하지만 쓸쓸함과 상실감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시인은 친구가 없는 마을을 심심한 마을이라 칭한다. [외할머니는 슬며시](p.40)도 비슷한 느낌이다. 대상이 친구가 아닌 외할머니란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목련에게](p.77)는 뭔가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꽃이 지니 몰라보겠다" / "용서해라" / 蓮 이게 전부이다. 시간의 흐름과 관계변화 양상에 주목한 듯한데, '용서해라'에선 약간은 담담한 태도가 보여지기도 한다. 마지막 蓮은 어떤 의미일까? [윤제림 괄호 열고 1959 물결표 괄호 닫고](p.104)도 인상적이다. "물결처럼, 바람처럼, 황포돛배처럼, (후략)" 이어지는 서술은 시인이 살아온 삶을, 시인이 지향하는 삶을 의미한다. "윤제림(1959~) / 몰년미상(沒年未詳)"란 마지막 부분은 삶을 관조하는 초월적 의지가 느껴지는 동시에, 삶에 대한 순수한 의지를 느낄 수 있다.

<그는 걸어서 온다>를 통해 윤제림 시인을 처음 만났다. 오랜만에 접하는 시집, 처음 접하는 시인, 솔직히 걱정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행복하다. 멋진 작품과 시인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에. 읽는동안 마음이 차분해 졌다. 진지하게 한문장 한문장 생각하고 돌아보는 여유를 가졌다. 부담스런 난해함이 아닌, 삶과 일상의 추구. 편안함. 이것이 윤제림 시인의 최대 매력이다. <그는 걸어서 온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소중한 시집이다. 자신 있게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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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4-2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군요! 이 말 밖에...^^

쥬베이 2008-04-26 15:05   좋아요 0 | URL
좋아요 좋아^^ 시집도 좋더라고요

칼리 2008-04-2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역시 어려워요. 의미를 짚어내려 애쓰다 보면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 되어버려서...함축적인 문장에는 도통 익숙해지기가 어려워요. 쥬베이님 리뷰를 따라가다 보면 한번 도전하고픈 생각도 드네요. 그나저나...갑수,병섭,상규, 병호,제춘...과연 어느게 정답일까...아리송합니다.^^

쥬베이 2008-04-28 18:15   좋아요 0 | URL
시가 어려운건 사실이에요. 때론 '이게 시야? 나도 쓰겠다' 이러기도 하는데ㅋㅋㅋ 시에 담긴 의미를 공감하는 순간, 느끼는 쾌감이 좋더라고요^^
아...제 이름은 세번째 상규 입니다ㅋㅋㅋ
 
섬에서 보낸 백 년
조용미 지음 / 샘터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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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양장도서에 광적호감을 가지고 있는 내게 150페이지 남짓한 작디작은 이 책이 곱게 보였을리 없다. 두께나 겉모양이 그 책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건만, 아직껏 저런 취향을 버리지 못하였으니…쩝. 그렇다. <섬에서 보낸 백 년>에 대한 첫인상은 딱 저 정도였다. 허나 보면 볼수록 예뻐보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묘하게 정이 가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또 그러하였으니 내 속을 내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섬에서 보낸 백 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외딴섬에서의 여유와 고독을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로 승화시킨 작품' 이라고나 할까…. 칭찬과 미사여구가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만한 칭찬을 들을 자격이 있다. 작품 전체에 녹아있는 저자의 시적인 문체는 날 사로잡았다. (문체가 너무 아름다워 살펴보니 저자는 시인이군요)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빈집에 들어간 나는 동백나무 아래 펼쳐진 한뼘만한 머위밭에 쪼그리고 앉아 또 한참을 머물다 이번엔 멀리서 새들이 지져귄다. 이제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고, 곧 해가 진다고, 사람도 시간도 마냥 너를 기다리지는 않는다고.'(p.37.38) 문장하나하나가 전부 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감미롭고 아름답다.

이 책은 저자가 남해의 어느 섬에서 보낸 봄 한철의 기록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그 섬에서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을 모르고 지냈다. 대신 바람과 나무와 햇빛과 달빛과 바다와 등대와 먼 섬들과 고깃배와 물고기들과 안개와 비와 돌담과 벼랑과 가물거리는 불빛과 짙푸른 밤들과 함께 했다.(저자의 말중) 문명의 이기를 떠나 자연속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무었일까? 고요? 평온? 외로움? 저자가 '남해의 어느섬'에서 자연과 하나가 될 때 난 어디서 무얼 했는가를 떠올렸다. 그랬군. 그때 난 너무도 다른 지구 한귀퉁이에서 아둥바둥 삶의 한페이지를 끄적이고 있었다. 너무도 다르게….

저자는 자연속에 머물러만 있지 아니하고, 자연과 함께하며 친해지길 꿈꾼다. 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날이 개고 학꽁치를 잡으로 나갔다. 밑밥을 던지고 조금 지나자 물 밑으로 학꽁치 떼가 몰려들었다. (중략) 학꽁치는 매끈하게 반짝이는 은빛비늘아래 형광빛이 도는 선명한 노란 옆줄과 밝은 코발트빛 눈꺼풀을 하고 있었다. 저를 잡았던 손바닥 가득 투명한 비늘과 비린 내음을 묻혀 놓고 풀쩍 바다로 뛰어내린, 내가 놓친 학꽁치는....'(p.42) 그녀에게 있어 이 섬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S가 주인과 함께 공룡머리쪽으로 내려가고 한나절 방에 가만 낮아 있으니 새들이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내려와 저희들끼리 모여 마구 지저귄다. 염소들도 마당에 잔뜩 들어와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나는 그들의 평화로움을 깨지 않으려 한동안 꼼짝 않고 없는 듯 있었다.'(p.47)

문명의 이기를 떠나 자연과 함께 하는 그녀에겐 멸치하나도 새롭고 소중하다. '배를 타고 섬을 한바퀴 돌았다. 배가 동굴쪽으로 천천히 들어가 멈추어 있을때 물밑을 보자 멸치떼가 은빛으로 일렁였다. 멸치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멸치가 물 밑에서 뿜어내는 은빛이 수면에서 햇살과 만나 눈이 시리고 부셨다.'(p77) 묘사하나하나가 생동감 넘처서 은빛을 뽐내며 요동칠 멸치떼 모습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위에서 나의 양장도서에 대한-그것도 두꺼운-이유없는 편애를 고백했는데, 이 책은 내게 그러한 편애가 얼마나 근거없는지 이야기 해주었다. 근래 읽은 책 중 가장 감미로운 묘사와 서정성을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한다. 책읽는 내내 난 저자가 있던 '남해 어느 섬'에 가 있었다. 저자를 멀리서 바라보며 함께 자연을 느꼈다. 저 한마디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설명되었을거라 믿는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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