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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평점 :
이제부터 듣게 될 이야기는 '한 소녀'에 관한 것이다. 짐작은 했겠지만 그 소녀는 책도둑이다. 책도둑, 책도둑이라…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친 표현이다. 이 소녀는 가족을 잃고 양부모 밑에서 지내야했던 가엾은 소녀다. 책을 통해 조금씩 삶의 의욕을 되새기는 이 사랑스런 소녀에게 책도둑이라니! '죽음의 신'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맞다. 소녀를 지켜보고 책도둑이라 부른 자는 죽음의 신이다. 죽음의 신은 말한다. "자, 여기 그것이 있다. 몇 손가락에 꼽을 만한 이야기. <책도둑>. 마음이 내키면 나와 함께 가보자. 내가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내가 뭔가 보여줄 테니까."(p.28)라고. 믿어보자.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동생을 잃고 어머니와도 떨어지게 된 리젤 메밍거, 전쟁은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나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한스 후버만이란 양부모. 이제부터 리젤의 새로운 삶은 시작이다. 전쟁의 암울함이 이후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리젤이 책을 통해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양아버지 한스 후버만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함께 책을 읽으며, '루디 슈타이너'같은 친구도 사귄다. 소녀의 성장소설같은 새콤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책도둑이라 불리는 소녀, 바로 리젤이다. 리젤은 양부모 밑에서 생활하게 되는 혼란한 틈에 첫번째 절도(?)를 감행한다. 책제목은 '무덤을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 소녀가 읽기에는 전혀 어울릴만한 책이 아니지만, 변변한 책한권 없는 리젤에겐 소중한 책이다. 이후 목차는 소녀와 인연을 맺게된 책제목이다. 때론 훔치고, 때론 선물받은 리젤만의 책들.
마커스 주삭의 유머감각은 인상적이다. 위에서 언급한 '성장소설같은 느낌'을 들게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리젤의 양어머니의 로자 후버만, 그녀는 한마디로 극악스런 여인이다. 저자는 그녀의 성격을 한마디로, 그것도 유머스럽게 표현한다. '로자 후버만이 한 말의 번역 "뭘 보는 거야, 이 똥구멍들아?"'(p.45) 한스 후버만이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면서 그가 그린 그림을 '한스 후버만의 전형적인 작품'이라고 보여주는 부분(p.100)등등 이야기 곳곳에 녹아있는 유머감각은 읽는이를 즐겁게 해준다.
<책도둑>은 '죽음의 신'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야기 중간중간 개입해 간략한 코멘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 저자의 유머감각이라고 인용한 부분은 전부 죽음의 신이 끼어들어 코멘트한 부분이다. 이러한 구성은 처음이다. 마커스 주삭만의 개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리젤은 '어깨 으쓱거리기', '마인 캄프', '굽어보는 사람' 같은 책과 함께 조금씩 성장한다. 소녀에게 책은 삶 그자체였다. '굽어보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말을 해야겠다. 저 책은 리젤이 훔친 책이 아니다. 후버만네 지하실에 숨어있는 유대인 막스 판덴부르크가 직접 만들어 선물한 책이다. 고작 13페이지밖에 안되는 책이지만, 마인 캄프의 종이에 페인트를 칠해 만든 조잡한 책이지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책이다. p.332이하에 수록되어 있는 13페이지를 주목하라. <책도둑>안에 있는 또하나의 책이다.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책도둑>, 정말 괜찮은 책이다. 읽고 후회한다면, 그런 분이 만약 있다면 우리집 열쇠를 드리겠다. 내 서재에서 책들을 전부 훔쳐가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