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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3 - 법정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3권에서는 본격적으로 교내재판이 시작된다. 2권에서 소년(소녀)탐정처럼 곳곳을 누비며 진실을 파헤치던 료코, 간바라 등은 법정에서 공방을 벌인다. 아쉬운 점을 보자.
1. 재판 초반부가 너무 지루함.
재판 초반부에서 이야기되는 것들은, 이미 2권에서 전부 독자가 읽었던 내용이다. 단지 법정에서 다시 진술한다는 것뿐. 지루할 수밖에 없다. p.222 이구치가 등장하기 전까지 볼만한 것은, 모기 기자(p.140), 가시와기 히로유키(p.166)의 진술뿐이다.
2. 교내재판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
이는 <솔로몬의 위증>의 근본문제이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재판진행은 중학생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나이는 중학생인데, 마치 법조경력 30년이상인 검사,변호사처럼 재판을 하니, 황당할 수 밖에.
한 장면을 보자. 간바라는 하시 유타로를 신문하면서 '어떠한 가정과 (스포일러 때문) 하시다의 태도를 연계해 날카로운 질문을 한다.(p.364) (교내재판 중 가장 논리적으로 뛰어났던 신문장면) 그러자, 후지노는 즉각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고, 간바라는 더 크게 "방금 질문은 철회하겠습니다."라고 한다. 이노우에는 "배심원들, 방금 질문과 답변은 잊도록. 저런 걸 유도신문이라고 하는 거야"(p.365)라고 정리한다. 완벽하다. 이런 걸, 중학생들이 할 수 있다고?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 하겠다. 대학 1학년,2학년때 학회에서 주최하는 [민사법학회 모의재판]을 2차례 준비하고 참여했다. 현직 판사님을 판사로 모시고, 학회에서 검사, 변호사을 뽑아 이 작품처럼 모의재판을 하는 것이다. 현직 판사님에 법대생들이 참여했으니 모의재판이 완벽했을거 같지만, 돌아보면 상당히 유치했다. '미리 짜둔 각본대로 연극을 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이제 막 사법고시를 수석합격한 사람을 판사역인 이노우에 자리에 넣고 재판진행을 시킨다면, 과연 작품 속 이노우에처럼 할 수 있을까? 100% 장담하건데 못한다.
3. 교내재판은 무모하고, 어설픈 설정이다.
미야베 미유키가 굳이 법정공방을 그려내고 싶었다면, 무모하고 어설픈 [교내재판]이 아니라, [실제재판]을 소재로 하는 것이 나았다. 예를 들어, 오이데 슌지를 감옥에 쳐 넣고, 실제 변호사와 검사가 협박장의 진실, 오이데의 알리바이 등에 대해 법정공방을 벌이는 거다. 그랬다면, 존 그리샴 같은 꽤 근사한 법정 미스터리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검사역을 맡은 자가 한다는 말이, '오이데는 가시와기를 죽이지 않았다.'(2권,p.512)인데, 교내재판 설정에 몰입하라고? 후지노 료코가 변호사역을 맡기로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검사역을 맡는데부터 이야기는 꼬인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교내재판'을 한다고 했지만, 오이데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는 자가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결국 오이데의 무죄를 확실하게 입증해 주겠다는 것이다. 검사가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 어이없고 황당한 설정때문에 1권과 2권 초반에서 당당하고, 멋졌던 료코는, 3권에서는 어정쩡하고 비겁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한 장면을 보자. 료코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낀 주리가 료코를 맹비난(p.606)하자, 료코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고, 몸까지 휘청거린다.'(p.606,7) 왜? 료코는 주리를 속였기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료코가 주리를 속인 건, 물론 저 황당한 설정 때문이고.
4. 마음에 들지 않는 결말.
결말은 별로 감흥이 없다. 1권에서부터 예상 가능한 것이였고, 특별한 반전도 없다. (우리 누나한테 한번 물어봐야겠다. 결말의 어느 부분때문에 울었느냐고.) 특히 형사 사사키 레이코는 초반에서부터 김 빠지게 한 대표인물이다. 레이코는 초반부터 오이데 범인설을 일축한다. (레이코의 이런 태도가, 혹시 막판 반전을 위한 복선은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로 시종일관 강하게 부정.) 이렇게 되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간바라의 증언이 너무 쉽게 채택되는데 반해, 자신의 증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리는 폭발(p.605이하)한다. 이후 주리는 다시한번 증인으로써 진술하는데, 주리의 태도는 결연하고 진지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미야베 미유키는 이를 거짓말로 단정(p.612)짓고, 기묘한 논리로 주리의 행동을 해석한다. 이런 논리이다. [간바라는 재판과정에서 오이데의 악행을 들추고 꾸짖었다. -> 이에 주리는 간바라만이 자신을 이해해 준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간바라는 가시와기의 죽음이 자신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서, 주리는 간바라를 옹호하기 위해 오이데가 범행을 했다고 거짓말한 것이다.] 거 참.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없는 해석이다. 최대한 이해해 보려고 다시 읽어봐도 어이없다.
사실, 간바라의 증언이 진실인지, 주리의 증언이 진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오이데 무죄설의 증거인 [가시와기에게 걸려온 다섯통 전화의 비밀 / 고바야시 가전제품점, 고바야시의 목격증언]은 간접증거일 뿐이고, 간바라의 증언도 주리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리가 이제껏 주장해 온 것이 진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결론을 선택하던 그건 작가의 마음이지만, 대립되는 주장을 균형있게 바라보지 않은 것은 너무 아쉽다. 너무 빨리 결론을 예상하게 되기 때문에, 몰입이 안된다.
5. 그외에 아쉬웠던 부분.
- 1권 처음 도입부, 고바야시 가전제품점의 공중전화박스 설정, 2권 오이데家 방화사건의 핵심키워드 '불꽃장인', 이것들은 생각보다 크게 의미가 없음
- 미야베 미유키의 결론대로라면, 가시와기와 간바라의 관계가 좀 더 부각되어야 했던 게 아닐까?
- '이건 뭐야?' 했던 구성. p.202이하는 [8월 16일 교내재판 둘째 날] 이란 작은 타이틀이 붙어 있고, '야마자키 신고'가 중심이 되어, 그가 바라보는 시점에서 서술된다. 이런 구성으로 야마자키 신고를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다면야 훌륭한 구성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고양이가 사물을 보듯, 그냥 신고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또한 갑자기 '야마신'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데, 처음엔 '야마신?? 야마신이 뭐지??' 상당히 어리둥절했다. 이런 뜬금없는 구성변화는 미야베 미유키답지 않은 것이다. 그냥 웃길 정도로 아마추어적인 서술. p.290이하는 [8월 17일 교내재판 셋째 날]이란 타이틀하에 '구라타 마리코'시점에서 서술된다. 이것도 위와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