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경력의 오성급 호텔 조리사. 책을 읽는 것을 즐기는 그가 매달 한 권씩, 음식 주제의 신간을 읽고 엣세이 형식의 리뷰를 썼다. 이 책은 그의 독서와 음식 사랑, 또 그의 인생 철학에 대한 글 모음이다. 하지만 무게 잡고 교훈을 설파하는 아저씨의 글은 아니고 책 좋아 하는 사람이 책을 읽고 글을 써서 책으로 내는 것에 대한 감동과 흥분과 뿌듯함이 가득찬 책이다. 문장과 어휘는 소박하고 성실하다. 그에게 (거의) 모든 책은, 특히 그의 분야, 음식에 대한 책은 열정의 대상이 된다. 그는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책을 대하고 그 안의 음식과 다양한 문화를 만난다. 더해서 수줍게, 때로는 흥분해서 독자에게 건넨다. '이 책을 읽어보세요. 맛있습니다.' 


재주를 부리거나, 많이 다듬고 꾸민 글이 아니라 한호흡에 읽기에는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하지만 50대 기혼 남성,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했어도 잘난 척 안하고 '라떼'를 설교하지 (아, 물론 아주 없을 수는 없지만) 않는 착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여성 요리인에 대한 이야기와 '엄마 밥', 딸 바보에 대한 부분은 ... 그렇다. 그러하더라. 뭐, 착한 사람이에요. 남북정상 회담 뉴스를 따라가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상태를 염려하며 식단을 궁리하고 역사와 문화 속의 음식도 고민하는 자세도 보인다. 편집에서 응? 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가 정색하고 싫다고 지적한 어떤 욕설을, 감탄사로 쓰이는 그 단어의 뜻까지 굳이 흉한 의미를 적어 놓었던데 바로 앞 챕터의 시작이 그 욕설이었다;;; 



요리사인 나는 고추를 다룰 때마다 계영배를 떠올린다. 계영배는 과유불급,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술잔이다. 잔의 3분의 2 정도까지 술을 부었을 때는 술을 온전히 담고 있지만 그 이상 담으면 아주 희한한 현상이 일어난다. 술잔 밑에 뚫린 구멍으로 모조리 새어나가 버리고 빈 잔이 된다. 고추도 그러하다. 고추는 절대 음식에 과하게 쓰면 안된다. 맛의 밸런스를 단숨에 깨버린다. (22-3)


장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이라는 사람이 있다 .프랑스 출신의 법관이자 미식평론가인데, 그가 1825년에 쓴 Physiologie du gout(미각의 생리학)은 한마디로 '미식담론의 경전'으로 추앙받는 책이다. 그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다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했단다. (31)


요즘도 TV를 켜면 요리 관련 프로그램이 차고 넘친다. 탐식을 강요하는 연예인 먹방, 미식은 커녕 포식을 강요하는 미디어 매체들. '푸드 포르노'라는 기막힌 작명을 십분 이해한다. (172)



이 책의 저자도 강력 추천하는 음식 책은 정소영 작가의 <맛, 그 지적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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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26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 왜 이렇게 끝없이 나오나요!!ㅠㅠ 아참! <맛, 그 지적 유혹> 너무 좋았어요!! 👍

유부만두 2020-12-26 15:27   좋아요 0 | URL
책은 계속 계속 나오고 밀린 책도 쌓여가고 그러네요.

<맛, 그 지적 유혹>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

파이버 2020-12-26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리하는 분이 책을 요리한다면 어떤 글이 나올지 궁금하네요ㅎㅎㅎ
유부만두님 프로필 사진 바꾸셨네요~!

유부만두 2020-12-26 15:28   좋아요 1 | URL
베르사이유의 장미, 제 사춘기의 기억이에요. ^^

파이버 2020-12-26 15:40   좋아요 1 | URL
오스칼이군요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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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제 다른 책

궁금해 하던 팡팡의 우한일기가 나왔다. 


코로나19의 비극이 처음 터져나온 곳, 그리하여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들은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갈 이 바이러스를 '차이나 바이러스'나 '우한폐렴'이라 지칭하며 거리를 두었던 곳 - 중국 우한에서 일어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돌연한 창궐과 일파만파의 확산, 은폐와 침묵, 고위직들의 안이한 대응과 평범한 사람들의 절규를 목격하고, 그 실상을 낱낱이 기록한 작가의 일기가 출간되었다. (알라딘 책소개글) 



우한 봉쇄 때 트위터에 뉴욕 타임즈 기자의 현장 리포트가 매일 올라왔었다. Amy Qin (@amyyqin)은 결국 중국 정부에 추방되어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리포트 역시 정리되어 기록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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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숫자들은 우리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은 이보다는 점성이 강해야 할 듯싶다. 이들이 도깨비풀처럼 작은 가시를 품고 있어 아무에게나 달라붙고, 털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그 가시들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억센 뿌리를 내려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조금씩 전문 용어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아리들을 ‘처리’할 때는 죽인다, 잡는다고 하는 대신 불량품을 도태시킨다고 중얼거린다. 하자가 생긴 물건을 처리하는 거다. 이건 도태다. 도태, 도태, 도태. 어느 순간엔 정말 닭을 죽이는 것이 문서를 파쇄하거나 삼각 김밥을 폐기하는 것처럼 사무적으로 와닿을 때가 있다. 도태 대신 B52나 비활성화라는 말을 썼다면 사무적인 순간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많은 수의 닭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건 소리나 그림자가 아니라 다른 닭이다. 실제 위협을 감지하고 놀란 닭을 본 다른 닭 역시 그 위협을 경험한 것처럼 놀라며 뛰어오른다. 사람 식으로 말하자면 누군가 미친개에게 물릴 뻔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전해, 전해 들은 사람 역시 개와 마주치면 당사자만큼이나 놀라는 것이다. 강한 자극을 주면 주름을 없애기 위해 식탁보를 펄럭일 때처럼 놀란 닭들의 물결이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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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는 차분하게 올해 읽었던 좋은 책들에 대해서 정리하고 새해 계획도 세우고 그러는 거라고 들었는데. 나는 막내 기말고사 공부할 때 옆에서 간식 준비해 주면서 만화책 보느라 도끼 자루 썩는줄 모르고 있다. 역사 이야기를 빙자한 음식 이야기를 빙자한 만화책이고요, 인간성 말살의 디스토피아를 빙자한 무협소설에, 권선징악과 현실 비판을 빙자한 귀신 이야기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 나이에 왭소설에 빠지니까 와아.... 폰으로 읽다보니 눈 뿐 아니라 손가락도 아픕디다. 그런데 읽기 속도가 막 빨라지고 그러네요? 게다가 왭툰도 그간 제가 은근 많이 보고 그랬거든요? 모아놓고 보니 양이 (그간 결재한 금액도) 많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 아직 이 이야기들이 끝나지 않았다는 거. 나 원래 올해엔 코로나 핑계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으려고 했었는데. 그냥 시간만 잃어버리고 시력도 잃어버리고, 하지만 재미를 찾았지. 어쩌면 이런게 어른의 세계 아닐까.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간 탐닉했던 이야기들은 .... (나만 망할 순 없지) 




















노부나가의 셰프 (22권 까지 나왔다는데 12권 까지 봤음)

전지적 독자 시점 (웹소설로는 읽다 지쳤... 반복이 많아서 웹툰이 낫다. 회당 길이가 짧아서 감질 나지만)

극락왕생 (12회 까지 봤는데 회당 길이가 길고 이야기의 깊이가 남다름. 6회 강추) 

경이로운 소문 (웹툰은 시즌 2까지 다 따라가고 있음. 알고 보니 남편이가 먼저 봤었음. 그림체가 슬슬 바뀌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드라마 보다는 웹툰이 나은듯.) 

삼국지톡 (아직도 관도대전이라서 일단 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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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0-12-23 1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런게 어른의 세계 아닐까 222

유부만두 2020-12-24 05:5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맘 대로 하다가 망하기도 하는 거요? ;;;;

비연 2020-12-23 1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부나가의 셰프... 재밌죠 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0-12-24 05:55   좋아요 0 | URL
재미있어요. 요리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초한지나 삼국지 읽는 기분이에요. ^^

몰리 2020-12-23 18: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혹시 내년에도 종식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다시!
저 그래야겠다는 자극을 확 받았습니다. 지루한 어른의 세계로...

유부만두 2020-12-24 05:57   좋아요 1 | URL
아. 이런 날라리의 고백에서 몰리님은 다른 면을 보시는군요.
내년에 전염병이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100이지만 그래도 잃어버린 시간을 읽으실 몰리님을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또 모르죠 옆에서 제가 ....)

파이버 2020-12-23 1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이런게 기말고사를 안봐도 되는 어른의 세계아닐까요333 전독시는 단행본 기다리고 있어요

유부만두 2020-12-24 05:59   좋아요 1 | URL
아이고 ... 전 기말고사를 느무 느무 많이 다 봤거든요.
전독시 만화가 더 나아요. 소설은 네버 엔딩이고요.
단행본으로 나오면 집중해서 읽으면 또 더 재미있을 거 같아요.

이렇게 세상이 망하는 소설/만화가 아니라 전쟁/호러가 아닌 이야기 속에 내가 들어간다면? 하고 상상해 봤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네요.

scott 2020-12-23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특하게 공부하는 막뚱이 옆에서 간식챙겨주시는 유부만두님 코로나 시대에 석봉맘

내일은 크리스마스 이브
유부만두님 댁에 트리 한그루 심어드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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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Merry..........:+☆+:............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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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erry ..:+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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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모두 행복 평안한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막둥이 시험공부 홧팅!!!

유부만두 2020-12-24 06: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석봉맘이라 칭하기엔 전 놀고 있었으니 맘이 찔립니다.

예쁜 글자 크리스마스 트리 잘 받았습니다.
다들 집에서, 모임이나 여행도 없는 성탄절이라도
건강하게 지내시길요.

막둥인 시험 끝나고 게임으로 돌진했습.....

수이 2020-12-23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손 번쩍!! 그리고 극락왕생도 더불어 찜찜찜!

유부만두 2020-12-24 06:03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를 읽게 될까요?
큰애 군대 갔을 때 읽겠노라, 했다가 접고
코로나 창궐에 읽겠노라, 했다고 접고

극락왕생 웹툰이 좀 비싼 편이지만 꽤 멋진 작품이에요. 6편 강추. 특히 강추. ㅜ ㅜ

2020-12-25 05: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5 0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6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