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숫자들은 우리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은 이보다는 점성이 강해야 할 듯싶다. 이들이 도깨비풀처럼 작은 가시를 품고 있어 아무에게나 달라붙고, 털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그 가시들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억센 뿌리를 내려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

조금씩 전문 용어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아리들을 ‘처리’할 때는 죽인다, 잡는다고 하는 대신 불량품을 도태시킨다고 중얼거린다. 하자가 생긴 물건을 처리하는 거다. 이건 도태다. 도태, 도태, 도태. 어느 순간엔 정말 닭을 죽이는 것이 문서를 파쇄하거나 삼각 김밥을 폐기하는 것처럼 사무적으로 와닿을 때가 있다. 도태 대신 B52나 비활성화라는 말을 썼다면 사무적인 순간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많은 수의 닭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건 소리나 그림자가 아니라 다른 닭이다. 실제 위협을 감지하고 놀란 닭을 본 다른 닭 역시 그 위협을 경험한 것처럼 놀라며 뛰어오른다. 사람 식으로 말하자면 누군가 미친개에게 물릴 뻔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전해, 전해 들은 사람 역시 개와 마주치면 당사자만큼이나 놀라는 것이다. 강한 자극을 주면 주름을 없애기 위해 식탁보를 펄럭일 때처럼 놀란 닭들의 물결이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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