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취향은 힙합과 걸그룹인데 훈련소를 향하면서는 걸그룹 노래들만 계속 듣고 싶어했다. 두어 곡 빼고는 내 귀에는 낯선 귀엽게 반복되는 리듬. 예전에 우리 부모님께서 '요즘 가수들은 다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노래를 부른다' 하셔서 섭섭했는데, 어쩜 내가 그렇게 되었다. 어제 저녁에 발표되는 레드 벨벳과 수지의 신곡을 듣지 못하는 게 영 아쉬운지 여러번 내게 '대신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그래, 그럴게. 나도 이번 기회에 귀를 열어 볼게. 아들은 내게 매일 두 곡의 걸그룹 노래를 들으라고 했다. 오케이.

 

레누와 동네 공식커플인 안토니오는 니노를 향한 레누의 눈빛에 불안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 그 원인이 그 시인넘 아니겠니) 어머니와 동생들만 남겨두고 입대를 해야하는 상황. 자신의 처지를 아무리 관청에 호소해 봐도 변동은 없고, 애가 탄 레누는 친구 릴라의 도움으로 솔라라 망나니 부잣집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유전무죄, 아니 유전무병이라니까. 안토니오는 자존심에 더할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만다. '레누, 넌 나를 고작 그렇게 여겼구나.' 안토니오는 레누와 헤어지고 군대에 간다.

 

상처 받은 레누는 계속 릴라와의 긴장되고, 또 풀어지고, 다시 팽팽해지는 관계를 유지한다. 읽는 동안 나는 레누 편에도 서서 릴라가 야속하다가 릴라가 측은하기도 할라치면 미친X, 하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열여섯 살, 고작 고등학생 나이에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진학도 못하고 결혼해 버린 릴라. 가장 친한 레누를 통해서 못이룬 꿈을 바라보는데, 그 아이 속은 얼마나 뒤틀리고 아플까. 남편이라고는... 하아... 이제 열여섯. 레누와 니노 이야기도 달콤하지만, 일단 군에 간 안토니오가 건강하길 바란다. 고생한다고, 힘들어 한다고 편지를 썼다는데 레누는 그 이야기도 전해들을 뿐.

 

매일 걸그룹 노래를 두 곡씩 듣는 것 말고 21개월 동안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렇다. 그 책을 읽을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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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30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8-01-30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힙합과 걸그룹을 좋아하는 아드님이 건강하게 (나름) 즐겁게 군생활 잘 마치기를 바래봅니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읽으시다가 주요 인물들 욕하는 시간에 저 좀 꼭~~ 불러주시구요^^

유부만두 2018-01-30 18:0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전 여름 여행으로 릴라네 따라서 레누가 섬에 와있는 장면이에요. 니노는 속을 모르겠네요. 릴라 레누 둘다 정이 가다 말다 하는데... 왠지 짠하고 미친애들 같고 ... 이야기는 정신없이 재밌어요.

유부만두 2018-01-31 18:10   좋아요 0 | URL
니노 새키....하아..... 부전자전인건가요?!!

상처를 릴라에게 드러내지 않는 레누도 답답하지만 릴라도 짠하고 그래요.

단발머리님의 2권 리뷰는 애써 피하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8-01-31 19:25   좋아요 0 | URL
니노 새끼 정말 나쁜 새끼입니다. 곧 3권 리뷰 나갑니다.
그것도 피해주세요~~~~~*^^*

목나무 2018-01-3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저 2권만 보면 출판사를 향한 욕이 불쑥!!!!!!!
매일 2곡의 아이돌 노래듣기. . . 아드님의 엄마를 향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ㅋㅋ

유부만두 2018-01-30 19:17   좋아요 0 | URL
하아...나도 3권부턴 새표지 페이퍼백으로 읽으려니 김이 샌다고요....

유부만두 2018-01-30 19:18   좋아요 0 | URL
수지 노래 좋던데? ^^

2018-01-31 0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31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판사의 글은 진짜 어른의 글 같다.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다. 제목과는 달리 그의 개인 생활 보다는 사회 생활, 법정에서의 일화와 고민들이 더 읽을만했다. 연재 칼럼이라 한번에 읽기에는 물리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풍기는 ‘사회 지도자층’의 기운은 선언, 고백이 아니라.

좀 풀린다더니 다시 얼어붙은 공기. 오늘부터 낯선 곳에서 생활을 해야하는 큰아이가 잘 적응하고 아프거나 다치지 않았으면한다. 난 해줄 게 없네. 행운의 부적이라도 네 옷에 꿰매 보내고 싶다. 지겹고 긴 시간이 되겠지 21개월. 넌 개인이 아닌 단체로 통하게 되겠구나. 아침엔 따뜻한 국을 차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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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1-29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려고 사두었죠 하하하하. 막 기대됨다~

유부만두 2018-01-30 08:38   좋아요 0 | URL
즐거운 독서 하실거에요.

책읽는나무 2018-01-2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아드님의 낯선 공간의 생활이 시작되었군요!!
건강하고 무탈하게 군생활 잘 보내고 오리라 믿습니다^^

저흰 주말 서울에 잠시 다녀왔어요.
목요일 밤차를 타고 금요일 새벽에 강남터미널에 내렸는데 정말 손발이 꽁꽁 얼어 붙어 깜놀했었습니다ㅜㅜ
줄곧 만두님의 한파가 닥치면 세탁기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페이퍼가 생각났었고,체험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무한공감 했었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밀린 빨랫감 들고 세탁기를 돌렸는데 다행히 우리집 세탁기는 베란다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도 작동 되어 가슴을 쓸어 내렸었어요^^

유부만두 2018-01-30 08:39   좋아요 0 | URL
책읽는 나무님 동네는 덜 추워서 다행이에요. 저희 아파트 단지는 오늘은 단수까지 한다네요. ㅜ ㅜ 밀린 빨래 중 일부는 손빨래에 세탁소 맡기기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오래 추운 날씨는 정말 처음이에요. 봄을 기다립니다.

라로 2018-01-29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 님! 갑자기 가슴이 쿵 했어요!! 아드님 군대에 갔군요~~무탈하기를 기원하며.

유부만두 2018-01-30 08: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어제 밤엔 잠이 오지 않아서 ...
 

'양산 펴기'에는 가난한 연인들이 나온다. 장어도 먹고 지구본도 사고 싶은 연인들. 남자는 일당 오만원을 벌기위해 일요일, 어느 바자회에서 양산을 판다. 거칠게 펴지고 접기는 어려운 중국산 이태리 상표의 양산. 우산 양산 겸용에 세일가 이만오천원.  

 

더운 날에 소나기가 몇 번 지나고, 점심으로 짜장면도 편하게 실내 자리에 앉아서 먹지 못한다. 길 맞은편 구청 앞에선 노점상들의 시위가 벌어진다. 오늘 하루가 아닌 매일 매일 길 위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 눈길이 마주쳤다 소나기 처럼 흩어지고 바자회와 시위대의 목청 높여 부르는 호객, 시위 구호는 뒤섞인다. 화장실을 쓰려 들른 구청 건물은 너무 화려하고 조용해서 남자는 헤매고 만다. 일당과 양산 하나를 얻어들고 귀가한 남자, 잠결에도 이태리 상표를 외운다. 연인은 부드럽게 그의 등을 쓰다듬는다. 오늘도 무사히. 

 

저녁에 대형서점에 들렀다가 귀가해서 밀양의 화재 뉴스를 보며 마음을 졸였다. 서점에 들어서기전에도 소방차 넉 대가 줄지어 사이렌을 울리며 가고 있었는데. 서점은 방학을 맞은, 곧 새학년에 올라갈 학생들과 부모들이 많았다. 어린이 책 코너에는 '필독서 목록' 중심으로 진열이 되어있고 신간들은 찾기 힘들었다. 어른 책 코너도 인터넷 서점과는 달리 '팔리는 책' 중심으로 꾸며져 있기에 살 책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두 권만 골라 들었다. (올해엔 덜 산다고 했...)

 

 

밤 열한 시가 넘어서 남편 직장에서 연락이 왔다. 아래층에 누수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남편 사무실 층은 정전이 되었다고.

 

오늘도 무사히.

 

일요일 아침, 마음을 진정시키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시심이 없는 메마른 마음이라 시를 읽어도 주인공과 줄거리를 찾아 헤매기 일쑤다. 사건 대신 상황을, 분위기와 말에 집중해야 한다는 중학교 국어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조용한 일요일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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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1-2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으로 받은 컵에 믹스커피! 나만 없어 알라딘 컵 흑흑

유부만두 2018-01-28 10:14   좋아요 0 | URL
언니 약올라서 어쩌죠? ^^ 내년엔 꼭 받으실 것 같아요!

라로 2018-01-28 14:48   좋아요 0 | URL
내년에 받으시려면 유부만두 님처럼 하루에 하나씩 글 올리셔야 하는데!
 

황정은 단편집을 이어서 읽었다. 옹기전묘씨생. 말하는 옹기와 고양이를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생각했다. 그 안에 담긴 다른 목소리, 어쩌면 작가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6, 7년 전에 발표된 단편들이라 요즘 읽은 황정은 작가의 사람들 이야기, 그래도 계속해 보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더 어둡고 무겁고 끈적거린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다 알아먹겠다. 설명이 많은 소설이다. 날씨가 돕는건지, 아니, 그건 아니지. 어젠 너무 추워서 집안에 있다가 잠깐만 나갔다 왔는데도 아주 지쳐서 책을 읽을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읽던 페란테 소설 속 나폴리의 아름다운 바다, 더운 여름밤의 모기 등은 다 거짓말만 같아서 짜증났다.

재개발지역에서 옹기를 주워와서 꾸중듣는 청소년. 그는 점점 어쩐지 사람 얼굴이 되어가는 옹기를 들고 길을 나선다. 서쪽에 여섯개가 더 있다는 주문, 혹은 저주를 듣고 모험을 떠나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 모험 아이템인 나침반도 구했고, 주머니엔 약간의 돈이 있다. 이 아이가 만약 곡씨를 만난다면? 자기 몸은 고양이처럼 깔끔하게 간수하지만 기분 나쁜 냄새와 흔적을 흘리는 곡씨 아저씨를. 아저씨는 그 상자 방을 나와서 이젠 아홉번째 생을 살아내는 중이다. 여섯 개의 옹이를 끌어안고서.

이렇게 추운데 은희경 작가의 ‘눈송이’ 속에 그 소녀는, 얼음이 생기는 타일벽 방, 난방이 전혀 되지 않는 그 하숙방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된다. 얼어버린 내 세탁기와 아파트 화단의 얼룩이도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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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빠집니다. 왜? 나쁜 사람들 이야기니까.

그럼 어떻게 나쁜 사람들이냐,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사기를 치니까요. 아, 잠깐만요. 그런데 따져보니 사실 그 근저에 사정이 없는건 아니에요. 그래서 조금은, 아니 그렇다고 이렇게 미친 정도로 저지르는 걸 내가 응원한다는 건 절대 아닌데, 이해가 가긴 합니다. 나쁜 행동이 용서가 되는 건 아니지요. 절대로요.  

 

로알드 달의 '챨리와 쵸콜릿 공장'을 좋아합니다. 책도 영화도, 심지어 게임 씨디도 샀었는데 어려워서 그만 뒀어요. 캐릭터와 줄거리를 사랑하지만 한 단계씩 깨야하는 게임은 영 제 분야가 아니에요. 전 그냥 소극적으로 저자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면서 '엄머머' 감탄하고 즐거워하고 그래요. 로알드 달은 그런데 살짝 잔인하달까, 쎈 부분을 쓰는 작가이긴 해요. 어린이 소설 '거대 복숭아' 나 '마틸다'를 보면 나쁜 어른들 못잖게 독한 아이들이 나오고요. 시원한데 은근 다시 보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잖아요.

 

그런데 바로 그 로알드 달의 '십대를 위한' 단편집이라기에 얇고 표지도 예뻐서 골랐습니다. '십대를 위한' 이란 카테고리가 원래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아닐걸요? 로알드 달의 단편 중, 폭력 수위가 좀 낮은 걸 묶었을까요? 그의 단편집 '맛'은 꽤 쎄고 무섭기도 한데 그 책 보다는 낫더라고요. 아, 죄송해요. 여기도 사람이 죽습니다만...

 

왜 내 기분이, 독자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사기 치고 도둑질 하고 사람 죽는 일이, 내가 읽는 소설에서 벌어지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요. 그땐 대신 슬프고 화나고, 때론 시원하기도 했는데 이번엔 찝찝 찜찜 꿉꿉해졌어요.

 

세 단편에는 각자 화자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데 '우산 쓴 노인'에선 열살 소녀가 순수하고 조금은 비판적인 눈으로 엄마와 노인을 따라갑니다. '아프리카 이야기'에선 외딴 곳에서 사는 노인의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젊은 비행사가 글로 남긴 것을 화자가 받아서 (자신의 목소리 없이) 독자에게 보여주고요. '자동 작문 기계'는 천하의 사기를 치는 어딘지 삐뚤어진 천재의 다음 희생자가 될 화자가 나와요. 그러니까 화자들은 선량한 상태로 몇발짝 뒤로 물러나있고 독자만 그 범죄에 쑤욱 다가가게됩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에이 뭐야. 어째 이상하더니만 진짜 나쁜 넘이네. 싶은데 그 노인과 또 다른 노인과 꾸부정한 천재의 말에 어느정도 수긍이 가고, 이야기 중간에 이 사람이 갑자기 험한 짓을 할까봐 두근댔는데 아 그건 아니네, 하면서 조금 마음을 놓으려고 할 때, 마지막 페이지에서 '짜짠' 하더라구요. 나빴어.

 

바보같이 왜 순순히 따라갔냐고요? ... 아... 뭐... 아시잖아요.

로알드 달, 재밌다니까요. 당했죠 머. 나쁜 이야기를 이렇게 확 덮어씌워놓고, 자긴 쏙 빠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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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1-26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ddington 2 강추에요!! 근데 유부만두 님은 이미 착하니까 저처럼 안 좋아하실지도. 달 아저씨 책은 거의 다 읽은 줄 알았는데(저요)아닌가???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1-26 21:44   좋아요 0 | URL
패딩턴 너무 귀엽죠! 1탄을 아주 재밌게 봤어요/

psyche 2018-01-27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의 리뷰를 읽다보면 막 나도 읽어보고 싶어진다는... 기분 나빠진다는데, 찝찝해진다는데도 왜 그렇지?

유부만두 2018-01-27 07:09   좋아요 0 | URL
ㅎㅎ 재밌는 소설이에요. 왠지 작가가 사악하다는 게 느껴져서요;;;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어요.

유부만두 2018-01-27 08:04   좋아요 1 | URL
다시 생각해보니 희생당하는, 속은 사람들이 ‘그럴만하네’로 혹은 약간의 흠을 보이는 사람들이네요. 가해자들은 가차 없이 굴어요. 아무런 회한이나 감정도 없고요. 또 그 범죄는 꽤 머리를 쓰고 계획해서 벌이거든요. 로알드 달 잔인한 거 맞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