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만 입고 있어도 여자잖아. 우리 오카마는 이렇게 화장을 하고 한껏 꾸며 봐야 겨우 오카마 밖에 될 수 없으니까." 난 이것이야말로 평범함이라는 것이로구나 생각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수수하게 티셔츠만 걸쳐도 여자로 있을 수 있다는 것. 

  우리 남자는 더 나아가 '어느 쪽에 속하는 성性인가?'를 생각하는 과제조차 면제받고 있다. 남자는 마음껏 '개인'으로서 행동하고 있지만, 우리 곁에서 여성들은 '여자로 있다.' 

  자, 그렇다면 사회에 의해 물들여지고 딱지가 붙여진 존재가 '평범해지는' 것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형태를 취하는 착취가 있다. 그리고 본인을 걱정한다는 식으로 억지로 책임을 떠맡기는 듯한 개입이 있다.

  우리는 신이 아니다. 우리가 양손에 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올바름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 본 올바름이다. 이것이 타자에게도 통용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문학의 집에는 여러 개의 입구가 있습니다. 계단과 양 옆의 기둥까지 갖추고 있는 정문이 있지요. 그 문으로 들어갈 때는 마치 궁전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또한 옆문도 있습니다. 더 소박하고 더 개인적인 문. 이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고독합니다. 그들은 혼자 다니지요.

그리고 뒷문이 있습니다. 부엌으로 바로 들어가는 문, 요리사와 접시닦이, 장사꾼들이 이용하는 문이지요. 그곳은 항상 소란스럽습니다. 많은 것들이 드나드는, 바로 그 문이 아이다와 사비에르,  그리고 제가 이용한 문입니다. 늘 서로에게 말을 건네면서요.

이제 여러분에게 건넵니다. 


존 버거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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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그녀에게 남긴 가르침들 가운데 조금이나마 쓸모가 있었던 내용은 하나도 없었고, 스칼렛은 그래서 분개하고 당혹했다. 엘렌은 그녀가 딸들을 키울 당시의 문명이 붕괴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고, 딸들을 그토록 훌륭하게 훈련시켜서 등장시키려고 했던 사교적인 무대가 없어지리라고도 예기치 않았으리라는 점을 스칼렛은 깨닫지 못했다. 엘렌이 스칼렛에게 상냥하고 우아하며, 명예롭고 친절하며, 겸손하고 진실해야 된다고 가르쳤을 때는 그녀 자신의 삶이 거쳐 온 안일한 세월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평화로운 미래의 나날을 어머니가 멀리 내다보았으리라는 사실도 스칼렛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그런 가르침을 따르면 세상이 여자들을 호의적으로 대우하리라고 엘렌은 말했었다. 


    스칼렛은 절망에 빠져 생각했다. <아무것도, 그렇다, 아무것도, 어머니의 어떤 가르침도 나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친절해 봤자 지금 내가 무엇을 얻겠는가? 상냥함의 미덕은 무엇인가? 차라리 검둥이처럼 쟁기질을 하거나 목화를 베는 기술을 배웠더라면 훨씬 좋았으리라. 오, 어머니, 어머니의 얘기는 옳지 않았어요!> 


    질서 정연했던 어머니의 세계는 사라졌으며 잔혹한 세상이, 기준과 가치관이 한꺼번에 달라진 세상이 대신 찾아왔다는 생각을 스칼렛은 마음을 가다듬고 해볼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다만 어머니의 얘기가 옳지 않았다고만 믿었고, 그래서 그녀로서는 준비를 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맞기 위해 재빨리 변모했다. 

(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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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같기도, 옛날의 영광을 곱씹는 뒷끝 역사소설 같기도, 전혀 PC하지 않은 차별주의 편견대서사 이기도 하지만 계속 읽게 만드는 힘과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스칼렛은 멜라니의 출산을 도왔, 아니 맡아냈고, 무례한 레트의 도움으로 아틀란타를 빠져나왔다. 쓸모없는 노예 여자아이와 버거운 어린 아들, 멜라니와 신생아를 다 이끌고 타라로 향하고 있다. 불타는 창고, 폭발음, 후퇴하는 남군에 사상자들, 해는 졌고 갈길은 먼데 레트는 동행하지 않겠다고, 자신은 전쟁에 참여하겠노라고 (이제 와서요?) 선언하고 진한 키스를 한다. (실은 두번째임) 그리고 싸다구를 맞는다.





자신과 일행을 버리고 떠나는 레트에게 화를 내고 폭언을 쏟아내지만 스칼렛은 주저앉아 울지 않고 정신 바짝 차리고 타박타박 (아니, 들키면 안되니까 조심조심 그리고 늙고 약한 말과 함께 느릿느릿) 고향으로 간다. 이 길을 레트가 일행을 모시며 동행하지 않았기에 스칼렛이 주인공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고향에선 더 큰 위기와 절망적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첩첩산중. 허기진 스칼렛은 옆 농가의 버려진 밭에서 무를 뽑아 한 입 먹고는 구토를 하며 쓰러진다. 그러곤 울부짖는다.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어!" 그녀는 뒤집어진 세상에서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로,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오디오북은 (살짝 낯간지러운 톤으로) 스칼렛과 레트,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전달한다. 게다가 번역은 종종 매우 어색하다. (안정효 번역 '가아프가 본 세상'에 비하면 뭐;;;) 유명한 위 장면의 As God is my witness 의 번역은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시지만"으로 세 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시지만 나는 절대로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어) 이 구절이 나만 이상한건가? 격정적인 장면에서 짜하게 식었다고요. 새희망 교회에서 처럼.


어쨌거나, 스칼렛은 이제 명실상부 타라의 주인이고 땅의 소중함을, 부동산의 가치를 깨달았고, 발가락의 물집이 씅이 나있는데 저택 앞에 파란 군복의 양키가 어슬렁 거리며 나타났다. 두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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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07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영화 진짜진짜 오랫만이다!

유부만두 2020-12-07 06:30   좋아요 1 | URL
그쵸?! 80년 전에 만든 영화래요.
전 중학교 때, 그러니까 막둥이 나이에 본 기억이 나요.

라로 2020-12-07 0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저영화 시어머니와 최근에 봤어요. 그래서 두번째로 보게 되었는데 여전히 느낀 것은 흑인 아주머니 역할의 배우 목소리 때문에 힘들었다는,,, 😅

유부만두 2020-12-07 06:31   좋아요 1 | URL
옛날 영화라 다른 배우들 목소리도 꽤 강렬해요. 전 흑인 아주머니 영상은 아직 만나기 전인데 (그냥 유명 장면만 찾아 봤거든요. 책 다 읽고 영화 제대로 보려고요) 상상은 가요.

scott 2020-12-07 1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악만 들어도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작품 ㅎ
멜라니아 역활 맡았던 배우가 올해 104세 나이로 세상을 떴어요.
그러고보니 영화가 무려 80년전에 만들어졌네요.

유부만두 2020-12-08 08:45   좋아요 1 | URL
웅장한 음악이지요?! 드디어 저 장면에서 스칼렛이 1차 홀로서기 혹은 변신이죠!
옛 이야기가 편견의 시대와 작가에게서 나왔을지라도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그 힘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네요.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미뤄두었던 옷장 정리를 하면서 틀어두었더니 어쩐지 생산성있는 금요일을 지낸 기분이다. (여름옷을 12월에 정리하는 생산성)


돈을 쓰는 걸 변호하는 듯 보이는 제목이다. 슬픔이 있지만 기쁨이 먼저 보인다. 돈지랄이라는 뒷말을, 어떤 경우엔 면전에서 그 흉을 듣기도 할만큼 새롭고 편리하고 재미있고 예쁜 물건을 돈을 주고 사는 걸 즐기고 잘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 처럼. 돈을 쓰면 스투피트 소릴 하는 유행이 바로 얼마전이었는데.


그런데 의외의 내용이 이어진다. 자기 집도 자기 차도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 쓸만하니 쓴다고요? 우아하고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 홍보일까. 그런데 저자의 이야기는 자랑만은 아니다. 궁상과 불편을 끼고 살 필요가 있을까. 좋고 필요하게 생활을 개선하는 게 왜 나쁜가. 저자의 씀씀이는 계획과 계산 후에 이루어진다. 적금과 가계부. 저자는 가계부를 매일 매일 여행중에도 꼼꼼하게 적는 사람이다. 저자는 둘째 딸의 설움과 구박에서 원하는 것이 생기면 챙기고 갖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 감정에 휘둘려서 헛된 소비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배웠노라고 고백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텀블벅 후원은 소비자 보호법에 해당되지 않으니 예쁜 sns 사진이나 감성 멘트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계속 뜨끔 뜨끔. 


오늘의 나는 이미 구버전 상태이니 듣고 배우고 살아야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서. 계획적으로 생산성 있게 살아야 겠다. 그래도 올해 안에 여름옷 정리 다했음. (나를 칭찬하고 나에게 선물을 준다고 무슨 쇼핑 따위는 하지 않았음. 계획이 먼저야, 나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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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12-05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를테면.... 기쁨 쪽에 무게를 둘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인데 이 책에 관심이 생기네요.
저희집 옷장에는 사계절이 공존하고 있어서, 필요한 옷 찾는데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ㅎㅎㅎㅎ

프로필 사진 바꾸셨네요. 너무 이뽀요!!!! 하트뿅뿅!!

유부만두 2020-12-06 08:00   좋아요 0 | URL
하트 받고 다쁠로 또 드립니다. 단발머리님^^

어제 옷장 정리를 하면서 못/안 입는 옛날 옷들을 많이 내놨어요. 5년이상 안 입고 그냥 걸어둔 게 많았어요. 이제 옷장은 좀 헐렁해졌어요.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인상과는 다른 내용도 담고 있어서 읽길/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야무진 작가의 야무진 이야길 듣고 많이 배우기도 했어요.

하나 2020-12-05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신예희 작가님 책 재밌게 읽었는데, “누구도 내 짜장면 대신 비벼주지 않는다.” 내 행복은 내가 찾아야 해, 이런 태도가 좋았어요! 주말 즐거운 독서와 함께하고 계신가요?

유부만두 2020-12-06 08:02   좋아요 1 | URL
하하하 그렇군요. 내 짜장면은 내가 비벼야죠. (그런데 전 애들 걸 비벼주기도 하는군요;;;;) 주말은 애트우드 시집과 십팔사략을 야금야금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편안하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님 서재 구경가면 포스팅 뿐 아니라 댓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니 제 주말의 즐거움 일부를 주시고 계시고요)

scott 2020-12-05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확진자 폭증이라서 집콕 생활 거의 반년, 출근복은 이제 실내복으로 해서 옷장속 옷들 아직 까지 가을옷들이 ㅋㅋ

유부만두 2020-12-06 08:05   좋아요 2 | URL
실은 전 옷장 뿐 아니라 소파랑 침대 위에도 옷들이 너부러져 있어서 그 정리를 해야 했어요;;;; 전 scott님의 편안한 실내복이 만드는 책 이야기 잘 읽고 있습니다. ^^

psyche 2020-12-07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 머리님 이야기 듣고 프로필 사진 보러 컴으로 들어왔다는.... 프로필 진짜 이쁘다. 유부만두랑 비슷한 느낌!

유부만두 2020-12-07 06:33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하다고요?!!!!
아, 그런걸로 합시다! 저기 제 응접실이고요. 제가 요즘 독서를 하는 장소랍니다.
ㅎㅎㅎㅎㅎ

언니의 플필 사진도 따뜻하고 좋아요! 서점 같아 보이기도 하고요. 언니 새로 가게 내신거 맞죠?!

psyche 2020-12-07 06:45   좋아요 1 | URL
클래식하면서 세련된 느낌!

내 프로필은 크리스마스 빌리지 중에 한 개야. 어린이 책 서점. 몇년만에 꺼냈네.

유부만두 2020-12-07 06:52   좋아요 0 | URL
크리스마스 빌리지! 역시 연말이 왔군요. 언니 카톡 사진 보니까 땡스기빙 때 아이들 다 모인거 같던데 강아지 새로 입양하셨나 궁금했어요.

psyche 2020-12-07 07:00   좋아요 1 | URL
제이양 강아지야. 다쳤다고 주인이 동물병원에 버린 아이 입양했어.
진짜 착하고 순한데 좀 멍청하다는 ㅎㅎㅎ
이번에 왔다가 집에 두고갔어. 기말고사랑 준비하느라

유부만두 2020-12-07 07:04   좋아요 0 | URL
언니! 루이가 유별나게 총명한 거에요. 루이에 모든 강아지들을 비교하신다면 안돼욧.
그 강아지 그런데 정말 사랑스러워요. 루이랑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강아지 버린 그 ㅅㄲ 나쁜넘 벌 받아라!!!! 주문 외울랍니다.

psyche 2020-12-07 07:12   좋아요 1 | URL
루이랑 비교 아니고 평균보다 좀 바보인 듯. 근데 너무 귀여워.ㅎㅎㅎ

남자어른을 너무 무서워 하는 걸로 봐서 전 주인이 학대도 한 게 아닐까 생각해. 나쁜 놈!! 처음에는 쓰다듬어 주려고 손 만 가까이 해도 무서워서 도망가고 그랬어.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아직도 남편을 무서워해서 개 좋아하는 남편이 너무 섭섭해 하지.
 

시인으로 시작해서 소설가로 더 알려진 애트우드 작가님의 시집이 새로 나왔다. 

제일 앞에 실린 시의 제목은 Late Poems.

너무 늦어 이젠 죽어버린 시들을 노래하는가 싶지만 
아직, 그대가 부를 수 있는 것을 노래하라고 
불을 밝히고 계속 노래하라고 

애트우드 작가님이 노래한다. 

난 시를 잘 못 읽는데도 이번 시집은 dearly 아끼면서 읽게된다. 
조금씩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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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0-12-07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가 시인으로 시작했는지 몰랐어.
나 시를 잘 모르는데 특히 영어로 시를 읽는다는 건 엄두도 못 내는데 저 부분만으로도 확 끌리네.

유부만두 2020-12-07 06:36   좋아요 1 | URL
시 한 편 한 편, 다 서사를 담은 것처럼 읽혀요. 인생의 황혼의 지혜랄까 너그러움도 느껴지다가 확! 강렬한 이야기도 담겨있고 그래요. 복수! 같은거.

저도 시는 우리 말 시도 잘 모르는데 (어렵자나요) 애트우드 시인의 이번 시집은 그래도 읽을만????? 한건가 싶게 붙잡고 있어요. 재미도 있는건가봐요? 놀라워라. 아니면 단어가 어렵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