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가 사건 현장에서 활약하며 법의학 생태학 이야기를 전한다고 해서 CSI를 상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CSI는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신 모든 물질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작고 가볍지만 꽃가루 부터 균류, 미생물의 커다랗고 또 중요한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그 작은 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사람을 만들었다가 다시 허문다고도 했다.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사건 이야기 보다 더 비중 있게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사람은 그저 빈그릇으로 우주에서 왔다가 간다지만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저자가 말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과 사체와는 이별은 그에게도 고통스럽고 아직도 마음에 사무친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강단있게 앞으로 걸어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외출 시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고 소독약을 더 챙기는 요즈음, 어느 꽃가루나 씨앗이 내 옷과 신발에 귓속에 붙어있어서 나의 이동 경로를 밝힐까 상상하다가, cctv 도 거들겠군 싶었다. 음전하를 띠는 꽃가루는 특히 머리칼에 잘 달라붙는다고 했다. 바이러스는? 신경이 곤두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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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08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SI는 (역시) 환상이로군요^^; 이 책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로마시리즈 다 읽고 읽으려면 언제가 될지=_=;;; 유부만두님 리뷰로 일단 만족합니당^^

유부만두 2020-06-08 18:44   좋아요 0 | URL
로마 시리즈 대장정이 끝나는 날 온라인 축하 파티라도 해야겠어요!!!
정말 존경스러워요.
 

김연수 작가의 새 소설.
백석의 북한에서의 삶을 읽을/들을 수 있다.
일단 오늘은 인터뷰가 올라왔다.


악스트(2020. 1/2)에 실린 단편 ‘미억오리같이 굴껍지처럼’을 읽고 오매불망하고 있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4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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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NT 공개작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Streetcar Named Desire이다. 결혼 전 당시 남친이었던 남편과 93년에 대학로에서 본 연극인데 (양금석 주연) 배우의 하얀 투피스만 기억나고 줄거리는 다 잊었다. 그녀의 약간 쉰 목소리에 압도되었는데 왜 기억이 안나는 건지?;; 





세월은 흘러 흘러 27년 후, NT 영상 (질리언 앤더슨 주연)으로 만나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진짜 어른의 이야기였다. 그러니 애송이들에겐 어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했겠지. 한참 연애중인 이십대 중반 애들이 왜 이런 인생의 쓰디쓴 현실 이야기를 애써 봤는지. 얘들아, 그땐 그냥 놀이 동산 가서 사진 찍고 뛰어 댕겨. 지금은 ... 그럴 수 없겠구나. 


여튼, 추억에 잠시 빠졌다가 테네시 윌리암스의 책을 먼저 읽고 연극영상을 봤다. 희곡의 인물 묘사는 연극의 지문 보다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전형적인 인물들이 뻔하게 불안한 예측 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 전형적 공식을 하나씩 따라가는데도 강한 인물들이 맞부딪힐 때 마다 그 에너지가 상당하다. 파국으로 치닫는 사람들. 


1940년대 재즈와 뉴 오를리언즈 동네의 끈적한 여름 공기. 동물적 본능과 자신감으로 밀어부치는 스탠리, 그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스텔라, 현실보다는 '마법'을 바라는 블랑쉬, 마마보이 미치. 서로의 공간이 겹치는 무대와 엄연한 경제적 계급, 남녀유별, 그리고 빛과 어둠의 경계선. 그녀의 숨겨진 과거와 범죄. 그 사이 사이의 잔인한 블랙 유머. 욕망이라는 전차 이름부터 실제와 은유를 오가는 말 장난이 상당하다. 그걸 생생하게 살려내는 배우 질리언 앤더슨! 자막 없인 뭔말인지 모르도록 씨게 씨게 써던 액썬트로 대사를 던지는 블랑쉬! 한 없이 차가운 스컬리 요원이 이렇게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옛 영화로는 비비안 리와 말론 블란도가 그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고 한다. 새롭게 비튼 이야기로는 '블루 재스민'이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이건 어른의 이야기, 그것도 나쁜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다. 제목 만큼이나 야하고 (헙) 강렬해서 중간에 몇 번이나 쉬면서 얼음물을 마셨다. 이젠 이걸 이해할 나이가 되었구나? 지천명이 그런 의미였나봐?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They told me to take a streetcar named Desire, and then transfer to one called Cemeteries and ride six blocks and get off at--Elysian F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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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방탕함 .... 정말 끝까지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 만화를 계속 주문했고 봤는데. 이게 그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1권을 세 쪽 읽었을 때, 아, 이건 아닌데 싶었는데 그래도 두 권을 완독했고 글쎄... 2권에선 여주인공의 과거가 현재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 이 책을 주문하면서 이미 독자의 자학이 시작된 느낌이다. 


온갖 비극, 불행한 가족사가 겹치고 더해져서 포르노 수준에 이른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보다 더 심한 수위. 그런데 난 그 영화나 이 만화책 리뷰에서 '감동' 이라던가 '인생' 이라는 말을 봤는데 .... 그런데 ... 이 출구 없고,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만 향하는 이야기가 마지막에 포장지로 쓰는 건 '모성'이고 '출산'이며 '용서'와 '사랑'이라서 나는 도대체가!!!!!! 라며 화를 낼 수 밖에 없다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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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저자는 58년생. 영화 <공기인형>의 원작인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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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5-20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간될 당시 제가 알라딘 서평단 활동을 했었는데 서평단 도서 중 하나였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거 계속 읽어야해 말아야해 하며 읽었어요. 일본 열도를 웃기고 울린 기적이라니, 박장대소를 해야하는 곳이 어디에 있나 하며 갸우뚱 했었던.

유부만두 2020-05-20 14:30   좋아요 0 | URL
아무리 코믹으로 보려해도 주인공 여자가 당하는 학대가 너무 끔찍해요. 처음부터 여자의 눈이 감겨있는 얼굴이 영 이상했는데 계속 이 여자는 눈을 감고만 있어요. 여자의 힘든 상황이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얼굴이나 출산이라는 상황이 전혀 설득력이 없고요. 아주 힘든 만화였어요. 설렁 설렁 쉬어갈까 했는데 ....
 















오피스레이디 OL 도 끔찍한데 교열'걸'이라니... 더할 수 없이 진부한 차별적 언어다. 교열을 하는 부서의 젊은 여직원 고노 에츠코의 이야기를 세 권씩이나 읽었다. 드라마 버전을 먼저 접했고, 지리한 코로나 일상에 달고 짜고 매운 음식같은 책을 챙기고 있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드라마 보다 더 까칠하고 더 기억력이 좋고 약간은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 같은 부분도 있지만 세 권 씩이나 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난 다 읽었네. 이런 저런 출판 문학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작가를 술집에서 접대하는 편집자, 미성년자를 호텔로 데려가는 작가, 교열자가 오류를 지적해도 화를 내는 작가, 옛 작품을 되풀이해서 찍어내는 작가, 층층시하 회사와 문학계, 겉모습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껍데기들. 책을 점점 멀리하는 대중. 순문학의 고고함만을 외치는 외골수들. 그 모두가 담긴 종이 위의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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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20-05-19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군요. 저도 드라마로 봤었는데요.
일본어중에 생각보다 차별적 단어들이 많고 쉽게 쓰이고 있더라구요. 남편을 아직 주인이라고 하는것도 그렇구요..

유부만두 2020-05-19 20:06   좋아요 1 | URL
정말 그래요. 그 ‘주인‘이라는 말은 끔찍하죠.

드라마 ‘교열걸‘이 훨씬 훨씬 재미있어요. 소설에선 혼고 작가와 모델은 아무 관계도 없고요, 표절 이야기도 없어요. 드라마의 회색 정장에 안경 쓴 여자는 편집부의 입사 동기로 나오는데 덜 생생한 캐릭터고요, 다른 인물들도 드라마에서 더 귀여운 느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