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 이야기 세 권을 다 읽었는데도 아쉽고 아깝다. 이야기와 떡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입과 마음이 함께 궁금해서 쑥버무리나 콩떡, 절편 하나 두 개쯤 더 먹고 싶다. 한 입 거리 떡으로 마음의 짐이나 고민, 내 안의 '싫은 나'를 고칠 수 있는 마법의 떡이라면 더더욱. 


월요일부터 마음과 기분이 바닥을 치고 내내 힘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아이들에게 이 엉망진창 세상을 '바르게 살아라' 말하는 것도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저 더럽고 악한 것들은 피해라 정도가 최선이었다. 다 버리고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나이에, 이제야 세상의 민낯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게지, 난 온실에서 살았구나, 반백년 동안. 아 징그러. (3권에서 늦둥이 둔 늙은 엄마 이야기에서 눈물 흘렸고요) 


어쩌면 온실과 꽃밭의 연속일까, 동화 읽기는? 그래도 내 눈을 계속 닦아주는 건 동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 집중력, 그리고 실수라면 되새기고 반성하는 것, 피하거나 거짓말 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런 가치들을 말해주는 다정하고 단단한 이야기들을 읽는다. 만만해보이지만 쫀쫀한 밀도.


계속 읽어야겠다. 나를 버티게 해주는 김리리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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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여름 밤의 꿈'을 보고 너무 좋아서 셰익스피어 전집을 결재했다가 아침에 취소했다. 비극전집 두 권 사둔 것, 프루스트, 삼국지 등등의 거대하고 뜨거운 결심들이 나를 말렸다. 하지만 자꾸 올 여름엔 셰익스피어를 (다시) 읽고 싶다. 줄거리만 혹은 요약 발췌만 알던 작품들을 좋은 번역과 공연으로 만나니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야기가 ...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예전엔 몰랐을까.


arte에서 시리즈로 나오는 클래식 클라우드 중 첫 권인 셰익스피어는 사진도 풍부하고 참고도서 목록도 좋다. 작가와 작품의 배경을 중심으로 여행하듯 따라가면서 흠뻑 그 분위기에 빠질 수 있다. 그러라고 만든 책 같다. 


그런데 저자의 감동이 과하게 앞서가서 독자인 나는 움츠리고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지금, 여기에서 셰익스피어를 읽고 사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속 뒤집어지는 법과 제도와 모든 것들이 있는데. 


아니, 그럴수록! 그럴수록 책과 이야기가 나를 붙들고 챙겨줄 수 있다. 나라도 흔들리지 말고 원칙과 사랑을 믿어봐야겠어! 그래야겠어! 


아, 그래도 저자의 감성은 과하게 넘쳐서 부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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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과 책에 대한 따뜻한 책을 읽고 싶어서 골랐는데 ...


1959년 영국의 어촌 마을에서 중년의 여성이 낡은 창고 건물을 은행 융자로 구입해 혼자 서점을 연다. 젊은 시절 일한 경험도 있지만 서점을 열면서 큰 욕심이나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그녀 프로렌스가 책을 즐겨 읽거나 문학에 조예가 깊지는 않다. 서점은 그저 책이라는 상품을 파는 장소, 그녀가 혼자 살아갈 장소가 된다. 눅눅한 바다 바람이 부는 곳, 전쟁 후 시간은 흘렀지만 을씨년스럽고 여기저기 장소와 사람이 조용하게 버려져 있는 소도시. 하지만 그곳에도 소위 전통, 역사, 아집, 혹은 지방 유지가 있고 알력과 텃세가 있다. 


플로렌스가 차분하게 서점을 열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귀부인과 적이 되고 열살 소녀 크리스틴을 알바로 만나고, 지방 유지와의 우정이나 런던 독신남을 대하는 장면들은 평범한 책, 서점 소설 같이 전개된다. 책과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의 시골 서점 성공담. 


책 검색을 하다보니 몇년 전 영화로도 나왔다. 


벗뜨, 자상한 서점 주인의 문학사랑과 경제독립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동네 서점이, 타지인이, 돈 없는 싱글 중년 여성이 서점을 열고 흥하나 싶다가 접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주 단순하거나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웃픈...아니 씁쓸한 유머를 계속 깔고 있다. 서점 알바 크리스틴의 반전 (어쩌면 매력) 그리고 지방 유지와의 우정의 갑작스러운 변화, 무엇보다도 서점을 잠깐 흥하게 하는 책, 롤리타의 등장.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서점 주인은 읽지 않고 그저 '좋은 책'인지 '팔릴 책'인지를 고민한다. 어촌 마을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는 롤리타가 어떤 독서 감상을 불러오는지 이 책에는 실려있지 않다. 그것이 또 하나 이 책의 씁쓸한 유머인지도 모른다. 팔린다고? 이해한다고? 그래서요? 


마음 따뜻해지는 동네 서점 성공담 같은건 1959년 영국에도 없다. 게다가 21세기 역병의 시기에 동네 서점은 더한 위기에 처해있다. 다큐멘터리 The Booksellers 예고 영상도 봤는데 암담한 서점과 독서의 미래를 이야기한다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뛴다. 서점, 책, 소설, 종이..... (난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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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09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동네서점은 정말 로망인것 같아요. 서점에 대한 책은 계속 나오는 것 같구요.
저 롤리타를 읽지 않아서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항상 좀 복잡합니다, 마음이... 롤리타에 대해서는요.

유부만두 2020-07-09 20:23   좋아요 0 | URL
롤리타는 소설 자체 보다도 문학사에서 더 큰 이슈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전 읽으면서 꽤 실망했고요.
문장이 아름답거나 인물이 매력적이지 않았거든요.
영어본 소설이랑 우리말 번역본 (민음/문동) 을 읽었는데 ..... 유명한 소설도 정작 독자가 읽어야 각자의, 독자마다의 진짜를 만난다는 진실을 깨달았어요.

소설의 해설은 독자 마다 다르겠지만 전 글쎄요, 굳이 .... 찾아서 읽기까지 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레베카 같은 재밌는 소설도 있는데요. 저 곧 읽겠습니다!
참, 나보코프의 문학강의 책은 강추에요. (전 읽는중) 그리고 이 소설에서 롤리타는 어떤 상징이에요. 논란의 롤리타를 그렇게 많이 사는 사람들의 동네에서 작은 서점이란 ... 저자 페넬로페 피츠제랄드의 문장은 날카롭게 찌르죠.
 

기시마 선생은 대학의 연구자이다. 그는 학생들을 지도는 하지만 강의나 회의의 의무는 상대적으로 덜한 자리에서 묵묵히 조용히 꾸준하게 연구를 한다. 그의 연구 주제는 .... (책에 나와있는데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해시킬 마음도 없는 저자가 써놓았다) 컴퓨터 계산과 숫자와 논리와 공학과 연결이 있다. 


화자인 '나' 하시바는 어린시절 글자를 늦게 뗀 연유로 독서에는 별 취미를 못 가졌지만 공학이론서를 힘겹게 읽어낸 후로 공학도의 길로 계속 걸어가는 사람이다. 


기시마 선생과 하시바의 세계는 공학 계산의 세계, 분명하고 숨기지 않는 정당한 세계, 상아탑의 세계다. 돈이나 겉치례에 얽메이지 않고 문제를 찾고 분석하며 해결하는 '순수한 희열'에 종이에 4색볼펜의 잉크가 닳도록 계산을 해대는 사람들이 만드는 세계. 


이 책이 그려내는 대학의 실속 없고 어설픔, 대학원의 어색한 리듬은 남성 중심이다. 세 명의 여자인 학부 동창 시미즈 스피카, 대학원 동기 사쿠라이, 계산기센터의 '마돈나' 사와무라 모두 그 조용한 세계에서 행성처럼 겉돌다 튕겨져 나온다. 깨끗하고 조용한 연구의 세계에는 사회 생활 뿐 아니라 어른 생활인의 일과도 필요없다. 그런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준다. 하찮은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아내가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고 집안을 돌보는 동안 '가족을 위해서 더 열심히' 할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는 하시바, 그에게 같은 전공을 공부한 동갑내기 아내는 '훌륭한 여자'이고 아이들은 '잘 자고 순하다'. (이 부분을 읽고 눈물이 났다) 부인이 자신에게 왜 집안일이나 아이들 문제는 꺼내지 않고 그의 학교 일만 물어보는지, 하시바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회의와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해외파견 기간 동안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은 마음이 든다. 기시마 선생에 비해 그는 자신이 덜 조용하고, 덜 완벽한 세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연애도 결혼도 그렇게 쉽게 한 녀석이)


슴슴하게 조용하게 그려지는 하시바의 일과를 따라가다보면 미지근한 녹차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마음이 정리되고 차분해진다. 매일 이렇게 연구하고 책읽고 몸을 발전기 삼아 두뇌를 활성화시키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다가 눈을 돌리면 아이들 밥 때, 세탁기는 완료 음악을 뾰로롱 낸다. 경단녀 시미즈 스피카의 세계를 생각해본다. 덜 조용하고 뜨거운 생활인 어른들의 세계, 나도 아는 그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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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세기를 힘겹고 소란스럽게 살다 간 유명 저술가와 예술가 여성들의 일생....중 가십거리를 정리해서 묶어 놓은 책이다. 억압과 관습의 시대를 탓하고는 있지만 개인의 치정과 모순, 집착과 광기를 비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소개된 인물 중 정말로 '미친' 사람들도 있다. 저자의 맺음말과 역자의 소개글은 그래서 더욱 '이것은 비단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고 운운' 하는데 저자가 페미니스트로 소개되지만 그 시선은 그저 흔한 가십거리를 전달할 뿐이고, 난 연예 뉴스를 대하는 것 처럼 시몬느 드 보부아르, 아가사 크리스티, 조르주 상드 등의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를 읽었다.


덧: 원서의 제목은 여성의 인생, 정도인데 거짓과 비극은 번역하면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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