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자기 '인생책'이라고 했다. 학원 숙제로 읽었는데 어떻게 숙제가 재미있을 수 있는지 자신에게 감탄했다고 했다. 아이는 중2 인생을 걸었다. 


이 책은 전엽체 이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타인에게 공감을 할 수 없는 아이 윤재의 이야기다.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윤재의 성장기라고 하기엔 비극이 엎치고 덮친 데 또또 끝까지 겹쳐서 읽는 내내 힘들었다. 이제 겨우 고등학생인데. 그리고 얘 주위엔 '정상적'이거나 '보통'인 사람들도 죄다 어딘가 (전엽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망가져서 (그랬길 바란다. 이유가 있으면 고칠 수라도 있겠지) 엉망으로 진창으로 구는 것들만 있다. 다른이를 해하고 상하게 한다. 


즐거운 독서는 아니었다. 몰입해서 한번에 읽었지만 찜찜하다. 두 청소년 윤재와 곤. 이 아이들의 가정은 대칭적으로 보이는데 엄마들이 뭔가를 잘못 했고 아이들이 벌을 받는다, 라는 뉘앙스가 보였다. 그 엄청난 뒷수습은 아무도 하지 못한다. 믿고 의지할 어른이 없다. 오롯이 두 아이들이 온 몸으로 온 인생으로, 그 어리고 아까운 인생으로 받아 넘어지고 다친다. 


가난하고 단란한 집, 부자지만 불안한 집, 책이 좋아, 골목길 집단 폭행과 하필 그 애가, 과거가 있는 박사님, 가출 청소년, 깡패 성님들, 달려라 하니, 아니 도라, 어디선가 봤던 인물들이 우루루 나와서 그 모든 비극을 이 한 권에 부어넣었다. 아이들은 그냥 넘길 행간의 위트가 그나마 어른 독자를 상대해주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쎈 걸, 중고등 학생들에게 읽으라면 어쩝니까. 애들은 더한 폭력도 상대할 수 있다지만 이 책의 '그동안 수고했어, 자, 해피 엔딩'이 앞에서 깔아놓은 칼빵에 맞설 수가 없잖습니까. 어쩜 완득이 보다 더 독해. (애호박 생각났어, 젠장) 


이 책의 음식은 캘리포니아 산 아몬드와 자두맛 캔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극곰 2020-09-23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유부만두님 이 리뷰가 너무 좋아요. 저는 안 읽었지만, 왜 이 책이 읽기 싫었는지 알것만 같아요.

초 6학년 아이가 온라인 수업 중에 과제로 이 책을 오디오로 듣는다는데요. 첫 부분을 몇 번 듣고는 너무 재미있다고 했는데, 이후에는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어졌어요.

유부만두 2020-09-24 19:55   좋아요 0 | URL
제 리뷰를 좋아하신다니 제 기분이 막 좋아요. ^^
직접 책을 읽으신다면 저와는 다른 인상을 받으실지도 모르지만요.

초6이 읽기/듣기에는 이 책은 폭력적 내용이 (묘사도) 많아요. 그렇지만 결말에선 급하게 좋게 좋게 마무리 되지요. 강렬한 인상을 주고 내용 전개가 빨라서 저희집 막내도 재미있게 읽었다는데 전... 좀 그랬어요.
 

정은지 저자의 <내 식탁위의 책들>을 재미있게, 무엇보다 시원하게 읽었기에 (내 오랜 음식 궁금증 '라임 절임'을 해결해줌) 다음 음식책을 찾아보고 있었다. 이 책은 그의 번역서다.


이 책은 현재 뉴욕에서 '푸주한'으로 일하는 카라 니콜레티의 독후 엣세이와 요리법 모음집이다. 저자는 문학 전공자에,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역시 정육점을 했기에 각별한) 음식 사랑과 함께 성장했다. 어린시절/청소년기/성인기에 맞춰서 소개되는 책이 다양하고 글을 읽는 맛도 있다. 삽화도 맛있음. 실은 이런 음식/맛 주제의 독서록 엣세이를 읽을 땐 소개되는 음식보다는 책들에 더 궁금증이 일곤한다. 라임절임이 궁금한 채로 사십 년을 살았지만 맛있게 소개하는 책을 찾아보지 않고는 일 년, 아니 일 주일도 견디기 어렵다. 


지난 석달 간 많이 샀고 읽거나 훑었고 엄청나게 실망과 감탄도 했다. 하지만 아임 스틸 헝그리. 이 책이 나의 게걸스러운 (원서 제목  Voracious 게걸스러운, 열렬히 탐하는) 독서에 기름을 더 부었다. 음식은 늘 행복하거나 아름다운 상황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범죄 현장에서, 이별 직후에 혹은 거식증 환자의 이야기에 나오는 음식을 천연덕스레 소개하고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간 요리!!!) '자, 함께 만들어 먹어보자고요?!' 라고 말한다. 요리법은 그닥 어려워 보이지는 않.... 지만, (저자는 친구들과 함께 해 먹었다고) 요리법도 찬찬히 읽으면서 향과 맛을 상상해 보았다. 과식, 절식, 금식, 탐식 그 모두가 책 위에서 펼쳐진다. 




책에 대한 감상 (보다는 오마주)과 레서피를 엮었던 <하루키 레서피>보다는 내용도 문장도 훨씬 나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0-08-22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글 읽고 나도 사야지 하고 주문하려고 하니 3년전에 이미 샀지 않았냐 한심아-_- 라고 가르쳐주네요 친절한 알라딘-_-;;;

유부만두 2020-08-22 11:36   좋아요 0 | URL
전 인터넷 서점을 다른데도 쓰기 때문에 어쩔 땐 산책 또 사, 산책 안 읽고 또 사,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어요.
 
연동동의 비밀 창비아동문고 310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효가 새 동네로 이사왔다. 아니, 새 동네가 아니라 '옛' 동네라고 불러야 한다. 연동동은 정효가 잘 모르지만 정효의 옛 동네, 아빠가 살았고 할머니가 아직 살고 계신 동네다. 정효는 이 연동동으로 살러 왔다. 


정효는 혼자 왔다. 함께 살던 엄마는 직장 때문에 캐나다로 갔는데 정효는 자신의 결정으로 한국에 남았고 새 동네, 아니 옛 동네로 와 삼층집에 사시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된다. 이 책은 정효가 만나는 연동동의 이야기다. 네 장으로 나뉘어진 이야기는 제목 처럼 '비밀'을 열어보는 정효의 한 달 간의 동네 탐험기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밝혔듯 이 책은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얘길 하기가 어렵다. 정효의 이야기도 처음부터 다 보여주질 않는다. 정효가 할머니 댁에 간 첫날 밤부터 사건은 벌어지지만 정효는 섣부르게 자신이 '탐정'인양 으스대거나 떠벌리지 않고 관찰하고 증언하며 주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한다. 그 과정을 독자는 따라가면서 함께 연동동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정효가 용감하며 예의바르다는 걸 알게된다. 


정효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착한 아이 역을 맡거나 주인공 티를 내지 않는다. 지나친 설명을 하지 않는 정효는 독자 스스로 새로운 인물과 새 사건을 천천히 이해하도록 놓아둔다. 쿨한 녀석. 요즘 활동 중인 숱한 어린이/청소년 탐정들보다 훨씬 성숙하다. 하지만 이 동네의 사건은 꽤 묵직하고 등장인물도 많다. 처음엔 정효 할머니 댁 삼층 건물 주민들, 그 옆 건물에 사는 쌍둥이 키우는 맞벌이 부부, 학교에서 정효의 앞 자리에 앉는 신주와 찬희, 활동적인 인찬 등. 반 아이들의 단톡방, 동네 마다 있는 편의점, 큰 개 송이, 그 옆의 오층 빌라 주민들과 수녀님들 숙소까지. 각 장마다 사건을 하나씩 품고 있는데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지더니 마지막 장의 사건은 그 깊이와 관련 인물이 최고에 이른다. (사건도 두 개가 한꺼번에!) 그와 함께 정효의 이사가 갖는 다른 의미도 밝혀진다. 


한 달 동안 정효는 연동동을 조금씩 (그것도 사건과 함께) 알아간다. 그리고 이제 정효에게 이동수단이 생겼으니 정효의 연동동은 더 넓어지겠지. 아직 인사를 나누지 않은 주민들이 많이 남았고 그들의 사건도 기대된다. (특히 신주네 빌라 4층 동화작가님) 정효의 할머니도 새 컴퓨터를 마련하셨으니 연동동이나 서울에서 더 멀리 뻗어나가서 그동안 끊어졌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이어가실 준비가 되었다.


동네마다 초등 탐정소설 마다 있는 범인들의 틀을 벗어났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은 탐정단을 조직하지 않는다. 소문을 퍼뜨리는 대신 묻어두기도 하고 묻혀있던 것을 파내도록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사건 수사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장애를 가진 사람을 '너그럽게 돕는' 대신 함께 한다. 그냥 넘겨왔던 차별을 어쩌면 학대를 알아챈다. 그리고 '게으른' 해결 대신 (금지나 묵인) 부지런하게 그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읽으면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고 단정 짓다가 천천히 그들의 사연을 알게되는 재미를 주는 책이다. 


아 못참겠다. 한 마디만. 마지막엔 실종 혹은 살인 사건도 나온다. 여름밤에 딱 어울린다. 초등 고학년 쯤이면 이런 '하드 보일드' 접해도 된다. (오십 독자도 조금은 무섭더라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0-08-13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이 책도 천재 이현 작가님의 책이네요@_@; 유부만두님 극찬에 저도 읽고 싶어요!(세상에 좋은 책이 너무 많군요@_@;) 플레이볼의 작가였단 걸 이제야 알았다는(소근소근-_-;)

유부만두 2020-08-13 21:27   좋아요 1 | URL
플레이볼, 연동동의 비밀 모두 초등 고학년에게 좋은 독서가 될거에요.
다양한 가정, 직업, 연령층의 모습을 보여줘서 더 마음에 들어요. 초등 등장인물들이 너무 유치하거나 소란스럽지 않아서 좋아요. 추천합니다.
참, 이현 작가님은 롯데 팬이세요.

moonnight 2020-08-14 10:15   좋아요 0 | URL
작가님, 롯데 팬이시군요-_-;;; (괜히 시무룩해봅니다ㅎㅎ 롯데 팬분들 참 많지요@_@;)
 

봄에 주문한 책이 여름에 왔다.
실은 잊고 있었어.




댓글(7)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0-08-12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딸이 미들마치 재밌다고 하던데 저는,,,유부만두 님 읽으시고 얘기해주세요. (그거로 만족할 확률 높음)

유부만두 2020-08-12 20:13   좋아요 1 | URL
제가 올해 안에 이 책을 읽을 확률이 낮아요;;;

라로 2020-08-13 04:01   좋아요 1 | URL
괜찮아요, 저도 알라딘 올해 안에 들어올 확률이 낮아요. ^^;;;

단발머리 2020-08-12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들마치... 다른 건 모르겠고요
너무 이뽀요!! 😍

유부만두 2020-08-12 20:13   좋아요 0 | URL
그쵸?!!!! 다른 건 모르겠고, 번역본이 별로라는 말에 덥석 지르고 말았어요.
봄날의 저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미래의 제가 읽겠죠, 현재의 전 그저 행복할 뿐!

수이 2020-08-12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워서 눈이 부신........

유부만두 2020-08-12 20:14   좋아요 0 | URL
책을 알아보시는 당신.
 

책 덕후를 위한 우리끼리의 '알지 알지' 느낌 그림/만화책. 작가 (지망생)이라면 더더욱 공감할 컷들이 담뿍 담겨있다. 큰 이야기나 줄거리가 있는 책은 아니다. 그림도 예쁘고 리뷰도 좋아서 샀는데 ...솔직히, 중간까지는 별 재미를 못 느꼈다. 말장난을 잘 살려서 번역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원서의 재치가 궁금했다. (다리미를 들고서 아이러니를 말하는 컷이 있다) 


그런데, 중반부 이하엔 엄머머머머, 공감 터지는 그림이 많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고 싶지만, 대신, 저자인 그랜트 스나이더의 사이트 링크.

http://www.incidentalcomics.com/


저자는 뉴욕타임즈에 4컷, 혹은 다컷 만화를 그린다. 영국 가디언지에 책 관련 만화를 그리는 톰 굴드도 번역서를 냈다. 


그의 인스타 계정

https://www.instagram.com/tomgaul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