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재능있고 따뜻, 아니 뜨겁고 복잡한 사람 심시선 여사와 남편들, 딸들에 아들, 그리고 손녀들 더하기 손자 이야기다. 매 챕터 시작에 심 여사의 글과 인터뷰 일부가 인용되는데 그 글들의 전체가 계속 궁금해진다. 특히 <어쩌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 2002>의 재출간(?)을 기대한다. 


심 여사의 자녀들, 읽으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그들의 '특이점' 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모래사장의 예쁜 조약돌이나 조개껍질 처럼 놓여 있어서 반갑게 주워 담으면서 읽었다. 이런 인생, 이런 역사, 이런 사랑과 사람들이 한 가족에 모여 있을 리 ... 없겠지. 어쩜 블랙쉽이 하나도 없어. 가족이 이렇게 (아무리 비용이 해결된다고 해도) 여유있는 일정으로 하와이 여행을 '추모'의 목적으로 과거를 까발리거나 원망하는 쌈박질 없이 해낸다니, 그것도 제삿상엔 각자 창의성에 기댄 선물을 올린다니. 너무나 예쁘고, 너무나 가짜 같잖아.  


그래도, 이런 소설이 있어야한다. 씩씩하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읽으면서 계속 '이게 진짜일리가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믿고 싶었다. 따뜻한 정세랑 작가의 글이 내 맘의 더러운 기름을 닦아줄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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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 병리학 학자가 정리한 '죽음'에 대한 책. 책 말미에 2권이 예고되어 있어서 이 책은 서문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로 책 내용은 기존의 죽음, 부검, 법의학자의 역할에 대한 기존 지식을 쉽게 정리한 것이다. 저자의 개인적 '인사이트'가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착실한 저자의 모습은 짐작할 수 있지만 책이 매우 새롭거나 특별하지는 않았다.


삶과 죽음 사이의 '그레이 존'에 대한 고민이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죽음이 죽음 다워야 삶이 더 생생하리라. 생명연장술로 아직 특별실에 누워있다는 회장님도, 얼마전 읽은 책 '꽃은 알고 있다', 한국 법의학의 창시자로 언급되는 문국진의 책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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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유투브 저 말에 (몰랐어요, 처음 들어요. 이런 희한한 이름은 잊기가 더 어려운데) 책을 사서 (조금 숙성 시킨 후) 읽었다.

총 655쪽 중 9쪽에 해당하는 짧은 이야기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7세기 신라시대의 두 건장한 청년이 속세를 떠나 불가에 입적하여 조용히 도를 닦는데 한밤중 여인이 찾아온다. 부득과 박박은 서로 다른 식으로 이 여인을 대하는데, 짠!, 반전이 생긴다. 여인의 정체와 두 승려의 우정이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결말.

중국 당나라 연호를 쓰는 시절이라 씁슬하고 여자를 탕녀 혹은 성모 (석가의 어머니 마야부인) 이분법으로 대하는 건 더 씁쓸했다. 이 두 승려가 살림까지 차렸다가 버리고 떠난 부인들과 아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얼마전 읽은 뉴스엔 n 번방 범인 중에 승려가 있었다고 했는데 남자는 승려와 성범죄자를 다 할 수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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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093753277 2023-10-09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우리역사가 아니기때문

a01093753277 2023-10-09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사기와 삼성기 단군세기를 읽으세요
 

기원전 5세기 로마에서는 평민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제도가 있었다. 귀족 출신 맹장으로 여러번 로마를 구하고 코리올리를 정복한 후엔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마르쿠스는 집정관이 되기 전에 평민들의 동의를 얻어야했다. 그는 평민들을 멸시했지만 이 단순한 통과의례를 누더기를 입고 해낸다.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나가 어묵을 열심히 먹는 금수저 후보들이 떠오르고) 하지만 호민관들의 설득에 돌아선 평민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실은 그 개인 뿐 아니라 귀족 전체에 대한 불신과 현실의 고달픔 때문이다. 평민에 대한 코리올라누스의 적의는 노골적이다. 귀족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맹장은 추방당한다. 그리고 적이었던 아우피디우스와 손을 잡고 로마를 향해 칼을 간다. 하지만 아우피디우스와 코리올라누스 사이에 긴장은 사라지지 않고, 로마 진격을 앞둔 문턱에서 코리올라누스는 옛 귀족 친구, 옛 상관, 어머니와 부인, 어린 아들을 차례로 만난다. (어머니와 부인이 매달리며, 널 낳아준 로마와 어머니의 자궁 어쩌고 운운) 그리고 그의 결정은... 그의 또 다른 파멸, 이번엔 복수나 재기가 없는 죽음을 부르고 말았다. 


이 희곡이 놀라운 것은 기원전 5세기, 지금부터 2500년 전의 로마의 공화정을 17세기 초의 영국 극작가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품 배경엔 당시 제임스1세와 의회의 갈등이 있다.) 비록 평민들과 호민관에 대한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고 평민들의 판단력이나 지력이 뛰어나 보이지도 않지만 능력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천하의 맹장 코리올라누스를 로마에서 내쫓았다.


그의 어머니 볼룸니아, 자존심과 오만함의 그녀는 독하고 강한 말로 아들을 휘두른다. 그녀는 자신, 가문, 로마의 명예를 최우선에 두고 그 목적을 위한 그녀의 '말 잘 듣고 명예로운 아들'을 갖고 싶어한다. 자기편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코리올라누스, 그에게 위기는 늘 급작스럽게 닥쳐 그가 채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를 잡아먹어버리고 만다. '배신자'라는 말에 뒤집어지는 사람, 하지만 자신이 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전형적인 영웅.


요즘 보는 삼국지 드라마의 호걸들도 겹치는 캐릭터다. 칼과 자신, 그리고 이름이 중요한 사람. 주군을 바꿀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굽힐 수 없는 코리올라누스. 


NT live의 톰 히들스턴은 이 인물을 아주 멋지고 역동적이며 승질이 급해서 일을 그르치지만 속정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희곡과는 매우 다른 그의 죽음. 순교자 처럼 매달린 그의 시신 주위에는 조용한 찬송가 풍의 노래가 흐른다. 웰컴, 웰컴. 코리올라누스, 코리올리의 정복자 영웅은 이제 죽어서야 고향 로마에서 환영 받는다. (희곡에선 죽었지만 NT 공연으로 부활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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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12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로마 책을 읽다보면 기원전 수세기에 저런 제도와 문화를 만든 이 로마와 로마인은 뭔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돼요@_@;;; 게다가 이천몇백년 전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를 펼쳐보이는 셰익스피어@_@;;;
톰 히들스턴 멋져요♡(로 마무리^^;;)

유부만두 2020-06-12 12:38   좋아요 0 | URL
그쵸?!! 역사 시간에 배웠지만 흘려 들었던 로마의 정치제도가 새삼 놀라워요. 이천몇백년 전에 이미 다 해놨더라고요?! 그러고도 망했으니 더 씁쓸한건가요, 아니면 인간에겐 희망은 없는 걸까요. 셰익스피어의 간간이 씁쓸한 유머도 들어간 이 희곡은 톰 히들스턴이 화려하게 살려냈어요. 하지만 좀 과한 느낌도 있고요. 코리올리누스가 멋져보인다는 단점이 ....
저 이참에 로마사를 읽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참고로 삼국지 드라마는 2/3 정도 진행중이에요. 유비가 황충을 얻었어요.
 

식물학자가 사건 현장에서 활약하며 법의학 생태학 이야기를 전한다고 해서 CSI를 상상하며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CSI는 환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대신 모든 물질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게 작고 가볍지만 꽃가루 부터 균류, 미생물의 커다랗고 또 중요한 존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그 작은 것들이 모이고 쌓여서 사람을 만들었다가 다시 허문다고도 했다. 


저자의 인생 이야기가 사건 이야기 보다 더 비중 있게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사람은 그저 빈그릇으로 우주에서 왔다가 간다지만 (그것도 여러 번 반복해서 저자가 말했지만)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과 사체와는 이별은 그에게도 고통스럽고 아직도 마음에 사무친다고 고백한다. 인생의 여러 고비에서 강단있게 앞으로 걸어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외출 시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고 소독약을 더 챙기는 요즈음, 어느 꽃가루나 씨앗이 내 옷과 신발에 귓속에 붙어있어서 나의 이동 경로를 밝힐까 상상하다가, cctv 도 거들겠군 싶었다. 음전하를 띠는 꽃가루는 특히 머리칼에 잘 달라붙는다고 했다. 바이러스는? 신경이 곤두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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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08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SI는 (역시) 환상이로군요^^; 이 책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로마시리즈 다 읽고 읽으려면 언제가 될지=_=;;; 유부만두님 리뷰로 일단 만족합니당^^

유부만두 2020-06-08 18:44   좋아요 0 | URL
로마 시리즈 대장정이 끝나는 날 온라인 축하 파티라도 해야겠어요!!!
정말 존경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