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로마에서는 평민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제도가 있었다. 귀족 출신 맹장으로 여러번 로마를 구하고 코리올리를 정복한 후엔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은 마르쿠스는 집정관이 되기 전에 평민들의 동의를 얻어야했다. 그는 평민들을 멸시했지만 이 단순한 통과의례를 누더기를 입고 해낸다. (선거철마다 재래시장에 나가 어묵을 열심히 먹는 금수저 후보들이 떠오르고) 하지만 호민관들의 설득에 돌아선 평민들은 폭동을 일으킨다. 실은 그 개인 뿐 아니라 귀족 전체에 대한 불신과 현실의 고달픔 때문이다. 평민에 대한 코리올라누스의 적의는 노골적이다. 귀족 원로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맹장은 추방당한다. 그리고 적이었던 아우피디우스와 손을 잡고 로마를 향해 칼을 간다. 하지만 아우피디우스와 코리올라누스 사이에 긴장은 사라지지 않고, 로마 진격을 앞둔 문턱에서 코리올라누스는 옛 귀족 친구, 옛 상관, 어머니와 부인, 어린 아들을 차례로 만난다. (어머니와 부인이 매달리며, 널 낳아준 로마와 어머니의 자궁 어쩌고 운운) 그리고 그의 결정은... 그의 또 다른 파멸, 이번엔 복수나 재기가 없는 죽음을 부르고 말았다. 


이 희곡이 놀라운 것은 기원전 5세기, 지금부터 2500년 전의 로마의 공화정을 17세기 초의 영국 극작가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품 배경엔 당시 제임스1세와 의회의 갈등이 있다.) 비록 평민들과 호민관에 대한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고 평민들의 판단력이나 지력이 뛰어나 보이지도 않지만 능력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천하의 맹장 코리올라누스를 로마에서 내쫓았다.


그의 어머니 볼룸니아, 자존심과 오만함의 그녀는 독하고 강한 말로 아들을 휘두른다. 그녀는 자신, 가문, 로마의 명예를 최우선에 두고 그 목적을 위한 그녀의 '말 잘 듣고 명예로운 아들'을 갖고 싶어한다. 자기편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코리올라누스, 그에게 위기는 늘 급작스럽게 닥쳐 그가 채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를 잡아먹어버리고 만다. '배신자'라는 말에 뒤집어지는 사람, 하지만 자신이 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는 전형적인 영웅.


요즘 보는 삼국지 드라마의 호걸들도 겹치는 캐릭터다. 칼과 자신, 그리고 이름이 중요한 사람. 주군을 바꿀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굽힐 수 없는 코리올라누스. 


NT live의 톰 히들스턴은 이 인물을 아주 멋지고 역동적이며 승질이 급해서 일을 그르치지만 속정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희곡과는 매우 다른 그의 죽음. 순교자 처럼 매달린 그의 시신 주위에는 조용한 찬송가 풍의 노래가 흐른다. 웰컴, 웰컴. 코리올라누스, 코리올리의 정복자 영웅은 이제 죽어서야 고향 로마에서 환영 받는다. (희곡에선 죽었지만 NT 공연으로 부활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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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12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로마 책을 읽다보면 기원전 수세기에 저런 제도와 문화를 만든 이 로마와 로마인은 뭔가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돼요@_@;;; 게다가 이천몇백년 전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를 펼쳐보이는 셰익스피어@_@;;;
톰 히들스턴 멋져요♡(로 마무리^^;;)

유부만두 2020-06-12 12:38   좋아요 0 | URL
그쵸?!! 역사 시간에 배웠지만 흘려 들었던 로마의 정치제도가 새삼 놀라워요. 이천몇백년 전에 이미 다 해놨더라고요?! 그러고도 망했으니 더 씁쓸한건가요, 아니면 인간에겐 희망은 없는 걸까요. 셰익스피어의 간간이 씁쓸한 유머도 들어간 이 희곡은 톰 히들스턴이 화려하게 살려냈어요. 하지만 좀 과한 느낌도 있고요. 코리올리누스가 멋져보인다는 단점이 ....
저 이참에 로마사를 읽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참고로 삼국지 드라마는 2/3 정도 진행중이에요. 유비가 황충을 얻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