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십몇 년차 아줌마가 요리초보를 위한 프로그램을 따라하다니! 전 그런 자존심! 없어요. 따라합니다. 결혼해서 일년 남짓 시댁에서 주방 보조만 하다가 (그것도 시어머니께서 직장 다니시는 분이시라 요리 아니고 ..... 뭐 그냥 밥인데.. 그랬어요. 친정에선 귀한 딸이라 손끝에 물 안묻히던... 그랬어요) 타국 생활 하면서 밥도 하고 김치도 담그고 국도 끓이고 그러면서 나만의 비법을 쌓았었지만, 다시 한국에 와선 배달음식과 외식의 판타지랜드를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더더욱 그러네요. 바쁜 일정의 남편은 저녁 먹고 오는 경우가 많고, 대학생이 된 큰아이는 집밥을 먹기엔 아빠보다 더 바쁘네요. 막내랑 단 둘이서 ..."우리 뭐 사머글까?" 하고있습니다. 더워요. 불켜서 국 끓이고 뭐 굽고 하기도 귀찮구요, 재료 사도 외식하는 거랑 비용은 차이도 안나는데....그러나, 마음 한켠은 조금 쓸쓸하고 그랬어요.
남편이 일주일 해외출장 갔을 때 백선생 레서피로 오이소박이를 해봤습니다. 딱 시키는대로 했어요. 예전에 미국 살 때 오이김치를 해봤는데, 그땐 뚱뚱한 피클오이로 만든거라 레서피도 꽤 달랐던 것 같아서 그냥 백선생 레서피 대로 했는데! 옴마나! 하루 밖에 두고 냉장고에 넣고 딱 사흘째 부터 너무너무 맛있는겁니다. 출장서 돌아온 남편은 딱 두어 쪽 밖에 맛을 못봤어요. 그래서 이번에 두번 째로 담궈봤어요. 뭐, Beginner's Luck이 이번에도 작동한걸까요? 이번에도 성공입니다! 귀찮아도 풀쑤고 다 했어요. 두번째라 뚝딱 더 쉬운 느낌도 났어요.
백선생 레서피로 전에 감자전도 해봤는데 갈고 짜고 너무 귀찮았는데 이번엔 채썰어서 부침가루 조금 섞고 햄도 좀 넣고 후추 뿌리고 구우래요. 그래서 해봤는데!! 감자 한 봉 다 먹었....
이렇게 우리 가족은 뚱띠가 되어갑니다. 여름 주말, 창문 다 열고 감자채전 구워서 먹고, 그러면서 간만에 집에 붙어있는 큰아이랑 인사도 했습니다. "엄머,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만들고 어쩌고 귀찮아도, 재미도 있네요. 이십몇 년 주부 경력 다 무슨 소용이래요? 하고 싶을 때 하고, 맛있게 즐겁게 식구랑 친구들이랑 즐기는 게 최고다 싶네요. 백선생 레서피가 도와줘서 땡큐였구요. 비오는 월요일, 감자전 만들려면 감자를 한 봉, 아니 두 봉은 사둬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