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소문만 들었던 <세설>을 드디어 읽었다. 누군 '작은 아씨들' 일본판이라고도 하고 누군 '심미주의 소설의 끝판왕'이라고도 하고 누군 '야해'라고 했는데. 내겐 셋 다 아니었다.
이 소설은 1937년 봄에 시작해서 1941년 봄까지의 4년 동안 오사카 명문가(이었으나 이제는 세가 기울어진) 마키오카 집안의 네 자매 이야기다. 첫째 쓰루코(삼십대후반)는 결혼해서 (데릴사위) 남편과 '본가'를 이루고 아이 여섯(!!!)과 바쁘게 산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서 동생들에겐 엄마 노릇도 했지만 결혼 후 아이들 챙기느라 늘 분주한데다 남편 직장 때문에 도쿄로 가게 되어 힘들어 한다. 둘째 사치코(삼십대후반)는 딸 에쓰코(초등 저학년) 하나를 키우며 고베 근처 아시야에 사는데 몸이 허약한지 병치레가 잦고 주사나 약, 의학의 힘을 맹신한다. 셋째 유키코(삼십대 초반)와 막내 다에코(이십대 후반)은 아직 미혼이라 유키코의 네버 엔딩 맞선과 다에코의 연애사들이 크고 큰, 더 큰 사고와 함께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의 대미는 유키코의 결혼과 다에코의 분가로 마무리된다.
소설 초반부만 해도 세설 細雪이 細說인가 싶게 자잘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즐거웠다. 결혼 상대를 나이, 사회적 지위, 경제 상태로 따지며 여성의 미모를 (물건 고르듯) 평하기에 제인 오스틴 소설 생각도 났다. 1930년대니까 <파친코>의 선자도 오사카에서 김치 장사를 할 시기다. 하지만 마키오카 집안 네 자매들은 위스키, 커피, 와인 등을 마시고 스시나 스테이크를 즐긴다. 각기병이 의심된다 싶으면 비타민B 주사를 맞고 (집에 다 구비해 놓았음) 고베의 언덕에 위치한 중식당에서 항구를 내려다 보며 유럽의 정세를, 히틀러의 득세나 '전쟁은 안나' 주장 등을 나누고 신문에 실린 중일 전쟁 소식에 '오늘따라 커피 향이 유달리 향기롭다'고 느낀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사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도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도쿄 '시세이도' 미용실에선 오사카 사투리를 들키지 않으려 신경쓰고, 봄마다 교토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교토 출신) 꽃놀이를 (꽃을 이기고도 남을 화려한 기모노를 맞춰입고) 가고 가부키 공연을 챙기고 전통 춤도 배우고 프랑스어 교습도 받는다. 그들의 외국인 지인들은 '젊은 국가'들인 일본과 독일이 치루어야 할 고난에 대해 이야기하며 승리를 굳게 믿는다. 하지만 예전 아버지나 선대의 가업은 이미 기울어져 남에게 넘겨주었고 큰사위나 작은 사위 모두 회사원이라 자매들보다 스케일이 작게 현세에 충실하려 애쓴다.
매일 매일 건강 챙기고 저녁밥 챙기고 계절 따라 병치레에 태풍에 사고나고, 지진도 나고, 그 사이사이에 유키코의 맞선이 주선되고 서로 체면과 예의를 차리며 만나고 거절하거나 거절 당한다. 그러다 기차 안에서 유키코는 십몇년 전에 선봤던 남자를 보기도 한다. "인형같이" 예쁘고 (하지만 눈가에 얼룩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 결혼하면 낫는다는???? 흠이 있지만) 음전한 유키코는 속내를 드러내진 않아 답답하지만 고집도 있다. (그리고 아나톨 프랑스의 책과 소설 '레베카'를 읽는다) 이런 유키코가 작가의 주인공, 제목의 '雪'이며 진정한 일본의 아름다운 여성 그 자체로 그려진다. 그와 정반대의 막내 다에코는 독립적이고 십대에 이미 남친과 가출해서 (명문가 자식이니) 신문에 난 적도 있다. 신분 차이가 나는 상대와 연애도 여러번 하고, 손재주가 좋아 일본 "인형"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다. 그러니 소설의 큰 사건과 재난은 주로 다에코에게 일어나 그녀를 벌주고 망신 당하게하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셋째와 넷째는 '본가'인 큰언니네서 살아야 하지만 둘째 사치코네를 오가는데 언니들마다 상황이 (특히 유키코의 결혼에 대한 의견) 달라지면 서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그 미묘한 감정 변화선을 읽는 재미가 소설 상권에서는 있었다. 그러나 하권으로 넘어가면서 독자는 아, 또 맞선, 아, 또 건강 이야기, 또 맞선, 또 병원 하면서 지쳐간다. (하물며 흔한 설레는 장면도 없고) 고집스레 이어지는 자세한 병증 묘사와 설명, 반복되는듯 조금씩 다른 자매들의 일상과 예의 범절 이야기, 더해지는 풍광 묘사와 기억들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사실 프루스트도 좀 이런 과 잖아? 변. 태. 하지만 저자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하나의 장면이나 표정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몽환적인 다른 세계로 건너가지 않고 "아름다운" 여인의 인간계에 머무르길 택한다. 남자 작가의 편견일까, 여자의 나이와 미모, 예술적 기교, 꽃과의 비유에는 열심이지만 등장하는 남자들은 무던하고 온화하다. 특히 둘째 사위는 아주 다정한 편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름다움"을 좇는 변태의 기질은 있었으니, 이 소설의 영화를 만든 감독은 그 변태의 성정을 중심으로 다시 끌어온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어쨌거나, <세설>상권을 읽으면서 챙겨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다른 소설들을 <세설>하권을 읽으면서 다시 책장에 꽂아넣었다. 좀 지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