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고 덤덤한 묘사를 따라 읽으며 아일랜드 소도시의 주민들을 상상했다. 코널티 양의 응어리 진 마음과 목걸이, 엘리의 달걀 배달, 그 남편의 목초지 이야기, 플로리언의 방황 등을 따라가다가 지루해서 잠깐 손에서 놓아두었다. 그러다가 새파랑님의 리뷰를 읽고 아, 이것 역시 사랑 이야기구나 싶어서 다시 읽었다. 


마침 가게에서 두 사람이 말을 나눈다. 그러지 말걸, 하면서 인사하고 기다리고 서성거린다. 그리고 엘리는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누군가를 욕망한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 최악을 각오하며 엘리는 문을 밀어 연다. 무언가가 문 뒤에 걸려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 자신이 대면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엘리보다는 코널티 양에 더 마음이 (아무래도 나이가 ...) 갔다. 그녀의 걱정, 그리고 안심과 다정한 상상 너머에서 뜨거운 여름은 가고 순한 가을이 온다. 다음 여름은 조금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에서 사랑의 도피처로 아일랜드를 찾은 플로리언의 부모, 또 모든것을 뒤로하고 노르웨이로 향하는 아들. 점점 더 추운 곳을 향하는 이 가계도에도 연민을 조금 뿌려주기로 한다. 이렇게 뻔한 사랑 이야기인데 트레버의 소설은 어쩜 이렇게 우아한지. 마음이 아파 ...  


덧: 표지의 저 칼 나도 있는데 안으로 당겨 깎기 보다는 밖으로 내치면서 (사과 말고) 감자 껍질 벗길 때가 더 쓰기 좋다. 사과를 저렇게 깎다가는 손을 다칠지도 모른다. 내가 그런 사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2-01-13 16: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에 제 이름을 언급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초반이 좀 그렇긴 하더라구요 ㅋ 누가 주인공인지 감도 잘 안오더라구요 ㅎㅎ 저는 플로리언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

유부만두 2022-01-13 17:34   좋아요 3 | URL
그러셨군요. 플로리언이 그 추운 곳으로 가서 새로운 시작을 잘 했으면 좋겠어요. 설마 몇 년 후 돌아와서 … (네, 드라마를 좀 봤습니다)

미미 2022-01-13 16: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랑 읽다만 <비온뒤>도 꼭 다시 읽어볼래요^^

유부만두 2022-01-13 17:36   좋아요 3 | URL
초반의 조용함을 지나면 격정의 여름이 있습니다. 가 여름의 끝에 … 우아한 결말이 기다리고요. 멋진 독서가 될거에요.

책읽는나무 2022-01-13 18: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오래 전에 읽었거든요.
책 표지가 넘 예뻐서요~^^
분명 아릿아릿 괜찮게 읽은 것 같은데...음....만두님 리뷰를 읽어도 전혀 기억이 안나네요???
참나~~책을 왜 읽는 건지??🥴🥴
저 책이 좋아서 윌리엄 트레버 더 알고 싶어 <비온 뒤>사다 놓곤 처박아 뒀다는ㅋㅋㅋ
요즘 트레버 얘기 많이 올라와서 어쩐다? 중입니다.
근데 저 과도를 가지고 계신 거에요?
칼을 사용하기가 힘든 거였군요?
사과를 어찌나 못깎았던지??
전 저 예쁜 표지에 한 몫 하려고 일부러 못깎았나?뭐 그런 생각을 했더랬죠ㅋㅋㅋ

유부만두 2022-01-19 11:33   좋아요 1 | URL
기억에 엄청 남는 강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잖아요. 저도 그래서 소설 전반부는 너무 지루해서 하마터번 중도 포기 할 뻔 했어요.
은근 플로리언이 누굴 죽이길 바랐....

그래도 어느 한 여름, 사랑이 있었더랬습니다.

단발머리 2022-01-13 19: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에 읽는 여름. 이야기라니 기대되네요. 책표지가 이뻐서 한눈에 들어오는 책인데 계속 미루고 있어요. 푸하하.

유부만두 2022-01-19 11:26   좋아요 0 | URL
여름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 라기엔 조금 아쉽지만 또 그만큼 더 아련한 기분이 남는 책이에요. 풋 사과에 어울리는 불륜이라기엔 너무 어설픈 만남.

페넬로페 2022-01-13 22: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떤 종류의 사랑이야기인지 궁금해요.
사과 저렇게 깎다간 매번 엄마한테 혼날 것 같아요. 두껍게 깎는다고요.
저 그림에 뭔가 의미가 있겠죠^^

유부만두 2022-01-19 11:27   좋아요 1 | URL
푸른 사과를 깎는 어설픈 손놀림처럼 처음 만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당황하는 사람이야기에요. 지나가 버릴까요, 이 뜨거운 (아니 따수운) 떨림은요?

mini74 2022-01-13 2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빤한 사랑이야기인데 우아하다는 말 동의합니다 ㅎㅎ 저러다 사과가 뼈만 남을 듯 합니다 ㅋㅋ

유부만두 2022-01-19 11:27   좋아요 0 | URL
그죠? 사과껍질만 따로 모아도 많을거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