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비어드의 다른 책을 읽으려고 오랫동안 벼르기만 하다가 얇은 이 책으로 대신 했다. 여성을 침묵시키는 고전(문)학 안의 시발점을 고찰하고 공적 목소리와 권력을 여성에게 강하게 거부하는 전통을 현대 정치 사회와 함께 (비교적 쉬운 문장으로) 살핀다. 


고전(문)학에서는 권력을 가진 (악용한) 여성은 괴물로 여겨지므로 (지금도 그렇다) 죽여서 입을 막고, 그 목을 따서 반면교사 삼는다. 가슴에 메두사의 머리를 달고 다니는 '여'신인 아테나가 바로 가장 여성을 침묵시키려 애쓰는 그 고전학 (호머 이전 시대 그리스 인들)의 악착스러움을 보여준다는 해설이 흥미롭다.


옛기억에 메두사는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어서 벌로 괴물이 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사랑이 사랑이 아니었네? 잠깐만요, 확인 좀요. 



Medusa was astonishingly fair; [...] Her beauty led the Ruler of the Sea to rape her in Minerva‘s sanctuary(so goes the tale). Jove‘s daughter turned aside chaste eyes: the goddess hid her face behind her aegis. (book 4, 141-2) 


허영에 찬 처녀가 방종한 사랑을 하다 여신에게 벌 받는 게 아니라 바다의 신에게 강간 당했는데 자신의 장소를 더럽힌 것에 분노한 아테나가 피해자를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메두사는 한때 아름답기로 소문난 처녀였더랍니다. [...] 바다의 지배자가 이 메두사를 미네르바 여신의 신전으로 데려가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합디다. 이 유피테르의 따님으로서는 방패로 얼굴을 가려야 할 만큼 무안당하셨던 거지요. (1권, 201)

 

왜 민음사 번역은 이토록 불필요한 각색을 했을까.  강간이 사랑이 되어버렸다. 하긴, 고전문학에서 강간 아닌 사랑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이러진 말자. 증말. 지겹다. 사람 때리고 죽여놓고 짝사랑 운운하는 뉴스 제목이랑 뭐가 달라. 


끔찍하게 그 처벌이 피해자에게만 주어진 것도 처참하다. 오늘날 뉴스에서 거듭 접하는 그리스 비극적 상황에 더 처참하다. 누가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가. 망내인의 상황도 겹쳐진다. 메두사는 가해자 집안 삼촌이 강간하고, 조카가 괴물로 만들더니, 또 다른 조카가 살해했다. 대단한 집안이다.  


메리 비어드의 책은 흥미롭지만 해법의 하나로 제시하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사유'는 어쩐지 생생한 사례와 비유에서 멀리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고전학 내의 여성 이야기에 나는 아직 목 마르고 .... 비어드의 다른 책을 더 읽어야 겠다. (칼은 갈아 놓고 다른 책만 찾아 읽는 나는 뭘까. 참, 칼가는 도구는 다ㅇㅅ에서 오천원 짜리를 샀는데 꽤 쓸만했다. 아주 날카로워진 부엌칼에 남편이 손을 베었다;;;) 


참, 트럼프가 격노했다는 SNL의 '여성' 코메디언에 의한 '남성' 정치인 희화화는 이것이다. 

멜리사 맥카시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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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6-07 17: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메두사가 피해자였던 거네요?!! 옛날 동화도 그렇고 알면 알수록 필요에 의해 또는 통념에 따라 각색된 것 투성이...🤔

유부만두 2021-06-08 06:41   좋아요 1 | URL
둘이 사랑을 했다니까, 그런갑다~ 시대가 그랬지~ 여자가 뭘 했겄지~ 라는 식의 답습된 태도가 더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1-06-07 18: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성, 전적으로 권력에 관한.... 은 참 작고 비쌌던 책으로 기억합니다. 읽지는 못하고 만나기만 했던 책이에요.
메두사 이야기 때문에라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유부만두 2021-06-08 06:43   좋아요 1 | URL
그쵸. 작고 비싼... 전 더 두껍고 더 비싼 책도 있는데 ... 이 책은 주로 영미 여성 정치인들 이야기를 다루지만 (얇아서 그것도 많이는 아니죠) 지금 한국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어요. 책이 어렵지도 않아서 하루에 슥. (하지만 가슴엔 천불) 읽으세요.

붕붕툐툐 2021-06-07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어떻게 강간이 사랑이 될 수 있냐고!?!?!?!
다이소 칼갈이 너무 무서운 물건 아닙니까?ㅎㅎㅎㅎ

유부만두 2021-06-08 06:45   좋아요 1 | URL
다이소 칼갈이 다부져요.
또 하나 다이소 마늘다지기? (집게 처럼 생긴거)도 야무지네요. 마늘을 아주 잘 짜요? 찧어요? 빻아요?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요? 다지는 건 아니죠. 작은 구멍이 많은 틀에 넣고 뚜껑을 내리 눌러서 쓰는건데요... 여하간, 다이소에도 쓸만한 부엌템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꼬마요정 2021-06-07 2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테티스와 메데이아도 희생양이라 굳건히 믿고 있습니다!!!

유부만두 2021-06-08 06:47   좋아요 2 | URL
메데이아....는 사랑에 적극성이 있지 않았었...? 아니네요. 그것도 찾아봐야 겠어요. 아무리 나중에 그녀가 피칠갑을 했어도, 처음 ‘사랑‘이 과연 비폭력 자발적 선택인지는 찾아봐야해요. ㅜ ㅜ

꼬마요정 2021-06-08 08:05   좋아요 2 | URL
그리스 신화에서 스스로 우러나와 사랑을 나눈 사례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ㅜㅜ 씁쓸하네요. 메데이아 다시 찾아봐야겠어요ㅠㅠㅠㅠ

북극곰 2021-06-14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와중에 ‘피해자‘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다니 진짜.... -.-;
유부만두 님 덕분에 저도 독서욕이 막 솟네요. 읽으시는 거 슬금슬금 따라가봐야겠다.

유부만두 2021-06-23 15:09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독서도 제가 슬금슬금 따라가겠습니다. ^^

공쟝쟝 2021-06-25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두사///사랑이 아니었구나... 인류여 사죄해라!!! (화난다...)
앗, 맬리사 맥카시를 여기서 뵙사옵니다. 최고 ㅜㅜ 힝 ㅜㅜ.

유부만두 2021-06-25 20:15   좋아요 0 | URL
화나지요. 음청.
참, <키르케> 소설 읽어보셨습니까? 재밌는데 말이지요....

2021-06-3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30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