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초에 이미 화단에 감돌던 긴장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졸라는 『작품 L'OEuvre이라는 소설을 펴냄으로써 긴장을더했다. 프로방스와 파리에서 보낸 젊은 시절 자기 주위의 화가들이 분투하던 모습을 그린 이 소설(점점 더 길어지는 '루공-마카르 총서' 중 또 한 권)은 다분히 자전적인 내용으로, 공쿠르가재빨리 지적했듯이 바로 그 점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작중의 젊은 소설가, 상도즈라는 이름의 부지런한 인물은 방대한 역사소설시리즈 - '루공-마카르'와 크게 다르지 않은 - 를 쓰고 있다. 졸라는 상도즈를 소중히 다루며 그에게 성공을 부여하지만, 그 주위의 화가들에게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았다. 특히 클로드 랑티에라는 인물은 자신이 성취할 수 없는 비전을 지닌 화가로 그려지는데, 졸라가 "불완전한 천재"라 부르는 이 불행한 이는 자신의 한계뿐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받는 푸대접과도 씨름한다. 졸라의 소년 시절 친구 세잔을 모델로 삼은 것이 분명하되 마네와도 다소 닮은 구석이 있는 이 인물은 그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친구에 대한 잔인한 배신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완전한 무시에서나온 것이었다. 

이 작품은 파리 화단 전체에 충격을 주었다. [...] 그동안 오랜 싸움을 해온 [마네]와 동료 인상파 화가들이 "이제 겨우 목표에 이르기 시작한 시점에, 우리의 적들이 우리에게 마지막 타격을 입히는 데 이 책을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점이 염려스럽다"라고 모네는 졸라에게 상기시켰다. 더구나, 비록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모네 개인적으로도 걱정스러울 만했으니, 랑티에에 관해 가장 심란한 몇몇 장면은 모네 자신의 사생활에 일어난 사건들과 불편할 만큼 비슷했기 때문이다.

세잔의 반응은 조용했지만 훨씬 더 깊은 것이었다. [...] 주인공 클로드 랑티에는 총명하지만 문제가 많은 실패자로, 그와 세잔의 명백한 유사점들은 졸라가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졸라에 따르면, 『작품』의 궁극적인 표적은 어느 한 화가라기보다 훨씬 광범한 것이었다. 『작품』의 출판기념회 만찬에서 그는 "근대의 흐름 속에서 작업하는 어떤 화가도, 같은 미학을 가지고 같은 사상에 영감을 받아 같은 흐름 속에서 작업하는 적어도 서너 명의 소설가들이 성취한 것에 맞먹는 결과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이이 소설의 주제라고 설명했다.[...]『작품』과 그에 대한 졸라의 방어는 사실상 그의 모든 화가 친구들을 분노케 했으며, 그중에는 드가(천성적으로 남을 얕보는)와 모네뿐 아니라 르누아르와 피사로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이는 물론 세잔이었다. 증정본을 받은그는 정중하지만 통렬한 답장을 보내고는, 친구와 일체의 연락을끊어버렸다. 그것이 그가 졸라에게 쓴 마지막 편지였으며, 두 사람은 평생 다시 만나지 않았다. 

(276-279) 


ㄱ작가 소설과 관련한 ㅁ 출판사의 공지에서 '여러 압박과 피해'라는 표현을 읽었다.

 주어와 대상은 누구인데? '문학'이라면 모두 용서가 되는가? 


잔인한 표지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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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16 1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품> 사두고 아직 안 읽고 있는데 이 글 보니 조만간 읽을 것 같네요. 가여운 세잔...!

유부만두 2021-05-16 10:59   좋아요 2 | URL
가엽죠. 어릴적 절친이었다지만 커가면서 거리를 느끼다 이런식으로 ‘배신‘을 겪다니요. 하지만 그도 예술로 기억되어서 다행이에요. 아니었다면 졸라 글만 남잖아요.

두 사람에 대한 영화 예고랑 링크도 추가했어요. 몇년 전에 봤는데 꽤 좋았어요.

유부만두 2021-05-16 11:30   좋아요 1 | URL
설마 두 ㄱ 작가들은 자신의 ‘문학’이 어떤 사명과 예술을 행했다고 믿는걸까요? 졸라처럼?
그들 소설이 잘 쓴 글이었다면 저도 고민했겠죠? ;;;;

Falstaff 2021-05-16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졸라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을 천형, 하늘로부터 받은 업보라고 여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물론 <작품>에서는 클로드가 과도한 도라이로 나오지만 그것도 졸라식 자연주의에선 뭐... 제르베즈 아줌마와 랑티에 서방님 사이의 소생들, 클로드의 형제들이 다들 그렇잖아요. <인간짐승>의 주인공 둘째 아들 자크는 살인마, <제르미날>의 셋째 아들 에티엔은 탄광 파업, 막내딸 <나나>의 타이틀 롤은 고급 창부. <작품>의 클로드는 얘네들 다 감안하면 중간 정도거든요. 하여튼 험한 형제들이긴 하지만 말입죠.

Falstaff 2021-05-16 12:18   좋아요 0 | URL
당연히 절교라는 대가는 받아야 하는 거고요. 뭐 인생이지요.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5-16 17:40   좋아요 1 | URL
네. 알콜중독과 유전 등을 원칙으로 두고 썼다고요. 졸라가 인물들을 다루는 시선엔 연민 하나 없어서 잔인하단 느낌도 들지만 글솜씨엔 감탄하게 됩니다. 족보나 연대기가 잘 안맞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있잖아요. ㅜ ㅜ 그런데 그 안에 피해자가 있으니 마음이 조금은 복잡해지고요.

moonnight 2021-05-16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 소설이 잘 쓴 글이었다면..‘ 에서 웃습니다. 역시 예리하십니다^^;;;;

유부만두 2021-05-16 17:40   좋아요 0 | URL
지난번엔 아니 에르노랑 박완서도 소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참... 그렇더라고요.

바람돌이 2021-05-16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이유에서든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저렇게 까발리는건 진짜 말이 안되는데 말이죠.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작가가 타인의 삶을 존중하지 못했다는건 진짜 충격적이네요. 모네와 세잔은 얼마나 황당하고 배신감을 느꼈을까? 그런데 지금도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는건 좀 많이 슬픈 일이네요. 아 친구를 잘 사겨야 돼요.

유부만두 2021-05-16 23:22   좋아요 2 | URL
그것도 자기 편한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버리면서요. 글 안에 박제되는 것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을 다시 하는 요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