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My tiny, little friends
어릴 적에, 三은 이름난 곤충학살자였다. 특히 개미에 관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syo가 三을 처음 만난 것은 1995년의 어느 날이었다. 우린 같은 반이었다. 당시 그의 별명은 ‘노인’ 혹은 ‘영감’이었는데, 물론 그가 매사 구부정한 자세로 돌아다니긴 했으나, 그보다 일단 기본적으로 도무지 무시가 되지 않는 수준의 노안이었다. 오히려 오늘날 더 젊어 보일 지경인데, 그렇다고 지금도 딱히 동안 취급받는 것은 아니라는 지점이 놀랄 포인트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게 바로 그의 잔인함이다. 교실에서의 三은 어느 반에나 있는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의 전형이었다. 애들이 ‘할배’라고 불러도 짜증 어린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아 이것은 다름 아닌 나를 부르는 소리로구나, 하며 즉각 돌아보는 아이였다. 여자애들을 놀리거나 괴롭히기는커녕 학년이 바뀔 때까지 여자라는 존재와 말 한마디 섞는 꼴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것이 극도의 소심이 아니라 극단의 무심이라는 사실을 그때 눈치챘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인생이 요 모양 요 꼴과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그래 보였다. 그런 그가 대명4동 놀이터의 3대 악마라 불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반전에 나는 이미 너무 놀랐던 거라, 몇 년 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임을 알았을 때 이까짓 거, 하면서 코를 파고 있었다.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여 한 마리의 개미를 죽이는 죄와 한 명의 인간을 죽이는 죄의 무게가 같도록 세팅된 저울의 눈금을 읽어 천국과 지옥행을 결정하는 거라고 치자. 만약 그렇다면, 불지옥에서 영원히 구워지면서 三은, 자신의 왼쪽 옆자리에서 콧수염 단 독일(실은 오스트리아) 남자가 나란히 불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 옆자리에서는 조금 더 넓은 콧수염을 단 러시아(실은 조지아) 남자가……. 하여간 물, 불, 독, 돌, 심지어 침까지, 三은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명4동 놀이터의 개미들을 살육했고, 그 생태계의 개미가 멸종됨과 동시에 놀이터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대명1동 놀이터로 전장을 옮겼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으나, 실상은 그의 관심사가 드래곤 퀘스트와 어른용 비디오 쪽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사춘기가 온 것이다. 三춘기가 끝난 것이다. 대명동 개미들의 혹독한 겨울을 종식시킨 것은 독립운동도 핵폭탄도 아니었다. 몇 방울의 호르몬이었다.
syo는 달랐다. 전형적인 까불이였고, 날쌘돌이였으며, 귀엽게 생긴 편인데다가, 공부도 곧잘 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잘 살기까지 했다. 그 결과, 반장이었다. 그게 결정적이었다. 이 정도면 개미 같은 건 괴롭힐 필요가 없었다. 사람을 괴롭히면 되지. 누가 봐도 얘는 이 반의 주인공 자질을 고루 갖추었다. 그리고 반장이므로 곧 정의였다. 아이들은 모두 syo를 좋아했고,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척을 하지 않으면 이 반의 생태계에서 도태될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syo 역시 그런 아이들의 알아챔을 알아챘다. 학교 가는 길이 천국 가는 길이었다. 하굣길에 벌써 등교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 반짝 유행했던 놀이 중 하나가, 칠판 앞에서 스타트, 정렬된 책상들을 징검다리 밟듯이 밟아가며 교실 뒤쪽까지 빠르게 도착하는 경기(?)였다. 상급자들은 밟을 책상, 밟지 않을 책상을 정해놓기도 했다. syo도 그 놀이를 즐겼다. 어느 쉬는 시간, 다시 게임은 시작되었고 syo는 첫 번째 주자였다. 요이, 땅! 풀쩍 뛰어올라 첫 번째 책상을 쿵 밟은 syo, 다음 쿵, 그다음 쿵, 또 그다음 쿵, 그다음 찍, 그다음 쿵. 그리고 착지. 그런데 뭐, 찍? 찍이라고? 야, 찍 누구야, 나와. 어……, 나야, 찍.
그 찍이 다름 아닌 三이었다. 그러니까 그 찍은, 게으른 三이 쉬는 시간에도 교과서를 그대로 책상에 올려놓는 바람에 syo의 발에 깔려 찍 찢겨나가면서 발생한 사운드였던 것이다. 야, 너 뭐냐? 어……미안. 아, 진짜 다음부터 똑바로 해라. 어……그럴게. 이게 무슨 대화냐 하면,
s : 야 네가 네 책상 위에 다름 아닌 네 책을 네 맘대로 펴놓는 바람에 나님께서 남의 책상을 한껏 짓밟고 뛰어다닐 수가 없잖아.
三 : 나의 책상 위에 펼쳐진 나의 책이 감히 너의 실내화 바닥에 무단으로 종이 자국을 남겨버렸구나. 내가 안일하였어. 정말 너무나 미안하다.
뭐 이런 분위기였으니, syo는 곤충을 괴롭히며 살아온 역사도 그런 역사를 전개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아, 그 덕에 오늘날까지 비단결처럼 고운 성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인가?
작고 미약한 생명들과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니까, 모든 생명은 하나하나 의미가 있고 저마다 고귀하니까. 우주의 눈으로 보면 우린 모두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는데, 수십조 분의 1의 확률을 뚫고 이 행성에 함께 태어나 살아가는 소중한 나의 곤충 친구들을 죽이다니, 그건 너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잖아? 그렇잖아?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맡에 충전해둔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는데, 개미가 있었다. 핸드폰 위에 한 마리, 옆에도 한 마리. 눈을 비비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책장과 벽 사이의 틈새에서 작은 개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하며 자기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아,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공간을 너희가 사용하고 있었구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늘 너희와 함께였어. 나는 벅찬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경건하게 스위치를 누르고, 검색창을 열고 한 자 한 자 때려넣었다. ㅈ ㅏ ㅂ ㅅ ㅡ 라고. 개미에는 이게 직빵이라고. 아주 멸종을 시킨다는 평이다. 멸종이라니, 아, 너무 설렌다.
오늘 택배가 도착했다. 나는 웃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표정이었을 것.
지구는 인간의 것이야! 내 거란 말이다, 이 머리가슴배 그지깽깽이들아!
* 한 줄 요약 : 집에 개미 겁나 많아서 개미약 샀어.
--- 읽은 ---
111.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리뷰 대회가 있었을 때, syo는 리뷰를 빙자해서 SF 단편을 흉내내보았다. 퀄리티는 그따위지만 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동기들 회식도 째고 그걸 썼다. 시원하게 탈락. 탈락은 했지만 그런 짓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쓴 글이 김초엽 만큼은 못 된다 치더라도 김초엽의 절반보다는 훨씬 나아서, 반올림하면 1 김초엽 정도는 가뿐히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놓은 물건도 기대에 썩 부응했다.
그리고 여기 문목하가 있고, 나는 이걸 다 읽었는데, 차마 그때와 같은 짓은 할 수가 없겠다. 이건 안 되는 짓이다.
112. 이인
알베르 카뮈 지음 / 이기언 옮김 / 문학동네 / 2011
빛이 쏟아지는 한여름 운동장에 서 있었다. 정수리에서부터 땀이 주루룩 흘러내리는데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더운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낮게 일어섰다 몇 걸음 못 가 가라앉는 운동장에, 사람은 없고 바람만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기 때문에 좀 일렁거리는 흙더미가 자꾸만 시선을 잡아챘다. 땀이 흘러 땅에 떨어지자 흙이 진해졌다. 교문 쪽에서 엄마가 나를 불렀던 것 같다. 그 소리는 들리면서 들리지 않았다. 나는 돌멩이를 찾고 있었다. 돌멩이를 주워들고 학교 쪽으로 던지고 싶었다. 학교를 부수어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돌멩이가 없었고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기 전에 돌멩이를 찾으면 그걸로 학교를 부숴버려야지. 저 유리창을 다 깨트려버려야지. 그런데 돌멩이가 없었다. 엄마가 등 뒤까지 도착했다. 엄마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에 겹쳐졌고, 엄마의 손이 내 어깨에 올라왔고, 집에 가자는 엄마의 말이 내 침묵에 올라탔다. 응, 나는 몸을 돌리고 엄마와 함께 교문 쪽으로 돌아나갔다. 학교를 향한 미움은 돌아서는 순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학교가 있으나 없으나 그 순간 내겐 다르지 않았고, 학교에 돌을 던지거나 그렇게 하지 않거나 다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태양은 쨍쨍했고, 더는 학교에 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날이 기억났다. 그 태양 아래 돌멩이가 아니라 총이 떨어져 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누군가는 쏘아 맞추었을 것 같다. 그냥 그런 날이 있었고, 그날의 내가 기억이 나서, 해변의 총격 장면에서 오래 머물렀다. 모르겠다. 뫼르소를 이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걔가 미친놈 같지는 않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미친놈들이 많아서, 이해할 수 있는 미친놈이나 이해할 수 없는 안 미친놈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귀찮다. 이방인은 네 번째, 이 판본으로는 두 번째 읽는데, 어쩐지 이번에는 뭐 특별한 이야기를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이 책은 내게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일 것 같다.
113.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
범인이 밝혀지거나 반전이 드러나는 장면은 독자에게 뾰족한 충격을 주기 마련이라, 아무래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장면들이 될 텐데도, syo는 기이하게 그런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재독 삼독이 늘 즐겁다. 겁나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김영하가 이 주제를 아쉬울 것 없을 정도로 완전조리해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글쎄. 그래서 별로고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물어온다면, 그것 또한 글쎄. 3글쎄.
--- 읽는 ---
다소 곤란한 감정 / 김신식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일도 사랑도 일단 한잔 마시고 / 권용득
니체에게 길을 묻다 / 알란 페르시
알수록 쓸모 있는 요즘 과학 이야기 / 이민환
설민석의 삼국지 1 / 설민석
일 잘하는 사람은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 오가와 히토시
--- 갖춘 ---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 로즈마리 퍼트넘 통 외
현대 건축 : 비판적 역사 / 케네스 프램튼
건축설계 도면보는 법 / 차상모 외
지그문트 프로이트 컴플렉스 / 파멜라 투르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