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화가 몹시 나 있어
1
가끔 야한 꿈을 꾸는데, 좋다. 자는 것도 좋은데 꿈까지 그래주면 그저 땡큐지. 스노클링하다가 전복 줍는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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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어쩐지 꿈에서는 역사가 완결되는 일이 잘 없다. 아, 지금 내가 63빌딩을 짓고 있구나, 보아하니 여기는 45층이구나, 50층이구나, 55층이로구나, 신난다. 가자, 60츠……아슈발꿈.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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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을 꾸고 나면 대체 왜 이런 꿈을 꾸었나 곰곰 생각해보게 되는 듯. 그러나 나는 다르다. 나는 이유 따윈 생각하지 않지. 생각해봤자 득될 건 하나도 없고, 까딱하면 스스로의 밑바닥을 목도하고 비참해질 위험도 있다. 그런 건 필요없다. 나는 그저 왜 하필 그 장면에서 눈을 떴는가를 곰곰 생각해볼 뿐이다…….
4
그러니까, 분명히 내가 왼손으로 쓸어내리던 것이 내 허리에 감겨 있던 그 사람의 오른쪽 허벅지였거든, 그래서 내가…… --- 자체 검열 --- ……되고 말았으니 그쪽 입장에서는 웃음이 터질밖에. 근데 또 그 웃음소리가 섹시한 거라, 돌연 나는…… --- syo는 방송심의규정을 준수합니다 --- ……잡았지. 그러자 손 틈새로…… --- 메롱 --- ……는 찰나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그랬으니 모닝커피를 마시는 내 표정이 좋았겠냐고.
5
꿈에서 “이거 정말 꿈 같아” 라는 대사를 치고 그 즉시 깨어본 적이 있다.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나는 현실에서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좀 꿈 같다 싶으면 이런 말을 할 생각이다. “와, 이거 정말 현실 같다.”
--- 읽은 ---
114.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케이코리아 / 2015
스토너의 삶이 조용하고 담담한 국면에서는 소설의 문장도 조용하고 담담하다. 그가 격정의 터널을 통과할 때, 문장도 뜨겁고 거세어진다. 그런 일체감이 아름답다. 이야기가 아름답거나 문장이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뭉쳐져 한 권의 책으로 아름다워지는 데는 또 다른 뭔가가 필요하다. 스토너가 스토너의 삶을 사는 동안, 작가 역시 그 삶을 함께 살았겠다- 그런 추측 속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같은 것.
115. 일도 사랑도 일단 한잔 마시고
권용득 지음 / 드렁큰에디터 / 2020
요즘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술을 참 좋아한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술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남자놈들이야 술 잘 못 먹으면 등신 취급 받는 10~20대를 지나쳐 왔으므로 자기최면으로라도 기어이 술 좋아하는 인간이 되었을 것이고, 여자들은 여자가 술 안 즐길 거라는 편견과 싸우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들처럼 마셔댄다. 막 남자보다 술- 을 외친다(그러나 남자들은 절대 여자보다 술-을 외치지 않는다). 나는 지금껏 “저는 술을 싫어해요. 술도 싫고 술자리 분위기도 싫어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딱 1명 만나봤다. 그게 나다. syo.
뭔가를 저렇게 즐긴다는 것, 기쁜 마음으로 매일 꾸준히 해나간다는 일이 있다는 건 그게 술이건 뭐건 대단한 일이고, syo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랑 >>>>> 일 > 술 아닙니까…….
제목을 대충 읽으면 오해한다. 일이나 사랑보다 일단 술이라는 것은, 술을 위해 일과 사랑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사랑을 술로 버무린다는 뜻에 가까웠다. 특히 사랑을. 사랑하는 김혼비 선생님의 대작 <아무튼, 술>에서도 그렇고, 김민철 선생님의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도 그랬지만, 진짜 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짜 술을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술과 술로 점철된 사랑을 술술 이루어나간다. 그 지점은 아무래도 내가 도달할 수 없겠다. 부럽기도 하고 안 부럽기도 하고 하여튼 희한한 감정이다.
술 싫어하는 사람 구해요…….
116. 니체에게 길을 묻다
알란 페르시 지음 / 이용철 옮김 / 21세기북스 / 2013
니체 책이 제일 많다. 마르크스도 프로이트도 꽤 있지만, 아무래도 니체는 이길 수가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르크스나 프로이트로는 힐링스러운 책을 만들기가 영 어렵가 때문이다. 힐링은커녕 읽을수록 이래저래 뭔가 참담해지는 기분만 든다. 아, 이놈의 세계는 왜 이렇게 신산하며, 나의 내면은 또 왜 이렇게 산만한가. 반면 니체는 그런 방식으로 소모하기 썩 괜찮다. 니체의 말, 니체와 함께 어디 놀러 가기, 니체한테 듣는 인생 매뉴얼, 이런 걸 제작하기 수월하도록, 니체 당신이 그렇게 철학을 했다. 그래서 니체의 아포리즘을 가지고 만든 책의 옥석을 가리기는 너무 어렵다…….
117. 일 잘하는 사람은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오가와 히토시 지음 / 조은아 옮김 / 팬덤북스 / 2020
클라우드라는 게 있다. 이러이러하다. 그런데 철학자 들뢰즈가 제창한 용어 가운데 ‘리좀’이라는 게 있다. 그게 참 클라우드랑 닮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클라우드를 이용해야 하고, 사고방식도 클라우드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상위 1%가 될 수 있다!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각 분야에 해당하는 낱개정보는 간단한 검색으로도 얻을 수 있는 수준이라서 버무리기라도 잘해야 하는데, 이건 뭐 조합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그냥 ‘배치’, ‘옆에 둠’ 수준이다. 칸트와 3D프린터의 배치는 그냥 어거지고 ‘3D프린터적 사고’=‘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실제로 만들면 얼마나 기쁠지 상상해보는 것’이라는 도식은 혀를 차게 만드는데, 그 결과 태어난 칸트적 사고 ->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실제로 만들면~’ 라는 괴물은 어떻게든 책을 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 이외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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