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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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를 먹고 책상 앞에 다시 앉았지만 여전히 첫 문장은 나오지 않았다. 첫 문장만 있다면 모든 게 있을 텐데, 첫 문장이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광막한 백지가 있었다. 그리고 백지를 마주 보며 아무 생각도 없는 syo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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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금희 누나가 쓴 글을 읽었다. 무려 ‘현대식품문학’이라는 혁신적인 지면(?)에 실린「여름의 앤초비」라는 엽편소설이다. “여름의 풀벌레 소리를 듣고 있던 우리 둘의 대화는 이내 끊겼지만 그 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라는 단정한 마지막 문장 아래로 간략한 작가 소개, 그 아래로 은빛 멸치 사진과 ‘상품 보러가기’ 링크, 냉 멸치국수 레시피 링크가 따라붙고, 그 아래로 울릉도 건오징어(375g), 딱새우(200g), 볶음땅콩(300g) 등의 관련 상품 30건이 노출되는 식이었는데, 여러모로 대단했다. 금희 누나의 글로 멸치를 팔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러니까, 멸치를 살 생각이 없거나 살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장바구니에 “정치망 은빛 멸치”를 투척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파워를 금희 누나의 글 속에서 발견해내다니, 기획자도 누나도 모두 대단했다.
문학으로 앤초비 구매를 독려하는 목적과 멸치로 문학의 구매를 독려하는 목적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이 짧고, 짧아서 찐한 글의 첫 문장을, 금희 누나는 이렇게 적었다.
“서로의 마음을 긁은 뒤에 떠난 휴가는 당연히 즐겁지 않았다.”
완벽하진 않을지 몰라도 완벽으로 다가가는 첫 문장이다. 이어서 “우리가 도로를 달리고 달려 남해까지 흘러든 건 그렇게 멀리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이런 상태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영영 되돌릴 수 없는 나쁜 상태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라는 조금 긴 문장이 이어지는데, 이 두 번째 문장은 내용으로 첫 문장을 보충하는 동시에 그 길이로 첫 문장의 간결함을 돋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첫 문장을 완벽 방향으로 조금 더 밀어준다. 다음 문장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게 되는 것이 가장 나쁜 상태라고 남편은 말하곤 했다.” 인데, 긴 문장 다음에 다시 간결한 문장을 내려놓아서 좋았다. 짧길짧. 나라면 이다음에 다시 간결한 문장을 선택할 것이다. 짧길짧길보다는 짧길짧짧이 아름답지! 누나가 고른 다음 문장은 “나는 그보다 더 나쁜 건 지금껏 했던 대화들은 어디로 흘려보냈는지 잊은 채 ‘도대체 뭐가 문제야?’ 하고 되묻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였다. 그러니까 대충, 짧길짧중. 아, 이런 수를. 언제나 그렇듯 누나는 이긴다…….
< 여름의 앤초비 / 김금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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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언제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은 시작의 끝인 동시에 끝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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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의 아름다움은 읽기만큼 쓰기에 욕심을 내는 사람에게 더 선명하다. 짧은 글일수록 문장은 밀도를 요구한다. 문장이라는 물건이 지니는 매혹적인 특성은, 밀密한 것, 그러니까 빽빽한 것이 곧 뻑뻑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부터 온다. ‘고밀도의 가벼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어색하지 않은 희귀한 문장들을 만나면 아낌없이 전율해주는 것이 참된 독자의 태도라고 믿는 편이다. 엽편은 짧아서, 짧기 때문에, 짧음으로써 그 전율적인 문장을 내 손끝에서 구현해보겠다고 달려드는 욕심쟁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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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 누나는 심지어 멸치로도 한다. syo는 징징거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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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정세랑 선생님의 글도 있었고, 김연수 선생님의 「아직은 봄이니까, 미나리는 얼마든지」도 있었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오래 전, 그러니까 지난 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 “미나리는 얼마든지, 아직은 봄이니까, 그러니까.”
마지막 문장을 보고,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저런 건 syo가 요즘도 종종 마무리 투수로 써먹는 문장인데……. 과연 김연수에서 시작해 김연수를 거쳐 마침내 김연수에 도착하던 syo의 독서수련시절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 읽은 ---
197. 하루 5분의 초록
한수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
그림은 귀엽고 말은 다정하다. 잘 살펴보면 우리 주변의 식물들이 종종 그렇다. 그 ‘잘 살펴봄’에는 하루 5분의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그 5분의 시간을 설명하고 마련하는 데는 물리학이 아니라 심리학이 필요하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늘 있고, 단지 그 시간이 심리적으로 더 많이 있거나 더 적게 있거나 한다. 살펴보는 기술은 정말 소중한 동시에 유용한 기술이라서 배울 기회를 만나면 반드시 배워두고 싶다. 5분은 오히려 싸게 치는 것.
198. 소설 제주
전석순 외 / 아르띠잔 / 2018
여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읽으면서는 하나하나 다 짚고 이야기해보자 했었는데, 네 번째 작품인 이은선 선생님의 「귤목」에서 어어어 하기 시작해서, 다섯 번째 작품인 윤이형 선생님의 「가두리」를 읽는 순간에 그냥 다 포기하고 읽기나 열심히 했다. 윤이형 선생님을 진짜 어떡하면 좋을까. syo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도 아니면서 syo에게 가장 많은 밑줄을 선사하는 이 신비로운 선생님을.
그런데, 김경희 선생님의 등장인물들은 말투가 왜 그럴까?
여자는 시선을 조금 먼 곳에 던졌다. 멀리 무언가가 열심히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파도 소리 때문에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아이의 목소리를 골라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벨롱장은 그쯤일지도 몰랐다. 남자와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만큼이나 걸어온 건가 싶었지만 여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거기쯤에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가 있어 꽃잎이 그려진 책갈피나 어디에 써먹을지 알 수 없는 구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여자는 아이가 물건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일 것만 같았다. 어쩐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게…… 아이에겐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대신 그런 물건을 찾아 종종거리며 벨롱장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딱히 무엇을 사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사고 나면 꼭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책갈피나 구슬 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아할지도 몰랐다. 끝내 그것들 없이 살아온 시간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벨롱장은 그런 곳이니까.
_ 전석순, 「벨롱」
199.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
‘사건’이라는 용어를 철학적으로, 그러니까 그 ‘사건’을 통과한 사람을 다시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단절의 자리에 꽂아두는 깃발처럼 생각한다면, ‘기록하기로 한다는 것’은 당연히 사건이다. 한번 기록에 뜻을 품은 사람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인해 짧거나 긴 시간 동안 기록을 정지할 수는 있어도 결코 종료할 수는 없게 된다. 그런 이유로 세상에는 기록하는 사람과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기록하지 않아도 사는 데 특별한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오늘날은 딱히 내가 하지 않아도 세상이 나에 대해 기록한다. 오히려 기록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판. 이런 세상이다 보니 기록의 필요성은 더 옅어지는 것 같다. 그러면 기록하는 사람은 왜 기록하는가?
사실 그냥 하는 것 같다. 시작할 때는 의도가 있었지만 습관이 되는 순간 의도는 희미해진다. 그저 기록하는 내가 있을 뿐. 기록을 통해 뭔가 얻어져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은 내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기록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었다는 기록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기록하는 사람이 된다면, 조만간 그 사람에게도 이 책은 기록으로만 남을 것이다. 기록하는 사람에겐 동력이 불필요하니까. 기록하지 않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도 기록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는다면 이 책은 기록으로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거의 대부분의 독자에게 하나의 ‘과도기적’ 존재로만 작동할 것이다. 올라간 후에는 늘 치워지는 사다리처럼.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대접을 받는 책들이야말로 진짜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기록이라는 단어는 ‘기록할 기(記)’와 ‘기록할 록(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적고 또 적는 셈이죠. 사전적 뜻은 “주로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 현재에 서서 ‘후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을 미래로 부치고 싶어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는 아는 거예요, 지금이 단 한번뿐이라는 걸. 같은 순간을 절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 기억하고 싶다면, 이 순간을 적어서 미래로 부쳐두어야 한다는 걸.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억할지 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순 없으니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해지고, 덜 중요한 것은 덜 중요해지겠죠.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기만의 기록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겪게 됩니다. 하루가 촘촘해질 테니까요. 기록해둔 ‘지금’은 분명 미래에서 우리를 기다려줄 테니까요.
_ 김신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200. 약한 연결
아즈마 히로키 지음 / 안천 옮김 / 북노마드 / 2016
아즈마 히로키는 좀 재미있는 것 같다. 얇은 책 두 권을 읽은 것에 불과하지만…….
이 책은 자기계발서라고 봐도 된다. 역시 독자의 마음이란 사람의 마음의 부분집합이어서, 괜찮게 생각하는 사람의 글은 장르에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모양이다. 철학을 가지고 생활로 내려와 어슷비슷한 말을 해도 사이토 다카시는 싫어서 까는 거고, 아즈마 히로키는 좋아서 빠는 것.
인터넷은 기호로 구성된 세계다. 글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음성과 영상도 마찬가지로, 결국 인터넷은 인간이 만든 기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터넷에는 누군가가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만 있다. '표상 불가능한 것'은 거기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은 무의미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말로 할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저런 불만이 있지만 우리는 인터넷과 언어에 의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검색어로 검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분투할 때 그 말은 원래 의도와 조금 다른 방법으로 전달된다. 철학적 표현을 쓰자면 '배달 오류'가 일어난다. 우리는 이 배달 오류를 통해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더라도,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알게 된다. 한마디로 기호를 다루더라도 기호가 되지 않는 무엇이 세계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외경을 잊어서는 안 된다.
_ 아즈마 히로키, 『약한 연결』
이런 문장은, 독자의 콧잔등에 어떤 색의 안경이 올려져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밉게 보면, 아, 이놈의 자기계발서가 다 그렇지, 또 뻔하고 모호한 이야기를 뭐 있는 척 해놨네- 하고 끝날 수도 있고, 곱게 보면 좋은 말씀이지, 훌륭한 말씀이야, 자기계발서답지 않게 수준이 높은데- 하며 지나가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훌륭함을 논할 때는, 이게 라면인가 끓여놓은 뿌셔뿌셔인가도 중요하지만, 먹는 사람이 누구이며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도 잘 살펴야 한다는 지극히 뻔하고 당연한 결론.
--- 읽는 ---
타타르인의 사막 / 디노 부차티
포옹 / 정호승
내가 누구인지 뉴턴에게 물었다 / 김범준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 고미숙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이효원
약의 과학 / 크리스티네 기터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이유경
이토록 매혹적인 고전이라면 / 홍진호
한 컷의 인문학 / 권기복
라캉의 주체 / 브루스 핑크
무사시노 외 / 구니키다 돗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