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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많이 지고 많이 내려놓고 그렇게 패배하는 법과 포기하는 법을 배우면서 여기에 연착륙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직 추락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빼앗겨도 참을 만한 것들만 빼앗겨 왔기에 버틸 수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무엇을 빼앗겨도 덤덤하게 다음 하루를 자기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착각하는 중일지도. 익숙해진다는 것은 고마운 만큼 무서운 일이기도 해서, 아픔이 더는 아픔이 아니게 된 무덤덤한 몸을 자랑하게 되는 일이기도 해서, 어쩌면 그것은 나를 더 자세히 알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 내가 자세히 모르는 나를 내게서 삭제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부정否定하여 끝내 부정不定하는 방식. 나는 이것이 아니고, 그것도 아니며, 저것조차 아니면서…… 사람의 정의는 n개의 아니오를 더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한지, 사람의 삶은 결국 그 n을 무한대로 보내면서 자기를 무한소로 수렴시키는 것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품는다는 것이 사실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나를 증명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갖고 싶은 것은 없지만 가지고 있고 싶은 것은 있고, 잃을 것은 없지만 잃기 싫은 것은 있는, 무감한 듯 감각하고 무욕한 듯 욕망하는 삶. 나를 속이는 나에게 속는 척 속아 넘어가 주며 속이는 나를 속이는 나와, 속는 내가 실은 속아주는 것임을 모르는 척하며 이중으로 나를 속이는 나의 기기묘묘한 왈츠. 나를 속이고 내가 속일 세상이 내 안에 다 있어서 노래는 안으로 안으로만 흐르고, 춤사위는 무한대로 가는 n의 스텝에 따라 작고 작게만 휘휘 돈다.
그렇게 해서 아프게 하면, 고통이 느껴지면 기이한 안도와 충족감이 찾아왔다. 모든 상황이 불행 쪽으로 아귀가 맞추어지고 그것이 온당하며 지금과 다른 삶이란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낙담 쪽으로 나 자신을 미는 힘, 그건 무엇이었을까. 그런 것도 생장의 힘이었을까.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게 그저 여여한 성장을 이루는.
_ 김금희,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이 사건에서 자네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이 뭔 줄 아나? 복잡한 사건이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야. 자네는 이 사건을 채프먼이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된 거대한 음모로 생각하고 있어. 유대인의 똑똑한 머리를 써서 어제 일어난 일을 생각해야 마땅한데, 5년 전에 일어난 일을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자네가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제는 채프먼이 피살된 날이고 오늘은 거기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 날이야.」
_ 폴 오스터, 『스퀴즈 플레이』
그는 그 후로 결코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 친한 사람과도 말을 나누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네. 말도 없이 노래도 부르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세월을 지내다 보면, 그 어느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잊히고 마는가 보네. 겐 씨가 배를 젓는 것은 옛날과 다를 바 없었지만, 포구 사람들은 겐 씨의 배에 타도 겐 씨가 세상에 있다는 것을 잊게 되었지. 이렇게 말하는 나도 때때로 겐 씨가 그 둥근 눈을 반쯤 감고 노를 저어 돌아오는 것을 볼 때, 겐 씨가 아직 살아 있구나 생각할 때도 있다네. 그가 누구냐고 물은 사람은 자네가 처음일세.
그렇군. 불러서 술을 마시게 하면 어느덧 노래도 하게 되지. 그렇지만 그 노래의 뜻은 알기 어려웠어. 아니, 그는 중얼거리지도 않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도 않고 단지 때때로 큰 한숨만 내쉴 뿐이니 불쌍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겠나…….
_ 구니키다 돗포, 「겐 노인」
--- 읽은 ---
193.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이주영 지음 / 나비클럽 / 2020
민폐쟁이 프랑스 책벌레 에두아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많은 우스개 사건이 있고, 그 우스개 사건 속에서 욕과 분노를 삭이기 위해 분투하는 이주영 선생님이 있고, 그 분투 속에서 얻게 된 깨달음들이 있다. 그 깨달음들의 스펙트럼이 폭넓다. 사귈 때는 웃기고 편할지 몰라도 같이 살면 엄청 피곤하고 짜증나는 인간형이란? 잘못을 지적하는 적절한 방식이란? 로마까지 걸어서 가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란? 열등감에 벗어나는 방법이란? 허영심의 효용이란? 적게 알수록 깝치고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침묵하는 인간이란? 배움이란? 모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란? 자문화 중심주의/서구 우월주의란?
책벌레가 물론 세상 벌레 중에 가장 멋진 벌레고, 벌레 소리를 들어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벌레긴 한데, 그래서 책벌레라면 응당 그럴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어떤 성향이나 단점 같은 것들이 용인될 가능성도 더 크긴 한데, 그렇다고 그게 좋은 건 아니다.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 에두아르 같은 사람이 책벌레라면 syo는 아직 책벌레가 아니라는 것과, 책벌레가 저런 사람이라면 나는 안 할 거라는 것. 멋짐과 구림이 버무려지면 멋진 구림과 구린 멋짐이 되는 건데, 둘다 썩 내키지 않는다.
여기 주목받을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에두아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좋지 않은 머리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사용하려 드는 고집쟁이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덜렁이 모지리이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뛰어난 것이라고는 '끊임없이 읽을 수 있는 능력'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돈이나 명예로 얻은 성공은 언제 깨질지 모를 아슬아슬함이 있다. 우리는 그래서 불안한지도 모른다. 에두아르는 그저 앉아서 주구장창 읽으며 뭔가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며 감탄하고 동감하며 울고 웃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풍요롭게 만든다.
스스로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삶.
이보다 더 성공적인 삶이 있을까? 절대 깨지지 않는 내면의 단단한 풍요로움으로 무장한 에두아르는 진정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_ 이주영,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194. 맨발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4
모든 풍경이 정경이다. 광경은 채 몇 발 못 떼고 사람의 방향으로 돌아가고, 이 돌아감이 중심감각으로 시집 전체에 묻어있어, 해질녘과 길어지는 산그림자와 저물어가는 것들의 어우러짐이 성마르지 않고 담담하다. 당하는 사람이 없어 평온하다. 공간을 선명하게 그리자 투명해지는 시간. 마모되는 사람조차 조용히 아름다운.
어두워지는 순간에는 사람도 있고 돌도 있고 풀도 있고 흙덩이도 있고 꽃도 있어서 다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바람이 불고 불어와서 문에 문구멍을 내는 것보다 더 오래여서 기록할 수 없네
어두워지는 것은 하늘에 누군가 있어 버무린다는 느낌,
오래오래 전의 시간과 방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버무린다는 느낌,
시람과 돌과 풀과 흙덩이와 꽃을 한사발에 넣어 부드럽게 때로 억세게 버무린다는 느낌,
어두워지는 것은 그래서 까무룩하게 잊었던 게 살아나고 구중중하던 게 빛깔을 잊어버리는 아주 황홀한 것,
오늘은 어머니가 서당골로 산미나리를 얻으러 간 사이 어두워지려 하는데
어두워지려는 때에는 개도 있고, 멧새도 있고, 아카시아 흰 꽃도 있고, 호미도 있고, 마당에 서 있는 나도 있고…… 그 모든 게 있어서 나는 기록할 수 없네
_ 문태준, 「어두워지는 순간」부분
195. 1417년, 근대의 탄생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 이혜원 옮김 / 까치 / 2013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에 문제의 변화가 일어났을 때, 결정적인 순간은 한 외딴 장소의 벽 뒤에 처박혀 가만히 숨죽인 채 거의 눈에 띄지도 않게 지나갔다. 어떤 영웅적인 행위도, 이 위대한 변화의 현장을 후세에 증언해줄 영민한 관찰자도 없었다. 천지개벽할 변화의 순간이면 으레 나타나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상냥하지만 약삭빠르고 기민해 보이는 인상의 한 30대 후반의 덩치가 작은 사내가 한 도서관의 서가를 둘러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매우 오래된 필사본 하나를 발견하고 꺼내들었다. 책을 살펴보고 그는 매우 흥분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책을 필사하도록 지시했다.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했다.
_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흥미진진한 전개로 너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의지를 잔뜩 드러낸 도입부다. 이 책의 정체는 기원전 1세기경 등장한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개론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사실 고갱이는 철학 장르의 영역인 것. 그럼에도 저런 도입부라니, 사뭇 도전적이지 않습니까?
성공한 도전은 도전이 아니라 성공의 예견처럼 보이듯, 자신의 역량을 처음부터 알았던 그린블랫 자신에게 이건 하나도 도전적이지 않았겠다. 교회의 타락, 수도원의 일상,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 기원전후 1세기 로마의 문화 수준 및 정치 상황, 필사가들의 고충, 콘스탄츠 공의회의 막전막후 등, 흥미로운 문화적 구경거리들이 책 사냥꾼 포죠의 이동 경로에 착착 감기면서 맛깔나게 서술된다. ‘OO의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단 책들이 이런 재밋거리들을 나열하곤 하는데, 이 책 속 포죠와 같은 인물이 없으면 이야기가 하나의 스토리 라인으로 꿰어진다는 느낌이 약하고 사전적으로 나열된 지식처럼 보이면서 정이 잘 안 가게 된다. 이 책은 이겼다.
196. 정의 중독
나카노 노부코 지음 / 김현정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1
스스로 정의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몰고 올 수 있는 부정의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듯, 스스로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악’을 토벌하는 데서 오는 도파민 쾌락이 이번 세기, 저번 세기의 일이 아니라서, 뇌의 기능과 호르몬의 기전을 토대로 이런 문제를 분석하려는 것은 유효한 시도인 듯.
후루룩 읽기는 좋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건너온 책들이 자주 그러듯 가볍고(미국에서 온 애들은 가벼운 주제에서도 뭔가 그래프며 실험이며 이런 것들을 잔뜩 물고 있다), 조심스러운 척하지만 실은 대놓고 개인 가치관을 투척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며(그렇지만 한국에 십수 권이 번역되어 들어오는 ‘유명’ 저자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눈에 띄지도 않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처방전이 어쩐지 신통치 않다는 느낌. 절대 관심 없는 책도 좀 읽어라, 평소에 가지 않던 길로 좀 가봐라, 그리고 뇌 건강에 좋은 오메가3지방산을 먹어라…….
그렇지만 방금 오메가3 한 알 삼켰다. 이제부터 필사적으로 트림을 막아야 한다.
정의 중독 상태에 빠지면 나와 다른 것을 모두 악惡으로 간주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이면 '몰상식한 인간'이라 규정짓고 어떻게 공격할지, 상대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주기 위해 어떤 말을 할지 고심하게 된다.
누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 양측 모두 자신이 정의라고 확신해 공격하기 시작하면 해결점을 찾기가 매우 힘들다.
심지어 참여자들이 그 상황 자체를 하나의 이벤트로 여겨 적극적으로 즐기는 듯 보일 때도 있다. '어쩌면 처음부터 해결할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가만히 지켜보면, 얼마나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상대를 깎아내리는지 그 기술을 겨루는 시함을 보는 것만 같다.
이는 '매우 심각한' 정의 중독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새로운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정의에 취해 상대를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는 데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_ 나카노 노부코, 『정의 중독』
--- 읽는 ---
플라톤 전집 1 / 플라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집중과 영혼 / 김영민
데리다 입문 / 김보현
소설 제주 / 전석순 외
잘 안다고 믿는 것을 다르게 보는 법, 수학 / 미카엘 로네
안나 카레니나 2 / 레프 톨스토이
당신이 옳다 / 정혜신
젠더 모자이크 / 다프나 조엘, 루바 비칸스키
세계를 향한 의지 / 스티븐 그린블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