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잠
그늘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 잎을 스치는 바람에 묻어날 것만 같은 초록. 세상의 부피가 커지는, 여름이다. 그림자의 윤곽이 바짝 마른다. 그늘을 벗어나면 그림자로 그림을 그리며 척척 걸어가는 저 더운 사람들.
여름에는 천천히 걸어야지 발걸음을 세다가도 문득 빛살이, 구름이, 온갖 지나치게 선명한 것들이 눈길을 잡아채면 아, 잊었다, 처음부터 다시 하나, 둘, 셋…….
이 계절의 땅 위에는 엇갈리고 다시 만나 이어지는 길들이 수없이 놓여 있고, 산책하는 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무한해서, 모든 것이 흐름이고 또 흐름이다. 가장 추운 곳에서 와서 가장 추운 곳으로 지구를 굴리며 돌아가는, 복숭아 향기가 잔뜩 묻은, 밤의 어깨에는 낮이 깨문 이빨 자국, 늦도록 잠 못 드는 마음들이 부채를 부치면, 일렁거리는 이름들이 밝다. 하나, 둘, 셋…… 처음부터 다시,
--- 읽은 ---
201. 포옹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
- 일독(그언젠가)
- 재독(했을걸?)
- 삼독(210608)
나는 나를 벽에 걸어놓아야만 벽이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내가 벽에 걸려 있어야만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스러져 보이지 않는 별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캄캄한 내 눈물의 빈방에
한 줄기 밝은 햇살이 비치는 것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 어둠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빈 벽이 되고 나서 비로소 나는 벽이 되었다
_ 정호승, 「빈 벽」부분
서로를 안아주는 동안, 우리 안에 있던 그 많은 소란스러운 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오래도록 포옹이란 서로에게 뭔가를 주고 또 채워 넣는 동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게 실은 서로에게서 뭔가를 가져가고 그럼으로써 비워주는 일이라는 걸. 포옹하는 동안 포옹 이외의 모든 것이 녹아나고 마침내 오직 포옹하는 너와 나, 그리고 너와 내가 하는 포옹만이 남았을 때, 이 포옹이 마무리되면 우리가 두 개의 빈 벽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그 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벽도 인간도 인간이라는 벽도 모두 다 같이 아름다워진다. 우리는 이기거나 지면서,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들을 내 안에 어떻게든 우겨넣기 위해 저 소란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겠지. 그러다 눈물도 차마 캄캄한 어느 밤이 되면, 내일은 벽에 걸어놓은 나를 잘 챙겨입고 다시 안으러 가야지, 안아주러 가야지, 마음을 먹기도 할 테고. 포옹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과 포옹이 있는 곳에는 그 밖에 다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이제 다 알아서. 나를 걸어놓은 벽은 다시 빈 벽으로, 다시 빈 벽으로,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다시 벽으로.
202.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
- 일독(1708xx)
- 재독(210608)
‘독서 공감’이라는 말을 대충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 사이의 공감이라든지, 혹은 읽지 않은 이도 공감할 만한 독서 기록이라든지, 뭐 그런 걸 뜻하는 게 아닌가 했던 것. 다시 읽어보니, 이유경 선생님이 하고 있는 공감은 무려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공감이고, 읽는다는 그 사람은 소설 바깥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소설 안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어쩌면 ‘독서 공감’보다 ‘공감 독서’에 가까운 읽기.
그러나 책으로 ‘공감’하고 책으로 ‘사람’을 읽는 일이 실로 가능하다면, 그래서 그 엄청난 역량을 우리가 ‘독서 공감’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경지는 ‘공감 독서’를 거쳐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고, 그와 연관된 독자 자신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스스로에게 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일일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나의 행동을 반성/예측하는 넓은 의미의 ‘공감 독서’. 그러니까 타인에 공감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이 반드시 책을 거쳐야만 이루어질 일은 아니겠지만, 기왕 책 속에 난 길을 통해 공감의 영토에 도착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먼저 ‘공감 독서’를 통과하고서야 마침내 ‘독서 공감’에 이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재독으로 얻은 교훈이라 하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신비한 힘이 나를 위해 움직인다고 생각했던 때가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순간들이, 바로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이토록 가치 있는 사람을 내게 주기 위해서 그간 나에게 방황과 기다림이 주어졌던 거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이 책의 여자에게도 믿어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베를린 장벽은 당신이 프란츠를 만나기 위해 무너진 것이 맞다고. 당신은 그 운명의 힘을 제대로 느낀 거라고. 그리고 내가 내 인생의 그 시점에 그를 만났던 것도 '나를 위해' 일어난 일이었다고. 그게 무엇이든 또 어떤 힘이든, 그것이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맞다고.
그러나 그것은 언제고 끝난다고, 지나가버린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모두가 어쨌든 결국은 과거형으로 끝을 맺게 된다고. 순간은 영원할 수 없다고. 영원할 수 없고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순간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거라고, 내내 기억할 거라고.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칠거라고. 그렇지만 잊혀질 거라고.
_ 이유경,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203. 타타르인의 사막
디노 부차티 지음 / 한리나 옮김 / 2021
국경 북쪽에 펼쳐져 있다는 타타르인의 사막, 쳐들어오지 않는 타타르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요새, 없는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보루 위에 한 평생을 쏟아붇는 군인들, 존재의 의미를 확언받기 위해 누구보다 타타르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는 그 군인들의 역설적 열망. 이 모든 것들이 안개 낀 타타르인의 사막처럼 모호하고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
다고 읽었다면 당신의 삶은 괜찮습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아프다. 전투가 일어나지 않는 국경을 방어하며 찬란하고 아름다운 도시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스스로를 부여잡기 위해 의미 없는 요새에 더 열심히 집착하고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건 10년이 넘는 백수 생활 동안 syo가 늘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짓과 완전히 똑같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을 알레고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좋겠다. syo에게 이 책은 비유도 상징도 아닌, 하다 못해 농담 한 마디 없는 거대하고 막막한 사막 같았다. 내 발목이 반쯤 파묻혀 있는 바로 지금 여기의 사막.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의 나날들은 지나갈 것이다. 그제야 어떤 깨달음이 일어, 그는 못 미더운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고, 이어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발소리를 느끼게 되리라. 자기보다 일찍 몽상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 먼저 도착하기 위해 그를 따라잡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는 삶을 맹렬하게 재는 시간의 고동소리 또한 듣게 될 것이다. 이제 창가에는 웃는 얼굴 대신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얼굴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만일 그가 길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지평선을 가리키겠지만 어떤 선량함이나 기쁨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그는 친구들도 불 수 없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지쳐서 뒤에 남는다. 또 누군가는 일찌감치 앞질러 가는데, 그는 고작 지평선에 있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저 강을 지나 10여 킬로미터쯤 더 가면 도착할 거라고. 그러나 길은 결코 끝나지 않고, 하루하루의 날들은 점점 짧아진다. 여행의 동반자들은 더욱 드물어지고, 창가에는 고개를 내젓는 창백하고 냉담한 얼굴들만이 보인다.
드로고가 온전히 혼자 남을 때까지, 어두운 납빛에 물결도 없는 광활한 바다의 가냘픈 흔적이 지평선에 나타날 때까지 그럴 것이다. 어느덧 그는 지칠 테고, 거리에 있는 집들의 거의 모든 창문은 닫혀 있을 것이며, 간혹 드물게 보이는 사람들은 슬픔에 잠긴 몸짓으로 그에게 대답할 것이다. 좋은 것은 뒤에, 아주 뒤에 있는데, 그가 모른 채 그 앞을 지나쳐버렸다고. 오, 되돌아가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고, 뒤에서는 그를 쫓아오는 무리의 웅성거림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하지만 텅 빈 하얀 길 위에서, 그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_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204. 한 컷의 인문학
권기복 지음 / 웨일북 / 2020
에바 일루즈, 엘리자베트 벡-게론샤임, 한병철, 앤서니 기든스, 벨 훅스, 모리치오 비롤리, 찰스 테일러, 퀜틴 스키너, 필립 페팃……. ‘한 컷’이라는 수식어를 단 표제는 초보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것 치고는 인용되는 이들의 구성이 놀랍도록 새롭다. 플라톤이나 마르크스 같은 전통의 강자들도 등장하지만, 허어, 필립 페팃이라는 양반은 그 존재 자체를 처음 알았다. 정말 묘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사랑의 아픔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이고 성장한다는 삶의 보편저 서사가 있었다면, 이제 사랑의 아픔은 필사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사랑은 이제 어쩔 수 없이 나의 자존감을 걸고 뛰어들어야 하는 영역이, 실연은 삶을 뒤흔드는 재앙이 되었다.
실패와 아픔은 자아를 좀먹는다. 다시 일어서기 힘든 세상이니까.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는 만큼 진지한 사랑을 하려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타인을 사랑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느니 그 시간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더욱 합당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이른바 나르시시즘의 시대가 도래했다.
_ 권기복, 『한 컷의 인문학』
--- 읽는 ---
백의 그림자 / 황정은
그러라 그래 / 양희은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 김용섭
호빗 / 존 로날드 로웰 톨킨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제이컵 솔
죽은 백인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 / 도나 저커버그
틀리지 않는 법 / 조던 엘렌버그
해커와 화가 / 폴 그레이엄
우리말 교실 / 조현용
철학 한 입 / 데이비드 에드먼즈, 나이절 워버턴
데이터사이언스 입문 / 타케무라 아키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