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들
안 세르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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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라는 직업은 생각해 보면 참 특별한 느낌이 든다. 과외선생도 아니고 누군가의 집안에 머물면서 함께 생활하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니, 일과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셈이니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18~19세기의 문학작품들을 보면 가정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 무렵 여성 작가들이 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에서 가정교사라는 직업은 흔하다. 그들은 대개 배움은 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거나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이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생활하면서 온갖 차별과 멸시를 감내한다. 그즈음 문학작품의 이런 묘사들을 읽다 보면, 당시 여성 가정교사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일도 흔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물론 그 가정의 남자 주인과 (때로는 여자 주인과) 자발적으로 로맨스+성적 관계를 맺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읽은 <가정교사들>은 이런 면에서 조금 남다르다. 아니 많이 특이하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가정교사의 이미지-가난한 집안 출신의, 비혼의 나이 든 처녀, 자신을 이 답답한 집구석에서 구출해줄 멋진 남성과의 로맨스를 꿈꾸지만 이룰 가능성은 딱히 없어 보이는, 그래서 욕구불만에 쌓인-를 완벽하게 뒤엎는다. 섹스, 그러니까 성애적 관계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그 관계는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이 가정교사들이 주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끈다. 이게 가능하다고? 이런 사실을 알면 그 가정교사들을 고용한 이가 당장 그 행실을 문제 삼아 해고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소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주인 오스퇴르 부부는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고 묵인한다, 부부 중 남편, 그러니까 집안의 가장인 오스퇴르는 자신이 고용한 가정교사들의 성생활을 물론 알고 있다. 그는 가장이므로 자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의무과 권리에 충실하다. 자신이 고용한 세 명의 젊은 여성 가정교사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의 일탈(?)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북돋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때문에 오스퇴르, 그도 이 성생활에 참여하고 있을까 싶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가정교사들은 저마다 남편, 약혼자, 연인 등등 주위에서 인정하는 관계 안에 놓여 있고, 그 관계를 오스퇴르가 낭만적인 관점에서 권장하는 것인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교사들의 섹스 라이프를 적극 권장한다고? 참으로 기묘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집에서 매일 사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사냥감이 부족하다. 저 남자는 몸이 꽉 잡힌 채로 핥아지고 깨물리고 잡아먹힐 것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난 그는 녹초가 될 것이고, 그제야 그들은 그를 놓아줄 것이다. 그는 마치 갓난아기처럼 초원의 야생 풀숲에 발가벗은 채로 누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창가에서 낯선 남자가 찾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토록 길고 절망적이던 겨울의 밤들을 추억하게 되리라. (<가정교사들>, 30쪽)



울타리로 막힌 정원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커다란 저택 안에서 어린 소년들을 가르치는 세 가정교사들.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의 주요 일과는 사실, 저택 앞을 지나가는 낯선 남자를 기다리다가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평소에도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그들, 남자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화 주제이다. 순진한 이들은 이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지금껏 가정교사로서의 생활에만 충실하느라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수줍음 때문에 정원의 철책 뒤에서 남자를 훔쳐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 그녀들은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리면 마치 거대한 죽은 나비들처럼 정원의 철문에 바짝 달라붙어 지나가는 남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유혹해 정원으로 끌어들여 온갖 쾌락을 맛본다.

그들은 지금까지 ‘낯선 남자들’을 여럿 경험했다. 그것도 셋이 함께. 그들은 낯선 남자들이 다가올 때 크나큰 기쁨을 느낀다. 때때로 그것은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 ‘남자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다가와, 절대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유혹의 은밀한 경고를 받았을 때, 그들은 절대 권력’(41쪽)을 갖게 된다. 남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소비’하고 나면, 그러니까 남자를 ‘정복’하고 나면 그들은 공허해진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었더라면, 세 사람 사이의 화합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욕망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늘 낯선 남자들만이 오갈 뿐인가 싶은데 “그들은 순진하지 않다.” 엘레오노르는 톰과 6년 동안 동거했고, 로라는 일곱 번의 연애 경험이 있으며, 이네스는 아기가 있다.

아니 뭐라고?! 충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동거했던 파트너가 있고, 일곱 번의 연애 경험이 있으며, 아기도 있는 젊은 여성이 가정교사로 일하는 정원에서 낯선 남자들을 유혹해 벌이는 쾌락의 파티라니. 게다가 그걸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집주인들…. 이게 가능하다고? 정말? 에이 소설이니까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왜 안 돼? 싶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시공간이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우화나 동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확실하게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다. 이 정원에서 여자들은 자기 욕망에 완벽하게 충실하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파트너는 필요 없다. 낯선 남자가 그들에게는 자극적인 향락의 대상이다. 그들은 낯선 이를 보면서 침을 흘린다. “머리카락은 짙은 금빛이 되며, 살결은 더 먹음직스러워지고, 목소리는 더 매력적이게 된다.”(57쪽) 그들은 남자를 ‘소비’하고 ‘정복’한다. 낯선 남자를 ‘사냥’하러 간다. 또 그들은 ‘그물을 꺼내어 그를 잡으러 가두러 간다.’(29쪽) 소비/정복/사냥(헌팅)/잡아 가두다/먹음직스럽다 등등의 언어는 지금껏 남자가 여자에게 플러팅하거나 구애에 성공해서 섹스까지 이르렀을 때 주로 사용하던 표현들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여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여자도 마찬가지로 먹음직스러운 남자를 사냥하고 잡아 가둬서 마음껏 소비하고 정복하고 차버릴 수 있다. 이 가정교사들은 그렇게 욕망에 충실하다.

문제는 이들을 고용한 집주인들의 반응이다. 이들은 왜 알면서도 묵인할까? 이 작품에서 오스퇴르는 가정교사들을 감시하고 지켜보고 통제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들에게 관음의 시선을 보내는 첫 번째 남자이기도 하다. 오스퇴르는 이 가정교사들이 처음 정원으로 들어서던 날 감탄으로 전율한다. 그에게 ‘삶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기쁨으로 두 손을 비비면서 거실에서 펄쩍펄쩍 뛰었’(47~48쪽)을 정도이다. 그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그에게 그녀들은 ‘기억과 욕망을 한가득 안고’ 들어오는 존재이다. 그 ‘기억’이란 자신이 욕망으로 들끓던 시절의 기억이리라. 그는 가정교사들을 보면서 “그들의 꿈에 걸려 있는 낯선 남자들, 앞으로 태어날 그들의 아이들, 앞으로 찾아올 그들의 사랑, 끝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선조들”을 상상하면서 기뻐한다. 그러니까 오랜 결혼 생활로 권태에 빠진 이 가부장에게 타인의 욕망을 엿보고 그 욕망의 결실들을 자신이 통제하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다. 오스퇴르는 집의 ‘중심’에서 시계처럼 감시하는 것을 자신의 가장 큰 의무로 여기고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오스퇴르 부인은 가정교사들에게 알맞은 짝을 찾아서 그들을 결혼시키는 게 큰 목표이다. 결혼으로 ‘가정교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머리를 정돈하고, 표정을 고치고, 몸을 바꾸고, 그들을 자제시키고 유순하게 만들어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85쪽)을 버리지 못한다. 이 오스퇴르 부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일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미 그 삶은 권태로워서 타인의 로맨스와 욕망을 지켜보거나 통제하면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 작동방식의 은유로 읽힌다.

그러나 오스퇴르 부부로 상징되는 가부장제는 개인의 욕망이 이미 거세되었거나 소멸해 버렸기에 권태롭기 짝이 없다. 사회에서 권장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짝을 만나서 로맨스에 빠져버리면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제도화된 코스일 뿐이다. 이 코스는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이 가는 과정이므로 그들은 또 다시 권태에 빠질 뿐이다. 그래서 가정교사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려 낯선 남자가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기를, 자신들에게 속하기를 강렬하게 원하면서 ‘사랑’에 빠져버리자 오스퇴르 부부는 맥이 풀리고 만다. 가정교사들의 욕망은 자연 상태에서 날것 그대로여야 하거늘! 사랑에 빠진 가정교사들은 대담함을 잃어버리고 유순해진다. 이런 그녀들을 오스퇴르 부부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그녀들과 사랑을 나눈 낯선 남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그가 사랑했던 것은 단호하고 냉정한 가정교사들이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져 잠옷 바람으로 발코니에 서서 한숨을 내쉬거나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며 그를 맞이하는 가정교사들은 이제 매력을 잃어버린다. 그는 그들을 자신이 사랑하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애쓴다. 그녀들에게 다시 권력을 쥐어주고 싶다. 그러나 이미 욕망이 거세된 이 관계에서 욕망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면 이성애 로맨스와 그 로맨스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부장제 사회가 실은 여성 또는 인간의 욕망은 거세되거나 어느 시점에 소멸한 채 기능적으로만 작동하고 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세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낯선 남자를 욕망할 때 생기에 넘친다. 그런 그녀들을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이 작품에서는 오스퇴르 외에도 또 한 사람의 지켜보는 눈이 있다. 그는 늙은 남자로, 그 눈-망원경-은 더 적나라하게 그녀들을 훔쳐본다). 그들이 낯선 이와 정원(자연)에서 정사를 벌일 때 지켜보는 눈들도 더 생생히 빛난다. 관음하는 그들도 삶의 환희에 차오른다. 그런데 그녀들이 사랑에 빠지고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이 모든 뜨거움들-욕망은 찬물을 끼얹듯이 소멸하고 만다. 심지어 관음의 시선을 알고 흥분하던(때로는 그 시선을 더 도발하던) 그녀들조차도 지켜보는 시선이 사라지자 욕망이 시들해진다. 자신들의 욕망조차 남성의 관음의 시선에 익숙해진 여성들의 은유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음의 시선에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현대인. 그리하여 그 시선이 사라질 때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조차 시들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톰과 10년을 함께 살았고, 아이 두셋을 낳았으며, 집 한 채를 갖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마흔 살, 쉰 살, 아마도 여든 살까지 살았다. 가정교사들 각자는 가볍고 빛이 나는 거대한 가방처럼 부풀어진 꿈의 다발로 이루어졌다. (61쪽)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정하는 관계로 맺어져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고, 아이들을 낳고 집을 마련하고 마흔 쉰 예순 여든 그렇게 늙어가는 인생. 그러나 어느 순간 욕망은 소멸하거나 거세되어 오직 권태만 남는 삶. 애초에 이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할 뿐임을 이 작품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권태에 젖은 그들이 더 생기 넘치는 집을 찾아 나선들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오스퇴르 씨의 역할을 할 것이고, 다른 이도 마찬가지다. 노인의 역할도, 낯선 남자들의 역할도, 구혼자들의 역할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철문이, 똑같은 정원이, 똑같은 세계가 똑같은 실들로 짜여 있을 것이다.”(86쪽)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전복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욕망이 펼쳐지는 이 세계는 영원히 닫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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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08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리뷰의 특히나 마지막 단락을 읽다보니 아침 출근길에 읽은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 말이 떠오릅니다.

˝여성이 악마에게 돈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악마가 나타나는 전형적 방식입니다. 그러면 악마는 나의 노예가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계약이 이뤄집니다. 악마가 돈을 좀 주고 그 대가로 여성의 몸에 노예라는 표시를 새깁니다.… 제가 언제나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악마와 마녀의 관계가 오늘날의 결혼관계의 고전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들의 후손이다 中 에서

완전히 다른 얘긴데요, 가정교사 와 집주인의 성적인 관계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였는데 지금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런데 말하면 아마 잠자냥 님은 아시겠지. 그러니까 그냥 얘기해볼게요. 남자주인공이 아마 섹스 중독 이었던 것 같고요, 집에 왔는데 어린 딸의 가정교사(였나 베이비시터였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터가 아이 아빠가 오니 집에 돌아가기 전에 샤워를 했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소파에서 강제로 이 시터를 강간하려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밑에서 시터가 몸부림치고 소리를내자 아이가 무언가로 아빠의 등을 찌릅니다. ˝우리 선생님 아프게 하지마!˝ 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아빠는 섹스중독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잠자냥 님의 이 리뷰에서는 주인집 남자와는 성적인 관계가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어쩐지 그 영화 생각이 났어요. 잠자냥 님, 제목 아시죠? ㅎㅎ

단발머리 2023-08-08 11:17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지금 급 당황 ㅋㅋㅋㅋ 몰라서 검색하고 계십니다. 기다리세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8-08 11:50   좋아요 1 | URL
요즘 잠자냥 님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두 번이나 댓글에서 읽었는데...설마....또?ㅋㅋㅋ

잠자냥 2023-08-08 11:58   좋아요 3 | URL
에엥? 모르는데요? 제가 섹중독자 이야기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ㅋㅋㅋㅋ
근데 뭐지 검색해보고 싶다...... 검색해보니 본 거 아닐까.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08 12:50   좋아요 0 | URL
되게 유명한 영화거든요? 저 퍼뜩 <무릎과 무릎 사이> 였나 싶어 검색하니 이건 한국 영화네요? <당신의 다리 사이>였나 검색해보니 여기엔 제가 말한 장면에 대한 언급은 없고 … 당신의 다리 사이, 이것 같은데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여름에 봐야겠네요. 흠흠.

잠자냥 2023-08-08 13:30   좋아요 0 | URL
<당신의 다리 사이>는 저도 본 거 같은데... 으음.

단발머리 2023-08-08 1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임신하고 출산하기 전에도 뜨거운 욕망이 단번에 사그라드는 경험에 대해 저는 좀 더 고찰을 해보고 싶습니다. 낭만적 사랑의 유통기한,은 대체, 얼마나 짧은 것인가,에 대해서요^^

잠자냥 2023-08-08 11:59   좋아요 2 | URL
사랑의 유통기한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랑한다는 게 불가능한 존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결국은 그냥 육욕이고 친밀감의 표현이고 뭐 그런 거 아닌가.....-_-;;

은오 2023-08-09 02:55   좋아요 1 | URL
대상이 나 자신인가? X
육욕인가? X
영혼만을 사랑하는가? X
친밀감의 표현인가? X
모든걸 알고싶은가? O
사랑인가? O

잠자냥 2023-08-09 09:54   좋아요 1 | URL
모든 걸 알고 싶은 건 지식욕인데... 세상에 읽을 책도 많은데 .... 안 자니?

은오 2023-08-09 10:17   좋아요 1 | URL
잠이 안오네요?! 잠자냥님 때문인가??

잠자냥 2023-08-09 10:24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으로 격렬한 영상을 봤거나 카페인 과다입니다.
자기 전 흡연도 수면방해에 한몫합니다.

은오 2023-08-09 10:25   좋아요 1 | URL
스마트폰으로 잠자냥님을 만나긴 했는데......

책읽는나무 2023-08-08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망을 드러내고 사는 삶이 옳은 것인가?
욕망을 다스리고 사는 삶이 옳은 것인가?
권태도 다스리기 나름인 것인가?
물음표가 많이 생기는 소설이로군요!

잠자냥 2023-08-08 11:59   좋아요 2 | URL
읽고 나서도 아리까리한 소설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또 많은 해석의 여지가 달라질 것 같고요.

은오 2023-08-09 0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ㅋㅋㅋㅋㅋㅋ 이거 이런 내용이었군요.
먹음직스러운 남자 찾는거 그거 극악의 난이도인데.. 저 집 앞엔 먹음직스러운 놈들이 많이 지나다녔나보네....

잠자냥 2023-08-09 09:55   좋아요 1 | URL
극악의 난이도 ㅋㅋㅋㅋㅋ 묘사를 보면 딱히 먹음직스럽지도 않은데 잘도 먹더이다......-_-

2023-08-0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8-0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늦게 알게 된 슬픔!
일찍 알아도 슬픈 건 매한가지일까 싶기도 하고요 ㅎ

잠자냥 2023-08-09 11:49   좋아요 0 | URL
일찍 아는 게 좀 더 슬플 거 같기는 해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8-0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되게 신기한 소설이네요?? 다락방님 글에서 ‘남자 잡아먹는 소설‘이라고 봤는데 진짜 잡아먹고 있.. ㅋㅋㅋㅋ 근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이 설득력이 있는 건지 잠자냥님이 설득력이 있는 건지.

잠자냥 2023-08-09 16: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네 아주 그냥 와구와구 잡아먹습디다.
약간 동화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하고 암튼 그런 작품이에요~

coolcat329 2023-08-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설정이 기이한 게 쉬운 소설 같지가 않네요. 독서토론 책으로 좋을 거 같아요. 기능적으로만 작동하는 결혼제도 저도 종종 생각해보는데 이 책 그 점을 다루고 있네요.

잠자냥 2023-08-09 23:18   좋아요 0 | URL
네 작품은 짧은데 상징적인 부분이 많아서 여러 사람하고 생각을 나누면 재미 있을 거 같아요. 이 글에서 제가 쓰지는 않았지만 소년들하고의 관계도 해석의 여지가 많고요.
 
오, 윌리엄!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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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오, 윌리엄!>을 읽을 때 자연스레, 그러나 예기치 못하게 떠오른 사람이 있다. 전에 만나다 헤어진 사람인데, 나는 그 사람을 헤어진 후로 생각한 적도 딱히 그리워한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문득 떠올랐다. 이 작품이 화자인 루시 바턴이 헤어진 전 남편 윌리엄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거의 그랬을 것이다. 단지 루시는 윌리엄과 여전히 친구처럼 만나고 있다는 점이 나와는 다르다. 나는 헤어진 연인이나 배우자와 친구처럼 만나면서 그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국인이 아니고 이 보수적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탓도 있겠지만 상상을 해봐서 내가 미국인이라고 해도, 설사 프랑스인이라 해도 나라면 헤어진 연인이나 배우자를 다시 만나서 친구처럼 지내고 싶지 않을 것이며, 소식조차 알고 싶지도 않을 것 같다. 좋게 헤어졌든 나쁘게 헤어졌든 그건 상관없다.

물론 루시와 윌리엄 사이에는 두 딸이 있다. 이제는 장성했으나 각자 부모에 관한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가 헤어진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들도 아빠, 또는 엄마와 만날 수 없다고 부모 멋대로 결정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루시처럼 윌리엄을 친구로 만나지는 않을 것 같다. 왜일까.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 헤어짐의 이유도 제각각이다. 지금의 애인을 만나기 전에 사귀던 그 사람은 나와는 6여 년을 같이 했고,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기에 이별을 통고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나는 <오, 윌리엄>의 윌리엄 같은 사람이었달까.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 너를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 그런 말들에 그때 그 사람은 내가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기다릴 것이라고, 친구처럼 가끔이라도 보면 안 되느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첫 번째 말은 불가능하다고,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은 없다고 네 마음도 곧 변할 것이니 기다리지 말라고, 그리고 만일 지금의 그 사람과 헤어지더라도 너한테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친구처럼 보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내가 친구라고 해도 너는 친구가 아니잖아? 그때 그 사람은 나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윌리엄과 헤어진 후 데이비드를 만난 루시처럼.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D. 정희진의 공부 7월호를 듣노라니 ‘사랑’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사랑은 철저히 제도적인 관계라고, 어떤 제도로 묶이지 않는 사랑이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3개월 정도일 것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기간이 지나고도 사랑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은 제도로 그 사랑을 존속하려고 한다고, 그것이 결혼이라고. 그런 의미로 본다면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라든가 사랑의 또 다른 시작이 아닌 사랑의 종말이나 마찬가지라는 그런 말들……. 지금의 애인과는 제도로 묶이지 않은 채 10여 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대단한 건가 싶으면서도 그렇게 굳이 제도로 묶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을 사랑을 왜 존속하려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다른 이들의 삶이니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고. 다시 내 삶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제도로 묶지도 않았는데 그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희진 선생님은 4가지(섹스, 돌봄, 돈, 지적인 충족) 이해(利害) 중 하나라도 충족되면 그 관계는 유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바탕으로 우리의 관계를 돌아본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덧 세 마리에서 여섯 마리로 늘어난 이 고양이들이 우리에겐 제도와도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양이들 때문에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가끔 심하게 싸우다가 헤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하, 저 녀석들은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해봤다면 거짓일 것이다. 고양이가 없었다면 우리에게 위태로운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라는 말에 서로 고개를 끄덕이던 때가 있었던 것만큼- 그리고 혹시 헤어지더라도 누군가 맡은 고양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연락은 해주자는 말이 나왔던 적도 있었던 것만큼 우리에게 고양이는 루시와 윌리엄의 두 딸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루시는 윌리엄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옷을 그토록 오래 입고 다녔던 것일까. 윌리엄과 이별하고 만난 데이비드- 그가 루시에게는 더 잘 어울리는 옷이었는데. 루시는 데이비드에 비해 키도 크고 잘생긴, 어디에서나 ‘집’이라고 부를만한 공간을 갖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그 권위의 소유자,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기중심적이고 그러면서도 제 자신은 그렇지 않은 듯이 루시에게 “당신은 너무 자기몰두적”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 남자, 윌리엄을 만나 자식을 낳고 안전하다고 느끼면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 권위와 안전함에 기대어 친구처럼 지내면서 윌리엄의 온갖 부탁(때로는 좀 무례해 보이기도 하는)을 들어주고 함께 행동해준다.

그렇지만 그 데이비드- 요거트에 산딸기를 올려 먹을 때 가장 행복해한 그 소박한 데이비드-키도 작고 살집도 있는, 그래서 윌리엄에 비하면 외모로는 형편없을 그 데이비드와 함께 할 때 루시는 집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결핍, 트라우마로 인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자기 집을 소유한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서로에게서 ‘집’을 발견한다. 같은 상처가 있음을, 비슷한 결핍이 있음을 알아본다는 것은 때로 어떤 공감의 말 한마디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삶이 다해 데이비드가 먼저 루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계속 삶을 같이 하지 않았을까……. 지금의 내 연인은 루시와 데이비드처럼 어린 시절의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 비슷한 결핍이나 상처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야기한다. 그 비슷한 결핍의 감정이, 상처가 우리를 좀 더 단단하게 묶어준다고. 우리에게는 루시의 딸들 같은 여섯 고양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존재보다는 비슷한 결핍과 상처의 기억이 서로를 서로에게 더 붙어있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K. 대학시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은 집에서 잘 자란 사람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좋은 집이란 무슨 의미일까, 잘 자란 사람이라는 말은 또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아, 내가 연기를 참 잘 했구나, 스스로 감탄했던 적이 있다. 살면서 내 집안이 좋은 집이라고(10대와 20대 때는 더더욱) 생각한 적이 없다. 10대 시절에는 더 그랬다. 그 후배가 말한 ‘좋은 집’이 부유한 가정을 뜻한다면 그건 정말 그릇된 판단이고, ‘좋은 집’이 ‘화목한 가정’을 의미한다면 그 또한 어긋난 판단이다. 루시만큼은 아니지만 가난은 나에게는 늘 결핍의 근본적 원인이었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일상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에게는 이 세상의 사랑이나 결혼은 그 감정이 주는 따뜻함과 안온함을 먼저 일깨우기보다는 환멸을 먼저 심어준다.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채 열 살이 되기 전에 스스로 맹세하던 아이는 세상에서 냉소와 환멸을 먼저 발견한다. 그렇게 자란 내게 ‘좋은 집에서 잘 자란 사람’같다는 말은 얼마나 우습고 쓸쓸한 농담인가. 한 살짜리 딸을 놓고 다른 삶을 꿈꾸며 집을 나가 마을을 떠나버린 캐서린- 그녀의 삶에 그토록 지독한 비밀이 있을 줄은 루시도 윌리엄도 알지 못한다. 오히려 루시는 캐서린과 윌리엄을 보면서 투명 인간 같은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 부유하고 세련된 공간에 앉아 있는 게 그냥 그 존재 자체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축된다. 한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루시와 윌리엄 앞에 드러난 캐서린 그녀의 삶은 얼마나 지독했던가. 골프를 치는 캐서린, 어떤 세련된 공간에서나 자연스럽고 우아한 캐서린, 그 캐서린이 애초부터 그런 삶을 살았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우습고 지독하고 쓸쓸한 농담인가.

L. 그런데 루시는 어째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윌리엄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일흔이 되도록 엑스 와이프, 현재 와이프, 딸들, 엄마, 누나에게 칭얼거리기만 하는, 우쭈쭈해 달라고, 자기처지부터 좀 생각해달라고 하는 이 권위 있는 척 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왜 이토록 연민어린 시선으로 하는 걸까 못마땅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윌리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루시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고 아이 둘을 낳아 함께 키우고, 사랑에 빠진 순간, 그러면서도 이질감을 느끼고 외로움이나 고독감, 결코 채울 수 없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는 것도 모두 윌리엄이라는 상대가 있기에 가능하다. 거기서 루시는 자기 자신의 여러 모습을 발견한다. 정희진의 공부 7월호에서 말하는 “너라는 생활” 그 자체이다. ‘너’를 이야기하는 ‘나’를 이야기하고 있음. 루시는 윌리엄과의 세월을 차곡차곡 되짚어보다가 캐서린에 관해서도 윌리엄에 관해서도 심지어 어쩌면 데이비드에 관해서도 그리고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었음을, 누군가 타인을, 그 타인과 함께 한 인생들을 완벽하게 알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윌리엄이라는 환상이 준 권위나 안온함이 루시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는 데 역할을 했음을 깨닫는다. 이 잔혹한 인생에서 그 환상이나 착각마저 없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윌리엄도 루시와 캐서린을, 루시도 캐서린과 윌리엄을 전부 알지는 못하고 자신이 알고 싶은 대로, 상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안다고 생각해도 다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단편적인 앎들이 엮여 그들 저마다의 삶을 버티고 나아가게 해준다. 윌리엄에게 루시가 밝은 빛으로 환히 빛나는 사람이라는 오해 또는 믿음이 없었다면 그의 삶은 더 외롭지 않았을까.

책 한 권의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내 이야기를 했다. <오, 윌리엄!>은 그런 책이다. 이 글에서 알게 된 나에 관한 이야기가 당신이 나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를 다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읽을 당신에 관해서 나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 더 친밀해졌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친밀감이, 거기서 빚어지는 환상 또는 착각이 우리를 버티고 살아가게 한다. 루시, 윌리엄, 캐서린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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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0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리뷰 너무 좋아 죽겠네요.
저는 예전부터 느낀 것이긴 하지만, 잠자냥 님이 리뷰를 잘 쓸 수 있는 건, 책을 잘 읽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잘 읽는 사람이 잘 쓸 수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리뷰는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것 같고요.
리뷰가 소설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흑. 너무 좋아 ㅠㅠ

잠자냥 2023-07-10 12:25   좋아요 2 | URL
다부장님의 ㅠㅠ 를 보았으니 오늘은 되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은 요 시기에 딱 희진 샘 매거진 7월호 ‘사랑‘ 팟캐를 들으며 대입시켜 주시니 쏙쏙 읽힙니다.
전 토요일에 ‘사랑‘ 그 부분을 버스 안에서 들었어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긍정적인 결론으로 내려지긴 했지만요. 나는야...긍정적인 여자!!ㅋㅋㅋ
고양이들이 자냥 님께 미치는 영향이 참 감동스럽네요. 매번 감탄 중입니다.

윌리엄과 루시는 떨어져 살고 있기에 지금의 우정이(사랑과 우정사이 같아 보입니다만^^) 존속된다고 봅니다.
서로의 오해와 믿음이 충만하여 또 합쳐 살았다면 과연 이 소설이 완성될 수 있었을지?ㅋㅋㅋ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미리 축하드려요.^^

잠자냥 2023-07-10 14:30   좋아요 1 | URL
응 네? 뭘 축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무 님은 긍정 에너지 넘치십니다. ㅎㅎㅎ

자목련 2023-07-11 11:34   좋아요 1 | URL
저도 이달의 리뷰로, 축하드립니다!

잠자냥 2023-07-11 12:38   좋아요 1 | URL
네?! ㅋㅋ 그럼 저는 이번달에 그만 쓰는 걸로......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1 12:49   좋아요 0 | URL
그래도 써주셔야죠!
우리에게도 읽는 기쁨을 달라!!!!

암튼 또 축하합니다♡
자목련 님도 인정하셨어요.ㅋㅋㅋ

은오 2023-07-11 0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을에 읽으라고 하셔놓고 이런 리뷰를 써주시면 어떡하죠? 궁금해지네....
잠자냥님이랑 집사2님이 생각보다 더 찐사랑인 것 같아서 속상하네요 ㅋㅋㅋㅋㅋ 찐으로 속상하다!
그래도 이 리뷰 너무 좋습니다. 근데 부족하다. 난 잠자냥님을 더 알고싶다.... 저랑 언젠가 만나서 술한잔 해주시죠

잠자냥 2023-07-11 10:26   좋아요 1 | URL
당신은 지금 잠자냥이라는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은오 님하고 술한잔은 다부장님하고 술한잔 하게 되면 그 이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3-07-11 11:42   좋아요 1 | URL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거다 해도되나요?

잠자냥 2023-07-11 12:38   좋아요 1 | URL
엥? 나원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7-11 12: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꺅!!! 안 돼!!!! 오글오글~
말하기 전에 소줏잔 얼른 뺏어요!!!ㅋㅋㅋ

2023-07-12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7-12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약속
데이먼 갤것 지음, 이소영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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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948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시행되었던 흑백인종분리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우월주의에 기반한 이런 차별적인 체재 하에서 살았던 백인들은 모두가 흑인과 섞이지 않아서 좋다, 하며 이 체제를 반겼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불편한 마음이 들지언정 개인적으로 힘이 없어서, 굳이 나서고 싶지 않아서 또는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일이라서 침묵하거나 방관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지 하고 포기한 백인들도 많을 것이다. 아니면 흑인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행동 등으로 윤리적 죄책감을 덜거나 하는 백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약속>은 바로 그런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아모르’가 그런 백인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공고한 1986년, 열세 살 소녀 아모르는 엄마, 아빠, 오빠,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소녀에게는 작품의 시작부터 시련이 닥친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아모르의 엄마는 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을 하다 결국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엄마의 장례식- 마음껏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아모르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아빠 ‘마니’에게 확답을 받기도 전에 아모르는 흑인 하녀 살로메의 아들 ‘루카스’에게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만다. 아모르의 이 당당한 선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모르의 엄마 레이첼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편 마니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자신이 아플 때 헌신적으로 돌봐준 살로메에게 무언가 꼭 주고 싶다고. 그러니까 살로메가 지금 살고 있는 집-그래봤자 방 세 칸짜리의 허름한 양철 판잣집-을 꼭 그녀에게 주겠노라 ‘약속’해달라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간절히 부탁한 것이다. 마니는 알겠노라, 약속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때마침 그 방 안에 있었던,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던(아모르는 가족 중에 가장 존재감이 희미하다) 이 소녀가 목격한 것이다. 아모르는 엄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부탁한 그 약속을 아빠가 반드시 지킬 것이라 생각하고는 또래인 루카스에게 장담하듯이 말해버린 것이다.

아모르는 이 집에서 가장 선하고 윤리적인 존재다. 그 선함은 가장 어리다는, 그러니까 세상의 때를 덜 탔다는 것에서 비롯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빠 ‘안톤’이나 언니 ‘아스트리드’에 비해 존재 자체가 희미한, ‘모든 사람의 시야 가장자리에 있는 하나의 얼룩으로 취급받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어리고 너무 철이 없는’ 그런 아이- 게다가 아모르는 오빠나 언니에 비해서 온전히 사랑받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죽은 엄마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아빠인 마니는 막내딸을 늘 자기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해오곤 했다. 이렇듯 집안에서 존재감이 없는 ‘유령’ 같은 아모르였기에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유령 같은 살로메의 처지를 누구보다 공감하며, 그녀의 생활이 어떻게든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가 가여운 살로메에게 꼭 집을 주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게다가 아빠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니 꼭 엄마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순진한 아모르는 굳게 믿는다. 그렇기에 루카스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유언, 엄마의 부탁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약속>은 전혀 다른 스토리로 흘러가거나 단편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양철 판잣집을 부유한 백인 농장주가 까짓 줘버리면 그만 아닌가! 싶은데 마니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처음에는 법이 그를 돕는다. 그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이 땅을 소유하고 집을 소유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가 아무리 선한 마음으로 아내의 유언을 지키고자 살로메에게 집을 넘겨주려고 해도 법이 허락지 않는 것이다. 물론 법은 둘째 치고 마니는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 없다. 아모르가 엄마의 유언대로 살로메에게 집을 줘야 한다고, 아빠 약속 지킬 거죠? 내가 다 봤어요. 아무리 말해도 마니는 답을 피하거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딸을 쳐다볼 뿐이다. 그 소리를 들은 마니의 누나, 그러니까 아모르의 고모도 길길이 뛰기는 마찬가지이다. 쟤가 무슨 헛소리야! 쟤는 늘 저러더라! 얼룩처럼 희미한 이 어린 소녀의 주장은 어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파급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의 마지막 부탁인 이 약속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약속>은 아모르가 십대 소녀에서 성년이 되어 집을 떠나고 어떤 불가피한 이유로 집을 다시 찾아와야만 했던 몇 번의 사건 등을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30여 년 간의 스와트 집안의 흥망성쇠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 변화 모습이 그려진다. 아모르가 커가는 그 사이에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고 흑인인 만델라가 이끄는 정부가 들어서는 등 변화의 조짐은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나 유령 같은 존재인 살로메에게 그 다 쓰러져 가는 집 한 칸은 여전히 주어지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왜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문득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본디 흑인들의 땅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느 날 그 땅에 나타난 백인들이야말로 무단으로 그 땅을 차지하고는 제멋대로 흑인과 생활 터전을 분리하고, 좋은 곳은 자신들이 다 차지하고는 본래 흑인들의 땅이자 그들의 터전이었던 곳을 돌려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그런 중에도 아모르처럼 최소한의 양심, 최소한의 윤리, 최소한의 죄책감을 지닌 이들이 그 백인 사회 내에서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 지키고 싶었어도 한때는 지킬 수 없었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아모르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현실 속의 아모르 같은 이들 그러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이런 작품을 쓴 백인 작가들-데이먼 갤것을 비롯해 나딘 고디머, 쿳시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이 체제가 부당하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한번쯤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가족들의 이기심과 욕심에 환멸을 느끼고, 가족들의 행동이, 백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집을 떠난 아모르- 그녀는 탐욕으로 부패한 그 백인들의 농장을 떠났기에 그 선한 마음을 계속 지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모르의 삶의 이력은 “존재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떠나는 것인 동시에 자기 집을 떠나는 것”(레일라 슬리마니, <한밤중의 꽃향기>, 73쪽)이라는 구절과도 통한다. 집에서의 안락한 삶을 벗어나 자기로서 존재했던 아모르, 희미한 얼룩 같았던 한 소녀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윤리와 공감의 능력이 아닐까 싶어진다.


“전 변호사에요. 약속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전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모르가 말한다. (<약속>, 4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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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6-22 14: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재밌겠다.. ‘30년간의 흥망성쇠‘라니 잠자냥님이 얘기하지 않은 스토리가 또 많을 것 같은데.. 자냥오별이야.. 안돼 이미 주디스헌이랑 도둑맞은집중력 샀는데.. 책 안 사려면 잠자냥님 팔로우를 끊어야 하나.. (중얼중얼)
이상 혼잣말이었습니다. 잠자냥님,리뷰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제 손꾸락이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얼른 도망갑니다!!

잠자냥 2023-06-22 14:22   좋아요 3 | URL
날 끊고 괭이 과연 살 수 있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담달에 사요. 이 작품이 주디스 헌 주정뱅이 이야기보다는 재밌습니다.

독서괭 2023-06-22 17:55   좋아요 3 | URL
내가 책을 끊지 잠자냥을 끊겠냐!! 북플을 하는 이상 자냥님을 팔로우 할 것이고 자냥님이 있는 이상 북플을 계속 할 것이옵니다..(아멘)

은오 2023-06-22 18:26   좋아요 2 | URL
동의합니다! (잠멘) 잠자냥님을 끊느니 밥을 끊으리....

독서괭 2023-06-22 18:31   좋아요 2 | URL
워워, 전 밥은 안 끊을 거예요!!!

은오 2023-06-22 18:39   좋아요 1 | URL
아니 저도 다시 생각해보니까 밥은 좀.... (괭님덕에 되찾은 이성)

다락방 2023-06-22 20:31   좋아요 3 | URL
밥은 좀 너무 갔는데?? 🤔🤔

잠자냥 2023-06-22 22:19   좋아요 0 | URL
잠멘이래 미쳐 ㅋㅋㅋㅋ 밥은 끊지 마요. 다들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7-10 23:10   좋아요 2 | URL
^^ 자냥오별...오! 자냥오별! 묘하게 어울리는 네글자네요. 괭님의 언어쏀스에 엄지척!!!

최소한의 양심, 지키고자 하는 의지...
어린 소녀였던 아모르가 어떻게 지켜내는지,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소녀의 사람됨에 작가가 어떻게 투영되어 있는지, 과연 백인 작가들의 고발(?)이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좋은 책이겠어요

잠자냥님, 이달의 리뷰 축하드립니다!

은오 2023-06-22 18: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모르야 니가 어른이다 ㅜㅜ

잠자냥 2023-06-22 22:22   좋아요 0 | URL
라딘에서 은오가 그런 젊은이가 되시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22 2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약속은 여자의 모든것 이라 생각합니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넘나 싫고요,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쓰며 기어코 지켜내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사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마..)
알라딘에 잠자냥 님이 계셔서 참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밥을 더 좋아합니다.

그럼 이만.

잠자냥 2023-06-22 22:21   좋아요 0 | URL
역시 의리 다락방 ㅋㅋ
모름지기 사람은 밥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순댓국에 퐁덩 넣을 그 밥….!

이 인간 오늘 술 안 먹었다는데 왜 마신 거 같지?

달자 2023-06-22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장바구니에 넣어놨는데, 혹여 이야기가 소위 ‘피씨한 백인의 서사‘ 중심으로 흘러갈까봐 망설이고 아직 사지 않았거든요. 독서하시면서 그런 뉘앙스는 느껴지지 않았나요?

잠자냥 2023-06-22 22:18   좋아요 1 | URL
으음 제 리뷰에서 혹시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책에서 딱히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소녀 아모르가 읽다 보면 좀 흑인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달자 2023-06-23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리뷰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거 아니고 출판사의 책 소개글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혹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서사는 아닐까..! 리뷰 감사합니다 덕분에 책을 읽고 싶어 졌어요...!

잠자냥 2023-06-23 17:04   좋아요 0 | URL
네~ 재미나게 읽으세요, 달자 님은 또 다른 시건으로 이 책을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06-23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잠자냥님의 별 다섯개 믿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딘 고디머, 쿠시 좋았기에 장바구니로!

잠자냥 2023-06-24 01:09   좋아요 1 | URL
네 그 작가들 작품을 좋아하셨다면 이 책도 재밌게 읽으실 거 같아요.

얄라알라 2023-07-10 23:1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께서도, 괭님의 ˝자냥오별˝을 말씀하시네요 ㅎㅎㅎ
 
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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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에 이 책을 다 읽고 약간 기운이 빠져 있었더니 집사2가 무슨 책을 읽었기에 기분이 나쁘냐고 물었다. 오츠의 책인데 이러저러하다 말하다가 “아니, 왜 여자들은 쓰레기 만나서 그렇게 당하고 또 쓰레기를 만나는 거야?”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소설인데도 왜 이렇게 빡치는 것일까. 무슨 내용이냐고 묻기에 이 책에 실린 4개의 중편 중 쓰레기를 피해 또 다른 쓰레기에게로 자진해 걸어가는 여성이 등장하는 <환영처럼: 1972>를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피해자 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가끔 집사2에게 ‘너니까 하는 말이지만…’ 하면서 정말 답답한 피해자를 탓하는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환영처럼: 1972>의 ‘앨리스’도 나를 빡치게 한 답답한 여성이다. 앨리스는 이제 스무 살 대학생이다. 똑똑하고 예쁘다. 그래서 그런지 당장 철학과 강사의 눈에 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수순으로 그놈은 앨리스에게 접근한다. 쏟아지는 온갖 칭찬- 너의 재능, 너의 미모, 너의 뛰어남, 너는 다른 학생과 다르다....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은데 차나 한잔? 이런 순서들- 열아홉에서 스무 살- 그 어린 나이에는 좀 지적이고 섬세한 거 같고 예민해 보이는 똑똑한 남자가 자신의 지적 능력을, 더불어 외모를 칭찬해주면 대개는 귀가 번쩍, 눈이 번쩍 솔깃솔깃해져서 기분이 방방 뜨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면 그런 허영쯤은 누구나 갖고 있고 또 누구나 그런 시기를 거쳐 간다. 그래서 인간의 이런 속성을 잘 아는 놈들은 늘 그런 부분을 공략하는 것이다. 이런 강사 놈 같은 놈 말이다......지금도 세계 곳곳의 대학에서 강사와 교수가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이런 일들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나이로는 성년이지만 머릿속 관념이나 생각으로는 아직 미성숙한 이 어린 학생 앨리스는 그의 추켜세움에 넘어가 그와 차를 마시려고 하고, 많은 카페와 음식점을 놔두고 차를 왜 집에서 마셔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집에까지 가게 된다. 안 돼, 앨리스! 제발 돌아가! 내가 샤프롱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놈 집에서 단둘이만 남게 되니, 당연히 그놈은 본색을 드러낸다. 차를 마시자더니 왜 앨리스의 몸을 왜 쓰다듬는지 알 수 없지만.... 그놈의 손길은 바빠진다. 당혹한 앨리스가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다며 뒤로 물러나자 그놈은 기분이 잡친 듯 말한다. 내숭 떨지 말라면서 여기까지 따라온 건 너도 동의한 거 아니냐고 다그친다. 비웃고 조롱한다. 야, 이놈아. 뭘 동의해! 차 마시겠다고 했지 몸 섞는다고 동의했니! 그러나 앨리스는  어린 여성- 그 앞의 남자는 자신을 가르치는 강사- 학점도 그놈 손에서 나오겠지. 결국 일은 그렇게 벌어지고 만다. 그놈은 몇 번 더 앨리스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이런 쓰레기들이 늘 그렇듯이 이제 앨리스를 모른 체한다.

에휴.......... 답답해. 그런데 이런 사이에서 수정은 또 얼마나 잘 되는지. 앨리스는 덜컥 임신을 하고 만다. 이 작품의 제목은 <환영처럼: 1972>- 1972년이 배경이다. 낙태가 불법인 시절- 앨리스는 끊긴 생리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제발 자고 일어났을 때 침대에 피가 묻어있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런 헛된 기대의 나날을 보내는 사이 몸은 점점 불어나고, 앨리스는 전처럼 학교를 다닐 수가 없다.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아니 에르노의 <사건>이 절로 생각난다). 그래도 학교를 아예 안 나갈 수는 없어서 힘겹게 수업을 듣는 중 영문학 시간이었나, 한 시인의 강의를 듣다가 또 일이 벌어지고 만다. 시인이자 늙은 교수의 질문에 영특한 앨리스는 남들과 좀 다른 대답을 하게 되고 그러는 바람에 이 늙은이의 눈에 또 띄고 만다. 휴... 이 장면에서 샤프롱 본능이 발동한 나는 앨리스에게 대답하지 말거나 평범하게 답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앨리스는 말을 해버렸어.


아니나 다를까 이 늙은이는 앨리스의 답변에 고개를 들고 그녀를 향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낸다. 그러고 나서 벌어지는 일들은 젊은 강사놈의 비열한 시즌2 또는 늙은 교수의 변주곡이다. 늙은이는 앨리스를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하며(그놈의 집, 그놈의 차! 아니 제발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라고!!! 아니면 학교 매점이나 카페 없어?!) 시와 문학 이야기를 하면서 영특한 그녀의 재능을 칭찬해주고 환심을 산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강사놈처럼 다짜고짜 몸부터 덮치려는 게 아니라 시간과 공을 들인다(나이가 들어서 그건 좀 무리겠지....). 너는 재능이 있으니 내 일을 도와다오. 보수는 넉넉히 주마. 우리는 문학과 시에 관해 지적으로 충만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등한 친구 사이다 운운.... 아니 교수님 근데 왜 느닷없이 앨리스 입에 혀를 넣으시나요? 친구끼리 누가 혀를 넣는다고.

그런 중에도 앨리스의 몸은 불어가기 시작하고 늙은이는 세상살이에 이미 만랩이라 앨리스가 어떤 곤경에 처해있는지 쉽게 짐작한다. 그래서 그 약점을 공략한다. 경제적인 지원, 그리고 결혼해서 그 아이를 함께 낳아 키울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 1972년, 낙태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비혼모로 살아가기는 더 쉽지 않은 상황- 궁지에 몰린 앨리스에게 그의 제안은 쉽사리 뿌리칠 수 없는 매혹이다. 저런 불량식품인데.... 먹지 마. 앨리스 아니야, 그 이상한 나라에서 도망쳐! 소리쳐 보지만 이 책 밖의 샤프롱의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릴 리가 없다. 드디어 이 앨리스가 자기의 손아귀에 넘어왔다고 생각하여 흥분한 영감탱이는 욕실에 들어가서 무슨 준비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부산스러운데 그 틈바구니에 넘나 흥분했는지 안 그래도 고장 났던 심장이 덜커덕 문제를 일으킨다. 아이고야, 이 앨리스의 앞날은 과연 어찌될 것인가.

《카디프, 바이 더 시》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은 대부분 절망적이다. 그리고 그 절망적인 상태는 대학 강사, 교수의 그루밍에 의해 성폭력 희생자가 되는 앨리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가정’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폭력을 행사하는 가부장 남성들은 모두 이 작품 속 여성들보다 나이가 한참 많다. 힘이나 나이 등 물리적 상황 및 심리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답답한 작품을 읽은 후에 <정희진의 공부> 6월호를 듣는데 때마침 ‘학습된 무기력일까? 희망일까?’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정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 데이트폭력이든 우리는 대부분 피해자가 무기력에 빠져서 그러니까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그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희진은 도리어 그런 상황 속의 피해자들은 ‘학습된 희망’ 때문에 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 사람이 언젠가는 달라질 거야’ ‘술을 마셨을 때만 저러는 거야, 원래는 착한 사람이야.’ ‘내가 바꿀 수 있을 거야’ ‘나 아니면 저 사람을 바꿀 수 없어’ ‘저러다 말 거야’ ‘좋은 사람이니까 달라질 거야, 바뀔 거야’ 이런 희망고문 같은 것들- 가정이나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인 자신의 배우자 또는 연인이 언젠가는 바뀔 거라는, 자신(만)이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못해서 결국 더 큰 희생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카디프, 바이 더 시》의 대부분의 여성들도 그렇다. 운 좋게 벗어난다 한들 그 트라우마와 불안 공포는 평생 그녀들을 따라다닌다. 살아있어도 삶은 지옥이다.

여자들아, 조금만 낌새가 이상하면 도망쳐라....... 당신은 그를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그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당신이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언젠가는 그가 바뀔 거라는 희망은 결국 당신을 무덤으로 이끌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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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6-13 15: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 제가 너무나 싫어하는 이야기네요. ㅠㅠ 리뷰만 읽어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젊은 교수도 그렇지만 저 늙은 교수도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는데 너무 짜증납니다. 그 상황에 넘어가는 여자도 너무 답답하고, 저는 그렇게 자신의 힘을 인지하고 그걸 성착취에 써먹는 놈들에게 너무 침뱉어주고 싶습니다. 교수라서, 직장 상사라서 휘두를 수 있는 그 힘. 아 세상 싫으네요 진짜. 환멸 … ㅠㅠ

잠자냥 2023-06-13 15:54   좋아요 2 | URL
다락방 님이 안 좋아하실 거라고 그랬잖아요. ㅎ
저 단편 말고도 다른 단편에서는 의붓아버지가 어린 딸 성착취하려고 하고.....
가족 살해 후 자살하는 애비에.. 난리도 아닙니다. -_-
대학에서 저런 일 일어나는 거 지금도 여전히 ing라 진짜 답답해요........

건수하 2023-06-13 15: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우, 저 조이스 캐롤 오츠 안 읽어봤는데... 읽고 싶지 않으면서도 읽고 싶네요.

정말 <사건> 생각나고.. 저런 남자들 어찌나 많은지.. 특히 대학교, 대학원에서 말이죠.
교수 직업 윤리에 <섹스할 권리>의 챕터 제목 ‘학생과 잠자리하지 않기‘ 포함시켜야 하는 것 아닐까요.

대학생이 성인이라고 자유를 제한한다고 하겠죠? 흥.. 누가 누굴 생각해 주나.

잠자냥 2023-06-13 15:57   좋아요 1 | URL
읽고 싶지 않으면서도 읽고 싶은 그 기분이 딱이네요. ㅎ 저는 이미 읽어버렸고-
저 대학 다닐 때도 저희 과 전공 강사와 학생 사이에 저런 일이 있었어서 더 빡쳤던 거 같아요..... ㅠㅠ
학생들아, 젊은 강사나 늙은 교수나 제발 피해....... 학교 안에서만 만나..... feat. 샤프롱 자냥

Falstaff 2023-06-13 16:10   좋아요 3 | URL
캐롤 오츠,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대중 소설 작가입니다. 근데 괜찮은 작가라서 저도 계속 읽고 있습니다.
아,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대중소설도 좋아합니다. 제가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잘 쓰는 작가인데 유독 애매한 부분이 돌출된다는... 뭐 그런 겁니다. 학생들하고 지퍼 터지는 섹스하는 건 사실 필립 로스하고 존 쿳시가 더 한 거 같습니다. 뭐 굳이 로스의 <죽어가는 짐승>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쿳시의 <추락>도 마찬가지고요.

잠자냥 2023-06-13 16:21   좋아요 1 | URL
골드문트 님이 제가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오츠를 계속 읽게 되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셨네요!

다락방 2023-06-13 16:33   좋아요 3 | URL
추락은 그래서 다시 읽고 싶은데 다시 읽기 싫은 작품입니다. 거기서는 되게 노골적이잖아요. 교수였을 때는 여대생 성착취 가능하지만 교수란 직함을 잃고 나면 나이든 육체노동자 여성과 섹스를 하는. 저 오래전에 되게 좋게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저 존 쿳시 좋아했었는데 …

망고 2023-06-13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조이스 캐롤 오츠 좋아하는 작가라 이 책 샀는데(읽진않음^^)역시나 오츠여사 스타일의 소설이군요 꽉 막힌 답답한 상황 묘사를 너무나 숨막히게 잘 하는 작가라 읽고나면 한동안 기 빠지게 만들죠 그래서 중독성 있어요ㅎㅎㅎ저도 얼른 읽어봐야 겠습니다😆

잠자냥 2023-06-13 22:20   좋아요 1 | URL
오츠 팬 당연히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망고 님 말씀처럼 중독성도 있고요. 그러니까 계속 읽게 되는…. 망고 님도 얼른 읽으세요!

moonnight 2023-06-13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배송되어 온 책이에요. 이런 내용이었군요ㅠㅠ 오츠 여사님 책은 읽고 나면 멘붕 오는데도 꼭 사게 됩니다ㅠㅠ

잠자냥 2023-06-13 22:41   좋아요 2 | URL
음 이 단편은 세 번째 이야기고요. 다른 단편들은 또 분위기가 많이 다르니 재미나게 읽으세요. 이 작품도 끝은 어찌되는지 궁금하실 거예요.

은오 2023-06-14 0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버 짝사랑러 은오 1승

잠자냥 2023-06-14 09:56   좋아요 1 | URL
은오야 땡투 또 잘 받았니?
페이퍼에 건 거라 무슨 책인지 모를 터인데 ㅋㅋㅋㅋㅋ 책 사는 데 보태렴!

은오 2023-06-14 06:29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굿모닝!! 😘 210원 들어왔던데 그렇다면 20,700원짜리 인정투쟁이 아닐까요? ㅋㅋㅋㅋ 가격으로 추측 가능 키키키킥
안그래도 아까 급박해져서 적립금 마일리지 긁어긁어모아서 책 살때 보탰습니다! 🙆‍♀️

잠자냥 2023-06-14 08:45   좋아요 2 | URL
역시 영특하도다

페넬로페 2023-06-1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글을 잘 써도 이제 이런 책을 읽기가 좀 힘들어요 ㅠㅠ

잠자냥 2023-06-14 22:10   좋아요 0 | URL
네 심정적으로 참 힘든 작품입니다…

구단씨 2023-06-15 1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드라마나 소설, 티비 고발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쓰레기 만나서 인생 힘들어졌는데, 또 쓰레기를 만나네. 어떻게 그러지?
그런데요. 가까운 사람이 자기 가족의 보이스피싱을 막아주고 그 가족을 나무랐는데,
세상에나 그 사람이 보이스피싱 당해서 돈 날릴 뻔한 걸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고 알았어요.
그 낌새가 조금 이상해도 마음이 향하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요.
물론 우리는 언제나! 그 낌새를 알아채고 조심해야 합니다!!!

잠자냥 2023-06-15 20:4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나는 아닐 거라고 장담 못할 세상! 경계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은 세상살이입니다…
 
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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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우리 집에 낯선 손님이 찾아온 적이 있다. 11월 늦은 저녁이었나, 조금 이른 밤이었나. 엄마가 시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는지, 그 시절 하던 가게 문을 닫고 오던 길이었는지 또렷하지는 않은데, 아무튼 조금 늦은 시간에 한 아이와 함께 집에 오셨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고 동생들은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들어가자.” 하면서 엄마가 데리고 들어온 그 아이는 내 바로 아래 동생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보였다. 여덟 살이나 아홉 살쯤? 단발머리의 그 소녀는 추위 때문인지 볼이 빨갛게 부르터 있었다. 나도 동생들도 눈이 동그래져서 그 아이를 쳐다본 것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몹시 어색해하던 그 애의 어정쩡한 태도도.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밥상을 차려서는 아이 앞에 가져다주셨고, 그 애는 처음에는 좀 계면쩍어하더니 한 숟갈 두 숟갈 밥을 떠먹다가 이윽고 밥맛에 푹 빠져서는 우리가 슬쩍슬쩍 쳐다본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몰두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가 참 고팠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그 아이에게 별 질문을 하지 않으셨는데 단지, 집에 진짜 오늘 연락하지 않아도 되는지, 하룻밤 여기서 자도 괜찮은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셨다. 동생들은 곧 그 소녀에게서 흥미가 사라졌는지 자기들끼리 놀기 바빴고 아이는 동생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소 짓다가 자기도 모르게 큭큭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나는 어쩐지 그 애가 신경 쓰여서 동생들과 노는 척하면서도 흘끔흘끔 그 아이를 관찰했다. 저 앤 어디서 온 걸까? 집이 없나? 고아일까? 엄마가 이제는 하다 하다 애도 주워 오네?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시절 엄마는 가게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똥개 새끼도 두 번인가 주워 오신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이 이제는 희미한데도 그 아이의 눈빛, 그 미소만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동생들이 노는 걸 지켜보던 그 눈망울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아이답지 않은 그 쓸쓸한 웃음- 나는 내 또래이거나 조금 어린 그 애를 보면서 어쩐지 가엾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추운 곳에 오래 있었던지, 배도 부르고 몸이 따뜻해진 아이는 한구석에서 동생들이 노는 걸 지켜보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엄마는 곧 그 애에게 이부자리를 펼쳐주고 눕혀주었다. 아이는 곤하게 잠이 들었고 그때서야 나는 “엄마 쟤 누구야?” 하고 물었다. 엄마는 처음에는 숨겨둔 딸이라고 그러더니 우리가 아무도 믿지 않자, 그 애가 우리 집 계단에 한참 앉아 있었다는 것, 곧 집에 가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엄마가 외출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어서 집이 어딘지, 추운데 왜 집에 안 가는지 묻기 시작했단다.

아이는 말을 잘 하지 않았지만 띄엄띄엄하는 대답으로 유추하건대 집에서 매를 맞은 것 같고, 그길로 그 얇은 옷차림으로 집을 나와 어디 갈 곳도 없이 우리 집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몇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엄마가 조심조심 질문을 던져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아마도 그 아이는 그렇게 매를 맞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당시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개념조차 일반적이지 않았고 아이가 매를 맞든 방치를 당하든 부부간 싸움이 일어나 아내가 구타당하든 가정폭력 개념은커녕 모두가 ‘남의 집안일’로 치부하던 때라 섣불리 끼어들 수가 없었다. 엄마는 그날 그 애를 집으로 데려다준다니 집이 어딘지 도통 말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얼어 죽을까 봐 일단 데리고 들어오셨단다. “그럼, 저 언니 이제 우리 언니야?” 막내가 물었는데 엄마는 “그래도 집이 있는 아인데, 데려다줘야지…” 말끝을 흐리며 잠든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를 읽다 보니 문득 그 시절 우리 집에 잠시, 아니 단 하루 맡겨졌던 그 소녀가 떠올랐다. <맡겨진 소녀>의 소녀는 무슨 일 때문인지 낯선 집에 맡겨진다. 아이를 데려다준 아빠는 얼마나 무심한지 헤어질 때 작별 인사나 포옹은커녕 아이의 짐조차 제대로 내려주지 않은 채 빨리 자리를 뜬다. 알고 보니 사랑이라고는 없는 소녀의 집안. 그런데도 부부끼리 섹스는 주야장천 하는지 이미 아이들이 여럿인데 거기에 또 엄마가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있어 이 소녀를 먼 친척 집에 맡기게 된 것이다. 소녀는 그 여름, 무심한 듯 따뜻한 친척집- 킨셀라 부부의 돌봄 속에 처음 사랑을, 환대를, 배려를. 다정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녀는 자연스럽게도 “부끄러운 일도 비밀도 없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 또한 이 소녀가 영원히 이 부부의 아이가 되면 안 되는 것일까, 그리하여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되는 것일까 마음을 졸이며 부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소녀에게는 사랑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부모일지언정 부모가 있고, 집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소녀가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마주하는 것은 그 사랑 없음, 무관심과 삭막함, 눈치를 보며 늘 무언가 조심해야만 하는 풍경이다. 그곳에선 그 따뜻한 킨셀라 아저씨와 밀드러드 아줌마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며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럼에도 마침내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소녀는 참지 않는다. 아니 참지 못한다. 부모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 심장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기 킨셀라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려간다. 그리고 토해내는 그 뜨거운 말에는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내 어린 시절 잠시 맡겨졌던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토록 차가운 집으로 돌아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지켜내며 성장했을까. 더는 상처받지도 파괴당하지도 부서지지도 않고 잘 버티고 자랐을까. 망가지지 않고 어른이 되었을까……. 그 아이는 그때 그 시절 우리 집의 따뜻한 밥 한 그릇, 아랫목의 따뜻함을 기억할까. 만일 기억한다면 그 기억은 따뜻함일까, 박탈감일까, 상실감일까. 또 다른 상처일까. 부디 <맡겨진 소녀>의 소녀에게도, 그리고 그때 그 아이에게도 그 여름, 또는 그 겨울의 짧았던 기억이 이 모진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기를, 그리고 그런 환대와 다정함의 기억들이 더 많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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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6-01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도 그랬어요. 경험이 선인걸까. 자라나는 아이에게 다정함은 마땅하지만, 그러나 잠깐 겪어본 것으로 이 아이가 자기 인생에 그 시간을 기쁨으로 기억할지, 돌아와서 그런데 여기는 왜이런가 절망할지. 아이는 자신이 선택해서 그런 부모의 자식이 된 게 아닌데,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역시 특정한 인간들에게만 편중될까. 저도 아이가 이 집에서 계속 자라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그리고 잠자냥 님 말씀대로, 애들한테 잘해주지도 못하면서 낳기는 왜그렇게 많이 낳아요 ㅠㅠ 낳으려고 나은게 아니라 그냥 섹스하고 싶고 피임은 안한거겠죠. ㅠㅠ

잠자냥 2023-06-01 12:4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크리스티네‘의 그 호텔에서의 경험처럼, 이 소녀에게 따뜻한 친척 집의 경험이 살아가는 데 과연 늘 선한 영향만 미칠 것인가.... 쉽지 않은 지점입니다. 그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이 냉대천지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게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예 모르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앎은 상처 맞습니다. 맞고요. 그렇지만 모르고 살아도 그것참... ㅎㅎ

아 증말 저 소녀 집 답 없어요. 언니들도 그렇고 대부분 아이들이 눈칫밥 100단...... -_- 그 애비나 애미나 섹스 좀 그만해라........ 욕이 쳐나오더라고요. 으으

은하수 2023-06-01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소설을 안 읽었는데.. 대충 줄거리 듣고 나니 벌써 가슴이 답답해져서 패스하고 싶네요 ㅠㅠ
섹스인지 짝짓기인지 ...거참 ...
전 그래도 소녀는 세상의 따뜻함이란걸 경험해보고 꿈꿀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런 따뜻함을 모른다는건 너무 가혹하잖아요... 누군가. 도울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우체국 아가씨 읽으면서 내내 이 생각했거든요 제발! 이러면서요... 아..열무비빔밥 맛있게 잘 먹고 답답하면 안되는데요 ㅠ
전 즉방으로 얹히는 저질 위장인데... 아이참...

잠자냥 2023-06-01 14:10   좋아요 2 | URL
그래도 그 부부의 따뜻함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습니다....ㅠㅠ
은하수 님 말씀대로 세상의 따뜻함 1도 모르고 죽는 것보다는 아는 게 좀 낫겠죠...ㅠㅠ
열무비빔밥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6-01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 내용인가 궁금해서 리뷰 기다렸어요!
잠자냥님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 해주시니 더 와닿네요. 그 아이는 어떻게 지냈을까요.. 에효..
세상에는 그래도 어린 아이들에게 따스하게 대해주는 어른들이 있어 다행입니다. <토지>에서 김평산 아들 한복이가 평사리에 나타날 때마다 먹을 걸 챙겨주던 두만네도 떠오르네요.
그래서, 맡겨진 소녀는 다시 킨셀라 부부와 함께 살게 되었나요? 궁금궁금. 궁금하면 읽어보라 하시겠죠? ㅋㅋ

잠자냥 2023-06-01 14:11   좋아요 3 | URL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또 보여줄 수 있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괭님 <토지> 비유에서 슬그머니 웃었습니다. ㅋㅋㅋㅋ 역시 따스함엔 먹을 게 최고!
이 책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어요.....

은오 2023-06-01 19: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이 리뷰에 돈줘라!! 좋아서 두번 읽었습니다

잠자냥 2023-06-01 20:53   좋아요 1 | URL
적립금으로 주긴하는데 이걸로 줄지는? ㅋㅋㅋ

은오 2023-06-01 19: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 저 근데 궁금한 거 있어요!!(많아요)
1. 병렬독서 하시나요? 아니면 한권씩 읽고 한권 다 끝내면 다른 책으로 넘어가시나요? 엄청 두껍고 머리아픈 책이면요?
2. 도서관에 신청도 하시고 전자책도 구입하시는 것 같은데 도서관 신청or전자책 구입or종이책 구입은 어떤 기준인지?
3. 읽은 책은 다 100자평 남기시는 건가요?
4. 막상 읽어보니 별로라 페이지가 잘 안넘어가는 책은 미련없이 덮으시는지 아니면 그래도 붙잡고 완독하시는지?
5. 중고로 팔아버리는 책과 남기는 책은 어떤 기준인지?
음.... 또 뭐있더라. 생각나면 추가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이거 대댓으로나.... 아니면 심심하실때 페이퍼로 길게 써서 알려주시면 넘 감사할거같아염....
- 잠자냥님의 모든걸 알고싶은 은오 올림

독서괭 2023-06-01 20:01   좋아요 3 | URL
인터뷰 날짜를 잡으시죠

독서괭 2023-06-01 20:02   좋아요 2 | URL
저도 몹시 궁금합니다🤭

잠자냥 2023-06-01 20:54   좋아요 2 | URL
괭님 웃겨요. ㅋㅋㅋㅋㅋ 서면 인터뷰 답변은 곧… ㅋ

독서괭 2023-06-01 21:21   좋아요 1 | URL
은오님!! 서면답변 한대요! 빨리 나머지 질문도 추가하세요!! ㅋㅋ

은오 2023-06-02 01:05   좋아요 3 | URL
ㄲㅑ!!!!! 😆😆😆😆
괭님은 역시 잠사모 회장님이십니다ㅋㅋㅋㅋㅋㅋㅋ
5번도 아까 추가하긴 했는데 서면인터뷰 하는 김에 더 추가하자면
6. 책 구입하실때 중점적으로 보시는게 뭔지? 평소 믿고보는 작가라면 그냥 구입해도 되겠지만 아니라면 저자이력이나 뭐 소재나 상받은목록이라든가 뭘 주로 보시는지
더해서 이런책은 아묻따 거른다 하는것도 있으실텐데 궁금합니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6-02 00:14   좋아요 2 | URL
정말 결혼하셔야겠어요.
그럼 궁금증이 싹 해결될듯요~~

은오 2023-06-02 01:0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ㅌ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페넬로페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잠자냥 2023-06-02 08:44   좋아요 4 | URL
그것은 결혼에 대한 환상입니다. 부부끼리 오히려 더 감추고 살던데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3-06-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특이한 경험하셨네요.
어머니의 따뜻한 정이 느껴져요^^

잠자냥 2023-06-02 08:45   좋아요 1 | URL
요즘 같으면 일어날 일이 아니긴 하네요. 저렇게 데리고 들어오면 바로 신고당할 ㅋㅋㅋ

책먼지 2023-06-02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잠자냥님의 무심한 다정함은 어머님에게서 온 것이었나요!!! 어릴 때 열쇠 까먹고 외출하는 바람에 계단에 앉아서 어른들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으면 이웃집에서 돌봐주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위의 은오님 질문 리스트 저도 완전 궁금!!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답변해주셔야 합니다!!!

잠자냥 2023-06-02 11:09   좋아요 1 | URL
아니 그날 혹시 왔던 소녀가 먼지 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에는 그러고 보니 열쇠아동이란 말도 있었죠...
은오 님의 저 질문은 조만간.. 곧 ㅋㅋㅋㅋㅋ

책먼지 2023-06-02 11:2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혹시 그 댁의 잃어버린 딸??!!! 언니!!!🥹

자목련 2023-06-02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소설엔 잠자냥 님의 좋은 리뷰!
이런 리뷰를 쓸 수 없겠지만 저도 곧~

잠자냥 2023-06-02 13:56   좋아요 0 | URL
자목련 님의 섬세한 리뷰도 기대할게요!

케이 2023-06-02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퇴근 길 잠자냥님 글 읽고 눈시울이 붉어 졌네요. 아동 학대하는 인간이 이 세상 최고의 말종이라 생각해요. 얇은 책이라고 하시니 저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잠자냥 2023-06-02 17:24   좋아요 0 | URL
케이 님은 쌍둥이들 때문에 이 책이 더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아요. 짧은 작품이지만 울림이 남다르니 꼭 읽어보세요~

구단씨 2023-06-09 0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짧은 분량의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서 죽을 뻔했어요. ㅠㅠ
아, 진짜 부모란 어때야 하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이 부부에게 맡겨진 시간동안 소녀가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어떤 역할을 할까 싶기도 했고요.
소녀가 현실로 돌아가 부모와 살게 되면서, 이때의 시간이 꿈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어쩌나 싶고요.
하아....
잠자냥님의 그 시간 속 소녀의 안부가 궁금했는데, 글쎄요, 저는 이미 그 안부를 확인한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댓글 쓰다 보니 너무 두서없네요. 저의 머릿속의 말들이 입안에 갇혀서 못 나오는 것 같아요.

잠자냥 2023-06-09 12:49   좋아요 0 | URL
네 이 작품 참.... 짧고 담백한 서술인데도 참 먹먹하게 만들죠.
구단씨 님의 심정이 절로 이해가 됩니다.
그 오래전 저희 집에 왔던 소녀가 잘 성장했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이 책의 소녀도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