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들
안 세르 지음, 길경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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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라는 직업은 생각해 보면 참 특별한 느낌이 든다. 과외선생도 아니고 누군가의 집안에 머물면서 함께 생활하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니, 일과 사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셈이니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그럼에도 18~19세기의 문학작품들을 보면 가정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 무렵 여성 작가들이 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에서 가정교사라는 직업은 흔하다. 그들은 대개 배움은 있으나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거나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이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실제로 생활하면서 온갖 차별과 멸시를 감내한다. 그즈음 문학작품의 이런 묘사들을 읽다 보면, 당시 여성 가정교사들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일도 흔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물론 그 가정의 남자 주인과 (때로는 여자 주인과) 자발적으로 로맨스+성적 관계를 맺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읽은 <가정교사들>은 이런 면에서 조금 남다르다. 아니 많이 특이하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가정교사의 이미지-가난한 집안 출신의, 비혼의 나이 든 처녀, 자신을 이 답답한 집구석에서 구출해줄 멋진 남성과의 로맨스를 꿈꾸지만 이룰 가능성은 딱히 없어 보이는, 그래서 욕구불만에 쌓인-를 완벽하게 뒤엎는다. 섹스, 그러니까 성애적 관계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그 관계는 집 안이 아니라 집 밖에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이 가정교사들이 주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이끈다. 이게 가능하다고? 이런 사실을 알면 그 가정교사들을 고용한 이가 당장 그 행실을 문제 삼아 해고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 소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용주인 오스퇴르 부부는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고 묵인한다, 부부 중 남편, 그러니까 집안의 가장인 오스퇴르는 자신이 고용한 가정교사들의 성생활을 물론 알고 있다. 그는 가장이므로 자기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의무과 권리에 충실하다. 자신이 고용한 세 명의 젊은 여성 가정교사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의 일탈(?)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북돋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때문에 오스퇴르, 그도 이 성생활에 참여하고 있을까 싶은데 딱히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면 가정교사들은 저마다 남편, 약혼자, 연인 등등 주위에서 인정하는 관계 안에 놓여 있고, 그 관계를 오스퇴르가 낭만적인 관점에서 권장하는 것인가 싶은데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가정교사들의 섹스 라이프를 적극 권장한다고? 참으로 기묘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집에서 매일 사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사냥감이 부족하다. 저 남자는 몸이 꽉 잡힌 채로 핥아지고 깨물리고 잡아먹힐 것이다.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난 그는 녹초가 될 것이고, 그제야 그들은 그를 놓아줄 것이다. 그는 마치 갓난아기처럼 초원의 야생 풀숲에 발가벗은 채로 누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창가에서 낯선 남자가 찾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토록 길고 절망적이던 겨울의 밤들을 추억하게 되리라. (<가정교사들>, 30쪽)



울타리로 막힌 정원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커다란 저택 안에서 어린 소년들을 가르치는 세 가정교사들. 엘레오노르, 로라, 이네스의 주요 일과는 사실, 저택 앞을 지나가는 낯선 남자를 기다리다가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평소에도 남자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그들, 남자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화 주제이다. 순진한 이들은 이 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들이 지금껏 가정교사로서의 생활에만 충실하느라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고, 수줍음 때문에 정원의 철책 뒤에서 남자를 훔쳐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착각. 그녀들은 날이 저물어 어둠이 깔리면 마치 거대한 죽은 나비들처럼 정원의 철문에 바짝 달라붙어 지나가는 남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유혹해 정원으로 끌어들여 온갖 쾌락을 맛본다.

그들은 지금까지 ‘낯선 남자들’을 여럿 경험했다. 그것도 셋이 함께. 그들은 낯선 남자들이 다가올 때 크나큰 기쁨을 느낀다. 때때로 그것은 그들의 가장 큰 기쁨이기도 하다. ‘남자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다가와, 절대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유혹의 은밀한 경고를 받았을 때, 그들은 절대 권력’(41쪽)을 갖게 된다. 남자를 꼼짝달싹 못하게 ‘소비’하고 나면, 그러니까 남자를 ‘정복’하고 나면 그들은 공허해진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었더라면, 세 사람 사이의 화합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절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욕망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늘 낯선 남자들만이 오갈 뿐인가 싶은데 “그들은 순진하지 않다.” 엘레오노르는 톰과 6년 동안 동거했고, 로라는 일곱 번의 연애 경험이 있으며, 이네스는 아기가 있다.

아니 뭐라고?! 충격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간 동거했던 파트너가 있고, 일곱 번의 연애 경험이 있으며, 아기도 있는 젊은 여성이 가정교사로 일하는 정원에서 낯선 남자들을 유혹해 벌이는 쾌락의 파티라니. 게다가 그걸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집주인들…. 이게 가능하다고? 정말? 에이 소설이니까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왜 안 돼? 싶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시공간이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우화나 동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확실하게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다. 이 정원에서 여자들은 자기 욕망에 완벽하게 충실하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 파트너는 필요 없다. 낯선 남자가 그들에게는 자극적인 향락의 대상이다. 그들은 낯선 이를 보면서 침을 흘린다. “머리카락은 짙은 금빛이 되며, 살결은 더 먹음직스러워지고, 목소리는 더 매력적이게 된다.”(57쪽) 그들은 남자를 ‘소비’하고 ‘정복’한다. 낯선 남자를 ‘사냥’하러 간다. 또 그들은 ‘그물을 꺼내어 그를 잡으러 가두러 간다.’(29쪽) 소비/정복/사냥(헌팅)/잡아 가두다/먹음직스럽다 등등의 언어는 지금껏 남자가 여자에게 플러팅하거나 구애에 성공해서 섹스까지 이르렀을 때 주로 사용하던 표현들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여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여자도 마찬가지로 먹음직스러운 남자를 사냥하고 잡아 가둬서 마음껏 소비하고 정복하고 차버릴 수 있다. 이 가정교사들은 그렇게 욕망에 충실하다.

문제는 이들을 고용한 집주인들의 반응이다. 이들은 왜 알면서도 묵인할까? 이 작품에서 오스퇴르는 가정교사들을 감시하고 지켜보고 통제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들에게 관음의 시선을 보내는 첫 번째 남자이기도 하다. 오스퇴르는 이 가정교사들이 처음 정원으로 들어서던 날 감탄으로 전율한다. 그에게 ‘삶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기쁨으로 두 손을 비비면서 거실에서 펄쩍펄쩍 뛰었’(47~48쪽)을 정도이다. 그는 왜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일까? 그에게 그녀들은 ‘기억과 욕망을 한가득 안고’ 들어오는 존재이다. 그 ‘기억’이란 자신이 욕망으로 들끓던 시절의 기억이리라. 그는 가정교사들을 보면서 “그들의 꿈에 걸려 있는 낯선 남자들, 앞으로 태어날 그들의 아이들, 앞으로 찾아올 그들의 사랑, 끝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선조들”을 상상하면서 기뻐한다. 그러니까 오랜 결혼 생활로 권태에 빠진 이 가부장에게 타인의 욕망을 엿보고 그 욕망의 결실들을 자신이 통제하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다. 오스퇴르는 집의 ‘중심’에서 시계처럼 감시하는 것을 자신의 가장 큰 의무로 여기고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편 오스퇴르 부인은 가정교사들에게 알맞은 짝을 찾아서 그들을 결혼시키는 게 큰 목표이다. 결혼으로 ‘가정교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머리를 정돈하고, 표정을 고치고, 몸을 바꾸고, 그들을 자제시키고 유순하게 만들어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으리라는 희망’(85쪽)을 버리지 못한다. 이 오스퇴르 부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일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이미 그 삶은 권태로워서 타인의 로맨스와 욕망을 지켜보거나 통제하면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는 가부장제 작동방식의 은유로 읽힌다.

그러나 오스퇴르 부부로 상징되는 가부장제는 개인의 욕망이 이미 거세되었거나 소멸해 버렸기에 권태롭기 짝이 없다. 사회에서 권장하는 이른바 정상적인 짝을 만나서 로맨스에 빠져버리면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제도화된 코스일 뿐이다. 이 코스는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이 가는 과정이므로 그들은 또 다시 권태에 빠질 뿐이다. 그래서 가정교사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려 낯선 남자가 온전히 자신들의 것이기를, 자신들에게 속하기를 강렬하게 원하면서 ‘사랑’에 빠져버리자 오스퇴르 부부는 맥이 풀리고 만다. 가정교사들의 욕망은 자연 상태에서 날것 그대로여야 하거늘! 사랑에 빠진 가정교사들은 대담함을 잃어버리고 유순해진다. 이런 그녀들을 오스퇴르 부부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이다. 그녀들과 사랑을 나눈 낯선 남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애초에 그가 사랑했던 것은 단호하고 냉정한 가정교사들이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져 잠옷 바람으로 발코니에 서서 한숨을 내쉬거나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며 그를 맞이하는 가정교사들은 이제 매력을 잃어버린다. 그는 그들을 자신이 사랑하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애쓴다. 그녀들에게 다시 권력을 쥐어주고 싶다. 그러나 이미 욕망이 거세된 이 관계에서 욕망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노라면 이성애 로맨스와 그 로맨스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부장제 사회가 실은 여성 또는 인간의 욕망은 거세되거나 어느 시점에 소멸한 채 기능적으로만 작동하고 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러한 세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낯선 남자를 욕망할 때 생기에 넘친다. 그런 그녀들을 지켜보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다(이 작품에서는 오스퇴르 외에도 또 한 사람의 지켜보는 눈이 있다. 그는 늙은 남자로, 그 눈-망원경-은 더 적나라하게 그녀들을 훔쳐본다). 그들이 낯선 이와 정원(자연)에서 정사를 벌일 때 지켜보는 눈들도 더 생생히 빛난다. 관음하는 그들도 삶의 환희에 차오른다. 그런데 그녀들이 사랑에 빠지고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이 모든 뜨거움들-욕망은 찬물을 끼얹듯이 소멸하고 만다. 심지어 관음의 시선을 알고 흥분하던(때로는 그 시선을 더 도발하던) 그녀들조차도 지켜보는 시선이 사라지자 욕망이 시들해진다. 자신들의 욕망조차 남성의 관음의 시선에 익숙해진 여성들의 은유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음의 시선에 끊임없이 자신을 노출하면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현대인. 그리하여 그 시선이 사라질 때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것조차 시들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톰과 10년을 함께 살았고, 아이 두셋을 낳았으며, 집 한 채를 갖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그들은 마흔 살, 쉰 살, 아마도 여든 살까지 살았다. 가정교사들 각자는 가볍고 빛이 나는 거대한 가방처럼 부풀어진 꿈의 다발로 이루어졌다. (61쪽)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정하는 관계로 맺어져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고, 아이들을 낳고 집을 마련하고 마흔 쉰 예순 여든 그렇게 늙어가는 인생. 그러나 어느 순간 욕망은 소멸하거나 거세되어 오직 권태만 남는 삶. 애초에 이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할 뿐임을 이 작품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권태에 젖은 그들이 더 생기 넘치는 집을 찾아 나선들 “그곳에서도 누군가는 오스퇴르 씨의 역할을 할 것이고, 다른 이도 마찬가지다. 노인의 역할도, 낯선 남자들의 역할도, 구혼자들의 역할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철문이, 똑같은 정원이, 똑같은 세계가 똑같은 실들로 짜여 있을 것이다.”(86쪽) 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전복할 수 있지만 정작 그 욕망이 펼쳐지는 이 세계는 영원히 닫혀 있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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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08 1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리뷰의 특히나 마지막 단락을 읽다보니 아침 출근길에 읽은 실비아 페데리치의 이 말이 떠오릅니다.

˝여성이 악마에게 돈이 없다고 가난하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악마가 나타나는 전형적 방식입니다. 그러면 악마는 나의 노예가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계약이 이뤄집니다. 악마가 돈을 좀 주고 그 대가로 여성의 몸에 노예라는 표시를 새깁니다.… 제가 언제나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악마와 마녀의 관계가 오늘날의 결혼관계의 고전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들의 후손이다 中 에서

완전히 다른 얘긴데요, 가정교사 와 집주인의 성적인 관계에 대해서 말이지요, 그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였는데 지금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그런데 말하면 아마 잠자냥 님은 아시겠지. 그러니까 그냥 얘기해볼게요. 남자주인공이 아마 섹스 중독 이었던 것 같고요, 집에 왔는데 어린 딸의 가정교사(였나 베이비시터였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터가 아이 아빠가 오니 집에 돌아가기 전에 샤워를 했어요. 아이의 아버지는 소파에서 강제로 이 시터를 강간하려는 걸로 기억하는데요, 밑에서 시터가 몸부림치고 소리를내자 아이가 무언가로 아빠의 등을 찌릅니다. ˝우리 선생님 아프게 하지마!˝ 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아빠는 섹스중독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잠자냥 님의 이 리뷰에서는 주인집 남자와는 성적인 관계가 나오지 않는 것 같지만, 어쩐지 그 영화 생각이 났어요. 잠자냥 님, 제목 아시죠? ㅎㅎ

단발머리 2023-08-08 11:17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지금 급 당황 ㅋㅋㅋㅋ 몰라서 검색하고 계십니다. 기다리세요 ㅎㅎ

책읽는나무 2023-08-08 11:50   좋아요 1 | URL
요즘 잠자냥 님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두 번이나 댓글에서 읽었는데...설마....또?ㅋㅋㅋ

잠자냥 2023-08-08 11:58   좋아요 3 | URL
에엥? 모르는데요? 제가 섹중독자 이야기는 별로 흥미가 없어서...? ㅋㅋㅋㅋ
근데 뭐지 검색해보고 싶다...... 검색해보니 본 거 아닐까.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8-08 12:50   좋아요 0 | URL
되게 유명한 영화거든요? 저 퍼뜩 <무릎과 무릎 사이> 였나 싶어 검색하니 이건 한국 영화네요? <당신의 다리 사이>였나 검색해보니 여기엔 제가 말한 장면에 대한 언급은 없고 … 당신의 다리 사이, 이것 같은데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여름에 봐야겠네요. 흠흠.

잠자냥 2023-08-08 13:30   좋아요 0 | URL
<당신의 다리 사이>는 저도 본 거 같은데... 으음.

단발머리 2023-08-08 11: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임신하고 출산하기 전에도 뜨거운 욕망이 단번에 사그라드는 경험에 대해 저는 좀 더 고찰을 해보고 싶습니다. 낭만적 사랑의 유통기한,은 대체, 얼마나 짧은 것인가,에 대해서요^^

잠자냥 2023-08-08 11:59   좋아요 2 | URL
사랑의 유통기한이라기보다는 어쩌면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사랑한다는 게 불가능한 존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사랑이라고 포장하지만... 결국은 그냥 육욕이고 친밀감의 표현이고 뭐 그런 거 아닌가.....-_-;;

은오 2023-08-09 02:55   좋아요 1 | URL
대상이 나 자신인가? X
육욕인가? X
영혼만을 사랑하는가? X
친밀감의 표현인가? X
모든걸 알고싶은가? O
사랑인가? O

잠자냥 2023-08-09 09:54   좋아요 1 | URL
모든 걸 알고 싶은 건 지식욕인데... 세상에 읽을 책도 많은데 .... 안 자니?

은오 2023-08-09 10:17   좋아요 1 | URL
잠이 안오네요?! 잠자냥님 때문인가??

잠자냥 2023-08-09 10:24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으로 격렬한 영상을 봤거나 카페인 과다입니다.
자기 전 흡연도 수면방해에 한몫합니다.

은오 2023-08-09 10:25   좋아요 1 | URL
스마트폰으로 잠자냥님을 만나긴 했는데......

책읽는나무 2023-08-08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욕망을 드러내고 사는 삶이 옳은 것인가?
욕망을 다스리고 사는 삶이 옳은 것인가?
권태도 다스리기 나름인 것인가?
물음표가 많이 생기는 소설이로군요!

잠자냥 2023-08-08 11:59   좋아요 2 | URL
읽고 나서도 아리까리한 소설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 또 많은 해석의 여지가 달라질 것 같고요.

은오 2023-08-09 0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헐 ㅋㅋㅋㅋㅋㅋ 이거 이런 내용이었군요.
먹음직스러운 남자 찾는거 그거 극악의 난이도인데.. 저 집 앞엔 먹음직스러운 놈들이 많이 지나다녔나보네....

잠자냥 2023-08-09 09:55   좋아요 1 | URL
극악의 난이도 ㅋㅋㅋㅋㅋ 묘사를 보면 딱히 먹음직스럽지도 않은데 잘도 먹더이다......-_-

2023-08-0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23-08-0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지속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늦게 알게 된 슬픔!
일찍 알아도 슬픈 건 매한가지일까 싶기도 하고요 ㅎ

잠자냥 2023-08-09 11:49   좋아요 0 | URL
일찍 아는 게 좀 더 슬플 거 같기는 해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8-09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되게 신기한 소설이네요?? 다락방님 글에서 ‘남자 잡아먹는 소설‘이라고 봤는데 진짜 잡아먹고 있.. ㅋㅋㅋㅋ 근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이 설득력이 있는 건지 잠자냥님이 설득력이 있는 건지.

잠자냥 2023-08-09 16:5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네 아주 그냥 와구와구 잡아먹습디다.
약간 동화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하고 암튼 그런 작품이에요~

coolcat329 2023-08-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설정이 기이한 게 쉬운 소설 같지가 않네요. 독서토론 책으로 좋을 거 같아요. 기능적으로만 작동하는 결혼제도 저도 종종 생각해보는데 이 책 그 점을 다루고 있네요.

잠자냥 2023-08-09 23:18   좋아요 0 | URL
네 작품은 짧은데 상징적인 부분이 많아서 여러 사람하고 생각을 나누면 재미 있을 거 같아요. 이 글에서 제가 쓰지는 않았지만 소년들하고의 관계도 해석의 여지가 많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