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의 보은 - 초등학생 그림책 6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달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그림책처럼 긴 판형의 그림책은 책꽂이에 꽂기에 키가 맞지 않아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빗자루의 보은>은 그런 점에서도 독특하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확연히 변별적이다. 석판화 같은 느낌을 주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알고 보니 조각을 전공한 화가답게 석필로 섬세하게 그린 것이었다. 진회색과 갈색톤의 색감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주며 한 장씩 액자에 담아둔 것 처럼 멋진 꿈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1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았는데 좀 무서웠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다. 검은 망토를 둘러 온몸을 감싸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마녀의 콧날과 입술선이 매혹적이다. 빗자루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임이 유연하다.

<빗자루의 보은>의 원제는 <Widow's Broom>이다. 번역된 제목은 빗자루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듯한데 원제는 과수댁에 좀더 힘이 실리는 느낌이다. 원작자의 문장인지 번역문장의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장이 단정하고 어휘수준도 적당히 낯설면서 적절하다. '교교한' 이라는 단어는 저학년에게 좀 어려울 것 같지만 새로운 단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비약하지 않고 한 걸음씩 놓는 징검다리처럼 문장의 흐름이 매끄러워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한다.

제목을 약간 바꾸어 쓴 역자의 의도를 생각해보니,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는 미덕에 촛점을 맞추려는 것인가싶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차분한 문장, 그리고 보은이라는 미덕으로도 이 그림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연령에 따라 조금 더 숨은 이야기를 발전시켜 생각을 나누어도 좋겠다.

원제를 보면 작가는 과수댁에 애정을 두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과수댁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지혜로운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늙고 홀로 된 과수댁은 오래되어 별 신통력이 없어 보이는 마녀의 빗자루와 동일시된다. 낡아서 잘 날지도 못하는 빗자루를 마녀가 버리고 혼자 가버렸듯이 과수댁은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도 아니고 별달리 눈에 띄는 존재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수댁은 별다를 것 없는 빗자루를 박대하지 않고 거둔다. 또한 처음 보는 광경이나 생경한 대상에 대하여도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다르다고 놀라지도 않고 내치지도 않는다. 무심한 듯한 이런 행동은 모든 대상이 품고 있는 나름의 신통력에 대한 믿음으로 보인다. 무심함은 최고경지의 미덕이 아닐까.

어느 날부터 별별 것을 다 도와주는 빗자루를 보고 마침내 한 남자가 길길이 뛴다. 자기보다 더욱 유능해보이는 사람이 된 과수댁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남자가 빗자루에게 가하는 저주의 마음과 그 빗자루를 소유하고 있는 과수댁에 대한 질시의 정도가 다르지 않다. 재산과 아들과 그 외 모든 것을 가진 듯한 남자는 가진 것이 없고 소외된 빗자루와 과수댁을 박해하려 든다. 요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것을 화형에 처할 방도를 궁리한다. 마녀사냥이라도 하려는 계략이다. 현대식으로 풀자면 소외층에 대한 핍박이다.

여기서, 과수댁이 불의에 대항하는 방식은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사려 깊고 통쾌하다.  이 인정 많고 지혜로운 과수댁은 가짜 빗자루와 하얀 페인트 외투를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욕심많고 배타적이며 위압적인 남자들을 쫓아낸다. 전혀 드러나게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긴다. 혼자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빗자루가 들려주는 피아노곡을 감상하는 얼굴에 세상과 관계에 대한 넓고 깊은 통찰이 배어있다. 

멋진 글과 그림, 재미와 상상, 두근거림과 낯설음 그리고 진지한 생각까지 던져주는 <빗자루의 보은>을 그린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작품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책임있는 작가의식이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든다.

 - 내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때마다 전 "다음에 나올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지요. 적어도 제 다음 작품이 그 전 작품보다는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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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2-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스버그도 설명이 필요없죠. 그 오만함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작가.
이 책 진작에 보았는데 아직이라며 접었는데 혜경님 리뷰는 넘 땡기는걸요^^
일단 보관함에 넣고....

프레이야 2006-02-2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전 이 작가의 그림책을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매력적이에요^^

반딧불,, 2006-02-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이 작가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얼렁 찾아서 보셔요. 반하실거예요.
 
사람을 길들이는 개 쭈구리
소중애 지음, 심창국 그림 / 예림당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소중애 님의 동화는 정말로 재미나다. 아이들을 위해 곱고 바른 언어를 골라 써야지, 아이들에게 반듯한 생각을 심어줘야지, 뭐 이런 딱딱하고 부담되는 생각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가르치려고도 들지 않고 잔소리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읽게 된 <사람을 길들이는 개 쭈구리>는 2년 전 초판되었던 책이니 쭈구리도 그동안 나이를 먹었겠다.

이 책의 매력을 찾아보자면 여러가지다. 먼저, 작가가 자신의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여과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쭈구리랑 살게 되는 과정부터 한달간 떨어져있어야 하는 사정까지 알콩달콩, 엎치락뒤치락 펼쳐진다. 실제 쭈구리의 사진을 곁들여놓고 그 아래 쭈구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해놓은 글은 생각해볼 만할 진지함이 묻어있다. 빨간 옷을 입고 눈망울을 굴리며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쭈구리가 귀엽다. 이 책을 보고 애완견을 기르자고 부모를 조르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 같기도 하다.

쭈구리는 잔뜩 경계심을 놓치 않고 이쁜이를 골탕먹이지만 '작가의 동생'이라는 말을 듣고부터 마음을 푼다. 쭈구리와 이쁜이의 관계는 누이동생사이로 발전한다. 쭈구리라는 이름은 이쁜이(작가의 별칭)가 붙여준 이름이다. 성은 '앗'이다. 주름이 위엄있는 귀족처럼 느껴지는 쭈구리는 그래서 할머니 팬이 많다. 쭈구리의 못생긴(?) 얼굴을 갖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쭈구리가 하는 말은 남에 대해 말이 많은 사람들을 찌른다. 이렇게, 쭈구리가 내뱉는 말과 거침없는 행동이 연이어 웃음을 자아낸다.

쭈구리의 눈과 입을 통해 보여지는 이쁜이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바로 우리들의 행동이기 때문에 가식이 없다. 한여름날,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이쁜이, 방귀냄새 소동, 공원에서 쭈구리가 눈 똥을 휴지로 치우지 않고 민들레를 피우도록 흙으로 덮어두는 이쁜이, 새해첫날 무작정 바다로 가는 이들 남매. 에피소드마다 장난기 가득하며 정이 담뿍 흐른다.

쭈구리는 이쁜이를 애완사람으로 안다.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잘 들을 수 있을까, 하며 이쁜이를 길들이려한다. 하지만 번번이 성공하지 못하고 이들간의 긴장감이 또 어떤 사건을 물고 올까, 흥미진진하다.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갖는 생각을 역으로 그리고 있어서, 사람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3일동안 혼자 두고, 성대수술을 해버리고, 전지한 나무처럼 털을 다 깎아버리고,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수의사와 질이 좋지 않은 사료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편지가 네 통 등장한다. 처음의 두 통은 서로에게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 식으로 알고보면 오히려 상대의 약을 올리는 셈이다. 이걸 읽으면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끝부분에 이쁜이가 쭈구리에게 쓴 편지는 '닭살에 유치의 극치'다. 그런데 우리의 쭈구리는 이런 편지에 바로 무너져버린다. 얼마나 순수하고 착하냐.^^  작가가 진짜 쭈구리에게 쓴 편지는 가장 마지막에 있는데 가족에게 담긴 사랑이 가득하다. 그래도 이쁜이에게 오기 전의 주인, 황선생님 집에서 진돗개 가족과 나누는 대화를 보면 역시 작가는 우리 혈통의 개를 치켜세워주고 있는 것 같다. 퍼그가 아무리 귀족견이라해도 말이다.

이쁜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쭈구리. 역시 사랑은 상대를 길들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알게 모르게 길들여지는 게 아닐까. 쭈구리의 깊은 생각이 또르르 말려올라간 꼬리에 힘있게 매달려있는 것 같아보인다. 쭈구리는 꼬리로 생각을 전한다고 하지. 심창국님의 만화같은 삽화는 이쁜이와 쭈구리의 실물을 퍽이나 닮게 그렸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둘의 얼굴도 닮아있다. 이 동화는 유쾌발랄함 중에  진지한 생각이 담겨 흐뭇한 웃음을 불러낸다. 3,4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보면 재미있어할 것 같다. 참고로, 쭈구리는 사람이라면 별로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 중에서 물불 가릴 줄 모르는 애들을 제일 무서워한다.~

문득 다니엘 페나크가 쓴 <까보 까보슈>가 생각난다. 이 책의 뒷면에 다니엘 페나크는 이렇게 써 놓았다.

- 개를 길들이려고 하지 말고 개에게 길들여지지도 말라는 거다...... 하지만 최소한의 훈련은 필요하다. 하지만 훈련이란 서로의 자존심을 존중할 것을 가르치는 일이다. "개의 자존심이란?" - 개답게 살아가는 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대로 된 훈련사는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가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행동하고자 한다면 자기 곁에 사는 개의 자존심을 존중해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정의 규칙이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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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학년 교실 희원이 자리, 이제 마지막이네, 또 새로운 시작~~)

 

희원이 초등학교 졸업식을 했다.

아침에 그동안 수고 많으신 담임선생님께 조그마한 선물을 아이편으로 먼저 보내고 10시30분까지 강당으로 갔다. 특이한 점은, 졸업생 모두에게 한 명당 한 장씩의 상장이 수여된 것이다. 공평한 분배? 희원이는 공로상을 받았다. 대외입상으로 학교의 명예를 드높인 학생에게 수여한다고 한다. 나는 경쟁심이나 우열의식을 배제한다는 좋은 취지로 받아들였는데, 옆지기는 평준화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한마디 하는 게다. 이미 미국식 평준화, 열린교육 때문에 초등아이들이 몰개성화되고 기초학력은 부실하고 동기부여도 덜 되어 있다는 생각은 나도 했던 바여서 옆지기의 불만이 무얼 말하고 싶은건지 이해되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니 학업우수상을 비롯해 뭐다뭐다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와 생각해보면 그게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의미도 별 없긴 하다. 그리고 사람이 주는 종잇장에 연연해하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아이들로 하여금 차별이 아닌, 차등은 인식시킬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열심히 한 부분에 대한 공정한 칭찬을 받음으로써 자부심도 갖게 되고 더 나은 동기부여가 되어 발전적인 행동습관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희원이가 오늘 보인 반응만 보아도 확실히 이런 식의 상장은 아이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주지 못한다.  아주 열심히 해도 덜 한 아이들과 보상은 같더라, 또는 그럭저럭 대충 해도 같은 보상이 오더라, 는 식의 생활습관이 배이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일부 아이들 상장 받는데 들러리 서기 위해 서 있는 것 같다는 불만을 토로하며 졸업식장에 불참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학생들이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다면 성인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에도 나보다 나은 결실을 맺어 정당한 보상을 받는 사람을 순수한 마음으로 축하하며 박수쳐 줄 줄 모르는 사람이 되기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열심히 하여 댓가를 받는 사람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겸허하게 인정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슬기도 배워야하지 않을까. 경쟁을 부추기는 엄마들의 마음부터 좀 자제한다면 학교에서 이런 방침을 세우지 않았을 것 같다. 

양쪽 어른들이 모두 오셔서 축하해주고 사진도 찍고 예약해둔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맛나게 먹었다. 오늘 날씨가 봄날처럼 따스해서 마음이 푸근했다. 화단 옆에서 남자친구 두명이랑 함께 사진도 찍었는데, 괜히 어색해하며 얼굴 돌리고 찍은 사진.. ㅎㅎㅎ 안 찍으려고 하는 것을 겨우 찍었다. 남자친구엄마가 한번만 모델 서주라잉~, 이렇게 희원이를 달래설랑.. ^^ 그래도 남는 건 사진인겨~~ 

 

                                  (포근한 햇살 내리쬐는 학교마당에서 남자친구들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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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2-20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어 생각하는건데요, 결혼해서 아이 낳고 그 아이 키울 때가 제일 보람있고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그땐 그것만 생각하잖아요.
희원이가 자랑스러우셨겠습니다. 축하드려요.^^

아영엄마 2006-02-2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원이에게 졸업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

水巖 2006-02-2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원이 졸업 축하합니다. 바쁘시고 기쁘시고 하셨겠군요.

프레이야 2006-02-20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아영엄마님, 그리고 수암님, 감~사~합니다. 저도 덩달아 들뜬 하루였어요.^^

하늘바람 2006-02-2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원이 졸업 축하드려요

세실 2006-02-2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희원이 졸업 축하드립니다.

ceylontea 2006-02-2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졸업을 축하해요.. ^^

프레이야 2006-02-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세실님, 감사합니다. 뿌듯~
실론티님, 올만이에요. 오늘 봄날처럼 따듯해요. 잘지내시죠? 감사합니다.^^
 
대학이 이런 거야? 반올림 7
캐롤린 발두 지음, 김혜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11월
절판


난 미래에 대해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냐. 평범함에 대해서라구. 학교를 고르는 건 정말 불가능해 보여. 왜냐면 그건 잘못될 첫 번째 결정, 첫 번째 장소로 보이니까.-14쪽

물론 내 첫 번째 우상은 프로이트였다. 그가 발견한 것들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시작' 때문에,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계급 사회에 도전한 것 때문에.-30쪽

우리는 전형적인 새 룸메이트 관계였다. 상호의존적이지만 약간 거리가 있는 관계. 결핍에 의한 우정 같은 것. 이런 우정은 방사성 낙진 대피소에서도 생길 만한 것이다.-44쪽

헨리를 그런 모호한 단어로 설명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헨리는 내게는 정말 진짜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얼굴과 말뿐인 사람들,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고 나와 함께 어떤 일을 하기도 하지만 절대 확실히 그려 낼 수 없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건 그림과 조각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 ...... 그래서 나는 테드에게 헨리가 그런 허상 같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면서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45쪽

사실 난 여기서 발견한, 정치엔 무심하고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있는 이 창조적인 유형의 인간들에게 익숙해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52쪽

이건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제나 내 것을 낚아채가서 먼저 읽거나 먹어 치우는 형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분명 중산층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가난의 고통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동생이 됨으로써. 가난 방지 프로그램 회의 같은 데서는 맏이들은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59쪽

군중의 소음과 혼란 속에서 피곤한 발바닥 밑으로 전해져 오는 지하철의 어렴풋한 진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그 진동에 대해선 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머릿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는 인식하고 있다. 발 밑에 보이지 않지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하나의 도시가 있다는 것을.-62쪽

섹스, 혁명, 과학. 아마도 이 곳에서의 내 인생의 세 가지 기초 필수품. 그리고 그것들을 이해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4년밖에 없다. 그것들이 그렇게 기본적일까? 헨리는 아마 아니라고 할 것이다. 헨리는 인생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할 것이다. -93쪽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나는 영영 준비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사회는 나를 협박한다.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게 삶인가? 방향도 없고 감정도 없고, 오로지 야망만이 있는 것이?...... 버스는 더럽고 낡고 불편했다. 내 늙은 할머니와 있을 때처럼. 나는 반감을 느끼고, 반감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112쪽

나도 내 부모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뒤의 삶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전화번호나 양말 바구니 뒤에 놓여진 아파트 열쇠 같은 것이 없는 삶은.-136쪽

그럼. 그 만족시킬 수 없는 입맛하며 긴 머리카락에 빨랫감도. 맞아, 빨랫감 꼭 가져오렴! 난 네 양말과 더러운 속옷도 그립거든. 네 불쌍하고, 지치고, 배고픈 빨래 덩어리 말이다.-147쪽

아일랜드에서는 꿈에 아기가 나오면 운이 나쁘다고 한다. 그건 죽음이 다가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53쪽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모습에 구토를 느꼈다. 그들은 절대 올려다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이 복잡한 도시에서 역의 천장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고.-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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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3-03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 3이상 권함
 
대학이 이런 거야? 반올림 7
캐롤린 발두 지음, 김혜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이 이런거야?>는 '바람의 아이들'에서 청소년 책의 시리즈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라고 약간은 투덜거리며 방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헨리와 데이비드는 외모나 취향에서 조금은 다른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데이비드가 여때까지의 삶과 '안녕'을 고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버리는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쓴 짧은 시를 발견한다. 여기에 나열되어있는 단어들은 단절되고 파격적이기도 하여 데이비드의 혼란과 설렘의 양면적 심정을 보여준다.

헨리와 데이비드가 대학교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고민을 하는 대목은 오래전 나의 그 시절을 반추하게 했다. 나는 이들처럼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 같다. 성적에 맞추어, 평소 해보고 싶었던 과목에 눈을 두고, 그렇게 결정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첫단추부터 잘못'일 수 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커리큘럼과는 다른, 대학교의 학부과정을 비춰주는 과목 중 하나가 헨리가 들어야했던 과목, '창의적 움직임'이다. 나중에 보니 이것은 발레수업이었다. 이 외에도 군데군데 재치있는 문장으로 역설적인 웃음을 불러낸다. 팝과 클래식의 음악, 고전작품 등도 언급되며 폭넓은 견해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책날개에 소개되어있는 것처럼 대학입시와 대학의 실상에 관한 책이라고 보기엔 거리감이 있다. 차라리 이 책을 혼돈과 치기의 시절에 관한 일면적 체험 정도라고 보면 실망하지 않을 듯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책임 앞에서 얼마나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좋은 시간들을 그렇게 흘려보냈던가.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대학 1학년 시절이다. 그 시절은 심리학을 공부하고픈 데이비드가 느끼는 것처럼 인생에 공백으로 남아 존재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진정한 학문에 대한 열정 그러나 부적절한 방법, 진지한 사랑과 견실한 우정에 대한 갈망 그러나 진실에의 몽매함,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에 대한 무지함과 지적욕구 그러나 막연함. 이런 것들이 늘 대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푹 젖어들지 못하고 겉돌게 했던 것만 같다.

데이비드가 느끼는 이와 비슷한 감정들이 나른하게 서술되다가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헨리와의 확고한 관계가 세상의 모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이비드에게 어느 날 테드와 여자친구가 들어온다. 데이비드가 느끼고 있지만 꼭 집어 토로할 수도 없는 새로운 것들에의 충격은 급진진보주의자라 불릴만한 룸메이트의 죽음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는다. 세상도 사람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었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토록 친했고 거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헨리에게서마저 소원함을 느끼고 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야기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되는 데이비드. 그는 진짜 삶은 언제부터냐고 묻기를 중단해야할지 모른다. 진짜 삶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내리는 지하철 역에 나도 따라 내릴 수 없는, 나는 다음 역 혹은 몇 구역을 더 가서 내려야하는, 그런 상황이 우리 삶의 실체가 아닐까.

데이비드가 쓴 시, '안녕'은 '깨어짐, 부서짐, 무너짐, 파열, 파괴'로 끝난다. 이는 부활, 재탄생의 의미로 이어짐을 독자는 기대하지만, 작가는 종결부분에서 그런 기대를 깬다. 그저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영혼의 방황을 하는 데이비드를 홀로 남겨둔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삶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이 이런 거야?>는 '삶이 이런 거야?'로 대체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혼잡한 도시의 지하철 역 천정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별자리를 보는 사람이다.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천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라고 느끼기도 한다. 역시 내가 발 딛고 있는 지상이 천국이지싶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들뜨지 않는 어조로 희망을 주고 있다.

ps: 이 책의 역자는 <프루스트 클럽>의 저자이기도 하다. 툭툭 끊기는 듯한 문체를 의도적으로 써서 데이비드의 혼란과 단절감을 나타내려한 것인지 원래 그런 문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프루스트 클럽>에서도 비슷한 문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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