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의 보은 - 초등학생 그림책 6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달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그림책처럼 긴 판형의 그림책은 책꽂이에 꽂기에 키가 맞지 않아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빗자루의 보은>은 그런 점에서도 독특하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확연히 변별적이다. 석판화 같은 느낌을 주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알고 보니 조각을 전공한 화가답게 석필로 섬세하게 그린 것이었다. 진회색과 갈색톤의 색감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주며 한 장씩 액자에 담아둔 것 처럼 멋진 꿈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1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았는데 좀 무서웠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다. 검은 망토를 둘러 온몸을 감싸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마녀의 콧날과 입술선이 매혹적이다. 빗자루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임이 유연하다.

<빗자루의 보은>의 원제는 <Widow's Broom>이다. 번역된 제목은 빗자루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듯한데 원제는 과수댁에 좀더 힘이 실리는 느낌이다. 원작자의 문장인지 번역문장의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장이 단정하고 어휘수준도 적당히 낯설면서 적절하다. '교교한' 이라는 단어는 저학년에게 좀 어려울 것 같지만 새로운 단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비약하지 않고 한 걸음씩 놓는 징검다리처럼 문장의 흐름이 매끄러워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한다.

제목을 약간 바꾸어 쓴 역자의 의도를 생각해보니,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는 미덕에 촛점을 맞추려는 것인가싶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차분한 문장, 그리고 보은이라는 미덕으로도 이 그림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연령에 따라 조금 더 숨은 이야기를 발전시켜 생각을 나누어도 좋겠다.

원제를 보면 작가는 과수댁에 애정을 두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과수댁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지혜로운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늙고 홀로 된 과수댁은 오래되어 별 신통력이 없어 보이는 마녀의 빗자루와 동일시된다. 낡아서 잘 날지도 못하는 빗자루를 마녀가 버리고 혼자 가버렸듯이 과수댁은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도 아니고 별달리 눈에 띄는 존재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수댁은 별다를 것 없는 빗자루를 박대하지 않고 거둔다. 또한 처음 보는 광경이나 생경한 대상에 대하여도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다르다고 놀라지도 않고 내치지도 않는다. 무심한 듯한 이런 행동은 모든 대상이 품고 있는 나름의 신통력에 대한 믿음으로 보인다. 무심함은 최고경지의 미덕이 아닐까.

어느 날부터 별별 것을 다 도와주는 빗자루를 보고 마침내 한 남자가 길길이 뛴다. 자기보다 더욱 유능해보이는 사람이 된 과수댁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남자가 빗자루에게 가하는 저주의 마음과 그 빗자루를 소유하고 있는 과수댁에 대한 질시의 정도가 다르지 않다. 재산과 아들과 그 외 모든 것을 가진 듯한 남자는 가진 것이 없고 소외된 빗자루와 과수댁을 박해하려 든다. 요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것을 화형에 처할 방도를 궁리한다. 마녀사냥이라도 하려는 계략이다. 현대식으로 풀자면 소외층에 대한 핍박이다.

여기서, 과수댁이 불의에 대항하는 방식은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사려 깊고 통쾌하다.  이 인정 많고 지혜로운 과수댁은 가짜 빗자루와 하얀 페인트 외투를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욕심많고 배타적이며 위압적인 남자들을 쫓아낸다. 전혀 드러나게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긴다. 혼자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빗자루가 들려주는 피아노곡을 감상하는 얼굴에 세상과 관계에 대한 넓고 깊은 통찰이 배어있다. 

멋진 글과 그림, 재미와 상상, 두근거림과 낯설음 그리고 진지한 생각까지 던져주는 <빗자루의 보은>을 그린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작품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책임있는 작가의식이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든다.

 - 내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때마다 전 "다음에 나올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지요. 적어도 제 다음 작품이 그 전 작품보다는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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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2-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스버그도 설명이 필요없죠. 그 오만함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작가.
이 책 진작에 보았는데 아직이라며 접었는데 혜경님 리뷰는 넘 땡기는걸요^^
일단 보관함에 넣고....

프레이야 2006-02-2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전 이 작가의 그림책을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매력적이에요^^

반딧불,, 2006-02-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이 작가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얼렁 찾아서 보셔요. 반하실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