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이런 거야? 반올림 7
캐롤린 발두 지음, 김혜진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대학이 이런거야?>는 '바람의 아이들'에서 청소년 책의 시리즈로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진짜 삶은 언제 시작하는 거야?, 라고 약간은 투덜거리며 방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헨리와 데이비드는 외모나 취향에서 조금은 다른 면을 지니고 있으면서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데이비드가 여때까지의 삶과 '안녕'을 고하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버리는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쓴 짧은 시를 발견한다. 여기에 나열되어있는 단어들은 단절되고 파격적이기도 하여 데이비드의 혼란과 설렘의 양면적 심정을 보여준다.

헨리와 데이비드가 대학교를 결정하는 일에서부터 고민을 하는 대목은 오래전 나의 그 시절을 반추하게 했다. 나는 이들처럼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던 것 같다. 성적에 맞추어, 평소 해보고 싶었던 과목에 눈을 두고, 그렇게 결정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들의 표현을 빌자면 '첫단추부터 잘못'일 수 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커리큘럼과는 다른, 대학교의 학부과정을 비춰주는 과목 중 하나가 헨리가 들어야했던 과목, '창의적 움직임'이다. 나중에 보니 이것은 발레수업이었다. 이 외에도 군데군데 재치있는 문장으로 역설적인 웃음을 불러낸다. 팝과 클래식의 음악, 고전작품 등도 언급되며 폭넓은 견해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책날개에 소개되어있는 것처럼 대학입시와 대학의 실상에 관한 책이라고 보기엔 거리감이 있다. 차라리 이 책을 혼돈과 치기의 시절에 관한 일면적 체험 정도라고 보면 실망하지 않을 듯하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와 책임 앞에서 얼마나 흔들리고 휘청거리며, 좋은 시간들을 그렇게 흘려보냈던가.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던 대학 1학년 시절이다. 그 시절은 심리학을 공부하고픈 데이비드가 느끼는 것처럼 인생에 공백으로 남아 존재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진정한 학문에 대한 열정 그러나 부적절한 방법, 진지한 사랑과 견실한 우정에 대한 갈망 그러나 진실에의 몽매함,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에 대한 무지함과 지적욕구 그러나 막연함. 이런 것들이 늘 대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푹 젖어들지 못하고 겉돌게 했던 것만 같다.

데이비드가 느끼는 이와 비슷한 감정들이 나른하게 서술되다가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헨리와의 확고한 관계가 세상의 모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이비드에게 어느 날 테드와 여자친구가 들어온다. 데이비드가 느끼고 있지만 꼭 집어 토로할 수도 없는 새로운 것들에의 충격은 급진진보주의자라 불릴만한 룸메이트의 죽음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는다. 세상도 사람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가 아니었고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토록 친했고 거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헨리에게서마저 소원함을 느끼고 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야기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되는 데이비드. 그는 진짜 삶은 언제부터냐고 묻기를 중단해야할지 모른다. 진짜 삶은 지금 살고 있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내리는 지하철 역에 나도 따라 내릴 수 없는, 나는 다음 역 혹은 몇 구역을 더 가서 내려야하는, 그런 상황이 우리 삶의 실체가 아닐까.

데이비드가 쓴 시, '안녕'은 '깨어짐, 부서짐, 무너짐, 파열, 파괴'로 끝난다. 이는 부활, 재탄생의 의미로 이어짐을 독자는 기대하지만, 작가는 종결부분에서 그런 기대를 깬다. 그저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영혼의 방황을 하는 데이비드를 홀로 남겨둔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삶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은가. <대학이 이런 거야?>는 '삶이 이런 거야?'로 대체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혼잡한 도시의 지하철 역 천정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별자리를 보는 사람이다.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천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라고 느끼기도 한다. 역시 내가 발 딛고 있는 지상이 천국이지싶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들뜨지 않는 어조로 희망을 주고 있다.

ps: 이 책의 역자는 <프루스트 클럽>의 저자이기도 하다. 툭툭 끊기는 듯한 문체를 의도적으로 써서 데이비드의 혼란과 단절감을 나타내려한 것인지 원래 그런 문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프루스트 클럽>에서도 비슷한 문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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