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길들이는 개 쭈구리
소중애 지음, 심창국 그림 / 예림당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소중애 님의 동화는 정말로 재미나다. 아이들을 위해 곱고 바른 언어를 골라 써야지, 아이들에게 반듯한 생각을 심어줘야지, 뭐 이런 딱딱하고 부담되는 생각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가르치려고도 들지 않고 잔소리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읽게 된 <사람을 길들이는 개 쭈구리>는 2년 전 초판되었던 책이니 쭈구리도 그동안 나이를 먹었겠다.

이 책의 매력을 찾아보자면 여러가지다. 먼저, 작가가 자신의 개와 함께 생활하면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일들을 여과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쭈구리랑 살게 되는 과정부터 한달간 떨어져있어야 하는 사정까지 알콩달콩, 엎치락뒤치락 펼쳐진다. 실제 쭈구리의 사진을 곁들여놓고 그 아래 쭈구리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해놓은 글은 생각해볼 만할 진지함이 묻어있다. 빨간 옷을 입고 눈망울을 굴리며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쭈구리가 귀엽다. 이 책을 보고 애완견을 기르자고 부모를 조르는 아이들이 늘어날 것 같기도 하다.

쭈구리는 잔뜩 경계심을 놓치 않고 이쁜이를 골탕먹이지만 '작가의 동생'이라는 말을 듣고부터 마음을 푼다. 쭈구리와 이쁜이의 관계는 누이동생사이로 발전한다. 쭈구리라는 이름은 이쁜이(작가의 별칭)가 붙여준 이름이다. 성은 '앗'이다. 주름이 위엄있는 귀족처럼 느껴지는 쭈구리는 그래서 할머니 팬이 많다. 쭈구리의 못생긴(?) 얼굴을 갖고 이런저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쭈구리가 하는 말은 남에 대해 말이 많은 사람들을 찌른다. 이렇게, 쭈구리가 내뱉는 말과 거침없는 행동이 연이어 웃음을 자아낸다.

쭈구리의 눈과 입을 통해 보여지는 이쁜이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바로 우리들의 행동이기 때문에 가식이 없다. 한여름날, 팬티와 브래지어만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이쁜이, 방귀냄새 소동, 공원에서 쭈구리가 눈 똥을 휴지로 치우지 않고 민들레를 피우도록 흙으로 덮어두는 이쁜이, 새해첫날 무작정 바다로 가는 이들 남매. 에피소드마다 장난기 가득하며 정이 담뿍 흐른다.

쭈구리는 이쁜이를 애완사람으로 안다. 어떻게 하면 내 말을 잘 들을 수 있을까, 하며 이쁜이를 길들이려한다. 하지만 번번이 성공하지 못하고 이들간의 긴장감이 또 어떤 사건을 물고 올까, 흥미진진하다. 사람들이 애완동물에 갖는 생각을 역으로 그리고 있어서, 사람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3일동안 혼자 두고, 성대수술을 해버리고, 전지한 나무처럼 털을 다 깎아버리고,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수의사와 질이 좋지 않은 사료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나무란다.

편지가 네 통 등장한다. 처음의 두 통은 서로에게 잘못한 것을 고백하는 식으로 알고보면 오히려 상대의 약을 올리는 셈이다. 이걸 읽으면 키득키득 웃음이 난다. 끝부분에 이쁜이가 쭈구리에게 쓴 편지는 '닭살에 유치의 극치'다. 그런데 우리의 쭈구리는 이런 편지에 바로 무너져버린다. 얼마나 순수하고 착하냐.^^  작가가 진짜 쭈구리에게 쓴 편지는 가장 마지막에 있는데 가족에게 담긴 사랑이 가득하다. 그래도 이쁜이에게 오기 전의 주인, 황선생님 집에서 진돗개 가족과 나누는 대화를 보면 역시 작가는 우리 혈통의 개를 치켜세워주고 있는 것 같다. 퍼그가 아무리 귀족견이라해도 말이다.

이쁜아, 사랑해~ 라고 말하는 쭈구리. 역시 사랑은 상대를 길들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알게 모르게 길들여지는 게 아닐까. 쭈구리의 깊은 생각이 또르르 말려올라간 꼬리에 힘있게 매달려있는 것 같아보인다. 쭈구리는 꼬리로 생각을 전한다고 하지. 심창국님의 만화같은 삽화는 이쁜이와 쭈구리의 실물을 퍽이나 닮게 그렸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둘의 얼굴도 닮아있다. 이 동화는 유쾌발랄함 중에  진지한 생각이 담겨 흐뭇한 웃음을 불러낸다. 3,4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보면 재미있어할 것 같다. 참고로, 쭈구리는 사람이라면 별로 두려워하지 않지만 그 중에서 물불 가릴 줄 모르는 애들을 제일 무서워한다.~

문득 다니엘 페나크가 쓴 <까보 까보슈>가 생각난다. 이 책의 뒷면에 다니엘 페나크는 이렇게 써 놓았다.

- 개를 길들이려고 하지 말고 개에게 길들여지지도 말라는 거다...... 하지만 최소한의 훈련은 필요하다. 하지만 훈련이란 서로의 자존심을 존중할 것을 가르치는 일이다. "개의 자존심이란?" - 개답게 살아가는 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대로 된 훈련사는 자기 자신을 훈련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가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행동하고자 한다면 자기 곁에 사는 개의 자존심을 존중해 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일, 그것이 바로 우정의 규칙이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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