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 /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 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 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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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엽다 ㅎㅎ

말랑말랑 말랑말랑

체셔냥이는 몰캉몰캉몰캉몰캉한데...^^

프레이야 2007-09-19 16:50   좋아요 1 | URL
몰캉몰캉, 이거 경상도 할머니들 잘 쓰시는 말인데..ㅋㅋ
전 그럼 말캉말캉 할래요..

바람결 2007-09-1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저도 함민복 시인 팬이에요~^^
그의 시를 볼 때마다, 정말이지 이건, 관념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구체 속에서 펄펄하게 살아뛰는, 땀냄새 그득한 말이지 싶습니다.

'말랑말랑한 힘'......, 너무 좋습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7:57   좋아요 0 | URL
역시 좋은 시인은, 그랬군요.^^
강화도 어느 바닷가에서 산다고 하지요. 바다냄새 펄펄 나는
생활의 구체어들, 이제부터 만나보려구요. 전 이제 팬이 될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7-09-19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뇌가,아픔이,슬픔이 강펀치를 날려도 말랑말랑 받아들이는 힘이 흙의 힘이고 삶의 힘인것 같네요.

프레이야 2007-09-19 16:53   좋아요 0 | URL
정말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힘인데 말이에요.
다른사람에게도 그리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왜 이리 어려운지..

비로그인 2007-09-19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랑말랑...이란 말을 계속하다 보면,
혀가 꼬여요.
그래도 기분 좋아요.

프레이야 2007-09-19 16:53   좋아요 0 | URL
그죠? 혀도 마음도 부드러워져요, 민서님..
피아노 연습 많이 하고 오셨어요. 다음에 꼭 공개해주세요.^^
 

 

옷 벗는 여인


                                     최영숙


 

 

오래전 일이다

그날 
온몸으로 악쓰는 소리 지나간 후

한 여인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한 겹
두 겹
발목까지 오는 긴 치마가
길바닥으로 흘러내렸을 때
까만 브래지어와 팬티 한 장

먹잇감을 포획한 거미처럼
서서히 죄어드는 시선 속에서 여인은
스타킹을 벗어내렸다 숨죽인
저 알몸의 저항
내 일찍이 부끄러워했던
벼랑 끝 말없는 절규, 그렇구나

저게 내 몸인걸, 어느날 목욕탕 뿌연 거울 앞에서
깊고 검은 음부와
물기 없는 유방과
아이를 낳은 칼자국이 선명한 주름진 뱃살의 중년여인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아줌마가 저렇게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거리에 알몸으로 선 내게 돌을 던져라
기꺼이 그 돌을 맞으리니
모든 여자의 이름은 쓸쓸하고 가없이 슬픈 몸이라서
천지간에 바람 어지러울 때면
마구 소리치고 싶다 옷 벗고 싶다 하니 그것이 욕되다면

돌로 쳐라, 네 상처 위에 내 간을 포개놓으마


 



-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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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8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로 쳐라, 네 상처 위에 내 간을 포개놓으마 "

멋지군요.

프레이야 2007-09-19 17:02   좋아요 0 | URL
다른 시들을 봐도 상처입은 자들에 내미는 손이 정말 뜨겁더군요.
뭉클한 싯구들이 많더군요. 천천히 읽으려구요^^

뽀송이 2007-09-1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년의 여자란... 아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아줌마!!
자기가 없는 가족을 위한 보조기구처럼...
요즘은 자기개발에 열심인 젊은 엄마들이 많아졌고,
이들이 중년이 되었을 땐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 중년을 사는 여자들이 모두 행복해 지기를 바래보는 마음입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7:05   좋아요 0 | URL
중년의 여자, 우리가 그런 여자들인가요.
갈수록 몸이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어요. 몸, 지극히 사랑스럽고
애처로운 보금자리가 아닌지요. 우리 영혼이 담긴..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밥이 되어주는..
30초중반의 엄마들만 해도 삶의 방식이 다소 다르더군요.
나름 현명하다 할 수 있지요.^^

비로그인 2007-09-1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적인 단어들만으로 일상적이지 않은 느낌을 만들어낸 시였어요.
가슴이 뭉클합니다.

프레이야 2007-09-19 17:06   좋아요 0 | URL
그죠 민서님? 뭉클!
 

 

고장난 라디오




- 전명숙



   이 머리통 또 여기 들어가 있군 잠시만 한눈을 팔면 어느새 전자레인지에
들앉아 있는, 반죽기계 속 빵처럼 부풀었군 마그마처럼 지글지글 끓고 있군.
이건 장말 제가 터져 버리길 기다리는 걸까 이걸 그냥 버려야 되나 어쩌나.
저 혼자 빙글빙글 돌아가는, 타기 직전 집어내어 찬물에 담그면 금방 쭈그러
들어 의기소침해지는, 치켜세웠던 머리카락 안테나들 찌릿찌릿 감전되는,
하는 수 없어 목에 얹고 다니는, 정말 저기 들어가기 싫어!  한 마디 뱉고 행
복한 방송을 찾아 채널을 돌리는. 지지지직 잡음을 통과하고 쿨쩍거리는 울

음소리 뚝!  이제 좀 얌전히 굴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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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구판절판


그랬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나자신의 감정이 이 정도로 성숙하고 의젓해졌다는 사실에 그저 스스로 대견해하며 그날의 충격을 견뎌냈다. 어린이날이었다. 5월은 푸르고, 우리들은 자란다. 좀 쉬었다 하지? 격려의 편지라도 전하고 싶었지만, 투지와 열정의 팀 나의 삼미는 도대체 쉬거나 멈추는 법이 없었다. 노히트 노런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그해 16연패의 찬란한 위업을 달성하더니, 나아가 그 다음 해에는 인류 공영에 길이 이바지할 18연패의 빛나는 금자탑을 쌓아올려 버렸다. 불멸의 기록이었다.-106쪽

평범한 야구 팀 삼미의 가장 큰 실수는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었다. 고교야구나 아마야구에 있었다러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팀이 프로야구라는 - 실로 냉엄하고, 강자만이 살아남고,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하며, 물론 정식 명칭은 '프로페셔널'인 세계에 무턱대고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이 평범한 인생을 산다면, 그것이 비록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인생이라 해도 프로의 세계에서는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삶이 될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큰일이었다.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126쪽

6월 항쟁의 '우리'와 대통령 선거일의 '우리'는 같은 '우리'인가?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들을-나는 낡았지만 최근에 청소를 한 내 방의 창틀 너머로 계속해서 던져 보았다. 어둠은 대답이 없었고, '우리'는 모두 잘 자고 있었다...... 혁명의 주체가 되리라 생각했던 서민층과 중산층이, 실은 그 지층이 더욱 다져지길 원했다는 사실은-18살의 나로서는 감당키 힘든 충격이었다. 나는 다시는 혁명이란 거짓말을 믿지 않기로 했고 다시는 '우리'를 믿지 않기로 했다. -138-139쪽

그런데 세상을 둘러보니 다들 그런 거야. 다들! 다들 돼지발정제를 마신 것처럼 땀을 흘리고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어. 아무래도 놈들이 원하는 건 돈과의 교미가 아닌가 싶어.이미 마신 이상은......그 끝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거지..... 그래, 분명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걸 먹였어. 우리가 마셔온 물에, 우리가 먹어온 밥에, 우리가 읽는 책에, 우리가 받는 교육에, 우리가 보는 방송에, 우리가 열광하는 야구경기에, 우리의 부모에게, 이웃에게, 나, 너, 우리, 대한민국에게...... 놈은 차곡차곡 그 약을 타온 거야. 너도 명심해. 그 5분이 지나고 나면, 우리도 어떤 인간이 되어 있을지 몰라......-182쪽

미국의 주력 산업은 자본주의의 프랜차이즈야. 프랜차이즈! 알겠어? 그 일환으로, 또 마침 82년은 수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해서 놀란스와 프로야구가 함께 거래된 것이었지. 물론 처음엔 <섹스>와 <프로>를 함께 수입하라는 조언을 들었겠지? 물론 <섹스>는 양념이니까. 즉 <프로>를 더 잘 배양하기 위한 - 유산균 발효유로 치자면 올리고당과 같은 존재였지. -244쪽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251쪽

프로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놈들이 바라는 이 세계의 여건은 완벽해지는 것이니까.
세계의 여건?
물론이지. 우리는 미국의 프랜차이즈니까. 언제나 이 점을 잊어선 안 돼. <착취>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행해진 게 아니었어. 실제의 착취는 당당한 모습으로, 프라이드를 키워주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요란한 박수 소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거야. 얼마나 큰 보증금이 걸려 있는가는 IMF를 통해 이미 눈치 챘잖아.-253쪽

신은 사실 인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 - 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264쪽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279쪽

뭐랄까. 자세한 기분은 알 수 없지만 - 나는 그 두근두근한 뱃속의 생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의 공, 나의 야구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 프로의 세계에서 - 이제는 사라진 그 마지막 야구를. 그리고 나의 2세가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언제라도 회상하며 마음의 위안을 삼을 수 있을 아버지의 야구를.-298쪽

플레이 볼.
조성훈이 소려쳤다.
재구성된 지구의 맑고 푸른 하늘을 지나
공이 날아왔다.
만삭의 아내가 손을 흔들었다.
저 두근거림 앞에서
이제 나는
저 공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

플레이 볼이다.-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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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9-12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플레이 볼." 이던가요? 저는 이 소설이 너무나 재미있었지만, 이렇게 포물선을 그리는 마지막 문장을 가장 좋아했어요. 플레이 볼. 지금 네꼬 씨는 플레이 볼, 상태예요. 혜경님, (뜬금없이) 보고 싶어요.

프레이야 2007-09-12 19:46   좋아요 0 | URL
어머, 네꼬님, 두 칸 더 추가했어요. "플레이 볼이다." !!
포물선을 그리는 마지막 문장이요.^^(어쩜 이런 깜찍한 표현은 네꼬님만 할 수 있는 표현이에요) 전 야구를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최하위 야구팀에 빗댄 인생철학에 감복했어요. 이렇게 살아가야하는거에요. 그죠? 이 책은 정말 신선하더군요. 박민규의 최고작 같아요. 플레이 볼!, 상태면,, 네꼬님 좋은 상태 맞나요?^^. 두근두근 자신감 있게 시작하시기 바래요, 뭐든요.^^
참, 벤트 페이퍼 봤는데 갑자기 뜨악했어요. 제가 가장 기억하고픈 한 가지가 뭐지? 잘 모르겠는 거 있죠. 이럴수가요!!
귀여운 네꼬님, 앙앙~

사마천 2007-09-1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화로는 보았는데 이렇게 철학적 구절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가르쳐 주신 혜경님 감사합니다. 계속 일깨워주세요 ^^

프레이야 2007-09-13 08:39   좋아요 0 | URL
사마천님, 이범수가 나온 수퍼스타 감사용, 말씀이시죠?
저도 그 영화 봤는데 이 책보다는 너무 못 미치더군요.
이 책과의 공통점이라면 삼미수퍼스타즈가 소재가 되었다는 것밖에요.. ^^ 물론 그 영화는 이 책을 원작으로 한 건 아닐거에요. 고요한 밤!!
 
진딧물을 길들이는 붉은개미 - 길들이기 공생 공생과 기생 2
아만다 하먼 지음, 박시룡 옮김 / 다섯수레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길들이기’라면 ‘어린왕자’가 길들인 장미와 ‘장미’가 길들인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생떽쥐베리의 문학적 상상력은 '관계맺기'이자 '진심으로 사랑하기'로서의 길들이기를 이야기한다. <진딧물을 길들이는 붉은개미>에서는 생물학적 길들이기가 나오는데 이 책은 ‘공생과 기생’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 관계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리공생과 한쪽만 이익을 얻고 다른쪽은 아무런 득도 실도 없는 편리공생이 있다. 물론 한쪽만 이득을 얻는 기생도 여기에 포함된다.

 

 

 시리즈의 첫 번째 편, ‘딱새를 속여 번식하는 뻐꾸기’는 번식공생을 보여주는데 그것에 이어 이 책은 '길들이기 공생'을 보여준다. 주요 등장 동물은 제목에서 보이듯 진딧물을 길들이는 붉은개미이지만 목차를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차근차근 공생의 원리를 설명한다.


 공생은 생태계에서 서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길들이기’로 해석된다. 동물과 식물 간에, 그리고 동식물과 인간 간에 길들이기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제1장은 공생이란 어떤 관계인가부터 시작하여 길들이기의 역사를 설명한다. 사람은 동물에게서 노동력과 고기, 가죽, 털을 얻고 식물에게서는 곡식과 원료들을 얻는다. 동식물을 길들이면서부터 사람들은 차츰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한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다. 이 부분은 어른이 함께 읽으며 원시역사와 관련하여 부가 설명을 해주어도 좋겠다. 초등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글자의 크기가 좀 작고 글자수도 많은 듯해서 처음엔 보기에 좀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생생한 사진과 요모조모 재미있는 설명들이 나뉘어 배치되어있는 글들에 흥미를 느꼈다.

 제2장은 ‘서로를 길들이는 곤충과 곰팡이’라는 소제목으로 사람이 동식물을 길들이기 시작한 1만5000년 전의 시기보다 훨씬 오래된, 개미의 길들이기 역사와 그 능력을 보여준다. 흰개미의 일개미들이 곰팡이농장에서 곰팡이를 기르고 그 하얀 덩어리를 먹이로 먹는 모습은 놀라운 지경이다. 곰팡이를 먹이기 위해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는 커다란 나뭇잎을 들고 나르는 개미들의 행렬은 더욱 놀랍다. 그 외에도 푸른나비 애벌레를 기르는 개미와 정원을 가꾸는 우림개미 등, 보금자리를 꾸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려고 애쓰는 다양한 종류의 개미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화학전은 인간의 전쟁을 방불하게 한다. 자세한 개미사진이 잘 나와 있어 보는 재미가 생생하다.

 제3장은 ‘노예를 부리는 개미’ 편이다. 아마존개미가 등장하는데 붉은 몸통의 아마존개미들에 근접카메라를 대어 아이들은 징그럽다고 야단이었지만 “왜? 귀엽지 않니?”라며 안 놀라는 척 해주었다. 아마존개미의 여왕개미가 활약하는 일과 그들의 노예 길들이기 방법을 보면 개미들의 사회가 무서워진다. 베르베르의 ‘개미’에서처럼 그들은 인간사회의 축소판이거나 그보다 더한 잔혹한 세계를 사는데 그게 또 생태계의 원리이니 오싹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다른 생물이 없이는 살 수 없고 서로 길들여가며 주고받고 사는 것인데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생물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회색늑대의 후손인 개와 멸종동물인 오록스의 후손인 소는 우리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로 지낸 동물이지 않은가.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낚시 중 낮잠을 즐기는 낚시꾼의 모습은 한가로워 보인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공생하는 동물들의 세계 속에 우리도 있다. 환경조건에 따라 생물의 습성은 물론 성격도 좌우되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비슷한 것 같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열대지방에 사는 개미들이 추운 지방에 사는 개미들보다 자신을 노예로 부리는 개미에 맞서 저항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은 ‘신기한 생물 이야기’ 상자에 들어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꿀단지개미들의 노예 길들이기 방법이었다. 사람들의 세계와 어찌 비슷하던지 소름이 돋았다. 꿀단지개미들이 노예를 길들이는 방법은 아마존개미와 확연히 다르다. 갖가지 속임수로 원주민개미를 노예로 만들고 저항하는 노예개미들은 폭력과 마취로 진압하는 아마존개미들과는 달리 꿀단지개미들은 '단물'을 먹여 노예를 길들인다. 그들의 빵빵한 엉덩이는 단물로 가득한데 그것을 더듬이로 톡톡 두드리는 개미들에게 단물을 떨구어주고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부드러운 폭력, 달콤한 억압, 그 안에 숨은 음흉한 미소를 모른채 탐닉하고 안주하고 길들여지는 목숨. 이보다 끔찍한 실상은 없는 것이다. 길들여진다는 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뒤에 나오는 ‘고양이의 야생성 관찰’은 본문과 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직접해봐요’라는 꼭지이니, 생물을 가까이서 관찰해 보라는 권유로 읽으면 재미나다. 낱말풀이에서는 본문의 알아두어야 할 낱말을 정의해두었다. 여기 낱말풀이에서 ‘뚱보'의 정의가 재미있는데 본문과 관련하여 보면 ‘몸에 먹이를 저장해서 다른 꿀단지개미를 먹이는 꿀단지개미의 하나’로 나와있다. 이런 뚱보라면 우리사회에도 좀 많이 있으면 좋겠다. 길들이기 목적으로 단물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면.. 이 책의 원제는 ‘parasites & partners, Farmers and Slavers' 이고 번역은 이해하기 쉽게 해 놓은 것 같다. 이것저것 사진과 정보가 다양하여 3,4학년 어린이가 읽기에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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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7-09-1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충에 관한 책이라면 아주 끔찍해하는 우리 딸에게도 한 번 권해봐야 할 책인 것 같네요.
생생한 사진 때문에 기겁을 할지도 모르지만요.

프레이야 2007-09-12 07:52   좋아요 0 | URL
네, 여자아이들은 처음에 보더니 기겁을 하더군요 ㅎㅎ
그런데 제가 자꾸 귀엽잖아, 이러며 세뇌(!) 시켰어요.
그런데 자꾸 보니 정말 귀엽다고 그러더군요^^
내용은 공생의 의미와 생리에 초점을 맞춰 충실한 편입니다.

다가섬 2007-09-1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아이,벌레라면 ~답지 않게 과잉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아무래도 친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한가지라도 알고 바라보면 ...달라지겠지요?
3~4용이라니...읽혀볼 만 하겠어요.

프레이야 2007-09-12 10:38   좋아요 0 | URL
다가섬님, 우리집 애들도 날파리만 봐도 호들갑이죠. 걔들도 다 먹고 살아야
하는 거라고 웃겨주면 잠시뿐이에요.^^ 아는 것이 사랑하는 것의
첫걸음이겠지요^^

비로그인 2007-09-1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리뷰를 보다가 선물해주고픈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담아요 ^^
그 분은 이런 자연과 동물,곤충의 세계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지요~

프레이야 2007-09-12 17:04   좋아요 0 | URL
엘신님, 어른이신가요? 제가 보기에도 재미난 책이었으니
곤충을 좋아하시면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09-13 11:32   좋아요 0 | URL
네,어른입니다. 늘~ 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 다큐 프로를 즐겨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