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들






심보선



 

오늘 내가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을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 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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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흔 2010-02-07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stella.K 2010-02-07 11:33   좋아요 0 | URL
헉, 여흔님이닷!
 

 

 

그러나 그대들이 같이 있음에 공간이 있게 하라.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를 춤 출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의 구속을 만들지 말라.  

그대들 영혼의 해변에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상대방의 잔을 채워주되 같은 빵을 서로 먹지 말라.
같이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라.
그러나 각자는 혼자 있도록 하라
마치 거문고의 줄이 같은 음악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혼자 있는 것과 같이
너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주되, 상대방이 소유하지 않게 하라.
생명의 손만이 너의 마음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으니
같이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지 말라.
성전의 두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전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상대방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다.

- 칼릴 지브란의 <사랑과 결혼의 시> 중에서  

 

------  

 

점자도서관에서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우애령 여사의 에세이 '결혼은 결혼이다'(하늘재 출판).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패러디한 제목같다. 낭독은 하지 않고 그냥 후루룩 읽어보려고 빌려왔다. 초반을 읽어보니, 제목은 모든 걸 단지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간 거울을 마주 보듯 있는 그대로만 보라는 뜻.  지나친 기대나 상상이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미덕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 저 위의 글은 첫장에 있는 인용문이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생각해볼 세가지로 소망, 능력, 당위성을 든 대목도 마음에 와닿는다. 즉, 내가 진정 원했거나 원하는 것인가, 내가 과연 해낼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사회적, 정서적으로 주변의 인정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일인가,로 설명된다. 

 

결혼이든, 사랑이든, 그 어떤 일이든, 저 세 가지 모두를 갖춘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고, 그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빈다면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감수하고 견디며 나아가야할 것이다. 그냥 포기하거나 도망가기에는 우리가 또 얼마나 용감하고 얼마나 무모한가. 때로는 어리석은 용기와 영리한 착각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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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2-05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감수하고 견디며 나아가야할 것이다....라구요? 니에~~~~~ㅠㅠ

2010-02-05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0-02-0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멋져요. 때로는 어리석은 용기와 영리한 착각이 필요하다는 말,,,

후애(厚愛) 2010-02-0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너무 멋집니다.^^
항상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해요~

순오기 2010-02-0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좋은 말씀도 우리가 훨씬 더 젊었다면 아니 어리다면 마음에 와 닿기 어려운 것이 결혼에 대한 단상이 아닐까 싶어요. 결혼은 정말이지 살아봐야 아는 거니까...^^
 
 전출처 : 프레이야 > 도시 한 귀퉁이


 


도시에는 경계가 있다.  

새파란 하늘을 가르는 가르고 지나는 구름이라든가,  

허공을 가르는 전선 말고도. 

오르막 좁다란 골목 끝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동네 다닥다닥한 집들에도 

보글보글 된장찌게에 하하호호 웃음 한 바탕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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穀雨(곡우) 2010-02-0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박힌 모습이 고단한 세월의 시간이 겹쳐지지만
프레이야님의 글로 웃음이 번지네요. 골목길에 담긴 추억 한자락쯤..
어릴 때 숱하게 골목길을 넘나들었는데...아득하네요..

순오기 2010-02-0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님 서재에서 보고 '햐~ 좋다!'하고 보니 프레이야님이었어요.^^
역시나~~

자하(紫霞) 2010-02-04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으로 그려도 멋질 듯 하네요~

L.SHIN 2010-02-0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님, 아직 페이퍼를 못 본 거 같아서 말이죠.^^;
받으실 포미 색깔 선택해주시고(빨간색과 연두색 중에서), 주소와 연락처, 성명을
비밀글로 남겨주세요.

꿈꾸는섬 2010-02-0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구도에요.

프레이야 2010-02-0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곡우님, 다정한 님들, 감사합니다.
저도 어릴 적 골목길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아늑하거나, 벗어나고픈. 익숙하거나, 낯선.
저곳은 부산의 영도 어느 산동네 골목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이국의 어느 골목길을 구석구석 다녀보고 싶어요.

gimssim 2010-03-06 22:25   좋아요 0 | URL
부산 영도...제가 태어난 동네인데
언제 시간을 내서 한번 샅샅이 훑어보아야겠어요.

프레이야 2010-03-06 22:49   좋아요 0 | URL
어므낫, 중전님 태어난 곳이요?
그렇군요. 왠지 반가워요. 부산이란 이유만으로요.
전 영도에서 태어나지도 살아보지도 않았지만요.

소나무집 2010-02-05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완도에는 저런 골목집들이 많았지만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경계는 아니었어요.

프레이야 2010-02-05 21:03   좋아요 0 | URL
네 완도는 그렇군요.
도시의 풍경은 참 뚜렷하게 나뉘는 것 같아서 때로는 낯설지요.
가까운 사람들의 풍경도 그러해 보이듯이요.
 

황혼 / 최승자 

 

저무는 어디에서 기다리리. 

알 수 없는 뿌리로 떠돌다 

病의 끝에서 만나는 

그리운 그리운 肉身들  

지친 홀로의 이름들이 

저세상 바람 소리 빗소리 

독한 노래로 젖어들 때 

이 무게를 지워다오 

이 무게를 지워다오 

몸부림치는 저승의 달빛 

 

사물이 저 혼자서 저문다 

세상 밖으로 그대는 

그대의 뿌리를 내린다. 

  

----------  



고희를 작년에 넘긴 친구의 시어머님이 부쩍 안 그러시던 행동을 하신단다. 괜한 트집을 잡고 노골적으로 심사가 틀어지는 걸 표시내고 이것저것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것들을 마구 쏟아내신단다. 하지만 친구 앞에선 직접적으로 못 그러시고 당신의 딸한테 그렇게 말씀하신단다. 들어주다들어주다 그 딸이 친구에게 전하더란다. 친구 말이, 이중얼굴을 하고 소위 뒷담화를 너무 하신다는 사실에 여태껏 그렇게 보지 않았고 그렇게 대하지 않았던 어머님에게 실망이 큰가 보다. 오늘은 무작정 불쑥 찾아오셨더란다. 집에 친구가 없었을 수도 있는데 전화도 없이 오셔서 놀랐던가 보다. 아직 오십대로 보일 정도로 건강하신 그 분은 몇 년 전 홀로 되셨는데 그후 한동안 정신과 상담도 받고 이겨내셨다. 그런데 지금 많이 외롭고 적적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걸 먼저 살펴드렸어야 했는데... 친구에게 말했더니 어디서 그런 환경을 만들어드리지?, 고민하더니 당장 가까운 노인대학 같은 곳이라도 알아봐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황혼, 저무는 것들. 그런 시간은 날마다 해거름이 시작되면 거듭 찾아오지만 정녕 내 생애 저무는 어느 지점(그런 게 있다면)에 서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라도 흩어지고 싶다. 훌훌 연기처럼. 다시 뿌리를 내려서 무엇할까. 해 저무는 바다 위 보름달빛이 검은 바닷물에 흩어져 내린다.   

<에세이스트>29호를 훓어보다, 내가 좋아하는 수필가 최민자의 신작 중편수필 '눈 내린 날의 모노로그'에서 턱에 걸린 이런 문장.. 

   
 

눈은 그 순백의 언어로 길로 주인이 차가 아니듯,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고 고요하게 일깨워주네요. 눈 쌓인 거리를 내려다보다가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가 생각나 냉큼 찾아 읽어 보았지요.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정말 그렇게 내 책임이 아닌 다른 핑계나 불가피성으로 삶의 알리바이를 둘러댈 수 있다면, 하는 상상에 설레어 보다가 치과 약속 때문에 서둘러 중무장을 하고 나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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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3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는 건 계절이 따로 없겠죠?
마음에 와 닿는 글이네요. 나도 황혼에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일까?

라로 2010-02-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와 닿는 글이네요. 나도 황혼에 점점 가까워지기 때문일까?2ㅠㅠ

반딧불이 2010-02-0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승자 시인의 최근 시인가 봅니다? 최승자 시인의 시에서는 늘 쨍한 여름 한낮같던, 시위를 떠나기 직전을 화살같던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병이 깊으신가...시인의 건강도 프레이야님의 마음도 염려됩니다.

프레이야 2010-02-04 00:54   좋아요 0 | URL
<이 시대의 사랑> 중에 있던 시입니다. 최근 시는 아니구요.
그녀의 시는 정말 반딧불이님 표현대로 그런 느낌이에요.
위태롭고 어딘가 불안한 열정이 마구 끓는 것 같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적중한..
제 마음 염려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잘 살아야겠어요.

하늘바람 2010-02-0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혼은 그냥 생각만 해도 슬퍼요. 다른이의 황혼을 지켜보는 건 참 힘든 일같아요

프레이야 2010-02-0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나비님, 황혼이라시기엔 아직 멀었어요.^^
하늘바람님, 네 그래요. 그런데 정말 아름답게 물드는 황혼이면 좋겠는데
참 안타까워 보이는 황혼이 많으니.. 그저 진다는 것 자체가 또 힘든 것일 수도 있구요.

순오기 2010-02-04 19:25   좋아요 0 | URL
나비님은 나보다도 한참 멀었는데 따라하다닛, 만나면 꿀밤 한대 먹여야지.ㅋㅋㅋ

프레이야 2010-02-04 23:24   좋아요 0 | URL
그러게말이에요 ㅋㅋ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서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흰 실과 검은 실을 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문학과 사회』1999년 가을호)  

       

      ------- 

      내 마음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타자의 마음을 알기 위해  

      나를 벗고 다가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한 겹 시든 꽃잎 들추면 어렵지만도 않은 일.

      해가 지고 회색이 세상을 덮으면 또 순해지는 물상들이여, 

      흔들리다 잦아들고 또 눈을 감는 

      그리고 또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를 내일을 여는. 

      발가벗은 나뭇가지 너머 새파란 하늘에  

      우유거품같은 낮달이 반쪽 넘어 걸렸더라.  

      - 100126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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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from 한사의 서재 2010-01-27 09:57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
 
 
비로그인 2010-01-27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나희덕 시인의 시도 좋고
혜경님의 소감도 좋습니다.
위에 시를 저도 한 부 얻어다 서재에 걸어두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