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 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 꽃과 분홍 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 꽃과 분홍 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서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 가만히 들었습니다
흰 실과 검은 실을 더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나희덕,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문학과 사회』199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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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타자의 마음을 알기 위해
나를 벗고 다가가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한 겹 시든 꽃잎 들추면 어렵지만도 않은 일.
해가 지고 회색이 세상을 덮으면 또 순해지는 물상들이여,
흔들리다 잦아들고 또 눈을 감는
그리고 또 어쩌면 영원할지도 모를 내일을 여는.
발가벗은 나뭇가지 너머 새파란 하늘에
우유거품같은 낮달이 반쪽 넘어 걸렸더라.
- 100126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