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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조병화 - 입춘을 지나며


                         입춘을 지나며

                                                  - 조   병   화 -


                    아직도  하얗게
                    잔설이  남은  숲길을  걸어서
                    절로  올라가면


                    그곳,  어디메에서  들려오는
                    어머님의  기침  소리


                    생시에  듣던  그  기침  소리지만
                    어머님과  나   사이는  저승과  이승이다.


                    멀리  숲  위에  봄냄새  나는
                    붉은  해는  솟아  오르고
                    나의  이  이승의  길은  아직  안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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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박가분아저씨 > 그렁거린다, 라는 표현속에는-[안도현]

양철지붕에 대하여-[안도현]

양철 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그럼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이란,
버선처럼 뒤집어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나는 수없이 양철 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빗소리였으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오래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맨처음 양철 지붕을 얹을 때
날아가지 않으려고
몸에 가장 많이 못자국을 두른 양철이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너는 눈치채야 한다

그러니까 사랑하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쉽게 꺼내지 말 것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가고 싶다, 라든지
비 온 뒤에 햇볕 쪽으로 먼저 몸을 말리려고 뒤척이지는 않겠다, 라든지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좀 필요한 것 아니냐?

생각해봐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 지붕이란다

....................................................................................................
*'양철지붕에 대하여'를 읽다 보면
뜨, 뜨거운 어느 해 여름이 생각난다.
세월도 지나고 보면
나달나달 닳아진 실밥같은 거
숱한 추억처럼 흔적만 옛이야기처럼 희미한 거

그렇지
삶에도 적당한 은유가 필요하다면
그렁그렁거린다, 라는 표현속에는
눈물 어룽어룽 잊혀진 노래가사도 생각나고....
쪼작쪼작 껌처럼 오래 씹으며 앙다물던 맹세도 생각나고...
죄처럼 상처를 둘렀으되 온전히 버텨온 지나온 길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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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1-3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쪽면이 뜨거워지면 그 뒷면도 똑같이 뜨거워지는 것을, 잊었다.
 

흔적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텃밭에 나가
귀퉁이가 찢겨진 열무잎에도 대보고
그 위에 앉은 흰누에나방의 날개에도 대보고
햇빛좋은 오후 걸레를 삶아 널면서
펄럭이며 말라가는 그 헝겊조각에도 대보고
마사목에 친친 감겨 신음하는
어린 나뭇가지에도 대보고

바닷물에 오래 절여진 검은 해초 뿌리에도 대보고
시장에서 사온 조개의 그 둥근 무늬에도 대보고
잠든 딸아이의
머리띠를 벗겨주다가 그 띠에도 슬몃 대보고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옷을 털면서 거기 묻어온
개미 한마리의 하염없는 기어감에 대보기도 하다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물에 닿으면 제일 먼저 젖어드는 곳이 있어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보지만
참 알 수가 없다
종소리가 들리면 조금씩 아파오는 곳이 있을 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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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흔적이 저는 더 반가워요^^

물만두 2005-06-1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水巖 2005-06-1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만에 배혜경님 자취를 발견하는군요. 열심히 하시죠?
가끔 제게도 흔적(댓글)을 남겨 주시기를...........

프레이야 2005-06-2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물만두님, 그리고 수암님!!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건강 유의하시구요^^
늘 행복하시길... 넘 반가워요.
 
 전출처 : 로드무비 > 오늘 아침 읽은 나희덕의 시

                   도끼를 위한 달

                                                나희덕

 

        이제야 7월의 중반을 넘겼을 뿐인데

        마음에는 11월이 닥치고 있다

                                  삶의 기복이 늘 달력의 날짜에 맞춰 오는 건 아니라고

                                  이 폭염 속에 도사린 추위가 말하고 있다. 

                                  11월은 도끼를 위한 달이라고 했던 한 자연보존론자의 말처럼

                                  낙엽이 지고 난 뒤에야 어떤 나무를 베야 할지 알게 되고

                                  도끼날을 갈 때 날이 얼어붙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면서

                                   나무를 베어도 될 만큼 추운 때가 11월이라 한다

                                   호미를 손에 쥔 열 달의 시간보다

                                   도끼를 손에 쥔 짧은 순간의 선택이,

                                   적절한 추위가,

                                   붓이 아닌 도끼로 씌어진 생활이 필요한 때라 한다

                                   무엇을 베어낼 것인가, 하루에도 몇번씩

                                    내 안의 잡목숲을 들여다본다

 

                                    부실한 잡목과도 같은 生에 도끼의 달이 가까웠으니

                                    7월의 한복판에서 맞이하는 11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도끼를 다잡아보는 여름날들

 

 

           문득 눈에 띄어 시집(<어두워진다는 것>)을 펼치니 7월 중반을 막 뛰어넘은 오늘을 말하는 것

            같은 시가 나오네요.  재미있어서 엽서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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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무늬 2004-07-21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와 다른 오늘을 일궈야 한다는
문제의식만 공허한 요즘의 제게
깊이 와닿는 시입니다.
매혹적인 이 시에 끌려
몰래 감사하는 마음으로 훔쳐갑니다.
 

       금강

 

                                                                             안홍렬

 

금강 근처에 살 때에는 강이 낯설어서

강가에 서기가 두려웠다.

강가에 가면 강의 깊이와 만날 수 있을까

강을 찾아 가다가

중도에서 포기하기가 여러 번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강을 생각하면

강은 참으로 보고 싶다

강가에서 멀리 이사를 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얻었다

그러나 강은 아직도 낯설고 두렵다

이제 강을 찾아가도 될 때라면

한 번 용기를 내야 하겠다

두려움은 피할수록 커지는 것

어서 강과 만나 늦은 이유를 말해야 하겠다.

 

                                                                      <아름다운 객지> (대교출판)

 

# 안도현 시인은 충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낯선 시인으로부터 어느 날 시집 한 권을 받고 고마웠단다. 이윤택 시인이 시집 해설에서 극찬하고 있는 인용글 중 일부를 옮기자면...

" ...신동엽의 금강이 서사적 정서를 확보했다면, 안홍렬의 금강은 서사적 정서 자체까지 인간의 존재론으로 수렴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 틀림없다.... 자연으로서의 금강 - 그러나, 금강은 바로 나라고 하는 자기 인식의 수면이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증이다 - 이 인간 내면의 심증을 흐르는 강이야말로 시를 시이게 하는 상상력의 수면인 것이다...."

#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에서 한 10분쯤 걸어가면 낙동강둑이 나온다. 낙동강의 파수꾼 요산 김정한 선생이 가지는 올곧은 의식은, 부끄럽게도 내게 없고, 다만 비릿하고 찝찔한 홍합을 삶아 파는 리어카와 구수한 번데기 냄새,  초등학생 때 사생대회를 갔던 기억, 철없던 이십대의 치기, 괜한 낭만(이라고 생각했었던) 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아주 어릴 적 일이라 난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도 작은 이모는 한 번씩 이야기 한다. 이모가 스무살 때 친구들이랑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 저 편으로 가 딸기를 따기로 했는데, 다섯 살짜리 내가 자꾸 따라가려 해서 데려갔다가 업고 다니느라 진땀을 뺐단다. 조그만 게 몸무게가 보통이 아니었다나.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안거나 업어보면 돌덩이 같았단다.

지금도 그곳 낙동강둑에 젊은 사람, 늙은 사람, 이런 저런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그곳 둑에 앉아 바라보았던 낙동강은 사실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더럽고 이곳저곳 지저분하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멀리 보면 괜찮다. 뭐든 너무 가까이서 보면 사람을 질리게 한다. 턱을 약간 치켜들고 들숨을 쉬면 강바람이 살랑거리며 코로 스며든다. 강물은 언제나 고요하고 담백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사실 내가 찾아갈 때마다 강물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안홍렬 시인은 아마도 강물처럼 소금기 없는 담백한 심성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꼬여있는 듯한 강제성의 은유나 난해한 이미지의 나열 없이 아주 솔직한 자신의 회한을 고백하고 있는 시인이 강물을 닮아있는 것 같다. 우리는 역시 거울을 보며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통해, 사물을 통해 나를 보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투르니에는 타인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그렇게 꼼꼼히 들여다보고 메모하고 자신의 사유 세계를 넓혀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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