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유난히 엷고 어룽진 쪽을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본다

텃밭에 나가
귀퉁이가 찢겨진 열무잎에도 대보고
그 위에 앉은 흰누에나방의 날개에도 대보고
햇빛좋은 오후 걸레를 삶아 널면서
펄럭이며 말라가는 그 헝겊조각에도 대보고
마사목에 친친 감겨 신음하는
어린 나뭇가지에도 대보고

바닷물에 오래 절여진 검은 해초 뿌리에도 대보고
시장에서 사온 조개의 그 둥근 무늬에도 대보고
잠든 딸아이의
머리띠를 벗겨주다가 그 띠에도 슬몃 대보고
밤 늦게 돌아온 남편의 옷을 털면서 거기 묻어온
개미 한마리의 하염없는 기어감에 대보기도 하다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찢겨진 몸일까

물에 닿으면 제일 먼저 젖어드는 곳이 있어
여기에 대보고 저기에도 대보지만
참 알 수가 없다
종소리가 들리면 조금씩 아파오는 곳이 있을 뿐

                                                                   -나희덕-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란여우 2005-06-1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흔적이 저는 더 반가워요^^

물만두 2005-06-17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水巖 2005-06-18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만에 배혜경님 자취를 발견하는군요. 열심히 하시죠?
가끔 제게도 흔적(댓글)을 남겨 주시기를...........

프레이야 2005-06-29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물만두님, 그리고 수암님!!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건강 유의하시구요^^
늘 행복하시길... 넘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