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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김광규(달팽이의 사랑)

 

# 문득 내 존재를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조급해진다. 모종의 기대를 걸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별다른 끌림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고 어긋나고 말 때, 저들이 나를, 나의 존재를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하는 불안감마저 든다.

집이 내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집에 내 영혼이 담겨있을까? 집에 나의 사랑이 묻어있을까?  늙은(?) 나이에 입대한 Y가 제대를 앞둔 말년 휴가 때는 후텁지근한 무더위가 가만 있어도 사람을 지치게 하는 때였다. Y와 나는 살 집을 구하러 다녔는데 결국 지쳐서 10평 연립주택 2층으로 낙찰했다. 그 주택의 이름은 재밌게도 '신혼주택'이다. 대문 옆에 그렇게 문패가 달려있었다. 지하철에서 아주 가깝다는 편리함에 좋은 점수를 주고, 가난한 연인, 우리는 전세 얼마에 월세 얼마를 주기로 하고 그 집을 계약했다.

그래도 방 두 개는 제법 쓸만했다. 그 외의 것은, 동선이 워낙 짧아서 오히려 편리했다고 보면 딱 맞다. 연애시절 유독 방에 대한, 집에 대한 애착을 보이던 Y는 1년 후 29평 아파트를 전세로 들어갔고, 그로부터 3년후 우리집을 마련했다.  좀 오래된 것이지만 야경이 멋진 30평 아파트란 어쩜, 우리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서툰 붓질로 페인트칠을 하다 더 보기 싫게 얼룩진 채로, 금이 간 변기도 그대로 우리는 8년을 살았다. 일도 많았고 탈도 많았지만 그 집에서 우리는 많은 걸 이룰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떤 측면에서 가치있는 건지는 저울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열심히 산 것만은 인정한다.

작년 여름(우리는 항상 여름에 이사를 했다), 두 배의 아파트로 이사와 우리가 점유하는 공간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우리는 각자가 가지는 존재의 집을 이 공간에 불러들여 나란히 두고 사는 게 아닐까? 그 존재의 집이 사랑이란 이름의 문패를 달고 있는 집이라면 더 없이 좋겠다. 그 집은 언제나 미완성이며 열정으로 가득한 속성을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다. 서로가 그 집에 간혹 찾아가 살포시 꽃 한송이 꽂아주고 오면 좋겠다. 

내가 네 존재를, 네가 내 존재를 그대로 마주하여 이따금은 하나 되면 좋겠다. 먼 먼 날로부터 이어져 온 어떤 예감 같은 '또 하나의 나'.   세월이 지난 지금 점차로 밀려 드는 생각은, 그게 내 존재의 또 다른 집이더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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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2004-02-1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존재의 또다른 집... 맞아요, 종종 그런 생각이 들곤 하지요...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사평역에서> (창작과비평사)

 

# 지금은 다른 것으로 유명한 시인의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사평역은 실재하는 역이 아니라, 우리의 보편적 정서를 아우르는 역이다.

나에게도 사평역은 있다.  20대, 군에 간 남편을 면회하러 속초까지 아주 먼 거리를 달려가곤 했다. 주로 토요일 오후 퇴근후 바로 버스를 이용해 강릉까지 가서 속초로 다시 들어갔다. 강릉에 도착하면 해는 벌써 지고 어두운데 겁도 없이 터미널 근처 여관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속초로 가곤 했다.

기차역은 아니지만 어둠 속에 덩그러니 서있는 시골 시외버스터미널의 그림은 지금 생각해 보니, 사평역과 흡사하다. 그땐 그리움이 뭔지도 잘 몰랐던 게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추억은 선명한 실체를 드러내는 게다. 그땐 힘든지도 몰랐고 그저 짧은 시간 얼굴 보고 온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수도 없이 내달렸다. 오히려 지금에서야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줄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게 시들할 때 힘이 되는 것이 추억이라면 너무 나약한 심성의 증거일까? 나약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추억은 서로에게 내밀한 힘이 된다. 상대가 그 추억의 한 장을 아직도 들먹이며, 마치 그것이 미운정 고운정 다 든 식구라도 되듯, 애증의 양날개를 모두 감추지 못할 때, 난 작고 하찮은 그것에 잠시 매달려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단다.

낯선 길을 구불구불 기어들어가 속초 전방에 있었던 그곳은 설국이었다. 짬만 나면 내게 전화를 걸었던 바로 그 공중전화박스가 눈에 익은 듯했고, 하늘과 땅이 맞닿아있는 기다란 선에 시선을 고정하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서서히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이었다.

강릉에 다시 나와 막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우리는 말이 없다. 시간은 어김없이 가고 또 오고, 나는 버스에 올라 손을 흔든다. 못 본지 알았는데, 차가 출발하고 나면 고개를 푹 숙였던 내 모습을 그이는 다 보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흐르는 눈물 때문이었을 거라며... , 난데 없이 쑥스럽게 그런 얘기를 꺼낼 때의 Y는 나를 울컥하게 한다. 그 따위 작고 오래된 추억의 한 컷이 우리를 살게하는 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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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a 2004-02-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를 사랑하는 분들이야 많지만, 저도 정말이지 이시를 좋아합니다. 정말 시인이란 대단한 존재입니다.

프레이야 2004-02-0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mila님, 반가워요^^

waho 2004-02-08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좋구 님의 추억두 좋네요

프레이야 2004-02-0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이 하던 말씀 중에 "다 옛말 하며 살 날이 올 거다", 하는 말이 실감나요.
요즘 왜 자꾸 옛일을 끄집어내며 야곰거리는지, 나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나, 싶네요.^^

2004-03-17 0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家具의 힘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 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온 고구마순을 뚝뚝 끊어 벗겨내실 때마다

무능한 나의 살갗도 아팠지만

나는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 하고 한마디 해주었다

책장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대계라든가

니체와 왕비열전이 함께 금박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그 집을 생각하며,

나는 비좁은 집의 방문을 닫으며 돌아섰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나오는 오래 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 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 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것 -

하고 졸부의 집에서 출발한 생각이 여기에서 막혔을 때

어머니의 밥 먹고 자야지 하는 음성이 좀 누그러져 들려왔다

너무 조용해서 상심한 나머지 내가 잠든 걸로 오해하셨나

 

나는 갑자기 억지로라도 생각을 막바지로 몰고 싶어져서

어머니의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받아들이며

깨우러 올 때까지 서글픈 가구론을 펼쳤다.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문학과 지성사)

 

  ** *       이 가난한 시인과 어머니 사이에 서글픈 '가구론'이 들어와 앉아 있는 이 시를, 안도현은 액자시라 부른다.  이 시를 읖조리면, 중얼대면서도 가난한 젊은 아들을 안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자글거리는 눈가에 매달려 있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이 보인다.

 

명절이면 으레 긴장이 되곤 한다. 이레저레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고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아래 위로 챙겨야할 것이 많은 것도 바로 우리가 주역이기 때문이라 생각하라는 어느 분의 이야기를 힘으로 삼고 이번 설연휴를 출발했다. 시댁식구들과 이틀, 친정엔 23일에 갔다. 

이번 설은 대한과 함께 정말 설답게 추워서 쌉싸름한 공기를 코로 들이키며 좁다란 계단을 조심해서 밟으라며 아이들을 앞세워 올라갔다. 둘다 한복을 곱게 입고선 치맛자락을 한껏 올려잡고 올라가는 모습이 참 많이도 컸다 싶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트집이 났다. 집이 냉골이었기 때문이다.  이 추위에 기름보일러 아낀다고 제대로 안 켜고 계신 것 같았다. 수도관은 얼어서 만 하룻동안 수돗물도 못 썼다고 한다. 발바닥이 얼 것 같았다. 엄마의 명요리,  만두(올해는 며느리랑 함께 빚었다)가 나왔지만 몸이 풀리지 않는다.

엄마의 아들(나의 막내 동생)은 가난하다. 엄마 눈에 보이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당신은 그 점이 못내 안스럽다. 생전 별로 그렇지 못한 성미의 엄마가 이것저것 챙겨먹이려는 모습이 왠지 낯설고서글펐다. 평소 닦달하곤 했던 점이 아들에게 미안해서이겠지, 하면서 엄마의 눈가에 자글자글 그어지는 주름이 난 끼어들 수 없는 경계선처럼 느껴졌다. 내가 맘을 풀지 않고 있어서이겠지, 하면서도 이젠 정말 늙어가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고 화가 나는 건 또 무슨 일인지...

동생은 시인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젊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사는 엄마 집에는 오래된 가구가 많다. 그리 비싼 가구들도 아니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라고 시인은 짐짓 위안하고 있지만, 그리 추억할 만한 생채기가 묻어있는지 잘 모르겠다. 작년 여름 이사하면서 정말 생채기가 나 있었던 가구들을 대거 처분했다. 엄마에게 준 식탁과 장식장, 동생에게 준 소파와 거실장, 동서에게 준 5단 서랍장... 11평 연립주택에서 시작한 나와 남편의 집은 결혼 14년만에 6배정도로 불어났다.

엄마는 재수 좋은 가구 한 개쯤은 남겨두라는 말을 하며 새 것을 사들이는 맏딸을 불편한 눈으로 보셨다. 이래저래 걸리는 것들이 있어 내 원하는 기준으로 구입하지 않은 걸 후회하는 맘도 요새는 조금 있다. 만두국을 먹으며, 우리 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더해질 것이라는 남편의 말이, 엄마 아빠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떨 땐 고의적이다 싶게 눈치가 없다.  이제 완전히 생퉁맞게 삐죽거리며 뒤틀리기 시작한다.  너무 민감하다 싶은 내가 또 거추장스럽다.

엄마가 서실로 쓰는 방에 들어갔다. 월간 서예를 비롯해 붓글씨와 사군자에 대한 자료와 책자, 그리고 파일에 차곡차곡 정리해 둔 연습글자들을 보았다. 왜 이제야 눈에 들어왔는지, 나도 참 무심하다. 엄마가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고 계신 것인데,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다. 작가로 데뷔도 하셨으니 다음 기회엔 커다란 꽃다발과 함께 격려의 웃음이 담긴 편지라도 드려야겠다. 냉방의 서실에서 움츠린 어깨로 붓을 잡고 연습하는 엄마에게 따스한 힘 한번 제대로 실어주지 못한 못난 딸이다.

엄마의 가구에는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힘이 있을 법하다. 매달리고픈 소망이기도 하다. 가구란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생각을 몰아간다. 엄마의 손때가 묻었을 낡은 책상과 문방구, 아빠가 여태껏 쓰시는 스테인레스스틸 재떨이(원래는 보온 도시락)가 올라앉아있는 이동식 원목 테이블 같은 것들이, 훗날  이런 저런 이유로 상처 입은 내 가슴을 덥혀줄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의 힘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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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박형진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 (창작과비평사)

    박형진 시인은 지금도 전북 변산의 그트머리 모항이라는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고 한다.

 

1월 6일과 7일, 아이들을 데리고 생협에서 마련한 어린이 친환경캠프를 갔다왔다. 경북 상주로 세시간 가량을 달리는 동안, 옆에 앉은 친구랑 얘기하면서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간간이 보았다. 가지만으로 버티고 섰는 나무들에서 근육질의 생명력을 보았다. 예상만큼 춥지 않아 논에 물 뿌려 얼음판 얼려 놓고 그 위에서 옛날식 썰매 만들어 놀기로 한 건 완전 물거품이 되었다. 짱뚱이 시리즈에 나온 바로 그걸 타 볼 수 있겠다고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좋아했던 큰아이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다.

상주로 들어와 어느 폐교를 고쳐 환경학교로 만들어 놓은 아담한 건물 운동장에 버스는 우릴 풀어놓았다. 입교식을 하고, 환경을 생각한 세제와 일반세제를 각각 다른 어항에 풀어넣고 금붕어를 넣었다. 어휴~ 불쌍한 금붕어. 결국 두마리 금붕어는 시간을 달리 하긴 했지만, 아가미에 피를 머금고 물에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햄버거와 청랑음료의 비밀에 대해 공부하고 청량음료의 당도를 측정해 보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 간 얼레로 연도 만들었다. 일부러 도와주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혼자 힘으로 그런대로 잘 만들었다. 잘 날아 오르지 않아 속 상해 하는 아이에게 그곳 생산자 아저씬 자기가 만든 멋진 연을 선뜻 주며 날아 올리는 쾌감을 맛보게 해 주셨다.

쓱쓱 닦아 껍질째 먹는 사과를 아삭아삭 베어 먹으며,  굴렁쇠 돌리기, 재기차기, 줄다리기, 그냥 먼 산 바라보기를 하였다. 코로는 감자, 고구마 굽는 냄새가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작불에 감자와 고구마를 호일로 싸서 넣고, 또 한 쪽에선 돼지 바비큐를 준비하고 있었다.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항생제도 먹이지 않은 건강한 돼지, 농약이나 제초제를 주지 않고 키운 먹거리라 생각하니 개운했다. 곶감은 또 어떻고. 깨끗하고 적당히 달고 맛있어, 자꾸 먹고 싶어졌다. 변비 따윈 걱정 접어 두자고. 

이 곳에 와서 건강한 먹거리 재료로 만든 소박하고 깨끗한 음식을 주니(우리 엄마들이 당번 정하여 주방에서 만들었다), 아이들도 편식을 언제 했나 싶게 잘 먹었다. 그곳 그루터기 생산자들이 마련한 먹거리와 놀거리 모두, 심심한듯 무심하게 둘러 서 있는 그곳 풍경들처럼 그랬다. 수수하고 은근한 맛이랄까.

또 한 가지!  상주는 자전거 도시란다. 다음 날, 집으로 오는 길에 자건거 박물관에 들렀다. 엄복동의 사진과 희귀한 자전거들이 최초의 자전거와 함께 잘 전시되어 있었다. 아담하지만 볼거린 충분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모닥불을 가운데 하고 빙 둘러 서서 어린애마냥 엉덩이를 흔들며 율동도 하고 노래도 하다가 새까만 밤하늘로 문득 시선이 갔다.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여긴 어디지, 이놈의 병이 또... 아니,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아주 기분 좋은 낯섦이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낯섦이 또 한동안 나를 설레게 할 것이다.

전 국민의 3퍼센트가 생협의 조합원이 되면 우리 농가가 살 만하다고 한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하다며, 우린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도, 자기 아이들과 생업까지  팽개치고 십시일반의 일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열성 엄마들의 진지한 눈빛을 놓칠 수 없었다.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이 분들은 기꺼이 한 포기 풀잎이 되어주는 사람들 같았다. 내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생각했다. 나의 자리는 한 포기 풀일까, 아니 난 누군가에게 기꺼이 풀여치가 앉을 수 있는 풀잎이 되어줄 수 있을까,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려면, 난 얼마나 '나'를 버려야 하는지 생각했다. 버려야할 '나'는 보이지 않는 그물처럼 거추장스러워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 타인에겐 이기적이고 이질적이며 소심한 속성을 드러내니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무심하게 살자. 나를 잊고 나를 버리고 걸어보자. 검은 물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시골의 밤하늘 속으로 '나'를 온통 담궈버리자. 이 세상 속에서 나의 '모든 살아 있음의 제 자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아낼 때, 좋든 싫든 나를 대하는 모든 이들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 햇살, 바람이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는 풀여치에겐 풀잎이 되고, 맑은 하늘에겐 새가 되고, 물결치는 바람에겐 흐르는 물이 되고, 나를 믿고 따르며 안겨드는 아이들에겐  나도 뛰노는 아이들이 되리. 하나가 되리.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 오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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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진 2004-01-2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많이 놀랐어요. 엄마랑 글 보다가요. 저희 집도 생협 하거든요. 엄마께서 열심히 이 글 끝까지 보시더니 뭐라고 하시는 줄 아세요?
"야~이 분도 글 무지 잘 쓰신다!"
예진 왈
"그럼! 이 분이 명예의 전당 분이셔!"
엄마 왈
"진짜? 어휴~대단하시네!"
참고로 예진이네 집은 예진이 알라딘 명예의 전당이 꿈입니다.^^ 아주 크고 결정적인 소망이죠. 혹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저한테만 알려주세요^-^

프레이야 2004-01-2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진님, 요즘 글쓰기 샘물이 터져 쉬지 않고 콸콸 뿜어져나오는 님의 마이페이퍼 보며 참 즐겁기도 하고 생각의 힘이 느껴져요. 자신만의 생각을 그렇게 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글까지 유려하고 논리정연하니까요. 날마다 게을리하지 않으면 더욱 빛을 발할 거에요. 다음에 생협에서 마련하는 캠프에도 가족과 함께 가 볼래요? 푸근하고 건강하고 배부르고, 좋아요.
명예의 전당엔 뭐, 굳이 오를 필요 있나요?^^ 벌써 예진님 명성이 자자한데요. ^^
 

 

             포구의 잠

                                                                   김선우

 

생리통의 밤이면

지글지글 방바닥에 살 붙이고 싶더라

침대에서 내려와 가까이 더,

소라냄새 나는 베개에 코박고 있노라면

 

푸른 연어처럼...

 

나는 어린 생것이 되어

무릎 모으고 어깨 곱송그려

앞가슴으론 말랑말랑한 거북알 하나쯤

다 안을 만하게 둥글어져

파도의 젖을 빨다가 내 젖을 물리다가

포구에 떠오르는 해를 보았으면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물장구를 쳤으면 모래성을 쌓았으면 싶더라

 

미열이야 시시로 즐길 만하게 되었다고

큰소리 쳐놓고도 마음이 도질 때면

비릿해진 살이 먼저 포구로 간다

 

석가도 레닌도 고흐도 감자먹는 아낙들도

아픈 날은 이렇게 혁명도 잠시

낫도 붓도 잠시 놓고 온종일 방바닥과 놀다 가려니

처녀 하나 뜨거워져 파도와 여물게 살 좀 섞어도

흉 되지 않으려니 싶어지더라

                                                     <내일을 여는 작가> 1997년 봄호

 

    안도현이 눈여겨 보고 있는, 아직 시집 한 권 묶지 않은 젊은 시인이란다.

   어제 가족과 함께 바다에 갔다. 서서히 해가 바다로 내려가고 있었고 해면은 잘게 부서지는 유리조각의 발광체 같았다. 코로 들어오는 바다 비린내가 언제부터 좋았는지... 그래 자주색 볼레로의 교복이 이뻤던 여고 2학년 때다. 어느 일요일 새벽(겨울이었다) 시내 버스로 한 시간 남짓을 달려와 해돋이를 하자고, 몇이서 의기투합되었다. 겨울바다는 그렇게 큰 몸으로 나를 덮치듯 안겨왔다.

  딸아이 둘은 서로 새우깡을 많이 주겠다고 야단이다. 포말처럼 하얗게 몰려오는 갈매기들에게 하나라도 더, 잘(입에 쏙 들어가게) 주려고 전심전력 하고 있다. 가히 몰입의 경지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럽다. 작고 하찮은 것에 대한 탐욕스런 몰입이 부럽다. 양볼이 발그레 물들고도 안 춥다며 새우깡을 한 봉지 더 사게 해 달라고 조른다. 수퍼에서 사는 값의 두배 이상의 값을 치르고, 작은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로 난 수평선을 따라 걷는 기분이다.

  "갈매기가 내가 던진 거 먹었어. 바다로 떨어진 건 아마 물고기가 먹었을걸. 갈매기가 날개를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참 좋아."

  아이는 시인이다.

  아이들 아빠는 카메라를 바꿔 가며 바다와 하늘과 갈매기와 사람을 담느라 바쁘다. 내 눈의 렌즈는 이 모든 풍경을 사진처럼 담고 있다. 정지한 시간이기라도 하듯 스틸사진으로 담고 있다. 무비카메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이랑 닮았다. 살면서 닮아가는 면이 많기도 하다. 다양한 각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본다. 한마디로 자기 목적성이 강한 인간이다.('몰입의 즐거움'에서 이끄는, 질 높은 삶을 사는 인간형)  

  난 마음 속에 어떤 갈등이 있어 혼란스러우면 칩거하는 유형인데, 이 사람은 카메라 가방 메고 새벽에 나가는 형이다. 한때 그 도구가 낚싯대인 적도 있다. 난 가장 싸게 먹히는 도구, 바로 책을 보고 노는데 말이지.  보이지 않는 족쇄에 스스로 매어서 헤어나질 못하는 '나'는 이제 떨쳐버리고 그 모든 타성에서 벗어나야지.

  바다는 '나'를 버리라 한다. 그릇된 자아일랑 바닷물에 던져버려라. 까닭 모르게(사실은, 알고 있다. 나 자신의 한계가 두려워 입 밖에 내지 않을 뿐) 아픈 날,  바다는 한 몸으로 날 달구고 서늘하게 식힌다.

   딸아이들과 난 여자 사우나에서 목욕하고 남편은 찜질방에서 있다가 두 시간 후에 만났다. 통유리 밖으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욕조라니. 이런 작은 호사는 누려도 뭐랄 사람 없겠지. 아이들 살갗이 참 보드랍다.  동그란 엉덩이는 마알간 해 같다. '이제 막 생겨난 흰 엉덩이를 까불며' 종알댄다. 몇달 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아이들 건강한 거, 감사하다. 하지만 내 몸무게는 늘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래도 난 종종 달콤한 도넛이 먹고 싶다. 초콜릿이 얌전히 발린, 동그란 구멍 있는 도넛에 커피 한 잔.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나의 애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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