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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는 독서 - 21세기 일본 베스트셀러의 6가지 유형을 분석하다!
사이토 미나코 지음, 김성민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글이란 참. 100자평을 적을려고 했던건데.
<문단 아이돌론>을 제외하면 사이토 미나코 책 중 번역된 책은 <취미는 독서>뿐이다.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취미는 독서>역시 <문단 아이돌론>과 마찬가지로 2000년 대 초반에 출간된 책이다. 사이토 미나코는 당시 일본 베스트셀러 유형을 6가지로 분석해 40여 권의 책에 대한 평을 담았다. 이 중에 호평이라 할 만한 책은 히노하라 시게아키의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강법> 정도. 이 한 편을 제외한 모든 책들에 사이토 미나코는 ‘혹평 폭격’을 퍼붓는다. 영토를 가리지 않는 사이토 미나코의 혹평의 향연. 그에 걸맞는 촌철살인 문장들의 융단폭격이 펼쳐진다. 아사다 지로, 베른하르트 슐링크, 에쿠니 가오리, 미야베 미유키, 무라카미 하루키, 사이토 다카시도 그녀의 폭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바쁜 현대인을 위해 사이토 미나코는 ‘독서 대행업’을 시작한다.
“제가 대신 읽어드리지요.”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책을 읽지도 않은 사람이 책 내용을 꿰고 있다. 그보다 이상한 일도 있다.
“그대로 놔두면 큰일 날 책입니다. 심한 책이에요.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어보지도 않고 읽을 가치가 없다고 말하다니!
‘안 읽어도 다 안다’, ‘읽을 가치가 없다’는 책을 구태여 사서 읽는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그래서 사이토 미나코는 ‘독자 탐정업’을 병행한다. 독서 대행업과 독자 탐정업을 3년 반 정도 한 이후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사이토 미나코는 독자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편식형 독자, 독서원리주의자, 과식형 독자(독서 의존증), 착한 독자. 저자에 따르면 착한 독자를 제외한 세 가지 타입의 독자들은 치료가 필요하다.
“이따금 독서와 스포츠를 혼동하는 극성파까지 나와, 소리내어 책을 읽으라는 둥, 책에 삼색 볼펜으로 선을 그으라는 둥, 책 읽는 방식까지 가르치려 한다.” p23
이거 사이토 다카시 까는 거겠지? 사이토 미나코가 보기엔 베스트셀러를 읽는 독자. 이들은 착한 독자다. 왜 착하냐? 이들 때문에 출판계가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독자 타입과 달리 사이토 미나코는 표면적으론 착한 독자를 추켜세우는데 읽다보면 아리송해진다.
“단 ‘착한 독자’에게는 결점이 하나 있다. 책의 질이나 내용까지는 따져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동해’라고 하면 감동하고 ‘울어’라고 하면 울고 ‘웃어’라고 하면 웃는다. ....”
출판계 입장에서야 이런 독자가 착한 거겠지만 흔히들 이런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지 않나?
시종 일관 그녀의 촌철살인 혹평에 폭소를 터뜨리게 되지만 그녀의 작품에 대한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예리하다. 이 기회에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해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나는 나를 고발한다. 그렇다. 어릴 적 나는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 뭔가 불편하긴 했지만 그게 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
“아시겠습니까? <책 읽어주는 남자>란 ‘지적인 남자를 위한 소설’인 겁니다. 이 얼마나 편리합니까. 소년 청년 중년을 지나 ‘나’는 시종일관 ‘좋은 추억’만 가진다. 소년 시대에는 부탁하지 않았는데 성욕을 처리해주고, 청년 시대에는 드라마틱한 정신적 갈등을 제공하고, 마지막에는 그녀가 죽어 애물단지가 사라진다면, 이렇게 고마운 이야기는 없다. 책을 읽어줬다고? 전쟁 범죄에 대해 생각해봤는가? 그런 건 ‘좋은 추억’속에 있을 때 이야깁니다.” p101
그녀의 말대로 <책 읽어주는 남자>는 포경문학이다. 페미니즘 관점에서도 이 책은 쓰레기다. 그러나 이 책의 문제는 페미니즘 보다 더 심각하다. 책을 읽으면서, 혹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한나가 나치 전범이란 사실을 계속 잊곤 했다. 문맹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한나를 동정하다니. 한나는 어린 아이들을 발가벗겨 가스실로 데려간 이가 아니었던가?
그러니까 책을 읽는 동안 우린 부지불식간에 나치에 동조하게 된다. 자살? 한나에게 자살은 비극이라기보다 축복이다. 숱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놓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면서 고작 글을 모르는 게 부끄럽다고?!! 이토록 후안무치한 캐릭터를 동정했다니!! 그녀가 깨우쳐야 할 건 글이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6가지 베스트셀러 유형 중 한 가지만 언급하자. 가장 이목을 끄는 유형은 ‘어른 책은 중학생 용으로 만드는 게 제일’이다. 소설로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과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가 올라있다. <모방범>에 대해 미나코는 ‘전 일본인의 여중생화’라고 결론짓는다. 아, 난 재밌게 읽었는데.
나, 여중생이었던거얌.
<해변의 카프카>에 대해 미나코는 ‘언뜻 보면 난해하지만 애들 편리할 대로 해석할 수 있는 소설’이라 평한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어떻게 판단해야할지 몰라 판단을 유보했으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미나코와 비슷한 입장으로 정리했다. 난해해 보이지만 뜯어보면 유치찬란하기 이를 데 없다. 하루키 소설의 인기는 어쩌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섹스해주는 여성들 때문일까. 그래서 나는 계속 하루키를 읽는 걸까?
(아, 누군 부탁할 수도 없을뿐더러, 부탁해도 될 리가 없는데)
이렇게 끝내자니 사이토 미나코의 입담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듯싶다. 정말 마지막으로 <냉정과 열정사이>만 언급하자. 사이토 미나코가 읽은 바로는 <냉정과 열정 사이>는 ‘임신 소설’이다. 플롯에 임신 중절을 넣은 소설.
“나의 분류에 따르면 <Blu>(츠지 히토나리)는 ‘청년타격담’, <Rosso>(에쿠니 가오리)는 ‘숫처녀 자립담’이다. 요즘은 연애 만화도 이런 흔해빠진 전개는 낯부끄러워 기피한다.” P188
숫처녀 자립담이었다니! 두오모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지.
사이토 미나코의 마지막 한 방을 감상하시라.
“아름다운 육체, 라파엘로의 나부 같은 수세기를 초월한 영겁의 미와 존엄성을 지니고 있었다.”(Blu)
라고 감탄하는데 피임은 했는지? 또 임신하면 어쩌려고. <냉정과 열정 사이>가 아니라 <오한과 발열 사이>로 제목을 바꾸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