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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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쓴 리뷰가 아닙니다.

 

신간 평가단의 책과 리뷰가 겹치게 될 때마다 고민이다. (신간평가단의 선구안은 신뢰할만하다.) 이미 리뷰가 넘쳐나는데, 내가 또 무언가를 보태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남들은 폼 나게 책 받고 쓰는데 책도 못 받고 리뷰 쓰는 나는 얼마나 속없고 한심해 보일까? (책도 못 받고 리뷰 쓰는 사람이 있다고?! 아니, ?)

, 쪽팔려. 부끄럽다.

 

그렇다고 페이지가 줄어들 때마다 안타까워한 책의 독후감을 건너뛰어야만 할까? 리베카 솔닛은 페넬로페다. 솔닛은 마치 오딧세우스를 기다리듯, 아직 오지 않은 독자를 고대하며 이야기의 실을 감고 이야기의 실을 푼다. 리베카 솔닛은 셰에라자드다. 나는 마치 술탄마냥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되기를 바랐다. ‘온기라는 씨줄과 냉기라는 날줄이 직조해낸 테피스트리의 실 한 오라기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리베카 솔닛은 얼음처럼 날카롭고 호흡처럼 따스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poesis’ 만들어내고, ‘to spin’ 잣는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과학기사의 제목이라니. 시가 아니었다니. 이 문장이 나를 싣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나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먹고 사는 나방이었을까. 화가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는 얼음 하이힐을 신고 얼음이 녹아 맨발이 될 때까지 서 있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하여간, 설치미술가들이란! 너나할 것 없이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하는군.’

 

추위로 손발의 감각이 없어지고 나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다시 따뜻해진 후에야 비로소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신데렐라>에서 여성은 신발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변형시킨다. 반면 아나는 신발을 부수고, 맨살과 얼음 사이의 투쟁을 통해, 그리고 현실에 맞지 않는 동화와 그녀 자신이 가진 굴복하지 않는 온기 사이의 투쟁을 통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 한번도 <신데렐라>를 저렇게 해석해 본적이 없다니! 남성인 나는 얼마나 무감각한지. ‘신데렐라 형여성을 비판하기만 했을 뿐, 여성을 신데렐라 화하려는 사회의 구조는 간과했다. 그렇다. 신발에 맞추도록 여성을 강요한 건 남성이었다. 남성은 여성의 눈물을 먹고 사는 나방이었다.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이나,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같은 건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일 뿐이다.

 

솔닛은 맨스플레인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솔닛은 서론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의 공존, 공감, 연대를 말한다. 리베카 솔닛은 나병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나병은 특정 박테리아에 대한 감염 때문에 발생한다. 나병은 대체로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감각의 마비 때문에 병이 악화된다. 솔닛은 묻는다. ‘나 역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손발 어딘가가 마비된 것은 아닐까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때, 나병 환자의 살이 썩어가듯 우리의 영혼도 썩어갈 것이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수축하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한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카이의 심장은 트롤의 깨진 유리에 박혀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된다. 카이는 자신을 찾아와 눈물 흘리는 게르다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눈물로 인해 카이는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을 토해 낸다. 게르다의 뜨거운 눈물이 카이의 얼음 같은 심장을 깨부순 셈이다. 키츠의 시구처럼 현세는 영혼을 다듬는 골짜기여서 응급상황과 어려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책 역시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이 눈물을 마시고 나는, 나를 둘러싼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다.

온기로 가득 차.

 

밑줄 그은 문장


“가까이 있는 거야”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뉴욕에서 몇 년을 지낸 후 뉴멕시코의 시골로 이사한 조지아 오키프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인사말을 덧붙였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철학자 찰스 그리스월드는 자신의 책 <용서>에서 말했다. “후회는 이야기를 하려는 열망이다.”

얼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Glace에는, 거울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얼음, 거울, 유리.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을 ㅗ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는 광활함이다.

고대 그리스어 ‘프시케’는 숨, 생명, 삶의 본질적인 활기, 영혼을 뜻하고, 때로는 영혼의 상징인 나비를 뜻하기도 한다.

냉기는 거의 모든 것을 보존한다. ‘동결하다freeze’라는 단어가 현대 영어에서는 ‘시간을 멈추다, 진행을 멈추다, 영상을 멈추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시간이 강이라면 아마 그 물은 얼음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렇게 흐름을 멈추고 정지한 시간이 극지방의 완고한 안정감이다.

극지방의 태양에 관해 쓴 지 1년쯤 후, 그러니까 남편이 갑작스레 익하한 후에 메리 셸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마음이 차가운 사람인 걸까?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이 마음 한가운데 있는 얼음같이 차가운 무언가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겠지. 적어도 이 차가운 심장에서 나온 감정이 만들어 내는 눈물은 뜨거운 것임을.”

p94. 이스터 섬의 원주민이던 라파누이는,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그 의식을 좀 더 삶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예언자들은 의식에 참가할 사람들을 꿈에서 선정했다. 누군가의 꿈에 등장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된 것이다. 참가자들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으로 헤엄쳐 간 후에, 그해 처음 낳은 검은등제비갈매기의 알을 찾아서, 다시 헤엄쳐 와서는, 알을 깨뜨리지 않고 절벽을 올라와야 했다. 익사하거나, 상어에게 잡아먹히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참가자들도 종종 있었다. 우승자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홀로 지내게 되지만, 1년 동안 사람들의 찬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부족은 그가 가져온 검은등제비갈매기 알 덕분에 그 섬의 모든 알을 독점할 수 있었다.

버드맨 의식은 어떤 작은 물건을 전리품으로, 영적이거나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혹은 삶을 바꾼 어떤 징표로 여기는 수많은 이야기 중 극단적인 예이다.

검은등제비갈매기 알은 점이 찍힌 작은 알일 뿐, 별다른 특징도 없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은 마케마케makemake다.

p99. 도서관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성지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지휘소다. ..도서관은 세상으로 가득 찬 은하수다. 모든 독자는 우다오쯔이며, 상상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책은 독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풍경이다.....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p100. 나는 침묵에서 시작했다.....나는 침묵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엔 긴 여정을 거쳐 아주 멀리서도 들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아무도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고 청중 앞에서 낭독할 때라도 여전히 부재하며 멀리 있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지의,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09 성 프란체스코는 젊은 시절 말라리아에 걸려 군대에서 돌아온 뒤, 요양 중에 자신의 영적인 운명을 깨달았다. 모기 한 마리가 그런 영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p111. 그 혈액세포의 생성 과정을 ‘조혈(hematopoiesis)’이라 하는데, 각각 ‘피’와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가 합성된 단어이다. 시(poetry) 역시 ‘포에시스poesis’에서 유래 했는데, 여기에는 예술이 단지 모방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사상이 깔려있다. 우리가 ‘시’라는 뜻으로 쓰고 있는 단어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상의 모든 ‘만드는 행위’를 보았던 것이다.

p115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마라.” 이번 모험은 두 손으로 덥석 받을 많은 이유가 있었다. 마치 책이 하나의 문이 된 듯했다.

‘에로스와 프시케’를 읽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보이는 그대로 사랑 이야기로 읽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도전 의식과 하나가 되려는 욕망,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로 읽는 방법이다. 이렇게 읽으면 두 주인공은 두 인물이 아니라 한 존재의 두 가지 측면이 된다.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이나,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같은 건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일 뿐이다.....흡혈 나방으로 알려진 많은 종류의 나방들은 척추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살고, 열 종 남짓한 어떤 나방은 포유류의 눈을 공격해 단백질과 소금, 기타 미네랄을 먹고 산다.

p121. 젊을 때 읽었던 마르키 드 사드의 문장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아, 늘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시간에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이 살덩이든 저 살덩이든, 오늘은 한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지만 내일이면 천 마리의 곤층으로 변해 버릴 것을?” 사드에게 중요했던 이 질문 혹은 탄식은 일반적으로 분해라고 상상하는 어떤 과정이 또한 변신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p125.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p133. 17세기 프로테스탄트 목사이자 북아일랜드 데리 지역의 주교였던 에즈키엘 홉킨스

“이 모든 것이, 비록 매끈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입니다. 비눗방울, 허공에 떠다니는 비눗방울이 온갖 광택과 색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진정한 세상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신의 숨결을 허공에 불어 만든 커다란 비눗방울에 불과합니다.” 몇 세기 전 네덜란드 철학자 에라스뮈스도 오래된 라틴어 표현 ‘homo bulla’ 즉 ‘인간은 거품이다.’라는 명제를 되살려 냈고, 바니타스 회화에서는 종종 작품 속에 비눗방울이 떠다니기도 한다.

자신의 숨을 세면서 거기에 집중하는 훈련은 선종의 명상에서 기초가 되는 훈련인데, 이 과정이 지루하다며 불평을 하는 제자가 있었다. 스승은 제자의 고개를 개울물에 넣은 다음 한참 후에 꺼내 주며 “아직도 지루하냐?”라고 물었다. 그 일시성이 분명해질 때, 숨은 지루하지 않은 것이 된다.

p194. ‘잣다 to spin’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그저 뭔가를 만드는 행위를 뜻하다가, 빠르게 도랑가는 건 뭐든 뜻하게 되었고, 결국 ‘이야기를 하다’라는 의미까지 지니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바늘이다. 하지만 거기에 꿰는 실은, 물론, 그림자다”라고 브렌다 힐먼이 자신의 시 <수트라 끈 이론>에 적었다. 영어와 라틴어에서 ‘꿰매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suture’sms 산스크리트어의 ‘수트라sutra’ 혹은 고대 인도어의 하나인 팔리어의 ‘수타suta’를 어근으로 하고 있다. 두 단어 모두 바느질과 관련이 있다.

‘수트라’라는 단어는, 플랫폼 수트라(육조단경), 하트수트라(반야심경), 로투스 수트라(법화경) 같은 단어에서 보듯이, 붓다 자신 혹은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훗날에 묶여 나오는 학문적이거나 철학적인 글들과 구분된다......수트라에 적힌 말이나 그 의미들이 만물을 관통하며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실들이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고 삶이 흐르는 혈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울게 한다. “희망이 곧 역사로 이루어지는” 순간, 아주 오랫동안 찾으려고 노력했던 어떤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는, 그와 함께 어떤 질서를 알아보고 또 만들어 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 그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도덕적인 아름다움까지 포함하는 어떤 순간, 정의가 행해지고 진실이 존중받고 질서와 일체성이 회복되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어떤 깊이 있는 아름다운 정의를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실처럼, 시간에 따라 풀려나가는 하나의 서사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들 각각은 그저 하나의 섬이고, 그 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실이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일 뿐이다.

테피스트리 같던 특정 시기에서 실을 한 올 뽑아 보면, 내가 기술한 것은 모두 진실처럼 느껴진다.

p215. 하지만 승려들은 군부와의 연계는 거부했다. 시위의 절정에서 승려들은 매우 보기 드문 의식을 행했다. 그것은 팔리어로는 ‘파탐 니쿠자나 카마’, 즉 아무것도 담을 수 없도록 시주받는 그릇을 엎어 버리는 의식이었다......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 대가로 무언가를 내어 주는 것 역시 거부하는 것이며, 동시에 속세의 사람을 종교인의 삶과, 영적인 삶과 이어주던 끈을 끊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p222. 네 번째 광경은 <불소해안>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바로 ‘비구’, 즉 홀로 방랑하며 인간이 고통받는 원인을 찾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 삼을 바친 사람들이다.

p225. ‘두카’는 하늘, 공기 혹은 구멍, 특히 바큇살의 축에 있는 구멍을 의미한다. ‘수카’가 바퀴가 잘 굴러가게 하는 좋은 구멍이라면, ‘두카’는 잘못된 구멍, 바퀴가 흔들리고 길에서 덜컹이게 하는 구멍이다. 이는 조화나 차분함의 반대어로, 불화 아니면 소란으로 번역할 수 있다.

p232. 그 이어짐이 비극인 이유는 철새와 함께 이동하는 독성 물질과 기후변화 때문이다. 그 독성 물질은 곰을 자웅동체로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린란드 여성의 모유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유해 폐기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수반카가 말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시작되는 독성 물질의 여정이 북극에서 끝나거든요. ”

나방이든 나비든 다 자란 곤충은 ‘이마고’라고 부른다. 그 복수형이 ‘이매진즈’다. 나방이나 나비, 혹은 날 수 있는 다른 곤충을 성충으로 완성시키는 세포를 ‘이매지널 세포’라고 부른다. ....이마고는 또한 ‘한 인간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라는 뜻도 가지는데, 이 이미지는 보통 어린 시절에 부모를 보며 형성된다.

불교에서 정신의 낙원을 뜻하는 니르바나는 촛불이나 불꽃을 ‘불어서 끄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다. 그건 열정이 가진 열기를 끄는 것, 숨을 길게 내쉬며 흘려보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p294.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벌hevel’이고, 이는 숨 혹은 수증기라는 뜻으로, 숨처럼 순간적이고 수증기처럼 금방 사라지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북극은 예외였다. 그곳에서는 페테르 프로이켄의 숨이 그래도 하나의 구조물이 되었다.

p350.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적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글을 쓰다가 무엇이 무엇에 속하는지를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도 그렇다. 여기서 나는 내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도달한다. 어찌되었든, 원단의 뒷면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우리는 ,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그 패턴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 세계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 말이다.”

p355. 피터 싱어는 “현실을 파악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두 개의 과정. 즉 정서적 체계와 의도적 체계”를 이야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자는 이미지나 이야기에 관여하며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후자는 사실과 수치에 관여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p363. 응급상황emergency이란 무엇일까? 이 단어의 어근을 보면 ‘부상emergence’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고, 그다음엔 ‘나타나다emerge’까지 이어진다. 응급 상황이란 무언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오는 ‘응급 상황’의 첫 번째 정의는 “가라앉았던 사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현재는 많이 쓰이지 않음”으로, 이는 ‘부상’의 정의와 동일하다. 두 번째 정의는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마치 물놀이를 하던 사람이 갈대를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그다음에 가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가 나온다. “에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한 상태, 즉각적인 대처를 서둘러 해야 하는 상태.”

시인 존 키츠는 현세란 “영혼을 다듬는 골짜기”이며, “응급 상황과 어려움을 통해 영혼이 만들어진다.”라고 했다. 응급 상황이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시기라면, 융합merge은 그와 반대되는 상황이다. “어떠한 특정한 활동이나 삶의 방식, 환경에 빠져들게 하는 것,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어떤 액체에 녹아드는 것”, “어딘가에 포함, 흡수, 혼합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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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5-08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다시 펼치고 싶네요.

시이소오 2016-05-08 09:30   좋아요 0 | URL
야금야금 읽다 반납할 때가 되어 슬프네여. 흑 ^^;

:Dora 2016-05-0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이책 집어들었다 놨었는데.. 리베카 솔닛 ♡

시이소오 2016-05-08 09:59   좋아요 0 | URL
아직 다 안 읽으셨군요. 느무 부러워요 ㅋ^^

:Dora 2016-05-08 10:00   좋아요 0 | URL
시작도 못했죠 사려다 말았거든요...

시이소오 2016-05-08 10:02   좋아요 1 | URL
사셨어야죠 ㅋ

:Dora 2016-05-08 10: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사고픈 책이 너모 많았어요 솔닛아줌마가 이양구샘 책에 밀렸어요 ㅋㅋ

시이소오 2016-05-08 10:10   좋아요 1 | URL
호모 파베르의 인터뷰도 읽고 싶네요 ^^

:Dora 2016-05-08 10:15   좋아요 0 | URL
네 꼭 읽어보셔요^^ 제가 좋아하는 연출님이에요 필경사바틀비 연극한다는데 공유도 할게요

시이소오 2016-05-08 10:18   좋아요 1 | URL
꼭 읽어볼게요 ^^ 바틀비를 공연하다니 신선하네요 ^^ 바틀비적 정신이 필요한 시대죠. ^^

보물선 2016-05-0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러나와 쓰는 서평이 진짜 서평이죠^^ 잘 읽었슴다. 남자들의 느낌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읽어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5-08 10:21   좋아요 1 | URL
나방의 깨달음이죠. 후반부에도 기가막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즐독하시길 ^^

보물선 2016-05-0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나방까지 읽었어요 ㅋㅋ

시이소오 2016-05-08 10:24   좋아요 1 | URL
나방 이야긴 챕터마다 계속 나와요 ^^

보물선 2016-05-08 10:26   좋아요 0 | URL
그럼~~처음 나오는 나방^^ 신데렐라 구두이야기까지였던 것 같아요~ 이 여자(분)의 세계는 정말 크구나 그런느낌^^

시이소오 2016-05-08 10:31   좋아요 1 | URL
리베카 솔닛의 다른 책도 궁금하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5-0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님 리뷰는 항상
그 책을 손에 쥐고싶게 만들지요^^

시이소오 2016-05-08 21:04   좋아요 0 | URL
강요님이 그렇게 읽어주시니 그렇죠. 감사합니다 ^^

보빠 2016-05-09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것 좋아하시
네요 리뷰에서 느껴집니다

시이소오 2016-05-09 09:43   좋아요 0 | URL
좋아하죠. ^^

cyrus 2016-05-0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본 적이 없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이소오님이 서평단 모집할 때 지원하면 선정될 겁니다. 저는 신간도서를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습니다. 시이소오님처럼 생각하면, 신간도서 못 사는 제가 한심해집니다. ㅎㅎㅎ

시이소오 2016-05-09 17:34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신간이건, 구간이건 모든 책을 빌려 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