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이 달의 북결산






이 달에는 총 13권의 책을 읽었다. 
1권은 거의 몇 개월을 읽고 마무리한 거라 이 달에 완독한 책은 아니지만 어쨌든!

<인류본사>를 통해서 아나톨리아의 역사를 유럽 중심이 아닌 땅 자체의 역사로 읽었다.

<시민의 한국사 1>, <시민의 한국사 2>는 한국 통사로 새롭게 읽을 만한 책이 추가되었다는 즐거움으로 읽었다.

<만선사, 그 형성과 지속>은 만선사의 내용과 구체적 흐름을 이해하기에 적합한 책이었다.

<임신중지>를 읽으면서 메시지가 주는 감정적인 동요와 싸우느라고 좀 힘들었으나 읽기는 잘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를 통해서 합스부르크 왕가가 제국이 되고 소멸해가는 역사를 한 눈에 엿볼 수가 있다.

<중국철학사>는 처음에 이걸 내가 왜 읽으려고 했을까를 생각했었는데 읽다보니 점점 도움이 된다는 게 느껴졌다. 논어, 맹자 고전을 읽으면서 부족했던 사상가들의 역사적 배경을 이 책을 통해서 채웠기 때문이다. 물론 주역처럼 난해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넘어가야 했지만^^;;;


원래 읽기로 한 책은 아니었으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과 구매한 책 중에서 1권,  오디오북으로 1권 완독했다.

이번 달에 빌려 읽은 책들이 다 만족스러워서 좋았다.

<다이브>는 기후위기, 기억, 죽음, 영생 등 다양한 메시지를 던져주어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저주토끼>는 표지도 섬뜩했고 공포 장르와 친하지가 않아서 읽기가 망설여졌으나 읽고 보니 괜찮았다. 일상에서 만나는 공포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통해서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작가님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배운 것도 많았고 그림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림책을 도서관에 갈때마다 야금야금 읽어보려고 한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는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책 중 가장 마지막 권이지만 읽기 가장 편하다고 하시는 서재 친구분들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읽게 됐다. '융합(crossing)'이란 단어를 얻고 가는 것 같다.

<교토의 밤 산책자>는 북플 미션이 해외여행 도서이길래 처음 도전해봤다. 당첨운은 없어서 기대는 하지 않고 책 자체는 좋았다. 여행 에세이는 과거의 여행을 떠오르게 하는 맛이 있는 것 같다. 작가의 글이 따뜻했다.

<토지 2> 이제는 제법 오디오북이 익숙해졌다는 걸 느꼈다. 1권보다 2권이 더 좋았던 걸 보면 앞으로도 잘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1권은 처음부터 많은 인물들로 압박이 있었다. 2권은 그에 비해 특정 인물들에 집중하여 사건들이 전개되어 그나마 덜 어지러웠다.

마지막으로 애증의 <맹자집주>. 와~ 이걸 내가 대체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도 기억이 가물하다. 작년 말부터 들었나? 너무 오래 걸려 어느 순간 체크도 안했음.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끝을 맺었다는 게 감격스럽다ㅠㅠ 내용은 하나도 정리가 안됨^^;(1회독에 뭘 바라니)


#2 - 이 달의 3대 사건(개인적)

재앙이었던 비. 너무 많이 내렸다. 3번이나 퇴근길에 온 몸이 젖어서 간 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찝찝하고 눅눅하고 불쾌한 기분. 다시는 이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으나 기후 재앙은 이제 피할 수가 없게 되버린 것 같다.

- 집콕했던 여름휴가. 거의 난생 처음이지 않을까? 여름 휴가에 어디 가지도 않고 집에서 책만 읽었던 건 내 인생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좋았다. 읽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읽었고 휴식도 충분히 하면서 지냈다.

- 불과 어제. 주 신용카드를 잃어버려서 정신이 가출할 뻔 했으나 무사히 처리했다. 출퇴근 예약버스 때 해당 카드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다른 카드로 등록하면 사용할 때 문제 없다는 걸 알고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카드 재발급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귀찮게 됐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서 잃어버린 건 아니니까!




북플의 독보적 미션은 오늘 완성한다면 모두 미션 clear하게 된다.



다음 달 책은 무얼 읽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어차피 쌓여 있는 책들 중에서 읽을 작정이다. 그리고 몇몇 소설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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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31 16: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코로나 이후로는 꼭 가야하는 곳 이외에 여행을 거의 못갔어요. 더구나 이번 여름 비가 너무 많이 왔었죠... 기후 재앙은 제생각에도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것 같습니다. 화가님 이번달도 수고 많으셨어요^^*

거리의화가 2022-08-31 17:00   좋아요 3 | URL
코로나 이후 옆지기가 이제 움직이는 게 귀찮아졌는지 더 움직일 생각을 안합니다. 마트 가는 게 다인 것 같아요^^;
이번 여름 비 생각하면 징글징글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이 잦을테니 마음을 내려놓아야하는 게 맞겠죠^^;
다음달 읽을 책의 반 이상이 소설이 될 것 같은 예감이ㅋㅋㅋㅋㅋ 미미님도 이번 달 고생하셨습니다!

하이드 2022-08-31 1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이브 너무 좋아하는 책입니다. 분량 짧은데 담고 있는 것이 많아요. 저주토끼는 나온지 오래되었는데, 지금 읽어도 굉장히 강렬한 스토리지요. 정보라 작가님, 박사님, 강사님 이번에 연세대 소송하신 것 잘 풀리시길 바라요. 정희진 선생님 쓰기 시리즈, 저는 책 소장 안 하지만, 욕심나요. 기 받고 싶고요.

거리의화가 2022-08-31 21:32   좋아요 1 | URL
하이드님 영상에서 본 다이브^^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서 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읽기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저주토끼는 표지와 장르 때문에 접근이 꺼려졌는데 읽어보니 진입장벽이 있는 것 빼면 내용도 좋고 메시지도 주어서 좋았네요. 정희진 선생님 책 좋아하신다면 더 만족하실 것 같아요. 저는 거의 아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봤는데도 얻는 것이 많았거든요^^

stella.K 2022-08-31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흐미, 바쁘고 더운데 저 많은 책을 어떻게 다 읽으셨을까? 그저 존경스러울뿐입니다.ㅠ
저는 화가님의 반의 반도 못 읽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제 책 읽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으니
열심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31 21:34   좋아요 1 | URL
날이 좋으면 놀러다닐 생각을 하게 되는 단점도 있어서 저는 오히려 여름, 겨울에 책을 더 많이 읽는 듯합니다^^* 스텔라님의 독서생활 응원할게요*^^*

바람돌이 2022-08-31 2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대체가 만만한 책이 없는.... 저걸 어떻게 다 읽으셧대요? 저는 만만한 책으로만 읽어서 저정도 권수 읽은 거 같은데요. ㅠ.ㅠ 심지어 저 지금 놀고 있습니다. ㅠ.ㅠ

거리의화가 2022-09-01 09:07   좋아요 1 | URL
8월에는 중드 시리즈 하나 본 것 빼고는 영상물 보지 않고 책만 읽었습니다^^;;; 티비를 간간이 보지만 하필 8월에 예능 프로그램도 쉬어서 볼 게 없더라고요ㅋㅋㅋ
이달에는 추석이 껴 있어서 8월처럼 읽기는 어려울 것 같고 2~3권 정도에 집중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빼고요.

scott 2022-09-01 0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카드 분실 아찔 ㅠ.ㅠ

비가 너무나도 많이 내렸던 8월
높은 습도에 화가님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스맛폰 카드 잃어버릴까봐
가까운 미래 몸에 유심칩(블레이드 러너 처럼) 장착 할지도 ㅎㅎㅎ

화가님 읽는 속도와 책 쟁이는 속도가 넓어지고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9월 천고 마비의 계절

화가님 열독 응원 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9-01 09:09   좋아요 2 | URL
스콧님 카드 생각만 하면 저도 내 정신머리가 왜 이러나 한숨이...ㅋㅋ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죠뭐~
8월에는 휴가 때 어디 안가서 이렇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달은 명절이 껴 있어서 불가능할 것 같아요. 두세권 정도에 집중하고 소설을 읽으며 시원한 계절을 누려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22-09-01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3권 ! 쨕쨕쨕 수고 많으셨습니다.

날이 보다 더 선선해졌으니 9월의
독서도 응원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9-01 09:4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매냐님도 많이 읽으셨던데요. 9월 독서도 즐겁게 이어가시길^^

새파랑 2022-09-02 1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화가님 8월 한달을 알차게 보내셨군요~!! 읽은책 종류도 다양하시고~!! 9월도 응원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9-02 13:10   좋아요 2 | URL
ㅎㅎㅎ 새파랑님 9월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며!ㅎㅎㅎ 저도 응원합니다!^^*

mini74 2022-09-02 16: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진짜 좋은 역사책들 소개 요약해주셔서 좋아요! 저 두꺼운 책들을 다 읽어내시다니!!! 9월엔 어떤 책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9-02 16:27   좋아요 1 | URL
미니님 항상 제 글을 잘 읽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9월에는 가볍게 가려고 합니다. 베크 세계사 읽어야 해서 일단 시리즈 4이니까 나눠서 한달에 한권씩 가려고 생각했어요. 이 달에 이 책 외에는 다른 책들은 안 두껍습니다. 저는 오히려 소설 읽을 일이 걱정입니다ㅎㅎㅎㅎㅎ
 


말미에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등장해서 정신을 못 차렸다. 최치수, 김평산, 귀녀, 칠성, 강포수 간에 얽히고 설킨 관계는 이것이 그나마 나은 것이었을까를 생각하게 하여 뒷맛이 개운치가 않았다.
나는 무엇보다 함안댁의 운명이 너무 기구하고 슬펐다. 잘못을 빌어야 할 사람은 되려 언성을 높이는가 하면 떳떳해야 할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목청 높은 이에게 희생되는 것. 누구 탓을 해야 할까?

2권은 역사적 배경이 1권과 멀지 않고(1897년~1899년) 책의 내용상 인물 간에 사건에 집중하여 역사적 사건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어느 세월이든 본시의 것을 오래 지키는 쪽은 서민인가 하오. 지금 친일하여 삭발하고 양풍을 따라 의관을 바꾼 사람들은 모두 양반들 아니겠소? 제 나라 백성 다스리는 데도 남의 힘, 제 겨레를 치는 데도 남의 힘, 그럴 때의 체통은 불관지산가 본데, 허 참, 이야기가 빗나갔소이다."
"서울서는 만민공동회라던가 관민공동회라던가? 뭐 그런 것이 생겼다 하는데 대체 그것은 무엇이오? 말로는 고관대작에서부터 아녀자 백정까지 한자리에 모여 시국을 논했다 하는데 그게 사실이오?"
"사실인가 보오. 갑신변란 때 미국으로 달아난 서재필이란 사람이 돌아와서 만든 독립협회라는 게 있지 않소. 그 단체에서 꾀한 일인 모양인데 이게 또 기승을 부린다면 장차 왕실이 위태로워질 것인즉, 게다가 상감께서는 개화당을 싫어하시는 터라 그 왜 참의대신 조병식이 보부상들을 긁어모아서 만든 황국협회, 그 단체에서 무리를 풀어서 만민공동회를 쳐부술려고 습격을 했다는 소식이오. 세상이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소이다."
"허 그것 참 야릇한 일이오. 한쪽에는 아녀자에서 백정까지 끌어들이고 한쪽에서는 보부상들이니 이거 천민들이 세상을 만났구려."
"세상을 만난 게 아니라 반 식자(半識者)와 권력자들의 고깃밥이 된 거지요."

서재필이 독립협회를 만들고 만민 공동회와 관민공동회가 일어난다. 하지만 황제는 늘어나는 백성들의 요구에 긴장했고 황국협회를 조종하며 독립협회에 맞서게 했다.

"스스로 주인되어[自主] 스스로의 의지대로[自由]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독립(獨立)'이라 하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화합하고, 여러 사람의 힘이 굳게 뭉치는 것을 '협회(協會)'라 한다. 아! 우리나라는 4천 년의 독립국이다. ... 안으로는 기운차게 일어나고, 밖으로는 외적을 침입을 막아내려는 것이 이 회(會)의 본래 뜻이다. <대한계년사 4권 - P199)>

등짐장수란 이름이 나라 안에 가득 차고 퍼져, 위로는 벼슬아치와 선비로부터 아래로는 염치없는 종부치와 천한 무리에 이르기까지 다투어 상무사에 투신했다. 무리를 지어 재빨리 상무사로 달려가 한패거리가 되어 서로를 비호하면서 온 나라와 백성들에게 끼친 폐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대한계년사 5권 -71p>

- 대한국 국제를 정하다.
8월 17일 지시하였다. 같은 날 법규교정소 총재 윤용선, 의정관 서정순 등이 나라의 제도 9조를 아뢰었다.
제1조, 대한국은 세계의 온 나라가 공인하는 자주독립의 제국이다.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해 내려왔고, 향후 영원히 내려가도 변치 않을 전제 정치이다. <대한계년사 5권 -73p>

서양의 문물이 들어오고 개화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많아지면서 백성들의 의식도 깨어나고 있었다. 독립협회는 이 흐름에 발맞추었고 여기에 백성들은 호응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 다만 고종은 황제로 등극, 전제군주정 체제를 등장시킴으로써 백성들의 요구와 반대로 갔다. 백성들이 깨어나고 들고 일어나는 것을 고종은 국가를 전복하는 세력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전에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며 나라가 뒤집어졌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일을 다시는 일어나게 해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독립협회가 추진한 일들은 조선의 마지막 개화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실패하면서 조선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상실되고 만다. 이 이후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미 조선의 국운은 기울었다.


이동진은 마을을 떠나기 전 최치수를 마지막으로 찾는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당시 혼란스러운 정세와 양반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어리석은 임금께서 아라사 공사관으로 이어(移御)하신 뒤 아라사나 그 밑에 빌붙은 놈들이 한판 자알 놀더니만 요즘엔 왜국도 세력을 만회하여 아라사하고 함께 나누어 먹기를 궁리들 하는 모양인데 모처럼 뜻을 세우긴 했으나 자텐 길이 허행이나 되지 않을란가?
이 마을에 김훈장이라는 미친 사람이 있어서 국모 살해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노상 짖어대는 모양인데 자네도 그 등속인가?
자네가 마지막 강을 넘으려 하는 것은 누굴 위해서? 백성인가, 군왕인가?"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나라 망하고 충신이 난들 무엇하리오."
"상민들이 부러울 때가 있지."
"어려울 것 없다. 의관을 벗어버리면 될 거 아닌가. 머릴 깎으면 중놈이 될 것이요, 칼 들고 푸줏간에 들어가면 백정이 될 것이오."
"말 말게. 기백 년 세월 동안 골수에 박힌 생각은 어느 나무에다 걸어놓고? ...
선비들이라고 모두 다 지조 있는 인물이 아닌 것같이. 개중에 슬기 있는 놈도 있어서, 오늘같이 어지러운 세상에는 쓸모없는 글자로써 꺼멓게 먹칠이 된 식자(識者)의 머리보다 천만 가지의 이치는 모르더라도 한 가지 이치에 눈을 뜬 상민들의 외곬으로 치닫는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뜻이야. ...
원군을 보내주지 않아서 왜군한테 패하고 돌아온 김백선이 분을 못 참고 안승우에게 칼을 빼어 들이대었다 해서 엄한 군율로 다스린 의암 선생의 경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강직한 성품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상민을 부러워하는 이동진의 말은 솔직히 신빙성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치수는 양반의 권위 의식에 목을 매는 자였고 오히려 그런 그가 가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양반들이 과연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상민 이하의 백성들을 부러워했을까? 결코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떻게든 양반은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 했고 그런 특권이 부러운 상민들 중 많은 이들이 족보를 구매하는 것을 통해서라도 양반이 되었던 것이니 말이다.

유림들은 철저히 봉건의 가치를 고수하려는 의지를 드러냈고 단발령에 극도로 분노하며 의병을 일으켰다. 그런데 의병 내부에도 신분적 차별에 따른 갈등이 존재했다.

김백선은 전투가 있을 적마다 앞장을 서서 의병의 모범이 되었다. 수안보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해 전과를 올렸고 이어 충주 공격에 나섰다. 당시 충주에는 김규식이 새로 관찰사로 부임해 일본군과 함께 의병 토벌에 나서고 있었다. 김색선이 선봉장으로 충주성을 공격하기로 작전을 세우고 중군장인 안승우가 의병을 이끌고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김백선과 포수들은 용감시 싸워 충주성을 점령하고 김규식을 처단했다. 이어 전선을 끊고 달아나는 일본군을 추격해 사살했다. 그후 가흥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반격을 개시해 의병에게 타격을 입혔다. 김백선은 남은 부대를 이끌고 제천으로 달아났으나 후원군으로 오기로 약속한 안승우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김백선은 제천 독락성에서 몸을 도사리고 있던 유인석에게 칼을 들고 서울 진격을 요구했다. 유인석은 김백선이 상민으로서 양반에게 대들어 질서를 문란케 했다며 처형했지만 정작 군율을 어긴 안승우는 불문에 부쳤다.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9 - P70>

김백선은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의병을 일으킬 생각을 한다. 마침 안승우 등이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1896년 1월 휘하에 있던 병사를 데리고 합류하였다. 유인석이 이후 지휘를 맡아 김백선에게 선봉장 역할을 맡기고 충주성 전투 등에서 활약을 보인다. 이후 일본군을 공격할 때 요청한 원군이 오지 않아 패배하자 김백선은 당시 중군장이었던 안승우에게 항의하였다. 하지만 군율을 어겼다는 죄명을 받아 처형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작 하나로 뭉쳐 싸워야 했던 의병들도 내부에서 각자의 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1년 간 피신해 있는 동안 정부의 관료들은 러시아에 빌붙는 이들이 많았다.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승리하고 러시아와 세력 균형이 일어나면서 일본에 빌붙는 이들도 있었다.

광무개혁과 독립협회의 역할은 어느 쪽에 더 의미와 무게를 두느냐를 놓고 훗날 역사학자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한국근대사산책 3권 - P113>
'근대'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전제된다면, 그리하여 '식민지 근대'와 '자주적 근대'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을 이유가 없음을 확인한다면, 자본주의 근대화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수탈과 착취와 반동, 그리고 처벌과 학대를 동반하였음을 고려한다면, 대한제국과 광무개혁을 더도 덜도 아닌 '외세의 침략 앞에서 국권을 지키기 위해 지배계급이 주도하여 마지막으로 시도한 근대화 개혁, 또 그 과정과 결과로 성립한 국가체제'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다양한 이론 주장이 제기되지만, 어떤 논쟁에서건 멸망에 이른 왕조라는 결과론이 행사하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피해가기는 어려웠다. <한국근대사산책 3권 - P115>

고종하면 이태진 교수가 떠오르는데 그는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꺼져가는 조선의 불꽃을 살리고 현명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한 듯해서이다. 물론 어쨌든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고 여러 가지 내부 개혁을 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그의 나라에는 기득권이 아닌 백성들을 위한 자리는 없었던 것이 아닌지.

1904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대한제국 내에서 일본의 힘은 막대하게 커진다. 토지 뒷 편에서 이 부분도 다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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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8-30 21: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대설명까지 함께 읽으니 더 좋네요 화가님 ~ 저도 토지 읽고있어요. 1권 읽고 나머지는 북플님들 따라 오디오북으로 읽을까 했는데 ㅠㅠ 귀보다 눈이 빠른걸까요 속도가 답답한 ㅎㅎ 아무래도 다시 책으로 돌아갈 듯 합니다 잘 읽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8-30 21:40   좋아요 3 | URL
네. 이전 1권 올렸을 때도 그렇지만 저는 인물에 집중하는 건 아무래도 좀 힘들더군요^^; 잘 쓰지도 못하겠고...ㅎㅎ 시대적 배경을 되짚어본다 생각하며 읽으니 한결 마음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오디오북 처음에는 좀 저도 어려웠어요. 근데 거의 2/3 정도 들으니까 좀 적응되더군요. 출퇴근,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서 오디오북으로 읽으니 시간은 잘가는데 인물들의 구시대적 발언들이 나올 때마다 욱하고 열이 받습니다!ㅎㅎㅎ 책으로 읽는게 더 좋긴 하죠. 아무래도 활자가^^

책읽는나무 2022-08-30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토지 완독하시면 하동 평사리에 한 번 다녀오심 뜻깊으시겠어요.
전 토지 1도 읽지 않았는데 예전에 하동 다녀왔었는데요...그 고요한 풍경들이 잊혀지지 않네요. 토지라고 하면 계속 평사리가 생각납니다.
그곳 다녀왔을 적엔 나 토지 꼭 읽을 거라고 책 사모은다고 설레발 치다가 멈췄는데요. 그동안 책표지가 완전 바뀌어서 좀 아쉽네요ㅜㅜ

거리의화가 2022-08-30 22:16   좋아요 2 | URL
하동에는 가보질 못했네요^^; 나무님은 다녀오셨다니 토지를 읽으시면 더 감정이입되시지않을까싶습니다. 구판과 신판의 차이가 좀 나더군요;;; 막상 평사리에 가면 좋은 감정보다는 분노가 이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ㅋㅋ 그래도 고요한 풍경이라니 고려는 해봐야겠어요ㅎㅎㅎ

책읽는나무 2022-08-30 22:23   좋아요 2 | URL
경치는 참 좋아요^^
근처 쌍계사 절도 운치 있었구요.
그날 비가 와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군요.
봄에 가시면 벚꽃 십리길 꽃길도 이쁘겠더라구요. 저는 겨울에 갔어서...^^;;;;
토지를 읽질 않아 전 완전 관광객 모드였었나 봅니다ㅋㅋㅋ
섬진강도 예쁘고, 근처 구례도 가깝고, 암튼 예쁜 마을로 기억하고 있는데 토지를 읽고 다시 가게 된다면 진짜 화가님 말씀처럼 분노와 연민이 느껴질지도 모르겠군요^^

거리의화가 2022-08-31 08:45   좋아요 2 | URL
아 그러고 보니 하동에 쌍계사가 있죠. 저는 벚꽃 좋아하기는 한데 사람 너무 많고 차도 많은 곳은 힘들더군요ㅠㅠ 저도 아마 가게 되면 벚꽃 시즌 피해서 갈 것 같아요ㅋㅋㅋ
국내에도 좋은 곳이 많은데 말이죠. 점점 옆지기가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지라 언제 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ㅎ
분노와 연민~ 적절한 감정 표현이십니다!

희선 2022-08-31 0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 아니 이제 대한제국인가요 예전에 그런 이름으로 짓다니 하는 생각을 한 것도 같습니다 다른 나라 힘을 빌리면 안 좋을 텐데... 일본은 여러 가지에 간섭하게 됐군요 백성이 왜 난을 일으키는지 잘 생각해야 할 텐데... 자신이 사는 나라를 잃으면 백성이 가장 힘들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31 08:47   좋아요 1 | URL
네. 고종이 황제국을 만든다고 광무라는 연호를 달고 대한제국이라 국호를 붙였죠. 이 시도는 오히려 시대를 역행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무렵이 되면 백성들도 마음이 조마조마했을 듯합니다. 기댈 곳이 없는 백성들만 불쌍해진거죠ㅠㅠ

바람돌이 2022-08-31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태진 교수의 광무개혁 평가는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당대 역사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채 복고적인 왕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얼마나 무지한 선택이었는지요. ㅎㅎ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토지. 저는 이 책을 20대때 읽었는데, 지금 이 나이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맛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네요

거리의화가 2022-08-31 12:57   좋아요 1 | URL
ㅎㅎ 바람돌이님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여러 책을 읽을수록 고종의 개혁은 후퇴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어요^^;
토지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시군요~ 세월이 훌쩍 지나 다시 읽는다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것 같아요. 저도 좋았던 작품을 훌쩍 지나서 다시 읽고 싶네요. 그런 작품이 생기도록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1


이 달이 가기 전 책을 다시 질렀다.

1권은 출고일이 늦어져서 9월에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번에 소소하게 샀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더 샀다.

2권은 중고로 샀고 1권은 잡지니까 일반책은 2권을 구매한 셈이다.(어떻게든 합리화하는 것 같지만)


근대서지는 신간호가 나와서 산 거고(출판사가 바뀌었다) 

<윤동주 평전>과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공간 재편과 만철조사부>는 장바구니에 든 책 중 살포시~

중고로 산 책은 <한국전쟁>과 <일본의 위안부 문제 증거자료집 1>이다.

출고일이 늦는 책은 이학래 선생님의 <전범이 된 조선청년>이다. 






#2


사실상 막판에는 먹히는 것 같이 힘들었던 <맹자집주>를 오늘 드디어 1회독 했다.

이 책을 읽다가 막판에 <중국철학사>를 읽으면서 꽤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맹자에서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정자, 주자를 비롯한 인물들의 사상적 배경과 기반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를 읽기 전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길고도 험난했던 여정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통감절요를 읽어보려 한다^^;




주말에는 이 책을 완독했다. 재밌게 잘 읽었다.





#3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풍경을 보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금요일 퇴근길 노을이 너무 환상적이어서 집에 들어와 창문을 열고 찍었다. 




어제와 오늘 아침 산책길에 찍었다.

이틀 30여분 정도 차이가 이토록 하늘의 색이 다르다니... 오늘이 30분 더 빨랐다.





그러고 보니 벌써 8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특히 이번주는 가을이 성큼 왔음을 느끼게 한다. 기후위기가 심하기는 하지만 절기는 무시할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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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8-28 20: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화가님~전망 좋은 집에 살고계시군요*^^* 마지막 사진 구름이 환상적입니다. 고흐가 봤더라면 좋아했을것 같은?
저도 오늘 책 구매를 했습니다. 그만 사야하는데 알라딘만 들어오면 하....ㅋㅋ

거리의화가 2022-08-29 07:56   좋아요 3 | URL
고층에서 찍어서 그런 것 같아요ㅎㅎㅎ 요즘 하늘 보는 맛이 좋습니다. 어느덧 하늘이 조금 높아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구름 보는 재미도 있고요. ㅋㅋㅋ 저도 8월 구매 이걸로 마지막ㅎㅎ 장바구니가 비는 날이 없네요. 그래도 책이 가장 경제적인 소비 같습니다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8-28 23: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결국 9 월을 못기다리고 오늘 아침에 적립금 탈탈 털어 책 주문 넣었는데 내일 받을 수 있대서 좀 놀랐네요?
화가님도 결국???ㅋㅋㅋ
노을은 와...한국 맞나요??
아래 사진 구름들도 한국 맞나...맞겠죠?ㅋㅋㅋ
저도 오늘 도서관 갔다가 구름이 넘 이뻐서 간만에 몇 장 찍었어요.
오늘따라 하늘은 너무 파랗고, 구름은 너무 하얗고....가을 하늘 참말로 예뻤어요♡

거리의화가 2022-08-29 07:58   좋아요 4 | URL
오 배송이 빠르군요. 8월은 그래도 10권 넘어가게 사진 않았습니다ㅋㅋ 최대한 덜어내고 덜어내어^^;
노을 이쁘죠. 요새 구름들 보는 맛이 좋습니다. 날씨도 아침저녁 다닐만해져서 걷기 좋더라구요. 풍경보는 맛이 생긴 요즘입니다.

박균호 2022-08-29 08: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근대서지를 사는 독자분을 여기서 만나네요. 저도 매 호를 구매하는데 덕분에 잊지 않고 구매하네요 .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29 08:24   좋아요 4 | URL
계속 사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참 알찬 잡지지요. 중간에 안 사둔 호수들도 있어서 구매해두어야하는데 자꾸 잊어먹네요.

얄라알라 2022-08-29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소하지가 않습니다. 확실히 ㅋㅋ이번 구매는 말입니다.

거리의화가님께서는 제 편식 책 습관을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자극을 주신단 말씀입니다. ^^ 생소하지만 끌리는 책들이 한 가득

거리의화가 2022-08-29 17:58   좋아요 2 | URL
편식하면 전데 무슨 말씀을^^ 저는 거의 역사 분야의 책을 읽어서 구입의 대부분이 역사...ㅎㅎ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생소하지만 끌리신다니 뭔가 기쁩니다!

새파랑 2022-08-29 1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저중에 윤동주 평전이 완전 땡기네요~!! 윤동주시인의 작품 읽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이게 다 화가님의 <동주> 대본집 리뷰 때문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08-29 21:21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새파랑님 <동주> 대본집 보셨죠? 넘넘 좋죠? 진짜 잘 샀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동주 시인 시들이 서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라 참 좋아요. 저도 가끔 읽는데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한국에 윤동주가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페크pek0501 2022-08-30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예술이십니다. 모두 색상이 좋네요. 특히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은 각도가 좋은 것 같아요.
길을 중간에 놓는 것보다 위와 같이 놓으면 좋은 구도가 된다는 걸 배우고 갑니다.^^

거리의화가 2022-08-30 13:24   좋아요 1 | URL
네. 2, 3번째 사진들은 산책하며 찍은 것입니다. 워낙 하늘을 좋아합니다만 하늘만이 아닌 주변의 나무, 꽃, 개울 이런것들이 함께 있을 때 더 조화로운 것 같아서 항상 그런 풍경일 때 사진을 찍는 것 같습니다.

mini74 2022-08-30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사진이 예술입니다. 근대서지 표지 넘 예쁜데요. 내용도 궁금하고 *^^*

거리의화가 2022-08-30 17:17   좋아요 1 | URL
예술인가요? 좋아해주셔서 저도 좋습니다.
근대서지는 한국의 근대 시기 문학을 주로 다루는 잡지입니다. 비록 바로 읽진 못해도 소장 가치가 높은 잡지라 계속 모으고 있습니다.

희선 2022-08-31 0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끝까지 보신 책이 있어서 좋으셨겠네요 하늘이 멋집니다 가을엔 파란 하늘도 보이지만 구름이 멋진 하늘도 보이죠 팔월인데 가을이라니... 날씨가 가을이었네요 곧 구월입니다 거리의화가 님 팔월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구월 잘 맞이하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31 08:50   좋아요 1 | URL
네. 8월에 읽기로 한 책들 여유 있게 마무리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맹자는 거의 1년 가까이 본 것 같아요ㅠㅠ 어휴~ 1회독하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손놓을뻔했습니다ㅋㅋㅋ
가을은 하늘도 높고 구름 모양도 좀 달라 보여서 멋지게 보입니다. 날씨가 선선해져서 이미 가을 느낌이 나는 듯해요. 남은 하루 잘 보내시고 9월 행복하게 여시길*^^*
 


<교토의 밤 산책자>라는 책을 집어들고 읽으면서 예전 교토 여행이 떠올랐다.

'여행을 가는 것은 장소가 주는 힘이 큰 것이어서'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때 함께 했던 이들, 주변의 공기, 풍경들이 남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때의 느낌이 긍정적이었든 부정적이었든  느낌이란 건 참 오래가는 것 같다.

교토를 총 2번 다녀왔다. 일본을 총 4번 다녀왔는데 교토를 2번 갔으니 내겐 더 특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느덧 오래 전 일이 되어버려 어떤 장소를 다녀왔는지도 가물거린다.(불과 어제, 그제, 일주일 전 기억도 나지 않는데 기억이 온전할 리는 없다) 사진을 뒤적였다. 여행을 다녀와서 포토북을 만들어두었던 첫 번째 교토 여행은 어딜 다녀왔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덕분에 명확히 보인다. 두 번째 다녀온 여행은 너무나 새로웠다. 그 때 포토북도 만들지 않았고, 인화한 사진들도 없고, 기록도 하지 않아서 사진을 보기 전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사진에는 위치 정보도 없으니 어느 곳엔가를 갔었나보다 중얼거린다. 하지만 사진을 보지 않았어도 어느 곳에 앉아서 술을 마셨던, 그 때가 너무 좋았는지 그 느낌만은 또렷하다.

교토를 처음 갔을 때 겨울이었다. 내 생일 무렵 즈음이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급작스럽게 준비하고 떠났던 여행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요미즈데라가 있는 것을 알았다. 금각사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알고 있었고. 사실 이 두 곳만 봐도 목표는 달성하는 것이었으나 기온과 니조성까지 4군데를 오전부터 시작해서 반나절 안에 다 돌아보았다는 것이 놀랍다. 이 날 내 다리에 족저근막염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과욕을 부렸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교토에 최소 1박을 했더라면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인데 시간의 압박에 쫓겨 충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 덕분에 옆지기와 싸울 뻔도 했었다.

기요미즈데라는 듣던 대로 장관이었다. 연애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네. 나는 기요미즈데라를 올라 광장 같은 무대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아. 이래서 여길 오는구나.' 마치 높은 산에서 산 아래를 바라보며 도심을 바라보는 것 같달까. 만약 내가 고소공포증이 없었다면 자유낙하의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기온은 가게들을 구경하는 맛이 있는 곳이었다. 다만 내가 돌아다녔던 시간은 일요일 한낮이 되기 전 무렵이어서 가게 주인과 관광객들의 모습만 보게 되어 아쉬웠을 뿐이다. 거리는 께끗했고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지도 않아서 구경하기에도 좋았다.


금각사는 말 그대로 황홀경이었다. 건물이 수면에 비친 모습이 장관이었고 저 금붙이들을 보고 있자니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다만 건축의 재료 뿐만이 아니라 1, 2, 3층의 건축 양식이 모두 달라서 가치가 있다 느껴졌다. 시간이 넉넉했다면 아주 오래 그곳에 머물며 금각사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많았고 시간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니조성은 마지막에 급하게 결정된 곳이었다. 헌데 무엇 때문에 리스트에 넣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니조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으로 지어진 성으로 궁전과 여러 개의 정원들, 해자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대결에서 최종 승리하며 이 성에 들었지만 짧은 역사를 뒤로 하고 이 성은 막부 말기까지 중앙 무대에서 내려온다. 나는 화려한 니노마루 궁전의 정문과 넓은 해자, 잘 꾸며진 정원, 본당의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건축 지식이 얕아서 설명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오반자이라고 하면 '교토 가정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가정식이라는 말에 걸맞게 가게 내부가 좁다. 짧은 카운터와 테이블은 두어 개에 그칠 때도 많다. 예약 손님만으로 가게가 다 차기도 한다. 구글맵에서 주변의 식당이나 술집을 찾을 때 오반자이 전문 식당이고 밤에 영업을 한다고 나와 있으면, 대개 이런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골 장사를 하는 집들도 많아, 앉아서 술을 곁들여 이것저것 먹고 있으면 문이 열리고 손님이 들어서, 마스터와 친숙하게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두 번째 여행은 3월이었다. 매번 춥거나 더운 계절에만 여행을 했던지라 꽃이 피는 봄을 선택한 것이다. 3월 마지막 날 무렵이어서 벚꽃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대부분 그때쯤 만개를 한다 들었고. 하지만 역시 체험은 다른 것이었다. 막상 도착하니 이제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일주일쯤 교토에 있었다면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러기엔 이번에도 교토 스케줄은 반나절 뿐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돌아보아야 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때의 여행은 사진 말고 남은 게 없어서 어딜 갔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만개한 벚꽃을 보지 못하고 시기를 놓친 아쉬움이 기억을 통째로 날린 건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비교적 많이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 썩소를 날리며 사진을 찍고 평상에 앉아서 술을 마셨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흩날리는 벚꽃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쌀쌀한 날씨이긴 했으나 볕이 따뜻해서 날씨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그 때의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윈도우 계정의 프로필 사진은 그것 중 하나로 여전히 사용중이다. 그래도 어딜 다녀왔는지는 알아두어야겠지. 사진을 기반으로 열심히 검색을 했다. 내가 다녀온 것은 바로 은각사와 마루야마 공원이었다. 그러니까 술을 마셨던 곳은 마루야마 공원의 어느 평상이었던 셈이다. 은각사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내가 일본식 정원에 다녀왔다는 것을 사진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 이곳이 은각사의 정원이었어.

은각사의 정원은 특별했다. 일본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얀 모래로 그려놓은 그림, 주변의 돌들, 나무들, 꽃들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어 감탄을 자아낸다. 사다리꼴 모양을 한 거대한 모래탑(후지산을 본떴다고 한다), 잘 꾸며진 연못, 관음전을 돌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금각사는 사실 건물만으로 이목을 끈다고 한다면 은각사는 건물을 비롯한 정원과 자연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일본식 정원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 훌륭한 곳이었다.


마루야마 공원은 순전히 벚꽃을 보기 위한 장소였다. 벚꽃은 비록 덜 피었어도 충분히 좋았다. 벚꽃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이 곳이 벚꽃 명소임을 깨닫게 했다. 볕이 따뜻해서 호젓하니 산책하기에도 좋고 사람들 구경하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평상에 앉아서 볕과 바람을 느끼며 마시는 맥주의 맛은 일품이었다. 그 때가 오후 4시 넘은 무렵이었는데 어느새 해가 좀 기울고 있을 때였다. 얼마나 마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때 찍은 사진들은 하나 같이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좋은 감정은 사진으로도 나타난다. 이 때의 느낌이 참 좋았어서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가볼 수 있을까.





인생은 너무나 자주 애매한 곳에서 갈등하도록 생겨먹었다. 돌아가지도, 앞으로 가기도 애매하다. 나의 인생은 왜 매번 이러한지. 이런 갈등이 없는 때가 바로 벚꽃 철학의 길이다.

작정하는 방식의 특성상 정원을 완성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 특히 계절이다. 일본 정원의 작정 철학은 자연을 인공적으로 조성하는 데 있다. 나무를 둥글게 깎아 모양을 다듬거나 뒷배경을 차단해 정원을 좀 더 통제 안에 둔다. 키 큰 나무들을 병풍처럼 둘러 세우는 경우도 많다. 한편 중국은 자연에 근본을 두되 자연보다 나은 형태를 만들고자 하고, 한국은 담양 소쇄원처럼 지형을 살려 정원을 조성하고 건물을 올린다. 이것을 인지제의因地制宜라고 한다.

책은 교토의 봄을 즐기는 법, 정원, 가게와 볼거리, 맛집 같이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관련 장소에 어울리는 책이나 영화 등을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돋운다.
여행 주제로 쓴 책은 많지만 가이드는 1, 2년만 지나도 예전 것이 되어 새로 사보아야 하는 아쉬움이 있는 반면 에세이는 설사 책에 등장한 건물이 실상 없어졌다고 해도 글과 사진의 조각을 통해 독자를 그 길로 인도하는 행복을 준다. 이 책은 후자의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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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25 11: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너무나 자주 애매한 곳에서 갈등하도록 생겨먹었다. 돌아가지도, 앞으로 가기도 애매하다. 나의 인생은 왜 매번 이러한지. 이런 갈등이 없는 때가 바로 벚꽃 철학의 길이다.]
오늘의 명언, 명문장으로 밑 줄 쫘악!✍

교토의 진짜 아름다움은 가을입니다
교토에서 태어난 친구가 벚꽃이 흔날리는 계절 보다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도시 전체가 불타오르는 순간이 진짜 교토의 아름다움이라고 !ㅎㅎ

일본 이제 엄격한 입국 심사 없앴고 코로나 검사나 백신 접종 여부 안따집니다
화가님 올해 꼬옥 교토에 ^^

거리의화가 2022-08-25 11:18   좋아요 5 | URL
근데 옆지기가 이젠 여행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움직일 생각을 안하네요ㅎㅎㅎ 저도 단풍 좋아해서 가을에 가보고 싶습니다. 불타오르는 황홀경을 즐기고 싶네요~~~

프레이야 2022-08-25 11: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 교토를 소환해 주셔서 추억이 새록새록 넘 좋아요. 이 책 보고 싶어지네요. 전 남표니랑 늦가을 초겨울 단풍 이쁠 때 갔었어요. 맥주 맛나고 우나기도 맛나고. 오코노미야끼도 교토식은 조금 다르더군요. 니조성도 그렇고 도시샤대학까지 갔었는데 학생들이 마침 축제기간이었어요. 몇 년 후 다리 나아지면 다시 걸어보고 싶은 교토, 동주가 걸었던 천변 밤벚꽃 핀 길을 가봐야겠어요. ^^ 여행에세이의 장점이 드러나는 책 같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25 12:58   좋아요 3 | URL
교토를 소환해주셨다고 감사합니다. 공간이 주는 마법이랄까요. 장소가 담긴 사진을 보니 과거의 추억으로 훅 빠져드는 것이지뭡니까.
단풍 이쁠 때 두분이서 함께한 여행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진들 보니 둘이서 먹은 술이 왜 이리 많아를 생각했어요ㅋㅋㅋ 여행하려면 다리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죠. 저도 첫 여행 때 너무 걸어서 족저근막염이 와 한동안 조심했었더랍니다. 그 후에도 무리하다 싶으면 도져서 적당히 걷고 있습니다. 교토 저도 다시 한번 다른 계절에 가보고 싶어요~*^^*

mini74 2022-08-25 1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화가님과 잠시 교토를 걷는 기분이 ㅎㅎ 전 조카가 교토대 교환학생으로 가서 한 번 가봤어요. 맛집 투어만 한 ㅎㅎ 교토대 낡은 기숙사 건물 등도 볼 만했어요.~~ 스콧님 댓글 보니 가을에 한 번 가보고 싶네요 *^^*

거리의화가 2022-08-25 13:00   좋아요 4 | URL
교토는 자고로 걷는 맛이 있는 곳이더군요! 제 다리가 좀 더 튼튼하고 일정이 더 길었다면 참 좋았겠다 싶은 곳이었어요. 오~ 교토대 가셨었군요. 저는 그때는 가볼 생각을 못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옆지기에게 말했다면 대학 건물을 왜가? 라고 핀잔먹었겠지만ㅋㅋㅋ 저도 교토의 가을은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바람돌이 2022-08-25 14: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니조성 꾀꼬리복도로 유명하잖아요. 암살자를 막기 위해 복도를 삐걱거리게 만들어 놨는데 그 소리를 새소리가 나게 만든.... 걷는데 진짜 신기하더라구요. 전 저기 니조성 입구에서 배가 고파서 편의점 도시락 까먹었던 기억이.... ㅎㅎ
벚꽃 필 때 가을 단풍때 다시 가보고싶지만 현실은 늘 땡볕한여름 아니면 한겨울입니다. ㅠㅠ

거리의화가 2022-08-25 14:44   좋아요 5 | URL
앗 바람돌이님 덕분에 기억이 소환이...ㅋㅋ 맞아요 그 끽끽대던 소리^^ㅎㅎㅎ 어둑어둑하던 건물 내부가 그 소리 때문에 더 소름끼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직장인이라 늘 여름휴가, 겨울휴가 때만 이용해서 가서 봄은 딱 한 번 여행으로 끝이 났던-_-;ㅋㅋㅋ

모나리자 2022-08-25 14:5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교토 여행 추억이 떠오르네요. 키요미즈데라, 금각사 은각사는 물론 좋았구요.
아라시야마도 참 좋았어요. 11월 초에 갔는데도 단풍이 안 들어서 아쉬웠고 살짝 더웠었지요.
벌서 6년이 지났다니요. 좋은하루 보내세요. 거리의화가님.^^

거리의화가 2022-08-25 15:36   좋아요 5 | URL
저는 기요미즈데라 12월에 갔었는데 단풍이 좀 남아 있던 걸 보면 단풍이 꽤 시기가 늦는 것 같아요. 아라시야마도 좋으셨겠습니다. 대나무숲도 있으니 여름에 가보는 것도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어요.
저도 2번째 교토에 다녀온지 어느덧 10년이 다되어갑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네요ㅠㅠ 모나리자님도 남은 하루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2022-08-26 0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은 교토에 두번 갔다 오셨군요 오래전이어서 잊어버렸다 해도 사진이 있어서 사진을 보면 생각나기도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적어두기도 하셨군요 교토는 걷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윤동주나 정지용이 생각나기도 하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26 09:11   좋아요 2 | URL
네. 사진이 있어 추적(!)에 도움을...ㅎㅎㅎ 저는 여행에 가면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고 그래서 일정표도 만들었어요. 여행중에도 노트에 기록을 남기고 돌아와서는 포토북으로 인상적이었던 사진과 글을 실어 만들어두는 편이었어요. 하필 두 번째 교토 여행은 사진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기억이 더 희미하더군요^^;;; 역시 그래서 결론은 포토북은 항상 만들어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진 인화를 해두는 것도 좋고요^^
이 책에 윤동주는 나오지 않지만 정지용에 관련된 내용은 나왔어요.

새파랑 2022-08-26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금각사가 그 금각사군요 ㅋ 저도 교토 가보고 싶네요. 전 도쿄만 한번 가봤는데 서울이랑 너무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좀 그랬었습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2-08-27 07:45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교토 참 좋았어요. 언젠간 기회가 되면 가보세요.
도쿄는 음... 고즈넉한 풍경을 생각하기엔 어렵죠. 오히려 골목 여행을 하시는 것이 더 좋았을수도 있는데~ㅎㅎ 저도 도쿄는 짧게 2일 정도만 보냈지만 나름 재밌었어요. 오락실도 가고 대관람차도 타고 가게들도 구경하구요.
 



‘무엇이 행복한 임신중지의 가능성을, 가장 좋게 봐서 규범을 위반한 것, 가장 나쁘게 봐서는 말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가?’ 임신을 원치 않은 여성의 관점에서 임신중지를 바라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줄 유일한 수단이 있고 그 수단이 비교적 직접적이며 고통을 주지 않는데도 자꾸만 불행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터무니없다.



책을 읽고 내용은 정리가 안 되었어도 읽으면서 떠올렸던 과거의 기억을 적어두자 생각해서 끄적인다.


나는 오래도록 독신을 지향했다. 사랑에 대한 감정에 회의적이던데다 결혼이란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전에 한 번 썼던 내용인데 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결혼 이전에도 그랬지만 친정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나는 결코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아이를 넷 출산한 어머니는 출산 이후 한참을 지나도 육아로 고통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아이를 넷을 낳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지금보다 더 예전이었던 시절 가부장적인 환경 아래에서 살아온 부모님이 만나 아이를 낳았다. 지금도 공동육아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어머니는 임신 후 10개월을 총 4차례를 겪고 출산 후에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아버지가 번듯한 직장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도 못해서 자영업을 시작한지라 이후에는 하루 밥 벌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말 그대로 슈퍼맘이었지만 나는 이 용어가 너무 싫다. 왜 슈퍼맘이 되어야만하는가.


임신은 남녀가 함께 해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에 대한 고민은 왜 여성들만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열렬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 짝사랑이었거나 그마저도 뜨거운 감정이 일어나는 사랑은 아니었다. 남편을 만나고 사랑을 하면서 혼전임신에 대한 고민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고정관념이 강했던 나는 결코 혼전임신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의였다. 잘못 했다가는 피곤해진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혼전임신이 잘못인 것은 아니다. 사랑해서 낳은 결실이 결혼 전이라고 스스로 책잡힌다고 생각하게 되는 씁쓸한 현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초반에 임신에 대한 시할머니의 압박이 심했다. 한 날은 명절에 한 번 갔다가 "아이를 낳아야 효도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용돈과 선물을 드리는 것, 다정한 말로 안부를 묻는 것은 효도가 아닌건가 싶어 좌절감이 일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친정 부모님께서 스트레스를 주셨다. "아이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라고 하시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 본인이 그렇게 고생을 하셨으면서 내게 아이를 낳아 키우라는 게 말이 되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몸이 노화가 되어 임신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서 더 이상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아신 모양인지 말씀하시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때를 생각하면 서운함이 밀려온다. 


임신중지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의 경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는 저자의 말이 무엇보다 공감되었다. 또 임신한 여성을 아이의 어머니로 고정시켜 임신중지는 잘못되었고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비판을 가한다. 여성들이 임신과 임신중지라는 경험을 겪으며 느끼는 온갖 불평등의 상황은 분노해야 하는 게 맞고 트라우마를 비롯한 부정적 감정은 느끼지 않아도 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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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24 11:4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전에 저희 아파트 새로운 이웃분이 저희 엄마에게 큰 딸 왜 시집 안보내냐고 했다더라고요. 엄마는 자기가 안간다는데 뭘 보내냐, 자기가 알아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고 했더니 ‘그래도 결혼은 해야죠‘ 라고 했대요. 그래서 엄마가 그분께 ˝결혼해서 행복하세요?˝ 했더니 답을 안하셨다고.. 그전까지 아이낳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이를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고 분노하셨다 했거든요. 저희 회사에 저보다 나이 많은 남자 직원도 저한테 왜 결혼 안하냐고 그래도 결혼은 해야된다고 그러는거에요. 그래서 제가 ˝방금전까지 부장님이 아내랑 자식 잇는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셨잖아요˝ 했더니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이러시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그래도‘ 해야할까요? 자기들이 했기 때문일까요? 자기가 선택한 삶이 있고 타인이 선택한 삶이 있고 다 각자의 선택이 있는건데, 왜 자기가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걸까요? 설사 그게 행복하지 않아도 말예요.


저에게도 좋은 책읽기였어요. 좀 충격이기도 했고요. 뭔가 바로잡히는 느낌이 들어서 좋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책읽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거리의화가 님!



거리의화가 2022-08-24 12:49   좋아요 3 | URL
대체 본인들이 그렇게 불만스러웠으면서 왜 결혼과 출산을 강요하는지ㅉㅉㅉ 행복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거기로 뛰어들라는 건 죽으라는 소리인지...ㅎㅎㅎ

책을 다 이해는 못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또 이번에 배워갑니다^^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로 고민하는 많은 여성들도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으면 좋겠으나 남성들도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미 2022-08-24 11: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도 슈퍼 맘이셨어요. 저는 외동이고 엄마가 동생들 여럿을 키우다시피 하신 모습을 보며 자랐죠.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님 세대도 딱히 이유를 모른채 남들 다 하니까 결혼하고 낳으니까 낳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학 공부하길 참 잘했어요. 제대로 된 질문을 찾아가면서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는 안경을 낀 기분? ^^*

거리의화가 2022-08-24 12:51   좋아요 3 | URL
예전 어머니들은 생각할수록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걸 다 감내하고 어찌 사는지;;; 그 세월은 결코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납니다.
여성학 공부 시작한지는 얼마 안됐으나 읽을수록 세계가 확장되는 것을 경험하네요. 공부할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제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니 좋습니다.

mini74 2022-08-24 12: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희집은 아이가 다섯. 최소 아들이 둘은 있어야 한다는 친할머니의 의지로 인해 ㅠㅠ어린 시절도 사춘기도 행복하지 못했어요. 온 힘을 다해 키워준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행복하지 못했던 유년기는 다섯아이의 첫째 둘째 혹은 막내 또는 딸이라는 이유가 컸을거에요.아이를 낳는건 여성의 몫인데, 의무인냥 혹은 아이를 낳아주는 도구처럼 취급되는 건 ㅠㅠ전 아이를 반드시 낳아야 한다가 아니라 아들을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말을 시댁갈때마다 들었답니다. ㅎㅎㅎ 조선시대냐 싶지만, 이 동네 다둥이 가족들 보면 아직도 막내가 아들인 경우가 많아요 쓰다보니 또 분노가!! ㅎㅎㅎ

거리의화가 2022-08-24 12:54   좋아요 4 | URL
다섯이라니...;;; 사실 저희 어머니도 네 명의 아이를 출산한 이유가 아들 낳아야 해서였어요. 결국 딸 둘 낳고 아들 둘을 낳는 사태가~ 만약 아들 낳아도 되지 않았으면 두명만 낳았을것을. 저희 아버지가 외동 아들이어서 친할머니께서 엄청 압박을 하셨다네요. 그래도 아들을 셋 만에 낳아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_-
아이들이 넷이었고 부모님은 일을 하시다 보니 정말 알아서 커야 하는 상황이 됐었어요. 그래서 오래도록 부모님을 원망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아이를 키워야하니 그런거지만 아이들은 그게 또 아니니까요. 저도 쓰다보니 또 분노가 듭니다!ㅜㅜ

페넬로페 2022-08-24 13: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에서는
결혼했다
아이가 있다!
이 두 문장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끊는데 최고예요.
그 다음부터는 질문이 들어오지 않거든요.
저도 딸아이에게는 결혼해도 꼭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지만 인간이 아이를 낳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확실히 인간을 성숙시켜 주거든요^^

거리의화가 2022-08-24 14:15   좋아요 3 | URL
네.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다른 것들을 압도할 만한 질문일겁니다.
아이를 낳든 아이를 낳지 않든 본인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 후회를 해도 덜 하지 않을까요. 물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경험은 다른 것이겠지요.

2022-08-29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8-24 17: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 친한 친구가 어렵게 자라 아이에 대한 기대가 없었고, 남편도 어린시절 일찍 부모님 돌아가셔 거의 고아로 성장하여 남편도 자식에 대한 애착이 없어 친구네는 결혼하자마자 무자식으로 합의를 보고 살더군요. 그러다 나이 들어가면서 남편이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다보니까 자식을 낳고 싶어한다길래, 저도 옆에서 얼른 낳으라고~ 더 나이 들기전에 낳으라고~ 막 부추겼었는데 막상 가지려니까 안생겨서 친구네는 그냥 그렇게 강아지만 키우고 살고 있어요. 근데 근 10 년을 자식 없는 친구네를 보면서 아~ 자식이 없어도 더 멋지게 살 수 있구나!! 생각이 완전 바뀌었죠^^
그전엔 친구 따라다니면서 늙어서 외롭다고 빨리 아기 가지라고...ㅜㅜ 뒤늦게 미안했어요ㅜㅜ
요즘엔 내가 애를 셋이나 낳았다는 게...너무 많이 낳은 것 같아 좀 부끄러울 때도 많아요ㅋㅋㅋ 애들을 보면 사랑스럽지만 한 번씩 나 굳이 애를 셋이나 낳았어야 했나?? 생각해 봅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애를 낳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요즘 사촌언니네 조카들 한 두 명씩 결혼하고 있는데 일찍 결혼한 조카는 아기를 낳아 힘들게 키우고 있지만 조금 늦게 결혼한 조카들은 다들 아기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고 살고 있구요. 그런 걸 보면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옛날식의 방식대로 살아가라고 강요하기엔 이젠 구태의연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리뷰를 생략하신다길래 섭섭하다가 괜스레 더 반갑네요^^

거리의화가 2022-08-24 20:52   좋아요 5 | URL
아이를 낳고 안 낳고는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이기적인 나를 되뇌였거든요. 어쩌면 이런 저의 경험들이 족쇄처럼 트라우마로 남아 저를 괴롭히나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나를 놔주자 싶었고 주변 탓으로 돌리는 것도 그만하자 생각했어요. 이기적이어도 괜찮겠죠~^^;
그리고 개인적인 이야기라 리뷰로 쓰기에는 그랬고 그렇다고 해서 안 남기면 기억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생각해서 올렸습니다. 나무님이 여성주의책 읽을 때 함께해주셔서 항상 든든합니다. 감사해요^^

바람돌이 2022-08-24 22: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임신과 출산에 관련되면 우리 여자들은 정말 할 얘기가 산더미죠. 대한민국처럼 가부장제 심하고, 임신과 출산은 여자에게 몰빵시키고, 그러면서 잘못되면 비난도 몰빵시키는..... 심지어 우리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을 낳아야 된다는 압박에 시달렸잖아요. 저희 시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저만 보면 아들 하나 낳아야지.... ㅎㅎ 그런 우리 여자들의 의식에 전환점을 가져올 좋은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는 우리도 다 알고 있잖아요. 임신중지가 여성이 죄책감을 느낄 일이 아니란걸.... 그런데 주변 서사는 늘 그런 감정을 강요하는데 이 책에서 그것을 명료하고 확실하게 아니라고 얘기해주니까 좋더라구요. ^^

거리의화가 2022-08-25 09:11   좋아요 3 | URL
<가부장제의 창조>를 읽으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뿌리깊은 이 가부장제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구나...! 대한민국은 아이는 당연히 낳아야 하는 것이고 그것도 아들을 강요하여 많은 어머니들이 고통을 당했었죠. 저희 어머니도 그랬구요. 말씀하신대로 여성들도 예전 사고에 갇혀서 힘들어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식을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에서 감정의 강요가 정책적 수사로까지 이어진다는 것도 알려주어서 좋았어요.

공쟝쟝 2022-09-10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경험을 되짚어 해석해보는 여성주의 책읽기는 좋은 것~~^^ 거화님의 리뷰는 참 좋아요!

거리의화가 2022-09-11 11: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쟝쟝님^^ 제 리뷰가 저는 부끄럽습니다ㅎㅎ 앞으로도 열심히 읽고 쓰다보면 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