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철로를 타고 나는 듯이 달리는데,
조금도 어긋남 없이 마음대로 가고 멈추네.
누가 이치에 통달하여 이런 방법 알아냈던가.
차 한 잎 끓이다가 신묘한 기구 만들어냈네[옛날에 영국인 와트가 주전자에 물이 끓자 뚜껑이 들썩거리는 것을보고 이를 미루어 이치를 깨달아서 비로소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바람 불고 번개 치듯 험준한 산을 오르더니,
수천수만 강과 산을 눈 깜짝할 사이 지나네.
비장방(房)의 축지법은 도리어 번다하더니,
이 기차는 열흘 걸릴 길을 찰나에 가는구나. - P141

8. 웃고 미소를 짓는 것은 행복하다는 표시이다. 분명 이상한 옷을 입고있는 우리는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순박한 원인 제공자가되었다. 그러나 이 ‘자유의 나라‘ 후손들이 불손하게도 우리를 보려고 발광하는 그 모습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다.
-「윤치호 일기 5월 9일 - P158

런던은 정치가 융성하니,
군주와 국민이 서로 신뢰하네.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고,
천년 세월 이름난 고을 중 으뜸이었네.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이라.
여기 와서 아름다운 풍속 보노라니,
꽃과 달이 온 도성에 가득하네. - P165

망국은 과거 역사에 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니, 문학의 소재로도 널리 다루어졌다. 길재가 고려의 옛 도읍을 둘러보며 읊은 시조의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구절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망국의 문제를 다룬 시구 가운데 두보(杜甫)의 <춘망(春望)>에 등장하는"나라는 깨어졌으나 산하는 그대로 있고, 장안엔 봄이 오니 초목만 깊 - P180

어졌네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라는 구절은 동아시아 지식인에게 특별히 익숙했을 것이다.  - P180

망한 나라의 백성이 벼와 기장에서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착상은 기자의 <맥수가>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궁궐과 저녁 종은 그대로라고하더라도 유민들은 무언가 달라진 풍경을 곡식이 심어진 들판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구체적인 사물을 지칭하지는 못하더라도 유 - P181

민들이 기자의 고사에서 유래한 ‘맥수지탄‘의 감정을 느끼기마련이라는 의미로 "화서"를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기자가 은나라의 도읍을 지나면서 옛 궁궐이 폐허만 남아 보리밭이 된 풍경을 보고 탄식하여 불렀다는 <맥수가>는 두보의 시구만큼이나 김득련이 폴란드를 읊는 데 영향을 주었을 법도 하다.  - P182

행렬은 두 줄로 늘어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갔다. 이 장면은 내가 이제까지 본 어떤 장면보다 더 장관이었다. 군인, 관리,
수행원, 말, 마차, 그리고 모든 것이 거의 금은으로 덮인 것처럼 보였다. 황제는 홀로 간편한 양식의 옷을 입고 말 등에 반듯하게 올라타고 있었다. 조선 국왕의 모습을 추하게 하는 마부 · 내시 · 하인 같은 떨거지는 없었다. 러시아를 다스리는 이 군주의 주변에는 그 같은 역겨운 존재들이 하나도 없다. 비단옷을 입은 황후는 홀로 황금마차를 타고 가면서 길 양쪽에서 환호하는 수많은 군중에게 머리를 끄떡여 인사했다. 이 모든 행차는 목표지점에도달할 때까지 한 시간 걸렸다.
특사 가운데 지저분한 이빨 그들 중 몇몇과 길게 땋은 변발을 한 중국인들은 수놓은 훌륭한 비단옷을 입고 있지만 안쓰러운 모습이다. 유럽식 - P197

으로 차려입은 일본인들은 동양 전체에서 가장 문명화되고 부러움을 사는나라의 대표처럼 행동했다. 페르시아는 매우 말쑥한 제복을 입은 잘생긴 사람이 대표로 왔다. 최근에 그 나라의 왕이 피살되고, 그 나라 정부가 친영국파와 친러시아파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인지 그에게 일종의 동료 의식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비참한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는 더 행복한나라에서 온 사절들의 경멸과 조소의 대상일 터이다."
-「윤치호 일기 5월 21일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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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申)"는 상하이의 별칭이다. 상하이는 전국시대 춘신군(春)의 봉지였기에 ‘신(申)‘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며, 진나라 때 사용된 낚시 도구인 ‘호(扈)‘와 연관된 우쑹강 하류의 별칭 ‘호독(扈瀆)‘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인 ‘호(滬)‘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송나라 말기에 상해진(上海鎭)이 설치되었으니, ‘신호‘는 더 이른 시기의 지명인 셈이다.
상하이는 1843년에 정식으로 개항되는데, 이는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1842년 난징 조약에 5개의 개항장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결과였다. - P96

바로 시베리아[西伯利亞]를 거쳐서 러시아 수도에 들어간다면 노정은 가까울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처럼 떠나는 대사의 일행이 지나는 길의 산천과 구미)의 국경을 겉으로라도 볼 겸하여 상하이에서 북미를 거쳐 서유럽으로부터 러시아 수도에 들어가는 길을 취하게 되었다. 4,000년 이래 갇혀 있던 조선의 깃발이 태평양 만리 창해에 흩날리고, 캐나다(加陀, 미국[合]에 흩날리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의 수도를 지나 독일의 국경을 횡단하고 러시아의 관문에 들어서게 될 제 과연 역사의 변천과 세파(世)의추이에 금석현수(今昔懸의 감(感)이 없을 수 없었다.
- <별건곤> 제6호(1927. 4.) - P109

정오에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그저께 요코하마에 정박하니, 수려한산천, 견고하게 쌓은 부두, 높고 큰 건물, 잘 정비된 거리, 끊임없이 이어진전등과 가스등이 사람의 눈앞을 갑자기 환하게 했다. 동경에 들어가자 배치된 모든 것이 참으로 오묘한데, 정밀함에도 더욱 정밀하기를 구하고 날로또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이는 모두 이 나라 사람들이 서양의 제도를 근면하게 배워서 이처럼 개명된 것이요, 남의 손을 빌린 것이 아니다."
-『환구일록』 4월 17일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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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사는 이야기를 올린다. 회사에서 무얼 기한 내에 끝내야 하는데 진행이 잘되지를 않고 있어서 압박을 받고 있는 상태다. 뭐 사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스스로가 좀 못마땅한지라 최근에는 에너지가 그곳에 많이 가 있다.

그나저나 업데이트된 북플 앱(아이폰 기준)은 좀 낯설어서인지 적응이 안 된다. 드디어 제목을 입력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생긴 것 같고 이미지도 멀티 업로드가 가능해진 것은 좋은 것 같다. 그 이외에는 적응이 안되서 헤매는 중이다.

이제 39도에 육박하는 폭염은 아니라서 주중에는 산책하며 머리를 식히고 주말에는 늘 그렇듯 동네를 산책한다. 하늘이 조금씩 높아지는 모습을 보며 힐링을 하곤 한다.
얼마 전에는 여름 휴가를 이용해서 콩국수를 먹으러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다녀오기도 했다. 콩국숫집이 그렇게 많은데도 집집마다 자리가 없었다. 특히 내가 간 곳은 웨이팅이 길었다. 사실 나는 웨이팅을 정말 안하는 편인데 이 집 콩국수는 먹고 싶어서 20여분을 기다렸다. 그래도 먹어보니 다행히 맛있었다. 양이 좀 적어서 보통, 곱배기 하나씩 시켜서 먹었더니 딱 맞았다. 옆지기가 콩국수를 잘 먹었다면 곱배기 2개를 시켰어야 했을 것이다.

참! 필라테스 수업은 사정상 그만두게 되었고 집에서 2~3일에 한 번씩 안 아프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역시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하거나 개인 수업을 받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에너지가 그렇게까지 되지 못하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9월까지 함께 읽기로 한 비커밍은 열심히 읽고 있다. 그러나 이제 1/3 넘긴 듯함ㅎㅎ 미셸과 오바마가 사랑에 빠진 뒤 합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두 사람이 그렇게나 다르다니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미셸의 직업적 선택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은 것 같다. 나도 어느 직업을 선택하기 전에 이것 저것 경험을 해보고 무엇이 맞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면 더 좋았겠다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도 집이 그래도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힘들지 않을 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오늘은 밀린 글들을 좀 쓰고(읽는 것보다 역시 배는 더 걸리는) 집안일을 하고 나니 하루가 거의 다 흘러갔다. 저녁으론 레토르트 순댓국이 되지 않을까 싶다.

8월도 어느덧 끝물이다. 다음주 기온을 보니 아침저녁 기온이 좀 내려가는 듯하다. 이 더위도 이제 정말 물러갈 때가 되었다.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8월을 마무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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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8-31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이번 여름에 아직 콩국수를 한 번도 안먹었네요. 이러다 여름 다 가겠네.
저도 비커밍 시작했어요. 저도 비커밍 이야기를 짧게 써봐야겠습니다. 얼른 진도 나가서 오바마 만나고 무슨 생각 하고 어떤 감정 느꼈는지 알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6-08-31 08:38   좋아요 0 | URL
여름 음식 중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콩국수라 이번엔 꼭 어디 가서 먹어보자 생각했죠. 바쁠 때는 콩물만 사서 먹을 때도 있긴 한데 그래도 직접 가서 먹는 것만은 못한 것 같아요. 많이 더운 날이었는데 콩국수 먹으니까 기운이 나더라구요^^ 흐흐. 다락방 님은 어떤 관점으로 비커밍 이야기를 하실지 궁금합니다. 화이팅하는 한주 보내세요!

희선 2026-09-02 0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월이 가고 구월이 왔네요 팔월에 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2026년이군요 팔월이 가고 구월이 왔는데, 한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달 동안이라도 잘 보내려고 해야 할 텐데, 많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어제 하늘 예쁘더군요 철은 하늘에서 먼저 나타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도 있지만...

거리의화가 님 구월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저런 재해가 일어나서 마음이 안 좋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6-09-03 12:52   좋아요 0 | URL
하늘 모양을 보아하니 가을이 됐다는 걸 점점 느끼고 있는 요즘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이즈음이 되면 이제 또 한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올 한해는 진짜 뭘 했나 모르겠습니다. 국내도 그렇고 세계도 뒤숭숭하네요. 희선 님도 9월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몇 년동안 봐야지 생각만 했던 <산해경>을 완독했다. 의외로 보다 보니 이미 내가 다른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 매체를 통해서 친숙해진 사실들이 많아 흥미롭게 읽었다. 애당초 모든 것을 외우겠다 덤비지만 않는다면 편하게 쓱쓱 볼 수 있다. 다만 신묘한 동물(?)에 대한 것은 전체적인 그림만 나오고 개개의 그림은 없어 설명만으로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 책은 북차1경의 괴이한 동물이라고 해서 이렇게 전체적인 삽화도를 실어놓고 옆에 간단한 설명을 실어놓았다.
상고시대에 모우는 지금보다 넓은 지역에 살았지만 지금은 청해, 티베트 지역에서만 산다. 이 구역에는 소리를 낼 줄 아는 뱀이 있어 제단의 수호신이 되었다. 더욱 괴이한 것은 제건이란 동물인데, 사람 머리에 눈이 하나뿐이고 특이하게 춤추며 꼬리가 무척 길어서 꼬리를 입에 물고 걸어다닌다. 옛날 사람들은 제건 흉내내기를 좋아해서 그를 따라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며 혼자 기분을 내거나 씨족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또 사냥하기 전이나 출정하기 전 혹은 무술 의식 전에 이 동작으로 몸을 풀기도 했다. - P63

근데 나는 이걸 봐도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림을 알아먹는 재능이 없는 걸로. 아무튼 개개의 동물을 이미지화시켜놓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전자책을 통해 도움을 얻었다(물론 <산해경>에도 몇몇 동물은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 해당 동물이 어느 곳에 거주하고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기에 레퍼런스로 딱이었다. 
책에 나오는 모든 동물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래 그림은 상류에 대한 설명이다.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인데 이미지로 보니 확실히 더 감이 잘 왔던 것 같다. 사실 이 전자책은 중국에 갔을 때 사려고 했다가 전자책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하지 않고 넘어갔던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방향을 비롯한 공간(지리) 감각은 없는 편이라서 역시 설명만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것은 개인적인 부분으로 고질적인 문제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곳이 있나보다 이런 곳이 있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어차피 해당 시기는 역사인 듯 아닌 듯 대부분의 내용이 역사와 신화가 섞여 있기도 하니까. 그래도 한반도와 가까운 곳이 나오면 좀 더 집중하게 보게 되더라.

앞서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 1, 2권을 통해서 어느 정도 맛보기로 접한 바가 있었던 것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산해경>의 역자들도 원문을 번역하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은 정재서 교수의 책을 참고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사 끝에 판단 내린 결론을 책에 실어두었더라. 이런 좀은 흥미로웠다. 배울 점을 찾아 보완하려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원문을 번역을 통해서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번역에 의지해서 원문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원어를 아는 독자라도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오류를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좋은 접근이었다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해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고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까.
<상서>와 <여씨춘추>, <사기>를 보면, 대우가 치수한 후에 대신들을 거느리고 산천대지와 생산물의 분포상황을 조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조사결과에 근거하여 당시 매우 정확한 ‘국토자원 분포도’를 제작하면서 전국을 구주로 나누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보는 <산해경>의 <산경> 부분이 바로 대우의 조사결과에 해당된다. <산해경>은 서적으로도 만든 동시에 <산해도>라는 그림으로도 제작되었다. 사실 <산해경>은 이 <산해도>를 설명한 글이라고 한다. <산해도>는 세발솥 구정에 넣었으나, 춘추전국시대의 사회가 어수선하고 전쟁이 빈번하여 구정이 사라지면서 <산해도>도 자취를 감춘다(P4).
그후 진이 통일을 하면서 산해경을 찾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전해지는 산해경은 18권으로 남산경, 서산경, 북산경, 동산경, 중산경이 각각 한 권으로 합해져 5경으로 <오장산경> 또는 <산경>이라 부른다. 해외남, 서, 북, 동경이 각각 한 권, 해내남, 서, 북, 동경이 각각 한 권, 대황동, 남, 서, 북이 각각 한 권, 해내경을 한 권으로 해서 13권을 <해경>이라 부른다. 합해서 <산해경>이다.
그러니까 산해경의 지리 정보는 측량에 기반한 정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산해경은 그야말로 방대한 백과전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고 시대 살았던 이들이 디디고 있던 땅과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지리, 역사, 종교, 문학, 철학, 민족, 민속, 동물, 광물, 의약 등 다양한 지식을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꾸준히 언급되고 회자되며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산해경을 중요하게 다루어오면서 중화민족에 얽힌 신화와 전설을 끄집어내어 꾸준히 이용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리에 약하기도 해서 땅을 묘사하고 그곳에 사는 생물에 대한 설명보다는 전승되는 역사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더 재밌었다. 대표적으로 서왕모, 황제와 치우에 얽힌 이야기나 요, 순임금에 대한 내용 등이 그렇다.   



중국 신화전설에 대해서는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접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잘 모르고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 더 잘 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전 정재서 교수의 신간으로 이 책이 나왔길래 구입했으나 언뜻 책의 내용을 보니 조금 어려워보여서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 그래도 흐름을 끊기지 않기 위해서는 읽어야겠지. 이 책과 더불어 한국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도 더불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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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영화든 드라마든 한 번에 몰아서 보아주어야 하는데 드라마 <삼국지>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다. 워낙 길다보니 이제 반쯤 보았나. 다 보고 나면 엮어서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그 시간이 길어져서 이제 그만하자 생각하고 읽은 책이나 정리해야겠다 결단을 내렸다. 


삼국지를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핵심만 쏙쏙 골라서 써낼 수가 있구나 일단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읽히고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대부분 삼국지는 중반까지 가지도 못하고 책을 놓게 된다. 워낙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도 다양하다보니 읽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 나도 초반에 유비 삼형제가 만나고 동탁이 권력을 잡은 뒤 조조가 그를 공격하려다 실패해서 도망자가 되는 과정, 그를 물리치기 위해 군웅이 모여서 한판을 벌이기까지의 과정은 몇 번을 읽어서 그 과정을 꿸 정도이나 그 이후의 벽은 넘기가 참 쉽지 않았다. 


초반에 나를 사로잡은 인물은 단연 여포였다. 공격력 면으로는 관우나 장비도 제칠 수 있을 정도로 최강이었으니 사실 초선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살아남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지혜가 부족하고 편협하여 여러 번 좋은 기회를 놓치면서 스스로 무덤을 팠다. 책사인 진궁의 말만 귀기울여 들었어도 좀 나았을텐데 말이다. 진궁은 동탁을 공격한 뒤 그를 피해 달아난 조조를 영웅이라 생각했으나 조조는 그가 생각하는 도의를 아는 이상적 지도자는 아니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을 거두어준 이의 가족들을 몰살시켰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오늘날 조조는 예전과 달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무엇보다 관도대전에서 70만 대군을 상대로 몇 만의 군대로 승리를 일구어낸 것은 그야말로 쾌거였다. 사람을 소중히 할 줄 몰랐던 원소의 핵심 인사였던 허유가 조조에게 투항하면서 원소군의 군량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기에 가능했다. 조조가 사람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데 앞서 유비 삼형제가 전투에 패해 서로 헤어지게 되었을 때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 것, 뒤에 조자룡을 얻기 위해 보인 관심 등이 있다. 조조가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조조는 관도대전으로 삼국의 승자로 떠올랐다.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얻는다. 이로써 장수 뿐 아니라 소중한 책사를 확보했다. 앞서 유비가 계속 조조에게 밀려 전투에게 패했던 것은 그의 곁에 걸출한 장수들은 많았으나 두뇌를 쓸 줄 아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는 공격력만으로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며 제대로 된 작전이 없다면 승리를 얻기 힘들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강동의 손권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손유연합의 결성으로 유비는 조조를 물리칠 준비를 끝마친다. 이로써 조조와 손유연합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손유연합이 만들어졌으나 주유와 제갈량의 두뇌 싸움은 치열했다. 손권 측에서는 유비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더 우위에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싸움은 강동에서 이루어질테니 오랜 기간 수전에 단련되어온 자신들이 우위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주유는 강동의 브레인이었다. 손견이 죽고 손권이 그 뒤를 이었으나 손권은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전투 경험이 많지 않았다. 반면 주유는 손견과 오랜 기간 전투를 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풍부했다. 제갈량이 손유연합을 위해 손을 내밀면서 두 사람의 두뇌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갈량이 한 수 위였다. 주유도 대단한 책사였으나 제갈량은 늘 그의 수를 꿰뚫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번번히 그보다 앞선 수를 내놓았다. 자신보다 항상 더 앞서는 지략가를 만난 주유는 평생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어쨌든 이제 삼국지 하이라이트 전투인 적벽대전이 시작된다. 전투를 위한 사전 작전들이 정말 대단했다. 본 전투 이전에 만약 이런 치밀한 작전들이 없었다면 적벽대전의 결과가 그리 마무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유는 친구인 장간을 역이용하고 황개의 고육계와 방통의 연환계를 이용해 조조를 속였으며 제갈량은 안개를 이용해 조조군 진영에 가서 10만 개의 화살을 얻어냈다. 화공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방통의 연환계로 조조군의 배를 엮어 불을 연달아 붙게 한 것이 컸다. 이로써 다윗(손유 연합)과 골리앗(조조 진영)의 싸움은 다윗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조조는 왕위에 올랐고(그전까지는 왕처럼 행세하기는 했으나 승상의 위치에만 있었음) 유비는 형주에 이어 익주 땅까지 얻으며 기반을 얻게 되었다. 조조 진영은 책사였던 순욱과 순유가 사망한 뒤 사마의가 그 책임을 맡게 된다. 조조는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한중은 익주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땅이었다. 조조의 꿈인 중원 점령을 위해서는 익주를 지나야 가능했기 때문에 반드시 사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조조는 한중마저 유비에게 내주면서 후퇴해야만 했다. 


여러 곳을 다스려야 하게 된 유비는 홀로 그 모든 곳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관우는 형주성을 맡게 된다. 적벽대전 이후 여러 전투에서 계속 승리 진영에 있었던 관우는 이제 수성해야 할 성주의 입장에 있었다. 기고만장해진 그는 손권의 아들과 자신의 딸의 결혼인 사돈 제의를 말도 안되는 말(호랑이의 자식을 어떻게 개의 자식과 결혼을 시키겠는가)로 거절한다. 이것은 비극의 씨앗이 되는데 화가 난 손권이 형주를 비우고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관우가 북으로 간 사이 형주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그의 목숨도 부지할 수 없었던 것이겠다. 정말이지 가장 안타깝고 씁쓸한 장면이었다. 관우의 끝은 이렇게나 좋지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그는 초심을 잃은 뒤 오만함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장비의 죽음은 더 황망했다. 그는 예전부터 술을 너무 좋아했고 술버릇도 고약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장수의 말로는 잠자는 사이 부하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결말로 남는다. 


정사에서는 과연 두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아래는 정사 촉서 관우전의 내용 중 일부이다.


손권은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에게 구혼하려고 사자를 보냈다. 관우가 그 사자를 모욕하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손권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또 남군 태수 미방이 강릉에 있고 장군 사인이 공안에서 주둔했는데, 평소 관우가 자신들을 경시했으므로 싫어했다. 관우가 출병하자 미방과 사인이 군수물자를 대었는데 힘을 다해 돕지는 않았다.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을 징벌하겠다." 미방과 사인은 속으로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손권이 미방과 사인을 은밀히 유인하니, 미방과 사인은 사람을 시켜 손권을 맞이했다. 게다가 조조가 서황을 보내 조인을 보았으므로 관우는 이기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령하고 관우의 병사들과 처자식을 모두 포로로 붙잡았으므로 관우의 군대는 흩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고, 관우와 그 아들 관평을 임저에서 참수했다.

역시 예상대로 관우가 했다는 말은 나오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원인이 되는 이야기가 사실 더 핵심이었다.  


장비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비는 군자를 아끼고 존경하지만 소인은 보살피지 않았다. 유비는 늘 이 점을 경계하여 말했다.

"그대는 형벌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치고, 또 매일 병사들을 채찍질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는 화를 부르는 길이오."

그러나 장비는 깨우치지 못했다. 유비가 오나라를 토벌할 때, 장비는 병사 만 명을 인솔하여 낭중으로부터 나와 강주에서 유비와 만나기로 했다. 출발하려고 할 때 그 막하의 장수 장달과 범강이 장비를 죽이고, 그 머리를 갖고 장강을 따라 손권에게로 달려갔다. 장비 군영의 도독이 표를 올려 이를 유비에게 보고했다. 


유비는 관우가 사망한 것 때문에 손유연합을 깨고 손권을 공격한다. 삼형제의 의리가 그렇게나 중요했을까. 관우는 오만해서 화를 불렀고 장비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아 자멸했다. 지도자로서 어떤 것이 더 중요했을까. 유비는 의리에 목매어 우선순위를 그르친 끝에 내리막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손유연합이 깨진 이상 유비와 조조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유비가 후회하고 깨달은 뒤에는 그의 목숨이 이미 다할 때였다. 그는 제갈량에게 촉나라를 부탁하고 사망한다. 제갈량은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북벌을 단행함으로써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는 사실상 위나라의 브레인인 사마의와 촉나라의 브레인인 제갈량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북벌인 가정 전투에서는 위나라가 승리한다. 이는 “높은 산 위에 진을 치지 마라"는 제갈량의 당부를 잊은 마속이 산을 아래에서 포위함으로써 물이 없었던 산에 불을 놓은 사마의가 쉽게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속은 유능한 장수였으나 제갈량은 본보기로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참수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읍참마속이다. 

서성 전투에서는 군량을 지켜내기 위해 제갈량이 직접 참전했다. 촉군은 2500명이었던 반면 위군은 15만명에 달했다. 아무리 수성의 위치에 있던 촉군이었다 해도 이는 쉽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제갈량은 성의 깃발을 내리고 오가는 사람이 없게 한다. 그리고 군사들을 보내 성 앞에서 쓸게 한 뒤 성문을 활짝 열어둔다. 그는 비단옷을 입고 성 위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 사마의는 그 모습을 보고 ‘설마 뭔가 있겠지’ 하며 돌아가고 만다. 제갈량의 완벽한 승리였다. 여기에서 허장성세(허세)라는 말이 유래했다.

사마의는 사마사, 사마소를 데리고 촉군의 식량창고를 습격한다. 그런데 창고문을 열었더니 마른 풀과 장작, 기름만 있을 뿐이었다. ‘아뿔싸!’한 사마의, 여기에 제갈량은 불화살을 쏘면서 불바다로 그들을 섬멸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며 위군은 살아남아 돌아갈 수 있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구나." 제갈량은 이런 말을 남기며 씁쓸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장원에서 위군과 촉군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다. 제갈량은 하늘을 통해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촉군을 위한 퇴로를 준비했다. 제갈량은 죽었으나 작전을 남겨두었다. 자신의 가면을 만들어 그가 살아있음을 믿게 만들어 촉군을 도망치게 했던 것이다. 사마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 했다. 


개인적으로 제갈량의 두 라이벌인 주유와 사마의 간의 두뇌 싸움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물론 조조와 유비 간의 라이벌 대결도 만만치 않았지만. 작가는 ‘절제’라는 키워드로 삼국지의 인물과 사건을 추적한다. 권력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절제가 없으면 리더로서의 신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세기 말부터 3세기 말까지 후한이 무너지고 진이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약 100여 년의 시간인 역사 <삼국지>가 14세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는 재미난 소설로 탄생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최소한의 삼국지>는 복잡한 삼국지를 비교적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난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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