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의 통치 전반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주로 표준화와 중앙집중화에 대한이반의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의 문제와 관계된다. 일부 사람들은, 예를 들면 좀더 확대되고 보다 효율적인 중앙 행정, 보다 일관성 있는 법적 규칙과 절차, 더욱 강한 군대, 충성스런 중간 봉직계급, 그리고 충성스럽고 일 잘하는 지방행정의 발전 속에서 정치적인 "근대화"의 증거를 본다. 그렇지만 다른 학자들은 이런 것들은 근대화가 아니라, 주로 정치적인 "동원(mobilization)"을 위한 노 - P230

력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대는 좀더 자유로운 사회라든지 서구 방식으로 독립적인 시민 영역을 발전시킨 사회도 아니었고, 국가의 필요에 잘 이용되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 P231

전제정치의 많은 상징들과 의식은 그 자체로 왕국 통합의 징표로서, 보야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한계를 그어주었다. 이것은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 많은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서도 한 사람의 통치자를 둔 골치 아픈 정치체제였다. 여기서는 절대주의적인 통치라는 공식적인 얼굴을 제시하면서도, 계속해서 설득하고 회유하고 책략을 벌이기 위해서 통치자가 필요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 체제가역기능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야르들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이반과 봉직귀족에게는 그 체제가 제대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경우에 오프리치니나는 이러한 구속적인 체제를 깨고 나가려는 노력이었다고 볼수 있다. - P232

모스크바국의 전제자들이 오래된 상층계급에 대해서 거둔 비교적 손쉬운 승리는 그 뒤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특히 모스크바국 정부가 실질적인 대체 인물들을 마련하지도 않은 채, 너무나 성급하게 분령지의 통치 세력을 제거해버렸다는 주장이 있어왔다. 그 결과 정치적 및 사회적체계가 약화되었고, 이것은 동란의 시대가 발생하는 데에 일조했다. 그리고 보리스 고두노프가 사망한 이후에 차르의 권위가 약화된 것에 이어서, 보야르의반발도 동란의 시대의 한 원인이 되었다.
모스크바국이 팽창하면서 행정과 기구를 중앙집중화하며 표준화하고, 또다른 계급의 이해를 봉직귀족의 이해에 종속시켰기 때문에 도시도 어려움을 겪었다. - P238

그러나 좀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던 농민의 지위가 약화된 것이었다. 물론 농민들은 봉직귀족의 영지에서 노동력을 제공했고, 따라서그 계급이 성장했다는 사실로부터 즉각적이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분명히 봉직귀족의 성장은 점점 더 많은 국유지와 농민들이 포메스티예 제도를 통해서 봉직귀족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 자신이 국가에 대한 과중한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던 봉직귀족 지주들은 될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농민들로부터 짜내려고 했다. 게다가 오프리치니나로 인한 파괴 행위는 이미 지나친 부담을 지고 있던 중부 러시아의 많은 지역의 농민경제를 완전한 파국으로 몰고 갔다. - P239

미하일 로마노프는 이반 뇌제와 아나스타샤 로마노바의 결혼을 통하여 이전 왕조와 관련되어 있었다. 이 가문은 대중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이반 뇌제의 첫 아내였던 착한 아나스타샤, 난폭한 차르의 희생자가 될 뻔했던 몇몇 사람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옹호해주었던 그녀의 남자 형제인 니키타 로마노프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젬스키 소보르가 소집되고 있을 때니키타의 아들이자 미하일의 아버지인 필라레트 수좌대주교가 폴란드인들의 포로로 있었다는 점도 로마노프 가문에 이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밀류코프 등의사람들은 필라레트가 투시노 진영과 아주 가까웠으며, 다른 보야르들보다 카자크들과 훨씬 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하일이 어리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 P256

모스크바국은 외국인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잉글랜드의 찰스 2세가 알렉세이에게 보낸 사절단의 서기인 드 미주와 같은 서구의 방문자들만이 아니라다른 많은 사람들도 모스크바국을 마법의 세계와 비슷한 무엇인가로 묘사했다. 즉 기이하기도 하고, 호화롭기도 하고, 다채롭기도 하고, 그들이 그때까지보았던 어떤 것과도 달랐으며, 아주 야만적이기도 했다. 외국의 사절들은 호화로운 복장, 특히 모피 옷, 눈에 띄는 회색 수염, 정교한 궁정 예식, 풍성한 연회그리고 엄청난 음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모스크바국의 기본적인 특징들은 더욱 중요했는데, 방문자들은 이것을 재빨리 알아챘다. 즉, 차르의 거대한권력과 권위 그리고 심지어 대수롭지 않은 문제들도 고위 관료의 결정을 요구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중앙집권화가 바로 그것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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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많은 역사학자들은 분령 시기가 위기와 생존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공국들 사이에서 앞을 향한 경쟁의 시기이기도 했고,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고 본다. 각각의 공국들은 키예프의 과거에서 자신들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중 모스크바가 경쟁 공국들을 물리치고 승자로 입증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 시대 구분이라는 언제나 골치 아픈 문제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역사학자들이 키예프와 분령 시기를 "중세 러시아"로 부르며, 중앙집권화된 모스크바국의 성립기를 "근대 초기의 출발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은 점차 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러시아 발전의 독자성보다는 폭넓은 유럽적 흐름과의 비교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 P103

노브고로드의 역사는 그 자체로서 주목받을 만하지만, 키예프가 쇠퇴한 이후에 키예프 루시의 땅이 변모되어갈 때에 생긴 하나의 변형된 발전 형태로서 그이상의 관심을 끌고 있다. 노브고로드의 특이한 성질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성질들이 키예프 시대-어느 정도는 키예프 이전 시대로부터 직접 유래되었으며, 때때로 키예프의 일부 핵심적인 특징을 강조된 형태로대변했다는 점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노브고로드의 도시생활과 문화, 중간계급의 중요한 지위, 그곳의 상업, 외부 세계와의 긴밀한 접촉 등과 같은 모든것들은 노브고로드를 키예프 역사의 주류와 연결시켜주고 있다. 물론 베체 역시 키예프의 삶과 정치에서 의미심장한 역할을 담당했다. 노브고로드인들은 그것의 권위와 기능을 더 부각시킴으로써 키예프 루시의 정치적인 구성 요소들 중다른 두 가지를 희생시키고, 오직 한 가지, 즉 민주정적 요소를 발전시켰다. 그두 가지는 전제정치적 요소와 귀족정치적 요소인데, 우리가 보게 되듯이 이 두요소는 러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더 비옥한 토양을 발견했다. - P134

모스크바는 14-15세기에 강력하고 팽창하는 왕조 국가의 중심이되었다. 이 국가는 통치자의 "세습 재산"으로 정의된 엄청난 부와 광대한 영토에의해서,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에 의해서, 경쟁자들과 몽골 칸국에 대한 군사적인 승리에 의해서, 유산과 운명이라는 세속적이고도 종교적인 개념에 근거를 둔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강화되었다. 사실, 필연성이라든가 민족적 운명이라는 암축된 의미를 가지고서 이 과정을 "러시아 땅 모으기(sobiranie russkikh zemel)"라고 묘사한 전통은 이 과정에 대한 많은 역사 서술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 P145

모스크바의 성장의 성격과 의미에 대한 판단은 그 과정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보다 훨씬 더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혁명 이전의 대부분의 러시아 역사학자들은 모스크바의 성장이 모스크바 공들과 러시아 민족의 위대하고도 필연적인 업적이라고 찬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외부의 침략을 받고도 살아남아서, 역사에서 자신들이 맡은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통합해야 했기 때문이다. 소련시기의 역사학자들도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고, 이 주장은 소련 이후의 공식적인 역사 교과과정에서, 그리고 러시아 지도자들이 민족의 과거에 대해서 언급할 때 소중하게 다루어진다. 반면에, 프레스냐코프 같은 혁명 전의 러시아 역사학자들, 오늘날의 많은 서구 역사학자들, 그리고 당연하게도 폴란드,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역사학자들 등은 이런 해석-비판자들이 보기에 이것은 "민족주의적 신화이다에 종종 의문을 제기한다. 이런 저술가들은 칭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러시아 모으기가 무엇보다도 노브고로드와 프스코프 같은 러시아인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비러시아 민족들을 대상으로 한 모스크바국 공들의 교묘한 침략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리하여 모스크바국 공들은 그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았고, 모든 사람들을 모스크바국의 전제정치에예속시켰다는 것이다. - P169

학자들은 비록 분화의 근원이 그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을지라도, 14세기에 분리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데에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확실히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쳐서 이 언어들을 변화시켰는데, 특히 분령 시기의 분열 및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인들이 통치하던 영토와 모스크바국 러시아 사이의 심화된 분리가중요했다. 따라서 대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국의 영토와, 우크라이나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은 리투아니아 및 폴란드와 각각 관련을 맺게 되었다. 우리는 만약러시아인들이 키예프국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통일성을 유지했다면, 혹은리투아니아-러시아가 모스크바를 대신하여 새로운 중심이 되었더라면, 사건의전개 양상이 달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비록 모든 것이 동일한 키예프로부터의 유산에서 시작되었지만, 정치적인 분리는 문화적인 이질화도 심화시키는 - P208

경향이 있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로 알려져 있는 지역에는 폴란드를 통해서 라틴 유럽의 강력한 영향력이 유입되었고, 그 영향력은 그곳에서 상이한 특성을 배양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러시아 정교회는 마침내 행정적으로 분열되어, 키예프에 있던 별도의 수좌대주교가 리투아니아국의 정교회를 이끌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대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으로 분리되었고, 몇 세기 동안 떨어져 살면서 그런 현상이 더욱 강화되었던 사실은 그 이후의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되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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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에드거 앨런 포 단편 소설들을 읽었다. 어느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들이 서로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작가와 그의 작품이어서 궁금해져서다. 

에드거 앨런 포는 19세기 미국 추리/공포 장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포는 순회극단의 배우였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나 두 사람 모두 일찍 사망하여 양부모 아래 성장했다. 그는 여러 이력을 거쳤는데 문필가로 생활하기에는 안정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그는 미국 주류 문단 세력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특히 그래스월드는 포에 대한 악의적인 부고와 평론을 쏟아내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 그의 초창기 이미지를 좋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사후 그의 평가가 많은 작가들에 의해 회자되며 개선되었다고 한다. 포는 미국 현대 추리 소설의 창시자로 영국 추리문학 캐릭터인 셜록 홈스의 앞선 모델인 오귀스트 뒤팽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가 작품을 쓰던 당시 문학계는 이성주의에 반해 신화와 전설, 비이성적이고 초자연적인 것, 극단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포도 그 영향을 이어받았다. 

소설 속 주인공은 대체로 불안한 심리와 충동이 잠재되어 있다가 환각에 빠진 상태에서 기현상을 목격한다. <어셔가의 몰락>의 상황이 전형적으로 그런 경우다. 하지만 상황은 기괴하거나 공포스러워 보이지만 주인공이 꿈꾸었던 결과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결코 천편일률적이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리지아> 같은 작품이 그런 경우였다(리지아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그곳이 성소라도 되는 양 머무르던 시기 이후, 나는 그녀의 크고 빛나는 눈동자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일으켰던 바로 그 감정과 꼭 같은 감정을 물질세계의 많은 존재에서도 느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느낌을 정의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더 쉬워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이 더 쉬워지지도 않았다. - P53) 리지아는 강렬한 느낌으로 주인공을 사로잡았다. 특히 그녀의 둥근 검은 눈동자는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고 당사자는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리지아가 시름시름 앓더니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후 그는 로웨나라는 여자와 결혼하지만 그녀 또한 4일 만에 사망한다. 그는 로웨나의 시신에서 생의 감각을 느끼는데 그건 다름 아닌???(결론은 읽어보시길)


당연히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도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귀신의 소리를 듣거나 귀신의 형상을 보거나 그런 공포가 아닌 다른 경우도 있었다. <배반의 심장> 같은 경우 어떤 사람의 특정 신체 기관을 보고 문제를 삼아 그를 죽여야겠다고 다짐, 그것을 실천하는 상황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독자가 자신을 보고 미쳤다고 탓할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건 상대가 문제였기 때문에 살인이 정당화되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내용에서는 인간혐오에 대한 생각이 엿보여서 무서웠다. 이는 <군중 속의 사람>, <검은 고양이>, <아몬티야도 술통>에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군중 속의 사람>에서 화자는 건물 안에서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군중 속에서 눈에 띈 한 사람을 쫓아가면서 사건이 만들어진다(매일 밤 침대 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유령 같은 고해신부의 손을 꽉 쥐고 그의 눈을 안쓰럽다는 듯 들여다보면서 죽어 간다. 밝혀지기를 거부하는 흉측한 비밀 때문에 마음속 깊은 곳에 절망을 품고 목에 경련을 일으키며,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인간의 양심은 이따금씩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짐, 오로지 무덤 속에서만 부릴 수 있는 짐을 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범죄는 본질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다. - P237). <검은 고양이>에서는 주인공의 도착 심리와 광기가 심해지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아몬티야도 술통>도 복수를 하겠다는 핑계로 벌어지는 일인데 <검은 고양이>도 그렇고 <아몬티야도 술통>도 그렇고 마지막에는 도둑이 제발저려 범죄를 실토한다. 

작가는 이처럼 복잡한 인간의 심리를 꿰뚫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건을 읽는 동안 현실에 이런 사람들이 있겠지 싶어 연이어 소름이 돋았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 분노와 폭력에 대한 잠재 의식은 누가 다 알 수 있겠는가.  


한편 <도둑맞은 편지> 같은 추리 단편도 있었다. 사건 해결사인 오귀스트 뒤팽이 출연하는데 그는 명문가 출신에 독서광으로 날카로운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이미 이전에 <모르그 가의 살인>, <마리 로제 미스터리> 사건을 연이어 해결하여 파리의 경감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바 있었다. 이 책에는 앞선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 아래 책을 통해서 읽었다. 

쫄깃한 반전을 생각하면 ‘뭐지?’ 할 수 있는데 사건은 의외로 단순하게 생각해야 보이는 법이라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현실에서 만나는 사건은 인간 간의 벌어지는 일들이니 수학 공식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법칙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단편은 <군중 속의 사람>이나 <타원형 초상화>, <배반의 심장>이었다. 인간이 어떤 것에(감정이든 대상이든) 미쳐서 꽂히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여실히 느끼게 해준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은 주변에 사람이 많다는 사실로 인해 오히려 고독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그 생각이 들고 나자 저는 밤낮 없이 그 생각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행위엔 아무런 목적도 열정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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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인 조건은 역사를 위한 무대가 될 수 있지만, 인간은 역사를 만든다. - P29

역사의 재료는 바로 지속성이다. 비록 모든 역사적 사건이 독특하고, 따라서 모든 일련의 사건들이 유동성과 변화와 다양성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현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우리가 역사를 가지도록 해주는 것은 주어진 현재와 과거의 관련성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속성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사항은 주장일 따름이고, 종종 논란거리가 된다. 비록 겉보기에는 별문제 없이 보이는 이 책의 표제도 하나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많은 특정 민족들, 문화, 역사를 "러시아"라는 제목 아래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중에는 러시아어가 아닌 언어를 구사하면서 스스로를 러시아와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민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일부는 나중에 차이점을 인식한 데에서 영감을 얻어 민족국가로서의 독립을 - P30

얻어내고, 자신들의 역사가 러시아 역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다. - P31

우리는 무엇을 키예프국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최근 대부분의 학자들은 좀더 근대적인 "러시아"보다는 고풍스러운 "루시"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왜냐하면 루시가 역사적인 용어였을 뿐만 아니라, 키예프국이 "러시아" 역사의 "연장선 상에 있는 초기 역사를대변하는지, 아니면 나중에 모스크바국이 팽창함에 따라서 그곳에 포함될 지역에 있던 슬라브 계통의 민족들이 관련된 수많은 별도의 역사들 중의 하나인지의 문제가 격렬한 논쟁거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키예프에 수도를 두기 이전의역사와의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도 "루시"라는 용어가 선호되고 있다. - P54

러시아가 비잔티움에 충성을 바친 것은 러시아의 이후의 역사의 많은 부분을 결정짓거나, 결정짓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러시아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외부에 남아 있었음을 의미했고, 반대로 러시아가 가톨릭 교회 자체가 줄 수 있었던 것을 얻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가 나머지 유럽 및 라틴 문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는 주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것은 러시아가 서구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도록 크게 부추겼고, 러시아인들과 폴란드인들 사이의 비극적인 적대감을 조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블라디미르가 콘스탄티노플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그가 풍부한 대가를 얻기 위해서 당대에 택할 수 있었던 최상의 정신적, 문화적,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라틴어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지역언어를 강조한 것은 이점으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그로써 종교가 대중에게 가까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슬라브어 의식(儀式)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민족문화의 발달에 강력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는 강력하고 성공적인 통치자로 기억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의하여 "사도들과 동등한 러시아인들의 세례자로서 시성되었다. - P63

그러나 어린 시절의 황금기와 마찬가지로, 키예프 루시는 러시아 민족의 기록에서결코 희미하게 남아 있지 않았다. 맑은 샘과도 같은 그 시기의 문학 작품을 통하여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종교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그 시기의신망받을 만한 저술가들에게서, 누구든지 복잡한 근대 세계의 일들에 대한 지침을찾아볼 수도 있다. 키예프 기독교는 푸시킨이 예술적인 감각을 위해서 가진 가치와동일한 가치를 러시아의 종교적 심성에 대해서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기준이자 황금의 척도이자 왕도인 것이다.
-페도토프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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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다른 지배적 담론들, 그중 특히 과학적 인종주의가 의사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것은 은유를 통해서였다. 의사들은 열렬히 외과술을 실행하려고 했으며/하거나 관찰의 신뢰성을 확립하려고 했다. 레즈비언의 ‘남성화된 성욕, 유대인 남성의사내답지 못함, 흑인 레즈비언의 과잉 남성성hypermasculinity [또는 초남성성]에 대한 견해들은 전부 경멸당하는 이들을 서로서로 연결하는 고리들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이와 똑같이 치명적이게도, 특정 성향, 표현, 행위를 특정하게 젠더화되거나 인종화된 집단들의 자연스러운 영역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정당화했다. - P240

많은 연구자는 호르몬의 급격한 변화가 정신 치료 요법보다 - P259

우월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정신 치료 요법을 보완한다고 가정했다. 전자는 성욕 그 자체를 표적으로 삼고, 후자는 동성애의신경증에만 관여한다는 것이다. 1940년대에 많은 연구자가런 방법으로는 성적 지향을 거의, 혹은 전혀 변화시킬 수 없다는것(일부 경우에는 오히려 성적 활동이 증가하기도 했다)을 목격했음에도불구하고 의사들은 이후로도 40년간 계속 환자의 호르몬 수치를 조작했다. 의료계가 내놓은 불필요한 선택지들이 뒤죽박죽인 상태에서 호르몬 치료는 외과적 거세보다 좀 더 인도주의적인 대응으로 간주됐다. - P260

1970년대 중반, 되르너는 동성애를 "선천대사이상[또는 선천대사장애]"로 분류하면서 이는 임신부에게 스테로이드호르몬을 주입함으로써 예방될 수 있다고 시사했다. 1980년 되르너는 남성 동성애의 원인을 산전 스트레스 탓으로 돌렸다.
동독 6개 지역에서 성병 전문의들에 의해 등록된 동성애자 남성 865명 중에는 스트레스가 심했던 전시 및 전후 초기에 출생한 사람이 월등히 많았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산전(혹은 주산기[분만 전후의 기간])에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건들이 동성애의유전적 병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 P271

과학이 뒷받침된 정치적 백래시는 주변화된 집단의 평등 요구가 가시화할수록 무성해진다. - P283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조직적 문제(일방적 자원 분배, 제도화된 인종주의, 능력주의[또는 비장애중심주의] 등)에 대해 개인적 해결책 (예컨대 복지 수급자라면 자녀 수 줄이기)을 강조한다. 그 결과 단종수술 남용, 인권침해, 고압적인 인구 조절 프로그램과 같은 유사한 방법을 지지할 때의 우파를 연상하게 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접근법으로 이어졌다. - P290

벅 대 벨 사건의 원고, 캐리 벅은 젊은 백인 여성으로 앨버말리카운티에서 양부모 손에 자랐다. 벅이 후견인의 조카에게 강간당해 임신하자,
그 가족은 벅이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벅을 정신 의료 시설에 입원시켰다. 강간당한 것이 부도덕의 지표로 받아들여지듯, 부도덕은 정신장애의 지표로 받아들여졌다. 지방법원에서 "부도덕하고 성매매를 저지르며 거짓된 일생을 산" 여성으로 묘사된 벅의생모 역시 정신 의료 시설에 수용됐다. 벅은 1924년 버지니아주법률의 시험 사례가 됐는데, 이 법은 "유전병처럼 재발하는 정신이상, 백치, 치우, 정신박약, 또는 간질을 앓고 있는" 수용자의 단종수술을 규정했다." 미 대법원이 8대 1의 의견으로 주 정부가단종수술을 할 권리를 확정하면서 벅이 "사회 부적응자인 자녀의 부모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판결한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 P300

악명이 높다. 대법관 올리버 웬들 홈스는 단종수술을 통해 "[단종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갇혀 있어야만 할 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낼수 있고, 그리하여 그 밖의 사람들을 정신 의료 시설에 수용할 수있으므로 모두를 위한 평등에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 판결은 법원에서 뒤집힌 적이 없다. - P301

생어는 아동노동부터 세계대전까지 모든 것의 원인을 번식을 억제하지 않고 내버려둔 탓으로 돌렸다." 우생학적 고려 사항과 ‘해결책‘이 다른 모든 구체책을 압도했다. 생어는 해블록 엘리스를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과 아이들이건강한 상태로 잘 태어나도록 하는 일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교육을 포기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발생장애‘가 최우선이라는 믿음, 부적절한 번식을 통해 사회 및 인종이 쇠약해진다는믿음, 그리고 정부 개입에 대한 열망은 우생학을 규정하는 특징이었다. 생어가 제시한 유전성 범죄자 목록(은 물론 생어가 그러한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언어)은 해리 로플린 등 당대 우생학계유명인사들이 말한 것과 똑같았다. - P310

<산아제한 평론》 편집자들은 산아제한[즉, 피임]을 여성의 주권을 신장하기 위한 자유로운 선택지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외부에서 부과해야 할 인구 조절 장치로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에 그 외부는 식민 지배 당국이었다. 벳시 하트만이 지적했듯, 섬나라의 빈곤을 주시하는 미국 관리들은 푸에르토리코 경제를 훼손시킨 자신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 P330

・의사들은 여전히 내가 난관결찰술을 받을 것을 고집했고, 나는 그저 "싫어요, 안 받겠어요"라고 반복하고 있었어요. 진통이 너무 심했고, 이러다가 죽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똑똑히 아는데, 나는 {단종수술에 동의}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내게 차트를 보여준 간호사가 있었는데, 차트에는 내가 동의했다는 표시가 없었어요. 차트에는 내가 단종수술을 하려는 의사들의 갖은 노력을 거부했다고 적혀 있었어요."
메리 디아스는 공동 원고들이 그랬듯 단종수술을 받은 지몇 주가 지나도록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디아스의 의사는 디아스에게 울지 말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더 낳지 않는 게당신한텐 최선이에요. 멕시코에서는 다들 너무 가난하니까 자식이 없는 게 가장 좋은 거예요." - P374

전미여성기구는 젠더 연관성에 분명 주의를 기울였지만, 지지층 너머에 있는 여성들의 삶에 인종주의 및 계급주의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유주의 폐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모든 여성에게 적용되는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다. 미 보건교육복지부 규정에•대한 전미여성기구의 반대는 단종수술을 적극적으로 받으려고하는 여성과 단종수술의 표적이 된 여성이 그 당시든 역사적으로든 그 수술과 관련해 똑같은 위험에 빠져 있으며 똑같은 보호 - P380

가 필요하다는 믿음, 전자의 불편과 후자가 직면한 위기가 유사하다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는 사실상 불평등한 대우의핵심 원인인 구조적 인종주의 및 경제적 협박을 단순히 "이상理想에서 벗어난 유감스러운 일탈(들)" 8"‘로 취급하는, 자유주의 담론내에서만 가능한 논리였다. 이처럼 인종 및 계급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려는 의지의 부재 그리고 산아제한이 빈곤을 일시적으로완화해줄 것이라는 유구한 믿음(더 크게는 테크노픽스에 대한 몰두를바탕으로 한 믿음)은 강압적인 인구 조절 전술에 대한 자유주의적지지와 새로운 위협 앞에서의 침묵으로 이어졌다. - P381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임신을 차단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인구 조절론자들의 필수 과제였으며, 장애와 출산에 관한 견해들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했다. 더 일반적인의미에서 보자면, 이제 ‘태아의 권리‘뿐만 아니라 아직 임신되지않은 사람의 ‘권리‘까지도 양형의 고려 사항으로 참작하는 사법•적 숙의-마치 둘 중 어느 쪽이든 법적 혹은 물질적 실체를 구성한다는 양-는 하나의 섬뜩한 판례를 남겼다. - P396

테크노픽스는 점점 더 암호화된 방식으로 활용됐고, 자유주의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보수주의자들과 합세해 인종, 계급, 젠더(청소년 여부 및 장애 유무에 의해 더 강화됨)를 우생학 프로젝트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확립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공공 정책 분야의 ‘혁신‘과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양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여성 및 여자아이들이 먼저 하나 이상의 특정 인구통 - P411

계학적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병리화된 다음, 의학적으로위험하고 헌법에 비춰 의심스러운 ‘치료법‘을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당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P412

임신 후 및 산전 개입이 중심적 위치를 갖게 된 것은 비교적최근 현상이다. 20세기 대부분은 실제 혹은 상상된 장애인들 사이에 임신을 아예 막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20세기 초 우생학법령은 발달 지연자, 정신 질환자, 간질 환자, 신체장애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1912년 국제우생학대회에서 제안된 ‘연방차원의실험적법률안‘은 모든 연방 병원 ‘수용자‘, 그중에서도 "결함이 있는이민자 및 유전적 결함이 있는 이민자"에 대한 단종수술을 촉구했다. - P418

미국 우생학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반동주의적 의제와 개혁주의적 의제가 늘 협력한 것은 아니더라도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경우 자유주의는 보수주의, 그리고 심지어 전면적인 파시즘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더 밀고 나아갔다. 여성, 가난한 사람, 인종화된 사람, 장애인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양쪽 모두 온정주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양쪽은 모두 실패했다. 양쪽 모두 미국 국내와 ‘개발도상국‘의 인구 조절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이런 공동의 대의의 기틀을 만들고 조성한 사람이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상 중 한 명인 마거릿 생어다. 물론 생어 혼자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P430

우리가 할 일은 이렇게 자문하는 것뿐이다. "우생학에영향을 받아 이뤄진 입법 때문에 가장 크게 타격을 입게 될 것은 - P449

누구의 몸인가? 이 지형의 물리적, 정치적 결과로 인해 대가를지불한, 또 앞으로도 계속 지불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생학적실천이 이어진 지 100년이 넘도록 이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그 대답을 무시한다면 우리 스스로 위험을 무릅써야만 할 것이다. -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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