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세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구에 제품을 공급하는 경이로운 공장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원자재가 들어오고, 가공된 상품이 전 세계에 살포되었다. 대영제국은 당 - P351

대에 가장 큰 항구와 가장 강력한 금융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영국은 최고 수준의 상업적 전문성을 갖추고, 보험과 운송의 세계적인독점권을 보유했으며, 국제 금 시장을 지배했다. 독일 관세동맹의아버지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는 자유무역이 바로 영국의주요 수출품이라고 지적했다. 관세 보호주의만큼 영국인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전혀 없었고, 가끔 영국인은 그것을, 중국과 벌인 아편전쟁의 경우처럼, 피와 불의 언어로 알렸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은 영국에게 하나의 계시된 진리가 되었는데, 이는 영국이 스스로 가장 강하다고 확신한 순간부터 비로소, 그리고 유럽에서 가장엄격한 보호주의 법률의 보호를 받아 자국의 섬유 산업을 발전시킨이후였다. 아직 산업이 불리한 상황에 있던 초기의 어려운 시기에는가공하지 않은 양털을 수출한 영국 시민은 오른손을 잘리고, 그 행위를 반복하면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 지역의 본당 신부가 먼저 수의가 국내에서 제조된 것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시체의 매장이 금지되었다.  - P352

미국의 자본은 미국 본토보다 라틴아메리카에 더 강하게 집중되어 있다. 몇몇 기업이 대부분의 투자를 통제한다. 그들 기업에게 국가는 수행해야 하는 과제도, 방어해야 하는 깃발도, 개척해야 하는운명도 아니다. 때로는 주권이 불편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는 단지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일 뿐이고, 탐스럽게 먹어야 하는 즙 많은 과일일 뿐이다. 각 나라의 지배 계층에게 국가의 발전은, 반대로, 책임지고 완수해야 할 하나의 사명일까? 거세게 질주하는 제국주의 자본은 무방비 상태인데다, 자신의 역사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는 현지의 산업과 맞닥뜨렸다. 부르주아지는 눈물도 피도 흘리지 않은 채 외국의 침략에 협력했다.  - P406

1950년대 말부터 경제 침체, 금융 불안정, 신용 부족, 그리고국내 시장의 구매력 저하는 국내 산업을 무너뜨리고 국내 산업을 제국주의 기업의 발밑에 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제통화기금은 마법과도 같은 통화 안정화라는 구실만을 내세워, 이해관계에 따라 열병을 질병과 혼동하고 인플레이션을 현재의 구조적 위기와 혼동하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불균형을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화하는정책을 강요한다. 복수 환율과 물물교환 협정을 금지하면서 무역을자유화하고, 국내 신용을 질식할 정도까지 축소하며, 임금을 동결하고, 국가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통화의 실질 가치를 회복하고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이론적인 조치로서 강력한 통화 평가절하를 이 프로그램에 추가한다.실제로, 평가절하는 단지 지배 계층의 이익을 위한국내 자본의 집중을 촉진하고, 가방에 한 움큼의 달러를 담아온외국인들이 국내 기업을 흡수하도록 조장할 뿐이다. - P427

다국적 기업은자본을 축적·증대·집중하기 위해, 기술혁명을 심화하기 위해, 경제를 군사화하기 위해, 그리고 다양한 메커니즘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를 성공적으로 미국화하기 위해 국가를 직접적으로 이용한다. 미국수출입은행, 국제개발처, 그리고 그 밖의 작은 기관들은 세계 자본주의를 미국화하는 데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이 부인할수 없는 지배권을 행사하는 몇몇 표면상의 국제기구 또한 이렇게 운영된다. 국제통화기금과 그 쌍둥이형제인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그리고 미주개발은행은 자신들이 대출을 요청하는 국가가 따라야할 경제 정책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이들 기관은 자국의 중앙은행과 주요 부처를 성공적으로 장악하면서 경제와 금융에 관한 모든 비밀 데이터를 차지하고, 국가의 법률을 작성하고 강제로 시행하며, 정부의 조치를 금지하거나 허가하고, 정부의 방향성을 상세하게 설계한다. - P439

다국적 대기업은 기술적인 수단들을 통제하면서 자연스럽게라틴아메리카 경제의 다른 핵심 장치들도 조종한다. 물론, 다국적 대기업의 본사는 자회사에 가장 혁신적인 기술을 절대 제공하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은 자회사의 독립성을 촉진하지도않는다. 미주개발은행의 의뢰로 《비즈니스 인터내셔널(BusinessInternational)》이 실시한 설문조사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기업의 자회사는 연구와 개발 분야에서 중요한 노력을기울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은 그 같은 목적을 위한 부서를 갖추지 않은 채 극히 드문 경우에만 기술 적응 작업을 수행하는 반면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에 있는 소수 기업은 거의 예외 없이 제한적인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P471

라틴아메리카의 재건을 향한 여정에는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야 할 썩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일은 바로 빼앗기고, 짓밟히고, 저주받은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적 대의는 무엇보다도사회적 대의다. 라틴아메리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인들을 나라별로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란과변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운명은 신의 무릎 위에 놓여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지만, 진실은 인간의 의식 위에서 절박한 도전처럼 작동하고 있다. - P500

과거를 숭배하는 것은 항상 반동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우파는 죽은 이를 선호하기 때문에 과거를 선택하는데, 죽음은 고요한 세계, 멈춰버린 시간이다. 세습을 통해 자신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권력자들은 향수를 조장한다. 역사는 박물관을 둘러보듯이 학습되지만, 그같은 미라들의 전시는 속임수다. 그들은 우리에게 현재를 속이듯 과거도 속이고, 현실을 가린다. 억압받는 자는 억압하는 자가 만들어낸, 자신과 무관하고, 박제되어 있으며, 메마른 기억을 자기 것으로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다. 억압받는 자는 자신의 삶이 아닌 삶을 유일하게 가능한 것인 양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 P504

라틴아메리카가 수출하는 상품 대부분의 가격은 기술, 무역, 투자, 금융 자원을 독점한 국가들로부터 수입하는 상품 가격에 비해 가차 없이 하락하고 있다. 그 격차를 메우고 외국 자본에대한 채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가격에서 손해 본 것을 물량으로 보충할 필요가 있다.  - P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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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 역사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패배는항상 다른 자들의 승리에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의 부는 다른 자들, 즉 제국들과 그들 제국의 토착 감독자들의 번영을 부양하기 위해 항상 우리의 빈곤을 창출해 왔다.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연금술 속에서금은 고철로 변하고, 식량은 독으로 변했다. 포토시, 사카테카스, 오루 프레투‘는, 귀금속으로 이루어진 번영의 절정에서 빈 광산 갱도 - P13

의 깊은 구멍으로 곤두박질쳤고, 칠레의 초석(石) 지대와 아마존고무 숲도 결국 파멸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브라질 북동부의 설탕생산지, 아르헨티나의 케브라초‘ 숲이나 마라카이보 호수‘의 석유를 생산하는 일부 마을은 자연이 부여하고 제국주의가 빼앗아 가는부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 권력의 중심부에 물을 대주는 비가그 체제의 광범위한 주변 지역을 질식시킨다. 마찬가지로, 그리고대칭적으로, 국내적으로는 지배하고, 국외적으로는 지배당하는우리 지배 계층의 복지는 짐을 나르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강요받는 우리 대중의 저주다. - P14

유럽은 금과 은이 필요했다. 유통 수단이 끊임없이 증가했유유럽은 금과 은이 필요했다. 유통 수단이 끊임없이 증가했고, 자본주의가 태동할 때 그 움직임을 부양할 필요가 있었다. 부르주아지들은 도시를 장악했고, 은행을 설립했고, 상품을 생산하고 교환했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금, 은, 설탕의 경우, 소비보다 공급이 많은 식민지 경제는 유럽 시장의 필요에 부응하고, 그 시장에봉사하려고 구축되었다. 16세기의 장기간에 걸쳐, 라틴아메리카 귀금속의 수출액은 주로 노예, 소금, 포도주, 기름, 무기, 모직 그리고사치품으로 구성된 수입액의 네 배에 달했다. 그 자원들은 신흥 유럽 국가들이 축적하도록 유출되었다. 이는 개척자들이 수행한 근본적인 사명이었는데, 물론 그들은 빈사 상태의 인디오들에게 복음서를 채찍만큼 자주 적용했다. 이베로아메리카 식민지들의 경제 구조는 외국 시장에 종속되면서 탄생했고, 결과적으로 소득과 권력은수출 부문을 중심으로 집중되었다. - P68

식민지 플랜테이션은 외국의 수요에 종속되어 있고, 많은 경우 외국으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았는데, 오늘날의 라티푼디움은 그 플랜테이션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었다. 이 라티푼디움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병목 현상들 가운데 하나고,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소외와 빈곤의 주요 요인들 가운데 하나다. 잉여 노동력을 증대시킬 정도로 충분히 기계화된 현재의 라티푼디움은 풍부하게 비축된 값싼 노동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제 라티푼디움은 아프리카 노예의 수입에도 원주민의 "엔코미엔다"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라티푼디움은 아주 보잘것없는 일당을 주거나, 용역에대한 보수를 물품으로 지급하거나, 노동자가 땅뙈기를 사용하는 대가로 무상 노동을 제공받기만 하면 충분하다. 라티푼디움은 자신의확장으로 인해 생겨난 미니푼디움의 증가, 그리고 굶주림에 내몰린노동자들이 각지에서 잇달아 이루어지는 수확의 주기에 따라 국내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에 기대어 생존한다. - P126

라틴아메리카 열대의 설탕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그리고 미국의 산업 발전을 위한 자본축적에도 커다란 자극을 주고, 동시에 브라질 북동부 및 카리브해섬들의 경제를 불구로 만들고, 아프리카의 역사적 파멸을 확정했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삼각 무역에서 설탕 플랜테이션으로 향하는 노예의 무역이 대들보 역할을 했다.  - P160

커피는 생산자보다 소비자에게 훨씬 많은 혜택을 준다. 커피는 미국과 유럽에서 소득과 고용을 창출하고 대규모 자본을 움직인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임금을 지불하고, 미국을 위해 봉사하는 나라들의 경제적 왜곡을 심화한다. 미국에서는 커피가 60만 명 이상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커피를 사서 배급하고 판매하는 미국 사람들은 플랜테이션에서 파종하고 원두를 수확하는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 혹은아이티 사람들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는다. 한편 유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위원회는, 믿을 수 없게 보이겠지만, 커피가 생산국의 손에 남기는 부보다 유럽 여러 나라의 국고에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고 보고한다.  - P202

마사 사발라(Maza Zavala)의 적절한 표현을 빌리자면 굶주리는 자는 늘리지만, 빵은 늘리지 않는다. 라티푼디움은 노동력을 흡수하는 대신 쫓아낸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촌 노동자는 40년 만에20% 이상 감소했다. 기존의 처방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급속한도시화, 즉 농촌 인구의 대규모 이동을 진보의 지표라고 단언하는기술관료가 넘쳐난다. 그 체제가 쉴 새 없이 토해내는 실업자가 실제로 도시로 몰려들어 도시의 교외 지역을 확장시킨다. 그러나 공장이 현대화되면서 실업자를 배출하기도 하지만, 이 같은 미숙련 잉여노동력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농촌의 기술 발전은 발생할 때마다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대지주가 자신의 토지를 개발하는 데 더 현대적인 수단을 도입하면서 그의 수익은 증가하지만, 더많은 노동력이 일거리를 잃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격차가더 크게 벌어진다.  - P253

석유는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서 가장 독점적인 부(富)다. 거대 석유회사들이 전 세계적으로 행사하는 정치적 권력을 일반기업가들은 누릴 수 없다. 스탠더드 오일과 셸(Shell)은 왕과 대통령을 세우고 무너뜨리며, 궁정의 음모와 쿠데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수많은 장군, 장관, 제임스 본드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모든 지역과 모든 언어권에서 전쟁과 평화의 진행을 결정한다. 뉴 저지의스탠더드 오일 사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큰 산업 기업이다. 미국 밖에서는 로열 더치 셸(Royal Dutch Shell)보다 더 강력한 제조 분야 기업이 없다. 자회사는 원유를 계열사에 판매하고, 계열사는 이를 정제한 연료를 각 지점에 판매해 유통한다. 그 카르텔 내부의 전체순환 시스템 밖으로는 피 한 방울 새어 나가지 않고, 그 카르텔은또한 송유관과 7대양을 항해하는 유조선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납부하는 세금은 줄이고 획득하는 수익은 늘리기 위해 석유 가격이전 세계적으로 조작되고, 원유 가격은 항상 정제유 가격보다 더 적게 상승한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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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웃고 미소를 짓는 것은 행복하다는 표시이다. 분명 이상한 옷을 입고있는 우리는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순박한 원인 제공자가되었다. 그러나 이 ‘자유의 나라‘ 후손들이 불손하게도 우리를 보려고 발광하는 그 모습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다."
윤치호 일기 5월 9일 - P158

런던은 정치가 융성하니,
군주와 국민이 서로 신뢰하네.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고,
천년 세월 이름난 고을 중 으뜸이었네.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이라.
여기 와서 아름다운 풍속 보노라니,
꽃과 달이 온 도성에 가득하네. - P165

길가에 기병 보병 두 줄로 늘어서니,
창검은 빽빽하되 소리 없이 고요하네.
금빛 수놓은 의관 갖춰 일천 관원 지나는데,
여섯 필 말이 끄는 마차엔 훈척이 앉았네.

지체 높으신 황제도 되려 군대에 편성되니부대의 푸른 군복에 말 타고 가시도다.
손 올려 눈썹에 붙이고 천천히 고삐 당기니,
온 거리에선 일제히 ‘우라‘를 외치네.
- P189

특사 가운데 지저분한 이빨 그들 중 몇몇과 길게 땋은 변발을 한 중국인들은 수놓은 훌륭한 비단옷을 입고 있지만 안쓰러운 모습이다. 유럽식 - P197

으로 차려입은 일본인들은 동양 전체에서 가장 문명화되고 부러움을 사는나라의 대표처럼 행동했다. 페르시아는 매우 말쑥한 제복을 입은 잘생긴 사람이 대표로 왔다. 최근에 그 나라의 왕이 피살되고, 그 나라 정부가 친영국파와 친러시아파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인지 그에게 일종의 동료 의식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비참한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는 더 행복한34나라에서 온 사절들의 경멸과 조소의 대상일 터이다.""
-「윤치호 일기 5월 21일 - P198

러시아의 법에 따르면, 대관예식은 예배당에서 행하며 모자를 벗지 않으면 예배당에 들어가는 것이 허가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및 청나라, 튀르키예, 페르시아의 사신은 모두 모자를 벗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하고 예배당밖의 누각 위에서 지켜보았다. 예배당은 궁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환구일록」 5월 26일 - P209

사방엔 사람의 물결 넘실거리고,
기뻐하는 소리 우레처럼 울리네.
저마다 내려주신 물건 받자오니,
떡과 고기에 술 여러 잔이라.
황실에 대관식 경사 있으니,
오늘 이런 잔치 열었도다.
악기 소리는 천지에 떠들썩하고,
배우는 몇 차례나 공연하는구나.
이것이 곧 백성과 더불어 즐김이요,
위아래가 성심(心)을 회복함이라.
대포식 잔치를 예전에 들었더니,
서방에 와서야 비로소 보는구나. - P230

사열대 앞에 말을 멈추고 손들어 경례하니,
여러 부대 군악 울리며 차례로 다가오네.
보병대가 앞에 서고 공병대는 뒤에 서서,
일시에 고개 돌려 사열대를 우러러보네.
여러 기병대는 더욱 날래고 용감하니,
황금빛 투구 위에 매의 깃털 나부끼네.
복장은 각기 말과 같은 빛깔로 갖췄으니,
푸르고 희고 검고 붉은 색 방위 따라 안배했네.
이 나라는 병력이 유럽에서 으뜸이라,
국토 널리 개척하여 태평을 이루었네.
이미 진나라를 본받아 더욱 부강(强)해졌고,
상하가 한마음으로 훌륭한 치세() 이루었네.
아, 우리 군사 일 논함에 무엇을 구할까.
다만 눈으로 본 것을 기록에 올릴 뿐이네.
취하고 나서는 되려 호기로워지나니,
칼 짚고 하늘 보며 헛되이 한숨만 쉬네. - P264

서양 풍속에는 저녁을 먹고 나면 남녀가 탈것을 타거나 걸어서 여러 곳에나가 놀면서 음악도 듣고 노래도 듣다가 밤이 깊어지면 집에 돌아온다고 한다. 매일매일 이렇게 하니, 이를 ‘운동법‘이라 한다. 어떤 이가 가서 구경하자고 거듭 청하기에, "우리나라 법에 국상(國) 때는 악기 소리를 그치고 가무를 하지 않는다. 이제 국복(國服)을 입은 처지이니, 그동안 경축하는 모임이나 공적인 자리에는 어쩔 수 없이 참석했으되 사적으로 즐기고 노는 데를어찌 감히 가겠는가?"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이 옳게 여겨 다시는 번거롭게하지 않았다.
-「환구일록』 6월 13일 - P303

표트르 대제의 옛집에 가니, 실내는 겨우 무릎을 용납할 정도요, 외양은자그마하고 지붕에는 모두 나무껍질을 올렸다. 그 다스림이 나라를 이롭게 하는 데서는 뛰어나고 집을 짓는 데서는 모자랐으니, 참으로 검약한영주이다. - P316

조포창(대포 공장)에 도착했는데, 기계의 굉장함은 이제까지본 곳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크고 작은 대포와 수뢰포가 헤아릴 수없이 많은데, 큰 것은 길이 8~9파에 둘레가 3파이며, 탄환의 크기는 1장 1포였으며 포탄 한 발은 50리까지 날아간다. 이와 같은 것은 1년에겨우 1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매일 둘러보건대 물과 땅에서 사용할 무기를 끊임없이 만드는데 세계 각국도 마땅히 이와 같을 것이니, 이 무기들이 장차 어디에 쓰이겠는가? 하늘이 생을 편안케 하려 한다면, 반드시 무기를 모조리 녹여 농기구로 만드는 날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환구일록 7월 18일 - P360

푸릇푸릇 나무는 겹겹이 늘어섰고,
양쪽 강변 누대엔 서늘한 기운 모였네.
한뼘 석양이 가로질러 와서 비추니,
온 도읍의 유리창마다 등불 켠 듯하네.

무더운 여름이 가을처럼 서늘하니,
들엔 북풍이 불어오네.
오로지 이때 기이한 절경 나타나니,
밤에도 누대 아래엔 석양이 붉었네. - P400

생각 따라 의경이 얻어지고,
의경 따라 마음이 옮겨지네.
때론 잊었던 것 깨닫기도 하고,
때론 옛일을 쫓을 수도 있었네.
앉으나 누우나 손에서 놓지 못하니,
점점 재미가 늘어가는구나.
나의 유람 멀고도 장대하니,
보고 들은 것 모두 기이하네.
세 대륙에 사만 리 거치며,
풍속 또한 물어보았네.
쓰고 쓰면서 운을 맞추니,
약간의 시를 얻을 수 있었네.
이번 길에 이 책 없었다면,
한갓 몰자비나 되었겠지.
글자마다 막힌 마음 틔워주니,
다른 스승 또 있어야겠나.
아득히 그때 말씀 생각해 보니,
추옹은 나를 속이지 않으셨구나. - P438

열기구 안에 앉으니,
하늘로 오르더니 서서히 나아가네.
바람 타고 능히 오르내리고,
번개 품고 좌우로 오갈 수 있네.
삼천세계에서 마음껏 노닐고,
구만리 길을 단숨에 날아오르네.
하늘 나는 신선이 일찍이 약속하더니,
봉래산, 영주산으로 나를 맞아들이네. - P483

철로 끊어진 사천여 리,
높으락낮으락 산길로 마차를 모네.
부딪히고 흔들려도 면할 방도 없으니,
지난날 요동 벌판 지날 때 같구나.

험준한 고개 벼랑 모두 평평하게 깎았으니,
네 마리 말은 쉬지 않고 수레 끌고 가는구나.
기찻길 이어 만든 길 벽지까지 통하고,
잦은 우편물 먼 데까지 보내네.
아름드리 늙은 나무는 나이를 모르겠고,
절로 핀 들꽃은 이름을 알 수 없네.
밤낮으로 달려 몹시도 지루하면,
찬바람 속에 말방울 소리 근심스레 듣노라. - P500

맑고 맑은 바이칼 호수 백리 길,
돛단배로 무사히 건너고 산길로 들어가네.
가을 풍경 즐기며 마차 천천히 가니,
이내 몸은 단풍 물든 어촌 그림 속에 있도다. - P511

예전 우리 숙종 임금 때[청나라 강희 연간]에 청나라에서 오랄총관 목극등(穆克登)을 파견하여 북쪽 경계를 조사하여정하게 했는데, 그때 내 선조이신 광천공 부자께서이 일에 참여하셨다. 무산으로부터 800여 리를 돌아다니며토문강의 발원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장백산 정상에 올라‘큰‘을 두루 살펴보고서 경계를 상세히 정하고, 물이 나뉘는 곳에 석비(石碑)를 세우고 그 지형을 그려서 돌아와 조 - P521

정에 바치셨다. 숙종 임금께서 어제시(御製詩)를 지어 "그림으로 보아도 도리어 웅장한데, 산을 오르면 기상이 어떠하랴. 지난번 국경 정하던 근심이, 이제부터 저절로 없어지리"
라고 하시고, 아울러 은혜로운 상도 내리셨다. 이제 내가 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오니, 장백산이 손으로 가리킬 수 있는 곳에 있다. 그렇지만 길이 아득히 멀 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올라가서 선조의 유적을 찾아뵐 수도 없으니, 도리어 너무나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 P522

슬프다. 저 수만여 명 유민이여.
하루하루 품팔이를 편히 여기는구나.
탐관오리 학정에서 달아난다고 해도,
낯선 땅 황무지에서 차마 어찌 지내라.
망건 상투 보존하며 고향 그리워하건만,
성명을 연달아 적어 새 문서에 올리네.
응당 조정에서 쇄환의 명 내릴지니,
나라 향한 충성의 마음 부디 변치 마시오. - 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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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철로를 타고 나는 듯이 달리는데,
조금도 어긋남 없이 마음대로 가고 멈추네.
누가 이치에 통달하여 이런 방법 알아냈던가.
차 한 잎 끓이다가 신묘한 기구 만들어냈네[옛날에 영국인 와트가 주전자에 물이 끓자 뚜껑이 들썩거리는 것을보고 이를 미루어 이치를 깨달아서 비로소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바람 불고 번개 치듯 험준한 산을 오르더니,
수천수만 강과 산을 눈 깜짝할 사이 지나네.
비장방(房)의 축지법은 도리어 번다하더니,
이 기차는 열흘 걸릴 길을 찰나에 가는구나. - P141

8. 웃고 미소를 짓는 것은 행복하다는 표시이다. 분명 이상한 옷을 입고있는 우리는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순박한 원인 제공자가되었다. 그러나 이 ‘자유의 나라‘ 후손들이 불손하게도 우리를 보려고 발광하는 그 모습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다.
-「윤치호 일기 5월 9일 - P158

런던은 정치가 융성하니,
군주와 국민이 서로 신뢰하네.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고,
천년 세월 이름난 고을 중 으뜸이었네.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이라.
여기 와서 아름다운 풍속 보노라니,
꽃과 달이 온 도성에 가득하네. - P165

망국은 과거 역사에 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니, 문학의 소재로도 널리 다루어졌다. 길재가 고려의 옛 도읍을 둘러보며 읊은 시조의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구절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망국의 문제를 다룬 시구 가운데 두보(杜甫)의 <춘망(春望)>에 등장하는"나라는 깨어졌으나 산하는 그대로 있고, 장안엔 봄이 오니 초목만 깊 - P180

어졌네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라는 구절은 동아시아 지식인에게 특별히 익숙했을 것이다.  - P180

망한 나라의 백성이 벼와 기장에서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착상은 기자의 <맥수가>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궁궐과 저녁 종은 그대로라고하더라도 유민들은 무언가 달라진 풍경을 곡식이 심어진 들판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구체적인 사물을 지칭하지는 못하더라도 유 - P181

민들이 기자의 고사에서 유래한 ‘맥수지탄‘의 감정을 느끼기마련이라는 의미로 "화서"를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기자가 은나라의 도읍을 지나면서 옛 궁궐이 폐허만 남아 보리밭이 된 풍경을 보고 탄식하여 불렀다는 <맥수가>는 두보의 시구만큼이나 김득련이 폴란드를 읊는 데 영향을 주었을 법도 하다.  - P182

행렬은 두 줄로 늘어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갔다. 이 장면은 내가 이제까지 본 어떤 장면보다 더 장관이었다. 군인, 관리,
수행원, 말, 마차, 그리고 모든 것이 거의 금은으로 덮인 것처럼 보였다. 황제는 홀로 간편한 양식의 옷을 입고 말 등에 반듯하게 올라타고 있었다. 조선 국왕의 모습을 추하게 하는 마부 · 내시 · 하인 같은 떨거지는 없었다. 러시아를 다스리는 이 군주의 주변에는 그 같은 역겨운 존재들이 하나도 없다. 비단옷을 입은 황후는 홀로 황금마차를 타고 가면서 길 양쪽에서 환호하는 수많은 군중에게 머리를 끄떡여 인사했다. 이 모든 행차는 목표지점에도달할 때까지 한 시간 걸렸다.
특사 가운데 지저분한 이빨 그들 중 몇몇과 길게 땋은 변발을 한 중국인들은 수놓은 훌륭한 비단옷을 입고 있지만 안쓰러운 모습이다. 유럽식 - P197

으로 차려입은 일본인들은 동양 전체에서 가장 문명화되고 부러움을 사는나라의 대표처럼 행동했다. 페르시아는 매우 말쑥한 제복을 입은 잘생긴 사람이 대표로 왔다. 최근에 그 나라의 왕이 피살되고, 그 나라 정부가 친영국파와 친러시아파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인지 그에게 일종의 동료 의식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비참한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는 더 행복한나라에서 온 사절들의 경멸과 조소의 대상일 터이다."
-「윤치호 일기 5월 21일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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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申)"는 상하이의 별칭이다. 상하이는 전국시대 춘신군(春)의 봉지였기에 ‘신(申)‘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며, 진나라 때 사용된 낚시 도구인 ‘호(扈)‘와 연관된 우쑹강 하류의 별칭 ‘호독(扈瀆)‘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인 ‘호(滬)‘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송나라 말기에 상해진(上海鎭)이 설치되었으니, ‘신호‘는 더 이른 시기의 지명인 셈이다.
상하이는 1843년에 정식으로 개항되는데, 이는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1842년 난징 조약에 5개의 개항장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결과였다. - P96

바로 시베리아[西伯利亞]를 거쳐서 러시아 수도에 들어간다면 노정은 가까울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처럼 떠나는 대사의 일행이 지나는 길의 산천과 구미)의 국경을 겉으로라도 볼 겸하여 상하이에서 북미를 거쳐 서유럽으로부터 러시아 수도에 들어가는 길을 취하게 되었다. 4,000년 이래 갇혀 있던 조선의 깃발이 태평양 만리 창해에 흩날리고, 캐나다(加陀, 미국[合]에 흩날리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의 수도를 지나 독일의 국경을 횡단하고 러시아의 관문에 들어서게 될 제 과연 역사의 변천과 세파(世)의추이에 금석현수(今昔懸의 감(感)이 없을 수 없었다.
- <별건곤> 제6호(1927. 4.) - P109

정오에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그저께 요코하마에 정박하니, 수려한산천, 견고하게 쌓은 부두, 높고 큰 건물, 잘 정비된 거리, 끊임없이 이어진전등과 가스등이 사람의 눈앞을 갑자기 환하게 했다. 동경에 들어가자 배치된 모든 것이 참으로 오묘한데, 정밀함에도 더욱 정밀하기를 구하고 날로또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이는 모두 이 나라 사람들이 서양의 제도를 근면하게 배워서 이처럼 개명된 것이요, 남의 손을 빌린 것이 아니다."
-『환구일록』 4월 17일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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