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체계 혹은 다르샤나(논증) 가운데 여섯 체계는 크게 부각되어 브라만의 권위를 인정하는 모든 힌두 사상가는 곧 이 학파들 중 이런저런 학파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 여섯 학파는 모두 힌두 사상의 토대인 특정한 가정을 받아들인다. 베다는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라는 가정과, 추론은 실재와 진리에 이르게 하는 지침으로는, 오랫동안 가르침에 복종하며 수행하여 영적인 감수성과민감성을 제대로 갖춘 개인의 직접적인 지각과 감각보다 신뢰성이 떨어진다는가정, 지식과 철학의 목적은 세상을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해방되려는 것이라는 가정, 사고의 목적은 욕망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욕망이 좌절됨으로 인해 나타나는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라는 가정이 그것이다. 사람들이 야망과 투쟁, 부, 진보, 성공에 싫증이 나면 다음과 같은 철학들을 찾는다. - P202

힌두 철학은 유럽의 철학이 끝나는 곳, 즉 지식의 본성과 이성의 한계를탐구하면서 시작한다. 그 출발점은 탈레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자연학이 아니라로크(Locke)와 칸트의 인식론이다. 힌두 철학에 의하면 정신은 가장 직접적으로 알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은 오직 정신을 통해서만 그리고 직접적으로만 알려진다. 그러므로 정신은 물질로 해소되지 않는다. 힌두 철학은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지만 우리의 감각이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과학은 도표로 표현된 무지이며 마야에 속한다. 과학은 항상변하는 개념들과 말로 세상의 원리를 표현하지만 이성은 그 세상의 일부일 뿐이며 끝없는 바다를 떠도는 해류일 뿐이다. 심지어 이성을 지닌 인간조차 환영인 마야일 뿐이다. - P225

천성적으로 시적인 심성을 타고나는 힌두인이 볼 때는 기록할 만한 것은 모두 시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자연히 시적인 형태로 이끌리게 된다. 힌두인은 문학이란 큰 소리로 낭독되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자신의 작품도 기록된 형태보다는 구전 형태로 유포되어 존속하게 될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낭송하고 암기하기 좋은 시적 혹은 경구적 형태를 부여했다. 그 결과 인도의 거의 모든 문헌 - P259

은 시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과학과 의학, 법, 예술 분야의 글도 운율이나 리듬 혹은 그 두 가지 모두의 형태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문법과 사전까지도 시의 형태로 바뀌었다. 우화와 역사도 서구의 경우에는 산문 형태로만족하지만 인도에서는 선율이 아름다운 시의 형태로 발견된다. - P260

인도 건축을 간단히 뒤돌아보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힌두적인 것과이슬람적인 것 두 개의 주제를 발견하게 된다. 인도의 건축 교향곡은 이 두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부분의 유명한 교향곡에서 처음에 망치를 치는 것 같은 소리로 깜짝 놀라게 한 직후 무한히 섬세한 선율이 이어지는 것처럼, 인도의 건축에서도 힌두의 천재들이 보드가야, 부바네슈와, 마두라, 탄조르에 세워 놓은 대단히 힘 있는 기념물들에 이어서 파트푸르와 델리, 아그라에서우아한 멜로디가 등장한다. 그리고 두 개의 주제가 정교하게 뒤섞여 끝까지 이어진다. 무굴 제국에 대해서는 거인들처럼 건축하여 보석 세공인처럼 마무리짓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인도 건축에 일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나을 것이다. 힌두인은 거인처럼 건축하여 보석 세공인처럼 마무리 짓는다고말이다. - P303

인도의 영혼 자체인 종교적 신념을잃어버린 서구화된 힌두인들이 미망에서 깨어나 슬픈 모습으로 조국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신들이 죽은 모습으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 후에는 유토피아가 천국의 자리를 채웠고 민주주의가 열반의 대체물이 되었으며 자유가신을 대신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18세기 후반부에 진행된 일이 동양에서는 이제 진행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사상은 느리게 발전했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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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시대의 1세기에는 투르크족과 비슷한 중앙아시아 부족인 쿠샨족이 카불을 점령한 후 그곳을 수도로 삼고는 인도 북서부와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시켰다. 그들이 낳은 가장 위대한 왕 카니슈카의 치세에는 예술과 학문이 발전했다. 그레코불교(Greco-Buddhist)의 조각은 불교의 가장 위대한 일부 걸작들을 낳고, 페샤와르와 탁실라, 마투라에는 훌륭한 건물들이 세워졌으며, 차라카는 의학을 발전시켰다. 나가르주나와 아슈바고샤는 마하야나(Mahayana, 대승) 불교의 토대들을 놓았는데, 이 불교는 후에 가우타마가중국과 일본을 얻도록 돕게 된다. 카니슈카는 많은 종교에 관용을 베풀며 다양한 신들을 실험한 후에 결국은 신화론적인 새로운 불교를 선택했다. 신화론적인 새로운 불교란 부처를 신으로 삼고 보디사트바와 아르하트로 하늘을 가득채운 불교를 말한다. - P92

이 지배자들은 능력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으며 그들의 추종자들도 용맹한 용기와 근면함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그들이압도적으로 수가 많은 적대적인 민족들 속에서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활동적인 면에서는 군국주의적이지만 금욕적인 단일신론이라는 면에서는 인도의 어떤 대중 종교보다 훨씬 뛰어난 종교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힌두 종교들의 대중적인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함으로써자신들의 종교가 지닌 흡인력을 감추었고 또 그를 통해 힌두의 정신세계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갔다. 정복욕에 목마른 이런 폭군들 중에는 능력과 문화를 겸비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술을 후원했으며 (일반적으로 힌두적 배경 - P106

을 지닌) 예술가들과 장인들을 고용하여 자신들을 위해 이슬람 사원과 무덤을건축하게 했다. 그들 중에는 학자들도 있어서 역사가들 및 과학자들과 대화를즐기기도 했다. - P107

그는 총회를 소집하고 주변 도시들에 있는 학계의 거장들과 군사령관들을 모두 초청했다. 이 초대에 리돌포(Ridolfo) 신부만 제외되었는데, 이 신부에게서는 왕의 불경스러운 목적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 외에는 다른 것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을 모두 자기 앞으로 불러 모아 놓고는 영악하고 무례하게 말했다.
"제국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의 머리이다. 그러므로 그 지체들이 편을 갈라 서로다투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 그런데 종교의 수만큼 많은 파벌이 등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그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 방식은 모든 종교가 ‘모두 하나‘가 되되, 어떤 종교에서도 선한 것은 하나도 잃지 않는반면에 어떤 것을 얻든 다른 종교도 나아지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런 방식이라면신에게도 영광이 될 것이고, 백성들에게도 평화를 안겨 주고 제국도 안전하게 될 것이다. " - P118

어째서 위대한 인물들에게서는 평범한 후손들이 나오는 경우가 그토록많을까? 그들을 만들어 낸 유전인자들의 도박, 즉 조상들의 특질들과 생물학적가능성들을 혼합하는 도박은 확률 게임일 뿐이어서 반복되길 기대할 수 없기때문일까? 아니면 천재는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힘과 사상을 완전히 소진하여 상속자들에게는 묽어진 피만 남기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후손들은안락함 때문에 쇠약해지고, 어렸을 때 행운을 얻었기 때문에 야망과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자극을 박탈당했기 때문인가? - P120

이 제도는 베다 시대부터 점점 더 엄격해지고 복잡해졌다. 제도들은 본성상세월이 흐르면서 경직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 질서가 불안정하고 이방 민족들과 종교들이 인도를 유린하게 되자, 카스트가 이슬람인과 힌두인의피가 섞이는 것을 막는 보루가 되어 위상이 강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베다시대에는 카스트가 베르나(색깔)로 구분되었으나 중세 인도에서는 자티(출생)로 구분되었다. 카스트 제도의 요점은 두 가지였다. 신분을 세습시키고 다르마, 즉 자신의 타고난 카스트에 따르는 전통적인 의무들과 직종들을 받아들이게 - P136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 P137

베다 시대 이후에 여자의 위상이 낮아지게 된 것은 이슬람 사상이 유입된 것과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결혼한 여자를 격리시키는) "푸르다(purdah)"(장막)관습은 페르시아인 및 이슬람인과 함께 인도로 들어왔으므로 남부보다는 북부에서 더 강하다. 힌두인 남편들은 아내를 이슬람인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푸르다" 체계를 매우 엄격하게 발전시켰으므로, 예의 바른 여자라면 자기 남편과아들에게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으며 공공장소에서는 두꺼운 베일을 써야만이동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의사가 여자를 진찰할 때도 휘장을 통해서 했다. 145 일부 집단에서는 타인 아내의 안부를 묻거나 남의 집에 손님으로 갔을때 그 집 여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좋은 예절이 아니었다. - P149

운명은 인간이 자신의 운을 결정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함축한다. 반면에카르마는 인간을 (자신의 모든 생들을 하나의 전체로 보고) 자기 운명을 만들어가는 주체로 만든다. 또한 극락과 지옥으로 카르마의 효력이나 출생과 죽음의 사슬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영혼은 몸이 죽은 후에 특별한 형벌을 받기 위해 지옥으로 가거나 신속하고 특별한 상을 받기 위해 극락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옥에서 영원히 머무는 영혼은 없으며 극락에서 영원히 머무는 영혼도 극소수다. 극락이나 지옥으로 들어가는 거의 모든 영혼은 조만간에 이 땅으로 돌 - P176

아와 새로운 환생들 속에서 카르마에 따라 살아야 한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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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다 시대에는 아직 대중적인 신조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인도의 아리아인들 역시 페르시아의 아리아인들처럼 개인의 불멸성을 믿는 단순한 신앙을 받아들였다. 영혼은 죽은 후에는 영원한 형벌이나 영원한 행복으로 들어간다. 영혼은 바루나에게 떠밀려 반은 하데스며 반은 지옥인 어두운 심연으로 떨어지거나, 야마(Yama)에게 들림을 받아 극락으로 들어간다. 극락에서는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완벽해지고 끝없이 계속된다. "인간은 곡식처럼 썩어진다. 그러나 곡식처럼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라고 카타우파니샤드는 말했다. - P30

이성은 자기 고유의 영역이 있으며, 제반 관계와 사물들을 다룰 때는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나 영원한 것이나 무한한 것, 4원소의 실재적인 것 앞에서는 얼마나 무기력한가! 겉으로 보이는 모든 현상들을 받쳐 주고 있고 또 의식 세계로 표출되고 있으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조용한 실재를대할 때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이런 감각들과 이성이 아니라 깨달아 알 수있는 모종의 다른 기관이다. "(세상의 근본 원리인) 아트만은 배운다고 얻어지는것도 아니며 책에서 배운 많은 지식이나 천재성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브라만은 배움을 멀리하고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 좋다. 브라만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혀를 피곤하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 최고의 깨달음은 스피노자(Spinoza)식으로 말하면 직접 감지하여 깨닫는 것이며 직접통찰하여 깨닫는 것이다. 베르그송(Bergson)식으로 말하자면, 고의로 영원한 감각의 출입구들을 최대한 닫아 버린 정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직관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 P40

‘예물을 준비하고 참회하라. 세속적인 재물을 버리고 기도하라!‘
라마, 내세는 없습니다. 다 인간들의 헛된 희망이고 가르침일 뿐입니다.
현세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가련하고 헛된 미망을 버리십시오." - P49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출생이란 모든 악의 근원이다. 하지만 출생은 끝없이 되풀이되며, 인간이 겪는 슬픔의 강을 계속 채운다. 어째서 출생은 중단되지 않는 것인가?? 만일 출생이 중단될 수 있다면 카르마의 법이, 영혼이 전생에서 지은 악을 속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환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변함없이 인내하며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는 온전히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만일 생겨났다가 소멸 - P62

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 없이 영원한 것들에만 생각을 묶어 둘 수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환생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의 악의 샘은 마르게 될 것이다. 만일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모두 다스리고 선행만 추구한다면 인류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가장 나쁜 미망인 개별성이 극복되어 그 영혼은 마침내 무의식 세계의 무한성으로 바뀔 것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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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가 등장하기 전의 유대인들은 야훼를 모든 부족의 유일한 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모든 히브리인들의 유일한 신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모압인들에게는그들의 신인 그모스가 있었으며, 나오미는 룻이 계속 그모스를 충실하게 섬겨도 좋다고 생각했다. 바알세붑은 에글론의 신이었으며, 밀곰은 암몬의 신이었다. 이 민족들은 경제적 정치적 고립주의를 택하여 자연스럽게 그들의 신학적 독립성을 낳았던 것이다. 모세는 그의 유명한 노래에서 "야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며, 솔로몬은 "우리의 신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탐무즈는식자층을 제외한 모든 유대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뿐만 아니라 그를 섬기는 의식이한때 유대에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에스겔은 탐무즈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의적인 울음소리를 신전에서도 들을 수 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유대인 부족들은 이처럼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심지어 예레미야의 시대에도 그중 다수는 자체의 신들을 갖고 있었다.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그러므로 이 음울한 예언자는 그의 백성들이 바알과 몰록을 섬기는 일에 계속 저항한다. 다윗과 솔로몬의 치세에 정치적 통일성이 점점 견고해지고 예루살렘의 신전이 종교의 중심지로자리를 잡아 가면서 신학이 역사와 정치를 반영하게 되자, 야훼는 유대인들의 유일한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언자들이 등장할 때까지는 이런 단일신교(henotheism)를 넘어 유일신교(monothcism)의 방향으로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히브리 - P506

아모스와 이사야는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의 모태이며, 가난과 전쟁이 인간의 형제애와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없는 유토피아의 물줄기가 흘러나온 원천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현세적인 권력을 다시 확립해 주고, 무산자들이 인류를 통치하는 독재 시대를 열어 줄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의 초기 개념을형성해 준 근거다. 이사야와 아모스는 호전적인 시대에 단순성과 온유함, 협력과 우정이라는 덕목을 높이기 시작했으며, 예수는 이런 덕목들을 자신이 내세우는 신조의 기본 요소로 삼았다. 그들은 "만군(萬軍)의 주"를 "사랑의 주"로다시 만들어 내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한 최초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야훼를내세워 인도주의를 펼쳤다. 19세기의 급진론자들이 그리스도를 내세워 사회주의를 펼쳤던 것처럼 말이다. - P515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법전은유대인의 생활을 묘사해 놓은 기록이라기보다는 율법(사실상 "신관들의 유토피아"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다른 법전들처럼 그 법전 역시 어기는 일이 발생할 경우에는 대단히 존중되었고 위반되는 경우마다 새로운 칭송을 받았다. 그법전은 사람들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유대인들이 2000년간 유랑 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에게 무형의 정신적 국가, 즉 하이네 (Heine)가 말한 것처럼 "이동식 조국"을 주었다. 온갖 이산(離)을 겪었어도 그들에게 통일성을 유지시켜주었고, 온갖 패배를 당했어도 자부심을 유지시켜 주었으며, 우리 시대에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강인한 불멸의 구성원들을 안겨 주었다. - P539

제국은 본성상 곧 무너지기 마련이다. 제국을 세웠던 활력이 그 제국을 물려받은 사람들에게서 사라지는 순간, 식민지의 민족들은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기 위해 싸울 힘을 비축하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 종교, 도덕, 전통이 서로 다른국가들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어 그 상태를 오래 유지한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 통일체에는 유기적인 끈이 없으므로 인위적인 결속력을유지하려면 강압이 계속 동원되어야 한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은 이런 이질성과 원심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결속력이 없는 여러 국가들을 지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는 그 국가들을 하나의 통일 국가로 만들려는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통일체를 보존하는 일은 해마다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의 구속력이 느슨해지면서 태수들의 대담함과 야망도 점점 커졌다. 태수들은 자신들과 권력을 공유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제한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장군들과 대신들을 매수하거나 위협하여 임의로 군대와 자금을 키워 나가면서 왕과 맞설 음모에 계속 가담했다. 반란과 전쟁이 계속되면서 왜소해진 페르시아는 활력이 고갈되었다. - P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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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ssons she imparted, the proof of her life lived on in me, in my every move and deed. I was what she left behind. If I couldnot be with my mother, I would be her.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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