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작가 등단 4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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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할까?

야곱 알만스의 일개 백성도

장미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이

죽어갈 수 있을까?


남들 앞에서는 다소 비굴해 보이지만, 자식과 마누라 앞에서는 자신만만해 집에서 늘 잔소리가 많은 사람. 그는 그의 삶이 그렇듯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허삼관이다. 


허삼관은 성안의 날실 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대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로 일한다. 이 부근에는 피를 팔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피를 잘 만들기 위해 몸을 관리하는데, 물도 마시지 않고 물을 마신 뒤에는 오줌까지 참는 모습이 웃프기 짝이 없다. 혈두는 병원에서 피 파는 걸 관리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은 그에게 좋은 값을 받으려고 아첨을 하며 갖은 노력을 다한다. 방씨와 근룡은 허삼관과 피를 함께 파는 동지다. 


방씨가 말했다.

"우리가 판 건 힘이라구. 이제 알겠나? 자네 같은 성안 사람들이 말하는 피가 바로 우리 촌사람들이 말하는 힘일세. 힘에는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피에서 나오는 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살에서 나오는 힘이야. 피에서 나오는 힘은 살에서 나오는 힘보다 훨씬 더 쳐주는 법일세."

허삼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 힘이란 게 주머니 속의 돈이랑 똑같은 거군요. 쓰고 나서 다시 벌어들이는...."


허삼관에게는 허옥란이라는 아내와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라고 하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소위 바람 잘 날 없는 일들이 많을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허삼관은 집안에 일이 있을 때마다 피를 팔고 35원을 받은 후 돼지간볶음에 황주를 먹으러 가는 것이 루틴이었다. 


잠시 후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세 잔이 나왔다. 허삼관이 돼지간을 집으려고 젓가락을 들다 보니, 방씨와 근룡이는 술잔을 먼저 들어 입술에 살짝 대고 눈을 가늘게 뜬 채 한 모금씩 마셨다.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카" 소리가 터져나왔고, 찌푸렸던 얼굴이 기지개를 켜듯 팽팽해졌다.

"이번에는 깔끔하게 됐구먼."

방씨가 한숨 돌리며 말했다.

허삼관도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술잔을 들어 한 모금 살짝 맛보았다. 황주가 목줄기를 타고 따뜻한 기운을 전하며 흘러내리자 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카" 소리가 새어나왔다. 방씨와 근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


평범한 직장인이 일터에 문제가 없다면, 사회가 혼란하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문화대혁명으로 먹고 살 길이 어려워지고, 농촌 소개령이 떨어지지 않고, 아들과 떨어져야 할 일이 없었다면 집안은 덜 힘들지 않을 수 있었을지.

이 때 먹는 돼지간볶음과 황주는 자신의 몸을 내어 놓고 소정의 보상을 받는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피를 한 번에 팔 때 두 그릇을 뺀다고 한다. 몸에 들어가는 주사 바늘 자체가 싫은 나로서는 검진 때 한 번씩 빼는 그 주사 바늘만큼의 피도 겁이 나는데 하물며 두 컵도 아니고 두 그릇이라니 생각만 해도 버거웠다. 아무튼 한 번 피를 팔고 나면 세 달은 쉬어야 보충이 될 정도라고 한다. 1950~1960년대 무렵은 중국도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절이었다. 먹는 것이 부실한 마당에 피를 내어놓는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행위일지 모른다. 


가끔 아버지가 만들어주셨던 오이냉국이 생각날 때가 있다. 찬 음식에 시큼한 식초를 더한 이 음식은 원래 내 기호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다. 어릴 때는 집안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아버지가 싫어 피해다니기 바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가 조금은 변했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가 찾아왔는데, 이따금씩 오이냉국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내어주시곤 했다. 그때는 이 음식을 먹으면서 '참 맛대가리 없다.' 했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 없이 먹고는 했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 지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따금씩 이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 때의 기억이 또 떠올랐다. 구체적인 기억도 아니고 그저 스냅샷 같은 장면으로 기억될 뿐인데도 내 뇌리에 잔상처럼 남은 것을 보면 이는 내게 제법 중요한 기억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긴 인생을 지나며 고비는 찾아온다. 허삼관의 인생에도 여러 번 고비가 있었다. 작품 마지막 무렵 최후의 죽을 고비가 지나고 시간이 꽤 흐른 뒤 허삼관은 거리에서 어떤 냄새를 맡으며 피를 팔고 나와서 먹던 음식들을 떠올린다.


"난 그냥 돼지간볶음하고 황주가 먹고 싶어."


마침내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 두 냥짜리 황주 두 사발을 마주한 허삼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음식 자체에 대한 욕구보다는 아픔과 고통을 넘기고 승화시킨 그 때의 기억과 감각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각자의 삶에서 다시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고비가 찾아오면 사라지는 것이 낫겠다 싶을 때도 있지 않나. 그런 험난한 순간을 넘어온 이들에게 이 책은 결코 웃을 수 없는 씁쓸함을 남기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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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2 - 아시아세계의 철학 세계철학사 2
이정우 지음 / 길(도서출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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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 이면에서 어떤 본질을 읽어내려 했고, 이 본질은 ‘실재‘였다. 반면 동북아의 ‘무‘ 등은 자연 현상에서 인간적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읽어내려 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자연 현상 저편으로 넘어가 실재를 찾았고, 후자의 경우 자연 현상의 편에서 그 의미를 읽어내려 했다. - P33


서양 철학이 시작된 지중해 세계를 다룬 세계철학사 1권에 이어, 2권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세계의 철학을 다룬다. 동양 철학이 아닌, 아시아 세계의 철학이라는 말이 어색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를 동양에 포함시킬 수 있느냐(중국과 인도의 철학이 결이 같다고 볼 수 있는가). 동양은 서양이 부여한 용어가 아니냐 등…


세계 철학의 주요 흐름은 서구 세계의 인물과 사상을 배경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는 고중세 시기 동안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발전해왔던 서양과 동양의 세계관이 근대 세계에 와서 서양의 세계관이 힘을 압도하며 역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서구 세계 철학은 그리스 자연철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중국,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세계의 철학은 자연 현상을 해석하는 역학이 시작점이 되었다.


이처럼 아시아 철학의 기본은 ‘역’의 개념이다. ‘역’이란 무엇인가. 

성인이 ‘괘‘를 긋고 ‘상‘을 관찰해 ‘사‘를 걺으로써 길함과 흉함을 밝히려 했다. 강함과 유함이 서로 밀어 (剛柔相推) 변화가 생겨나니, 그로써 길함과 흉함은 얻고 잃음의 상이요, 후회와 부끄러움(悔)은 안타까움과 짓눌림 (憂)의 상이요, 변함과 화함은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이요, 강함과 유함은 낮과 밤의 상이다. 6효의 변화가 하늘·땅· 사람의 길(三極之道)을 세운다. 하여 군자는 ‘역‘의 배열에 입각해 편안히 안거할 수 있으며, 효사를 읽음으로써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군자가 거할 때는 ‘상‘을 보고 ‘사‘를 즐기지만 동할 때에는 ‘변‘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이 그를 도우니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라 한 것이다.(「사전 상」, 2장) - P128


중국 철학은 분열을 거듭하던 난세의 시기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묵가 철학, 노자-장자를 바탕으로 한 도교 철학, 법가 철학 등이 난립을 거듭했다. 

그러다 동북아 세계에서 ‘공자’가 나타나며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의 사상 철학 체계에서 ‘공자’의 위상은 특별하다. 공자는 인간에게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형이상학을 펼쳤다. 그의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들이 후대에 전수하며 유교적 윤리 세계를 동아시아에 구축하며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동아시아에 공자가 있었다면 서양 세계에는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둘은 사는 곳도, 사상적으로도 달랐지만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전수했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았다. 물론 서구 철학은 소크라테스의 사유를 넘어 유대-기독교적 흐름을 받아들이며 다른 형태로 진화했지만 공자의 가르침은 여전히 동아시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인도 철학은 종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대표적으로 힌두교와 불교가 있다. 이는 우파니샤드와 붓다의 가르침에서 확인이 가능한데 구체적으로는 ’욕망’과 ‘업’을 을 극복하고 ‘고(고통)’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힌두교는 브라만적 우주관을 다시 세우고 ‘범아일여‘의 사유를 다시 다듬었다. 세계는 주기적 해체와 재창조를 계속한다. 해체는 브라흐만이 세 현현을 거두어들이는 과정이고, 재창조는 다시 세 현현을 시작하는 과정이다. - P524


붓다의 가르침은 ‘사제(四)‘라 불린다. 처음에 붓다 사유의 출발점은 모든 것이 ‘고‘라는 ‘고제(苦諦)‘였다 일체개고. 그리고 삶의 고뇌가 어떤 이치로부터 생겨나는가를 12연기설을 통해 통찰하는 것은 ‘집제(集諦)‘이다 제행무상. 그리고 고뇌로부터의 벗어남을 12연기를 거꾸로 생각해봄으로써 이해하는 것은 ‘멸제(滅)‘이다-제법무아. 마지막으로 멸제를 이룰 수 있는 길로서 제시된 8정도가 열반적정 (涅槃寂靜)으로 ‘도제(道)‘를 이룬다. - P541


기원후 3~6세기가 되면 북방의 여러 세력들이 사분오열되어 중국을 포함한 남방으로 밀려들고, 기존의 중원 문화를 이어간 남방으로 나뉘며 다원화된 질서가 이어진다.  
유교 지식인들의 정체성은 후한 정부에서 형성된 청류, 명사, 일민 등에뿌리를 두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통은 혼란의 시대인 위촉오 시대에 오히려 꽃을 피웠으며, 예전보다는 퇴락된 형태이긴 했지만 서진·동진 시대에까지도 이어지고 6조 내내 강남의 귀족제 사회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단지 유교 지식인들 내면의 정체성 유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은아니다. 오히려 결정적이었던 것은 이들의 기득권을 보호해준 구품중정제가 남북조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지되었던 데에 있다. 이렇게 ‘기득권‘과 지식인들 자신의 ‘정체성 유지를 위한 노력‘이 선순환을 이루면서 6조의귀족사회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무에 대한 문의 우위‘도 계속 유지되었다. 무관들도 이 귀족사회에 끼지 못하고서는 출세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P622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는 방식은 북조의 경우와 남조의 경우가 달랐다. 북조의 경우 핵심적인 것은 왕들과 승려들의 관계였다. 왕들은 사분오열된 군사봉건제의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정신적 힘이 불교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기에 호의적이었고, 승려들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안전하게 또광범위하게 포교하기 위해 왕들의 후원이 필요했다. - P652

왕권이 약한 귀족제 사회인 6조에서 승려들은, 남조 귀족들의 문화와 어떻게 어울릴까를 고민했다. 남조의 도가적 유교 지식인들과 서역에서 건너온 또는 중국에서 불교로 개종한 인물들을 이어주는 끈은 ‘청담‘이었다. - P654


남방 지역은 이처럼 ‘문’을 우선시하는 문사-관료들이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인도에서 흘러든 불교를 받아들이며 문명과 문화를 이끈다. 


만약 아시아 세계에 서구처럼 격렬한 종교 전쟁이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교와 불교, 도교의 삼교가 각자의 역할을 지킨 채 적정선을 넘어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교는 정치 철학으로, 도교와 불교는 아시아 세계의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중국은 남송 시대에 가서 유학을 집대성한 주희에 의해 성리학으로 정립되기에 이른다. 성리학은 이후 중국 내 원-명-청 왕조에서 뿐 아니라 한반도의 고려-조선, 일본에까지 넓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한반도는 조선 시기 들어오면 리(理)/기(氣)의 이론을 해석을 현실에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하면서 주자학 이론의 실전 세계가 된다. 


주자학이 새로운 왕조가 건설될 때 특히 큰 매력을 발휘한 것은 바로 우주와 인간을 잇는 웅혼한 규모의 사유, 지식인들의 영혼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인성론, 그리고 봉건사회를 정초해준 위계적 정치철학으로 구성된 높은 경지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측면이 새로운 왕조의 구축자들에게는 최상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던 것이다. 명을 세운 주원장의 경우 외관상 농민반란의 형태를 띠었지만, 그 주도 세력은 지주 계층이었고 주원장 자신이 건국 이후 철저히 유교적 이념에 따라 신왕조를 구축했다. 조선의 경우 고려를 무너뜨리고 신왕조를 세운 주축 세력이 정도전을 비롯해 모두 신진 사대부 계층이었다. 에도 막부의 경우에도 역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자학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정권을 정비했다. 이처럼 주자학은 사대부(사무라이) 계층의 정신세계와 정치철학을 확고하게 지배한 철학 체계로서 동북아 전체에 걸쳐 일반 문법을 형성했다. 주자학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자학 자체의 철학적 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또한 사대부 지식인들의 권력의지 또한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 P741


양명학과 성리학 간의 사상 대결도 무척 흥미로웠다. 


1권에서도 느꼈지만 2권에 와서 더욱 느낀 점은 서구 세계 사상가의 철학과 아시아 세계의 철학을 비교하며 사상의 이해를 쉽게 돕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매 페이지, 어려운 개념이나 문장에 대한 각주는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만든다. 3권의 내용은 근대 세계의 사상 철학을 다루고 있다. 


동북아의 세계는 ‘작(作)‘의 세계가 아니라 ‘생(生)‘의 세계이다. 따라서 조물주 개념은 탈각된다. 역학에도 기학에도 조물주의 개념은 없다. 동북아에도 ‘신‘들은 있지만, 이들은 세계에 내재적이다. 또, 이 ‘생‘의 사유에서 설계도 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질서만이 인정된다. 이 때문에 기에 구현되는 선험적 질서로서의 이데아 개념 또한 없다. 다만 기 안에 잠재해 있고 기가 특정한 물(物)로서 개별화될 때 비로소 확인되는 내재적 질서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기의 세계는 코라의 세계이다. 물론, 이렇게 말할 경우 코라의 의미는 현저하게 바뀐다. 그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물질성, 생명성, 정신성을 내함(含)하고 있는 유일의 실체이다. - P186~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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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9-02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이 페이퍼 하나 읽는 것 만으로도 똑똑해지는 너낌적인 너낌 ☺️

거리의화가 2024-09-03 07:58   좋아요 1 | URL
쟝 님 철학은 어렵습니다ㅎㅎ 그런데도 철학서를 계속 열심히 읽고 스스로의 언어로 정리하고자 하시는 쟝 님의 시도에 저는 늘 탄복하네요^^ 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4-09-03 10:05   좋아요 1 | URL
아이 쑥스러워라… 그냥 기운이 남아서요… 🥲
 
청명상하도 - 송나라의 하루
톈위빈 지음, 김주희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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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상하도는 청명절 북송의 수도 변경(지금의 카이펑)의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이 그림은 수도 전체를 그리지 않고 성 밖부터 성 안까지를 일부분 조망하여 담고 있다. 특징적인 것은 지배층이 주로 그리는 가상의 산수화가 아닌, 실제 북송의 거리와 사람들의 생활상을 담고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청명상하도는 비단 북송 뿐 아니라 중국 역사 전체 왕조를 통틀어도 이름이 알려져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나도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세세히 뜯어볼 기회가 없었다. 청명상하도는 가로로 긴 형태로 죽편이나 목편을 돌돌 말아 보관하기에 편리한 방식을 따르고 있다(중국의 당조 이후 서화의 기본 형식). 가로는 길지만 세로는 짧기 때문에 800여 명이 하는 다양한 활동 모습이 압축적으로 그려져 확인하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청명상하도는 북송의 장택단이라는 화가가 그렸다. 그는 부모의 명에 따라 과거 시험을 준비했으나 학업을 포기하고 그림으로 전향해 궁정 화원이 되었다고 한다. 

청명상하도는 금나라의 장저라는 사람의 발문을 ‘별성가수(새로운 유파을 이루었다)’로 적은 것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의 발문이 더해졌다(청대에 이르면 일반인들도 발문을 더함). 1911년 신해혁명 이후 부의가 청명상하도를 갖고 출궁했다가 창춘의 황궁에 있었는데, 1945년 그가 급하게 도주하면서 민간에 흘러나왔다고. 1950년 둥베이 박물관에서 1953년부터 지금까지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안장되고 있다. 국보인 청명상하도가 2015년에서야 대중에 공개되었다고 하니 생각보다 아주 최근 일이다. 아직 베이징에 가보지를 못했는데 언젠가 가서 직접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청명상하도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느낀 점은 장택단의 깨알 같은 묘사력과 철저한 계산에 의한 그림 배치 능력이다. 어느 하나도 허투루 그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보는 내내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1.


여행자로 보이는 무리가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데 줄기가 끊어진 버드나무가 버젓이 그려져 있다. 왜 하필 줄기가 끊어져 있었는지 궁금증을 낳게 한다.

저자는 끊어진 버드나무가 여행자로 하여금 경계의 끈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2.


그림 속에서 중요 역할을 하는 북송의 ‘변하’(황하의 물을 인공적으로 끌어들인 강)는 양식 조달 및 물자 공급에 쓰였기 때문에 실제로도 무척 중요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어서 토사가 쌓이지 않게 하기 위해 준설을 해야 했고, 제방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해에 대비해야 했다. 


3.

청명상하도가 그려진 시기는 북송 말기로 소빙하기가 시작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림 속 인물들 중 힘든 노동을 하는 이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으나 귀족이나 여행자는 두꺼운 옷을 장착하고 추위에 움츠린 모습을 하고 있다. 


4.


‘개당고’라고 바지의 뒤쪽이 트여 있는 형태의 의복을 입고 있는 남성들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다. 남성들은 엉덩이 등이 노출되어 있으나 여성들은 그렇지는 않지만 빨래를 널어 말리는 모습을 통해서 개당고를 입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마도 육체 노동을 하는데 개당고가 걸리적거리지 않는 편안함을 주었나보다.


5.


‘홍교’는 그림에서 중요 포인트가 되는 지물이다. 최소 8미터에 달하는 목재 다리인데 그림 속 홍교 위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차 있는 모습이다. 말과 마차 간의 충돌, 당나귀와 사람 간의 충돌, 게다가 다리 아래에는 배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이 다리가 교각이나 교대가 없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어선처럼 배가 낮으면 모르겠는데 승객이 있는 높은 화객선의 경우는 충돌할 위험이 얼마든지 있는 상황임을 짐작하게 한다. 홍교 근처에는 네 모퉁이에 장대 위에 장식을 한 조형물인 표목이 세워져 있다. 원래 제왕이 백성의 의견을 듣기 위해 설치한 것이었으나 이 무렵은 의미를 상실하여 그저 길을 표시하는 용도로 전락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그림을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다리 목에서 장사를 하는 여인을 통해서 상행위에 뛰어든 여성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음식 배달원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이 때도 배달 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점집을 통해 이때도 사람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았구나 느낄 수 있다.  

술집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정점은 술 빚는 것까지 가능한 술집인 반면, 각점은 술 빚는 것은 안 되고 파는 것만 되는 술집이다. 술집의 방은 어느 정도의 분리는 되면서도 방음은 안 되어서 서로의 말이 다 들린다는 것도… 따뜻하게 술을 데워 마시는 주호, 온완 세트(온완 안에 주호를 넣는 것)가 있다는 것도.

사탕수수의 존재를 통해 북송 때도 사탕수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향음자라는 한약 냉차를 즐겼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총 4단으로 구성된 청명상하도를 각 단을 여러 개의 부분 그림으로 쪼개어 확대해 싣고, 그림의 설명(+배경)과 저자의 해석을 곁들이고 있다. 그림은 해석자의 시선에 따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다. 저자의 해석은 참고한 채 독자의 상상력으로 다양한 해석을 해본다면 더욱 책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줄곧 옛 그림을 이해하려면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해왔다. 첫 단계는 자세히 살피고 분명하게 보는 것으로, 이는 옛 그림을 이해하는 기초라 할 수 있다. 둘째 단계는 당대 사람들과 오늘날의 학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지막 단계는 두려워하지 말고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옛 그림이 새롭게 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 P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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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8-31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샀어요^^
틈틈히 감상중입니다
강산무진, 촉잔도권, 몽유도원도 이런 그림들 보면서 횡권에 관심을 갖게 되었거든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4-08-31 17:18   좋아요 2 | URL
감상중이라는 말이 딱입니다^^ 저도 이 책은 틈틈이 부분으로 봐도 재밌겠다는 생각 들더라구요^^
같은 시기 한반도에서 유행했던 그림들은 무엇이었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희선 2024-09-07 0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을 그리는 데 시간 많이 걸렸을 것 같네요 사람이 아주 많으니... 대단합니다 이런 건 다는 아니어도 그때 사람 생활을 알게 해주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4-09-07 16:40   좋아요 1 | URL
네^^ 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가서 인물의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는데도 동작이 다 다르고 상황이 다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세밀한 묘사 덕분에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는 그림이 된 것 같습니다.
 
[eBook] 나와 타자들 - 우리는 어떻게 타자를 혐오하면서 변화를 거부하는가
이졸데 카림 지음, 이승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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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정체성은 타인과의 구별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구별 짓기로 형성된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감소했고,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성숙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 포퓰리즘 등이 활개치기 좋아진 상황이다. 중립성이 최선이겠지만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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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된 공동체 -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한 고찰
베네딕트 앤더슨 지음, 서지원 옮김 / 길(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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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는 식민지 지배에서 시작하여 해방, 분단, 통일을 겪으며 유독 ‘민족’이라는 개념이 강조되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당연히 해야만 했던 국민 체조 행하기, 국민 교육 헌장 따라하기, 교련 교육, 태극기를 향한 경례 등은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강요 받은 세뇌에 가까운 개념이라 느낀다. 

2000년대 들어 탈근대, 탈민족주의 담론이 제기되면서 역사학계는 논쟁이 벌어졌다. 한국 민족주의 논쟁은 한민족의 형성, 권력 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의 성격, 민족(국가) 중심의 인식과 서술, 국사 해체 등에 대한 성찰을 가져온 바 있다.

그러나 비단 이는 과거에만 그친 개념은 아니다. 현재도 경주는 고대 신라 시기를 컨텐츠화하여 유물, 유적화하여 보존, 박물관화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다른 한편에서는 원전을 이용한 개발 이익을 노린다). 부산은 한국 전쟁 때 외국군이 들어온 통로로  이용되면서 자유주의 평화를 강조한다. 그곳에는 UN평화로라는 이름이 존재하고, UN기념공원과 평화기념관이 있다. 인천은 근대 개항장으로 이용되었고, 한국 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근대 관련 박물관들과 자유공원(맥아더 동상) 등이 있다. 


내가 생각하던 ‘민족’이란 개념은 인종과 문화가 결합된 형태였다. 민족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원어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국어 학자인 이희승 선생님의 사전 정의에 따르면, 민족이란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말을 하며 생활양식, 심리적 습관, 문화, 역사 등을 같이 하는 인간집단.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분류한 것”이며 국민은 “동일한 통치권 밑에 결합되어 국가를 조직한 인민”을 뜻한다. 전자를 문화적 개념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정치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내가 생각했던 개념이 이희승 선생님이 정의한 개념과 비슷한 맥락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원어는 nation, ethnic group, ethnicity로 다양하게 불린다. 이 중 네이션nation은 같은 공공 문화를 가지면서도 구성원들이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진 개념이라면 ethnic group, ethnicity로 번역되는 에스니는 같은 공공 문화를 가질 뿐 권리와 의무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니까 nation은 정치적 공동체의 개념이 문화적 공동체의 개념에 더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 책에서 ‘민족’은 상상된 개념으로 ‘제한된 범위의 주권을 가진 정치 공동체’라고 소개한다. 그는 민족에도 정치적 공동체 개념을 부여하였다. 민족은 과거 종교나 왕조 국가 공동체가 하던 역할을 근대에 들어서 자본주의와 인쇄 혁명이 준 가능성으로 열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프랑스와 아메리카에 민족 국가의 모델(표준)에 만들어진다.  

19세기 중반 이전에 발명되었지만 식민지화된 지구들이 기술 복제의 시대에 입장하면서 형태와 기능을 바꾼 세 가지 권력 제도보다 문법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도 드물다. 세 가지 제도란 센서스, 지도, 박물관으로서, 이들은 함께 식민지 국가가 그 지배권을 상상하는 방식-그것이 통치하는 인간들의 본성, 그 영토의 지리학, 그 유래의 정당성-을 밑바닥에서부터 형성했다(P248). 

센서의 허구는 모두가 거기에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하나의, 단 하나의 극히 분명한 지리가 있다는 것이다. [1보다 작은] 분수는 있을 수 없다(P251). 

순수한 기호일 뿐, 더 이상 세계를 향한 나침반이 아닌 지도. 이러한 모습으로 무한히 복제 가능한 연쇄에 입장한 지도는 포스터나 공식 문장, 레터헤드, 잡지와 교과서의 표지, 식탁보, 호텔 벽 등에 전이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곧바로 알아볼 수 있으며 어디에서든 가시적인 로고 지도는 인민의 상상에 깊이 침투해, 태어나고 있는 반식민지 민족주의들을 위한 강력한 휘장의 형태를 구성했다(P262). 

박물관, 박물관화하는 상상은 심원하게 정치적이다. 고대 사적을 파헤치고 개발하고, 분석하고, 전시하는 과정이 이어졌다(P267). 


베네딕트 엔더슨은 비슷한 시기 서구적 관점에 의한 민족 정의에서, 식민지 입장의 관점을 적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주로 남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글로벌 관점에서 지역의 폭이 좁고 추상적인 개념들이 많아 구체적 사례가 좀 더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경험은 다르니 말이다. 동북아시아 중에서도 일본은 제국주의를 시행한 곳으로 다른 곳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과 민족주의 관련해서 이 책은 늘 언급된다. 때문에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했는데 독서 모임에 이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책을 독해하기란 쉽지 않았다. 첫 술에 배부르랴, 어렵지만 첫 시도였다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민족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지 어렴풋이 정리할 수 있었다. 민족의 범위는 어떻게 정해야 할지, 국가는 국민을 어떤 방식으로 동원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해마다 광복절에 반일 담론은 그치지를 않는다. 국가, 지방 정부의 기념 사업은 정치적 노선과 입장의 차이에 따라  국민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한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은 국가적 정치에 이용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상상된 네이션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 시기가 언제인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상상될 수 있는 것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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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8-29 0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에서 이런 책을 보기도 하는군요 거기에서 책을 봐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겠습니다 다른 것과 생각할 수도 있고... 사람은 숫자가 많아지면 어떻게 하지 못하니 뭔가로 묶기도 하겠습니다 거기에서 큰 게 같은 나라에 사는 민족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걸 깊이 생각해 보지는 않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8-31 15:25   좋아요 0 | URL
독서 모임을 하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을 들을 수 있으니 공부에도 도움이 됩니다.
민족주의는 과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도 끊이지 않고 소환되는데 이를 위해서 여러 모로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희선 님 감사합니다^^

공쟝쟝 2024-09-02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상된 네이션이지만 아주아주 강한 담론효과를 가지지요… 마치 젠더 수행처럼… ㅠㅠㅠㅠ 화가님 공부짱짱!!! 엄청 자극 받고 갑니다! 눈건강 허리건강 잘 챙기셔요🤸🏻‍♀️🤸🏻‍♀️ 화이팅!

거리의화가 2024-09-03 08:05   좋아요 1 | URL
‘상상‘이라는 용어가 아주 큰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겠구나 싶습니다. 상상은 사람의 생각이 더 개입되기 쉬우니까. 구체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이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기도 하는 것처럼요.
쟝 님도 긴 독서 생활을 위해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