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본미술 순례 2 + 이 한 장의 그림엽서 나의 일본미술 순례 2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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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망각이 존재하는 한 비극이자 잔혹한 현실을 빗댄 예술은 살아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자가 그림을 마주하며 품은 질문은 비단 의문에서만 그치지 않고 희망에 대한 기대도 품고 있다. 이 책은 예술가가 살았던 일본 근대 사회와 그 뒤에 드리워진 개인의 삶을 함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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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일본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나의 일본미술 순례 1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연립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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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으나 역시 재미 있었다. 원래 여행기를 읽는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정리한 책을 좋아하는 탓이다. 또 서경식 선생님의 디아스포라적 위치, 자기 재인식의 사유를 담은 문장들이 있으니까.

얼마 전 펀딩을 한 2권을 읽기 전 이 책을 먼저 읽기 위해 집어 들었다. 


저자는 일본 근대 미술을 언제고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책에 소개된 미술가들은 다양한 범위를 아우르고 있으나 보편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이단자’들이 표현한 미술이다. 또 자신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조선보다 일본에 아무래도 더 친숙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책을 쓸 당시 코로나로 전 세계가 시름하고 있을 때였던데다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악화된 상태였기에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덧붙여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자는 일본 미술을 미화하자는 것도, 비난하자는 것도 아닌 일본을 비판하기 위한 하나의 거울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총 일곱 명의 미술가를 다루는데 이중 아이미쓰와 마스모토 슌스케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카무라 쓰네의 <두개골을 든 자화상>은 두개골을 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하다. 두개골은 서양화에서도 익숙한 그림의 등장 소재다. 두개골은 죽음에 대한 상징적 묘사로 17세기부터 ‘바니타스’라는 형식으로 북유럽 프로테스탄트 국가들에서 시작되었는데 전통적으로 정물과 해골을 함께 배치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화상 속 인물은 두 뺨이 붉게 물든 것을 통해서도 어딘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표정은 두려움 같은 감정을 초월한 모습이다. 저자도 그 점이 신기해서 이 그림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나카무라 쓰네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시인이자 언어학자, 동화작가인 바실리 에로센코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초상화는 근대 일본 서양화의 대표작으로 남았다고 한다(에로센코는 루쉰과 교류하고 염상섭, 박헌영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사망 직전 한국의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에스페란토어로 남겼다니 놀라웠다). 


사에키 유조는 ‘요절, 파리, 화가’라는 세 가지 요소를 지녀 일본 근대 미술의 신화로 남았다. 도쿄미술학교 졸업작품으로 그린 자화상은 공교롭게도 앞서 언급한 나카무라 쓰네의 바실리 에로센코의 자화상과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러다 1924년 파리로 건너가 만난 야수파 화가 모리스 블라맹크에 의해 비난을 받고 충격을 받은 뒤 그린 자화상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그렸다. 그는 일본 근대미술의 정통 아카데미즘적 화풍에서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사에키의 주변에는 조선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후지시마 다케지는 그가 미술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으로 짧게나마 조선에 체류하며 작품을 남기고 조선미술전람회 심사를 맡기도 했다(그는 조선 화가 오지호의 스승이기도 하다). 미술학교 선배인 이시이 하쿠테이, 친구인 야마다 신이치도 조선미술전람회 심사를 여러 번 맡았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강화된 이후 서양화를 그리던 대부분의 일본 화가들은 전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후지타 쓰구하루는 그 흐름에 앞장선 대표적인 화가다. 그런데 그는 전쟁이 끝나도 이에 대한 반성은 커녕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고 심지어 유럽으로 가 이름을 바꾸고 남은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이 흐름에 예외라 할 수 있는 부류가 아이미쓰와 슌스케다. 


아이미쓰의 <눈이 있는 풍경>은 서양의 초현실주의 대표 미술가인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과 비슷한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적인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붉은 기운에 휩싸여 있다. 저자는 2020년 예술학 강의에서 ‘전쟁과 미술’을 테마로 삼았을 때 이 그림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학생들의 감정도 남달랐다고. 이 그림은 1938년 그려졌다. 1938년은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일본이 군국주의의 기치를 내건 이후다. 그림 속 묘사는 당장의 현실은 아니지만 미래를 예견한 듯한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다. 아이미쓰는 전쟁화를 그리지 않았다. 조각가 이데 노리오의 회상에 따르면 어느 날 모임에서 화가 후루사와 이와미가 “요즘은 군부에 협력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해.”라고 말했을 때, 아이미쓰는 히로시마 사투리로 “아무리 그리 말해도 나는 전쟁화는 못 그려, 어쩌면 좋지?”라고 울먹였다고 한다(P113). 그는 정치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시류에 편승하는 화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미쓰의 <눈이 있는 풍경>은 현대미술가 야나기 유키노리에 의해 <고질라 프로젝트-눈이 있는 풍경>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본 정치, 우익 단체에 의해 전시 설치를 지속적으로 방해받는 등 우여곡절이 많다. 과거의 망령은 여전히 떨쳐지지 못했다. 


마쓰모토 슌스케의 그림은 대체로 어둡고 음울한 색채와 분위기를 지녔다. 슌스케는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열 살부터는 모리오카시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갑작스런 고열 이후 얻은 청각장애로 원래 꿈이었던 엔지니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다행히 형 덕분에 붓을 잡으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신념’이란 말이 번번히 입에 오른다. 하지만 오히려 현대의 지식인이나 젊은이에게 신념이 없다는 것은 그들에게 아직 반성하는 양심이 있다는 증거다. 신념의 부족보다도 몽매한 신념이 얼마나 크나큰 재앙이 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 잡기장, 1937년 4월호 (P208)

그는 아내와 함께 발행한 잡지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충성과 신념을 강요당하던 시대 몽매한 신념을 부르짖는 일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음을 느끼게 한다. 그는 스즈키 구라조가 기고한 미술가가 국가를 위해 붓을 휘둘러야 한다는 글에 대해 예술의 휴머니티로 논박한다. 물론 그의 휴머니티에 대해서는 곱씹을 필요가 있다. 슌스케는 전쟁에 협력하지 않고 저항한 예술가의 전형으로 추켜세워진 면이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이자 인도주의인 휴머니티의 구체적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그가 일본의 군국주의이자 대동아주의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런 시대 속에서 그가 예술가로서 최선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한다. 


7명의 화가 중 4명의 화가를 언급했을 뿐이지만 나머지 인물들도 흥미롭다. 책은 각 화가의 작품과 삶의 궤적, 그와 관련된 인물들과 역사를 언급하고 있기에 근대 시기 예술과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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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6-01-0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엄청 궁금한데 참고 있던 책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뒤로 뒤로 미뤄두고 있는데,,, 모른척 할 수가 없습니다.^^;;

거리의화가 2026-01-02 08:39   좋아요 1 | URL
책이 궁금해지셨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네요. 즐거운 책읽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삼체 X : 관상지주
바오수 지음, 허유영 옮김 / 서삼독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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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는 주인의 뿌리와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꽁꽁 감추고 있었다.‘ 관념과 실재는 뒤섞이고 시간 관념조차 정의내리지 못하는 고차원의 세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한 우주에서 탄생과 죽음, 윤회를 떠올리며 누군가를 알아보는 마음과 진심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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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타이완 여행기 - 2024 전미도서상 번역부문 수상, 2024 일본번역대상 수상, 2021 타이완 금정상 수상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 마티스블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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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소설가 치즈코는 1938년 타이완을 방문하게 되었다. 현지에서 자신의 소설 《청춘기》를 각색해 만든 동명의 영화를 감명깊게 본 현지부인단체 〈닛신카이〉가 타이완 총독부와 연합하여 초청장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일본 촐판사에서 모든 경비를 대줄테니 타이완으로 가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의도가 불순하다 생각하여 가질 않았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늦었는데 결혼도 안한다며 성화였고 좋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집안의 잔소리도 피할 겸 타이중으로 떠나오게 된 것이다.

타이중 역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인 거리로 향한 치즈코는 과일 노점상의 판매원과 말이 안 통하는 상황에 부딪쳤는데 다행히 한 소녀의 통역 도움을 받아 위기를 해결한다. 그때 시역소(시청) 직원인 미시마가 그녀를 찾아낸다. 사실 타이중 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치즈코는 현지인 거리를 경험하고 싶다며 나선 것이었던 것. 다카다 부인 댁에 도착한 그녀는 그렇게 타이완에서 지내게 되었다. 미시마는 현지에서의 일에 도움을 주고 통역을 맡기로 했지만 치즈코와 사사건건 의견 대립으로 맞지 않았다.
치즈코는 관광객들이 흔하게 먹는 음식이나 계속 먹어왔던 일본 음식보다는 진짜 현지인이 평소 먹는 음식들을 권해주기를 바랐다. 몇 번이나 요구해봤지만 미시마가 한 번을 들어주지 않자 치즈코는 폭발했다.
결국 다카다 부인은 다른 현지 통역사를 소개시켜주는데 알고 보니 그는 과일 노점상에서 도움을 받은 그 소녀였다.

그녀는 왕첸허로 이름이 치즈코의 한자와 같았으니 결과적으로 둘은 이름이 같은 셈이었다. 치즈코보다 3살 어린 첸허를 치즈코는 샤오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치즈코는 관광 여행이 아닌 현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위해 1년 정도 살 집을 원했다. 다카다 부인은 그녀의 생각을 이해했고 무사히 그렇게 1년 동안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치즈코는 샤오첸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샤오첸은 일본어, 타이완어, 하카어, 영어에 능했고 프랑스어도 접해본 언어 능력자였고 어린 나이임에도 처세술에 아주 능했다. 조용하지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해야 할까. 샤오첸은 식민지 부유한 가문인 서출 출신이었다. 치즈코는 샤오첸과 친구가 되기 위해 무척 공을 들이는데 반대로 샤오첸은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노력한다.

때는 1938년 타이완이 배경이다. 타이완은 일본의 첫 식민지였고 1938년 무렵에는 이미 북쪽 끝에서부터 남쪽 끝까지 통과하는 철도가 놓여진 후였다. 중일전쟁이 시작된 후라 철도 내에서는 주먹밥과 매실 장아찌만 있는 도시락만 파는 것이 허용된다. 이처럼 일본의 식민 정책으로 내지와 본섬 현지인 간의 동화 정책이 시행되는 만큼 일본의 음식이나 풍습, 문화 등이 깊숙이 들어온 상태였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차별은 자행되고 있었다.

˝사기업에 고용된 혼토진 여성 통역사는 잡역부와 같은 거 아닌가요?˝
이런 말을 뱉고 있는 현지 농림 전문학부의 Ⅰ 서기 얼굴에서는 부끄러운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
˝통역을 맡는 여성은 확실히 소수지요. 게다가 혼토진이잖아요. 실질적인 전문성이 있나요? 예전에 학교 선생으로 일했다고는 하지만, 그저 공학교에서 가르쳤던 것뿐인데요...˝ - P67
공학교는 타이완인이 다니는 학교를 지칭하고 내지인이 다니는 다니는 학교는 소학교라고 불렸다. 치즈코는 이처럼 샤오첸이 자신의 통역사로 일하면서 겪는 일들을 부당한 차별이라 생각한다. 내지인이고 남성이었다면 결코 그런 취급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샤오첸은 치즈코가 보기에 적극 대응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치즈코는 그런 샤오첸이 때론 답답하다. 게다가 자신을 업무적 위계 관계가 아닌 친구처럼 동등한 관계로 대해주었으면 하지만 이마저도 잘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은 혼토진이자 통역을 맡은 제가 비서 업무를 수행하길 기대한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본섬 출신 통역사는 내지 작가의 전속 직원인 셈이지요. 겸상이 적절하지 않답니다. ... 함께 식사하려면 반드시 평등한 관계여야 하니까요.˝ - P114

˝토인삼은 가짜 인삼이죠. 이 세상에는요. 저를 왕씨 가문의 귀한 아가씨로 여기는 이도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의 눈에는 첩실의 딸이자 본섬 국적의 여학생일 뿐이에요. 저는 그저 진짜처럼 꾸며진 채 사람을 속이는 가짜 인삼이죠.˝ - P254

타이완은 다양한 구성의 사람들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청(복건성 등)에서 내려온 한족인 하카인이 있고 가오사족이나 핑푸족처럼 다양한 타이완 원주민이 있다(번인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이는 당시 일본인이 그 사람들을 부르던 멸칭이라고 한다). 푸라오인은 하카인 중 타이완어를 쓰는 사람들이다.
아무튼 다양한 구성의 사람들이 살다 보면 충돌과 갈등은 피할 수 없었을 듯하다.

치즈코가 왕첸허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첸허 씨는 어느 종족에 속하나요?˝
˝아오야마 선생님 매우 교활한 질문이네요.˝
˝왜 그렇게 말씀하세요?˝
˝오늘날의 우리는 모두 천황의 자식이죠. 민족도, 내지인이나 외지인을 구분하지도 않....˝ - P57~58
왕첸허의 ‘교활한 질문‘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그들도 식민지인이 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데도 이런 답을 한 것은 이미 수년의 시간이 흘러 이런 질문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게 일본 제국주의가 원하는 답이기는 했을 것이지만.

그러나 치즈코는 제국의 정책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제국의 ‘남진‘, 제국의 ‘국민정신 총동원 운동‘은 식민지에서 천황국의 동화 운동이 되었다. 이건 사람들이 저마다 지닌 서로 다른 문화와 교양을, 그 흔적을 지워버리는 폭력적인 행위다. ...
‘전쟁 앞에는 남녀의 차이가 없다.‘
어떤 이는 이렇게 강력히 주장하면서 큰 소리로 외치곤 했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전쟁이 여성의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은 내지나 본섬이나 차이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 P161

치즈코는 샤오첸 앞에서 자신은 제국이 하는 행위(와 일본인의 차별적 행위)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며 계속해서 그녀의 동의를 구하려 한다.

˝내지에서 가져온 벚꽃을 강제로 본섬 땅에 심는 게 너무 제멋대로 같지는 않나요? 샤오첸도 이렇게 생각하나요?˝ - P151

˝재작년에 홋카이도와 오키나와로 짧게 여행을 갔었거든요. 홋카이도 이누이족과 오키나와 류큐족의 고유한 생활 방식이 점차 사라지고 있더라구요. 두 지역의 개척은 메이지 초기의 일이었데 말이에요! 일장기, 대일본제국, 천황의 백성은 모두 야마토 민족이다.... 이건 제국의 염원이겠죠.
... 식민지 타이완, 조선, 만주국은 머지 않아 홋카이도와 오키나와가 걸어갔던 길을 걷게 되겠죠. 그건 너무 슬픈 일이에요.˝ - P165

˝예전에 사람들이 그랬어요. 내지인은 러우싸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여긴다고요. ‘내지인은 사시미만 먹는다‘ 같은 경고를 들은 적도 있고요. ...˝
˝어떤 게 미식인지도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편견을 가진 게 분명해요.˝
˝본섬 사람의 러우싸오와 내지인의 사시미는 ‘더럽다‘와 ‘깨끗하다‘로 나뉜답니다. ... 본섬의 장삼과 내지인의 와후쿠도 마찬가지죠.˝
˝러우싸오와 사시미는 모두 미식이에요. 장삼과 와후쿠도 다 아름답고요. 저한테는요. 세상 만물에 있어서 본질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 P202~203

치즈코는 샤오첸을 위한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샤오첸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치즈코의 방식은 제국주의의 얼굴인 오만과 편견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둘의 관계는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둘의 관계는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 타이완과 일본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고 당시 타이완에 살고 있던 상황을 여러 모로 떠올려보게 된다. 이 책은 아오야마 치즈코가 쓴 소설을 양쐉쯔가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양쐉쯔의 번역본이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다. 여행기라고 하지만 엄연히 소설이므로 실제 여행기가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닐 테고 일부는 좀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허구적인 내용도 들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당시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충분히 느끼고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비단 지배-피지배, 남성-여성 간의 위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친구라는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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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여행자를 위한 도슨트 북 - 모든 걸작에는 다 계획이 있다
카미유 주노 지음, 이세진 옮김 / 윌북아트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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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경식 선생님의 대표작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읽으면서 미술사에 관한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막상 구매를 했으나 예약 판매로 뜨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받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이러다 구매가 취소될까봐 좀 걱정이 되었다는. 무사히 받아서 읽을 수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 같다. 도슨트 프로그램을 들으면 아무래도 혼자 미술을 감상하면서 놓치기 쉬운 부분을 알 수 있어 좋다. 다만 나는 평소 혼자 전시를 보는 것을 좋아해서 도슨트 프로그램을 매번 이용하지는 않는다. 물론 박물관 가이드는 거의 이용한다. 가이드는 휴대폰에서 앱이나 웹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개인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편리하다. 도슨트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경우는 좀 더 깊은 이해를 원할 때 듣게 되는 것 같다. 


우선 이 책은 미술관의 구조, 미술을 볼 때 유용한 개념들(이젤, 선, 구상, 제단화, 템페라 등)을 앞부분에 실어서 미술과 미술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그리고 뒷부분은 조토부터 뱅크시까지 미술사를 대표하는 화가들에 대한 본문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페이지에는 화가별 삶과 이력, 작품에 대한 특징, 평판, 대표작에 대한 설명, 화파에 대한 특징을 싣고 있다. 르네상스처럼 시대적으로 중요한 개념이라던가 비례, 원근법 같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개념들은 따로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어 좋았다. 비슷한 화풍을 지녔거나  카라바조와 젠틸레스키처럼 서로 비교할 만한 화가는 둘의 대표작을 싣고 그림의 특징을 설명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카라바조와 젠틸레스키는 같은 유디트의 그림을 그렸지만 다른 관점을 갖고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한 화가의 화풍을 알아가는 것보다 비슷한 화풍의 화가가 그린 그림을 보는 일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미술사를 언급할 때 화가가 살던 시기의 역사적 장소와 배경을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다른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준다는 것이다. 유럽 뿐 아니라 아시아의 당시 화풍과 대표 화가, 역사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들라크루아와 루벤스가 활동하던 같은 19세기 일본에는 에도 시대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호쿠사이라는 대표 화가가 있었다. 그는 우키요에 예술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서 주목을 받았고 후지산 연작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일본의 우키요에는 유럽의 인상파 화가인 마네, 모네, 고흐, 고갱 등에게 실제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여성 화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좋았다. 최근 들어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화가들이 재조명되고 있는데 이들이 실제 미술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작품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화가를 만나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아예 이름을 몰랐던 화가들과 작품을 만나는 것도 흥미로웠다. 


라파엘로의 부제는 신과 같은 예술가라고 되어 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던 만큼 인간의 이상이 무엇인지 고민하여 그것을 화폭에 담았다. 그가 이상을 삼았던 시기는 고대였는데(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돌아가자는 르네상스가 14세기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16세기까지 이어졌으니 그는 그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교황 레오 10세에게 편지를 보내어 고대 로마 재건 프로젝트를 건의하기도 했단다. 그의 그림에는 신과 같은 모습을 한 인간을 그려서 비례라던지 균형이 완벽하다. 그래서 관념적이지만 완벽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어서 추종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실제로 후대에 신라파엘파라는 것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의 두 번째 삶, 즉 명성의 삶은 시간도 죽음도 거칠 것이 없으니 그의 작품들과 그 작품들을 찬양하는 학자들로 인해 영원무궁하리라." 16세기 이탈리아 철학자이자 신학자 조반니 피코델라 미란돌라가 라파엘로에 대하여 한 말이다(P46). 

그는 당시 교황,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내가 라파엘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하고 나서였다. 그 전에는 이름만 알고 있었지 그가 누구고 화풍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던 상태였다. 그러다 실제로 보고 나서 아름다운 그림에 매료되어 전시를 보고 나오자마자 영어로 된 가이드북 등 관련 상품을 잔뜩 사왔었다. 지금도 가끔 펼쳐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 때의 감각으로 돌아가곤 한다.


이를 비롯해서 다양한 분야에 뛰어났던 미켈란젤로, 자신의 초상화를 유독 많이 그린 렘브란트, 영국의 위대한 화가이자 풍경화의 대가였던 윌리엄 터너, 대담한 시도로 근대의 문을 연 귀스타브 쿠르베, 점묘화를 그린 조르주 쇠라, 20세기 회화의 문을 연 폴 세잔, 색채의 마술 샤갈, 추상의 대가 피에르 몬드리안, 호박 그림으로 유명해진 쿠사마 야요이 등 수많은 화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몇몇 여성 화가들을 소개해본다. 

네덜란드 황금 시대를 대표하는 라헬 라위스는 암스테르담 최고의 정물 화가로 당시 유럽 귀족들에게 그림이 불티나게 팔릴 만큼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책에는 '과일과 곤충이 있는 정물' 그림이 실려있는데 화사한 붓놀림에 채광을 잘 이용한 덕분인지 놀랄 만큼 사실적이어서 중앙 하단의 과일은 꺼내 먹고 싶을 정도로 싱싱해보인다. 반면 상단과 모서리로 갈수록 어둡게 채색하여 한층 과일을 돋보이게 했다. 곤충들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평범성을 

아프 클린트란 사람이 있다. 그는 말레비나 칸딘스키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렸는데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유언에 따라 사후 20년 간 작품이 비공개 상태여서 1960년대에야 비로소 작품이 공개되었고 그로부터도 20년 후에나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그는 스웨덴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재능이 특출났는데 작품은 자연과학이 바탕이 되면서도 신비 사상을 담은 영성에 기반을 한다는 것이 독특하다. 책에는 대표작인 백조 연작 중 그룹 9번 그림이 실려 있다. 

마리기유민 브누아라고 처음 알게 된 화가인데 역사화를 그렸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그는 나폴레옹 1세 시대에 초상화가로 활약했다는데 스승이 다름 아닌 다비드였다고. 그렇지만 여성 화가로서 평론가들의 악평에 마음 고생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남편이 더는 예술 활동을 하지 않게 하여 더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니 참 아쉬울 따름이다. 책에는 '마들렌의 초상'이라고 루브르박물관에 있는 작품이 실려 있는데 원래 작품 제목은 '니그로 여성의 초상'이었다가 이후 '흑인 여성의 초상'으로 변경되고 2019년 이후로 이 이름으로 변경된 모양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상이 변하는 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상파 화가 중 베르트 모리조도 있었다. 그는 최초의 인상파 전시회에 참여했을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화가였다. 그는 카미유 코로에게 그림을 배웠고 특히 여성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요람'이라는 작품은 어딘가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여성이 요람에 누워 있는 아기를 지켜보고 있는 그림이다. 주인공인 여성은 자신의 언니인데 언니도 화가였지만 결혼 후 그림을 그만둔 반면 모리조는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면서 그림을 쉬지 않고 그렸다. 결혼이란 제도가 여성들을 가정에 가두고 꿈과 이상의 세계와 멀어지게 한 것 같아서 씁쓸했다. 


단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무게다. 추천사에 '이 책 없이 미술관에 가지 말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양장본으로 책 무게가 상당하여 갖고 다니기에는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미술관 나들이 전후 또는 미술 작품에 대한 기초 자료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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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2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사...서양미술사의 원탑은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라고...미술사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두꺼워서 읽기 좀 거시기 했는데 몇년 전에 문고본으로 나왔어요. 도판 제외하면 진짜 200여 페이지밖에 안됩니다. 개인적으로 문고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를 추천드립니다. 거의 모든 서양미술사의 원형이 되는 책...사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권이면 다른 서양미술사 책 안봐도 될 정도라고...서양미술 전문가가 그러더라구요..그런 후 미술관 소개 책을 보면 좀더 입체적이고 쉽게 보인다고..^^;;

거리의화가 2025-12-23 16:19   좋아요 0 | URL
언제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5-12-2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책들고?!
ㅋㅋㅋㅋ
저도 살까 하고 봤는데,,, 예약판매여서 장바구니에만 넣어놨었어요
나중에 판매소식이 왔을때 약간 흥미를 잃은 상태!
이 리뷰 보니 다시 궁금해지네요~
전 곰브리치 재독 중이예요~

거리의화가 2025-12-24 09:24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도 이 책 넣어두셨었군요. 이 책 다른건 몰라도 여성 화가들을 많이 다뤄서 좋았습니다.
집에 곰브리치 책이 있는데 엄청 두껍더라구요;;; 700페이지 가까이 되서 엄두가 안나는...!!! 재독이시라니 더 깊이 이해하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