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떠나며 -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
이연식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 번 이곳에서 언급했듯 나는 해방 전후 조선의 역사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동안 관련 책들을 읽어오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일이 있었다니(고?).’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새롭게 알게 되는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매번 놀라움을 느낀다. 동시에 여전히 숨어 있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느끼게도 한다. 


저자는 해방 전후 한반도에 있다가 일본으로 귀환한 자, 해외에 동원되었거나 해외에 거류하다가 한반도로 돌아온 자들에 대하여 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현재 일본 소피아 대학에서 일본인이나 외국인(유럽인)을 상대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우연히 어떤 계기로 작년에 저자의 또 다른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일을 알게 되었다. 최근 출간된 저작은 이번에 내가 읽은 이 책의 후속 시리즈 성격을 지닌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해에 나온 책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두고 전 시리즈인 이 책부터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해방 후의 역사는 주로 한반도의 공간에서 벌어진 일들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해외에 있던 독립운동가의 귀환(임정 등), 일제의 시스템을 답습한 미군정(쌀 파동 등), 미소대립, 이후 국내 정치 세력의 분열, 남한 단독 정부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흘러간다. 다양한 저작이 나오면서 이를 보충해주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국내 공간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해방 후 일본인들이 조선 땅을 떠날 때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일본에 정착해서는 어떠했는지를 통해 한일 양 민족의 ‘헤어짐’의 방식과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일본인들의 회고를 통해 재구성한다(P5).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일본인들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사건과 다양한 계급의 일본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에피소드는 해방 정국의 혼란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일본이 패전하자 조선총독부는 본토에 긴급 타전을 했으나 일본인들의 귀환을 가능한 최대한 미루라 지시받는다. 이는 일본 국내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꺼번에 밀려들 귀환자들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조선인 정치 세력과 타협을 통해 일본인을 보호하려는 고육책을 펼친다. 일본인들은 은행이 파산할 것을 우려하였고 이에 전국적으로 외화를 반출하려 하면서 대량인출사태가 벌어진다. 이 와중에 이를 이용한 환전상들이 수혜자가 되었다. 일본인들은 갖고 있던 물건을 처분하기 위해 각 지역에 있던 세화회를 통했다. 세화회는 조선총독부가 식민기구와 조선군이 무력화될 경우에 대비하여 미군 진주 후에도 귀환 원호 사업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간 조직으로 1945년 8~9월에 걸쳐 전국에 37개의 세화회가 결성되었다고 한다.

 이중 경성일본인세화회는 남한의 일본인들이 1946년 초 대부분 돌아간 뒤에도 미군정의 허가를 받아 체류하며 북한 지역에서 남하한 일본인들의 원호까지 담당한 곳이었다. 이곳의 임원진은 거의 구 총독부 관료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 세화회는 조선에 잔류하는 일본인과 본토로 돌아가는 일본인 중 잔류를 희망하는 쪽에 있던 일본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일본인들은 송환선을 타고 본토로 귀환해야 했다. 미군정은 1945년 9월 23일 민간인 송환 업무 창구를 외사과로 통일하고, 일본인 송환 원호를 위해 설치한 종전사무처리본부와 일본인세화회를 통해 이를 관할, 감독하게 하였다. 송환 순서는 현역 일본군->휴가 중이거나 제대한 군인과 가족->구 일본 경찰 등 바람직하지 않은 자->신관->일본인 광산노동자->일반 민간인 중 원호 대상자->일반 민간인->고위 공직자와 회사 간부->교통 및 통신 요원 순으로 발표했다. 미군정은 이처럼 차등을 두어 귀환 절차를 진행한데다가 일본인 재산 반출에 제한 조치까지 더하면서 혼란을 키운다. 떠나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배 공급이 부족해지자 밀수배가 성행할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조선의 수산왕으로 유명했던 기시이 겐타로는 밀수선을 타고 도망치려다 붙잡히기도 했다. 일부 기업가들은 회사 자금을 횡령한 뒤 미군정의 허술한 관리를 이용해 조선인 브로커를 끼고 몰래 반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은 남한과는 다른 형태가 전개되었다. 주택 매수 조치로 북한의 일본인과 민간인은 사실상 연금 상태에 놓인다. 그리고 이미 일본인들에 의해 산업 시설이 파괴된 상태에서 소련군이 자원을 반출하면서 북한 지역 사람들은 이중고를 겪었다고 한다. 소련군은 일본인을 고급 노동력으로 보아 이들을 귀환시키려하지 않았다. 살던 집에서 강제로 쫓겨난 일본인들은 귀환 전까지 집단공동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와중에도 북한에 살던 일본인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으나 만주에서 온 피난민, 전란을 피해 이동해온 일본인은 환경이 훨씬 열악했다(여기에서도 계급이 나뉘어진 것이다). 1946년 봄이 되면 일본에 귀환하지 못한 이들의 상당수가 집단 남하를 한다(소련의 묵인, 조선인 사회의 요구 등에 의해).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일본인들은 본토로 돌아갔으나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귀환한 일본인 남성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무력감에 빠졌고 여성은 순결을 의심받으며 색안경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들은 귀환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일부는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귀환자들과 전재민과 소개민 등 본토의 전쟁 피해자들을 넓은 범위의 피해자로 뭉뚱그리며 이들의 요구를 적당히 무마하는 선에서 전후 보상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이들은 엄연히 다른 집단이었던만큼 각기 다른 처우가 필요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지원 금액도 턱없이 작았다. 시간을 끌면서 해외 귀환자들의 교부금은 사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는 1980년대 이후 일본 정부가 구 식민지 출신의 피해자가 제기하는 소송에 대해서 ‘개인 청구권의 부인’, ‘시효 지남’ 등의 이유를 들게 되는 나쁜 선례가 되었다.


<요코 이야기>가 이 책에서도 언급된다. 한국에서 이 책이 알려지고 난 뒤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고 여러 권의 책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1940년대 말부터 <요코 이야기>의 저자와 같은 개인 체험이나 수기가 많았다고 전해준다(하긴 왜 아니 그랬겠는가.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대표작으로 후지와라 데이의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를 언급한다. 그 책은 북한 지역에서 돌아간 여성의 체험을 다루고 있다. 이후 이를 대표하는 저작들은 대개 이 책과 비슷한 귀환 여정을 담으며 선례가 된다. 

문제는 수기가 일본인들을 피해의 맥락으로만 파악하게 하면서 역사적 진실과 함의는 놓치게 하고 식민지 지배 시기 가한 행위에 대한 문제는 등한시하게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요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체험 수기가 있는 반면 또 다른 유형의 체험 수기가 있었다. 주인공인 이소가야는 1907년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1928년 함경남도 나남의 보병연대에 보충병으로 입대한 뒤 1930년대 조선의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1945년 이후에는 일본인 문제에 대해서 적극 나섰고 일본에 돌아간 뒤에도 조선의 사정에 대해 계속 궁금해했으며 이것이 한반도의 동향에 관한 책을 집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패전과 해방 국면에서 북한 당국과 소련 점령군, 재류 일본인 사이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어떠한 체험을 하느냐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북한의 역사적 비극(한국전쟁)을 지켜보면서 대다수의 일본인은 자신들이 입은 고난을 군국주의 일본의 무모한 전쟁 행위에 따른 결과로 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조선 민족에 대한 일본의 반세기에 걸친 박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일본인은 얼마나 반성했을까. 그저 자신들이 조우했던 고난에만 매몰되거나, 혹은 조선 민족을 가해자로 생각하고 이들을 미워하며 조선을 떠나지는 않았는지… - P265

양국간 잠재해 있으면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가해와 피해 의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곱씹게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이런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주면 좋겠다. 이제라도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도서관에 희망도서가 도착하는 대로 후속 책을 읽어볼 요량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25-04-1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과 작년에 역비에서 낸 책 모두 읽어봐야겠네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냉전 - 우리 시대를 만든 냉전의 세계사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유강은 옮김, 옥창준 해제 / 서해문집 / 202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냉전은 종식되었는가? 서문에서 저자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공식적으로는 종식된 것이 맞겠다. 그러나 러시아에 푸틴이 집권하고 미국이 패권국의 위치에 있는 동안 세계는 불균형한 상태에 놓여 있으며 긴장과 갈등의 위협에 놓여 있다.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가 냉전의 이데올로기의 영향 하에 자유로울 수 없으며 오히려 종교와 민족, 세력 간 갈등이 심화되어 세계를 더 위협한다고 말한다. 미국은 트럼프가 집권하여 계산기를 두드리며 협상국에 보편 관세라는 미명 하에 폭탄을 돌리고 있고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몇 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 세계에 증오와 차별이 난무하며 배제되는 세력이 늘어나고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는 지금 냉전의 의미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냉전은 이데올로기적 갈등, 생활 양식의 변화, 기술의 발달에 의한 배경 하에 일어났다. 냉전이 진행되는 동안 식민주의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각종 폭력이 발생했다. 레닌의 사회주의 좌파는 몰락한 반면 미국은 패권국으로 발돋움하였다. 그 와중에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미국의 힘을 따르지 않으려는 제3의 세력인 신생 국가들이 있었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서는 탈식민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의 강화로 각종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이 책은 냉전의 시간을 189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로 보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냉전의 시기를 1945년 이후, 아니면 더 뒤인 1950년대 이후로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냉전의 기원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배경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이 특징적인 것은 미소 양국 체제를 중심으로 서술된 냉전사가 아니라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냉전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소냉전과 국공내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공은 18세기 이후의 동아시아사이다. 그래서인지 특히 해당 시기 아시아의 역사적 사건을 잘 짚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한계는 있다.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의 냉전 지구사를 압축적으로 다루었으나 어쩔 수 없이 미소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서술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미소 세력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 있는 서술은 인상적이었다.


1차 세계대전 무렵이 되면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 급진 자본주의 흐름이 생겨나는 동시에 식민주의 저항의 흐름이 일어난다. 그리고 반자본주의의 진영인 소련에 맞서 미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레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대결의 장이 열린다. 2차 세계대전은 미소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냉전의 틀이 만들어지는 공간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서유럽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은 이를 마셜플랜으로 복구시킨다. 소련은 이웃하는 동유럽 국가를 공산당 통치 하에 만들면서 공산주의 체제에 안전성 보장을 강화시켰다. 프랑스 공산당은 소련의 협조 하에 인도차이나에 개입했고 미국은 이에 맞섰다. 베를린은 봉쇄되었고 이는 자연스레 분단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매카시즘으로 반공주의의 흐름을 굳혔고 소련은 숙청과 공개재판을 통해 부르주아라고 자칭 일컫는 세력을 철저히 몰아냈다.

한국전쟁은 전세계적으로 냉전을 격화시켰고 나아가 핵전쟁의 위기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중국은 소련과 관계가 틀어진 뒤 인도와 국경전쟁을 벌이면서 국제적으로 고립된다. 물론 제3세계는 반둥회의 이후 미소 어느 진영도 거부하며 비동맹운동을 내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미소는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각국의 정치와 경제에 개입하면서 세계를 끝나지 않는 갈등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960년대 유럽에서 여성 운동을 비롯한 사회적, 정치적 권리 찾기 운동이 벌어지고 서유럽 국가들이 협력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쓴맛을 본 뒤 닉슨과 저우언라이 만남 이후 중국과 관계 개선을 하고 소련과도 무기협정을 통해 최소한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기로 한다. 물론 인도와 중동,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충돌은 미소가 또 철저히 이용하는 우를 범하기는 하지만. 1980년대 소련의 개혁 개방 이후 공산권 국가들에 시장 경제가 도입된다. 1989년 12월 몰타에서 미소회담 때 냉전 종식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1991년 소련 해체 선언이 나오면서 냉전은 끝이 난다. 중국, 소련과 동유럽이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면서 결과적으로 미국은 승자로 남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후 집권한 클린턴은 시장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자본주의를 강화했고 부시는 미국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지배를 강조했다는 점만 다르다. 


냉전은 자본주의/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확산되고 적용되는 과정에서 벌어졌으나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모습은 제각각이었으며 의미도 달랐다. 이처럼 냉전은 시간적 연대와 지리 공간을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주로 냉전이 1950년에서 1970년대 이전까지의 짧은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 책은 1980년 이후와 냉전이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지금의 세계가 형성된 맥락과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 저자의 다른 저작인 <냉전의 지구사>라는 책이 나온 바 있는데 이 책이 대중적으로 좀 더 편하게 읽히도록 쓰여졌다면 그 책은 좀 더 학술적인 서적이라고 보여진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책이 워낙 방대한 시간에 대하여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 압축적으로 다루다보니 9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페이지에도 불구하고 각 역사를 자세하게 보기는 어렵다. 이 책을 통해 전체적인 냉전의 역사적 흐름과 맥락을 확인하고 각국의 역사는 관련 서적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좋겠다. 

간만에 머리가 즐거운 독서였다. 역시 관심 분야의 책을 읽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요즘 전세계적으로 신냉전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참으로 시기적절한 독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미국과 소련에서 근대 개념은19세기 말에 공통된 출발점을 가졌고, 냉전 시기 내내 많은 공통점을 유지했다. 두 나라는 모두 과거 세 세기에 걸쳐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유럽의 팽창 및 유럽적 사고방식의 팽창에 그 기원이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한 중심-유럽과 그 파생물이 세계를 지배했다. 유럽인이 세운 제국들은 점차 지구 대부분을 손에 넣었고, 이 제국들은 자국민을 세 대륙에 정착하게 했다. 이는 독특히 펼쳐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일부 유럽인과 유럽계 사람은 자신들이 발전시킨 이념과 기술로 세계 전체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 P23

제3세계 운동이 탄생한 것은 바로 신생 독립국을 세우는 과정에 서방이 개입하면서다. 반식민 활동가는 점차 이 용어를 사용했는데, 마르티니크의 활동가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이 1961년 《대지의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저서로 대중화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훨씬전부터 드러나 있었다. 이제 비유럽인이 자국만이 아니라 세계의 미래도 주된 책임을 진다는 인식이었다. 새롭게 탈식민화한 국가 사이의 연대가 세계 다수 민중을 바탕으로 세력권을 탄생하게 한다는 관념이기도 했다. 또한 냉전을 통해 미국과 유럽의 동맹국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책임하며 세계의 발전 상황과 동떨어져 있는지가 드러났다는 사고였다. 소비에트권도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제3세계의 분노의 화살을 정면에서 맞은 것은 바로 아이젠하워 행정부였다. - P385

닉슨은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소련과 미국의 관계에서 안정된 균형을 찾고자 했다. 그가 추구한 목표는 전쟁 위험을 줄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이 창조한 국제체계에 들어오도록 모스크바를 구슬리는 것이었다. 닉슨이 볼 때, 소련은 혁명을 지나온 국가로, 이데올로기보다는 국가 이익이 더 중요했다. 소련이 미국의 세계 권력에 도전하지 않는 한, 대통령은 기꺼이 다른 초강대국으로 소련을 인정하고 동유럽에서 패권을 유지하게 내버려둘 것이었다. 소련의 러시아 지도부는 어쨌든 동료 유럽인이라는 게 닉슨의 결론이었다. - P571

집권 초기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안팎의 정치 지도를 다시 그리고자 했다. 그가 볼 때, 냉전은 적어도 전 지구적 대결과 대화의 부재라는 고전적 형태로는 이제 의미를 잃은 상태였다. 그의 출발점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아니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였다. 그는 유물론적 분석을 믿는 동시에, 결단력 있는 소수가 사회 전체를 대신해 행동할 수 있는 능력도 믿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유지하고 발전하게 하는 데 서방의 관행을 일부 채택해야 함을 깨달았다. 배워서 적용하는 것은 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힘의 원천이라는게 그의 판단이었다. - P768

하지만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고르바초프의 계획은 유럽을 넘어 확대되었다. 그가 볼 때, 냉전을 끝내는 것은 냉전이 장악하기 전인 19세기 말에 존재한 국가 이익 개념으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선다는 의미였다. 그가 품은 전망은 잘 조직된 세계, 즉 유엔 및 포괄적인국제 협정으로 국제 문제를 규제하는 한편, 냉전 시기에 지역 분쟁에서 양쪽이 모두 너무도 자주 벌인 무차별 학살을 방지하는 세계였다.
세계 전체가 자유와 자유시장이라는 미국식 개념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미국이 확신하는 상황에서, 고르바초프의 전망은 순진해 보였을수 있다. - P770

냉전 이전과 당시, 그리고 그 후에도 모든 이가 유리한 위치를 원한다. 고려 대상이 될 기회를. 종교나 생활방식, 영토 등 어떤 문제든 자신들의 것이라고 여기는 대상에 존중을. 종종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은 자신, 또는 자기 가족보다 더 큰 어떤 것, 목숨도 바칠 수 있는 거대한 이념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냉전은 이런 관념이 권력이나 영향력, 통제를 위해 왜곡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이 인간적 충동이 그 자체로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반대로, 만약 핵 절멸로 세계를 위협하는 일이 없이, 병자를 치유하거나 가난을 없애거나 모든 사람의 인생에 기회를 주는 것이 계획이었다면, 우리는 아마 냉전에 투입된 큰 노력을 좋은 시도라고 요약했을 것이다. - P8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는 다만 바라본다. 바라보면서, 바라보는 어떤 것도 언어로 번역하지 않는다. 눈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물들의 상象이 맺히고, 그녀가 걷는 속력에 따라 움직이며 지워진다. 지워지면서, 어떤 말로도 끝내 번역되지 않는다.


완전히 모든 것을 못 보게 될 나이는 아직 나에게서 멀리, 충분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쓰라리고도 달콤한 그 슬픔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는 당신의 진지한 옆얼굴에서, 미세한 전류가 흐르고 있을 것 같은 입술에서, 그토록 또렷한 검은 눈동자들에서 흘러나온 것이었습니다.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어버린 여자가 있다. 여자는 마주하는 모든 현상을 그저 흘려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언젠가는 시각을 상실하게 될 것임을 스스로에게 다그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 있다. 둘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같은 말을 사용하더라도 나는 당신의 언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A라고 말했는데 상대는 A’라고 받아들이거나 아예 다른 B나 C로 받아들여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다. 

말을 내뱉지 못하는 경우는 어떤 때일까 종종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도 낯선 환경 속에 있을 때 어떤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고 또는 불편한 환경에 자리할 때 애써 말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주인공처럼 너무 큰 일을 겪어 충격 속에 스스로 말을 가두는 경우도 존재할 것 같다.

한편 서서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떨까. 가끔 눈앞이 희미해지고 부옇게 보일 때가 있는데 나는 그것만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내 눈이 앞으로는 보이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지난 봄부터 그녀가 밤마다 들이마신 공기 속에 떠돌고 있었을, 호흡기 속으로 무심히 들어와 아직 깜박이고 있을 극미량의 발광체들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세포들의 틈을 희미하게 밝히며, 투명하게 관통하며 떠돌아왔을 원소들을 알지 못한다. 제논과 세슘137. 반감기가 짧아 곧 사라졌을 방사성 요오드131. 혈관 속을 끈질기게 흐르고 있을 뭉클뭉클하고 붉은 피의 입자들을 알지 못한다. 캄캄한 폐와 근육과 장기들을, 세차게 펌프질하는 뜨거운 심장을 알지 못한다.


조각난 기억들이 움직이며 무늬들을 만든다. 어떤 맥락도 없이. 어떤 전체적인 조망도 의미도 없이. 조각조각 흩어졌다가 한 순간 단호히 합쳐진다. 무수한 나비들이 일제히 날갯짓을 멈추는 것처럼. 얼굴을 가린 냉정한 무희들처럼.


시간이 흐른 기억은 대부분 조각나 있다. 일부는 훼손되고 일부는 잃어버린 채. 그래서 완전한 기억은 있을 수 없다. 그 불완전한 기억이 사로잡는 슬픔이 존재한다. 

불완전한 기억의 슬픔을 떠올린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제는 잊혀져버려서 괴로운 슬픔과 버리고 싶은 기억이지만 선명한 사진처럼 되짚게 하는 슬픔 말이다. 


한강의 작품 중 네 권(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희랍어 시간)은 꼭 다 읽어내고 싶었는데 이 책을 완독하면서 비로소 그 목적을 달성했다. 개인적으로는 4권 중 <소년이 온다>가 제일 좋았는데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너무 강해서였을지 모르겠다.

그 다음으로 이 책을 순위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번 내 마음을 훔쳤고 감정이 일렁이게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와 소설 중간 쯤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들어가있기도 하지만 어미의 동어 반복형 문장을 통해서 마치 시를 읊는 듯한 경험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약간은 묘한 것이 맛이 느껴지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대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을 법한 딱딱한 어미를 볼 때가 있어서 그랬다. 

앞선 소설들과 비슷하게 교차적 편집 구성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가 바로 이어지는 전개가 아니다. 문장 자체는 긴 호흡을 가지고 있으나 다음 문장이 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 템포 또는 두 템포 있다가 다음 내용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매력이 있는 소설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등론과 차이론 간의 오래 이어진 갈등은 이분법적인 구조를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평등과 차이, 개인과 집단정체성 간의 문제는 어찌 보면 당연하며 이 긴장을 인정하고 그 긴장을 오히려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5-03-15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 저는 아주 많이 남았습니다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5-03-19 13:13   좋아요 1 | URL
재독하는 책이라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재독해도 한 번에 다 읽지는 못하겠더라구요. 여러 번 나눠 걸쳐서 읽었습니다. 끝까지 완독 화이팅이에요!

책읽는나무 2025-03-21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신 겁니까? 와. 대단하십니다. 저는 어려워서 겨우 겨우 읽고 있어요.^^ 재독하신 책이셨군요?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재독해도 어려울 것 같아요.ㅜ.ㅜ 암튼 화가 님 존경합니다.^^

거리의화가 2025-03-24 16:28   좋아요 1 | URL
이 책이 생각보다 어렵죠. 여성의 노동사를 다루고 있는데 사례가 미국도 아니고 유럽이다보니 낯설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재독할 기회를 얻은 것에 저는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무 님 잘 지내고 계시죠? 모쪼록 건강이 제일입니다.

책읽는나무 2025-04-01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하고 화가 님 백자평 다시 읽으니 완전 쏙쏙 눈에 들어오네요. 신기하게두요.^^ 그래도 이 책을 재독하신 화가 님 다시 봐지구요.ㅋㅋ

거리의화가 2025-04-01 13:11   좋아요 1 | URL
완독의 힘 아니겠습니까?ㅎㅎ 재독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거죠. 그래도 책을 구입하고 얼마 안 되서 초독하고 1년 남짓 지나 이 책을 다시 읽을 기회가 생긴 것이 신기합니다. 함께 읽으면서 다른 분들 글도 읽고 비교해보고 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더 좋았을텐데 그러지는 못했네요. 아무튼 나무 님 완독 고생하셨습니다^^

다락방 2025-04-01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거리의화가 님도 평등과 차이에 대해 언급하셨네요. 그 부분은 정말 좋았어요. 제게도 재독이 필수로 보입니다!!

거리의화가 2025-04-04 14:45   좋아요 0 | URL
다락방 님도 그 부분이 좋으셨군요. 수월한 책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새로운 사례를 얻었습니다. 특히나 차티스트 운동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게된 것 같아요.
 
24시간 시대의 탄생 - 1980년대의 시간정치
김학선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0년대는 대한민국 현재 시스템의 대부분이 형성된 시기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독재 정권과 차별화를 두고자 했던 신군부 정권은 야간통행 금지를 해제하면서 국민들을 24시간 체제로 편입시켰다.

국민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이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7년 헌법 체계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또 지금의 텔레비전 편성 시스템이 갖춰진 시기이기도 하다. 아침 드라마를 비롯하여 연속극, 아침-저녁 뉴스 등 정기적인 시간에 고정적인 방송을 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유튜브, OTT 등 다양한 매체가 생기면서 TV 방송도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시스템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당분간 독서 모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책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북으로 보이길래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상사, 문화사, 정치사, 경제사 등 다양한 관점을 일정 부분 각각 차용하고 있다. 읽기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며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야기다.


1980년대 역사를 다룬 책은 보통 3s 정책, 경제 발전에 집중하여 기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이 그것과 비교하여 어떤 차별점을 두어 신선함을 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근대적 시간체계의 시간은 기억정치의 장(場)이다. 때문에 시간의 기억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 간의 충돌은 계속된다. 

같은 사건, 같은 경험을 한 시간을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그중 어떤 시간은 삭제하고 어떤 시간은 기념할 것인가의 문제, 그 시간의 의미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한 국가 또는 사회의 갈등을 유발함과 동시에 통합으로 이끌기도 한다.


과거에 모두에게 달랐던 시간은 근대에 오면서 동질화되고 수량화되면서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추상화된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24시간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업이 노동자를 쥐어짤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밤샘 근무를 비롯하여 노동의 강도는 더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 더욱 심화된다. 


'노동자의 날'은 본래 '법의 날'에서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메이데이가 그 기원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 의미는 삭제하고 법의 날로 만들었다. 

1989년 정부는 법의 날 행사를 개최했고 한국노총은 같은 날 세계노동절 행사를 개최하려다 정부에게 저지당했다.

지금은 당연한 '노동자의 날'(근로자의 날은 박정희가 명명한 개념이다)이 이런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같은 날을 두고도 해석을 달리 했다는 것은 이를 비롯해서도 많다.


국경일과 법정공휴일을 정하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정부는 양력으로 국경일과 법정기념일과 법정공휴일을 제정했다. 이후 미군정의 서머타임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연호는 단기를 채택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5.16 이후에서야 국가 연호는 서기로 채택되는 과정을 거쳤다.

서머타임제는 대한민국 실정과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서구 근대를 받아들인다는 명목 하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는 현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 시간이 연장되고 야간화되어 시위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명절이 공휴일에 포함되는 과정이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설, 추석, 한식을 의미 있게 보냈다.

그러나 이는 1980년이 되어서야 공론화되고 지금의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1980~1984년까지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자는 의견이 공론화되었고, 1985~1988년에 관공서 공휴일로 법제화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 이전까지는 명절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음력설을 명절로 쇠는 것은 마치 이중과세 논리로 치부되어 억압되었다.

추석은 이전까지 추수절로 불렸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음력설과 더불어 법정공휴일로 비로소 안착되었다고 한다.

한식은 일제강점기 때 식목일로 그 의미가 변경된 뒤로 그 의미가 굳어져버린 경우다(요즘 한식이라는 명칭을 아는 이들도 드물 것 같다).


이 책은 1980년대를 설명하기 위해 멀게는 대한제국 시기의 역사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4시간 시대가 되면서 대한민국 주체들은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시간정치에 의해 다른 삶과 기억을 가졌다는 것에 여실히 공감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정권은 자기들 구미에 맞는 정책을 펼치지만 국민은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것이 정권에 반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알튀세르에 의하면 한 사회는 상이한 역사적 시간성을 가진 주체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

이는 근대적 시간의 전일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근대적 시간체제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체들 간에는 시간 분배와 배치를 둘러싸고 시간기획과 시간정치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