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란 무엇인가 -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맥락과 집단학살의 본질
오카 마리 지음, 김상운 옮김 / 두번째테제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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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난민이 된 이유, 이스라엘 건국의 의미와 그 이후의 과정, 가자 지구의 봉쇄가 의미하는 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밝히고 있다. ‘점령은 타자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폭력이다.‘ 이 문제는 인도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임을 자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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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2
황향주.이민정.장지연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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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은 역사 속 여성 중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신체적 욕망인 간통, 타인을 저주하는 욕망이 있었던 가 하면 수절에 대한 욕망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12세기 고려 안정궁주가 주인공이다. 그는 의종의 둘째딸로 당시는 무신정변이 일어나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때였다. 이로 인해 의종은 폐위되고 안정궁주의 남동생이 명종으로 즉위하였다. 그녀의 남편인 왕박은 왕씨 성을 가졌으므로 태어날 때부터 국왕의 예비 사위 자격이 있었던 사람이다. 왕박은 형과 동생이 있었는데 삼형제 모두 혼인 관계를 맺으며 고려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형은 인종의 셋째 딸 창락궁주와, 동생은 의종의 첫째 딸이자 안정궁주의 언니인 경덕궁주와 혼인을 것. 이처럼 과거 왕실의 근친혼은 흔했다. 가까운 중국도 그렇고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실도 근친혼이 당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중국의 경우 자식은 부계로 계승된다는 원칙 하에 다른 가문으로 시집간 딸의 자식들은 다른 부계 가문 소속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고려는 중국과 달리 딸은 출가외인이 아니었기에 딸뿐만 아니라 외손과 사위 또한 가문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던 점이 서로 다르다. 그리하여 동생은 제후가 된 반면 왕박은 그 하위인 제왕에 머물렀다. 왕박은 경덕궁주의 상대가 되기에는 나이차가 커서 후보군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의종이 인종의 맏아들로 동생들과 나이 차가 커 자식들도 사촌 그룹에서 연장자에 속했기 때문이다(당시 의종의 남자 조카들은 10대 초반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언니의 남편감으로 거론되었다 탈락한 인물을 배우자로 맞게 된 안정궁주는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난한 결혼 생활을 하는듯 보였던 안정궁주는 어느 날 악공 가영의 연주를 듣고 반한다. 악공은 서인과 천인의 경계에 있던 신분층이었다. 고려 왕녀에게 부인으로서의 도리는 당연한 의무가 아니었다. 왕실의 체면을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안정궁주는 무엇이든 시도하고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왕실에서 악공과의 간통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만약 안정궁주가 사대부 집의 엇비슷한 나이대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들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17세기 인조의 후궁이었던 조 귀인이다. 그녀는 1630년 궁녀로 입궁하여 인조의 총애 속에 1649년이 되면 종1품 귀인에 봉해지며 궁궐의 실세가 되었다. 조 귀인은 인조의 정비인 장렬왕후에 이어 인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아들을 왕에 올리고 며느리를 저주하고자 했다. 장렬왕후를 질투한 마음은 짐작할 수 있으나 시기가 인조 사후였다는 것이 이상하다. 또한 며느리를 저주한 점도 이상하다. 장렬왕후는 일찍 사망한 인열왕후 대신 계비로 간택되 들어와 중전이 되었으나 인조의 마음은 이미 조 귀인에게 가 있었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하여 정통성이 부족했기에 항상 주변을 경계하였고 병자호란이라는 큰 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이괄의 난을 비롯하여 자신을 겨냥한 궁중 저주 사건이 4차례나 발생하는 건 물론 그때마다 병고를 치렀다. 조선이 아무리 유학 이념을 기반으로 한 국가였다 하더라도 과거에는 병이 저주 때문이라는 믿음이 일반적이었다. 사람이 자꾸 아프면 기력이 떨어지는 만큼 평상시의 컨디션으로 살아가기 어렵다. 인조도 그리하여 무속신앙의 힘에 기댔던 것으로 보인다. 조 귀인을 건드릴 사람은 궁중 내 없었으나 그녀는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인조의 또 다른 후궁인 이씨가 조 귀인을 음해하려 했다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인조는 결과적으로 조 귀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처럼 공식 기록에서 확인되는 ‘악녀 조귀인‘은 유학 이념에 충실한 남성과 무속신앙에 기대는 여성이라는 조선의 젠더화된 구조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며 욕망에 사로잡힌 비도덕적인 여성이 선택하는 저주라는 수단은 조선의 상층 남성들이 좀처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조의 사례에서 확인되듯, 사실 그들도 현실에서는 무속신앙의 힘을 인정했다. 다만 그것을 공식적으로 표하지 않을 뿐이었다(P124).

세 번째 이야기는 주인공이 여럿으로 조선후기의 열녀 현상을 다룬다.
행실이 나쁜 부녀 및 재가한 여성의 소생은 동서반의 관직에 서용하지 않는다-경국대전 이전 경관직. 이는 조선후기 사대부가 여성들의 재혼을 막는 가장 강력한 금령이 됐다.
조선초기만 해도 여성들의 재혼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세종 때 시작된 유학 기반의 사회 체계는 성종 때 강화되고 완성되었다. 조선후기 사가의 여인은 과부가 되어도 수절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미덕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함양 박씨는 혼인하자마자 남편이 사망하고 과부가 되었다. 그녀는 남편과 같은 묫자리에 묻히길 원한다는 유서를 쓰고 남편의 대상 날 제수를 장만하여 제를 지낸다. 그리고 상에 온 삼촌에게 자신이 죽을 것을 알린 뒤 준비된 시각에 독을 먹고 자결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었다. 이것이 세종 때 만들어진 삼강행실도의 영향인가 싶으면서도 심정적으로 온전히 이해는 가지 않았다. 18세기 초 가난한 평민이었던 향랑은 혼인 후 남편의 손찌검이 계속되자 도망쳤지만 어디서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자 물에 빠져 자살했다. 당시 하층 여성들의 자살은 성폭력이 만연하던 환경 하에서 이루어졌다 한다. 일부 열녀라는 호칭을 부여받는 경우에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 사대부 남성의 시선은 그녀들을 주체성이 있는 사람으로 봤을 리 만무하다. 하층 여성들의 열녀 현상은 성폭력에 대한 저항의 의지, 자신들의 주체성을 천명하고자 한 의지의 표출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의 정절을 추앙하는 문화 속에서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게 되자, 이들은 더욱 과감히 이를 결행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조선이라는 국가권력이 부여한 규범에 에속되는 과정이었으나, 동시에 그러한 종속을 통해 주체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했다(P169).

특히 마지막에 본 과부살이와 열녀 현상을 욕망으로 본 시선이 새로웠다. 나도 사대부 남성의 열녀 담론의 답습론자가 아닌가 싶어 부끄러웠다. 조 귀인의 이야기도 그렇다. 무속 신앙을 믿는 것을 터부시한 사대부 남성과 임금이었지만 그들도 그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고려 시대 황실에서의 연분 맺기 문제도 그렇다. 왕씨만을 고집한 것은 역설적으로 딸이든 아들이든 그 일가는 모두 황실의 일원이었기에 더 압박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흥미롭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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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55호 - 2026.여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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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집호의 기사는 전 세계적으로 이는 우경화 흐름에 따른 나라별 역사 인식의 우경화를 다루었다. 독일과 프랑스, 미국, 중국을 다루었는데 과거 극우 나치에 몸살을 앓았던 독일이 뉴라이트 계인 아르민 몰러 이후 역사수정주의로 나아가는 현상을 짚었다.
몰러에게 과거청산은 독일 민주주의의 윤리적 토대가 아니라 독일인의 불안을 재생산하고 정치적 자기주장을 제약하는 권력 기제였다(P28). 나치 범죄를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기억이 현재 독일인의 자기이해를 규율하는 방식을 공격하는 것. 독일사의 긍정적 연속성을 회복하려 하면서도, 그를 위해 과거청산의 도덕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 희생자의 기억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 기억이 독일인의 정치적 자기주장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하는 것(P40~41).
2차 세계대전 친나치 정권이 세워진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홀로코스트 부정 논리를 만드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홀로코스트 부정 담론의 출발점에는 니체가 제기하는 모든 가치의 전도가 있었다. 전후 극우 지식인들은 불공정한 관점이 전쟁범죄에 대한 공인된 진실을 만들었다고 간주하고, 이 가치 체계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명분을 통해 홀로코스트 부정 담론을 구성하고, 네오-파시즘의 논리를 확대해갈 수 있었다(P70~71).
미국의 자유지상주의에 중심에 서 있는 미제스연구소는 링컨 부정론으로 역사서사를 정치화시켜 대안 흐름을 만들어나간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의 승리 이후에도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해체하며 주 중심의 정치 경제를 주장하며 국가 없는 자유시장 경제를 도출해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중국은 과거를 이용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경우다. 이는 고대 ‘천하‘주의, 중국적 세계질서의 역할을 선택적으로 취하여 평화적 세계라는 허구적 신화를 그리는 방향이다.

특집 코너에 이어 기획 코너는 혐오의 역사와 극우정치로 절묘하게 흐름을 이어간다. 우선 증오와 혐오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한국에서 북한을 증오와 혐오 대상으로 선동하는 방식을, 중국의 시진핑이 과거의 유교 천하체계를 이용해 국가주의적 방식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각각 설명한다. 두 글 모두 흥미롭게 읽었다.
극우는 시대에 따라 정동의 지배적 형식을 변형시켜왔지만, 북한을 자기 이해 관철의 수단으로 삼아왔다는 점에서는 일관되었다(P151).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중국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초기의 과도한 기대도, 최근의 과도한 혐오도 모두 중국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P190).

역비논단 코너 중에서는 한국 역사학의 현재성에 대해 짚는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는 비단 한국 역사에만 그치는 문제는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역사가 현재적 시의에 물러나 뒷짐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에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글이라 생각된다.
현실과 괴리되거나 대중들과 호흡하지 못하는 역사학은 앞으로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라는 시각에서는 역사학이 더욱더 현실에 집중하도록 추동한다. 그럼에도 역사학은 현실의 문제를 연구의 소재로 끌어들일 뿐 현실 비평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P293).
근대와 서구중심적 발전사관이 퇴조하는 대신 그 자리는 단순한 실증으로 채워지거나 안정 혹은 장기지속을 강조하는 논리로 대체되기 쉽다. … 이러한 관점은 한국의 뉴라이트 역사관과 일부 접점을 이룬다. 서구 학계가 조선 사회의 특성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발전에 대한 부정과 노예제사회라는 성격 규정은 근대 이전의 조선을 암울하고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이들에 의해 오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적 관점의 이러한 오용은 극우 매체나 흥미를 좇는 상업 매체에 의해 젊은 층을 포함한 대중들의 편견을 확산시키고 있다. 조선시대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줄어드는 대신 대중들의 편견은 늘어날 우려마저 있다(P294, 295).
그리고 여운형의 친일행각을 조사한 글도 흥미로웠다. 년초에 여운형을 두고 또 친일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서 알았는데 그에 대하여 연구자는 조목조목 반박 논리를 편다.
찰스 오리오던(이 하지에게 보낸 최종 결과 보고서:1947.1.11)의 설명은 여운형에 대한 미군정의 편견과 예단, 마타도어에 근거한 공작적 접근이 이를 뒷받침할 일본 정부의 문서 확보, 고관들의 증언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반대의 진실과 대면하게 되었다. 여운형은 친일협력자가 아니라 한국의 절대독립론자이며, 총독을 비롯한 일본 고관들이 모두 인격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한국의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P334).

특집이나 기획 원고도 좋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서평란이다. 신간을 거의 다루지만 계간지인 만큼 책을 읽고 서평을 쓰려면 시간이 걸리므로 서평을 읽을 때쯤 간혹 이미 읽어본 경우가 있다. 그럼 이 책을 연구자는 어떻게 읽었을지 확인해볼 수 있어 좋다. 안 읽어본 책이라면 일단 서평을 읽고 관심이 가는 책인 경우 보관함에 담아두거나 바로 읽고 싶은 책은 주문을 해서 읽어본다. 이번 호의 서평들 중 ‘자카르타가 온다‘는 얼마 전 읽었던 책이라 반가웠고 ‘중국 시민의 한국전쟁‘은 보관함에 담아뒀던 책이었으나 요즘 너무 묵직한 책들을 많이 읽은 것 같아 빼두었었는데 서평을 읽으니 궁금해져 다시 들어간 책이다.
‘심문실의 한국전쟁‘을 보니 앞선 ‘중국 시민의 한국전쟁‘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궁금하다. 미국의 한국 전쟁에 대한 포로 송환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에 상당 부분 다뤄진 적이 있으나 재미사학자의 입장에서 그 기원을 추적하여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자료적으로 한국 역사학계의 입장이 반영이 덜 되었다는 것이 아쉽지만 구체적으로 읽어보고 정리해보려 한다. 이외에도 현대중국에 대한 역사 인식을 담은 책과 이주사에 대한 책이 담겨 있어서 읽을 거리가 또 넘쳐나게 생겼으니 과연 행복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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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세계사 - 6천 년 동서양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 최소한의 교양 수업
이다지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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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교양서의 목적에 충실한 세계사 책이다. 400여페이지 남짓 되는 분량으로 읽기 쉬우면서도 핵심만 추려내 부담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작가가 교편을 잡고 강의하는 선생님이라 책의 내용을 강의를 듣는 듯 역사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핵심만 요약해서 듣는 유튜브 강의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라면 책은 독자가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각 장마다 핵심을 요약하고 말미에는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연표와 대표 유물 사진을 실어 놓아 역사의 이해를 더 높였다. 


책을 요약하기보다는 인상적인 부분 위주로 언급해보고자 한다. 

먼저 프랑크 왕국과 전성기 왕인 카롤루스 대제가 있다. 프랑크 왕국은 앞선 게르만족과 달리 기독교를 수용한다. 카롤루스 대제는 학문과 문화를 부흥시키고 문자 체계를 정비하였는데 정작 자신은 글 읽기에 서툴렀다 한다. 이때 교황 레오3세가 반대파의 습격을 받자 카롤루스 대제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카롤루스가 진압을 해준다. 당시 황제 명칭은 동로마 제국에만 쓸 수 있었는데 교황이 카롤루스를 황제로 인정하는 조치를 내린다. 1950년 신설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샤를마뉴상은 카롤루스의 업적을 기리며 유럽 통합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한다고 하니 그의 업적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11세기 이슬람의 확장으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충돌하며 벌어진 십자군 전쟁은 200여 년에 걸쳐 지속되었다. 그 영향으로 경제 분야에서 큰 변화가 일어난다. 상인이 성장하고 금융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영주가 사는 유럽의 성곽 도시 부르크 근처로 상인과 수공업자가 몰리며 자치 조직이 생겨난다. 후대의 ‘부르주아’라는 명칭이 부르크 안에 살던 사람들을 뜻하는 것으로 상인들, 수공업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찍 저문 서로마와 달리 동로마인 비잔티움 제국은 오래 살아 남았다. 이중 유스티아누스가 전성기를 이끌었다. 사실 유스티아누스라는 이름은 아는데 그 곁에 있었던 ‘테오도라’라는 여인이 있었던 것은 미처 몰랐다. 테오도라는 천민으로 둘은 결혼할 수 없었음에도 유스티아누스는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저 황제의 아내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고 정치 감각이 뛰어났다. 전차 경기에서 흥분한 관중에 의한 사건이 반정부 시위로 번지자(니카의 반란) 유스티아누스가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려했지만 그녀가 회유해 마음을 돌렸다고.

르네상스 이후 신항로가 개척되고 상업으로 인해 돈을 번 부르주아는 실세로 부상한다. 앞선 중세 유럽의 지방 분권 체제에서 서유럽은 절대 왕정으로 변화하는데 부르주아가 왕권에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절대 왕정은 지방마다 서로 다른 세금을 내야 하는 것보다 중앙 집권적 체제가 더 수월했던 부르주아와 부르주아가 준 돈으로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관료와 군대를 육성할 수 있었던 왕권이 맞물린 결과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먹은 음식이 랍스터였다(랍스터가 너무 흔했다고)는 이야기와 프랑스 혁명이 정치적 민주화 뿐 아니라 식탁의 민주화도 가져왔다는 이야기, 나폴레옹이 전쟁 때문에 병조림을 개발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는 메카의 유력 부족 출신이었으나 일찍 부모를 여의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결혼 상대는 당시 잘 나가던 상단을 이끄는 주인으로 40살의 과부인 ‘하디자’였는데 무함마드는 그녀와의 결혼으로 경제적 안정을 선택한 것이다. 

이슬람의 지하드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지하드는 큰 지하드와 작은 지하드로 나뉘는데 큰 지하드는 바르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고 작은 지하드는 (이슬람 공동체, 신앙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로) 타인을 공격해서 땅을 뺏는 전쟁을 말한다. 지하드가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물론 작은 지하드는 그들의 명분일 뿐이고 사실상은 상대에게는 날벼락과도 다를 바 없는 것이기에 생각해봐야하는 것이지만.

캘리그래피가 쿠란을 아름답게 쓰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오스만 제국에서 커피와 카페 문화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오스만 제국의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술탄 아흐메트 사원의 첨탑이 6개가 된 이유가 건축가의 꾀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한편 오늘날 중동 갈등의 씨앗을 만든 영국의 무책임한 외교는 다시 봐도 답답한 측면이 있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기에 더욱 그렇다.  

인도의 카스트는 포르투갈인들이 들어와 붙인 이름이라 한다. 원래 이름은 ‘바르나’라고. 알렉산드로스 원정의 영향으로 그리스 문화가 유입되어 동서양이 융햡된 불상이 탄생했다. 인도의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지대로 주민 대다수가 이슬람교임에도 인도에 통합되면서 분쟁 지역으로 남아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인도가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갖춘 것은 생각보다 오래 되지 않았다. 1991년 외환위기 후 규제를 완화하고 외국 자본을 유치하면서 시장을 개방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정도로 언급하고자 한다. 책을 직접 읽어보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서술상 서양사는 권력투쟁 축의 이동을 통해 본 역사라 기존의 역사 관점을 답습하는 측면이 있고 동양사는 서양사와 달리 지역별로 구분(서아시아,인도,중국,일본)하여 일관성이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서양사와 동양사를 합쳐 서술하기에는 복잡도가 올라가는 측면이 있었을거라 보인다. 어쨌든 대중들에게 설명하기에는 이 정도가 적당했을거란 선택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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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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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사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속임수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런 사실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 P67

년초 시사인의 책 추천사를 읽다가 담아둔 책이다. ‘이 책에서 예수는 신도들에게 복을 내리거나 쿠데타를 옹호하는 신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와 삶을 향해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자로 부활한다. 최근 한국 기독교계를 바라보며 이 위대한 종교에 염증을 느낀 신앙인은 물론 비기독교인 독자에게도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이런 추천사를 보면서 담아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매한지는 되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책 표지가 노려보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또 덥썩 손이 가지는 않았다. 유물론자이고 무신론자인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오롯이 이해 안가는 부분도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읽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으로 생각되는 예수는 랍비였고 랍비는 이야기꾼이라는 것과 혼란한 현실에서 (올바른) 사실을 찾고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 이야기꾼이란 그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서 하는 만담가 같은 것은 아니고 현자나 철학자처럼 언제든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할 수 있는 교훈을 전달해줘 깨달음을 주는 이에 가깝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삶과 분리되지 않은 메시지라는 것에 있기에 의미가 있는 듯하다.

갈수록 다양화되고 파편화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나가기란 쉽지 않은 듯 싶다. 내가 옳다고 여겼던 진실이 다른 쪽에서는 옳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다원화된 세상에서 상대주의란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흐름이지만 한편으론 쉽게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하면서 현실을 놓아버린다면 냉소주의로 흘러가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되겠어?‘처럼 낙관적인 반응보다는 회의적 반응이 되니 더는 긍정적인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도 그런 ‘윤리적 사유‘ 논의의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본래 절대주의적 믿음이란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나친 믿음이 가져오는 파국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절대주의적 선이란 것이 있을까. 그래서 공감이 가면서도 동시에 든 질문은 신자유주의 사회 이후 각자도생이 되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공정과 상식을 비롯한 윤리가 통할 수 있는가와 통용될 수 있는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있는가였다.

그런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 어쩌면 작가가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한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학생들이 던진 질문들이 날카로운 것들이 많았다.

지적이고 건강하고 매우 메력적인 19세 이상 30세 이하의 영국계 미국인 여인 구함.
키는 5피트 4인치 내지 7인치, 체구는 작거나 중간 정도로 눈은 갈색이나 푸른색이어야 함.
나에게 이것을 보여준 여학생은 체외 수정을 위해 쓸 난자를 구하는 광고라고 했다. - P97
난자를 구하는 광고가 통용되는 세상에서 선이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부 축적이나 부패 문제에 대한 언급이나 종교 갈등(나아가 믿음을 빙자한 전쟁)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두루뭉술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과학적 의학이 모든 형태의 질병을 물리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리라는 현대인의 확신이 너무 순진하다는 작가의 말도 좀 공감하기 어려웠다(그럼 미신을 믿으란 말인가).

예상할 수 있는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은 소수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소수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다른 종교들과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의 소수일 것이 틀림없다. 이 말은 미국의 공공 정책은 다양한 종교 집단과 무종교 동료 시민들이 공유한 가치를 반영해서 수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등잔과 소금의 귀중함이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되고, 그 형태가 어떠하든 그리스도교 제국주의에 대한 엄중한 질책으로 남게 되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P206
예루살렘에 관한 과목을 택한 학생들에게서 내가 얻은 귀중한 통찰 중 하나는 그 악명 높은 ‘예루살렘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예루살렘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도시를 거룩하다고 믿는 모든 종교 전통 출신으로 종교에 헌신적인 학생들이 그 도시를 공유하는 길을 생각해낼 수 있다면, 그 참혹한 과거를 가진 도시의 장래도 어느 정도 밝아 보인다 하겠다. 필요한 것은 정치적, 윤리적 의지와 이와 함께 성스러운 장소가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320

예를 들면 작가는 이렇게 굉장히 밝은 희망을 그리고 있으나 과연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이는 윤리적인 문제로만 치부되기는 어려워 보여서다. 버튼 하나면 무기를 날려버릴 수 있는 세상이기에 돈과 이익이 얽혀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과거에도 수없는 종교 갈등과 전쟁이 있었기도 하고.

그래도 ‘설화가 없으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밀려오는 단편적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한다는 이야기엔 공감이 갔다.

굳이 성경의 내용이나 교리적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읽을 수 있음을 나누고 싶었다. 간단히 100자평을 써야 하나 했는데 그러기엔 또 내용이 더 긴 것 같아 리뷰를 썼다.

역사의 궁극 완성을 이야기할 때 나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만 해서도 안 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이전 억겁의 세월을 지탱해온 실재를 위한 희망이어야 하고, 그 희망은 목성의 가장 먼 달이나 지극히 작은 우리 이웃을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 P437
부활, 승천, 재림 같은 그리스도교 언어는 이제 위기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언어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마구 급조할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상상과 세속이 뒤섞이고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어디에서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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