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려 보니 6월의 반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잘 읽지도 못하고 안 읽으니 쓰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역시 읽기와 쓰기는 일종의 훈련이라 계속 하지 않으면 퇴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기름칠을 위해 짧게나마 끄적여 본다.




유발-데이비스의 <젠더와 민족>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 달 여성주의 책을 읽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 달 책은 꼭 읽고 싶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젠더'와 '민족'이란 키워드는 둘 다 내가 관심을 갖는만큼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는 초반부터 인류학, 사회학,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의 저자와 인용 목록이 등장한다. 읽다 보면 어지럽기는 한데 예전보다는 나아졌음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작가와 관련 책의 목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해서 총 3장까지 읽었다. 지금까지 읽으면서 생각한 바는 제목의 키워드가 글에 전체적으로 잘 녹아들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따로국밥 같다고나 할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문장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아쉽다. 




지금까지 읽은 부분 중에서는 맥락과 상대주의라는 키워드에 눈길이 갔다.


도나 해러웨이의 '상황적 지식' 등의 개념을 따르고 있는 게이튼스의 주장은 젠더 관계를 분석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아는 언제나 상황적이다"라는 주장의 중요성은 젠더 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관계의 분석과 관련이 있다. - P30



해러웨이는 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학자 여겨진다. '사이보그 선언문'과 '반려종 선언'을 통해 내가 얻었던 지식적 충격은 지금도 유효하다. '맥락'context는 보편주의와 절대성과 반대 지점에 있는 개념이다.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지식은 다른 결론을 낳는다. 세계의 시공간은 좁혀졌지만 오히려 자국 보수주의가 득세하는 지금 '맥락'은 더 중요해졌다.


단일한 시각은 이중적인 시각이나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의 시각보다 나쁜 환상을 만들어낸다. - 24P 





문화 개념은 조너선 프리드먼이 설명한 보편적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이들과 상대주의적 문화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기적 논쟁을 통해 오랫동안 결정되어 왔다. 전자의 관점에 따르면, 다양한 사람과 집단들이 자신의 '발달단계'에 따라 특별한 서열을 지니게 되는 인간 문화 전반이 있다. 이를 거부하고 있는 이들이 주장하는 상대주의적 문화 패러다임에 따르면, 문명마다 상이한 문화를 갖고 있어 이들이 지닌 고유한 측면에서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 - P79~80



문화 개념에도 '보편주의'와 '상대주의'가 있다. 클리퍼드 기어츠는 문화 상대주의를 주장하는 학자 쪽에 속한다. 불과 몇 달 전 읽은 <문화의 해석>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솔직히 그 때는 꾸역꾸역 읽었는데 몇 달이 지나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읽고 안 읽고는 역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인간이라는 것이 발생학적으로 과연 무엇인가에 관하여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사실을 몇 가지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민족의 문화적 특수성, 즉 그들의 특이한 점들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개념의 구성-또는 재구성-에 인류학이라는 과학이 기여한 주요한 공헌은 그것들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준 데에 있을 것이다. - P63

클리퍼드 기어츠는 문화의 개념에 대한 이론을 설명하고 실례로 자바, 발리, 모로코 등의 원주민 문화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 문화적 관계를 드러내 보인다. 직접적인 현지 조사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체계와 이론을 정립해나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도 에드워드 사이드처럼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책의 부제가 '정체성의 정치에서 횡단의 정치로'다. 정희진 선생님이 생각이 안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에서 나는 '트랜스', '횡단'이라는 개념을 뚜렷이 자각할 수 있었다. 


융합은 '범학문'이라는 표현처럼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다. 융합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식이 만나서 새로운 앎을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횡단적 사고' '사선으로 보기' '가로지름(crossing)' '조우(遭遇)'가 융합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P46~47


'위치성'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나의 위치에서 생각한다는 건 성별, 계급, 인종, 지역 등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 속에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만물은 결국 '나'라는 렌즈를 통해 인식되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앎은 무의미하거나 대개는 사회악이다. - P59


요즘 특히 나는 맥락과 위치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곤 한다. 내가 어떤 입장에 있느냐에 따라 사안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한 맥락 안에서 ‘민족‘과 ‘국가‘의 관계는 다른 형식의 민족 집단과 국가의관계와 함께 분석되어야 한다. 이것이 여성들이 이러한 과정에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이해하는 전제조건이다. - P39
중요한 것은 혈통 개념에 기초한 민족 구성물과 문화에 기초한 민족구성물에서 비롯된 관심들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둘 모두 국가 시민권에 기초한 민족 구성물과 분석적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젠더관계의 다양한 양상은 이러한 민족주의 기획의 모든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에 대해 적절한 어떤 이론화에는 중요하다. - P50

‘재생산권’은 보다 일반적인 여성 해방 운동의 중요한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보다 일반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투쟁의 중요한 일부로 봐야 하며, 이때 사회에서 사람들이 처한 위치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 P76

여성들은 종종 집단체의, 집단체 경계의 문화적 상징으로, 집단체의 ‘명예’의 잉태/전달자이자 세대를 잇는 집단체 문화 재생산자로 구성된다. 특정 법령과 규제들은 ‘올바른’ 남자와 ‘올바른’ 여자란 누구/무엇이며 집단체 구성원들의 정체성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정의하면서 대체로 발전한다. 식민과 종속 과정에서 비롯되는 권한 박탈의 감정들은 식민화된 남성들을 통해 종종 남성성 박탈과/이나 여성화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저항과 해방의 과정에서 남성의-그리고 더러는 보다 중요하게 여성의-역할 (재구성)은 대부분의 이러한 투쟁에서 중심이었다. 그러나 문화들이 동질적이지 않은 만큼 그리고 특정 헤게모니 문화구성물들이 집단체 안에서 지배적인 지도력의 관심과 밀젒한 관계가 있는 만큼, 이러한 헤게모니 구성물들은 종종 이러한 헤게모니 기획을 지향하는 입장을 거스르기도 한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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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6-16 2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이번달 여성주의 책이랑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나란히 놓고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저도 6월책 막 시작했는데 진도가 영 지지부진하네요. 기름칠을 위해서 자주 자주 올려주시어요^^
 

요즘은 당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벌써 5월이 끝났다니…

아무튼 5월 북결산이다. 업무로 노트북을 계속 들고 다니고 있어서 종이책을 읽기 어려웠고 주말에도 출근을 한 적이 많아서 억지로 이북을 좀 읽었다.

읽은 책들이 전반적으로 평타 이상이었다.

김기태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역시 좋았다.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는 작가가 될 것 같은데 부디 계속 건필하기를!

제이미슨의 책은 롤러 걸을 기존에 읽었었는데 그 책도 좋았지만 나는 이 책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눈여겨보는 주제와 관심사라면 아무래도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만주국에 관한 입문서, 만주족에 대한 역사서도 잘 읽었다.

최근에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하늘 한 번 쳐다보기도 어려워서 사진도 찍지 못하고 지냈다.

이번주 볕은 따뜻한데 바람이 불어서 하나도 덥지 않은 그야말로 미친날씨였다.
어제, 오늘은 도무지 가만 있기는 아까워서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나가서 걸었다.
올 여름 장미도 못 보고 지나가나 했더니 장미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5월이 끝나기 직전 책을 샀다.
12.12 사건을 다룬 책과 이번 달 여성주의 책, 그리고 주역을 샀다. 셋 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집히는 대로 샀다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 보관함에 있던 책들이니 막 고른 것은 아니다^^;;;

6월은 제발 안 풀리던 일이 좀 풀려서 원하는 페이스대로 살 수 있는 날이 되면 좋겠다.
모두 행복한 달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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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02 2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6월은 5월보다 나은 한 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굿나잇, 거리의화가 님!

잠자냥 2024-06-03 1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늘 여러 번 쳐다 보셨는데요? ㅋㅋㅋㅋㅋ
6월은 여유롭길 기원합니다!

희선 2024-06-04 0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볕이 뜨거워도 바람이 불어서 좀 낫기도 했네요 오월에도... 어제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유월은 갈수록 더워지겠습니다 유월엔 여유가 생기면 좋겠네요 거리의화가 님 건강 잘 챙기세요


희선

자목련 2024-06-05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바쁘시군요. 6월에는 수월한 업무, 산책과 하늘 보기는 더 많이 늘어나길 바라요.
 

지난 달 읽은 책들은 다음과 같다. 





이 중 <조선인들의 청일전쟁>과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을 읽을 때 특히나 즐거웠다.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은 리뷰, 페이퍼로도 글을 남겼는데 청일전쟁을 주제로 하여 중국, 일본을 비롯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으로 뜯어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장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아는 청일전쟁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겉핧기 식이었는지 여실히 느꼈다.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역사적 배경과 시작, 전개, 그리고 결과와 영향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은 15~18세기 유럽인의 일상 생활에서의 소비 생활을 엿본다. 일상 생활이라는 친숙한 소재인데다 우리가 현재에도 사용하는 다양한 물품들이 어떤 식으로 시작되고 퍼져나갔는지 확인해볼 수 있었다. 음료인 커피나 차, 소금, 설탕, 후추 등의 식재료를 비롯한 먹거리, 집, 가구, 의복, 사치품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당시 흥미로운 소비 생활을 확인할 수 있다.


2달 동안 함달달 모임 원서로 <Three Keys>를 읽었다. 원래도 씩씩했던 미아였지만 난관에 빠진 친구 루페와 그의 가족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나라면 인종 차별이 일상인 그 곳에서 그런 적극성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생각은 할 수 있어도 행동으로 뛰어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 덕분에 미국의 이민자들에 대한 입장과 미국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며칠 전 책을 주문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역시 책을 사는 게 답인가. 


<When Stars Are Scattered>는 이 달에 읽기로 한 함달달 원서 책이다. 표지도 넘 좋고 안의 내용도 좋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은 장바구니에 계속 담겨 있었던 책이었는데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보기에는 아까울 것 같아 과감히 질렀다. 만주국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현대중국의 탄생>도 마찬가지! 근 몇 달간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고 도서관에는 가격 때문에 받아주지 않는 책이라 그냥 샀다. 




지난 달부터 일이 폭풍처럼 밀려들어 며칠 전부터 야근이다 밤샘이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 달에는 더욱 중요한 일들이 많다. 어쨌든 걱정한다고 달라질 일은 없고 닥친 일을 수습해나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철쭉이 떨어지기 전 아파트 근처에서 찍었다. 


친구분들 모두 5월도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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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5-06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근에 밤샘에 저 많은 책과 벽돌책을 어찌 읽으신거죠???
대단하십니다!^^
보기만 해도 뿌듯한 북결산이네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은 저도 얼른 읽고 싶은 책입니다.
5월도 응원합니다.
건강 챙기시며 행복한 독서생활 하시길요~~

거리의화가 2024-05-09 18:15   좋아요 1 | URL
초반에 읽은 것들이 많습니다. 주말 근무까지는 아직 하지 않아서 그나마 책을 읽고요. 주중에는 진짜 쉽지 않네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읽기 시작하신 것 같더군요. 즐독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하수 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5월 보내세요.

자목련 2024-05-07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5월에는 야근과 밤샘이 없기를 바라요.
건강 잘 챙기시며 초록초록한 기분으로 채워지길!!

거리의화가 2024-05-09 18:16   좋아요 0 | URL
야근은 괜찮은데 밤샘만 없었으면 좋겠어요^^;
자목련 님 행복하고 건강한 나날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랜만에 근황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느라 기진맥진한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팀장이 나간 뒤로 팀에 큰 공백이 생겼다. 이 때문에 결정을 내가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그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 데다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전하는 말이 오해가 되지 않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어려움을 갖게 한다.

몇 번이나 그만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할 정도로 최근에는 어려움이 컸다.

최근 들어 두통이 잦았고 도무지 안 되겠어서 오늘 휴가를 내고 쉬고 있다.

하루 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밀린 리뷰도 쓰고 가벼운 책을 읽고 그랬다. 참! 달리기도 했다.


걷기와 달리기는 차원이 다른 운동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1분 뛰는 것과 1분 30초를 뛰는 것이 왜 이리 간격이 큰 것인지... 이제 4번째 진행했는데 하다가 막판에 좌절할 뻔했다. 내 체력이 얼마나 저질인지 새삼 느꼈다. 

어쨌든 체력이 되어야 머리도 굴리고 책도 읽고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 생각하니 힘을 내보기로 했다.


어제 북플에 접속했다가 친구분들의 '인생네권'을 확인하고 나도 부랴부랴 했다.

좀 고민하기는 했지만 더 고민한다고 크게 달라질 목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곧장 생각나는 책으로 꼽았다. 



<하워드 진, 역사의 힘>은 역사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머리 두들겨 맞은 듯 강한 인상을 받았던 책이다. 아무래도 내 성정과 잘 맞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 후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실제로 만나지 못했음이 그리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나는 언젠가 그 분의 강연을 꼭 한 번 경험하고 싶은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의 책은 그래도 남아 있으니 계속 읽어봐야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은 한국 전쟁사를 제대로 읽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책이다. 그의 저작 이전과 이후가 나뉘어진다고 할 정도로 국내 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내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에 특히 인민위원회의 역할과 한계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사실 박명림 선생님의 책이나 정병준 선생님 등의 책도 인상 깊게 읽었지만 이 책의 비중을 더 높게 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해방 일기> 시리즈는 김기협 선생님의 저작을 본격적으로 파게 된 계기였다. 민족주의적 시각에 경도되어 있던 나는 이 책을 계기로 균형 잡힌 역사 서술과 좌우파를 넘어선 시각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 책은 재밌고 흡입력이 좋다. 1권을 읽다 보면 2권을 읽고, 이후 10권까지 쭉 달리게 된다. 또 이 책 덕분에 내가 해방 후 3년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에 인생책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는 어른이 아이에게 이야기 식으로 한국사를 재밌게 들려주는 방식이라 잘 읽히고 친근하다. 이 책을 꼽은 것은 그가 역사학자로서 걸어온 발자취에 대한 존경이 어느 정도 작용했기도 하다. 1980년대 이후 시기 앞선 세대와는 달리 주류적 시각이 아니라 역사에서 숨은 민중의 목소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셨고 그랬기 때문인지 민중사가 강세를 이룬 때도 있었다. 지금은 다변화되었지만. 그 중 18권을 고른 것은 그의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철쭉이 피고 알록달록해진 세상을 보는 것이 그나마 즐거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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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4-24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역덕력 인정합니다!
팀장님의 공백에 찾아오는 두통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 회사야, 그 팀장 다시 잡아와라!!!
달릴 때는 바닥을 조심조심! 파인곳이나 느닷없이 등장하는 계단을 특히 조심하시구요 🏃🏽‍♀️🏃🏽‍♀️🏃🏽‍♀️달리세요!!

거리의화가 2024-04-25 06:22   좋아요 1 | URL
팀장 빨리 뽑아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새로 뽑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ㅠㅠ
안 그래도 달릴 때 계단 있는 곳은 피하고 트랙 있는 운동장이나 평평한 산책로에서 하고 있어요. 원래 발목이 안 좋았어서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달립니다. 쟝님 감사해요^^

새파랑 2024-04-24 1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은 역사!
역시 역사!!
네권선택을 고민하는 시간도 재미있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4-25 06:23   좋아요 1 | URL
ㅋㅋ 네. 역시 어쩔 수 없는 역사 덕후인가봅니다^^; 저도 선택을 고민할 때만큼 설레고 즐거울 때가 없었어요. 알라딘 덕분에 다양한 분들의 선택지를 볼 수 있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잠자냥 2024-04-24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면서 꽃 사진 찍은 거면 인정!! ㅋㅋㅋㅋ (뭘?! ㅋㅋㅋㅋ)
아 진짜 역적 아니고 역덕!!

거리의화가 2024-04-25 06:2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체력이 늘어 달리면서 꽃 사진을 찍을 정도가 되면 좋겠네요. 역적 아니고 역덕이라서 다행입니다!ㅎㅎ

다락방 2024-04-24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거리의화가 님 진짜 넘나 멋집니다!! 특히 역사책이 인생 네권 이라니! 😍
달리기 시작하셨다니 정말 좋고요 우리 함께 열심히 달려봅시다. 저는 오늘 열한번째 달리기 했습니다!! 💪💪

거리의화가 2024-04-25 06:27   좋아요 0 | URL
선택할 때 다른 분야의 책은 아무래도 생각이 안 났어요. 떠오른 책을 바로 고른지라!ㅋㅋ 늘 마음 속에 자리한 책을 고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다락방 님 11번까지 어떻게 가셨나요ㅠㅠ 저 4번인데 이미 힘듭니다!ㅋㅋ 언어도, 달리기도 화이팅이에요!

은하수 2024-04-24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역덕으로 인정합니다.
하워드 진 저도 꼭 만나고 싶은 분이었는데.. 나중에 천국에서라도요~~^^
꽃 천지 구경하며 달리기라니 멋집니다. 두통이 날아갔을 듯 해요~~

거리의화가 2024-04-25 06:29   좋아요 1 | URL
하워드 진 강연을 실제로 듣고 얼굴을 본 독자들이 있다면 얼마나 행운일까 생각 많이 했었어요. 천국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뵐 수 있다면 좋겠죠!ㅎㅎ
꽃 천지 구경하며 달리기 정말 할 만합니다. 달릴 때는 숨차서 고통이지만ㅋㅋ 그래도 달리는 순간은 잡 생각 달아나서 좋더라구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4-04-25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기도 하시다니, 가끔 달리기도 해야 한다지만 저는 늘 걷기만 할까 합니다 빨리 걸으면 되죠 잘 쉬셨네요 하루라 할지라도 그런 날 있으면 좀 더 낫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4-25 06:30   좋아요 1 | URL
저도 늘 걷기만 하던 사람이었어요^^ 근데 요새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달리면서 생각이 그 순간은 달아나서 좋더군요.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맛이 꽤나 좋습니다. 하루 쉬니 좀 낫네요. 오늘은 어떤 일이 기다릴지^^; 희선님 건강 잘 챙기시고 즐거운 나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자목련 2024-04-2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역사서는 화가 님으로 통한다!
그나저나 업무로 힘드셔서 걱정이네요.
달리기, 산책, 그리고 책과 꽃들이 화가 님께 평안을 찾아주기를 바라요.
꽃 사진과 하늘 넘 예쁩니다!

거리의화가 2024-04-28 18:22   좋아요 0 | URL
요 근래 들어서는 일요일 오전만 되면 이미 한숨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시간이 약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날이 포근해져서 철쭉이 절정을 지난 것 같더군요. 오늘은 덥기는 했는데 미세먼지도 없고 날 좋아서 걷기 참 좋았습니다. 자목련님 남은 4월 행복하게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4-04-2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쪽 두권은 저도 읽었습니다 ㅎㅎ
그래도 인생책 4권에 포함시키는 화가님 포스는 못따라가겠네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4-04-28 18:23   좋아요 1 | URL
역시 그레이스님 2권 읽으셨군요. 멋지십니다!!
저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독서력이 짧아서일 것 같아요. 편중된 독서를 하다보니 어쩔 수 없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1894년 6월 조선에서 동학농민전쟁이 확대되자, 청과 일본 양국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청은 조선을 속방으로 간주하면서 내정에 직접 개입하려고 했다. 때마침 초토사 홍계훈 휘하의 장위영 병정들이 전라도 일대를 석권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데 실패하자, 6월 3일 밤 조선 정부는 당시 정권 실세였던 민영준의 주도 아래 청에 병력 파견을 요청했다. 

일본은 1884년 갑신정변을 둘러싸고 청과 군사적 충돌의 위기를 겪었지만, 양국은 톈진조약을 맺고 청과 외교적으로 타협했다. 청이 원병을 파견하자 일본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조선에 군대를 보냈다. 일본은 ‘동학란’ 속에서 자국 거류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갑신정변 이후 체결된 제물포조약과 톈진조약을 파병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두 조약은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때 상호 통지한다는 절차상 규정에 불과했을 뿐, 양국이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 시민의 한국사2 P53


"지금의 형세를 살피건대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없다. ... 권력을 쥐고 있는 대신들은 모두가 외척이고, 밤새도록 하는 일은 단지 자기를 살찌우는 방법만을 궁리할 뿐이다. 자기 당파의 무리를 각 고을에 나누어 퍼뜨려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짓을 일삼케 했으니, 백성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초토사 홍계훈은 사람됨이 무식할 뿐만 아니라, 동학의 위세에 겁을 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출병하였다. ... 가장 애석한 일은 3년 안에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까닭에 우리 동학이 대대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백성들을 편안케 하려 한다." - 대한계년사 2권 P26~27



교과서에서 청일전쟁을 다루거나 한국 근대사에서 청일전쟁을 다룰 때 서술 시각은 대체로 위와 같다. 동학농민전쟁을 필두로 전으로는 배경을, 후로는 전개 과정부터 결과까지 일사천리로 훓치듯 지나간다. 그나마 <시민의 한국사2>에서는 풍도 해전, 평양 전투, 황해 해전 등 주요 전투가 포함된 지도와 간단한 전개를 언급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알기는 어렵고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피해가 컸다’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선 출병을 결정했는지 배경은 짐작할 수 있지만 누가 결정했고 어떤 과정에 의해서 결정되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당시 천황가와 일본 내각 다수는 조선 출병이 시기상조라 보았다. 그러나 1894년 6월 2일 참모본부 차장인 가와카미 소로쿠가 외무대신 무쓰의 관저를 비밀리에 방문하여 하야시, 무쓰, 가와카미 세 사람이 출병에 동의했고 다음 날 내각회의에서 야마가타 아리토모 중장에 허락을 받아 출병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일본은 왕궁을 점령하고 일본의 뜻을 따르도록 조선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이틀 후에는 인천 근처의 풍도 앞바다에서 청과 교전에 들어간다.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 개전의 구실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부 내부에는 신중론도 있었지만, 주도한 것은 외무장관 무쯔 무네미쯔였다. 

무쓰 무네미쯔는 능력을 평가받아 외무성에는 지금도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청일전쟁에서 학살사건이 벌어진 중국 뤼슌의 기념관에는 초상이 악인으로 묘사돼 있다. -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P49


무쓰는 7월 19일 외부 내각 의견에 따라 오토리 공사에게 조선 왕궁과 서울 포위작전을 결행하지 말라고 지시했으나 오토리는 군부의 의견에 동조하여 결행을 감행했다.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을 읽으며 놀란 부분은 일본이 청일 전쟁을 위한 결정적인 명분을 찾고 있었을 뿐 사전에 철저한 계획 하에 진행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은 도성 내외 수색과 중국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서울에서 중국으로 보내는 전보도 차단했다. 가와카미 소로쿠는 1893년 조선에 입국해 신분을 숨긴 채 비밀리에 조선과 청국을 정탐하며 고종과 흥선대원군을 만나기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청일전쟁에서 조선지도를 만들어 배포한다. 6월 5일 천황 직속의 통수기관인 전시 대본영을 설치된 것은 경복궁 점령 전 이미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청은 직예제독 예지차오, 태원진 통병 니에시청, 기명제독 장치캉, 유격 판진산을 리더로 하여 부대를 구성했다. 추가로 웨이루쿠이, 마위쿤, 쭤바오구이 등이 인솔하는 군사를 평양에 파견하여 아산과 평양 일대에 약 14,000여 명의 청군이 주둔하게 된다.

중국에서는 청일전쟁의 전황을 풍도해전->평양 함락->황해 해전->뤼순다롄 전투->웨이하이 전투->시모노세키조약의 6단계로 보고 있다. 

출동 초기 청군은 동학농민군 토벌보다는 천자의 위엄을 과시하는 데 치중했다. 게다가 청국군은 전쟁 초반 승기를 잡아야 했음에도 안일하게 대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예지차오는 리훙장에게 패주 과정에서 청주, 충주, 금화를 경유해서 평양에 도착할 때까지 전력을 다해 싸워 승리했다고 보고했으나 날조였고 실제로 전투를 하지도 않은채 평양으로 도망쳤다. 성환과 아산 전투의 패배에도 전면전이 아닌 완만한 작전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리훙장은 전략적 판단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는 판단 미스였고 반면 일본군은 조선에 계속 증파되면서 평양 전투를 제대로 준비했다. 


청일전쟁에서 조선인들의 등장은 일반인들보다는 동학농민군에 참여한 민병들의 기술에 주로 치우쳐져 있었다고 본다. 이는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동학농민전쟁에 대한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이 가져가는 영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이이화 선생님을 비롯한 연구자들의 많은 대중서가 나와 있기도 하여 그 전개 과정과 영향,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도 그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관군은 일본군 사이사이에서 총을 쏘아 댔다. 농민군은 끝내 우금재 너머 언덕으로 물러나 산등성이에서 쏘아 대는 대포와 총의 사격거리를 피했다. 이때 관군 수십 명이 산을 내려가 작은 언덕배기를 장애물로 삼고 총을 쏘았다. 패색이 짙어진 농민군은 보루를 버리고 달아났다. 일본군과 경리청군 50여 명은 달아나는 농민군을 남쪽으로 십여 리를 추격했다. 이 우금재의 싸움에서 "쌓인 시체가 산을 가득히 메웠다"고 할 만큼 농민군은 크게 패배했다. 11일, 능치를 지키던 관군은 빼앗은 농민군의 옷과 수건을 착용해 농민군 모습으로 위장했다. 관군은 산을 기어올라 농민군에 근접했다. 농민군은 위장한 관군을 동료로 오인하였는데 위장 관군이 근접해서 불의에 총을 쏘아 댔다. 기습을 받은 농민군은 놀라 흩어졌다. 관군은 대포를 노획했고 많은 연환을 빼앗았다. 이 능치전투를 끝으로 농민군은 12일부터 점차 흩어져 갔다. - 이이화 한국사 이야기 18권 P276~277


"대국이 왜눔한테 항복을 했이니, 그게 망조라 말이다. 왜눔들이 개미떼맨쿠로 기어올 긴데, 벌써 항구에는 왜놈들 장사치들이 설친다 카는데, 허수애비 같은 임금 있으나 마나, 총포 든 놈이 제일 아니가." - 토지 1권 P123


또한 <조선인들의 청일전쟁>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일본군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일본인 선부의 고용, 파견 기준과 조건, 서약서 제출 등에 관한 기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 기준과 조건은 예비,후비의 적에 있는 자 혹은 징병 당첨자, 신체 강건한 자, 연령은 21세 이상 45세까지, 주벽이 없는 자, 절도 혹은 도박범의 실결을 받지 않은 자, 폭행사건으로 형을 받지 않은 자로 한정했다. 공무상 다치거나 유행병에 걸린 자는 급료를 감하고(?), 스스로 건강에 주의하지 않아 걸리는 질환 또는 술에 취해 광기를 부리거나 싸움으로 얻은 외상은 휴업 중 일급 2분의 1 이내로 급료를 감할 것이라는 사항도 있다. 공무상 다치는데 급료를 감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 같다. 선발 기준도 꽤나 엄격한 듯 싶다. 이들은 서약서도 제출해야 했는데 한마디로 ‘규칙에 절대 복종하며 (왠만하면) 불만을 품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군량과 말먹이 등 대부분이 현지에서 징발 형태로 조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군 뿐 아니라 청군도 마찬가지다(청은 재조지은을 이름 삼아 조정에 요구받으면서도 백성들을 못살게 군 것이 더 괘씸하기도 하다).  

평양에 주둔한 청군은 약탈 수준으로 징발을 자행했다. 베이징 정부는 행군 중 불법을 자행한 병사에게 군법을 따르게 하고 법률과 기강을 엄히 할 것을 지시했고 소란한 민심을 안정시켜 후환을 막게 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잘 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전쟁의 승리를 미화하고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 언론도 큰 몫을 담당했다. 당시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은 야스쿠니 신사 등 일본에 순회 전시되었고 이 중 일부는 물품이 현재도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아니 근데 부녀자의 의복은 왜?). 


청일전쟁과 관련한 현재의 일본 사회과 교과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청일전쟁의 원인을 동학농민전쟁에서 구하는 데는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동학난이라 불리는 농민폭동”이라며 단순한 반란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둘째, 청일전쟁의 발발에 대해서는 대체로 조선이 중국에 출병을 요청했고, 일본도 중국과의 합의를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여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농민군의 활동으로 출병했다는 사실은 부각시키지만 청일 간섭군에 농민들이 저항했으며 일본군이 이들을 철저히 진압했다는 사실은 생략되어 있다. 또 일본이 처음부터 전쟁을 목적으로 출병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전쟁을 정당화했던 과거의 논리에 대해 비판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셋째, 청일전쟁의 결과에 대해 고대부터 지속되었던 동아시아 중화질서는 이로부터 붕괴되었고 조선의 독립을 인정받았다고 하여 조선을 피동적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다. 근대 시기 일본 지식인 대다수는 청일전쟁을 ‘문명전쟁’, 러일전쟁을 ‘인종전쟁’으로 인식했는데, 아직까지도 이러한 인식은 공유되고 있다. - P340~341


당시 후쿠자와 유키치는 <지지신보>에 <뤼순의 학살은 터무니없는 떠도는 소문이다>라는 논설을 게재하여 사실 자체를 완전히 부인했다.


우리 뤼순의 대승에 대해 외국인 중에는 그 살육이 많다는 것을 듣고 왕왕 말을 만드는 자가 있다. 승리를 틈타 중국인들을 도륙한다는 한 가지 일은 세상으로부터 욕을 면할 수 없다. 이 참혹한 최후의 거동은 모두 전승의 명예를 말살하기에 족하다는 논평으로 한탄스럽다. … 뤼순 시가의 죽은 자 중에는 무고한 인민이 다수 있다는 것은 모두 상상하여 말한 것이다. 인민을 살육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들은 그 터무니없음을 경계함과 동시에 금후에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에는 고려 없이 살육을 행해 조금도 차이 없다는 것을 감히 단언하는 바이다. - P580~581


당시 일본 지식인들은 대부분 이런 정서를 공유했을 것이다. 


청일 전쟁은 한반도를 넘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조선의 인부가 일본인 인부와 함께 압록강을 넘어 동원되었다고 한다. “후방에서 양곡을 취하여 전방인 청국 안둥현으로 전송했다. … 대체로 황군의 운이 우세하니 한인 인부의 위풍도 한결같다. …” 한 육군 포병 소좌의 기록을 통해 당시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이런 식으로 끌려갔을지 상상하게 된다. 황군의 운이 좋으면 한인 인부의 위풍이 그에 따르는 것이라니 이 인식도 문제가 심각함을 느끼게 한다. 


양국 해군은 1894년 9월 17일 황해 해전을 벌인다. 이 때 기함 사령관이 상관인 제독 정여창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청의 해군이 피그덕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포격으로 함교가 무너져 정여창과 영국인 고문이 부상을 당하면서 청의 지휘 라인에 공백이 생겼다. 이에 청군은 웨이하이로 급히 철수하게 되었다. 황해 해전은 청의 뼈아픈 손실이 되었을 것이다. 


웨이하이웨이로 불리던 19세기, 이곳에는 청왕조의 북동부 바다를 지키는 북양함대의 기지가 있었다. 바다를 둘러싸고 포대가 설치되고, 류꿍따오에 제독의 청사가 세워졌다. 1880년대 무렵까지는 동양의 제1의 함대라고 불렸지만 청일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일본군이 이 바다를 습격하자 북양함대는 투항했다.  - 동아시아를 만든 열가지 사건 P54


첫째, 이 전쟁은 민족주의를 통해 정부와 국민이 하나의 목표로 굳게 단결해 근대 국가를 건설하려던 나라와 정부와 백성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따로 놀았던 나라 사이의 전쟁이었다. 전쟁에 나선 일본은 거국적인 역량을 총동원한 반면 청의 일반 백성들은 전쟁과는 거의 동떨어져 있었으며 조정은 거의 전적으로 북양 함대와 이홍장의 회군에게만 의지했다. 둘째, 청은 명확한 지휘 체계가 서 있지 않아서 명령이 일사불란하지 못했고 거국적인 동원도 없었다. 총리아문, 지방 당국, 무책임한 청류파 관료들의 상충된 건의들은 청조의 우유부단함만 초래했을 뿐이다. 조선의 외교와 군사 업무를 관장하고 있던 이홍장은 정책 결정권이 없었으며 자기 관할 밖에 있는 전함과 군대에 대한 통제권도 없었다. 셋째, 조정과 북양 함대 사령부의 부패는 처음부터 청의 노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서태후가 여름 별궁인 이화원 건축을위해 해군 기금에서 수백만 냥을 전용한 것, 그녀의 환관 총애, 사회전반의 도덕성 타락도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 이홍장이 정직성보다는 개인적 충성심과 복종심에 따라 인선한 북양 함대의 사령부에서 특히부패가 만연했다. 많은 군관들이 태감 이연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으며 공금을 빼돌려 그에게 선물을 보냈다. 그러면 그는 이들의 불법 행위를 비호해주었다.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규모였지만 북양 함대는 사실상 약체였다. 이홍장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으로 번지기 전에 먼저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홍장의 외교는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 결여, 개인의 협상 능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구태의연한 이이제이 정책에의 의존 등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러시아의 중재가무산되자 이홍장은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구했으나 양쪽 다 일본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없었다. - <캠브리리 중국사> P188~189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조약 체결로 양국 간 전쟁은 끝이 났다. 전쟁은 상당 부분 한반도에서 전개되었으며 이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은 조선의 물자와 인부들, 병사들, 무고한 백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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