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드 보다 중국사 - 봉신연의에서 삼국지까지, 드라마로 즐기며 읽는 중국사
이효민 지음, 공일영 감수 / 포르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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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재밌다. 이 책은 여러 모로 내 기호를 충족시킨다. 일단 중드를 좋아하고 그 중 역사를 담은 고장극을 뽑아 내용을 전개했다. 개인적으로 중드를 본 지 올해로 10년 차가 되었는데 본 드라마는 몇 없지만 압도적으로 고장극을 많이 보았다. 중드는 고장극의 장점이 현대극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의 생각도 나와 비슷한 것 같아 반가웠다. 다만 고장극은 중국 역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기에는 좋으나 현대 중국어 습득력은 포기해야 한다. “삐샤~!” “황샹!” “니먼 트위샤바!” 이런 단어와 문장들만 주로 나오니 회화에는 써 먹을 수가 없다.
책은 진작 사두었고 4월에 베이징 여행을 하면서 가져가서 읽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여행 가면 노는데 정신이 팔려서 원… 놀 땐 놀아야지 주의라.

책은 신화의 시대부터 청나라 시기까지 해당 역사적 배경을 담은 대표 드라마를 소개하면서 당시 역사를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여 독자에게 일거양득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등장 인물을 소개하면서 허구와 진실을 가리는 시도를 하는데 그 부분도 개인적으로 좋았다. 늘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 인물은 역사적 실존 인물일까, 사건은 진짜 벌어진 일인가 궁금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인물이고 드라마 상으로도 이름이 같다면 알아보기 쉬우나 때때로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고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도 있어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하면 드라마와 역사가 따로 노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역사는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기록의 신빙성도 100%는 아니다. 또 내가 원하는 것이 드러나 있는 경우보다는 숨은 경우도 많아서 원하는 정보를 건져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이런 부분은 감안하고 드라마만 재밌게 본다면 관계없지만 더 정확한 배경의 정보를 얻고 싶다면 관련 정보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작가도 그런 부분 때문에 관련하여 더 세세한 정보는 역사학자 등의 전문가의 영역에 맡긴다고 서술하고 있다.

신화의 시대로 작가는 <봉신연의>라는 드라마를 꼽았다. 과거 20년 전만 해도 중드 고장극의 주류 장르가 무협 등의 정극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선협극이라는 장르가 꽤나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 같다. 선협극은 판타지 무협물을 가리키며 화려한 CG를 써서 화면의 색감이 화사한 것이 특징이다. <봉신연의>도 선협물 중 하나인데 아직 나는 보지 못했다. 아직 선협물은 여전히 좀 취약해서… 드라마 <봉신연의>는 중국 고대인 하상주 시기 중 상나라의 멸망 직전을 배경으로 한다고 한다.
내가 본 선협물은 <삼생삼세 십리도화>가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2017년 작품인데 CG가 솔직히 너무 적응이 안 되어서 중도하차할 뻔 했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와 흥미 있는 스토리 덕분에 완주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재밌어서 2, 3번은 다시 봤었다.
이 드라마를 위해서는 중국 신화에 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육계는 인간계, 요계, 마계, 귀계, 선계, 천계로 구성된다. 천계는 신들의 세계, 선계는 신선의 세계, 요계는 요괴와 요정 어딘가쯤으로 보면 된다. 이 중 드라마는 천계와 인간계 사이를 다루고 있다.
주나라의 강자아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강자아는 우리가 흔히 강태공으로 알고 있는 그 인물이다(강태공은 낚시를 잘해서가 아니고 간택 당할때 그저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주나라 건국에 힘을 보탠 공신으로 책사이자 전술가였다.

한나라의 왕소군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왕소군은 당시 한나라 한원제 시절 흉노의 호한야 선우에게 화번공주라는 타이틀로 간 여인으로 역사책에서는 주로 비련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물론 한의 입장에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왕소군>에서는 주도적인 성격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꼭 봐보려고 한다). 화번공주에서 번은 이민족. 화는 화친한다를 의미하여 화번공주는 주변 이민족들과 화친을 목적으로 혼약을 맺어 간 공주를 말한다. 한나라 시기에는 흉노와 오손국 등으로 화번공주를 보냈다. 공식적으로는 한나라에서 진짜 공주를 보내야 하지만 대체로 궁녀나 황족 중 한 사람이 대신 갔다고 한다. 한번 가면 평생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을텐데 그래도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정세에 도움을 주기도 하는 화번공주들의 역할이 당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후한 말 전국 시기를 배경으로 한 삼국지와 진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초한지는 중국 역사 상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가 아닌 가 싶다. 정작 많이 언급은 되지만 두 작품을 완독하기란 쉽지가 않다. 계속 보다 말다 했던 <삼국지>와 <초한전기>를 올해야말로 꼭 다 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개인적으로 중국의 역사 중 가장 나의 관심을 끄는 시기는 당송 시기다. 당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로 작가는 <장안십이시진>을 언급했다. 당나라 수도 장안 황실이 아닌 바깥에서 상원절(원소절) 때 벌어지는 이야기다. 당시 장안은 국제무역도시로 로마 인구가 10만이었는데 100만의 인구를 지녔을 만큼 엄청난 규모를 지녔다. 장안은 궁성과 백성의 거주 지역을 구분하여 만든 계획도시로 중국의 4대 수도 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여 서경이라고도 불린다. 드라마 배경이 흔한 황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더 흥미롭다. 당시 장안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다녔을까 궁금하다. 정작 장안은 당나라 말 황소의 난으로 장안성이 함락되고 주원장이 장안을 파괴시키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재는 시안에서 그때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라고.
송나라는 역시 <포청천>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실존 인물은 포청천과 송나라 현종 황제 뿐 나머지는 가상의 인물이다. 어릴 적 포청천을 보겠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못 보게 하셔서 화가 나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내게 포청천은 공명정의의 대명사였다. 관리라면 이런 청렴함이 있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더불어 <칠협오의>도 잊을 수 없는. 전조와 백옥당은 그 시절 우리 집에서는 아이돌 버금 가는 인기였다. 나는 전조파, 여동생은 백옥당파로 매번 날을 세우고 설전을 벌였던 기억도 난다. 드라마 <포청천>에 실존 인물들이 많이 없다보니 작가는 <청평악>이라는 드라마를 알려준다. <청평악>의 등장 인물은 대체로 실존했다고. 송나라 인종 때를 배경으로 하는데 실제로 그 시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싶을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범중엄, 구양수, 사마광, 왕안석, 악비, 주희 등등… 당송팔대가의 문학, 사상, 당시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공부할 맛을 느끼게 해주는 만큼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청나라 시기는 성세였던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때의 역사를 배경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나는 <연희공략>이란 드라마로 당시 황실의 모습을 접했다. 드라마에서 변발이 적응이 안되었는데 알고 보니 변발도 고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시기별로 조금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청나라 초기에는 뒤에 꽁지머리만 남기고 다 미는 형태로 가장 파격적인 형태였고 청나라 말기로 갈수록 순한 형태(?)로 바뀌었다고 한다. 만주족 여인은 굽이 높은 신발, 현대 치파오의 원형인 당시 후궁들이 입었다는 창파오, 부유함과 고귀함을 드러내기 위한 손가락 장식인 호갑투, 머리장식까지 더해져 복잡성을 더한다. 특히 굽이 높은 신발과 머리장식은 굉장히 불편했을텐데 그걸 감수했을 황실 여인들의 고충이 참 컸을 것 같은. 경극과 원명원, 이화원, 열하행궁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베이징을 다녀와서인지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경험한 것은 이해를 더 높일 수밖에 없으니까.

참! 작가가 참고한 책들의 목록이 적지 않은데 대체로 좋은 책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보고 싶은 드라마가 여러 개 나올 수 있다. 고장극의 편수가 워낙 긴 편이라 다 보려면 꽤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저 재미로 봐도 되고 더 깊게 보고 싶다면 이런 저런 배경을 찾아보면서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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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6-06-0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악! 너무 공들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태평년이라는 드라마도 공부하기 좋은 드라마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6-06-05 15:00   좋아요 0 | URL
태평년은 국내 ott에 들어오긴 했는데 제가 이용하지 않는 ott라 아직 보질 못하고 있어요. 기존에 잘 다뤄지지 않던 시기라 중국 내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튼 나중에라도 볼텐데 기대가 되요!
 
[전자책] 질병, 낙인 -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
김재형 지음 / 돌베개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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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한센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과거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렸던 단어에 더 익숙하지는 않은가? 혹시 한센병의 발병 모습으로 감염력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센병은 감염병이지만 실제 감염력이 상당히 약해 감염자와의 접촉횟수, 면역력에 따라 발병률이 달라진다. 솔직히 나는 한센병이라는 단어보다는 나병이라는 단어에 더 익숙했다. 소록도라는 곳에서 병을 치료하는 환자들이 있었는데 환경이 상당히 열악해 문제가 있었다 정도만 인식하던 세대였다. 1980년대만해도 2만 7천여 명에 달했던 한센인이 있었다는데 대다수가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도시에 나가 산다해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자신의 병을 철저히 숨기며 살았다고 한다. 일부러 들여다 보지 않으면 나처럼 이들의 존재와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을 확률이 클 것이다. 저자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한센인 인권 실태조사‘에 참여하면서 한센인들을 처음 만났고, 이후 그들의 삶과 역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한다.

한센병은 1873년 노르웨이 의사인 한센이 원인균을 발견한 이후 명명된 질병이다. 한센병은 그 역사가 길지만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세균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을 찾아내 고립시키거나 격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현실로 구체화되었다. 제국주의 바람이 불면서 인종주의에 과학주의가 결합하여 식민지 환자에 대해서 별도의 강제격리 정책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그렇게 조선에서도 1916년 소록도에 병원 건립이 시작된 뒤 1917년부터 병원에서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1917년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가 시행되면서 1920년대 이후 부랑 한센병 환자들이 급증하였다. 1915년에 만들어진 전염병 예방령에는 급성전염병에 대한 제한만 담겨 있었으나 전염율이 낮은 한센병에도 적용되었다. 이후 명확히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는 경우에도 의심되는 모든 것을 규제, 거부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센병 환자는 가족의 기피, 냉대는 물론이고 심하면 가족 간 불화로 이어지면서 자살하거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문제점을 인식한 이들이 조선나근절책연구회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으나 조선총독부에 의해 해산된 후 가담한 주요 인사들이 총독부 주도의 단체로 흡수되었다.

그렇다면 한센병에 관한 초기 치료법은 무엇이었을까?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대풍자유로 1910년대 서양 나병원과 소록도자혜의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풍자유는 대풍자나무의 열매인 대풍자 속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고대부터 인도, 버마 등지에서 피부병에 쓰이던 것이라 한다. 1857년 경 인도 벵갈에서 활동하던 의사 모넷이 한센병 치료에 써 효과를 보면서 유럽에도 알려졌으나 특유의 악취, 자극이 있어 주로 다른 물질과 혼합하여 사용하였다. 조선에서는 1915년 무렵부터 쓰이기 시작, 서양 나병원에서 사용을 하다가 1921년경부터 소록도자혜의원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풍자유는 병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막는데 효과가 있었을 뿐이었다. 병의 완치 기준을 두고 세균학자와 임상의의 입장이 서로 달랐다. 세균학자는 세균 유무로 판단했다면 임상의는 건강의 회복 여부로 판단했던 것. 때문에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 내에서 한센병이 완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약화되며 나병원을 점차 요양소(요양원), 수용소로 변경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소록도자혜의원‘은 1934년 ‘소록도갱생원‘으로 변경되었다.

초기만 해도 소록도자혜의원은 치료의 목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변경된 명칭을 보면 느끼겠지만 1930년대 이후 일본과 그 식민지에서 한센병 관리 정책의 강화로 모든 한센병 환자를 시설에서 죽을 때까지 격리하는 정책이 발표되며 그 성격이 바뀌었다. 더불어 1935년 조선나예방령 공포로 환자들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출입하기 어려워지고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병원 내 환자들의 수용 인원이 점차 늘면서 확장 공사를 위해 환자들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1935년 1차 확장 공사, 1936년 2차 확장 공사가 진행되며 부족한 예산 문제에 봉착하자 병원은 환자들을 더 쥐어짠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환자들을 상대로 강제모금을 하고 먹는 배급량까지 줄였으며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구금하는 등의 짓을 벌인다. 1939년 3차 확장 공사 때는 선착장 공사 및 도로 공사, 직원 관사, 병사, 창고 등의 건물을 건설하는 일에 환자들을 동원하여 마침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용시설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일에 동원되니 환자들의 생활 수준은 급격히 나빠졌고 소록도는 그렇게 죽음의 섬으로 변화했다. 남녀를 분리하여 수용하던 것에서 1936년 단종수술을 전제로 한 부부생활을 허용하면서 단종수술과 낙태수술을 가했다. 이는 환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한 방편이었다. 참다 못한 환자들은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기도 하고 직원을 살해하거나 다른 환자를 살해하거나 원장을 살해하는 사건(1942년 이춘상이 원장 스오를 칼로 찔러 죽였다)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광복은 찾아왔다. 그러나 광복은 조선사회에서 한센병 환자에게 가해지던 폭력성을 제어할 통치자가 사라진 것 뿐이었다. 직원들의 폭력은 여전했고 먹을 물자는 계속 부족했다. 그러나 김형태 원장이 부임한 후 소록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에 환자들은 반색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환자 자치제를 도입하는 등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반면 직원들은 그의 행보에 불만을 표했다. 결국 김형태 원장이 해임되고 횡령 혐의로 체포되면서 소록도 시스템은 다시 이전의 식민지 정책으로 회귀했다. 특히 흉골골수천자법으로 한센병균을 검출하려는 시도는 심각한 인권 침해였다. 사실을 알게 된 환자들은 조직적인 저항을 벌였다. 불만 일부를 해소하기 위해 병원 당국은 흉골골수천자와 노역을 중지시켰으나 환자 자치회를 해산시키고 병원 명령을 수행할 조무원 제도를 부활시키며 환자의 요구를 외면했다. 병원을 탈출한 환자들이 도시에서 부랑하자 전국적인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미군정이 개입한다. 1945년 말부터 전국 각지에 임시수용소를 두어 부랑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일부 나병원은 국영으로 전환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센병 신약도 개발되어 도입되었다. 1953년 프로민 등 DDS제가 표준 치료제가 기존의 대풍자유보다 치료 효과에 도움이 됨이 증명되었고 인도에서 개발한 댑손이 1951년 한국에 수입되어 1953년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특히 댑손은 경구용인데다 효과도 더 좋고 저렴하여 주요 치료약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국제사회는 엄격한 강제격리에서 점차 상대적인 격리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화함에 따라 환자의 인권도 고려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WHO나 UNICEF를 통해 남한의 보건정책 수립, 실행을 지원하기로 한다. 한국전쟁으로 한센병 지원 사업은 1961년부터 시작되었고 그 결과 한국의 한센병 상황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49년이 되면 소록도에 환자를 집중 격리하는 한센병 관리체계에서 환자를 전국에 분산하여 격리하는 체제로 변환하라는 정책이 결정되면서 지역 분산 격리체제가 완성된다. 1957년 2월 28일부터 시작된 전염병예방법은 식민지 시기 전염병과 관련된 여러 법을 통합시킨 것으로 한센병은 만성전염병으로 분류되어 제3종 전염병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환자 관리에 있어서는 중대 질병으로 분류되는 제1종 전염병과 동등하게 취급하고 이전처럼 격리시설에서 환자를 격리하여 통제 권한을 시설 원장에게 부여하는 한계가 있었다. 1963년 개정된 전염병예방법을 통해 완치된 환자와 전염성이 없고 정부 방침을 잘 이행하며 머무를 집이 있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에 한해 강제격리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때문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강제격리가 폐지된 것처럼 보여 격리가 폐지되었다는 평가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전염병예방법에 신설된 조항과 이후 개정된 내용, 한센병 관리 운영 방식을 통해 그런 평가와는 현실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한센병 환자의 사회복귀를 위해 기능복구사업과 궤양치료, 정형(+성형)수술, 재활훈련과 이동진료 등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격리 환자들은 여전히 감금실, 결핵병동, 정신병동 등 또 다른 격리시설에 수용되어 이중격리를 경험했다. 특히 격리 환자들의 자녀는 언제든 발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부모와 분리, 국립삼육학원에 수용되어 보육되었다. 아이들은 전염병 관리대상인 동시에 연구대상으로 쓰였다고(상상하기도 싫다). 정부는 임상 증상이 사라지고 균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아직 완치되지 않은 환자를 음성나환자로 분류하여 정착마을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사업 부담을 음성나환자와 정착마을 인근 주민에게 떠넘기면서 갈등을 조장했고 그로 인한 한센인에 대한 낙인, 차별은 영속화되었다. 한센병 환자들은 한번 환자로 등록되면 음성환자가 된 후에도 평생동안 기록에서 제거되지 않고 계속 환자로 남았기 때문에 이는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는 기제가 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센병 환자가 다시 재발하는 문제가 일어나 정부의 고민이 깊어진다. 1983년 MDT 치료제가 도입되고 나서야 비로소 환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치료약으로 한센병 완치가 가능해졌음에도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시장 개방화와 축산업의 기업화로 축산업으로 생계를 잇던 정착마을 중 대도시는 가구공장 임대업으로 전환하며 살아남았으나 농촌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센인들은 정착마을에 대한 법률적제도적 개선 방안을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는 일본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한센인의 소송(그 결과 2006년 법이 개정되고 한국 한센인들이 보상을 받음)은 한국사회에서 한센인의 낙인, 차별, 배제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시민사회가 먼저 일본법에 근거해 피해보상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소송을 계기로 한국도 한센인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사회적으로 알려진다. 이후 한센인사건법이 제정되어 피해자에게 의료지원금과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국가가 한센인 피해사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일본과 대만의 한센인 보상법은 한센인이 국가에 의해 일정 기간 강제격리됐다는 것이 인정되면 일괄 보상하도록 명시한 반면 한국의 한센인사건법은 인정받은 피해자에 한해서만 생활지원을 하게 했다. 더군다나 1963년 강제격리가 폐지되었다고 규정함으로써 이후 강제격리문제를 비가시화하고 그 피해를 온전히 규명하지 못했다. 또 피해 대상을 한센인으로 제한해 그 가족에 대한 피해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센인권변호단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소송한 제기에서 정관수술, 낙태수술 등의 강제수술을 받아야 했음을 알렸다. 2017년 최종 원고승소 판결이 확정되었는데 위자료 산정에 있어 병원 측에서 원고인 한센인 측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한 점을 감안해 감액하여 원고 측 요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한센인을 위한 법률적, 생활적 지원의 길은 열렸으나 여전히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국가가 선택하여 시행한 정책이 무엇이었고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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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5-2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게 오래 이어지고, 예전에만 그랬던 건 아니네요 한센병은 쉽게 전염되는 건 아닌데, 그렇게 알기도 했다니... 마쓰모토 세이초 소설 《모래그릇》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한국에는 이청준 작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이 있군요 이 소설은 못 읽어봤지만...


희선

거리의화가 2026-05-21 16:52   좋아요 0 | URL
희선님이 언급해주신 책 중 이청준 작가 것은 이 책에도 소개가 되더라구요. 오래도록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이어져 온 것은 세균을 통한 감염이라고 알려지면서 격리 정책이 시작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중에 대한 오해가 불러온 나비효과도 있구요. 이 책은 한센병을 다루지만 결국 확장하면 한 사람과 그 가정을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문제까지 확장할 수 있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월의 정치사회학 - 그날의 죽음에 대한 또 하나의 시선
곽송연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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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떤 죽음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떻게 남은 자들의 삶 속에서 재인식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기억은 억압된 그리고 저항하는 개인의 기억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또 수용소 정치, 그리고 ‘감시와 처벌’이 잇따른 총체적 권력의 횡포는 질식된 시민으로서의 자유를 애도하는 근거가 된다. 폭력의 그늘은 평화의 빛으로 더욱 밝게 반사되고, 이성을 회복하라는 국가의 경고는 내 이웃들의 희생에 기꺼이 공감하는 감성에 무력해진다.

5.18이 다가오기에 어떤 책을 읽을까 하다가 눈에 들어와 고른 책이다. 사실 매해 기념일마다 관련 책을 읽지 못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 중요함과 가치를 망각하고 흘려보내기 쉬운 것 같다.

저자는 제노사이드와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연구하는 정치사회학자로 박사논문이 다름아닌 5.18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남도 부근에서 성장했으나 그때 쉬쉬하던 분위기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는 5.18에 대해 가해자의 행동에 주목하고 그 의도가 대체 무엇이었을지 질문한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이 한낮의 폭력을 전시한 잔인한 군인들과 지휘관들. 그들은 왜 그런 일을 벌였나?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광주는 왜 고립된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이 책은 5.18에서 벌어진 학살의 실태, 그 원인과 영향을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내놓은 결과물로 가해자에 대한 논의를 다룬 것이 특징이다.

5.18 가해자들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5.18 당시 가해자들은 고위간부&지도자와 정규군(특히 특전사)으로 나뉜다. 고위간부&지도자는 안정, 안보, 발전에 따른 군부 권위주의 정권 담론에 기대 12.12와 5.17에 이르는 다단계 쿠데타를 기획하고 5.18에서 신군부 조직을 이용하여 실행했다. 정규군은 친위부대, 장기근속자 위주의 전문특수부대로 명령체계에 따른 복종, 이데올로기를 주입받았다. 그들은 반공주의의 영향 하에 동료집단을 압박, 순응하는 시스템에 있었으며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통한 제노사이드의 경험으로 인해 실행력이 더해졌다. 특히 5.18의 죽음은 정규군, 그중에서도 특전사 부대원들이 계엄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제노사이드의 가해자들은 일반적으로 범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국가안보에 대한 도전 상황에서 지배 엘리트와 군대가 집단학살을 그 전략적 대응으로 선택하는 것에 이미 익숙할 것이며, 이들에 의해 지목된 집단은 대부분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다.
제노사이드와 정치적 학살의 정의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희생자의 특성’이 아니라 ‘국가의 성격과 의도’이다.

그렇다면 당시 대중은 왜 침묵했는가? 저자는 이를 스탠리코먼의 부인전략 이론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부인전략은 총기발사&자위권 발동의 전면적 부인, 완곡어법&책임전가의 해석적 부인, 필요성 강조&피해자의 존재부정&맥락화&자기중심적 대비인 함축적 부인이 있다. 먼저 5.18 당시 언론통제로 공식적인 논의 진행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소문으로 떠도는 집단잔학행위에 대해 대중은 부인하거나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은 사건을 방조하거나 협력했다. 사건에 대한 부인은 당시 뿐 아니라 현재까지 사람들 간 반목을 조장하고 사회와 국가 내 갈등을 심화시켰다.

학살 후 진실은 어떻게 은폐될 수 있었나? 국가는 학살을 정당화하거나 망각하는 방식으로 국가 공식 역사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오래도록 한민족이라는 기제는 민족의 통합이 당연하다는 논리 하에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게 만들었고 여기에 남북한으로 정부가 나뉘면서 이념에 기반한 차별은 더욱 강화되었다. 신군부 정부는 국보위 상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삼청교육대를 설치하여 운용함으로써 전체주의의 지배원리를 실현시키고 배제를 합법화하는 법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이를 구체화시켰다. 이는 국가 공식 기제에 반하는 것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보고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에 의하면 안정, 발전을 위해 안보는 필요하고 그 반대 급부로 민주주의는 극단적 민주론, 교조주의로 치부되었다.

보편/특수, 서양/동양, 선/악, 적/아我의 구분을 전제한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구조는 이 시대의 지배 담론을 관통하는 인식론적 기저였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일명 교조주의, 극단적 민주론으로 지목된 민주주의의 가장 큰 과오는 위기를 자초하는 ‘혼란’이다. 이로 인해 ‘혼란’은 국가가 지목한 서구식 민주주의의 가장 큰 폐해인 동시에 시대를 진단하는 대표 키워드로 반드시 경계해야 할 ‘절대 악’으로 상정된다. 그 이유는 ‘국제정치와 세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서구와는 다른 ‘특수’ 상황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해 안보와 안정, 발전을 저해하고, 결국 ‘국기마저 위태롭게’ 하는 망국의 위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화문이 진단하는 이 시대는 “구시대”의 위기와 혼란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맞이하는 일종의 “전환기” “분기점” “분수령”이며, 이를 위해 “총화” “단결” “단합” “통합”이 요구된다.

국가는 개인, 정당, 지역을 국가의 단결과 통합에 반대되는 사적인 이해 집합체로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주체로 대비시킨다. 광주는 불순분자의 배후가 있는 진원지로 대표되며 지역주의의 실현 모델이 된다.

그렇다면 학살은 왜 일어날까? 집단 간 격렬한 갈등이 있을 때 반드시 학살로 이어지는가? 저자는 5.18이 정치적 학살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인) 제노사이드는 불평등이 민족, 종교, 인종, 사회경제적 차별 위에 중첩된 사회에서 벌어질 확률이 높다. 정치적 학살은 여기에 국가의 성격과 의도가 포함된 형태다. 한국의 쿠데타(들)는(은) 대항세력에 의한 체제 전복 위기를 폭력적 수단으로 해결하려 하면서 발생했다. 이념 갈등에 의한 사회균열운 정치적 균열을 만들어내며 유신체제를 복원할 것이냐, 아니면 민주화로 나아갈 것인가로 나뉘게 만들었다. 미국의 카터 집권 후반기 동북아 정책은 남한 정치의 국내 불안요소는 동북아 안정에 해가 된다 인식했고 이에 따라 5.18에 침묵(묵시적 동의)을 선택했다.
결론적으로 5.18은 반공주의, 배제적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군부 권위주의 엘리트들이 불특정 다수 민간인을 희생시킨 사례라 할 수 있다.

끝나지 않는 학살을 직면하기 위해서 우리는 남은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2021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공포되었다고는 하나 전두환을 포함한 5.18 학살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 현재도 여전히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 조작하고 이를 지역, 사회 갈등으로 만들어내려는 세력이 존재하기에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반인권 범죄와 그 최극단인 학살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민주주의의 내면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려 우리 안의 배제의 문화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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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 숲으로 걸어간 할머니, 엠마 게이트우드의 놀라운 여정
벤 몽고메리 지음, 우진하 옮김 / 수오서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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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게이트우드는 미국 에팔레치아 트레일 도보 여행을 추진한다. 67세 여인이 두 발로 140여일의 시간을 걸어 트레일을 완주하다니 놀라웠다. 사실 67세가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이제는 그 호칭이 어색한 것 같지만 1950년대만 해도 고령의 나이에 속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도보 여행을 떠나기 전 자식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몰래 떠났다. 그 용기와 대담함이 놀라웠다. 자식들의 반응도 놀라웠던 것이 ˝어머니는 그러고도 남을 분이죠.˝라며 쿨하게 받아친다.

물론 그녀는 트레킹을 하기 전 충분한 준비를 했다. 평소에도 걷기는 꾸준히 해와서 체력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준비물을 최소한으로 하고 짐은 봇짐 하나가 다였다(무게는 7kg 정도).
에팔레치아 트레킹은 몇몇 사람이 도전하기는 했지만 게이트우드 전에 풀코스로 완주한 이는 단 몇 명에 불과했다.

트래킹을 하는 동안 그녀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휩쓸릴 뻔하는 등 여러 번 위기에 처했다.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녀를 놀랍거나 신기하게 본 이들이 지역 신문에 소식을 퍼나르면서 기사화가 되어 이후 인터뷰를 요청받는 등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 나중에는 그녀가 인터뷰를 피해다니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게이트우드는 에팔레치아 트레일 풀코스를 끝내 완주한다. 심지어 한 번만 완주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완주했다고. 이후 그녀는 홍보대사 활동, 강연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녀의 이름을 딴 트래킹 코스가 만들어지기도 했다고. 그야말로 미국 트레킹 여행의 전설이 되었다 할 수 있다.

헌데 이 책의 장벽이 있다면 남편(페리)이다. 그의 이야기가 언급될 때마다 분노가 치미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발 헤어져, 헤어지라고!‘를 수없이 외쳤다는. 11명의 자녀를 두었다는데... 어휴, 그 과정과 마음을 생각하면 내 속이 문드러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집을 박차고 나서 독립한 이유, 그리고 길을 나서서 또 다른 인생을 개척한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자식들의 인생 때문에 그녀는 몇 번이고 제자리에 앉았지만 결국 스스로 살기 위해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입장과 마음을 이해해준 자식들의 마음도 공감이 갔다.

여행기이자 에세이지만 1950년대 전후 미국의 역사를 설명해주어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도 안성맞춤이었다. 내용이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의 느낌도 좀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결국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스스로를 보듬었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덕분에 나도 희망과 긍정, 위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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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5-16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삶은 예순부터라는 말도 있군요 아이를 열하나나 낳았다니... 그때는 그런 사람 있기도 했겠습니다 한국에도... 자신이 자기 대로 살 길을 찾았군요 그게 즐거움이었을 것 같아요 아이도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열하나는... 꽤 오랫동안 아이를 낳고 길렀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05-18 13:00   좋아요 2 | URL
저희 어머니 식구도 8남매였다고 하더라구요. 당시로 생각하면 11명이 많지 않은 것일수도 있지만... 페리 같은 사람이 그때나 지금이나 있다는 것이 소름끼치는 현실입니다. 아무튼 게이트우드는 자신을 찾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간 용감한 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1~3 세트 - 전3권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
미할 비란.김호동 엮음, 조원희 외 옮김 / 사계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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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몽골사에 몸담은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최근 학계의 내용과 의견을 담은 만큼 몽골 제국사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몽골 제국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면서도 주변국과의 관계까지 조망할 수 있어 깊게, 넓게 읽을 수 있어 몽골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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