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음초 - 한시로 읽는 1896년 조선 사절단의 세계 일주 ㅣ 규장각 대우 새로 읽는 우리 고전 29
김득련 지음, 황재문 옮김 / 아카넷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96년 조선에서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위해 사절단이 꾸려진다. 김득련은 사절단의 일행으로 특명전권대사인 민영환, 수원 윤치호, 참서관인 김도일과 함께 2등 참서관 자격으로 참여했다.

이 체험이 특별한 것은 그들이 그저 러시아 황제 대관식만 참여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1896년 혼란스럽던 구한말 조선의 상황에서 외교관으로 파견된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아메리카, 유럽 땅을 밟고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던 시절 배와 마차 등으로 다닌 체험은 쉽지 않았을 여정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돌아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환구음초>는 이 여정을 한시로 기록한 것이라면 <환구일록>은 이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환구일록>은 체험을 메모로 기록해두었다가 조선에 돌아온 뒤 민영환의 기록과 비교해보면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는 <환구음초>만 실려 있지 않고 그 배경이 되는 <환구일록>까지 함께 실어두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김득련의 체험기는 민영환이 남긴 기록과 윤치호가 남긴 기록이 있어 서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반 독자가 두 기록을 뒤져가며 읽기에는 번거로울 수 있는데 책에서는 두 기록을 함께 등장시키기 때문에 더 읽는 맛이 풍성하다. 아무래도 민영환은 전권대사 자격으로 가서 상대국인 러시아에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가급적 빼고 최대한 공식적으로 기록했던 것 같다. 김득련의 기록은 이에 비해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사적인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윤치호는 앞서 미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 사람과의 기록과는 차이를 보이는 면이 많았다.

사절단은 인천 제물포항에서 상하이항으로 가 당시 동양 제일이었다는 번화하고 화려한 상하이의 모습을 구경한다. 원래는 여기에서 프랑스 공사선을 타고 홍콩을 거쳐 러시아로 향할 작정이었으나 배편을 놓치는 바람에 일본,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는 여정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는 바람에 사절단은 대관식에 늦지 않으려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나 길어진 루트 덕분에 우리로서는 간접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 셈이 되었다.

옆나라 일본에서는 나가사키, 시모노세키를 거쳐 고베에 잠시 들렀다 기차를 타고 도쿄를 향한다. 고베에서 하루 반나절이면 도쿄로 갈 수 있었다니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그만큼 발전한 일본을 보고 소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도쿄는 의화군이 신바시에 있었기에 만나러 간 것이었다. 참고로 1872년 신바시와 요코하마를 잇는 철도선이 일본 최초로 개통된 것이다.

태평양을 거쳐 캐나다의 벤쿠버항에 닿아서는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전기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캐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9천리 떨어진 뉴욕으로 향하는데 김득련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축지법’을 써서 금방 닿는 것 같았다고. 그만큼 찰나로 느껴져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광활한 아메리카의 평원을 보면서는 중국의 요동과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해당하는 연경의 광활함보다 몇배나 더 큰 규모라 표현한다. 또 뉴욕은 근심 없는 장춘원, 불야성 같은 화려함으로 표현한다. 뉴욕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도 많고 화려한 도시였던 것 같다. 마침 뉴욕 전기 박람회가 있어서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한다. 퀸스타운을 거쳐 영국의 리버풀 항구에 도착하며 유럽의 관문에 입성했다.

영국 런던의 ‘정치가 융성하고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며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P165)’이란 표현도 흥미로웠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고 활동한지 어느덧 50년이 지나갈 무렵으로 번성한 도시 속에서도 국법이 엄격하고 명백한 모습을 보며 영국이 부강하다고 느껴서인 듯하다. 아쉽게도 사절단은 당시 유명했던 수정궁은 시간상 둘러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한다(내가 다 아쉽다).

베를린을 거쳐 폴란드를 지나 드디어 러시아 땅에 입성한 사절단. 그곳 모스크바에서 사절단은 황제의 대관식을 경험한다. 당시 세계 각국의 사신이 하례에 참여했는데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청나라, 튀르키예, 페르시아 사신들과 더불어 대관식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외부의 누각 위에서 기웃거리며 보았다니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사흘 밤낮동안 환한 등불이 집, 거리, 크렘린 궁을 비추었다니 과연 장관이었을 것 같다. 김득련은 놀라했으나 윤치호는 이미 미국에서 더 멋진 연등 행사를 경험한 바 있었기에 다소 냉소적으로 기록했다. 황궁에서 밤에 공연을 관람을 하기도 했으나 내용을 알 길이 없으니 뭐 사실 무용만 보고 온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중에도 윤치호는 공연 감상기에 발레복을 보며 종교적인 이유로 비난을 하다니 좀 눈살이 찌뿌려지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절단이 2개월 넘게 머무른 도시이기에 기록 분량상으로도 그렇고 이야깃거리가 많다.
특히 김득련이 이곳에서 작성한 기록에는 그날의 일과와는 관계 없는 정보나 지식으로 최대한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상을 자제하고 관찰한 바 그대로를 표현했다.

일단 조선과는 다른 기후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 현상인 백야 현상을 보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기록한 것들이 많다.
동물원과 식물원, 영화관, 맥주 공장, 수돗물 정수장, 도서관, 자기공장, 유리공장, 양초공장, 개선문, 겨울 궁전, 천문대, 미술관 등을 다녀왔다.
장례 행사를 경험하고 황제가 타는 요트를 타볼 기회도 있었고 엘라긴 섬에 가 피서를 보내기도 했다.

표트르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도읍을 정한 뒤 스스로는 검약한 모습을 취하는 것을 보며 배울 점이 있다 느낀 점이 인상깊었다. 네바강의 해질 무렵 풍경을 보면서는 이국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고향을 그리며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음력 2월 떠난 사절단은 8월 19일 드디어 그곳을 떠나게 된다. 윤치호는 그곳에서 귀국하지 않고 파리행을 선택한다. 사실 민영환, 김득련, 윤치호는 글에서 이미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여행길 초반에는 민영환과 윤치호는 앙숙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를 못마땅해하는데 이무렵이 되면 서로 가졌던 선입견이 많이 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득련은 영어를 잘하는 윤치호에게 도움을 많이 얻었기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사절단은 시베리아를 거쳐 흑룡강,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부산항->제물포로 귀국한다.
당시 완성되지 않았던 시베리아 철도과 바이칼 호수의 풍경, 이르쿠츠크/하바롭스크 총독부에 들른 소회, 곳곳에서 만난 조선인 유민들을 만난 소회가 인상깊었다.

사절단은 7달 동안 8개국을 거쳐 그렇게 돌아왔다. 과연 이 경험들은 네 사람에게 어떤 경험이 되었을지.

이 책은 정말 우연히 건진 책이었다. 참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서점은 무어든 읽을 만한 거리를 챙겨오게 되어 수확이 있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감정 상태가 결집되어 있다. 화남, 억울함, 슬픔, 시샘이나 부러움, 부끄러움, 쌀쌀맞은 쓸쓸함에 이르는, 부정적 심정의 묶음이다. 외로움은 추상적 묶음이고 그것의 드러남은 이러한 구성 속성 중 하나 또는 몇 가지의 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찾지 못한 상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결핍도 외로움을 유발한다. 이는 '스스로 존재함'과는 확연히 다르다. 외로움이 고립된 몸의 내면이라면, 스스로 존재함은 독존하는 몸의 정신적 표상 형식이다. - P47~48

서양 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가 한시에 관한 책을 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제도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읽기'다. 서문을 읽어보니 본인에게 한시는 모호한, 몽롱한, 가 닿을 수 없는 철학 같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고.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소리가 스스로에 대한 겸손의 표현임을 느끼게 된다. 나는 몇 권의 책을 통해서 한시를 경험한 것이 다이기 때문에 정말 문외한에 가깝다. 이 책은 한시를 읽는 처음 경험하거나 아직 잘 모르는 초보 독자라도 겁먹을 필요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제목이 '고독서정' 고립과 독존에 대한 서정읽기다. 이에 따라 고른 한시들은 대체로 저마다 다른 사정의 외로움이 드러나고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맞서고 분투하는 감정이 놓여 있다. 한시의 해석을 앞에 싣고 뒤에는 원문과 독음을 준 뒤 이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덧붙였다. 한시를 쓴 시인의 상황과 감정은 이랬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독자도 저마다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배경과 시를 쓸 당시의 상황을 알려줌으로써 그 해석을 돕는다.


마음에 드는 한시들을 체크하면서 내 마음이 어느 시에 공명하는지 확인하며 읽었다. 


이백의 시는 술을 홀짝이고 기울인 뒤 읽으면 그 감상을 더할 수 있다. 저자의 감상기에 웃음이 났는데 본인이 이백의 짠한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술을 하지 못해서 감정 이입이 되기 어렵다고 해서다. 어쨌든 그의 시가 널리 읽히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읽기 쉬운데다가 술에다가라도 의지하려는 결핍의 영혼을 가진 이들과 공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그의 시가 은근함이 없어서 어느 순간 감정이 파사삭 식는다고 하는데 뭐 나는 그의 그 지지리 궁상같은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함 때문에 그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백, <장진주>(술을 권한다)


뜻이 이루어졌을 때는 마땅히 온전히 기뻐하고

술잔은 헛되이 달을 마주해서는 안 될 것

...

잠부자, 단구생

술을 올리니 멈추지 말고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부르니

내게 귀 기울여 들으라

음악도 안주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오래 취하고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옛부터 성현은 고요하고 쓸쓸했고

술 마신 이들만 이름을 남겼다

...

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 말하는가

주저 말고 술 사오시라, 그대와 마실테니

...


이백은 어느 술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놓고 분노를 토한다. 이 상황을 보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찼으려나. 왜 진상이야 하는 말을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싸움이라도 안 났으면 다행이려나. 


왕유는 안사의 난 때 안록산이 세운 대연국에서 벼슬을 한 것 때문에 난이 평정된 후 더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웠던 듯하다. 개인의 뜻을 펼치기 어려운 시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왕유의 삶과 그의 시에서 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왕유의 시는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 대체로 어느 정도의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살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뭐 츤데레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왕유, <송별>(사람을 보냄)


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

그대에게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지

그대 말하길, 뜻한 바 같지 않아

남산 자락으로 돌아가 눕겠다고

그저 가시라, 다시 묻지 않을 테니

흰 구름 없어질 때는 없으리니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행선지를 묻는 왕유나 답하는 친구나 무심한 듯 툭 건네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친구는 뭔가 뜻한 길이 잘 풀리지 않아 어디엔가 은거할 작정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왕유는 그를 감히 붙잡을 수 없고 그저 가시라 툭 하고 말을 건넬 뿐이다. 


왕창령, <새하곡 - 둘째>(변방 요새 아래서)


가을, 말에게 물 먹이며 건너는데

물은 차갑고 칼바람 분다

가지런한 모래밭, 해도 저물지 않았는데

임조성은 희끄무레 보인다

오래전 장성 싸움들,

뜻과 기세가 높았다고들 한다

이제나 예나, 누런 티끌 가득 차고

썩고 남은 뼈들 들풀 속에 어지럽다


진나라 이후 장성이 쌓이고 나서 변방으로 출정하는 장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방에 나간 어느 장병이 시를 읽는 중이니 평시인 비전투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가을에 물을 건너와 장성 앞 모래밭 풍경을 보며 과거 이 터에서 벌어졌을 전투와 거기 있었을 사람이 이제는 백골이 되어 떠돌고 있는 황망함을 느낀다. 남은 것은 들풀들 뿐이다. 


유종원, <강설>(눈 내린 강)


온 산에 새 날아감 끊기고

온 길에 사람 자취 사라졌다

배 한 척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린 강 홀로 낚시하는 차가움


고립된 이는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혼자서는 못 이겨 낸다. 독존하는 이는 강에서 홀로 낚시를 해도,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늘 그렇게 낚시하는 것을 연습했기에, 추운 날씨를 몸으로 느끼고, 애써서 온기를 찾지 않으며 차가움 자체를 구현한다. 물론 독존이 초월적인 것과의 접촉 통로일 수는 있다. 세상과 떨어져 지내던 은수자가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은 다른 인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유종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간을 외면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가려는 계시종교의 수도자가 아니라,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지반을 조심스레 살펴 보고 그 위에 나를 하나씩 조금씩 쌓아 올리고, 무너지는 것을 토닥여 가며 전진해온 인간이다. '실존의 편력을 통한 독존의 구축'-이것이 '시유'라 물리는 그의 삶이다. 오십 년도 살지 않은 그의 삶의 최종 귀결은 '차가움'이다. - P207


유종원은 벼슬을 하다가 호남성으로 좌천되어 영주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직책으로 지냈다. 내가 아는 그의 시에는 노년을 다룬 시가 많은데 이는 인생의 끝자락에서의 회한처럼 고립과 외로움의 환경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결코 감정을 닫고 숨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꿈을 펼칠 시기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였다. 저자의 유종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한시 여행이 참으로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Becoming (Paperback) -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Crown Publishing Group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참 전에 사두고 앞부분만 조금 읽다 만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역시 원서는 함께 읽어야 읽을 수 있는건가. 아무튼 '강제'의 힘은 확실히 강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은 미셸 오바마는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하다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미셸도 인생 여정을 거치며 쉽지 않은 우여곡절을 지나왔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상황에 놓여졌을 때 상처받고 흔들려서 무너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부러웠다. 멋진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미셸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미셸과 오빠를 항상 어른으로 대접해주었다. 결코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고 어떤 질문에든 경청하고 나서 일방적인 훈계가 아닌 방식으로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냉혹한 현실에는 꾸미거나 왜곡하지 않고 어물쩍 좋은 말로 넘기지도 않았다. 언제라도 세상에 나아가서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신 게 아닐까. 그래서 덕분에 그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통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프린스턴은 극도로 백인적이고 대단히 남성적이었다. 남학생 수가 여학생 수의 두 배가 넘었고 흑인 비율은 9%도 안 되었다. 그녀는 제3세계센터(TWC)를 통해서 흑인, 라틴계 학생 공동체와 자주 어울렸다. TWC 센터장인 처니에게서는 망설이는 일이 있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도전해보라는 메시지를 얻는다. 룸메이트인 수잔을 통해서 나와 다른 자유분방한 성격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아마도 이것으로 오바마를 만나기 전 미리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었을 듯), 


미셸은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들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 마련이었는데 그로 인해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로 정해진 길에 당연한 듯 들어섰고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칭찬을 잃을까봐 다른 길을 택하지 못했다. 늘 그래왔듯이 노력과 의지에 맞춰서 사는 것에 절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데 변호사는 늘 한 공간에 갇혀 수많은 사건 서류 더미와 씨름해야 했던 것. 그렇게 그녀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소명이 아님을 점점 깨닫게 된다. 물론 그 직업을 선택해서 평생지기인 오바마를 만났으니 그녀에게는 어쨌든 짧지만 중요한 전환이기는 했을 것이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운동가로 활동하는 모습으로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했고, 관습적이지 않았고, 희한하게 우아했다."고. 뭐 이즈음이면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데이트해야 할 것 같아요.” 버락의 제안에 만남을 가진 그녀는 모든 것이 뒤섞인 이 이상한 남자(!)에게 결국 넘어갔다. 미셸의 이상형이 언제고 단숨에 자신을 사로잡는 남자를 만나, 최고로 멋진 사랑 이야기들에 빠짐없이 나오는 해일 같은 격정에 휩쓸리기를 바랐던 것을 생각하면 뭐 대충 비슷한 거 아닐까 싶기도. 


미셸의 청춘에서 가장 큰 아픔이었던 사건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수잔의 때이른 병으로 인한 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사는 동안 원없이 하고 싶은대로 살았기에 미셸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 있었다. 이후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은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그녀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시카고 시청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기로 한다. 월급은 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버락은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튼 미셸과 오바마는 축복 속에 시카고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지만 이상주의자인 오바마에게서 미셸은 그의 비전이 실현되기를 어느 순간 소망하게 되는데 그것이 오바마가 정치를 선택하여 그 길을 걸어가는데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1996년 버락은 정치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임신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첫 아이는 결국 유산이 되었다. 두 사람은 상담 끝에 배란 촉진제를 복용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노력 끝에 첫째인 말리아가 태어났다. 이후 둘째인 샤샤가 태어났다. 힘들게 얻은 아이들이었기에 두 사람의 기쁨과 간절함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미셸은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금 더 자유도가 높은 병원의 일자리를 수락한 반면 버락은 강의와 입법 활동을 병행했다. 게다가 그는 더 높은 정치인의 길에 올라가기를 꿈꾸고 있었다. 미셸은 지금도 충분히 바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정치가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때 부부 상담을 하러 가야할 정도로 악화일로였다고. 뭐 상담 후에는 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무마되었지만. 


오바마는 정치인의 단계를 밟았고 결국 대통령의 길에 들어섰다. 이걸 미셸이 수용하기란 참 쉽지 않았을텐데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대통령이 되면서 미셸은 가족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공개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야만 햇을 것이다. 백악관에 살면서 버락은 예전보다 규칙적이 되었다고. 아이들이 가장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단다. 

미셸은 이것저것 정치에 직접 개입해서 간섭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이자 최고의 결과를 냈다. 백악관에서 텃밭을 가꾸고 비만이 늘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건강식으로 된 급식을 추진하고 군병원에 방문을 해서 장병들을 위로하고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을 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 재난이 생기면 기피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일부러 가족들과 그곳을 찾아 여행을 하기도 했다. 

특히 총기로 인한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슬퍼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장이기에 총기 규제 법안을 어떻게든 추진하려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결국은 안되었지만). 


번역서가 읽어서 겨우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원서들보다는 재미나게 읽었다. 그녀의 인생이 궁금했었기에 이렇게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그녀는 참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부디 남은 인생 멋지게 살아가시길!

Failure is a feeling long before it becomes an actual result. It‘s vulnerability that breeds with self-doubt and then is escalated, often deliberately, by fear.

It was one thing to get yourself out of a stuck place, I realized. It was another thing entirely to try and get the place itself unstuck.

Dot we settle for the world as it is, or do we work for the world as it should be?

It‘s all process, steps along a path. Becoming requires equal parts patience and rigor. Becoming is never giving up on the idea that there‘s more growing to be done.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6-09-30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거리의 화가 님!! 1등 이십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같이 읽기가 아니라면 완독하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어들이 너무 어려워서요. 그건 미셸 오바마가 어휘력이 좋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장이 어려운 것 같진 않은데 색다른 단어들을 넘나 많이 써서.. 휴..

미셸도 대단한 사람이고 오바마도 대단한 사람이고, 말씀하신대로 둘다 대단한 사람들끼리 만난 것 같아요. 미셸이 오바마의 대통령 출마를 허락하게 되는 이유중에 하나가, 오바마는 항상 미셸의 선택을 지지해줬다는 것도 있잖아요.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월급은 더 적지만 다른 걸로 옮길까.. 갈등할 때 오바마는 응원과 격려를 줬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응원을 해준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흑인이며 여성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이렇게 글을 써준 것이 저는 너무나 좋습니다. 거기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걸친 흑인의 역사도 있으니까요.

비커밍 한 달 더 읽기로 해서 그 다음 원서는 11월부터 시작하게 될건데요, 거리의화가 님, 한달간 달콤한 휴식을 즐기세요!!
>.<

거리의화가 2026-09-30 09:13   좋아요 0 | URL
아... 11월까지 연장되었군요^^; 아무래도 분량도 그렇고 어려운 단어들이 있어서 읽기가 어렵더라구요.

미셸도 버락도 둘 다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여러 번 주먹을 불끈 쥐으며 읽었는데 어찌 되었든 저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적어도 미국이란 나라에 확실히 득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달 간 잠시나마 인류에 회의적이던 제 생각이 잠시 달아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락방 님 함께 읽기 제안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 원서가 무엇으로 정해질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책이라면 참여하도록 할게요. 9월 마무리 잘하시기를!

책읽는나무 2026-09-3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도 꽤나 두꺼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서를 완독하시다니 멋집니다.^^ 뿌듯하시겠어요.

거리의화가 2026-10-01 08:59   좋아요 1 | URL
번역본이 있어서 그나마 완독을. 원서만 읽었으면 중도포기했을거에요. 그래도 원서는 킨들로 읽으니 단어에 도움을 바로 얻을 수 있어 힘이 됐죠.

단발머리 2026-10-0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며칠 전에 거리의화가님이 써주신 이 부분 지나갔거든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했고, 관습적이지 않았고, 희한하게 우아했다.˝고. 뭐 이즈음이면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콩깍지 부분이요. 지금도 오바마 멋있는데 그 때는 더 멋있었을거 같아요. 웃을 때 표정도 근사하고, 목소리도 ㅋㅋㅋㅋㅋㅋ 이런, 제가 사랑에 빠진 걸까요? 아무튼 저도 더 부지런히 읽어봐야겠어요.

거리의화가님이 1등이시네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완벽한 피해자 -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존재 ㅣ 앳(at) 시리즈 11
모함메드 엘쿠르드 지음, 박종주 옮김 / 마티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제목이 생각하기에 따라 좀 과도하게 느낄 수 있다 싶은 제목이다. '완벽한'이라는 형용사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연 '완벽한 피해자'란 있을 수 있을까(사실 나는 이런 제목을 경계하고 보는 편이다). 작가는 예루살렘 출신의 시인이자 작가, 저널리스트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인권 문제를 미국의 독립 언론 매체에서 팔레스타인 관점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짐작하겠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 매체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책에서도 여럿 나오지만 트럼프 등 미국의 보수 진영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NYT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어느덧 3달 째 독서 모임으로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책을 읽기 전 이 책이 여러 논란을 안고 있다는 경고(!)를 받았기에 어느 정도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어갔다. 읽고 난 느낌은 생각보다는 과도하지 않다? 표현의 과격함은 있지만 내용 자체는 팔레스타인 인권과 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앞서 여러 책들을 두드려맞으며 읽었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비인간화는 보다 은밀한, 하지만 훨씬 치명적이며 제도화되어 있는 현상, 우리네 신사적인 살인범들로 완성되는 실천을 가리킨다. 내가 말하는 비인간화란, 서구가 우리 눈을 마주 보기를 거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세계는 우리의 비극을 비극으로, 우리의 반응을 반응으로 보기를 꺼리거나 그럴 능력이 없다. 고집스레 우리의 정상적인 것들을 일탈로 분류한다. 근본적인 본능-예컨대 생존이나 자기방어-이, 그리고 지상의 생명체들에게 내재하는 기본적인 행동이 그들만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된다. 비인간화를 하는 것은 저속한 우익이나 잔인한 경찰만이 아니다. 더없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살인자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눈을 맞추기를 거부하며 인간미 없이 수백미터 밖에서 싸늘하게 저격하는 그 살인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의 저격수, 대면할 필요도 없이 저 멀리서 우리의 존재를 삭제할 권한을 갖고 있는 그 인물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언덕 꼭대기의 지붕 위에, 비유적인 의미에서는 정보와 보도국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저격수의 손에는 피가 묻지 않는다.  P25~26


'신사적인 살인범들'만큼 적나라한 표현이 있을까.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이스라엘(군)만이 살인범이 아니다. 로비에 엮여 있는 강대국들, 그를 옹호하는 언론과 매체들도 동조자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에 의해 팔레스타인들은 비인간화된 존재가 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하는 행동은 마치 일탈처럼 취급된다. 살인자에 '올바른'이라는 형용사를 썼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저격수도 마찬가지. 살인자는 직접적인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펜 등으로도 가능한 존재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치와 문법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면 팔레스타인 문제를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주인의 연장"을 쓰면 가끔은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불행하게 끝난다. 그리고 결코 제도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차이를 무시하"고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심한 자기최면"을 걸라고, 또한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죄에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기를 앙망하며 불가능하리만치 적절한, 신화적인 생명체-무고한 민간인-를 흉내내라고 배웠다. - P35

호소의 정치는 먹힐 수 있는가 곱씹게 된다. 예전에는 그렇다 믿었지만 이제는 회의적으로 기울었다. 식민지배자의 제도와 문법으로 피식민자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순진한 개량주의나 온건주의로 치부될지 모르겠다. 하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나라를 선언한 이후 몇 십년이 흘렀다. 얼마 후면 100 여년에 가까운 시간이 된다. 그동안 이 문제가 얼마나 해결이 되었는가 말이다. 


그럼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팔레스타인은 현재 어떤 시선으로 취급되고 있는가. 2023년 하마스의 공격으로 더 안 좋은 시선이 강화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지만 몇 권의 책을 읽어본 바 하마스는 단순히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앞선 역사가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은 성급하게 낙인받고 그런 취급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 체제 안에서 행동해란 시선을 받는다. 

우리에게 주문하는 인간성, 혹은 우리가 스스로 발명한 인간성은 복잡하고 머리 아픈 규정집을, 상형문자로 쓰인 그 계명들을 따른다. 영원한 피해자성으로써 유지되고, 동정과 연대를 얻으려면 따라야 하는 [외부, 특히 서구의] 자민족중심주의적 한계선을 통해 규제되는 인간화 기획은 부적격이다. ... 인간화란 그 설계상, 우리가 공공연히 드러내도 되는 정서 및 감정, 가치, 이데올로기, 응징받는 일 없이 밝힐 수 있는 제휴의 폭을 제약하며, 심지어는 검열하고 재교육할 것을 찾아 우리의 사상과 공상을, 지레짐작된 우리의 의도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리고 깊이 묻어둔 신념을 샅샅이 뒤진다. - P47

수동성, 약자로서 의도적으로 노출되는 그들은 피해자의 지위자로 한계지어져 있다. 그들이 말하는 도덕성을 갖추어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애초에 피살자가 왜 칼을 집어 들려 했을지보다 누군가 피살자 옆에 칼을 심어둔 것인지-종종 그렇다-여부에 매달리며 시간을 낭비한다. 하지만 "그 성원들을 자포자기식 방안으로 내모는 사회는 [...] 대체되어야 하는 사회"라면, 그리고 우리에게 식민 권력에 맞서 폭력적으로 저항할 도덕적, 법적 권리가 있다면, 폭행 용의자를 변호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비당파적', '중립적' 인물이라는 민간인의 발명은 팔레스타인 대의의 탈정치화를 심화했다. - P70~71

서구는 비당파성, 중립성을 지닌 이상적인 신화 기준을 바라고 요구한다. 과연 비당파적이고 중립적 인간이 얼마나 있을 수 있는가. 1960년대 미소의 대결 하에 아시아는 중립주의를 표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적 시선일 뿐 얼마 가지도 못했다. 해방 후 조선은 어떠했나. 우파도, 좌파도 아닌 중도주의를 표방한 이들은 말로가 좋지 못했다. 희망을 노래했지만 희망으로 그쳤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에서 자라던 시절, 우리를 동네에서 쫓아내려했던 이들은 유대인이었고, 그들이 속한 단체의 이름에도 종종 "유대인"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 집을 훔쳐 간 것도, 우리 가구를 길에다 내던진 것도, 아기였던 여동생의 요람을 태워버린 것도 유대인이었다. 우리를 추방한 것에 문제가 없다며 법봉을 흔들어댄 판사들도 유대인이었고 체계적으로 우리를 내쫓는 법을 만든 입법자들도 마찬가지였다. ... 우리의 파란색 신분증을 발급하고 말소하는 관료는 유대인이었고 나는 특히 그를 경멸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고조부의 도시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언어는 점령당한 골란 고원과 시리아의 나머지 지역을 가르는 경계지대보다 더한 지뢰밭이었고,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우리를 신뢰 못 할 존재로 만들 폭탄 같은 말을 실수로라도 밟지 않기를 바라며 그 지뢰들 사이를 이리저리 팔짝거리며 다녀야 했다. ... 틀린 신념을 갖는 것은 훨씬 더 위험했다. 그랬다간 그런 잔혹 행위를 당해도 싼 존재가 되었다. - P111~113

유대국가 하에 사는 팔레스타인의 실상이란 이런 것이다. 피점령지 예루살렘이라는 말이 잔혹하게 느껴진다. 쫒기고 내몰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다치거나 죽었다. 강제로 그어진 경계선을 억지로 지켜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제임스 볼드윈은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적다는 것쯤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을 비인간화하는 이들과 함께 사느라 "쉼 없이 이유 없는 수모를 당하고 위험을 겪다 보면 비상하게 예민하지 않아도 지칠대로 지쳐 낭떠러지 끝으로 내몰린다"라는 것이다. - P158

능력, 성실만 있으면 개천에서 용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편안한 환경에 놓이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을 교육시킨다고 해서 전쟁, 현실,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할 수 있는가.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지 않을까. '이 환경을 바꾸려면 바꾸고 뛰어들어야 해. 투쟁해야 해. 터트려야 해.'


파편화는 그저 상징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를 제각기 다른 나라에 살게 만들었다. 근년에 우리 사회의 한쪽은, 어떻게 됐든 그쪽에 남아 있는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크고 피에 젖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때 나는 오래도록 경멸하고 질투했던 계급들, 엘리트들, 부르주아들, 팔레스타인을 미적 은유로 쓰는 이들과 쉽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자 지구라는 좁다란 아수라장에 새로운 계급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굶주리는 계급, 반복적으로, 가차 없이, 무자비하게 빼앗기는 계급이다. - P194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도 계급화되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먹고 살 만한 계급은 괜찮겠지만 빈자들에게는 더 혹독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도 트럼프의 입과 이스라엘 등 주요 중동 국가에만 눈길이 가 있지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서구의 지식 생산자들 혹은 서구의 목소리를 활용해 지식을 생산하는 이들이 자문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이 작업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들은 주체성이라 할 만한 것을 지녔는가, 아니면 논지를 제시하기 위한 도구인가? 내가 착취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어떻게 책임 있는 저자성을 실천할 수 있는가? 나의 기획에 관객이 그것을 비판적으로 소비하도록 독려하는 단서를 충분히 넣었는가, 아니면 그저 내 등을 토닥이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가서 '직접 확인해야' 했던 것인가, 아니면 한 세기에 걸친 팔레스타인 문헌들을 무시한 것인가? ... 내 작업에 계급 분석이 있는가? ... - P179

대부분의 언론과 매체 등에 기록된 내용과 인용 자료를 이용할 때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먼저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그것을 읽는 사람들도 당연하다듯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확인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정도로 이 책의 읽기 소감을 갈음하고자 한다. 저자가 시인이기도 해서인지 묘사나 표현력이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한 뒤 이 책을 읽으면 좋을 듯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희선 2026-09-17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모임에서 팔레스타인 문제 책을 보시는군요 그 말 보니 얼마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들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가산 카나파니)예요 이 책도 한번 보시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거리의화가 님은 아시는 거였네요 읽기에 편한 소설은 아닐 듯합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09-18 17:06   좋아요 0 | URL
다음달까지 팔레스타인 책읽기가 진행됩니다^^
얼마 전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책 읽었었죠^^ 말씀하신 대로 소설이지만 탈출해야 하는 상황을 그린거라 읽기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사서에서 간접적인 상황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지점을 소설화해놓으니 더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어요.

그렇게혜윰 2026-09-17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유대교에 대해 읽은 적도 있는데 여전히 이쪽은 제게 미지의 세계네요 ㅠㅠ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라 저도 늘 위시에 있는데 3달째 읽으신다니!!!

거리의화가 2026-09-18 17:09   좋아요 0 | URL
저도 중동 지역은 거리가 멀게 느껴졌어요. 2년 전쯤 팔레스타인 관련 책을 읽고 이번에 내리 3개월 관련 책을 읽으니 조금은 그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는 듯합니다. 아주 오래 전 영화만 보았다가 얼마 전에 <벤허>를 읽었는데요. 여러 복잡미묘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읽는다고 달라질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만 했었는데 그래도 알지 않으면 그저 기사로 보여지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게혜윰 2026-09-18 20:51   좋아요 0 | URL
소파에 앉아 있으면 벤허 너무 잘 보이는 위치에 꽂혀 있는데 그럼 벤허부터 시작해볼까요??^^
 
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당시를 읽었다. 늦가을에 읽었으면 더 적절했다 생각하기도 했다. 이 책은 낮보다는 밤에 어울리는 듯하고 커피보다는 역시 차가 좋다 생각했다. 용정차를 곁들이며 한시를 읽는 맛이란 좋았다. 저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미소짓다가 피식 웃다가 때론 서늘해지기도 하는 경험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