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우생학 -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과학’이 되었나
N. 오르도버 지음, 김현지 옮김 / 오월의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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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은 언제나 극히 기민한 이데올로기였다. 우생학은 스스로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동원되기도 한 운동들, 즉 국가주의, ‘개혁 지향‘ 자유주의, 절대적인 동성애 혐오, 백인우월주의, 여성혐오, 인종주의와 따로 떼어낼 수 없다. 우생학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어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다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운동들과 공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생학이 모든 유형의 편견에 호소력이 있다는 것은 배제나 유전적 추정이나 외과 수술의 대상으로 지목된 개인들이 대부분 다중적 정체성을 가지며,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의 표적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6~57

미국의 우생학은 이제는 더는 사라진 학문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더는 자신이 백인 코카서스 인종임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흑인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인종, 계급, 젠더의 위계에 의한 불평등은 우생학을 낳는 기본 토대다. 거기에 정책 입안자, 의사, 법률가, 기업가 등이 서로 간에 양분을 주며 우생학이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우생학은 가산적 이데올로기다.

20세기 미국 이민의 역사는 우생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실천 영역 중 하나다. 1875년 페이지법부터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연방이민금지령, 1917년 재외국인 미국 이민 및 거주 규제법에 이르기까지 인종 및 계층에 따라 입국 불가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특히 1917년 재외국인 이민법이 발표될 당시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급진주의자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면서 보편적인 반이민정서가 횡행할 때다. 이후 1921년 이민자의 범위를 총 인구의 3%로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더니 1924년 이민제한법이 발표된다. 이민제한법은 우생학 전문대리인인 로플린이 적극 역할을 했는데 그는 재외국인 국가등록제를 촉구하고 자격 통과한 이민 예정자에게 개발적으로 여권을 발급해야 한다고 권고했던 것이다(정책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법은 나중에 히틀러의 나치 독일 단종법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우생학을 지지한 사람들은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인종 혼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증폭됨에 따라 백색 인종적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고 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하고자 뛰어들었다. 파이어니어 펀드라는 회사는 우생학 출판물을 영어로 번역하고 미국의 우생학회 등 우생학을 선전하는 단체를 지원하며 반이민 기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동성애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는 것이 동성애에 일탈이라는 꼬리표를 단다는 점,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또는 정신의학적 병리화가 이성애를 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 국립보건원은 어쨌든 이성애 유전자를 찾는 일에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다만, 아마도 의도치 않게 연구를 하는 경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1869년 헝가리 작가 카로이 마리아 케르베니 Károly Mária Kertbeny가 만든 ‘동성애자 homosexual라는 용어가 ‘이성애자 heterosexual‘라는 용어보다 먼저 통용된 것도 놀랍지 않다. - P183

동성애는 유전의 영향인가, 환경의 영향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사항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문제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생물학적으로 애당초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이끌고 가려 했다. 한쪽에서는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향은 유전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실패를 선천적인 지적 결함으로 이야기하면 특권층에 유리하기 때문에 먹히는 매커니즘이다. 한편 의학이, 의사의 주장이 사법 제도가 된 사례는 단종법의 통과다. 1909년 캘리포니아의 단종법 통과 이후(1911년 아이오와주, 나중에는 오리건주까지) 상습성범죄자 등에 대한 단종 수술이 징벌적 성격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 둔갑되었다. 이는 명백한 우생학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고다. 동성애자는 이렇게 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할 악이자 그 대상이 되버렸다.
마찬가지로 젠더가 유전적 요소에 따른다는 편견과 집착이 존재했다. 젠더부적응도 마찬가지다. 젠더 역할에 대한 의학적 판단은 인종, 계급에 기초하여 동성애를 구성하고자 했다. 의사든 비전문가든 레즈비언은 신체적으로 이상하고 기괴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동성애로 짐작되는 아이들 중 자위하는 아이들의 음핵을 제거하고 두개골 크기 및 얼굴 생김새로 범죄 성향을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레즈비언도 지배적 레즈비언과 소극적 레즈비언으로 구별하여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동성애에 대한 정신의학 및 생물학 논문이 내놓은 가설은 퀴어에 대한 적대감 및 신체적 위해를 제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호르몬으로 동성애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가설은 심리학자, 의사, 연구자들을 만족시켰다.

테크노픽스는 점점 더 암호화된 방식으로 활용됐고, 자유주의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보수주의자들과 합세해 인종, 계급, 젠더(청소년 여부 및 장애 유무에 의해 더 강화됨)를 우생학 프로젝트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확립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공공 정책 분야의 ‘혁신‘과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양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여성 및 여자아이들이 먼저 하나 이상의 특정 인구통계학적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병리화된 다음, 의학적으로 위험하고 헌법에 비춰 의심스러운 ‘치료법‘을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당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P411~412

산아제한은 계급(지위든 경제든)과 연관되어 우생학적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마거릿 생어는 적극적 우생학(‘적자‘는 인종과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을 늘려야)은 비난했으나, 소극적 우생학(‘부적자‘ 사이의 생식은 방지되어야)은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푸에르토리코의 가난한 여성을 대상으로 경구프로게스테론 실험약이 투여된 것은 미국의 식민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니그로 프로젝트‘는 흑인 사이의 출생률을 감소시키면 남부의 빈곤이 해결될 것이라는 가설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 W.E.B.듀보이스). 클래런스 겜블은 강제 단종수술 클리닉을 설립하고 널리 시행했는데 여기에 생어는 적극 동조하고 지원했다. 생어는 빈곤층이 재정 부담을 가져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구 과잉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온다며 단종수술이 필요하다 보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장애나 정신적 부적자에게도 단종수술이 필요함을 설파하는 인간개량재단에도 참여했다.
미국 남부에서는 조직적인 단종수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929년에서 1940년 사이 노스캐롤라이나 주 단종 수술 후보자 중 78%가 여성이었고, 그중 21%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으며, 1964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전체 단종 수술의 65%를 차지했다. 수술 대상자로 지목된 사람들에는 인종 및 사회 경제적 지위 뿐 아니라 연령(낮은) 기준이 작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단종 수술을 받지 않으면 복지 혜택이 줄어든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수급자에게는 협박으로 작용했다는 현실이다. 이처럼 산아제한의 명목으로 여성의 선택권은 보호받지 못했고 의료계가 선택한 자율성과 편의성에 의해 단종수술이 시행되었는데 이를 제공한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의 권리는 철저히 보호되었다. 이는 난관결찰술 및 자궁적출술에 이은 노플란트, 데포-프로베라도 마찬가지다. 국외 빈곤 퇴치 방안으로 행해진 두 시술은 모두 부작용이 제대로 고지되지도 않은 채 미국 외 저개발국가에서 실시되었다. 특히 노플란트는 원상태로 돌릴 수 있다(주로 5년 이후 빼낸다고 하지만 빼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사실 때문에 더 호혜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여성의 몸(의 부작용과 위험적 결과)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친다.

이처럼 이 책은 과거 미국의 우생학이 펼쳐진 다양한 국가 정책적 사례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러나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우생학은 결코 죽지 않았고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하고 진단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 우생학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반동주의적 의제와 개혁주의적 의제가 늘 협력한 것은 아니더라도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경우 자유주의는 보수주의, 그리고 심지어 전면적인 파시즘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더 밀고 나아갔다. 여성, 가난한 사람, 인종화된 사람, 장애인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양쪽 모두 온정주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양쪽은 모두 실패했다. 양쪽 모두 미국 국내와 ‘개발도상국‘의 인구 조절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이런 공동의 대의의 기틀을 만들고 조성한 사람이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상 중 한 명인 마거릿 생어다. 물론 생어 혼자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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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너츠 트윈링 노트 200P - 스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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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단어장 용도로 샀다. 한자와 발음, 뜻을 정리하고 한 면을 사등분하여 스스로 단어 퀴즈를 내가며 공부하려고 한다. 아직 두 번밖에 안했지만 계속 열심히 써보기로. 무엇보다 넉넉한 페이지수가 좋다. 트윈링은 역시 공부용도로 최적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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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2-2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영어 단어장 용으로 사고싶어지네요 ㅌㅋ

거리의화가 2026-02-23 17:05   좋아요 0 | URL
영어 단어장으로도 좋죠^^
 
인종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 식민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을 만들어온 인종이라는 거울
한국미국사학회 지음 / 궁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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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잡지를 보다가 이 책을 ‘또‘ 발견하였다. 진작에 신간 꾸러미에서 발견한 책이었지만 외면하고 있던 책이었다.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같이 소개하니 궁금하기도 하고 과연 두 책이 어떤 다른 느낌을 가져다줄까 싶어 주문하여 읽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미국사를 다시 훓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한국미국사학회에서 그동안 여러 학자들이 만들어낸 성과물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학술서라고 보아야 한다. 대중교양서처럼 수월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기존에 미국 인종, 계급, 젠더 관련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어나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느껴졌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인종‘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여러 사회 현상을 고찰하며 미국의 역사를 훓어본다. 정치 분야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읽는 맛이 있었다.

오늘날 ‘인종‘이 왜 문제인지는 해외 뉴스 한 두개만 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미국 뿐의 문제는 아니지만 미국은 트럼프 제2집권기에 들어서서 그 심각성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다만 인종을 이해하는 시각은 점차 달라져왔다. 과거에는 생물, 유전, 인류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었다면 오늘날에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건국기 링컨은 주로 남부 노예해방을 한 인물쯤으로 미화된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는 원주민에 대하여 온정주의적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그는 인디언 시스템의 에이전시직을 비전문가이자 인디언을 만나본 적도 없었던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정치적 지지자들에게 보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또 백인들을 서부에 정착시킨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홈스테드법과 대륙횡단철도 사업으로 원주민들의 땅은 강탈당하기에 이른다.
프리메이슨은 중세 유럽 길드에서 기원한 용어로 17세기 유럽에서 비밀결사우애단체로 출발했다. 이들은 개인과 사회를 개선하며 질서와 조화, 안정을 추구하고 신비주의를 고수했는데 18세기 미국에 유입되어 독립을 위해 뛰던 지도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프리메이슨 흑인 활동가들은 아프리카인들의 억압의 역사를 강조하기 보다는 흑인의 인종 평등과 노예제 폐지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흑인의 정치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여겨 교회와 연계하여 흑인의 시민권과 투표권을 획득하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다(폭력적 저항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1917년 미국은 문맹테스트 이민법을 만들고 아시아 이민금지 구역을 설정하였으며 이민자 인두세를 인상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테스트 항목을 킹 제임스 성경에서 발췌함으로써 개신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고 검열관의 판단에 따라 편의적으로 이민 테스트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았다. 이 이민법은 1952년 폐지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짐크로시대 외면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흑인들이 백인으로 통과하기를 감행했다. 그러나 정체성을 숨기고자 한 흑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발각될까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이후 흑인들의 지위가 상승하면서 백인으로 통과하기는 퇴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정말 사라진 유산일 뿐인가? 여전히 외형적으로 모호한 아프리카계 또는 아시아계 혼혈인은 백인 통과하기를 시도한다. 문제는 이것이 백인 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데도 역할을 한다는 현실이다.

20세기 흑인 권리 찾기를 주도한 이로 윌리엄 듀보이스가 있는데 다른 한편에 부커 워싱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커 워싱턴은 워싱턴에서 있었던 애틀랜타 타협으로 흑인은 백인 사회로 점진 통합해야 하며 경제적으로 자립, 현재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등 백인과 흑인의 협력이 필수라 보았다(당연히 백인들은 이에 환호했다). 이는 흑백 분리와 인종 차별을 수용하는 입장으로 보수적인 쪽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윌리엄 듀보이스는 흑인만의 고유성을 강조하며 흑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치적 권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1980년 레이건이 당선되고 미국 사회에 우파적 흐름이 거세지자 과거 부커 워싱턴의 정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내 이민이 증가하고 백인 여성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자 취업문이 좁아진 흑인들이 위협을 받은데다 1960년대 민권법과 투표권법이 통과되면서 계층간 간격이 커진 탓이었다.
두순자 할린스 총기 사건도 기억에 남는다. 한인 상점주 두순자가 10대 흑인 소녀 할린스를 총기로 쏜 사건이었다. 사건 발발 후 한인들은 이 사건을 인종적으로 다루지 않으려 했으나 사건은 인종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따라 할린스를 불량하고 남성적이며 싸움질하는 강도로 몰았고 두순자는 가정적이고 도덕적이며 중산층 계급의 여성의 내러티브가 만들어졌다.

19세기에는 인종 질서가 형성되고 백인의 차별적인 시선이 시작된 시기이다. 미국의 법과 정책은 건국기부터 백인 중심의 인종 질서를 구축했고 19세기 중후반이 되면 서부 확장을 통해 이를 더욱 공고히 했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들을 야만인이자 타자로 규정해 백인의 입장으로 이들을 문명화시켜야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20세기 전반이 되어서도 백인 중심의 질서를 재구축하려는 시도는 지속되었다. 산업화로 만들어진 도시공간은 인종주의가 기능하는 장소로 작동하는데 흑인이 백인화되려는 거듭된 시도는 인종의 위계를 무너뜨리고자 함이었지만 오히려 또 다른 분류를 만들어내는 역효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20세기 후반 인종 정치는 인종 위계에서만이 아니라 인종 내부에서도 다양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어 전개되었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는 곧 인종의 역사이므로 인종 연구는 여전히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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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가을 - 중국과 서양, 그리고 태평천국 전쟁의 역사 걸작 논픽션 33
스티븐 플랫 지음, 임태홍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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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오랜만에 감탄했다. 특히 '천국'은 기독교의 '천국'과 태평천국의 '천국'으로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것 같아서 그렇다. 그치만 가을을 붙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홍수전이 태평천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해는 1851년이지만 사실 운동의 시작은 1850년부터 주요 흐름으로만 따져도 4년여간 이어졌기 때문에 딱히 가을을 붙이기에는 애매함이 있지 않나 싶어서다. 


이 책은 태평천국운동(입장에 따라 운동이라는 글자 대신 다양하게 부르지만 그나마 운동이란 단어가 중립적인 것 같다)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논픽션이다. 중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이 이젠 제법 많아져서인지 다양한 저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논픽션은 사건을 그저 서술만 하지 않아 딱딱하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중요 사건은 좀 더 강조하여 마치 드라마 같은 느낌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일반 역사서였다면 이 정도 페이지의 분량을 며칠은 걸려서 읽어야할텐데 덕분에 2~3일 투자해서 읽을 수 있었다.


태평천국운동이 있던 시기 청은 대내외적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이었다. 1842년 영국과 맺은 난징 조약을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등과도 관계를 맺으며 세계 경제 체제에 합류하게 되었다. 내부는 곳곳에서 민란이 발생하고 있었다. 


책은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하지 않고 인물과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목을 끌었다가 다음엔 특정 사건(전투)을 설명하는 식으로 나열되어 있다. 목차를 보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더 신선하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홍인간은 스웨덴 선교사인 테오도레 함베리에게 세례를 받았고 홍콩에 갔을 때 만난 스코틀랜드 출신 선교사인 제임스 레그 등을 통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관련 책도 읽어서 서양 문화와 문물에 아주 익숙한 인물이었다. 외국어도 능숙했다니 재주가 있었던 인물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레그는 홍인간에게 전도와 공부에 집중하라고 권했지만 홍인간은 정치적 욕망이 있었던지 뿌리치고 홍수전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홍수전이 신을 만난 이야기는 마치 무슨 신화나 전설처럼 많은 이야기가 떠도는데 어쨌든 배상제회를 중심으로 모인 신도들은 그를 영적인 지도자로 여겼고 이후 태평천국은 점점 확장되어 나갔다. 1851년 1월 홍수전은 기독교 개종과 만주족 타도를 기치로 태평천국을 수립하며 스스로 천왕이란 자리에 올랐고 홍인간에게는 간왕이라는 직함을 내렸다. 홍인간은 이 무렵 논설을 통해 태평천국이 나아갈 방향이자 뚜렷한 목표로 근대 산업 강국으로 내세우며 비전을 제시했다. 사촌인 홍인간이 상대적으로 한 자리를 얻기 쉬웠다면 충왕인 이수성은 홍수전의 신임을 얻기 위해 바닥부터 무진장 노력하여 마침내 장군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이다.  


태평천국운동 초기 영국은 청 정부군과 태평천국군 중 어느 한편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다만 당시 상하이에 있던 영국 최고위직 프레더릭 브루스는 청 정부군 고위직에 있던 '오후'의 부탁으로 청군을 지원하는 편에 섰다. 물론 상하이에 있던 영국인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분도 있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인 지휘관인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는 중국인 상인 집단의 손을 잡고 외국인 중심의 민병대를 꾸려 태평천국군 편에 서서 청 정부군을 몰아내려 했다. 그리고 청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들은 태평천국 편에 섰는데 중국이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생각과 서양에 우호적인 방향성이 대체적으로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차 아편전쟁으로 다구포대에서 패배한 영국은 청에 설욕하기를 원했기에 중립 노선을 내려놓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와 프랑스 함대까지 동원해 베이징으로 향했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증국번은 청의 상비군을 이용하지 않고 자체 군대를 새롭게 조직하였다. 자체 규율로 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세뇌를 한데다 구성원이 마을, 가족 단위였기에 서로 서로 감시하는 역할까지 더해져 결속력이 강한 군대가 되었다. 덕분에 태평천국군에 승리하여 황제의 주목을 받았지만 함풍제는 얼마 후 사망하고 너무 어린 황제를 대신해 서태후(와 동태후)가 정치 무대에 메인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1861년 미국에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영국산 면직물 가격이 폭등하여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급감하는 등 실물 경제가 요동쳤다. 링컨이 남부연합의 모든 항구를 봉쇄하자 영국은 중국의 조약항들이 자신들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보복이라도 하듯 영국이 미국 남부연합의 교전국 지위를 인정한다고 발표하자 결과적으로 이는 태평천국의 주권도 인정하겠다는 꼴이 되었다. 태평천국군으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홍장은 증국번의 군대와 비슷한 성격의 민병대를 안후이성에서 조직하기 시작했다(규칙까지 복붙). 서태후와 어린 황제는 증국번에게 정부군 지휘 책임을 맡겼는데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1862년이 되면 영국군과 프랑스군,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가 힘을 합해 태평천국군이 점령한 상하이를 탈환하기 위해 뛰어들며 접전이 벌어진다. 1863년에는 피난민이 몰려들어 상하이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다. 이는 톈진에서 베이징까지 확산되었고 군대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증국전의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위화타이의 석축 요새를 점령한 이후 청군은 계속 세력을 뻗어나가며 태평천국군이 빠져나갈 출구를 장악해나갔다. 1864년 홍수전은 이미 병으로 사망한 뒤였던 때 좌종당 부대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항저우를 탈환하고 이수성이 증국번에 의해 잡히고 난 뒤 사실상 전쟁은 종결되었다. 이수성은 태평천국군의 거의 마지막을 지휘한 반면 홍인간은 이때가 되면 초기의 진취적인 기운도 없어졌다는 식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앞서도 설명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홍수전의 사촌이자 태평천국에서 간왕 노릇을 한 홍인간과 충왕 이수성에 대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었다. 태평천국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동안 사실 홍인간에 대해서는 뚜렷한 인상을 받지 못했었다. 이 책에서는 홍수전은 오히려 약간 뒷배경처럼 배후 같게 그려지고 홍인간이 메인에서 지휘를 이끄는 실세처럼 그려져 있다. 충왕 이수성의 역할도 제법 비중 있게 다뤄진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나 축소를 감안해야겠지만 태평천국운동을 조금 더 상세히 뜯어볼 수 있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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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야기 1-2 - 동양문명, 수메르에서 일본까지 월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 1
윌 듀런트 지음, 왕수민.한상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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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이야기 동양 두 번째 편을 읽었다. 1편이 초기 인류 문명 중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중해 부근을 다루었다면 2편은 인도, 중국, 일본 문명을 다루고 있다. 이것으로 사실 동양 문명을 포괄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생각이지만 그럼에도 2편은 인도, 중국, 일본 문명을 꽤나 공들여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분량으로만 따지면 사실 인도가 가장 비중이 높고 그 다음이 중국, 일본 순인 것 같다. 


인도는 아라비아 숫자가 탄생하고 십진법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음수 개념도 찾아내 수학의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아랍을 거쳐 유럽이나 다른 아시아로 향한 것이다. 

인도의 종교는 불교에서 출발하여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거쳤다. 불교를 탄생시킨 부처는 극단적 금욕주의를 실천하고자 했다. 인생은 고통이며 고통은 욕망에서 비롯되기에 지혜는 모든 욕망을 잠재우는 데 있다는 것이다. 

부처 사후 불교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로 나뉘어졌다. 이후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로 대체되었으나 역설적으로 주변 국가들로 불교가 확산되며 그 명맥을 이었다. 

힌두교는 창조를 뜻하는 브라만(여기서도?), 보존을 뜻하는 비슈누, 파괴를 뜻하는 시바를 3대 신으로 모신다. 

이슬람교는 쿠샨 족 등 이슬람인들이 들어오면서 상당 기간 동안 인도를 지배하며  다양한 문화를 낳게 했다. 


인도에서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카스트 제도는 계급에 따른 일상 생활의 모든 규범과 의무를 규정해놓은 것으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이 세습된다는 특징을 가졌다. 가장 상위를 차지하는 계급인 브라만 관점에서 규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하위 계급은 브라만을 존중하는 등의 조항도 들어가 있다. 

인도의 철학은 대표적으로 베다, 우파니샤드에서 출발했다. 베다는 '지혜들'을 뜻하며 지혜에 관한 책에서 기원했다. 베다는 네 가지 내용(만트라, 브라마나, 아라냐가, 우파니샤드)으로 되어 있다. 

'우파니샤드'란 '우파'(가까운), '샤드'(앉다)로 스승에게 가까이 앉아 있음을 뜻하는 말로 스승이 제자들을 불러놓고 한 가르침의 내용이다. 그곳에는 BC 800~500년 활동하던 다양한 성인과 현자들의 강론이 실려 있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이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가르침이다. 1단계는 아트만으로 자아의 본질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무형의 침묵하는 존재이며 2단계는 브라만으로 어떤 것에든 자리하며 중성의, 인격과 무관한,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무형의 세상의 본질이자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영혼이다. 3단계는 아트만과 브라만의 통합을 지향한다. 

브라만 철학 체계는 사실 읽었지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어려웠다(발음이 어려운 탓도 있는 듯). 그래도 이 중 부처 시대에 번성했다는 요가 체계(요가는 지금 요가 교재로도 사용하는 그 요가 맞다. 요가 경전인 요가수트라에는 요가 체계의 실천사항과 전통을 담고 있다)와 우파니샤드 철학에 논리를 제공하고자 탄생한 베단타 체계는 기억에 남는다. '베단타'란 '우파니샤드의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과 영혼은 하나이니 브라만과 합일되려는 열망으로 우리는 탐구하고 생각하려는 자발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제력과 평정심을 꾸준히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사시로 지금도 알려져 있는 것은 아마도 마하바라타와 바가바드기타가 아닐까. 마하바라타는 폭력과 도박,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바가바드기타는 개개인이 나라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예전에 바가바드기타는 발췌본으로 읽어서인지 그런 메시지는 느끼지를 못했던 것 같다.

인도 관련하여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이 정도로 하는 것으로 한다.


중국은 역시 철학 체계가 가장 흥미로웠다. 예전에 읽었던 중국철학사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책의 비중도 철학 쪽에 치중되어있다는 느낌이었다. 고대 분열과 통합의 시기가 끊임없이 오갈 때 혼란의 시기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철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역시 공자의 영향은 막강했다. 공자 사후 공자를 주해한 책들이 쓰여지면서 중국 내 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도 공자의 사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공자를 추존하는 사당이 여기 저기 만들어진 것은 물론이다. 

여러 시인이 탄생된 시기는 당나라였다. 당시는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표현과 절제된 감정이 특징이다. 이태백, 두보, 도연명, 백거이 등 유명한 시인들이 있고 이들의 당시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송나라는 종이, 먹, 도장이 개발되고 목판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학문이 전수될 수 있는 길이 열린 시기다. 옥과 돌을 다루는 기술이 최상급이었으며 특히 칠공예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림에는 북종화와 남종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두루마리 형태도 있었지만 병풍 형태도 있었다. 서양화와는 달리 원근법이 무시되었으며 선과 먹의 농담으로 사물과 자연을 암시하여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실상 동양 수묵화가 시작된 것이 이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이들의 영향은 한반도의 고려, 조선에도 이어져 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교가 정착되면서 하늘을 숭배하던 이들이 조상을 숭배하게 되었으나 점술을 비롯한 신비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역경을 바탕으로 한 도교의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쇼군, 영주, 가신, 무사 계급으로 중세 이후 체계가 근대 시기로 오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이 중 사무라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 받는 것 말고는 노역을 받지 않았고 검을 소지하면서 하층민을 죽일 권한을 가졌다. 

일본은 9세기 가타카나 문자를 개발하기 전까지는 한자를 사용했다. 현재도 명맥을 잇고 있는 대중 연극인 가부키 시바이는 18세기 승려들이 의식에 합창곡을 더하고 연기자에게 연기를 하도록 한 3부작 연극을 기본으로 막간인 소극이 더해져 지금의 형식이 만들어졌다. 단카와 하이쿠 문화도 있다. 중국, 조선에서 건너간 도자기 문화는 현재도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 작품으로 남았다. 건축은 소담한 정원이 떠오른다. 아기자기한 멋으로 일본의 차와 함께 대표적인 문화 예술이 되었다. 호쿠사이, 히로시게를 대표 작가로 하는 우키요에 판화는 서양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후지와라 세이가, 하야시 라잔, 무로 규소, 가이바라 엣켄에 의해 주자학이 전래되고 일본 내 정착되었다. 나카에 도주 등에 의해 양명학이 수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친중국적인 학자들이 있기도 했지만 근대 시기로 갈수록 친일본 경향으로 애국(심)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수가 늘어난다. 마부치, 모토오리 노리나가, 히라타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일본과 일본성의 우월을 주장했다. 이는 일본이 사실 메이지 이후의 근현대 시기 봉건 사회를 탈피하여 산업 사회로 이행하면서 걸었던 제국주의의 기치의 모습과도 연결된다.


아무래도 한반도와 더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어서인지 그 역사도 조금 더 익숙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정치사보다는 사회, 철학, 종교, 문학을 다룬 쪽이 더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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