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서지 2024 제29호
근대서지학회 지음 / 민속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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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서지는 한국 근대 서지를 다룬 잡지로 자료로 검색도 할 수 없는 문학, 예술 분야 등의 인물, 관련 자료들을 만날 수 있다.
반년마다 한 번씩 나오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까지 출간된 이전 호수의 잡지들을 모으고 있다.
모으지만 말고 읽어야 하는데 항상 밀려서 보존용도가 되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오랜만에 올해 상반기 호수인 29호를 사고 바로 읽기 시작해서 2달 걸려 다 읽어냈다.
년간 잡지라 워낙 내용이 두툼하고 방대해 단번에 읽기란 쉽지가 않다.
그만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역시 가장 재밌는 파트는 출판 서지에 대한 내용이다. 이 잡지의 가장 특색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이 중 정현웅의 디자인 감각적 면모를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사실 나는 그를 단순히 삽화가나 미술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북디자이너로의 활동했음을 알려주어 기존의 지식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문학 서지에 대한 내용 중에는 김기림의 도호쿠대학 학적원부 소개, 카프에서 활동했던 현인 이갑기의 소설을 통해 그가 그리고자 한 해방과 전쟁의 내용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낸 <도솔봉>이란 작품에서 간첩으로 침투한 여성 북파공작원이 자신의 남편을 설득해 자수시키는 내용을 통해 후방에서 벌어지는 또 한 형태의 전쟁을 그리고 있다.
이갑기 선생은 기자 신분으로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가 귀경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북한에 남았다고 한다. 북한 정권의 개인 숭배와 정권 찬양에 대한 문학 흐름과 다른 결을 유지했기 때문에 점차 주변화되었다고 한다.

예술 서지 파트의 내용이 풍부했는데 이 중 ’어린이‘와 ’어린이세상‘ 잡지를 통해 본 아동만화에 대한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국내 최초의 아동만화가 기존 1925년 3월 실렸던 ‘씨동이 말타기’에서 2년 더 앞당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식비행긔’(1923년 6월 <어린이 제1권 제5호>)는 연을 활용하여 하늘을 날아 유럽까지 가겠다는 상상력이 표현된 만화다. 누구나 꿈꾸는 이동의 꿈은 어릴때야 말로 가장 크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논문 파트.
미술가이자 삽화가로 유명한 이도영의 소설 표지화의 역사를 다루었다. 근대 미술, 문학, 예술 관련된 전시를 본 사람이라면 이도영은 익숙한 이름이라 언제 만나도 반갑다. 다만 여기에는 소설 표지만으로 집중해서 다루었다.
중국 근대 시기 <곽분양실긔> 작품에는 곽분양부부 병좌도상이 그려져 있다. 말 그대로 부부가 동등한 비율로 나란히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1910년대부터 수십년간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 다루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청에서 여성의 지위는 명대의 여성보다 지위가 높았던 데다가 중화민국 시기 들어오면 서양의 근대 사상의 유입에 따라 다양한 여성초상화가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곽분양실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동아시아 유가질서에서 근대 시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곽분양 부부 이미지’는 근대 문화의 수용적 측면을 다루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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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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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진보’를 거부하는 흐름에서 ‘인간이 공멸하지 않으려면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집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다가 아니여서 놀라웠다. 무엇보다 ‘교란’과 ‘오염’이라는 개념이 ‘상생’과 ‘협력’에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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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31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진작 읽으셨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교란 과 오염, 폐허에 대해 다름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고생하셨어요!!

거리의화가 2024-10-31 12:5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 책 다락방님이 함께 읽자고 하지 않았으면 넘길 뻔 했어요. 송이버섯에 대한 생태 환경과 역사에서 느끼는 단상들이 놀랍도록 좋았습니다.
 
세계철학사 3 - 근대성의 카르토그라피 세계철학사 3
이정우 지음 / 길(도서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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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을 견인한 강력한 추동력들 중 하나는 바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였다. 그리고 근대성은 자연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를 덧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연을 탐구하는 매우 새로운 방식,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하나의 독특한 ‘방법’을 개발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 P22


서구 근대 철학의 시작은 데카르트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내가 있다(는 것은 참이다)’라는 명제를 내걸며 합리주의 인식론(환원주의)을 펼쳤다. 그리고 사람의 노동력이 아닌 기계로 움직이는 힘(동력)이 있음을 주장하여 기계론의 기초를 닦았다. 사실상 서구 문명의 기초가 되는 이성과 과학의 논리가 그에게서 최초로 제기되었다. 


오늘날 ‘과학’이라는 학문은 근대에 들어와 성립한 것이다. 원래는 ‘철학’의 한 부분이었던 ‘과학’은 자연/우주의 진리를 관조하는 행위였고 ‘기술(공예)’은 ‘기술’과 ‘예술’로 추후 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물질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사물을 어떻게 조작하는지 인간의 능력을 보여주는 시험의 장이 되었다. 

 

서구에서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을 통해 자연세계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변화시켰다. 이후 데카르트의 기계론을 극복하고 힘(운동)의 과학을 구축한 인물은 뉴턴과 라이프니츠다. 뉴턴은 질량, 운동량, 힘을 정의하고 법칙들(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정의하며 물체 간 운동성을 이야기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과 달리 물체 자체에 힘이 있다는 개념(능동성)으로 ‘동역학’을 주장했다. 


관념의 기능은 사물들을 표현하는 데 있다. 여기서 말하는 ‘표현’이란 서로 다른 존재면들 사이에서의 번역이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인과론적 세계관을 펼치려 노력했다. 스피노자는 정신을 신체의 관념이라고 보았다. 그에게 정신과 물질은 신과 자연의 동시적 표현(일원론)인 반면 라이프니츠에게서 정신과 물질은 서로 다른 계열체들의 표현(다원론)이다. 


18세기 계몽의 시대가 되면 관념적 면에서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로크는 마음의 구성요소는 관념들(ideas)이라 보았고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를 분석하는 5가지 개념으로 색(대상), 수(지각), 상(감응), 행(행동), 식(마음)을 제시했다. 흄은 모든 관계들이 외부적이고 마음을 구성하는 것은 지각의 덩어리들이며, 인간적 삶의 기초는 정념으로 이 때문에 주체들은 서로 다르다고 보았다. 

구체적 세계에서는 유물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루소처럼 자연을 풍요로운 존재이자 신비로운 존재로 보는 철학자들도 있었다. 


칸트는 인간 의식의 구조를 규명하여 실제 경험 이전에 확인하는 과정(선험적 작업)에 집중했다. 그는 이성을 중요시하면서도 그 한계를 인정하고 실재 세계의 현상 너머에 대한 형이상학적 사유의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다. 

칸트 이후에는 자아의 자기 정립을 중요시 여긴 피히터, 셸링의 객체 자체로서의 탐구, 인간의 주체/이성을 극한으로 중요시 여긴 독일/관념론으로 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헤겔은 범주들도 존재화하여 세계의 이념들로 파악하고자 했다(자연을 탐구하는 이성, 타인/사회/세상을 인식하는 이성, 자기를 구현하는 이성). 


동북아의 철학자들은 주자학이 12세기 이후 500년을 군림하는 동안 한편으로 주자학을 비판하며 ‘기’에 대한 탐구를 통해 사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기(氣)’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無)=공(空)[비어있음]’, 도가에서 말하는 ‘무(無)=허(虛)’, 성리학의 ‘리(理)’를 뛰어넘고자 한 개념이다.

기학적 표현주의의 대표적 인물은 왕부지와 정약용이다. 왕부지는 태극을 음양의 기로 해석하여 장재의 기 일원론을 내재화하고 장재와 주희의 사유를 가시화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리(理)와 성(性)이 심(心)의 기반에서 발현되는 정(情)인 세(勢)가 서로 다투며 세계는 결국 나선형으로 발전해나간다고 보았으나 그가 말한 세계는 중화중심주의라는 한계에 갇혀 있었다. 정약용은 추상화된 개념이 경험의 세계에서 환원된다고 보았다. 인간은 초목금수와 같지만 인간만이 도의를 가진다고 보았고 비록 도의와 기질이 갈등을 일으키지만 인간은 노력을 통해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학은 성리학을 넘어 현실에서 새롭게 유교적 가치를 사유하고자 했다. 경학과 경세학은 근대적 개념을 현실에서 규명하고자 했다면 기학은 객관적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자 했다. 대진은 ‘태극=기’로 기질지성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최한기는 각종 기들이 서로 통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혼란스러운 배경 속에서 태평천국과 동학을 비롯한 민중사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근대 말이 되면 주축 세력이 귀족에서 시민, 민중으로 변화한다. 

홉스는 개인주의(개인이 중요하다)를 펼쳤고, 스피노자는 대중의 역량과 개개인들의 내적인 힘, 개인 간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민주정(오늘날의 대중민주주의)을 제시했다. 로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정부가 시민사회/국가 위에서만 성립이 가능하며 시민사회의 저항성을 강조했다. 반면 루소는 최소한의 정부를 이야기했다. 

칸트는 조약을 맺음으로써(물론 국가의 형태는 공화국이어야 하고 각 국가의 시민은 계몽된 시민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존재했음) 영구평화가 가능하다(영구평화론)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헤겔은 시대정신을 담지하는 국가가 세계를 이끄는 주인공이 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힘의 논리가 작용할 때 위험 요소를 떠안은 모습이 엿보인다(서양이 동양을 지배하는 논리가 되었을수도). 


현대 정치체의 두 축인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이 무렵 등장했다. 

자유주의는 벤담의 공리주의 정치철학이 대표적이다. 공리주의는 자본주의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를 과학기술의 힘을 통해서 사회의 기본 구조를 어떻게 하면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할까를 고민하면서 나온 철학이다. 벤담은 어떤 행동이 쾌락을 증가하고 고통을 감소시켰는가를 중요시하며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밀은 사상의 자유와 토론의 장을 중요시하며 개인의 독립성과 사회의 통제가 적절히 조화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은 노동의 산물, 노동활동,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소외당하는 삼중고를 당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생산관계를 둘러싼 계급 투쟁이 중요하며 역사란 그 투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표현하고 나아가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를 주장했다. 


왕조였던 이슬람의 사파비 왕조, 오스만 왕조와 인도의 무굴 왕조는 국민 국가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슬람 시아파의 철학적 기초를 다진 인물은 물라 사드라이다. 물라 사드라는 신비주의 전통과 지성을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이슬람 철학을 본질주의에서 실존주의에서 전환시켰다. 

이란 이슬람에서 물라 사드라의 역할이 컸다면 오스만 이슬람에서는 와하비즘과 네오수피즘이 중요했다. 와하비즘은 알 와합과 추종자 와하비들은 쿠란과 하디스만을 따르라는 개념이었고 네오수피즘은 예언자 정신과의 합일을 강조하며 개개인의 영적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마치 신라 시기 불교의 교종과 선종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무리수가 있지만). 이슬람 세계의 철학은 종교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오스만은 탄지마트를 통해 어느 정도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 근대화도 함께 진행되었다. 오로빈도 고슈는 영국 제국주의에 대항해 일어난 흐름 중 급진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인도의 전통 철학(베단타철학, ‘’多中一一中多’, 화’의 논리)을 현대에도 계승해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정치와 종교를 결합시키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동북아 세계도 서양 제국주의에 맞서 다양한 흐름이 이어졌다. 중국은 동도서기론을 바탕으로 한 양무파와 변법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양무파는 전통을 고수하되 서구에게서 배우자는 입장이었다. 변법파는 양무파처럼 봉건 전통을 포기하지 않으면 중국이 바뀔 수 없다 주장하며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선은 서양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개화파가 있었던 반면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위정척사파가 존재했다. 종교를 바탕으로 민중을 계몽하고자 한 동학, 대종교의 흐름도 나타났다. 

일본은 요시다 쇼인에서 시작한 제국주의의 씨앗이 후쿠자와 유키치를 기점으로 사회진화론에 국가주의가 결합하여 많은 폐해를 낳게 된다. 반면 나카에 초민은 민권을 주장하고 평화외교론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교토쿠 슈스이, 오스키 사카에처럼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슬람과 인도 세계의 철학은 아직 이해가 부족하여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동북아세계의 근대 철학은 역사가 좀 더 친숙하니 이해가 쉬웠다. 


이 책을 통해 특히나 동양 철학가들 중 대진이나 최한기, 물라 사드라, 오로빈도 고슈 등을 알고 가는 것은 수확이다. 다만 이슬람과 인도 철학은 비중이 확연히 적어 언급 정도에 그친 것이 아쉽다(아무래도 근대 시기 철학은 서양 철학이 더 촘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다른 세계철학서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이름들일 것 같아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다. 


근대 서구 인식론은 동시대 동북아의 인식론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치밀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동북아의 경우 근대 학문은 인문과학에서 출발했다. 그것은 구체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사물들과 문헌들을 탐구하는 경험주의적 학문이었다. 그리고 이 학문의 정초로서 새로운 근대적인 주체의 개념화가 있었고, 최한기에 이르러서는 이 주체를 신기를 내포한 형이상학적 주체로까지 고양했다. 이런 과정은 대체적으로 연속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수학적 물리학이라는 합리주의적 과학과 근대의 새로운 흐름으로 나타난 경험주의 사이에 인식론적 분열증이 있었다. 우리는 로크에게서 이런 분열증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양한 갈래의 모색들을 거쳐 칸트에 의해 이 분열증이 치유되는 과정을 보았다. 그리고 칸트 사유에 존재하는 다원성을 극복하려 한 일원성의 사유들이 이어졌다. 서구 철학은 이렇게 인식론적 분열증을 앓고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뛰어난 성과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P583


이번 3권은 특히나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개념들이 많아 과연 내가 읽고 이해한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을 여러 번 가지면서 읽었다. 그래도 밑줄 열심히 긋고 개념도 정리해가며 읽었기에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마지막 4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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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 1974-75년 일제전범기업 연쇄폭파사건
마쓰시타 류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힐데와소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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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건물에 폭탄이 투척되어 지나가던 행인들이 사망하거나 중경상을 입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는 사망자나 부상자들 중 미쓰비시 중공업 근무자들 뿐 아니라 민간인들의 피해가 있었다는 데 있다. 

폭탄을 투척한 이들은 도쿄 행동위원회의 '늑대' 멤버들이 주축이 되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호칭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이름은 전쟁 전부터의 제국주의적 체질을 그대로 질질 끌며 지금도 여전히 동아시아 국가들에 경제 침략을 계속하는 일본을, 침략당한 측의 인민과 연대하여 이 나라 내부에서 타도해 가자고 결의한 그들의 사상과 의지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낸 호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 P177


늑대라는 호칭에서는 아직 누구의 손때도 묻지 않은 고고한 울림이 느껴졌다. 타협도 공모도 세차게 거절하고 싸우는 짐승이 늑대다. 인간에게 막다른 곳으로 몰려 사라진 일본 늑대를 떠올려 보면, 늑대를 부대의 이름으로 함으로써 자신들 역시 억압받은 사람 쪽에 있다고 선언하게 될 것이다. - P178


그들은 일본인이지만 일본의 제국주의와 대결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무장 투쟁을 통해 혁명을 쟁취해야 한다 생각했다. 다이도지 마사시, 다이도지 아야코, 가타오카 도시아키, 사사키 노리오, 에키다 유키코, 사이토 노도카, 구로카와 요시마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베트남 전쟁, 1965년 한일조약 소식이 들리자 일본의 민중들도 들고 일어섰다. 사회당/공산당 데모를 비롯하여 학생 운동이 도처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일본의 사회주의/공산주의는 다양한 색채의 분파들로 나뉘어 있었다(중핵파, ML파, 사청동해방파, 프롤레타리아 군단 등). 마사시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도쿄의 많은 집회나 데모를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고료 고등학교 선배들이 주축이 된 사회주의 운동 단체에 아야코를 합류시킨다. 마사시는 1970년 미일안보조약이 개정된 후 무장 투쟁의 붐이 사그라들었으나 오히려 무장 투쟁을 생각한다. 이 때 마사시와 아야코 두 사람을 만나면서 늑대의 주요 구성원이 꾸려지고 이후에 도시아키, 요시마사 등이 합류하였다. 


1971년은 폭탄의 해라고 부를 만큼 다양한 행동을 시도했고 일부는 성공했다. 이들의 목적지는 전쟁을 미화하고 제국주의 행동을 실천한 이들을 순국이라 명명하고 세운 위령비나 묘지가 그 대상이 되었다. 중국인, 조선인인 뿐 아니라 아이누인, 오키나와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식민지라 명명하는 시기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들은 하라하라사계라는 병사독본을 만들어 자신들의 투쟁 이론을 체계화했다. 《하라하라 시계》의 기술에는 종래의 좌익 또는 신좌익의 이론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우선 글 어디에도 마르크스, 레닌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일본의 노동자 계급 자체도 제국주의 본국인으로서 부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늑대‘가 유일하게 연대를 표명하는 노동자는 산(山) 등 인력 시장의 유동적 노동자(그들은《하라하라 시계》에서 사용한 유민=날품팔이 노동자를 나중에 이런 표현으로 바꿨다)뿐이다. 나아가 자주 나오는 것은 아이누이고 오키나와 인민이며 조선 인민이다. - P58


그렇다면 이들이 1974년 미쓰비시 중공업 건물에 폭탄을 터뜨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이들의 행동 목표는 다른 것이었다. 

왜 이 나라에서는 반권력 투쟁이 지속하지 못하는지 논의했습니다. 확실히 소수의 투쟁은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지속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압도적으로 젖어 있기 때문이고 또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가운데 싸울 상대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렇기에 천황을 공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 P281~282

실 목적은 이렇게 (황족 전용열차를 탄) 천황을 암살하는 것(무지개 작전)이었으나 결국 실현되지 않았고, 또 이 무렵 한국에서 박정희의 권총 저격과 함께 육영수가 사망하면서 이들의 마음은 조급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들의 폭탄 투척은 실패했고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들의 피해가 있었다. 그들은 폭탄을 터뜨리기 전 예고 전화도 하고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막상 폭탄에 의해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 충격에 빠진다(이들은 작전 전에 청산가리 캡슐을 준비한 바 있다). 


멤버들이 체포가 되자 가족들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가해자의 부모가 되었고 피해자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에 의해 손가락질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이 피해 다니면 “응당 사죄를 해야 하지 않나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그건 오해입니다 라고 말하기에는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마사시는 왜 기업 연쇄 폭파를 시도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늘 해외에서 여러 가지 자원이나 재료 공급처를 찾았고 그 결과 타이완, 조선, 중국, 인도차이나에 대해 군사 침략을 하고 식민지화하여 그 이익으로 일본의 사회 구조를 구축해왔습니다. 그리고 전후에는 표면적으로 형태가 가드리잠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여 값싼 노동력을 구함과 동시에 해외 국가에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공해 물질을 방류하여 이른바 기업에 의한 침략을 했고, 기업 침략에 의한 착취로 일본의 사회 구조를 형성해 왔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인 인식입니다. 한편 기존 좌익은 혁명을 일본의 노동자 계급에 의한 투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일본의 노동자 계급은 식민지화나 기업에 의한 침략에 편입된, 이른바 제국주의 노동자이고, 그에 따라 진정한 혁명은 바랄 수도 없는 것이며, 저는 기업 침략으로 착취당하고 있는 이른바 식민지 노동자의 투쟁에 의해서만 진정한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 P77

그러니까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이 다른 좌익과 다른 점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으로 부를 쌓은 기업의 노동자를 평범한 노동자가 아닌 제국주의 논리에 편승하는 노동자로 보는 인식이 다른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몇 가지 단상들이 있었다. 


폭탄의 위력을 확인하지도 않고 투척을 감행한 것은 애시당초 위험의 강도를 너무 가볍게 판단한 것은 아닌가?

꼭 무장 투쟁이어야만 했는가? 다른 방법은 정말 없었을까?

전쟁에 반대하고 나와 가족을 지키는 일이 중요할까 아니면 지금의 체제를 뛰어넘은 혁명을 위해 뛰어드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했는가?(일상과 가정을 지키는 일은 내팽개쳐도 되는가?)

인민, 대중에 집중했을 때 사라질 수 있는 개별 인간의 구체성과 특수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늑대 멤버들의 생각 중 일본 제국주의 침략 정당성을 비판하는 일에 대해서는 동의하나, 과연 그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할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라 곱씹어봐도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아무래도 계속 고민해보면서 정리해보고 싶은 사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름 방학 한달을 제외하고는 4월부터 매달 역사 독서 모임을 통해서 여러 주제의 책을 읽고 있다. 이번 달에는 이 책이 주인공이었다. 나도 결론 내리지 못한 사안들이 많아서 무척 열띤 토론이 되지 않을까 추측하는데 그 전개 과정에서 나올 다양한 이야기들이 무척 기대가 된다. 

어떤 책을 읽고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책은 적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만한 충분하지 않나 생각한다. 속뜻을 모르고 제목만 보고 뻔한 내용일까봐 우려했던 나를 철저히 반성하며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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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있었다 1~2 세트 - 전2권 - 한국 근현대 미술을 만든 여성들 그들도 있었다
윤난지 외 지음, 현대미술포럼 기획 / 나무연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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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시기에서부터 지금까지 한국 여성 미술가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 만날 수 있어 선택했다. 이제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몇몇 미술가의 이름을 제외하고는 생소해서 무척 기대된다. 각 미술가의 미술 세계에 대한 설명과 작품 도판이 들어 있어 참고용으로도 유용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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