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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시대의 탄생 - 1980년대의 시간정치
김학선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1980년대는 대한민국 현재 시스템의 대부분이 형성된 시기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독재 정권과 차별화를 두고자 했던 신군부 정권은 야간통행 금지를 해제하면서 국민들을 24시간 체제로 편입시켰다.
국민의 피와 땀이 녹아 있는 (이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1987년 헌법 체계가 만들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또 지금의 텔레비전 편성 시스템이 갖춰진 시기이기도 하다. 아침 드라마를 비롯하여 연속극, 아침-저녁 뉴스 등 정기적인 시간에 고정적인 방송을 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유튜브, OTT 등 다양한 매체가 생기면서 TV 방송도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시스템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함께 읽는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당분간 독서 모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책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북으로 보이길래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일상사, 문화사, 정치사, 경제사 등 다양한 관점을 일정 부분 각각 차용하고 있다. 읽기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며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익숙한 이야기다.
1980년대 역사를 다룬 책은 보통 3s 정책, 경제 발전에 집중하여 기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이 그것과 비교하여 어떤 차별점을 두어 신선함을 줄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근대적 시간체계의 시간은 기억정치의 장(場)이다. 때문에 시간의 기억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 간의 충돌은 계속된다.
같은 사건, 같은 경험을 한 시간을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 그중 어떤 시간은 삭제하고 어떤 시간은 기념할 것인가의 문제, 그 시간의 의미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한 국가 또는 사회의 갈등을 유발함과 동시에 통합으로 이끌기도 한다.
과거에 모두에게 달랐던 시간은 근대에 오면서 동질화되고 수량화되면서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추상화된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지 않았다.
24시간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업이 노동자를 쥐어짤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밤샘 근무를 비롯하여 노동의 강도는 더 높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 더욱 심화된다.
'노동자의 날'은 본래 '법의 날'에서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메이데이가 그 기원인데 대한민국 정부는 그 의미는 삭제하고 법의 날로 만들었다.
1989년 정부는 법의 날 행사를 개최했고 한국노총은 같은 날 세계노동절 행사를 개최하려다 정부에게 저지당했다.
지금은 당연한 '노동자의 날'(근로자의 날은 박정희가 명명한 개념이다)이 이런 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같은 날을 두고도 해석을 달리 했다는 것은 이를 비롯해서도 많다.
국경일과 법정공휴일을 정하는 과정이 특히 그랬다.
정부는 양력으로 국경일과 법정기념일과 법정공휴일을 제정했다. 이후 미군정의 서머타임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연호는 단기를 채택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5.16 이후에서야 국가 연호는 서기로 채택되는 과정을 거쳤다.
서머타임제는 대한민국 실정과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서구 근대를 받아들인다는 명목 하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신군부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는 현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 시간이 연장되고 야간화되어 시위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은 명절이 공휴일에 포함되는 과정이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설, 추석, 한식을 의미 있게 보냈다.
그러나 이는 1980년이 되어서야 공론화되고 지금의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1980~1984년까지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자는 의견이 공론화되었고, 1985~1988년에 관공서 공휴일로 법제화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 이전까지는 명절이 공휴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음력설을 명절로 쇠는 것은 마치 이중과세 논리로 치부되어 억압되었다.
추석은 이전까지 추수절로 불렸는데 1989년이 되어서야 음력설과 더불어 법정공휴일로 비로소 안착되었다고 한다.
한식은 일제강점기 때 식목일로 그 의미가 변경된 뒤로 그 의미가 굳어져버린 경우다(요즘 한식이라는 명칭을 아는 이들도 드물 것 같다).
이 책은 1980년대를 설명하기 위해 멀게는 대한제국 시기의 역사부터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4시간 시대가 되면서 대한민국 주체들은 같은 시간을 살면서도 시간정치에 의해 다른 삶과 기억을 가졌다는 것에 여실히 공감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정권은 자기들 구미에 맞는 정책을 펼치지만 국민은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오히려 이것이 정권에 반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알튀세르에 의하면 한 사회는 상이한 역사적 시간성을 가진 주체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한다.
이는 근대적 시간의 전일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근대적 시간체제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체들 간에는 시간 분배와 배치를 둘러싸고 시간기획과 시간정치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