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번역총서 1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기획, 형진의.임경화 엮음, 다카하시 데쓰야 해설 / 어문학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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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체의 본의』는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나 천황기관설 등의 대항 사상을 배척하고 메이지의 왕정복고에 내재된 신화적 국가관을 전면적으로 전개하여 국가 공인 사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내세운다. 1937년 이 책이 간행된 해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이후 태평양 전쟁으로 확대되며 국가총동원체제가 이어졌기에 시점이 절묘하다고밖에 없다. 

신화적 국체관을 받들고 세계대전으로 향한 일본 체제는 패전으로 붕괴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 주류사회는 헌법 개정을 통해 내부의 위기를 외부로 돌리며 평화 헌법을 부정하고 보통 국가라는 허명 아래 전쟁 국가로 나아가려하고 있다. 극우정권을 후원하는 단체인 일본회의는 국체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전형적인 예다. 

1945년 12월 15일 GHQ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던 이 책은 2009년 사토 마사루의 『일본국가의 신수: 금서 「국체의 본의」를 해독하다』가 출간된 이후 해설서와 번역서, 관련 저서 등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이다. 언론과 미디어도 이에 호응하며 과거의 영광을 복기하고자 한다.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도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책을 읽으면 '무슨 헛소리야'하는 소리가 나오면서 분노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대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조선 식민지 체제의 영향이 여전히 잔존하고 있고 극우 파시즘이 판을 치는 지금의 시기에 미루지 않고 읽어야 한다고 여겼다.


책이 출간될 무렵의 배경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일본은 서양 문물의 급격한 흡수로 인해 전통이 흔들리는 것을 경계했다. 서양의 개인주의, 자아 주장, 자유 주의를 비판하며 집단(그러니까 가족, 국가)을 강조한다. 가정에서는 집이 나라이고 충효는 모든 선의 근본이라 주장한다.  

일본은 가마쿠라 시대에 송(宋)학이 수입되고 선(禪)학이 유행하면서 대의 명분론과 국체론이 발흥하기 시작했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주자학을 채용하면서 신도사상을 바탕으로 한 국학이 성립하고 발전하는 배경이 되었다. 


신을 받드는 것, 정치를 행하는 일의 근본은 같다.

천황을 만세일계의 황통에서 나와 신민이 천황을 섬기는 것은 의무도, 힘에 굴복하는 것도 아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추앙과 순종이다.

충효는 천황을 섬기는 관계에 핵심이며 일본은 가족국가이고 황실은 신민의 종가다. 

신심은 죄와 부정을 씻고 사를 버리고 공에 합치되어 개인을 버리고 국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참된 자기를 살리며 국가에 봉사로써 남을 동화시키는 힘을 키워야 한다(몰아동화).

무사도는 정직, 근본, 바른 모습을 지닌 사람이다.


간단히 책의 핵심 내용만 추리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사실 더 많지만 말만 바뀌었지 반복되는 내용이 많다.


스진 천황(10대) 시대에 사도장군을 지방으로 보낼 때 다음과 같은 조칙이 나와 있다.

"... 도읍에서 멀리 떨어져 천황의 위엄이 미치지 않는 지방의 백성들은 아직 법도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이것은 아직 왕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가. 이에 경들을 선발하여 사방으로 보내니 짐의 법도를 알리라." - P48

국토 경영의 정신이라며 천황의 위엄이 퍼지지 않은 곳은 이를 교화시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교묘한 숨은 논리에 날이 설 수 밖에 없다.


읽으면서 당황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면 무사도는 정직, 근본, 바른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남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는데 과연 그런 것인지. 그들이 말하는 국민성과 국민 정신은 진심과 조화라는데 과연 그런 진심이 어디에 표출되었는지 말이다. 힘에 굴복당하지 않기 위해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가 따져 묻게 된다. 


마지막 인용구가 나는 참으로 의미 심장했다. 공교롭게도 메이지 유신에 관한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으니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과거의 폭력과 전쟁을 향수로 미화하려는 시도를 앞으로도 계속 경계해야 할 것이다.

창조는 항상 회고와 하나가 되고, 복고는 항상 유신의 원동력이 된다. - P131


충은 천황을 중심으로 받들고 천황에게 절대 순종하는 길이다. 절대 순종은 나를 버리고 사사로움을 멀리하여 오로지 천황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이 충의 길을 행하는 것이 우리 국민의 유일한 살 길이고 모든 힘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이른바 자기 희생이 아니고, 소아를 버리고 크신 능위에 살면서 국민으로서의 참 생명을 떨쳐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 - P55

효는 동양 도덕의 특색이지만, 그것이 나아가 충과 하나가 되는 점에 우리나라 도덕의 특색이 있고, 세계에 그 유례를 볼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무사의 선언이 그 집안이 황실에서 나온 것을 선언하고, 또한 가헌이나 가훈이 황실을 섬기는 관계를 그 먼 기원으로 삼은 것은 완전히 동일한 도리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한다. - P67

우리 무의 정신은 살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활인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전쟁은 그 의미에서 결코 남을 파괴하고 압도하고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도리에 따라 창조의 역할을 하고, 큰 조화 즉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쇼와 천황 즉위식의 칙어는 다음과 같다.

"황조황종께서 나라를 세워 백성을 다스리실 때, 나라를 집으로 삼고 백성을 보기를 자식처럼 여겼다. 역대 천황은 대대로 그것을 이어받아 어진 정치는 온 천하에 고루 퍼지고, 만민이 서로 이끌며 군주를 공경하고 충성을 다하는 미풍으로 위를 섬기고, 상하가 진심으로 서로 느끼며 군주와 신민이 일체가 되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국체의 정화이고, 천지와 함께 영원 무궁히 존재해야 하는 바이다." - P76

우리나라의 신에 대한 숭경은 나라를 시작하신 정신에 바탕을 둔 국민적 신앙으로 서양의 신앙처럼 하늘이나, 천국, 피안, 이념과 같은 인간 세계에서 초월한 신앙이 아니고, 역사적 국민생활에서 나온 섬김의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제사는 지극히 넓은 의의를 가지는 한편, 완전히 국가적이고 현실생활적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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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마와 시마즈 히사미쓰 - 메이지 유신의 선봉
손일 지음 / 푸른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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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메이지 유신은 사쓰마와 조슈번의 하급 무사들이 역성 혁명을 일으켜 막부를 타도하고 근대 천황제를 확립(하여 지금의 일본이 있게 만든)한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삿초 사관). 하급 무사, 그러니까 행동 대장들인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가 메이지 유신 3걸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막부 말기에는 다양한 세력 간에 투쟁이 있었기에 어떤 시선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메이지 유신의 과정과 결과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저자는 개인의 활약보다 사쓰마 번이라는 집단의 결정에 더 주목하며 당시 사쓰마 번주였던 시마즈 히사미쓰의 생각과 행동에 힘을 싣는다. 한 마디로 사이모 다카모리는 그동안 과대 평가되어왔고 시마즈 히사미쓰는 과소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역사학계는 1950년대 이후 메이지 유신을 평가하기 시작했고 패자인 막부의 입장이나 승리한 사쓰마, 조슈 번의 입장이 아닌 다른 번들의 입장에 대한 해석도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마리우스 잰슨은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이라는 책에서 도사 번 출신의 사카모토 료마를 주인공으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책은 메이지 유신 전후의 과정 뿐 아니라 사쓰마 가문에 대한 배경 정보를 위해 앞선 역사를 개략적으로 다룬다. 사쓰마 번이 막말 정국의 핵심으로 들어오기까지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 알기 위해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보여지므로 저자의 탁월한 선택이라 보인다. 


고대 중앙집권 체제에서 가마쿠라 막부가 성립하면서 지방 분권 정부가 시작되었다. 이때 유력 농민 세력들 중에 개간한 토지를 중앙 권력층에 바치고 장원의 관리인이 되는 이가 생겨났다. 이들은 중앙 권력의 뒷배를 빋고 혜택을 받으며 장원을 늘려나갔다. 후지와라 사유지였던(5대 때 성을 고노에로 바꿈) 시마즈 장원을 가신인 고레무네 다다히사가 장원 관리를 맡은 이후 영향력을 키워 나간다. 후에 고레무네 다다히사가 성을 시마즈로 변경하는데 이것이 시마즈 가의 출발이다.

시마즈 가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게 된 계기는 1609년 사쓰마가 류큐(오키나와)를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류큐는 중국과의 조공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해오고 있었는데 이에야스에 의한 명으로 사쓰마 번주 시마즈 다다쓰네로 하여금 류큐를 점령하게 한 것이다. 사쓰마 번은 류큐에 관리를 파견하고 명, 청과의 조공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아편 전쟁에서 중국이 패배하고 미국 페리가 일본에 들어오면서 막부는 쇄국 정책을 포기하고 제후 및 정계 인사들에게 대책을 자문하기 이른다. 

시마즈 히사미쓰가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것은 1862년 솔병상경(막부 허락 없이 군대를 이끌고 교토로 향한 일)부터다. 그는 사쓰마 번 내 정치 입지를 강화하고 혼란스러운 일본 정국을 이용하여 막부 정치에 개입하고자 했던 것이다. 히사미쓰의 솔병상경을 전후로 양이의 주체가 완벽하게 달라진다. 페리 내항 이전 막부의 외교 정책은 개국과 양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였지만, 내항 이후 막부는 개국의 입장을 고수하였고, 이에 동조한 것은 일부 번주(특히 히토쓰바시파 개명 번주들)에 불과하였다. 대부분의 지배층과 서민들은 개인적 수준에서 정서적 양이론에 머물러 있었다. 외국인을 살상하고 막부 최고위층에 위해를 가하며 결국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교토에서 봉기를 주도하던 존왕양이 지사들 역시 이러한 정서적 수준의 양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P284). 히사미쓰가 입경에 성공하자 정국에 주도권을 빼앗겼음을 자각한 조슈 번은 양이론으로 입장을 선회했고 여기에 도사번이 합류하면서 존왕양이론이 정국의 핵으로 부상했다. 


조슈 번은 1,100명 가량의 병력을 이끌고 교토로 와 양이친정을 건의하고 조정에 결단을 요구하였다. 히사미쓰는 자신이 계속해서 막부 인사 개혁에 관여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는 천황의 권위가 필요했다. 나카가와노미야는 천황친정을 뒷받침할 실력자를 찾고 있었고 둘은 이렇게 서로 정략적으로 연대하게 되었다. 이들은 8월 18일 양이친정 연기, 급진파 공경의 참내 정지 및 타인 면회 금지, 급진파 공경들의 소굴인 국사참정, 국사기인 역직 폐지 등의 합의를 이끌어내었고 이에 조슈 번과 급진파 공경들은 교토에서 추방되었으며 조정은 공무합체파가 장악하게 된다. 히사미쓰는 천황의 밀칙 하에 ‘무리한 양이는 불가하고, 급진파가 주장하는 왕정복고(천황친정)는 불가하고, 막부에 대한 대정위임에 동의하고, 산조 사네토미를 비롯한 7명의 공가들과 관백 다카쓰카사를 처분한다’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조슈 번은 자신들은 존왕양이의 대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며 탄원서를 조정에 제출하려 하였으나 조정은 이들의 상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사쓰마가 막부로부터 빌린 면을 싣고 나가사키로 가던 중 조슈 번 포대의 포격을 받아 침몰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후 벌어진 1864년 참예회의는 대외 방침에 대한 결정 사항과 더불어 자연스레 조슈 번의 처분에 대한 사항이 고려되었다. 그러나 요코하마 쇄항 결정에 결정적으로 반발한 히사미쓰는 이후 참예회의에 더는 참가하지 않았고 교토를 떠났다. 


히사미쓰는 돌아가 군사력 복구에 매진하였다. 신식 총포 구입에 매진하고 사쓰에이 전쟁으로 파괴된 집성관(서구 과학기술을 도입해 자립할 목적으로 지음)을 위해 나가사키 제철소에서 기술자를 초빙하고 증기기관 및 서양 기계를 갖춘 기계 공장을 복구하며 주변에 많은 공장을 세우게 된다. 또 육해군 교육기관으로 가이세이쇼라는 양학교를 개설하여 해군 포술, 병법, 축성, 측량, 항해, 조선 등을 교육한다. 이 학교 출신 학생을 중심으로 영국에 유학생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교토에서는 조슈를 지지하는 급진파 존왕양이 지사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친조슈가의 인물이 국사로 임명되자 주전파는 때가 왔다며 세자의 상경을 번 내에 알렸다. 이때 과격파 존왕양이 지사들이 모여 정변을 모의하자는 정보가 새어나가 치안유지 조직 단체가 조슈, 도사 번 출신 지사들을 습격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자 조슈 번은 격분했고 출병하기에 이른다(금문의 변). 

사쓰마, 도사 등 번들은 조슈에 대한 신속한 토벌을 요구했고 사이고 지휘 하의 포병의 대활약으로 조슈는 큰 손실을 입으며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어소를 향해 발포한 책임을 물어 조슈 정벌의 명령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히사미쓰는 국내 갈등이 외세 침탈에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조슈와 화해와 연대가 필요하다 보았고 이에 삿초 맹약이 맺어진다. 이는 영국, 프랑스, 미국, 네덜란드 연합 함대가 효고만에 출현하는 등 외부적인 요인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쇼군 요시노부는 프랑스 공사와 회담 결과 효고항을 개항하되 사쓰마와 조슈에 대항을 해달라는 조약 이행 서명을 했다(문제는 조약 이행에 대한 제후들의 의견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 

1867년 교토의 사쓰마 번 수뇌부는 막부 주도의 정국을 타파하고 제번연합에 의한 조정 중심의 정치체제를 위해 히사미쓰의 상경과 유력 제후의 회의 개최를 주도했다. 히사미쓰의 명을 받은 사이고는 전 우와지마 번주 다테 무네나리, 전 도사 번주 야마우치 요도, 전 에치벤 번주 마쓰다이라 슌가쿠를 설득해 냈다. 4제후가 요시노부에게 건의서를 제출하였으나 이후 정국은 요시노부의 주도로 이어질 가능성만 확인한 채 물러나게 되었다. 4후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도사 강경파와 사쓰마 번의 사이고, 오쿠보 등은 삿도밀약을 맺으며 강경 노선으로 들어간 반면 히사미쓰를 비롯한 중신회의는 병력을 교토에 집중시켜 쇼군 요시노부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사임을 유도해내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이후 4후회의의 계획은 좌절되고 삿도 밀약 세력들에 의해 왕정복고 쿠데타가 벌어졌고 이는 메이지 정부를 탄생시킨다.


책은 이렇게 메이지 유신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사쓰마 번(의 히사미쓰)의 입장을 중심으로 정리하며 삿초 사관에 사려진 인물들을 다루었다. 메이지 유신이 몇 사람의 영웅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외압과 내부 충돌에 의한 복합적인 정치성과 국제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막부가 프랑스가 배후에 있었다면 삿초 세력에는 영국이 배후에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 책의 중심은 사쓰마 번이고 막부를 무너뜨린 주도 세력의 한 축이다. 이는 엘리트 중심적 시각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다. 


700년 사쓰마의 역사는 공교롭게도 자신들이 무너뜨린 막부의 운명과 함께한 꼴이 되었다. 하지만 히사미쓰를 비롯한 사쓰마 무사들은 결코 일본은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되며, 기존의 막번 체제로는 식민지로의 나락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렇게 1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 동안 번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총력으로 매진한 결과, 그들은 막부를 무너뜨리고 천황 주도의 중앙집권 국가라는 신체제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물론 새로 만들어진 일본이 과연 그들이 원한 것과 얼마나 일치하였는가는 알 수 없다. - P396~397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고(?) 막부를 무너뜨리고자 했던 일본의 시도는 역설적으로 타국을 침탈하고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삿초 사관과 메이지 유신을 끊임없이 복기하고자 하는 일본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보면서 숨어있는 폭력성을 느낄 수밖에 없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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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5
김호동 지음 / 사계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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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라시아사, 유목제국사 관련 책들을 몇 권쯤 읽었다. 그러나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 우리 역사와 연관이 있는 나라는 그나마 덜한데 서북쪽으로 갈수록 아무래도 친숙하지가 않은 탓이 큰 것 같다. 얼마 전 이동하면서 종종 가는 유튜브 구독 채널의 컨텐츠에서 몽골사 이야기가 주제로 다뤄졌는데 그때 이 책이 언급되었다. 지도, 그림 등이 많아 나와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설명을 갖추고 있는 책이라고 했다. 그동안 아틀라스 시리즈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호기심이 갔다. 이미 도서관에 갖춰져 있을 것 같아 역시나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 사는 구역 도서관에는 없었으나 다른 구역에는 있어 상호대차로 읽을 수 있었는데 이 책이 도착했을 때쯤 마침 읽던 책을 딱 마무리했을 시점이었다. 


중앙유라시아에는 유목민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목민과 정주민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사막 사이 존재하는 곳곳의 오아시스를 바탕으로 정주민들이 존재했고 목축 등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들도 존재했다. 오아시스는 건조한 사막지대에 비가 내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지하수나 하천으로 형성된 촌락이나 도시다. 또 스텝의 초원 지대가 있는가 하면 도시나 촌락 주변에는 사막이 초원과 함께 있는 반사막이 있기도 했다.


고대 유목국가는 기원전 7세기부터 시작하여 기원후 5세기까지를 기준으로 한다. 기원전 4세기 인도유럽어족이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기원전 2세기가 되면 이들이 유라시아 곳곳에 정착하게 된다(책에서는 인도유럽어족을 인구어족이라고 하는데 입에 잘 붙지는 않았다^^;). 유목민은 말을 길들이고 재갈을 발명하고 이륜마차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동 생활이 자유롭게 되었다. 

고대 유목국가하면 역시 스키타이와 흉노를 빼놓을 수가 없다. 스키타이는 역사상 최초의 유목국가였는데 우리에게는 스키타이 원정으로 익숙할 것이다. 스키타이 문화는 시베리아 남부에서 형성되어 마구, 무기 등을 전파하며 서방으로 이동했고 서아시아의 흑해 북쪽 문화와 더해져 중앙유라시아를 넘어 중국, 한반도까지 유입되었다. 

흉노는 유라시아 동부 초원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유목 국가다. 중국의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할 무렵 흉노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흉노가 북방 유목민을 통합하면서 중국의 한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는데 한 고조와의 싸움에서 승리 후 화친 조약을 맺으며 재정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흉노 제국의 영역은 중앙과 좌방, 우방으로 크게 구분된다. 선우가 중앙을 직접 통치하고 좌방에는 좌방왕장들이, 우방에는 우방왕장들이 배치되었다. 이러한 삼분 체제는 후일 다른 유목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 P38~39

흉노는 이후 서부로 진출하여 제국을 확장시켰다. 그러나 계승 분쟁이 일어나며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리되었다. 남흉노는 한에 복속했지만 북흉노는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였으나 결국 한나라에 패배하기에 이른다. 


6세기가 되면 돌궐이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유목 제국을 건설한다. 돌궐은 중국의 당, 유럽의 비잔티움, 페르시아의 사산왕조와 교류할 정도로 광범위한 교류를 했다. 이때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 인근에 있던 소그드인들은 유목민과 교류하며 유라시아 전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펼쳤다. 

소그드인들의 활동 시기는 중국에서 수당 시대에 해당되는데 당시의 기록에서는 이들을 ‘호胡’라고 총칭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소그드인들은 출신 도시마다 독자적인 성을 채택하여 ‘구성호’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는데, 사마르칸드 출신은 ‘강‘康’, 부하라는 ‘안‘安’, 타쉬켄트는 ‘석‘石’ 등의 성을 붙였다. 안녹산의 본명은 강녹산, 즉 사마르칸드 출신의 록샨(‘광휘’)이었으나, 모친이 부하라인에게 재가하여 안씨로 바뀐 것이다. - P88

741년 돌궐 제2제국이 무너지고 카를륵 카간이 막북 초원을 통합하며 탄생한 위구르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서진하는 당에 팽팽히 맞서며 위구르는 국가 체제를 잘 유지했다. 그러나 아랍에 아바스 왕조가 들어선 뒤 아랍 세계와 당군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751년 여름 당과 아랍의 군대가 탈라스 강가에서 만나 전투를 벌였다. … 닷새간 대치하던 중 당군의 일부를 구성하던 카를룩 유목민들이 배반하여 아랍 측으로 넘어갔고, 그 결과 당군은 좌우로 협공을 당하여 참패하고 말았다. … 탈라스 전투(751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이슬람권의 정치문화적 영향력이 증대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 P94~95

이후 당에 안사의 난이 벌어지자 위구르는 당군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러나 9세기 중반 위구르 제국이 붕괴되고 당 제국도 붕괴되었으며 아바스 왕조도 쇠퇴한다. 이후 투르크 민족이 패권을 쥐던 시대는 끝나고 대규모의 민족 이동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0세기부터 14세기는 그야말로 유목 민족이 흥성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10~11세기 거란, 12세기 여진, 13~14세기 몽골 제국이 연이어 등장한다. 거란은 스스로를 키탄이라고 불렀고 키타이라고 불러지기도 했다. 

거란족은 세력을 확장하며 중국의 후당 왕조를 무너뜨리고 전연의 맹을 맺으며 후진이 들어서게 했다. 여진은 스스로를 주르첸이라고 불렀고 금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금’은 쑹화강 지류인 아르추카를 여진어로 부른 말). 이들은 거란족을 제압한데 이어 북송을 멸망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병농일치 제도를 시작하고 북중국에서 거주하며 농경 정착 생활을 하면서 급격한 한화가 이루어졌다. 

유라시아 서부에도 여러 왕조가 들어섰다. 가즈나, 셀주크, 호레즘 왕조, 델리 술탄국이 그렇다. 이들은 집단 이주를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개별적으로, 그것도 노예 신분에서 힘을 키워 권력을 얻어 국가를 세우기도 했단다. 개별 이주가 집단이주의 형태보다 자연스럽겠지만 이것이 국가의 기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놀라웠다. 


13세기 칭기스칸이 부족을 통일하고 몽골 제국을 세운다. 몽골의 울루스들의 연합체라는 구성적 원리인 ‘울루스 체제’는 14세기 중후반 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들 울루스 상호 간의 역관계가 변화하면서 몇몇 대형 울루스들이 사실상 제국을 분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 대형 울루스의 지배자들이나 거기 속한 몽골인들은 여전히 자기가 몽골 제국이라는 더 큰 정치체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몽골 제국의 4개의 독립적인 국가로 분열되었다고 보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있다. - P142

몽골은 천호제와 케식 군을 이용해서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역참 네트워크와 은 본위 제도의 통일로 제국 안에서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무렵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세계사도 쓰여졌다. 

몽골은 칭기스칸 사후 계승 분쟁이 계속되었다. 이후 각자의 세력권에 따라 서아시아에는 주치울루스, 차가타이 울루스, 훌레구 울루스가 들어섰고 동북아시아에는 카안 울루스가 남게 되었다. 쿠빌라이는 사실상 카안 울루스의 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몽골 이후 유목 민족이 제국을 건설한 경우가 있나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서부에 오이라트가 있었다면 티무르 제국이 있었다.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는 우즈벡이 남하하고 부하라, 코칸드 칸국이 있었다.

다만 서아시아에 들어선 왕조의 지배층이 정주화 경향이 강해지고 이슬람화되면서 유목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 청과 러시아가 중앙유라시아 지역으로 들어오며 원래 그곳에 살던 거주민과 유입된 이주민들을 복속해간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시작으로 코칸드, 부하라, 히바 등 세 칸국을 병합한다. 시베리아라는 말은 시비르 강과 그곳에 있던 시비르 칸국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러시아는 이때부터 오호츠크 해에 도달할 때까지 동진을 계속하여 현재 러시아 영토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시베리아를 차지했다. - P196

청은 남아 있던 몽골 세력을 복속하고 준가르를 무너뜨린 후 티베트와 신장을 연이어 흡수했다. 


얇은데 알찬 책이다. 매 페이지마다 정제되고 압축된 글과 함께 지도와 사진이 빠짐 없이 등장한다. 특히 지도가 놀라웠다. 저자의 후기를 보니 책을 위해 지도들을 다 새로 그렸다고 하는데 한땀 한땀 들어갔을 정성이 느껴졌다. 읽으면서 이 책은 다른 책들과 함께 보면서 참고할 때도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단시간 내 이 책을 소화하기란 생각보다 정보의 양이 많아서 놀랄 수 있을 것 같다(나만 그런가?). 개인적으로는 서아시아 유목 왕조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복기하며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주중부터 제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매 페이지마다 다른 내용이라 끊어서 읽어도 부담이 덜했다. 갑작스럽게 읽게 된 책이었지만 예상 외로 수확이 좋았던 책이다. 왠지 조만간 구비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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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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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시리즈의 전사를 담았다고 하는 이 책을 펀딩 거의 막바지에 알게 되었다. 사실 굿즈는 이미 선택할 수 없는 상태여서 나중에 주문해도 되었을텐데 본 김에 그냥 펀딩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주문해 받았다. 삼체 시리즈를 참 재밌게 읽었는데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문명의 역사와 과학 기술을 절묘하게 엮어냈기 때문이었다. 삼체 시리즈가 문명과 과학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현실과 미래를 좀 더 어둡게 그렸다면 구상섬전은 조금은 낙관적인 방향으로 이를 그려냈을 뿐 주제 의식은 비슷하다. 삼체에 나오는 ‘딩이’가 이 책에도 등장하는 등 연결 지점을 찾아보는 것도 책을 읽는 재미가 될 수 있겠다. 역자는 삼체 2, 3부를 번역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드라마인 ‘연화루’와 ‘마천대루’의 원작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참 매끄럽게 번역을 잘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만족스러웠다. 


번개 치는 밤 붉은 섬광이 방 안으로 들어오고, 이는 주인공의 현재와 미래를 송두리째 바꾼다. 구형 번개(ball lightning)를 뜻하는 구상섬전(전자기파가 구형 안에 갇혀 있는 형태이며 선택적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을 만나며 주인공은 물리과학에 미치게 되고 전공을 대기과학으로 선택하기에 이른다. 류츠신은 실제로 1980년대 구상섬전 현상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 책을 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위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수년 간 매몰되었으나 계속 실패한다. 


[60] 이때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와 안개가 걷혔다. 여름밤 하늘에는 찬란한 별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멀리 산 밑에는 타이안의 야경이 또 하나의 작은 별바다를 이루어 밤하늘이 마치 호수에 비친 그림자처럼 보였다.

린윈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시를 읊기 시작했다.

“멀리 가로등 불이 밝아오네.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듯이. 하늘에 별들이 떠오르네. 무수히 많은 가로등 불을 켜놓은 듯이.”

나도 그녀를 따라 읊었다.

“저 아득한 하늘에 분명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 것이니, 그 거리에 진열된 물건들은 필시 이 세상에 없는 진기한 보물이리라.” (궈모뤄의 ‘하늘의 거리’(1921) 중)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이 아름다운 밤 세상이 눈물 속에서 어룽지다가 갑자기 또렷해졌다. 나는 내가 꿈을 좇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그런 인생의 여정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깨달았다. 저 안개 속에 갇힌 난톈먼이 영영 나타나지 않더라도, 나는 영원히 산을 오를 것이다.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그동안 자신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여 실패했음을 깨닫고 방향을 전환했는데 이후로 일이 풀리기 시작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때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도 배울 부분이다. 늘 문제 앞에 서면 왜 머리가 빙빙 돌며 복잡해지는지.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고 하나씩 해나가면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책에는 기술을 증오하면서도 기술을 이용해 테러를 일으키는 조직이 등장한다. 아이들을 납치하여 위협하고 발전소를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을 감행하는 일 말이다. 

개발을 하다 보면 기술적 난관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기술적 난관보다는 정신적 난관이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과학, 군사 등 국방 쪽에 종사하다 보면 기술적 난관보다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내가 만든 기술이 긍정적인 곳에 쓰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을 악의로 접근하여 흉악한 무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테러 조직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테러조직의 이름은 ‘에덴동산’이었다. 핵(융합)도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지지 않았겠지만 현재는 자국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용 물질로 쓰이는 것처럼.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긍정적인 기술로 쓸 수 있기를 희망하며 때론 후퇴했다가도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과연 그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이 책은 주인공이 구상섬전을 발견하기 위해 쫓는 과정, 결과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낯선 용어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많지만 문장을 읽고 그림을 머릿 속에서 그리며 읽다 보면 어느새 푹 빠지게 되는 매력이 있다. 역시 이 책은 시간을 두고 읽지 않고 단 번에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더 언급하는 것은 줄거리와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스포가 되기 때문에 이 정도로만 하겠다. 마지막 문단을 읽을 때  개인적으로 찡함과 울림이 있었다. 진정으로 소중한 건 무엇인지, 앞에서도 언급했듯 과학과 기술에 대해서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440]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고

나는 사람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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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득한 하늘에 분명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 것이니, 그 거리에 진열된 물건들은 필시 이 세상에 없는 진기한 보물이리라˝
이 대목에서 거리의 화가님 닉네임이 막 떠오르는데요. ㅎㅎ
삼체 참 재밌게 읽었는데 리뷰는 못쓰겟더라구요. 일단 못알아들은 부분이 너무 많고요. 너무 책이 두꺼워서 스포를 하지 않고 내가 쓸 수 있는게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니 없던데요. ㅎㅎ
삼체의 전사라고 하는 이 책도 일단 담아뒀다가 올 겨울 쯤 읽어볼려구요.

거리의화가 2025-09-16 13:00   좋아요 0 | URL
앗! 저 문장을 저와 연결해주시다니^^; 인용한 문장이 그림으로 그려도 참 아름답죠.
저도 리뷰 쓸 때 고민 많이 했는데요. 저는 스포가 있으면 흥미가 떨어지는 타입이라 최대한 큰 그림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학 리뷰는 역시 어려워요...ㅎㅎㅎ
 
삼체 0 : 구상섬전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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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코 무기로 사용되지 않으면서도 생명을 구하고 이롭게 하는 연구주제를 찾아내고 말겁니다.˝ 주인공은 구상섬전을 발견하고 그 기술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쫓으며 때론 후퇴했다가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진정으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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