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욕망의 세계 -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단 하나의 금속
틸만 벤디코프스키 지음, 최은희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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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부를 좇아 벌여온 사냥, 불의와 불평등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이 책은 은이라는 광물에 집중하여 지난 역사를 기술한 것이 특징이다.

은은 최초 순은 형태로 발견되지 않아 채굴 후 제련 과정을 거쳐야 해서 공정 과정이 까다로워 특히 귀했다. 은은 세공품으로서 장신구로 이용되었고 봉헌물이나 예물 등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 의학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전쟁 자금이나 협박이자 몸값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때는 전리품이자 약탈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은이 발견되는 곳이면 어디든 제련이 시작되고 나서 일시적으로 성업을 이루었다. 그러다 이동성을 위해 동전화가 된 은은 채굴 지역을 이탈하여 화폐로서 상업 혁명에 이용되었다. 은은 교역 수단으로 동방과 서방을 넘나들며 유출되었는데 이는 품질이 떨어지는 주화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신대륙이 발견된 후 대서양 항해는 수익성 높은 사업으로 자리잡는다. 스페인 선박을 통해 금은 유럽으로 이동되었다. 순수한 방법으로 광물을 캐던 원주민들을 영국과 네덜란드 식민 제국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처음에 동인도회사나 서인도회사 사람들은 노예를 비롯한 약자들의 노동력을 더 투입함으로써 해결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아메리카의 광산에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제련 전문가들이 투입시켰다고 하는데 나는 이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획득한 광산 제련 기술은 아메리카 광산의 약탈에 더 가속도를 붙였을 것이다.

포토시의 산은 표층에 50%의 천연 은이 존재해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포토시의 산은 과거 종교적 제례를 올리던 장소였는데 은의 발견으로 포토시는 남아메리카 최대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광산 내 의사 소통을 위해 여러 언어를 모은 특수 사전도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스페인은 제련을 거쳐 얻은 귀금속의 20%를 왕실 재정에 채웠다. 스페인은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을 차출하여 1년 간 광산에 묶어두며 일을 시키고 임금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자유 노동자들의 보수보다 낮게 주었다. 포토시가 마을과 떨어진 경우가 많았기에 노동자들은 사비로 일터를 가야 했기에 걸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강제 부역에 동원된 이들은 무수히 도망치는 시도를 거듭했으나 수배령이 내려져 갈 수가 없었다고. 그럼에도 탈주는 계속되었다. 게다가 은을 걸러내는 공정 중에 발생하는 유해한 수은 증기에 노동자들은 계속 노출되었다.

포토시에서 가까운 항구를 가는 길은 멀었고 대서양으로는 육로가 없었다. 이웃 나라 브라질은 포르투갈 식민지였기에 태평양 길이 이용되었다. 운송수단은 주로 라마가 이용되었다. 파나마는 1519년 스페인이 건설한 도시로 국제 무역의 거점으로 성장했다. 포토시의 은이 파나마에 하역되 일부는 필리핀으로 또 다른 일부는 유럽을 이동하기 위해 떠났다. 페루, 멕시코에서 생산된 은은 스페인에서 실린 물자와 함께 파나마 해협을 거쳐 태평양 연안을 돌아 다시 페루, 멕시코로 귀환했다.

은은 밀수로 이용되거나 불법 귀금속 거래로 이용될 확률이 있었고 운송 과정에서 가로채 약탈당하기 쉬웠다. 게다가 스페인의 행정 체계는 국가 독점 체제로 밀수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가톨릭 종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 자금이 된 은은 은의 경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불러왔다. 은은 스페인, 유럽에 대량 풀리며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고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아시아까지 영향을 미쳤다.

은은 처음에 귀족 엘리트들이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상인, 후에는 시민 전반으로 확산되며 사용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바로크 예술은 유럽으로 들어온 막대한 은 덕분에 교회 미술에 이용되며 귀금속 등으로 화려함을 뽐냈다. 종교개혁 이후 성물로 사용된 은들은 녹여져 전쟁 자금 등에 쓰였다. 국가는 재정 확보를 위해 화폐로 이용되던 은의 함량을 줄였고 나중에는 신민들의 충성과 애국심을 표시하라며 강요와 협박으로 시민의 은을 약탈하는 지경에 이른다. 19세기 말 금본위제가 시행되면서 은은 화폐적 지위에서 점차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은은 전쟁과 궁핍한 시기가 되면 늘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1938년 반유대주의에 의한 약탈대상이 된 유대인은 은의 헌납을 강요받았고 전쟁으로 인해 은 강탈은 당연시되었다. 반면 나치 간부들은 귀금속 선물들을 받았다고 하니 결국 권력자의 배가 곯는 일은 결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앞선 내용과는 달리 내용의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은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채굴되고 있다. 은은 형태, 모습을 바꾸어왔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광물 하나에 집중해서 서술하고자 한 시도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은광이 개발되고 화폐화되기까지의 과정과 은이 유럽을 향해 이동하는 경로를 기술한 부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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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열린 혈맥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조구호 옮김 / 알렙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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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 역사는, 누군가가 말했듯이, 세계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패배는 항상 다른 자들의 승리에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의 부는 다른 자들, 즉 제국들과 그들 제국의 토착 감독자들의 번영을 부양하기 위해 항상 우리의 빈곤을 창출해 왔다. 식민지와 신식민지의 연금술 속에서 금은 고철로 변하고, 식량은 독으로 변했다. 포토시, 사카테카스, 오루 프레투‘는, 귀금속으로 이루어진 번영의 절정에서 빈 광산 갱도의 깊은 구멍으로 곤두박질쳤고, 칠레의 초석(石) 지대와 아마존 고무 숲도 결국 파멸이라는 운명을 맞았다. 브라질 북동부의 설탕생산지, 아르헨티나의 케브라초‘ 숲이나 마라카이보 호수‘의 석유를 생산하는 일부 마을은 자연이 부여하고 제국주의가 빼앗아 가는 부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 권력의 중심부에 물을 대주는 비가 그 체제의 광범위한 주변 지역을 질식시킨다. 마찬가지로, 그리고 대칭적으로, 국내적으로는 지배하고, 국외적으로는 지배당하는 우리 지배 계층의 복지는 짐을 나르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강요받는 우리 대중의 저주다. - P13~14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는 유럽이 해외 진출을 시작하면서 바뀌었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에스파냐 인들은 현지 부족 간의 분열, 말과 세균을 이용하여 정복 작전을 수행하여 성공했다.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자국 출신의 식민 통치자에게 원주민 보호를 조건으로 식민지 토지와 원주민에 대한 통치권 일체를 위탁했다. 이는 원주민에게 조공과 노동을 요구함으로써 이들을 노예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또 에스파냐는 식민지 정복 공로자에게 토지, 원주민 노동력을 분배하는 제도를 시행했는데 이는 자연스레 원주민의 강제 노동, 착취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인디오를 강제 노동에 동원하도록 허용한 제도도 있었다. 아메리카의 자산을 통해 부를 획득한 에스파냐 귀족들은 그 이윤을 유럽에 투자했고 이것이 아메리카 식민지 경제의 시작이 되었다. 


에스파냐의 광산 개발을 통한 경제 구조는 인구 이동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라틴 아메리카의 기존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업 경제를 무너뜨렸다. 

18세기가 되면 브라질 금 생산량이 앞선 세기 에스파냐가 식민지에서 거둔 생산량을 넘기게 된다. 브라질 남동부 도시인 미나스 제라이스는 브라질 경제의 핵심이 되었고 이 지역의 항구 도시인 리우 데 자네이루는 1763년부터 수도가 되었으며 오루프레투는 광부들이 밀려들면서 1711년 도시가 되었다. 1703년 잉글랜드와 메투엔 조약을 체결한 포르투갈에서는 금이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포르투갈 왕실이 브라질에 징수할 세금의 절반 이상을 불법으로 빼돌리면서 자신들의 주머니 사정을 채웠다. 


콜럼버스는 2차 항해 때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져온 사탕수수 뿌리를 현재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최초로 심었다. 사탕수수 재배는 이후 브라질, 카리브해의 섬들, 베네수엘라, 페루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들이 대거 들어가기 시작했고 설탕 재배로 인해 기존의 유기질의 토양이 황폐해졌다. 이는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미국의 공업 발전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향후 이 지역들은 세계 자본 시장에 통합되면서 경쟁 구도, 수탈로 인한 토지 고갈 등으로 인해 쇠퇴하게 되었고 종국에는 경제 둔화로 빈곤을 겪는 공통점을 겪게 된다. 


19세기 세계 패권의 주인공이 된 영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지배력을 미치게 되었다. 증기 기관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 혁명은 영국을 단숨에 부상하게 만들었다. 영국 기업은 새 지선을 건설할 권리를 획득하고 철로 노선 양쪽의 토지 사용권을 받아 이득을 챙기면서 성장했다. 영국의 직물 산업은 원주민 인디오 강제 노동에 의존하면서 가능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의 보호 관세법은 지배 계층과 거대 상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초석 광물이 붐을 일으키자 1879~1884 칠레, 볼리비아, 페루 간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에서 승리한 칠레는 영국의 투자를 받았는데 이는 경제 의존성을 높이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칠레 초석 산지는 시간이 지나며 폐허가 되었고 경제는 망가졌다. 


볼리비아의 주석은 한 기업가인 시몬 파니뇨가 독점을 하고 있었다. 이후 정부가 국유화를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독점력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기업은 노동자를 굶주리게 했고 학살을 조장하기도 하면서 재산을 늘려나갔다. 브라질의 철광석은 미국의 한나 사, 유에스 스틸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다. 석유는 라틴 아메리카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볼리비아, 파라과이 사이의 전쟁을 촉발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파라과이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의 전쟁으로 인해 대량 학살이 벌어지면서 당시 50 만명에 이르는 국민이 떠났는데(파라과이는 전쟁 전에는 자주적으로 발전하던 국가였다고 한다) 현재도 볼리비아와 함께 빈곤 국가로 분류된다고 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후 세계 자유무역 경제 질서에 편입되었다. 


미국은 남북 전쟁 이후 세계 무대에 서서히 부상한다. 당시 자유 무역을 주장한 남부와 보호 무역을 강조한 북부 사이에서 북부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은 세계적으로 자유 무역이 대세인 상황에서 보호 무역을 고수했다. 커피는 미국 시장, 소비자 능력과 가격에 의존했다. 1929년 대공황으로 커피 가격이 하락하고 판매량도 급감한다. 이는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노동자들의 실업 확산을 불러왔다. 노동자들의 봉기를 정부에서 탄압하면서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도 혼란한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도는 있었다.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 남부에서는 호세 아르티가스가 농업 혁명을 실현하겠다며 나섰다. 그는 가우초를 농민화하여 시골의 빈농을 땅에 정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집권 세력들이 보복하면서 그는 사망하고 정책도 좌초되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이익이 약화되고 점차 미국의 이익이 본격적으로 강화되면서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패권의 주역이 되었다. 미국 제국주의는 식민지 지역 긴장을 심화시키고 산업을 위성화시킴으로써 식민지 소수에 부를 집중시키고 다수를 가난으로 몰아가는 정책을 시행했다. 라틴 아메리카 정부는 이전 경제 구조를 그대로 둔채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내수시장인 농축산업이 피해를 보았다. 부를 쌓은 수공업자들은 결혼 인맥을 통해 지배층이 되기 위해 대지주의 딸과 결혼하거나 토지를 구입하여 이를 굴려 남는 자금을 산업에 투자했다. IMF는 통화를 안정화시키고 무역을 자유화하면서 수출을 촉진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배층의 이익에만 부를 가져다주고 외국인들이 국내 기업을 흡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은 자국 은행의 저축을 보호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에 급증한 미국계 은행 지점들을 확산시킴으로써 라틴 아메리카 국내 기업을 신용 부족에 빠뜨렸다. 미국은 차관을 이용해 그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을 들었으나 이는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고 자국의 기술 관료를 내보내고 대출 자금을 내 사업을 키우면서 시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원조 비용으로 계산되며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은혜를 받은 국가의 외채에 부담이 된다." 종속적 산업화는 세계 시장의 불평등 구조에 기여했다. 라틴 아메리카는 순수 기술을 개발하지 못한채 다국적 기업이 통제한 기술에 의해 독립성을 상실했다. 기술 간 격차는 갈수록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부의 집중, 독점 자본의 폐해, 상품을 향해 달려가는 국가들, 물건을 위해 봉사하는 인간, 라틴 아메리카의 수출용 상품이 내수용 상품보다 품질이 더 높아 경쟁력이 있음은 뼈아픈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비교적 최근에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이보다 훨씬 이전에 쓰여진 책인가 싶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책을 읽어보니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 뿐 아니라 비교적 최근의 역사까지 배경 지식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데다가 딱딱한 지식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묘사로 맛깔나게 설명해주어 읽기 수월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수탈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과거 종종 있었으나 이 책이 특별한 것은 비단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재 어떤 흐름으로 이어지는지 상세하게 추적한다는 데 있다. 낯선 용어들이 나오지만 바로 아래 주석이 상세한데다 비교적 어렵지 않은 서술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라틴 아메리카의 지리와 역사가 낯선 이들에게도 충분히 잘 읽힐 수 있는 책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 작품을 읽기 전후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의 재건을 향한 여정에는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야 할 썩은 것이 너무 많다. 그런 일은 바로 빼앗기고, 짓밟히고, 저주받은 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적 대의는 무엇보다도 사회적 대의다. 라틴아메리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인들을 나라별로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반란과 변혁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운명은 신의 무릎 위에 놓여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지만, 진실은 인간의 의식 위에서 절박한 도전처럼 작동하고 있다. - P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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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음초 - 한시로 읽는 1896년 조선 사절단의 세계 일주 ㅣ 규장각 대우 새로 읽는 우리 고전 29
김득련 지음, 황재문 옮김 / 아카넷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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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조선에서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위해 사절단이 꾸려진다. 김득련은 사절단의 일행으로 특명전권대사인 민영환, 수원 윤치호, 참서관인 김도일과 함께 2등 참서관 자격으로 참여했다.

이 체험이 특별한 것은 그들이 그저 러시아 황제 대관식만 참여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1896년 혼란스럽던 구한말 조선의 상황에서 외교관으로 파견된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아메리카, 유럽 땅을 밟고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던 시절 배와 마차 등으로 다닌 체험은 쉽지 않았을 여정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돌아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환구음초>는 이 여정을 한시로 기록한 것이라면 <환구일록>은 이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환구일록>은 체험을 메모로 기록해두었다가 조선에 돌아온 뒤 민영환의 기록과 비교해보면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는 <환구음초>만 실려 있지 않고 그 배경이 되는 <환구일록>까지 함께 실어두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김득련의 체험기는 민영환이 남긴 기록과 윤치호가 남긴 기록이 있어 서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반 독자가 두 기록을 뒤져가며 읽기에는 번거로울 수 있는데 책에서는 두 기록을 함께 등장시키기 때문에 더 읽는 맛이 풍성하다. 아무래도 민영환은 전권대사 자격으로 가서 상대국인 러시아에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가급적 빼고 최대한 공식적으로 기록했던 것 같다. 김득련의 기록은 이에 비해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사적인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윤치호는 앞서 미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 사람과의 기록과는 차이를 보이는 면이 많았다.

사절단은 인천 제물포항에서 상하이항으로 가 당시 동양 제일이었다는 번화하고 화려한 상하이의 모습을 구경한다. 원래는 여기에서 프랑스 공사선을 타고 홍콩을 거쳐 러시아로 향할 작정이었으나 배편을 놓치는 바람에 일본,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는 여정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는 바람에 사절단은 대관식에 늦지 않으려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나 길어진 루트 덕분에 우리로서는 간접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 셈이 되었다.

옆나라 일본에서는 나가사키, 시모노세키를 거쳐 고베에 잠시 들렀다 기차를 타고 도쿄를 향한다. 고베에서 하루 반나절이면 도쿄로 갈 수 있었다니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그만큼 발전한 일본을 보고 소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도쿄는 의화군이 신바시에 있었기에 만나러 간 것이었다. 참고로 1872년 신바시와 요코하마를 잇는 철도선이 일본 최초로 개통된 것이다.

태평양을 거쳐 캐나다의 벤쿠버항에 닿아서는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전기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캐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9천리 떨어진 뉴욕으로 향하는데 김득련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축지법’을 써서 금방 닿는 것 같았다고. 그만큼 찰나로 느껴져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광활한 아메리카의 평원을 보면서는 중국의 요동과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해당하는 연경의 광활함보다 몇배나 더 큰 규모라 표현한다. 또 뉴욕은 근심 없는 장춘원, 불야성 같은 화려함으로 표현한다. 뉴욕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도 많고 화려한 도시였던 것 같다. 마침 뉴욕 전기 박람회가 있어서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한다. 퀸스타운을 거쳐 영국의 리버풀 항구에 도착하며 유럽의 관문에 입성했다.

영국 런던의 ‘정치가 융성하고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며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P165)’이란 표현도 흥미로웠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고 활동한지 어느덧 50년이 지나갈 무렵으로 번성한 도시 속에서도 국법이 엄격하고 명백한 모습을 보며 영국이 부강하다고 느껴서인 듯하다. 아쉽게도 사절단은 당시 유명했던 수정궁은 시간상 둘러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한다(내가 다 아쉽다).

베를린을 거쳐 폴란드를 지나 드디어 러시아 땅에 입성한 사절단. 그곳 모스크바에서 사절단은 황제의 대관식을 경험한다. 당시 세계 각국의 사신이 하례에 참여했는데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청나라, 튀르키예, 페르시아 사신들과 더불어 대관식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외부의 누각 위에서 기웃거리며 보았다니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사흘 밤낮동안 환한 등불이 집, 거리, 크렘린 궁을 비추었다니 과연 장관이었을 것 같다. 김득련은 놀라했으나 윤치호는 이미 미국에서 더 멋진 연등 행사를 경험한 바 있었기에 다소 냉소적으로 기록했다. 황궁에서 밤에 공연을 관람을 하기도 했으나 내용을 알 길이 없으니 뭐 사실 무용만 보고 온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중에도 윤치호는 공연 감상기에 발레복을 보며 종교적인 이유로 비난을 하다니 좀 눈살이 찌뿌려지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절단이 2개월 넘게 머무른 도시이기에 기록 분량상으로도 그렇고 이야깃거리가 많다.
특히 김득련이 이곳에서 작성한 기록에는 그날의 일과와는 관계 없는 정보나 지식으로 최대한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상을 자제하고 관찰한 바 그대로를 표현했다.

일단 조선과는 다른 기후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 현상인 백야 현상을 보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기록한 것들이 많다.
동물원과 식물원, 영화관, 맥주 공장, 수돗물 정수장, 도서관, 자기공장, 유리공장, 양초공장, 개선문, 겨울 궁전, 천문대, 미술관 등을 다녀왔다.
장례 행사를 경험하고 황제가 타는 요트를 타볼 기회도 있었고 엘라긴 섬에 가 피서를 보내기도 했다.

표트르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도읍을 정한 뒤 스스로는 검약한 모습을 취하는 것을 보며 배울 점이 있다 느낀 점이 인상깊었다. 네바강의 해질 무렵 풍경을 보면서는 이국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고향을 그리며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음력 2월 떠난 사절단은 8월 19일 드디어 그곳을 떠나게 된다. 윤치호는 그곳에서 귀국하지 않고 파리행을 선택한다. 사실 민영환, 김득련, 윤치호는 글에서 이미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여행길 초반에는 민영환과 윤치호는 앙숙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를 못마땅해하는데 이무렵이 되면 서로 가졌던 선입견이 많이 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득련은 영어를 잘하는 윤치호에게 도움을 많이 얻었기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사절단은 시베리아를 거쳐 흑룡강,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부산항->제물포로 귀국한다.
당시 완성되지 않았던 시베리아 철도과 바이칼 호수의 풍경, 이르쿠츠크/하바롭스크 총독부에 들른 소회, 곳곳에서 만난 조선인 유민들을 만난 소회가 인상깊었다.

사절단은 7달 동안 8개국을 거쳐 그렇게 돌아왔다. 과연 이 경험들은 네 사람에게 어떤 경험이 되었을지.

이 책은 정말 우연히 건진 책이었다. 참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서점은 무어든 읽을 만한 거리를 챙겨오게 되어 수확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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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10-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한시로 쓴 여행기군요 한시뿐 아니라 일기도 실려 있어서 괜찮을 듯합니다 여러 달에 걸쳐서 여러 나라를 돌아보다니,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기록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전보다 지금 사람한테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조금이라도 알 테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6-10-18 17:46   좋아요 0 | URL
여행기이자 한시인데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당시는 배를 타고 돌아 돌아 가야 했을 테니 쉽지는 않았겠죠. 그래도 그랬기에 세계의 많은 곳을 두루 돌아다니는 경험을 했으니 개인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 같아요.
 
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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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감정 상태가 결집되어 있다. 화남, 억울함, 슬픔, 시샘이나 부러움, 부끄러움, 쌀쌀맞은 쓸쓸함에 이르는, 부정적 심정의 묶음이다. 외로움은 추상적 묶음이고 그것의 드러남은 이러한 구성 속성 중 하나 또는 몇 가지의 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찾지 못한 상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결핍도 외로움을 유발한다. 이는 '스스로 존재함'과는 확연히 다르다. 외로움이 고립된 몸의 내면이라면, 스스로 존재함은 독존하는 몸의 정신적 표상 형식이다. - P47~48

서양 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가 한시에 관한 책을 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제도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읽기'다. 서문을 읽어보니 본인에게 한시는 모호한, 몽롱한, 가 닿을 수 없는 철학 같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고.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소리가 스스로에 대한 겸손의 표현임을 느끼게 된다. 나는 몇 권의 책을 통해서 한시를 경험한 것이 다이기 때문에 정말 문외한에 가깝다. 이 책은 한시를 읽는 처음 경험하거나 아직 잘 모르는 초보 독자라도 겁먹을 필요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제목이 '고독서정' 고립과 독존에 대한 서정읽기다. 이에 따라 고른 한시들은 대체로 저마다 다른 사정의 외로움이 드러나고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맞서고 분투하는 감정이 놓여 있다. 한시의 해석을 앞에 싣고 뒤에는 원문과 독음을 준 뒤 이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덧붙였다. 한시를 쓴 시인의 상황과 감정은 이랬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독자도 저마다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배경과 시를 쓸 당시의 상황을 알려줌으로써 그 해석을 돕는다.


마음에 드는 한시들을 체크하면서 내 마음이 어느 시에 공명하는지 확인하며 읽었다. 


이백의 시는 술을 홀짝이고 기울인 뒤 읽으면 그 감상을 더할 수 있다. 저자의 감상기에 웃음이 났는데 본인이 이백의 짠한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술을 하지 못해서 감정 이입이 되기 어렵다고 해서다. 어쨌든 그의 시가 널리 읽히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읽기 쉬운데다가 술에다가라도 의지하려는 결핍의 영혼을 가진 이들과 공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그의 시가 은근함이 없어서 어느 순간 감정이 파사삭 식는다고 하는데 뭐 나는 그의 그 지지리 궁상같은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함 때문에 그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백, <장진주>(술을 권한다)


뜻이 이루어졌을 때는 마땅히 온전히 기뻐하고

술잔은 헛되이 달을 마주해서는 안 될 것

...

잠부자, 단구생

술을 올리니 멈추지 말고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부르니

내게 귀 기울여 들으라

음악도 안주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오래 취하고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옛부터 성현은 고요하고 쓸쓸했고

술 마신 이들만 이름을 남겼다

...

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 말하는가

주저 말고 술 사오시라, 그대와 마실테니

...


이백은 어느 술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놓고 분노를 토한다. 이 상황을 보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찼으려나. 왜 진상이야 하는 말을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싸움이라도 안 났으면 다행이려나. 


왕유는 안사의 난 때 안록산이 세운 대연국에서 벼슬을 한 것 때문에 난이 평정된 후 더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웠던 듯하다. 개인의 뜻을 펼치기 어려운 시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왕유의 삶과 그의 시에서 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왕유의 시는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 대체로 어느 정도의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살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뭐 츤데레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왕유, <송별>(사람을 보냄)


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

그대에게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지

그대 말하길, 뜻한 바 같지 않아

남산 자락으로 돌아가 눕겠다고

그저 가시라, 다시 묻지 않을 테니

흰 구름 없어질 때는 없으리니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행선지를 묻는 왕유나 답하는 친구나 무심한 듯 툭 건네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친구는 뭔가 뜻한 길이 잘 풀리지 않아 어디엔가 은거할 작정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왕유는 그를 감히 붙잡을 수 없고 그저 가시라 툭 하고 말을 건넬 뿐이다. 


왕창령, <새하곡 - 둘째>(변방 요새 아래서)


가을, 말에게 물 먹이며 건너는데

물은 차갑고 칼바람 분다

가지런한 모래밭, 해도 저물지 않았는데

임조성은 희끄무레 보인다

오래전 장성 싸움들,

뜻과 기세가 높았다고들 한다

이제나 예나, 누런 티끌 가득 차고

썩고 남은 뼈들 들풀 속에 어지럽다


진나라 이후 장성이 쌓이고 나서 변방으로 출정하는 장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방에 나간 어느 장병이 시를 읽는 중이니 평시인 비전투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가을에 물을 건너와 장성 앞 모래밭 풍경을 보며 과거 이 터에서 벌어졌을 전투와 거기 있었을 사람이 이제는 백골이 되어 떠돌고 있는 황망함을 느낀다. 남은 것은 들풀들 뿐이다. 


유종원, <강설>(눈 내린 강)


온 산에 새 날아감 끊기고

온 길에 사람 자취 사라졌다

배 한 척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린 강 홀로 낚시하는 차가움


고립된 이는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혼자서는 못 이겨 낸다. 독존하는 이는 강에서 홀로 낚시를 해도,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늘 그렇게 낚시하는 것을 연습했기에, 추운 날씨를 몸으로 느끼고, 애써서 온기를 찾지 않으며 차가움 자체를 구현한다. 물론 독존이 초월적인 것과의 접촉 통로일 수는 있다. 세상과 떨어져 지내던 은수자가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은 다른 인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유종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간을 외면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가려는 계시종교의 수도자가 아니라,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지반을 조심스레 살펴 보고 그 위에 나를 하나씩 조금씩 쌓아 올리고, 무너지는 것을 토닥여 가며 전진해온 인간이다. '실존의 편력을 통한 독존의 구축'-이것이 '시유'라 물리는 그의 삶이다. 오십 년도 살지 않은 그의 삶의 최종 귀결은 '차가움'이다. - P207


유종원은 벼슬을 하다가 호남성으로 좌천되어 영주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직책으로 지냈다. 내가 아는 그의 시에는 노년을 다룬 시가 많은데 이는 인생의 끝자락에서의 회한처럼 고립과 외로움의 환경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결코 감정을 닫고 숨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꿈을 펼칠 시기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였다. 저자의 유종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한시 여행이 참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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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10-1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철학자라는 말이 눈에 띄는군요 서양철학자라고 해서 한시를 안 봐야 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에요 본래 한시를 좋아했나 봅니다 한시는 학교 다닐 때만 보고 거의 못 본 듯하네요 그때라고 제대로 본 것도 아니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10-18 17:4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찌 보면 편견일 겁니다. 중국 한시 작가들은 몇 권의 한시 책들을 접하면서 낯이 익네요. 오히려 고려, 조선 시대에 국내 한시는 정철 말고는 생각나는 이름이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국내 한시에도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Becoming (Paperback) -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Crown Publishing Group / 2021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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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사두고 앞부분만 조금 읽다 만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역시 원서는 함께 읽어야 읽을 수 있는건가. 아무튼 '강제'의 힘은 확실히 강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든 생각은 미셸 오바마는 몸도 마음도 참 건강하다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미셸도 인생 여정을 거치며 쉽지 않은 우여곡절을 지나왔지만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떤 상황에 놓여졌을 때 상처받고 흔들려서 무너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부러웠다. 멋진 부모님, 특히 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미셸이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미셸과 오빠를 항상 어른으로 대접해주었다. 결코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고 어떤 질문에든 경청하고 나서 일방적인 훈계가 아닌 방식으로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냉혹한 현실에는 꾸미거나 왜곡하지 않고 어물쩍 좋은 말로 넘기지도 않았다. 언제라도 세상에 나아가서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신 게 아닐까. 그래서 덕분에 그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요소를 최대한 통제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프린스턴은 극도로 백인적이고 대단히 남성적이었다. 남학생 수가 여학생 수의 두 배가 넘었고 흑인 비율은 9%도 안 되었다. 그녀는 제3세계센터(TWC)를 통해서 흑인, 라틴계 학생 공동체와 자주 어울렸다. TWC 센터장인 처니에게서는 망설이는 일이 있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도전해보라는 메시지를 얻는다. 룸메이트인 수잔을 통해서 나와 다른 자유분방한 성격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다(아마도 이것으로 오바마를 만나기 전 미리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었을 듯), 


미셸은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남들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 마련이었는데 그로 인해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일로 정해진 길에 당연한 듯 들어섰고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칭찬을 잃을까봐 다른 길을 택하지 못했다. 늘 그래왔듯이 노력과 의지에 맞춰서 사는 것에 절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데 변호사는 늘 한 공간에 갇혀 수많은 사건 서류 더미와 씨름해야 했던 것. 그렇게 그녀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소명이 아님을 점점 깨닫게 된다. 물론 그 직업을 선택해서 평생지기인 오바마를 만났으니 그녀에게는 어쨌든 짧지만 중요한 전환이기는 했을 것이다. 첫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지역사회운동가로 활동하는 모습으로 점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했고, 관습적이지 않았고, 희한하게 우아했다."고. 뭐 이즈음이면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 데이트해야 할 것 같아요.” 버락의 제안에 만남을 가진 그녀는 모든 것이 뒤섞인 이 이상한 남자(!)에게 결국 넘어갔다. 미셸의 이상형이 언제고 단숨에 자신을 사로잡는 남자를 만나, 최고로 멋진 사랑 이야기들에 빠짐없이 나오는 해일 같은 격정에 휩쓸리기를 바랐던 것을 생각하면 뭐 대충 비슷한 거 아닐까 싶기도. 


미셸의 청춘에서 가장 큰 아픔이었던 사건은 가장 친한 친구였던 수잔의 때이른 병으로 인한 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사는 동안 원없이 하고 싶은대로 살았기에 미셸에게 주는 메시지가 분명 있었다. 이후 이어진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식은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그녀는 변호사를 그만두고 시카고 시청에서 보좌관으로 일하기로 한다. 월급은 반으로 줄어들었는데 버락은 어떻게든 해낼 것이라며 힘을 실어주었다. 


아무튼 미셸과 오바마는 축복 속에 시카고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치뤘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났지만 이상주의자인 오바마에게서 미셸은 그의 비전이 실현되기를 어느 순간 소망하게 되는데 그것이 오바마가 정치를 선택하여 그 길을 걸어가는데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1996년 버락은 정치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임신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첫 아이는 결국 유산이 되었다. 두 사람은 상담 끝에 배란 촉진제를 복용받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노력 끝에 첫째인 말리아가 태어났다. 이후 둘째인 샤샤가 태어났다. 힘들게 얻은 아이들이었기에 두 사람의 기쁨과 간절함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미셸은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금 더 자유도가 높은 병원의 일자리를 수락한 반면 버락은 강의와 입법 활동을 병행했다. 게다가 그는 더 높은 정치인의 길에 올라가기를 꿈꾸고 있었다. 미셸은 지금도 충분히 바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로 정치가 싫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때 부부 상담을 하러 가야할 정도로 악화일로였다고. 뭐 상담 후에는 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무마되었지만. 


오바마는 정치인의 단계를 밟았고 결국 대통령의 길에 들어섰다. 이걸 미셸이 수용하기란 참 쉽지 않았을텐데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대통령이 되면서 미셸은 가족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공개적인 생활에 익숙해져야만 햇을 것이다. 백악관에 살면서 버락은 예전보다 규칙적이 되었다고. 아이들이 가장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생각보다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단다. 

미셸은 이것저것 정치에 직접 개입해서 간섭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이자 최고의 결과를 냈다. 백악관에서 텃밭을 가꾸고 비만이 늘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건강식으로 된 급식을 추진하고 군병원에 방문을 해서 장병들을 위로하고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멘토링을 하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 재난이 생기면 기피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일부러 가족들과 그곳을 찾아 여행을 하기도 했다. 

특히 총기로 인한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슬퍼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장이기에 총기 규제 법안을 어떻게든 추진하려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결국은 안되었지만). 


번역서가 읽어서 겨우 읽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다른 원서들보다는 재미나게 읽었다. 그녀의 인생이 궁금했었기에 이렇게 읽은 것으로 만족한다. 그녀는 참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앞으로도 부디 남은 인생 멋지게 살아가시길!

Failure is a feeling long before it becomes an actual result. It‘s vulnerability that breeds with self-doubt and then is escalated, often deliberately, by fear.

It was one thing to get yourself out of a stuck place, I realized. It was another thing entirely to try and get the place itself unstuck.

Dot we settle for the world as it is, or do we work for the world as it should be?

It‘s all process, steps along a path. Becoming requires equal parts patience and rigor. Becoming is never giving up on the idea that there‘s more growing to b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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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9-30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거리의 화가 님!! 1등 이십니다. 축하합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도 이 책 읽으면서 같이 읽기가 아니라면 완독하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단어들이 너무 어려워서요. 그건 미셸 오바마가 어휘력이 좋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장이 어려운 것 같진 않은데 색다른 단어들을 넘나 많이 써서.. 휴..

미셸도 대단한 사람이고 오바마도 대단한 사람이고, 말씀하신대로 둘다 대단한 사람들끼리 만난 것 같아요. 미셸이 오바마의 대통령 출마를 허락하게 되는 이유중에 하나가, 오바마는 항상 미셸의 선택을 지지해줬다는 것도 있잖아요.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월급은 더 적지만 다른 걸로 옮길까.. 갈등할 때 오바마는 응원과 격려를 줬잖아요.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에 응원을 해준다는 것도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흑인이며 여성인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이렇게 글을 써준 것이 저는 너무나 좋습니다. 거기에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걸친 흑인의 역사도 있으니까요.

비커밍 한 달 더 읽기로 해서 그 다음 원서는 11월부터 시작하게 될건데요, 거리의화가 님, 한달간 달콤한 휴식을 즐기세요!!
>.<

거리의화가 2026-09-30 09:13   좋아요 0 | URL
아... 11월까지 연장되었군요^^; 아무래도 분량도 그렇고 어려운 단어들이 있어서 읽기가 어렵더라구요.

미셸도 버락도 둘 다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읽으면서 여러 번 주먹을 불끈 쥐으며 읽었는데 어찌 되었든 저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적어도 미국이란 나라에 확실히 득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달 간 잠시나마 인류에 회의적이던 제 생각이 잠시 달아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락방 님 함께 읽기 제안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 원서가 무엇으로 정해질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책이라면 참여하도록 할게요. 9월 마무리 잘하시기를!

책읽는나무 2026-09-3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도 꽤나 두꺼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서를 완독하시다니 멋집니다.^^ 뿌듯하시겠어요.

거리의화가 2026-10-01 08:59   좋아요 1 | URL
번역본이 있어서 그나마 완독을. 원서만 읽었으면 중도포기했을거에요. 그래도 원서는 킨들로 읽으니 단어에 도움을 바로 얻을 수 있어 힘이 됐죠.

단발머리 2026-10-03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며칠 전에 거리의화가님이 써주신 이 부분 지나갔거든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했고, 관습적이지 않았고, 희한하게 우아했다.˝고. 뭐 이즈음이면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콩깍지 부분이요. 지금도 오바마 멋있는데 그 때는 더 멋있었을거 같아요. 웃을 때 표정도 근사하고, 목소리도 ㅋㅋㅋㅋㅋㅋ 이런, 제가 사랑에 빠진 걸까요? 아무튼 저도 더 부지런히 읽어봐야겠어요.

거리의화가님이 1등이시네요. 완독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6-10-25 12:05   좋아요 0 | URL
댓글이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사진 보면 진짜 준수했잖아요. 저 또한 처음에 봤을 때 ‘와! 잘생겼다‘ 했었거든요. 게다가 뭐 지식부터 시작해서 추진력 등 다양한 매력도 있으니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너무 다른 사람이라 오히려 빠질 수도 있었을 것 같기도 하구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