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일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 일반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최종적으로는 특수한 구조들 위에 정초해 있는 역사성의 특수한 구조들이 서로 다른 생산양식들이, 이 총체성들의 본질에 따라서만, 다시 말해 이 총체성들의 고유한 복잡성의 본질에 따라서만 의미를 가지는 역사성의 특수한 구조들(왜냐하면 이 역사성의 특수한 구조들은 전체들로서 결정되고결합된 사회구성체들의 실존, 특수한 생산양식들에 속해 있는 사회구성 - P502

체들의 실존에 불과하기 때문에)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해야한다. - P503

경제학자와 역사학자가 보지 못했던 것은 정치경제학의 ‘추상적‘
이론이 역사이론의 대상 자체에 지역으로서(수준 혹은 심급으로서)유기적으로 속해 있는 하나의 지역에 대한 이론[즉 ‘지역적 이론‘ 혹은
‘국지적 이론‘]이라는 점이다. 경제학자와 역사학자가 보지 못했던 것은 『자본』에서 역사가 현실대상이 아니라 이론대상으로, 현실적-구체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개념적인) ‘추상적‘ 대상으로 등장한다는점, 그리고 일차적 수준의 역사(학)적 취급[분석]이 노동일 감축을 위한 투쟁에 대해서든 자본주의적인 본원적 축적에 대해서든 마르크스에 의해 적용되는 곳인 『자본의 몇몇 장[즉 자본의 ‘역사적 장들‘]이 역사이론에, 역사 개념의 구축에 그리고 이 역사 개념의 ‘전개된 형태들‘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경제이론은 이 ‘전개된 형태들‘의규정된 한 ‘지역‘을 구성한다의 구축에 그 원리로서 준거한다는점이다. - P523

현실적인 것[대상의 현실] 내에서 이론적 전체ensemble (정치경제학이론)와 현실적인 경험적 전체ensemble(구체적 역사)이론적 전체는 이 현실적인 경험적 전체에 대한 인식인데 사이에서 이 둘을 일대일로 조응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 내에서의 ‘[대문자]논리‘와 ‘[소문자]역사‘ 사이의 ‘관계‘에 관한 질문에 대해 저질러졌던 오해들의기원에 존재한다는 원리 말이다. 이 오해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다음과 같은 맹목aveuglement의 효과이다. 즉, 「자본이 경제이론에 대한이해에 필요불가결한 하나의 역사이론을 온전히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종종 지각하지 못하게끔 방해하는 그러한 맹목 말이다. - P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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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ing

마르크스의 근본적 비난은 고전파 경제학이 자본주의의 경제적 범주들에 대한 무-역사적a-historique이고 초역사적éternitaire이며 고정주의적fixiste이고 추상적인 하나의 개념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P460

이 절대적이고 동질적인 현존이, 자신의원리 내에서, 저 유명한 헤겔적 정식 역사적으로 현존하는[현재의]présente 철학인 이 전체에 대한 지식savoir 내에서, 이 전체의 자기의 - P469

식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자기의식마저 포함하여, 전체에 대한 모든 규정들에서 유효한,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시간을 넘어 튀어오를수는 없다는 저 유명한 정식을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에게서현재는 모든 지식의 절대적 지평을 구성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지식은 전체의 내부적 원리의 이 지식 내에서의 실존[전체의 내부적원리가 이 지식 내에서 실존함]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니기 때문이다. - P470

불가능한 본질적 절단면이 드러내는 것, 그것은 바로, 이본질적 절단면이 부정적인 방식으로en négatif 보여주는 부재들 자체에서, 규정된 하나의 생산양식에 속하는 하나의 사회구성체에 고유한 역사적 존재형태, 그러니까 마르크스가 규정된 생산양식의 발전과정이라 부르는 바의 고유한 유형이다. 이 과정 역시, 『자본』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해 언급하며 마르크스가 서로 다른 시간들의 얽힘의 유형이라 부르는 것, 다시 말해 구조의 서로 다른 수준들에 의해생산된 서로 다른 시간성들이 서로 다른 시간성들 간의 복잡한결합은 과정의 전개의 고유한 시간을 구성한다의 ‘어긋남‘décalage과 ‘꼬임‘ torsion의 유형이다. -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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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3

마르크스의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오해는 이 [고전파]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마르크스에게로 투사한 자신들 고유의 대상을 읽어내도록 해준다. 또 다른 대상, 즉 자신들의 것이 아닌 완전히 다른 대상[즉 마르크스 자신의 대상]을 마르크스에게서 읽어내도록 해주는 대신 말이다. 그러나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마르크스의약점과 이론적 결함défaillance으로 선언하는 이러한 오해의 지점은오히려 마르크스의 가장 강력한 힘의 지점 [강점], 마르크스를 자신의 - P431

비판가들로부터 발본적으로 구분해주며 또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들 중 몇몇으로부터도 자신을 구분해주는 그러한지점이다! - P432

추상에 대한 규제된réglé 활용 내에서의 몇몇 잘못된 시도들 혹은 ‘전도‘inversion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스미스의 대상과 리카도의 대상사이의, 그리고 마르크스의 대상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지각하지 못한다. 대상에서의 이러한 비차이는 다음과 같은 형태하에서 통속적마르크스주의 해석 내에 기입되었다. 차이가 존재하는 지점은 대상이 아니라 오직 방법이라는 해석, 즉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의대상에 적용했던 방법은 형이상학적일 뿐인 반면, 마르크스의 방법은변증법적이라는 방법에서의 차이 말이다. - P444

우리는 마르크스에게서이 질문이 항상 부재함을 확인하게 된다. 이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점에서 이 ‘추상적 일반관계‘는 ‘규정적‘ [결정적]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가? 그러한 모든 추상은 그 자체로 이 추상의 대상에 대한과학적 개념인 것인가? 이데올로기적 추상들과 과학적 추상들, ‘좋은‘
추상들과 ‘나쁜‘ 추상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마르크스는 이에대해 침묵한다." 다시 한번 우리는 이 동일한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제기할 수 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예의 그 추상적 범주들, 인식을 생산하기 위해 출발해야만 하는 그러한 추상들, 따라서 이 추상들은 마르크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에게서 이 추상들은 사전적préalable 추상과정으로부터, 자신이 침묵하는 그 사전적추상과정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추상적 범주들은 현실적 - P452

인 추상적 범주들catégories abstraites réelles을 ‘반영‘réflechir할 수 있는데, 이 현실적인 추상적 범주들이란 경제세계의 경험적 현상들에 이현상들의 개별성에 대한 추상의 자격으로 거주하는 현실적인 추상적인 것abstrait réel이다.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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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경제적 대상들은 모호어법의 방식으로 다루어졌는데, 그 이유는 부의 이론이 포이어바흐적감성 이론에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대상의 감성적 성격은 그대상의 인간적 성격을, 구성적 주체의 대상이라는 지위를 지시했다. - P236

반면 여기 『자본』에서 대상은 더 이상 인간적 감성적인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감각적-초감각적이다. 대상의 현상 방식에서의이러한 모순은 그 대상이 속하는 대상성의 유형을 지시한다. 대상의감각적-초감각적 성격은 대상이 사회적 성격의 발현으로 나타나면서 띠는 형식이다.
<감각적/초감각적 관계→ 사회적 관계>가 인간적/감성적 관계를 대체하며, 이는 마르크스가 상품의 물신숭배라 부른 것을 이해하는데 기본적이다. - P237

옷의 생산에는 인간의 힘이 사실상 특수한 형태로 지출되었다. 따라서 - P237

옷에는 인간의 노동이 쌓여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옷은 가치-담지자(Wertträger)이다. 물론 옷의 이러한 성질은 그것이 아무리 닳는다 해도실밥 사이로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은 아니다. - P238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원시적 축적)에서 직접생산자가생산수단과 분리되고 생산수단이 자본으로 변환되고 나면, 직접생산자인 노동자의 유용한 노동은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으로서만 발현될수 있다. 이로써 유용한 노동과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의 동일성이 곧생산의 일반법칙이 되는 조건이 창출된다.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징들이 노동생산물의 단순한 상품형태 안에이미 포함되어 (eingeschlossen) 있을 수 있다. - P261

마르크스와 리카도의 차이는 영원한 것으로 정립된 체계와, 범주들이 장차 (그것들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기호인)+ 기호에 의해 변용을 겪게 되었을 역사적 체계 사이에 있지 않다. 마르크스만이 칸트적 의미의 체계를 만들기에 이른다. 정치경제학이 체계적이려면 한가지 방식밖에 없으며, 그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의 첫 장에서부터규정한 이와 같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유형의 대상성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혁명은 정치경제학의 범주들을 역사화한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 범주들의 체계를 만든 데 있다. 그리고 우리,
는 체계 비판이 체계에 대한 과학적 서술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말해 이 체계는 오직 사회구성체 발전 이론을 통해서만 이해될수 있는 구조를 나타나게 한다는 것을 안다. - P300

물신주의적 담론을 마르크스는 자신이 삼위일체 정식이라 부르는 것으로 요약한다. 이 정식은 세 쌍으로 구성된다.
-자본/이윤-
-토지/지대
-노동/임금
여기서 자본, 토지, 노동의 세 요소는 각각 수입을 산출하는 세원천으로 나타난다. 자본은 자연적으로 이윤을 산출하고 노동은 임금을 산출하며 토지는 지대를 산출한다. 이 삼원성은 생산행위자들이지각한 것의 체계화, 그들의 행위가 기입되는 형태들의 체계화를 표상한다. - P302

『경제학철학 수고에서주체(노동자)는 대상에 자신의 본질을 놓는다. 이 대상은 낯선 존재(자본)의 역량을 키울 것이며, 이 낯선 존재는 전복의 운동을 통해 스스로를 주체로 정립하고 노동자를 자기 대상의 대상으로 축소한다.
반면 『자본』에서 Veräusserlichung [외화]은 형태의 Begriffslosig-keit[무개념성] 때문에 관계의 규정들이 사물의 물질적 속성들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성립한다. 그리고 관계가 사물 안으로 사라지고 나면, 사물은 자동적 주체로 등장한다(주체화). 이 운동에 노동자와 자본가는 개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 노동자는 과정의 근원적주체가 아니라 임금노동 생산관계의 담지자로 등장한다. Entfrem-dung [소외] 메커니즘은 주체와 무관하다. - P319

마르크스는 『자본을동시에 두 수준에서 썼다. 하나는 경제학적 서술의 수준이고(이 수준에서 개념들은 엄밀하다. 개념들이 특정한 과학적 실천에 부합하는 한에서, 그리고 사유에 의한 현실의 전유를 가능하게 하는 한에서 말이다),
다른 하나는 추론 행위conduite를 규정하는 서술 도구, 쓰기 수단의 - P357

수준이다. 이 두 번째 수준에도 그 나름의 개념이 있다. 이는 과학의개념들로서, 이 개념들 없이는 어떤 것도 읽거나 쓸 수 없으며, 이 개념들은 (첫 번째 수준을 정의하는) 선행하는 과학적 실천의 이론에 상응한다.


한 조각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눈을 크게 뜬 채, 그렇지만 행간을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들에서 보통 읽지 못하는 것을 읽고자, 상이한 수준의 개념과 상이한 유형의 개념이 물질적으로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보려고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조각이라는 가치만으로 아무텍스트나 연구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가정상 가장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시작, 즉 처음 페이지들에 주어진 것이다. 아마도 거기,과학의 입구야말로 과학적 서술이 가장 험난한 모험을 하는 곳일테니까. - P358

상품이란 동시에 두 가지 사물이다. 그 자체로서의 상품은, 그 내재성에서는, 그 내면성에서는, 그 윤곽에서는 나무랄 데 없이 사물이라 불린다. 반면 교환이라는, 스스로에게 결정적인 경험을 통해 자기 - P376

자신, 아니 자기 분신과 마주했을 때의 상품에는 낯설고 기묘한 어떤사물이 기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 어떤 사물은 상품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상품이 그것에 속하는 것으로서, 가치라 불린다. 상품이품으로서 폐기되는 순간, 또는 적어도 자신의 현상형태를 폐기하는순간(교환을 통해 상품은 대체되는 듯 보인다. 즉 상품의 낯선 분신이상품을 대신하는 것이다), 상품이 고유의 형식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않아 사라지는 순간, 상품은 다른 사물의 형식인 것처럼 보인다. 바로여기서, 형용모순contradictio in adjecto과 함께 분석의 새로운 국면이시작된다. 가치와 가치형태의 구별에 근거한 가치 분석이 시작되는것이다. 그러므로 가치는 상품과는 달리 경험적 형태가 아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를 지니는 분석이 상품 분석을 대신해야 할 것이다. - P377

교환 분석의 역설은 가치가 교환의 항들 안에도 항들 사이의 관계 안에도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치는 주어지지도 않고 도출되지도 않으며 밝혀지지도 않는다. 가치는 개념으로서 구축된다. 이 때문에 관계의 매개는 분석의 특정 계기에서는 모든 의미를 상실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통찰했듯) 교환은가치에 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지만, 가치를 정의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치는 개념이라는) 자신의 실재성을 자신에 대한탐구의 단계들과 혼동하지 않으니 말이다.
또는 이렇게 볼 수도 있다. 가치는 두 대상 각각에 동시에 있지않은 이상, 두 대상에 공통적인 내용일 수 없다. 그런데 가치는 자신을 담지하는 대상과 독립적이며, 가치는 별도로, "자기 스스로" 실존한다. 마찬가지로 가치는 두 대상 사이에, 같은 본성을 지닌 또 다른대상으로 있는 것(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이다)도 아니다. 가 - P390

치는 본성이 다른 대상, 즉 개념이다. - P391

인식이 자신의 내용, 즉 자신의 질서를 구축하며, 인식이 자기 출발점과 도구들을 마련한다." 핵심은 인식이 설립하는 질서가 "정돈되어야 할 현실에 덧대어 있지 않을뿐더러 최종적일 수도 없다는 점이다. 반대로 이 질서는 늘 잠정적이다. 그것에 대해 부단히 노동해야-
하고 그것을 부단히 다른 유형의 질서들과 맞대면시켜야 한다. 연속적인 단절을 통해 한 질서에서 다른 질서로 이렇게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인식의 무한정한 과정을 정의한다.
질서-무질서의 대립은 이와 같은 활동을 해명하기에는 너무나빈곤하다. 부단한 갈등을 통해 서로 관계 맺는 상이한 질서들은 그자체가 (불충분하고, 결함 있으며, 잠정적인) 무질서와 매한가지이다. 인식의 진정한 노력은 현실적 무질서 대신 (아니, 다른 곳에), 이 현실적무질서를 측정하기에 알맞은 사유의 무질서를 세우는 데 있다." 진정한 합리성과 진정한 논리학은 다양성 및 부등성의 합리성과 논리학이다. 앎을 생산한다는 것, 이는 무질서를 질서인 양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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