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철로를 타고 나는 듯이 달리는데,
조금도 어긋남 없이 마음대로 가고 멈추네.
누가 이치에 통달하여 이런 방법 알아냈던가.
차 한 잎 끓이다가 신묘한 기구 만들어냈네[옛날에 영국인 와트가 주전자에 물이 끓자 뚜껑이 들썩거리는 것을보고 이를 미루어 이치를 깨달아서 비로소 증기기관을 만들었다.]

바람 불고 번개 치듯 험준한 산을 오르더니,
수천수만 강과 산을 눈 깜짝할 사이 지나네.
비장방(房)의 축지법은 도리어 번다하더니,
이 기차는 열흘 걸릴 길을 찰나에 가는구나. - P141

8. 웃고 미소를 짓는 것은 행복하다는 표시이다. 분명 이상한 옷을 입고있는 우리는 뉴욕에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순박한 원인 제공자가되었다. 그러나 이 ‘자유의 나라‘ 후손들이 불손하게도 우리를 보려고 발광하는 그 모습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다.
-「윤치호 일기 5월 9일 - P158

런던은 정치가 융성하니,
군주와 국민이 서로 신뢰하네.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고,
천년 세월 이름난 고을 중 으뜸이었네.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이라.
여기 와서 아름다운 풍속 보노라니,
꽃과 달이 온 도성에 가득하네. - P165

망국은 과거 역사에 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니, 문학의 소재로도 널리 다루어졌다. 길재가 고려의 옛 도읍을 둘러보며 읊은 시조의 "산천(山川)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구절은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망국의 문제를 다룬 시구 가운데 두보(杜甫)의 <춘망(春望)>에 등장하는"나라는 깨어졌으나 산하는 그대로 있고, 장안엔 봄이 오니 초목만 깊 - P180

어졌네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라는 구절은 동아시아 지식인에게 특별히 익숙했을 것이다.  - P180

망한 나라의 백성이 벼와 기장에서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착상은 기자의 <맥수가>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궁궐과 저녁 종은 그대로라고하더라도 유민들은 무언가 달라진 풍경을 곡식이 심어진 들판에서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구체적인 사물을 지칭하지는 못하더라도 유 - P181

민들이 기자의 고사에서 유래한 ‘맥수지탄‘의 감정을 느끼기마련이라는 의미로 "화서"를 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기자가 은나라의 도읍을 지나면서 옛 궁궐이 폐허만 남아 보리밭이 된 풍경을 보고 탄식하여 불렀다는 <맥수가>는 두보의 시구만큼이나 김득련이 폴란드를 읊는 데 영향을 주었을 법도 하다.  - P182

행렬은 두 줄로 늘어선 병사들 사이를 지나갔다. 이 장면은 내가 이제까지 본 어떤 장면보다 더 장관이었다. 군인, 관리,
수행원, 말, 마차, 그리고 모든 것이 거의 금은으로 덮인 것처럼 보였다. 황제는 홀로 간편한 양식의 옷을 입고 말 등에 반듯하게 올라타고 있었다. 조선 국왕의 모습을 추하게 하는 마부 · 내시 · 하인 같은 떨거지는 없었다. 러시아를 다스리는 이 군주의 주변에는 그 같은 역겨운 존재들이 하나도 없다. 비단옷을 입은 황후는 홀로 황금마차를 타고 가면서 길 양쪽에서 환호하는 수많은 군중에게 머리를 끄떡여 인사했다. 이 모든 행차는 목표지점에도달할 때까지 한 시간 걸렸다.
특사 가운데 지저분한 이빨 그들 중 몇몇과 길게 땋은 변발을 한 중국인들은 수놓은 훌륭한 비단옷을 입고 있지만 안쓰러운 모습이다. 유럽식 - P197

으로 차려입은 일본인들은 동양 전체에서 가장 문명화되고 부러움을 사는나라의 대표처럼 행동했다. 페르시아는 매우 말쑥한 제복을 입은 잘생긴 사람이 대표로 왔다. 최근에 그 나라의 왕이 피살되고, 그 나라 정부가 친영국파와 친러시아파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인지 그에게 일종의 동료 의식을 느꼈다. 우리나라의 비참한 상황을 의식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는 더 행복한나라에서 온 사절들의 경멸과 조소의 대상일 터이다."
-「윤치호 일기 5월 21일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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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申)"는 상하이의 별칭이다. 상하이는 전국시대 춘신군(春)의 봉지였기에 ‘신(申)‘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며, 진나라 때 사용된 낚시 도구인 ‘호(扈)‘와 연관된 우쑹강 하류의 별칭 ‘호독(扈瀆)‘으로부터 유래한 명칭인 ‘호(滬)‘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송나라 말기에 상해진(上海鎭)이 설치되었으니, ‘신호‘는 더 이른 시기의 지명인 셈이다.
상하이는 1843년에 정식으로 개항되는데, 이는 아편전쟁 이후 체결된 1842년 난징 조약에 5개의 개항장 가운데 하나로 포함된 결과였다. - P96

바로 시베리아[西伯利亞]를 거쳐서 러시아 수도에 들어간다면 노정은 가까울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모처럼 떠나는 대사의 일행이 지나는 길의 산천과 구미)의 국경을 겉으로라도 볼 겸하여 상하이에서 북미를 거쳐 서유럽으로부터 러시아 수도에 들어가는 길을 취하게 되었다. 4,000년 이래 갇혀 있던 조선의 깃발이 태평양 만리 창해에 흩날리고, 캐나다(加陀, 미국[合]에 흩날리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의 수도를 지나 독일의 국경을 횡단하고 러시아의 관문에 들어서게 될 제 과연 역사의 변천과 세파(世)의추이에 금석현수(今昔懸의 감(感)이 없을 수 없었다.
- <별건곤> 제6호(1927. 4.) - P109

정오에 출발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그저께 요코하마에 정박하니, 수려한산천, 견고하게 쌓은 부두, 높고 큰 건물, 잘 정비된 거리, 끊임없이 이어진전등과 가스등이 사람의 눈앞을 갑자기 환하게 했다. 동경에 들어가자 배치된 모든 것이 참으로 오묘한데, 정밀함에도 더욱 정밀하기를 구하고 날로또 날로 새로워지고 있다. 이는 모두 이 나라 사람들이 서양의 제도를 근면하게 배워서 이처럼 개명된 것이요, 남의 손을 빌린 것이 아니다."
-『환구일록』 4월 17일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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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매체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이 쉬워질수록 우리는 그 안에 담길 내용을 점점 더 선별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일상에 - P396

서 마주하는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 전달한다. 단지 종이를 채우는 데(혹은 글을 입력하는 데, 영상을 올리는 데, 다음에 등장할 매체가 무엇이든 그 매체를 이용하는데) 거의 수고가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점심으로 무얼 먹었는지를쓴 편지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점심 사진으로 대체되고 이 사진에 우리는빛과 그림자, 구도의 예술적 효과를 대체한다고 주장하는 기성품화된 필터를 적용한다. 사진 예술 또한 그 편리함 탓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 - P397

천문대 계산자로 합류한 지 10년 만에 플레밍은 자신이 직접 분류한 1만 개별의 분포를 기록한 400쪽에 이르는 일람표를 발표했다. 플레밍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의 고향에 은판 사진술을 최초로 도입한 남자였다. 다른계산자인 헨리에타 스완 레빗 Henrietta Swan Leavitt은 업무 능력이 특히 뛰어나다른 계산자들의 평균 급료보다 시간 당 5센트 많은 30센트를 받으며 일을했다. 그녀의 계산 결과는 훗날 우주가 팽창한다는 에드윈 허블 Edwin Hubble의 법칙을 증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 P400

호스머는 결혼이 여자가 먹고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거의 유일한 길이었던 사회에서 대안적일 뿐 아니라 거의 아무도 가지않는 길을 택했다. 주위의 동료가 모두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호스머는크로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나를 빼고 다들 결혼을 하고 있어요. ...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해도 예술가한테는 결혼할 권리가 없어요. 남자는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부부의 의무와 책임이 훨씬 더 무겁게 부과되는 여자의 경우 예술가가 결혼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이나 가정 중 하나를 방치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결국 현모양처가 되지도 뛰어난 예술가가 되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내 야심은 후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통합의 매듭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불화를 계속해서 봉합해나갑니다. - P443

호스머의 유산은 바로 그녀 자신의 존재,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선택을 통해다른 이들에게 가능성을 넓혀주고 그들의 삶을 확장시켜 준 방식에 있다.
호스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여성 예술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타인"으로존재했던 문화 한복판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모든 창조적인사람들, 동성애자임을 숨길 이유가 거의 없어진 문화 안에서 편안하게 커밍아웃할 수 있던 모든 퀴어 남녀들은 해리엇 호스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의 존재를 받치는 기반에는 호스머의 원형적인 유전자의 무늬가 새겨져있다.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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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oise doesn’t go away, but the most successful people I know have figured out how to live with it, to lean on the people who believe in them, and to push onward with their goals.

I was cautious. I stuck to what I knew. It’s hard to put into wards what sometimes you pick up in the ether, the quiet, cruel nuancs of not belonging-the subtle cues that tell you to not risk anything, to find your people and just stay put.

This may be the fundamental problem with caring a lot about what others think: It can put you on the established path-the my isn’t that impressive path-and keep you there for a long time. Maybe it stops you from swerving, from ever even considering a swerve, because what you risk losing in terms of other people’s high regard can feel too cos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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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8-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시작하셨군요. 영어는 읽기에 어떤가요? 저는 새로운 영어책을 펼치자니 좀 두려움이 앞서네요. 그래도 곧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6-08-18 09:41   좋아요 0 | URL
자서전, 에세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함께 읽었던 책 중 가장 수월하게 읽히는 것 같아요. 물론 중간중간 어려운 단어는 등장하지만. 번역서 읽고 원서 읽으시면 그래도 잘 읽히실 것 같아요. 그나저나 작가가 역시 똑똑하고 글 잘쓴다는 생각이 듭니다ㅎㅎ
 

인티파다는 누적된 좌절감을 바탕으로 아래에서부터 자생적으로생겨난 저항 운동이었고,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의 공식적 정치 지도부와 아무 연계가 없었다. 1936~1939년 반란과 마찬가지로, 인티파다가 장기간 광범위하게 지속된 것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누렸다는 증거다. 봉기는 또한 유연하고 혁신적이어서 공동 지도부를 발전시키는 한편 지역 차원의 동력과 통제를 유지했다. 활동가들도 남성과 여성, 엘리트 전문직과 사업가, 농민, 마을 사람, 도시 빈민, 학생,
자영업자 등 사회의 거의 모든 집단을 아울렀다. 많은 남자들이 감옥에 갇히자 여자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점점 지도부의 자리를차지했고, 전통적으로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에서 흔히 배제되는 사람들을 결집시켰다. - P252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지위가 또다시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야세르 아라파트와 그의 동료 대다수가 1990~1991년 걸프전과 관련해심각한 오산을 했기 때문이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점령한 거의 직후에,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비롯한 사실상 거의 모든 주요 아랍 강국과 함께 미국이 주도하는국제적 동맹에 합류했다. 아랍연맹 회원국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사담 후세인의 행동을 뒤집어엎기 위한 동맹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의 탈식민 국가들이 식민지 시절 경계선과 그 안에서 자라난 국가를 보호하는 쪽을 일관되게 선호한 것과도 일맥상통했다.
아라파트는 이라크에 맞서 쿠웨이트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대신 <중립> 방침을 따르면서 양쪽 사이를 중재하려고 했다. 당사자들은 모두아라파트의 제안을 무시했고, 소련 같은 한결 강력한 행위자의 중재시도도 무시를 당했다. 소련은 고위급 중동 특사를 바그다드로 보냈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 P264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점령의 부분들-국가와정착민들이 누리는 갖가지 특권과 특전을 유지하는 한편 성가신책임을 떠넘기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자결권과 국가 수립, 주권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오슬로 협정은 이런 수정의 신호탄이었고, 이후에 다른 협정들이 추가되었다. - P296

하마스가 부상한 것은 많은 이들이 20세기 대부분 동안 중동정치를 지배한 세속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파산이라고 간주한 현상에 대한 대응을 대변하는 지역적 추세의 일부였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무장투쟁에서 벗어나 비록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외교적 경로로 돌아선 뒤,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이 조직이 길을 잃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하마스는 그 결과로 극히 보수적인 사회적 입장과 모호한 미래상을 내세우면서도 몸집을 부풀렸다. - P303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전면적인 포위에 나섰다. 가자 지구에 들어오는 물자는 최소한으로 줄어들었고, 정기적인수출은 완전히 중단되었으며, 연료 공급이 차단되었고, 가자 출입은 극히 드물게 허용되었다. 가자는 사실상 지붕 뚫린 감옥이 되었다.
2018년에 이르면 200만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최소한 53퍼센트가빈곤 상태에서 살았고, 실업률은 무려 52퍼센트로, 청년과 여성은훨씬 높은 수치였다." 국제사회가 하마스의 선거 승리를 인정하기를거부하면서 시작된 사태는 팔레스타인의 파국적인 분열과 가자 봉쇄로 이어졌다. 이런 사태의 연속은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새로운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앞으로 벌어질 공공연한 전쟁을 국제적으로 은폐하는 필수적인 가림막을 제공했다.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심각한 분열과 가자의 고립을 활용해서 가자 지구에 세 차례에 걸쳐 야만적인 공중과 지상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다. - P319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하는 것처럼, 시온주의가 성공을 거둔 한 가지 이유는 <관념과 재현, 언어와 이미지가 문제가 되는 국제 세계에서 팔레스타인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 P345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돌아보면,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이해하는 방법을 확대하는 데 세 가지 접근법이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첫번째는 팔레스타인의 사례를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남아프리카인, 아일랜드인 등 다른 식민-정착민 경험과 풍부하게 비교해 보는 것이다. 첫 번째와 관련된 두 번째 접근법은 모든 식민지 분쟁의 특징인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엄청난 힘의 불균형에 초점을 맞추는것이다. 세 번째이자 아마 가장 중요한 접근법은 불평등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 P346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목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기고 남은 22퍼센트 땅에 아랍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서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 현재 국외에서 사는 나머지 절반의팔레스타인인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는 것,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주권적인 두-민족국가를창설하는 것, 또는 이 선택지들을 일부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것 등 여러 방안이 있다.
분쟁의 약자인 팔레스타인은 분열된 상황을 유지할 여력이 없다.
하지만 통합을 이루기 전에 우선 새로운 민족적 합의에 바탕을 두고목표를 재정의해야 한다.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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