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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누스의 구리 반지 - 로마의 명탐정 팔코 3 ㅣ 밀리언셀러 클럽 28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희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린지 데이비스가 창조한 로마의 명탐정, 디디우스 팔코! 팔코는 로마 시대 평민 출신으로 하층민들과 부대끼며 살아서인지 눈치도 빠르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기도 하는 등 때로는 무모하다고까지 여겨지는 용기와 열정을 지닌 청년 탐정이다.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누이에게 놀림을 당하고, 툭하면 얻어 터져서 간호를 받아야 하는 등 아직은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젊은이지만 자존심 있는 남자라면 아름다운 여인을 집에 초대할 때 갖출 건 갖추어 놓고-침대는 필수항목(?)-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청년이다. -그 생각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팔코를 보니 가히 여성들에게 둘려 쌓여 있는 것 같다. 어머니와 누이, 연인, 의뢰인, 유력한 용의자 등등... 아무튼 팔코는 지금까지 내가 책으로 접해 본 탐정들-많은 탐정을 접해본 것은 아님-과 비교해 보건데 상당히 색다른 면모를 보여 주는 매력적인 탐정이다.
그리고 원로원의 딸이라는 신분을 지닌 헬레나와의 사이에 형성된 러브 라인도 사건을 추적하는 동안 핑크빛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팔코 시리즈로 나온 전작들 <실버 피그>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를 읽어보지 못한 채 이 작품을 먼저 읽게 되었는지라 전작에서 그가 어떤 활약상을 펼쳤는지 알지 못한다. 헬레나와 인연을 맺고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도 전작에 나오는 모양인데 그 러브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언제고 꼭 두 작품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팔코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인 <베누스의 구리반지> 로마 AD 71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팔코가 황제의 밀명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앙심을 품은 관리, 아나크리네스에 의해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오고, 연인의 도움으로 집세 문제에서 잠시 해방된 팔코는 호르텐시우스 집안의 새로운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 한 여인의 뒤를 조사하고 쫓아내 주는 일을 맡게 된다. 사건을 의뢰한 부인은 말한다. "그녀가 노부스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에요."라고... 과연 그녀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남편과 애인을 독살한 악녀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잇달아 잃고 만 아픔을 지닌 불운한 여인일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팔코는 일단 경계(?) 태세를 갖추고 세베리나를 관찰하고, 뒤쫓고, 과거를 추적하는데, 팔코가 처한 상황이 악재로 작용하여 사건 수사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 또한 참으로 순탄치가 못하다. 그래서일까, 믿음직한 청년이라기보다는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느낌도 든다. ^^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로 로마의 풍습과 상류층과 하층민의 대비되는 주거공간이나 생활방식도 엿볼 수 있는데 해방 노예들이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 부의 축척을 이루고 귀족보다 더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모양이다.(나의 역사 지식이 짧음이 드러난다. ^^;;) 나도 처음에 노부스, 펠릭스, 크레피토가 성이 같기에 형제지간인줄 알았는데, 해방 노예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옛 주인의 성을 붙이거나 직위 명을 따와서 이름을 짓는 모양이다. 음식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나 과자 이야기에 군침이 도는 것이 나도 한 입 먹어보고 싶어진다. 황제의 아들이 하사한 가자미 이야기는 좀 생뚱맞으면서도 이야기 중간에 맛있는 감초 역할는 해주었는데, 과연 정말 사람 키만큼 큰 가자미가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마지막으로 이 책 덕분에 처음으로 알게 된 작가 린지 데이비스의 유머와 위트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작품을 접하고 보니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다'는 엘리스 피터스의 찬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