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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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로 출퇴근하는데 한시간씩 걸리는 남편은 아침에 집을 나설 때면 그 시간동안 읽을만한 책을 가방에 넣어가곤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남편에게 재미있는 책을 계속 공급해주어야 할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는데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터라 남편 또한 요즘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책을 잡은 날, 이 추리소설의 재미에 푹 빠져 단숨에 읽어버린터라 "강추~"하며 가방에 넣어준 이 책을 읽은 남편은 "근자에 보기드물게 재미있는 책"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사형 집행까지 3개월밖에 남지 않은 한 남자가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면서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사형제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도록 하고 있다. 당신은 과연 법의 이름으로 죄를 지은 한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한 부부가 난자되어 살해된 사건 현장의 근처에서 사고를 당한 상태로 발견된 사카키바라 료는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체포된다. 그러나 료는 사건이 일어난 몇 시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사형을 언도 받고 투옥되어 하루 하루 피가 마르는 생활을 해나간다. 사형수에게는 이른바 '마중'으로 일컬어지는, 감방으로 걸어오는 간수의 발자국 소리가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의 극도의 공포감을 준다고 한다. 자신의 손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잔혹함을 지닌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런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 싶다. 한편 누군가의 의뢰로 료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두 명의 남자-교도관인 난고와 가석방 상태의 준이치-가 조사에 나서게 되고 진짜 범인(그가 료이든 아니든)이 누구인지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을 찾기 위해 애쓴다.

 이 책에 사건의 본질을 한 눈에 꿰뚫어보는 명석한 탐정같은 존재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교도관으로 재직하면서 교수형 집행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 40대 중년의 간수장 난고. 그리고 실수로 한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한 후 징역 2년의 실형을 살고 가석방된 20대의 준이치.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지닌 이 두 사람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난고를 통해 교도관이 된 후 자신의 이상과 괴리된 교도소내의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는 사형이 집행되는 과정이나 사형이 확정되어 형의 집행이 결정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법적인 절차 단계도 세부적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국가 보상 실태도 알 수 있다. 독자는 피살자의 가족이 느끼는 슬픔과 응보의 감정에도 공감하면서도 준이치 같은 전과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냉혹한 시선이나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에 안타까워 하기도 할 것이다.  

 사건 전후 4시간 가량의 기억을 잃었던 료가 어딘가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되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작용하는, 미지의 장소에 존재하는 계단! 과연 그 계단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어쩌면 사카키바라는 자신이 머지 않아 오르게 될 처형장의 계단을 떠올린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3계단'은 료가 걸어올라 간 계단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이 판결을 받아 사형에 이르는 13단계의 절차를 상징하고 있다. 료는 과연 무죄임이 증명되어 사면될 것인가, 아니면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절차가 완료되어 처형되고 말 것인가, 그도 아니면 유죄가 입증되어 예정대로 처형될 것인가... 

 사형수의 목을 옥죄어가는 시한부 처형 시한이 가져다 주는 극적 긴장감과 사건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반전이 사형제도나 국가 범죄 관리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잘 맞물린 이 작품은 손에 드는 순간부터 그 끝을 볼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게 만든다. 신인 작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의 글솜씨를 선보인 이 작품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에로가와 란포 상에 당선된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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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1-1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남편이 머리 아픈(?), 또는 어려운 책은 No~라고 하는 통에 내가 추리소설를 더 찾게 되는 건 아닌지 몰라~ ^^;;

blowup 2006-01-1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은 너무 금세 읽히는 바람에, 책 사기가 좀 아까워요. 잘 안 읽히는 책을 사야 덜 아까운 이상한 심리^^

Kitty 2006-01-1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무님 저도 그래요. 왠만하면 전 재활용(?) 가능한 책을 선호해요 호호호
그나저나 아영엄마님도 이 책 읽으셨군요.

모1 2006-01-12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생각은 팍팍 드는데..요즘 추리소설이 안 땡겨서...후후..

깍두기 2006-01-12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13층이란 영화 있었던 것 같은데, 상관 없어요?^^

아영엄마 2006-01-12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키티님,모1님/그..그래도 사주는 사람이 있어야 추리소설도 나오고 하는데 말이어요. ^^;
깍두기님/저자가 2001년경부터 작품을 선보였다고 하니.. 옛날 영화라면 아닐겁니다.

Kitty 2006-01-3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영엄마님 땡스투 토크에 등극 ^^;;
다들 아영엄마님 옆지기님이 인정한 책이 궁금했나봅니다 ^^
 
베누스의 구리 반지 - 로마의 명탐정 팔코 3 밀리언셀러 클럽 28
린지 데이비스 지음, 정희성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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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지 데이비스가 창조한 로마의 명탐정, 디디우스 팔코! 팔코는 로마 시대 평민 출신으로 하층민들과 부대끼며 살아서인지 눈치도 빠르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기도 하는 등 때로는 무모하다고까지 여겨지는 용기와 열정을 지닌 청년 탐정이다.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누이에게 놀림을 당하고, 툭하면 얻어 터져서 간호를 받아야 하는 등 아직은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젊은이지만 자존심 있는 남자라면 아름다운 여인을 집에 초대할 때 갖출 건 갖추어 놓고-침대는 필수항목(?)-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청년이다. -그 생각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 팔코를 보니 가히 여성들에게 둘려 쌓여 있는 것 같다. 어머니와 누이, 연인, 의뢰인, 유력한 용의자 등등...  아무튼 팔코는 지금까지 내가 책으로 접해 본 탐정들-많은 탐정을 접해본 것은 아님-과 비교해 보건데 상당히 색다른 면모를 보여 주는 매력적인 탐정이다.
 
 그리고 원로원의 딸이라는 신분을 지닌 헬레나와의 사이에 형성된 러브 라인도 사건을 추적하는 동안 핑크빛 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아쉽게도 나는 팔코 시리즈로 나온 전작들 <실버 피그> <청동 조각상의 그림자>를 읽어보지 못한 채 이 작품을 먼저 읽게 되었는지라 전작에서 그가 어떤 활약상을 펼쳤는지 알지 못한다. 헬레나와 인연을 맺고 사랑에 빠지게 된 사연도 전작에 나오는 모양인데 그 러브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언제고 꼭  두 작품을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팔코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인 <베누스의 구리반지> 로마 AD 71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팔코가 황제의 밀명을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앙심을 품은 관리, 아나크리네스에 의해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오고, 연인의 도움으로 집세 문제에서 잠시 해방된 팔코는 호르텐시우스 집안의 새로운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 한 여인의 뒤를 조사하고 쫓아내 주는 일을 맡게 된다. 사건을 의뢰한 부인은 말한다. "그녀가 노부스를 죽이려고 하기 때문이에요."라고... 과연 그녀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남편과 애인을 독살한 악녀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잇달아 잃고 만 아픔을 지닌 불운한 여인일까?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팔코는 일단 경계(?) 태세를 갖추고 세베리나를 관찰하고, 뒤쫓고, 과거를 추적하는데, 팔코가 처한 상황이 악재로 작용하여 사건 수사뿐만 아니라 일상의 생활 또한 참으로 순탄치가 못하다. 그래서일까, 믿음직한 청년이라기보다는 요리조리 도망 다니는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느낌도 든다. ^^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로 로마의 풍습과 상류층과 하층민의 대비되는 주거공간이나 생활방식도 엿볼 수 있는데 해방 노예들이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 부의 축척을 이루고 귀족보다 더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모양이다.(나의 역사 지식이 짧음이 드러난다. ^^;;) 나도 처음에  노부스, 펠릭스, 크레피토가 성이 같기에 형제지간인줄 알았는데, 해방 노예들은 일반적으로 자신들의 옛 주인의 성을 붙이거나 직위 명을 따와서 이름을 짓는 모양이다. 음식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나 과자 이야기에 군침이 도는 것이 나도 한 입 먹어보고 싶어진다. 황제의 아들이 하사한 가자미 이야기는 좀 생뚱맞으면서도 이야기 중간에 맛있는 감초 역할는 해주었는데, 과연 정말 사람 키만큼 큰 가자미가 있을지 상상이 안 간다.

 마지막으로 이 책 덕분에 처음으로 알게 된 작가 린지 데이비스의 유머와 위트가 곳곳에서 느껴지는 작품을 접하고 보니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다'는 엘리스 피터스의 찬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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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12-31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하이드님 리뷰에 이어 아영엄마님 리뷰까지 ...
보고 싶어요!!

어릿광대 2005-12-31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내요...다음에 자금에 여유가 생기면 꼭 구입해서 읽어야 할 듯...

하늘바람 2005-12-3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궁금하군요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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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그레한 입술을 살짝 벌린 듯한 여인의 모습이 등장하는 표지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가 추리소설 표지 치고는 매우 감성적인데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제목 또한 이 책이 사랑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게 하는 작품이다. 물론 이 책이 추리소설이기는 하나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여자를 만나는 주인공을 통해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욕구-특히 남자의-에 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옮긴이는 가벼운 위트나 유머가 가미된 이 작품을 본격 추리소설로 보기보다는 '사회파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가 적절히 어우러진 절충형 추리소설에 가깝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경비일과 컴퓨터 교실의 강사 일, 가끔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엑스트라 일을 하는 등 다양한 직업경력을 지닌 자칭 '만능 재주꾼이 되려는 사람'이다. 여자도 좋아하고 섹스도 좋아하지만 평생 반려자가 될 여인을 만나기를 꿈꾸는 남자이기도 하다. 스포츠 센터에서 알고 지내는 후배를 따라 찾아간 집의 여인으로부터 할아버지가 사고가 아닌 고의적인 살인으로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그 배후로 지목한 한 회사를 조사하는 사건을 맡게 된다. 주인공이 전에 탐정 사무소에서 일한 전력이 있어서 그렇다나~ 사건의 배후로 짐작되는 '호라이 클럽'이라는 곳은 한번 낚였다 싶으면 그 고객에게 비싼 물건을 끊임없이 강매하는 회사로 사회적으로도 이런 불법적인 회사는 사라져야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악질적인 회사를 매우 증오하는 바이다.

 "대다수의 추리소설이 그렇듯 이 작품도 트릭이 밝혀진 뒤에 다시 곱씹으며 앞 장을 거슬러 올라가고 나서야 작가가 하나부터 열까지 얼마나 치밀하게 작품을 세공했는지를 알 수 있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지하철에서 구해 준 사쿠라라는 여인과 대화할 때 기시감에 대해 말하는 것이나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니 혹여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가 싶어 책을 읽는 중간에 앞 쪽을 자주 들추어 보았던 나로서는 공감 가는 부분.  뭔지 모르게 미진해 하고 의아해면서도 읽어나가긴 했으나 나 역시 후반부로 접어들어 이 작품 속에 숨겨진 트릭의 본질을 깨닫고서야 뒤통수를 휘갈겨 얻어맞은 것처럼 황망하고 황당했다. 도무지 결말에 적응이 안되서 또 다시 앞쪽을 들추어 보기도 하고...  작가는 어떤 점에서, 어떤 부분에서 독자가 속을지를 잘 알고 이 작품을 쓴 것이 틀림없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나간다면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엇! 그런거야?'하며 깜빡 속아 넘어 가도록 일조한 자기 자신의 고정관념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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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5-12-29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서재에서 처음 봤는데 재미있어보이는군요.
표지가 이뻐서 마음에 들었답니다 ^^;;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아영엄마 2005-12-29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키티님, 제 서재에도 와주셨군요! ^^

모1 2005-12-2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다다다라는 만화에 나오는 선생님 같아요. 등장할때 마다 내가 예전에 ~~하면서 별별 경력을 다 말하고 일하죠. 암벽등반가, 요리사 등등 우주비행사빼고는 다 해본듯 한 그 다경력의 담임요.

물만두 2005-12-29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빨리도 읽으셨네요~

진주 2005-12-2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나 표지를 봐선 소설책, 시집으로 보여요.
 
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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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앞에 가서 서면 나와 너무나 똑같이 생긴 존재가 반대편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나와 똑같은 형상을 앞에 두고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거울 속에 나를 복사기로 뽑아놓은 것 같은 형상이 있어도 그것은 그저 나에게서 나온 하나의 형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거울 속의 그 형상이 갑자기 나와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말을 건네거나 혹은 나와 똑같은 존재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타인과는 다른 인격을 지닌 고유한 존재로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오직 단 하나뿐이기에 그 존재 가치가 특별한 것이다. 책에 쓰인 문구- "시인 셸리는 호숫가에서 자신의 분신을 만난 다음 날 죽었다."고 한다. 분신, 나의 분신...

 이 책은 가족의 의미와 개별적인 인간의 존재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가족이라는 형태를 구성하고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서 그들의 유전인자를 지닌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여 또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한다. 그리고 부모는 자신의 유전자를 지녔으며 자신과 닮은 외모와 유사한 습관이나 버릇을 드러내는 자식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는다. 흔히 자식을 자신의 분신이라고들 표현하는데 이는 자식이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또 하나의 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분명 마리코는 열 달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자라고, 엄마에게 몇 시간의 산고를 겪게 하며 태어나,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랄 데 없는 평범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와 전혀 닮지 않은 외모의 차이는 모녀간에 건널 수 없는 벽을 만들고, 비극적인 죽음을 양산한다. 
 
 한편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후타바는 자신의 방송출연이 어머니의 죽음을 야기했으리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의도적으로 살해되었으리라 여겨지는 어머니의 비밀에 대해 조사해 보기로 한다. 너무도 닮은 외모를 지닌 마리코와 후타바. 이 책의 제목으로 등장한 '레몬'은 같은 방법으로 레몬을 먹는 둘의 유사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물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는 아무리 똑같이 닮았다 하더라고 미세한, 또는 개별적으로 구분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책에서 가정하는 분신의 경우에는 그러한 차이마저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복사판이다.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일란성 쌍둥이는 한 사람을 모델로 두고 똑같은 형태로 그린, 그러나 미세한 차이가 있는 그림이라면 분신은 한마디로 복사기에서 찍어내어 한 점의 차이도 없는 것이라고나 할까...   같은 외모와 같은 습관을 지닌 이 둘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기 다른 가정에서 자라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도 아니면서 외모 면에서 나와 닮은 사람을 보게 되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과연 나와 똑같은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런 존재와 조우한다면 어떤 느낌이, 어떤 생각이 들지 상상해보느라-솔직히 소름 돋는 일이다.@@- 온갖 생각들이 난무하였다. 각기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라온 마리코와 후타바가 자신의 근원으로 접근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명의 시작과 한 개인의 특성이 갖는 의미,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만의 존재 가치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라벤더 꽃밭에서 이루어지는 결말은 그 색채만큼이나 몽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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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5-12-1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섬짓한 일일것같아요
 
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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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말은 하였어도 내가 일본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백야행>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또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읽어보는 것인데 그간 읽어왔던 서양 작가들의 추리소설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사건 자체가 빠르게 진행되는데다 경쾌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구들이 붙지 않은 짧은 문장들이 책을 읽는 속도에 가속을 붙여주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이 책을 다 읽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게임의 묘미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것! 제목에서부터 과연 이 게임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지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인 사쿠마 순스케는 흔히 하는 말로 한창 잘 나가는 남자이다. 결혼에 대한 부담은 애초에 가지지 않고 있으며 직장 내에서도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닛세이 자동차회사에 부회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자신의 기획안이 백지화되고, 더구나 프로젝트 팀의 리더 자리까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자 분노와 굴욕감에 휩싸인다. 가쓰라기와의 대결을 다짐하던 순스케의 감정이 분출된 것이 바로 '유괴게임'으로, 순스케는 자신을 유괴하여 돈을 받아달라는 한 여성의 말을 실제로 실행하기로 계획하면서 일생일대의 게임에 뛰어든다. 처음부터 이들 둘은 공조하기로 합의를 보고 일을 벌이게 되는데 주인공은 다른 유괴범들이 범했던 실수를 거울삼아 자신의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분석하고, 확인해가며 완벽한 유괴 게임을 진행한다. 이 게임이 한 단계 한 단계 진행될 때마다 보여주는 순스케의 치밀하기 그지없는 행동 하나 하나에 독자는 혀는 내두르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현대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는 편리함을 마음껏 제공한다. 순스케는 돈을 내라는 협박장은 팩스로 전송하고, 또한 이메일과 바로 확인이 가능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한다. 그 외에 위치추적장치(GPS)가 언급되고, 인터넷을 통해 교통상황을 체크하며, 스캐너로 스캔된 사진이 휴대전화로 전송되는 등 연락을 위해 신문을 이용하던 과거의 유괴범들의 행동방식과는 커다란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한편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도 침착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여 주는 가쓰라기 또한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유괴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가끔 TV를 통해 접하는, 유괴된 자식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애를 끓이는 부모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아버지. 과연 그 역시 이를 게임으로만 생각하는 것인지, 딸의 안전에 관심이 없는 냉혹한 부모인 것인지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옮긴이는 주인공인 사쿠마 순스케라는 인물의 사회성을 되새겨보라고 제안하고 있다. 순스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혼자 살면서 아침식사도 챙겨 먹고, 집안도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게 유지하며, 스포츠센터에 다니며 운동도 규칙적으로 한다. 시간 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그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시간낭비라 여겨 피우지 않으며 일에 있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의 단계마다 줄곧 '가면'을 쓰고 살아 온 사람이다. 상황에 걸맞은 가면을 쓰고 상대가 말을 걸 때면 그 가면 아래에서 혀를 날름 거리며 다음에는 어떤 가면을 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 온 남자.... 이 작품이 일본에서 연재 당시의 제목이 "청춘의 데스마스크"였다고 하는데, 작품상에서 순스케가 자신이 개발한 '청춘의 가면'이란 게임을 가쓰라기 부회장에서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원하는 얼굴을 얻은 못한 플레이어를 위한 비장의 카드인 '가면'은 과연 우리가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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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11-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보면서 가끔 그런데 로렌스 샌더스의 제1의 대죄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약간...

아영엄마 2005-11-2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혹 스포일러 될만한 부분 없나요? @@(윽.. 그리고 저는 제1의 대죄, 아직 못 읽어봤어요~~. 무늬만 추리소설팬.^^;;)

2005-11-23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5-11-2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없어요^^

mong 2005-11-2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책이라 추천~ ^^

아영엄마 2005-11-23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있는님/헷, n자 하나 빼먹었군요..^^;;
물만두님/다행입니다. 휴~
mong님/추천 감사혀요~~

야클 2005-11-24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쓴 리뷰네요. 추천! ^^

모1 2005-11-24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데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요.

oldhand 2005-11-2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도감 있게 잘 읽히는 책이죠. 지난 여름 더운날 밤에 밤새 읽었었답니다.

2005-11-24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