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선 모중석 스릴러 클럽 1
제임스 시겔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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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들은 삶에 지칠 때, 일상이 단조로울 때, 날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과를 보내는 것이 지겨워질 때 일탈을 꿈꾼다. 아이들은 학교나 학원을 빠지고 마음껏 놀러 다니고 싶은 욕망을, 직장인들은 일에 대한 중압감을 떨쳐버리고 정시에 출근해야 할 직장을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산다. 또는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 또는 멋진 남자와 만나 다시 한 번 가슴 떨리는 사랑에 빠져들고 싶은 욕망이 가슴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을 수도 있다. 대게의 사람들은 그저 몽상이나 상상에서 그치는 일들이지만 만일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작품은 두 가지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아티카(ATTICA)란 소제목 하의 화자인 '나'는 주 2일은 아티카 주 교도소의 죄수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선생으로 죄수들이 제출한 과제를 통해 이야기 속으로의 초대를 받는다. DERAILED num.(1~52, END)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 찰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아이를 둔 평범한 남자로 매일 같은 시간에 열차를 타고 근무지인 광고회사에 출근한다. 그러나 어느 날 딸을 챙기느라 늘 타던 8시 43분 열차를 놓치고 9시 5분 열차를 타면서 그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열차 안에서 곤경에 빠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뜻밖에도 매력적인 한 여성.  조심스레 서로에게 다가가는 두 사람은 사랑해서 안 될 사람들이기에 더 간절하고, 애절하고, 조심스러운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탈이며, 정해진 삶의 레일 위를 벗어나는 행위, 곧 탈선이다. 기차가 달리던 레일 위를 벗어나면, 즉 탈선을 하면 커다란 사고가 발생한다. 탈선의 대가는 참혹하리만치 무자비하고 끔찍하여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까지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마는 결과를 낳는다. 더구나 약점이 잡힌 대상을 손아귀에 움켜쥐고 마지막 한 방울의 단물까지도 짜내려는 지독한 상대를 만난 탓에 한 번의 악몽으로 끝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찰스는 평범하다고는 하나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지쳐있는 사람이다. 아이가 아프면 혹 불시에 열이 오르지나 않을까 싶어 부모(대게는 엄마지만)는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딸이 저혈당성 쇼크가 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소아당뇨 진단을 받은 후부터 늘 긴장한 상태로 지냈을 이 부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을지 짐작을 할 수 있다. 아픈 아이에, 결혼생활도, 직장 일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찰스에게 탈선은 숨겨야 할 비밀이다. 사람들은 드러내 놓고 밝힐 수 없는 일이 생기면 대게 입을 꾹 다물거나 그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거짓말은 꼬리를 늘어뜨리는 녀석이라 그에 맞는 거짓말을 자꾸 자꾸 갖다 붙여야 한다. 자칫 그 꼬리를 놓치면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되고 치부가 드러나거나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첩보물이나 갱 영화만 스릴이 넘치는 것이 아니다. <탈선>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자칫 잘못 발을 들여 놓아 예기치 않은 일에 휘말려 들 수 있음을 그린 작품이다. 마치 롤러코스터 열차를 탄 것처럼 한없이 위로 치솟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급격한 경사의 내리막으로 접어들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레일이 뒤틀려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레일 위에 있다면 일상으로 돌아갈 여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레일 위를 벗어나는 순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발 디딜 곳 없는 나락뿐인 것이다.

  아직 차가 없는 남편은 주인공인 찰스처럼 매일 비슷한 시간에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가끔 지갑을 빼놓은 걸 잊어버리고 갔다가 역 근처로 나와 달라고 전화를 해올 때도 있다. 늘 같은 시간대에 출근을 하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뛰어서 전철역으로 향하는 남편. 혹 지금의 삶이 지치도록 지겨울 우리 남편도 일탈을 꿈꾸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손에 잡은 날에 일사천리로 읽어버린 이 작품을 곧 남편에게 읽으라고 넘길 터인데 과연 남편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혹 내가 한 눈 팔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이 책을 준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을까? ^^

 2005년에 영화로도 제작된 작품으로, 책의 앞뒤표지의 "충격적인 결말"이라는 문구가 뒷장을 넘겨보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끼게 하지만 그래서야 이 작품이 안겨주는 스릴을 충분히 만끽할 수 없지 않은가. 탈선을 앞 둔 열차에 함께 탈 준비를 하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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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6-2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레프리컨 2006-06-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탈선을 꿈꿔용!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에...^^ 근데, 무시무시한 탈선은 싫어용! ㅋㅋ

가시장미 2006-06-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오늘 제 심정이 딱 드러나있는 리뷰네요. 일탈을 꿈꾸고 있는 오늘 입니다. :)
영화 <나비효과>가 생각나네요. 순간의 선택이 탈선이 될 수도 일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선택'이 제일 어려운 행위라는 생각을 하게되요.

하지만 순전히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만은 아니겠죠? 운명의 힘이라든가. 예기치 못했던 타인의 '선택'에 영향을 받는다거나. 수많은 요인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게 다가오는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씩씩하니 2006-06-23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남편분이야,그럴리가요...ㅋㅋㅋ
누구나 탈선을 꿈꾸지만 꿈은 늘 깨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물거품인걸요...
하지만 책과 함께 떠나는 탈선이야 아무도 눈치 챌 수 없으니깐,,,저도 한번 떠나볼래요,,,ㅋㅋ


몽당연필 2006-06-24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들 탈선을 꿈꾸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영향과 여파를 생각하니 차마....
 
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행복의 기준이 천차만별이겠지만 궁극적으로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추구하는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인생의 출발점이 다른 탓에 누군가는 처음부터 평탄하고 풍족한 삶을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행에 좌절하고 절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이 책의 영문 제목에 사용된, '풍요로운'과 '술 취한 사람'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lush'라는 단어는 이러한 상반된 두 개의 삶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장마다 등장인물의 특징(?)을 형상화 한 작은 그림으로 이번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일지 알아보게 해둔 점도 특색 있다.

  <러시 라이프>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황을 분리하여 각각의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각각 다른 화면으로 분할하여 보여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책의 표지에 사용된 에셔의 그림은 이 작품의 이야기 구성 방식의 특징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올라가기와 내려가기(Ascending and Descending)에 나오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게 만들어진 계단처럼 각각의 등장인물들에게 생기는 일들이 결국 모두 연결되어 있으나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 어렵게 공간과 시점을 교묘하게 휘둘러 놓고 있다. 책을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인물들 간의 연결점을 발견하고 앞으로 돌아가 다시 확인하면서 이 모든 인과관계를 작품 전반에 걸쳐 잘 배합해 놓은 작자의 솜씨에 찬탄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센다이 역 근처를 지나며 '어떤 특별한 날에'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린 전망대와 '에셔 전' 포스터, '당신이 좋아하는 일본어를 가르쳐 주세요'라고 쓴 스케치북을 들고 서 있는 백인 아가씨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늙은 떠돌이 개를 본다. 센다이 역을 지나쳐 간 깔끔한(?) 프로의식을 가진 좀도둑 구로사와, 교단의 교주를 살아있는 신이라 여기는 청년 가와라자키, 이혼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아오야마)의 아내를 죽이려는 교코, 구조조정의 여파로 20여년을 다닌 회사에서 해고당한 뒤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업자 도요타 등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바로 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떠돌이 개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각하고 맺은 인간관계 외에도 생각지도 못한 시간과 공간과 사람을 통해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다. 가끔 다른 경로로 알게 된 각각의 사람들이 서로 인간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될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순간에 느끼는 신기함과 놀라움을 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또한 이사카 고타로는 이 작품을 통해 정의나 악 등이 관점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의 삶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내 인생은 과연 "It's All Right!"일까?  책을 덮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나란 존재, 내 인생, 내 삶의 방식, 내 글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생각이 미친다. 

책표지의 그림을 보며 잠시 생각해 봤다. 과연 나는 계단 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사람일까,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계단에 앉아 있는 사람일까?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밤을 새워 이 책을 읽었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맞물리며 돌아가는 인생을 작품 속에 너무도 절묘하게 구현해 놓은 작가의 글 솜씨에 매료되어버렸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런 묘미와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특별한 재미를 추구하는 분들에 추천할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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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5-3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하죠^^
 
렘브란트 블루 2
외르크 카스트너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이나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형식의 팩션 소설로,17세기의 유명한 화가인 렘브란트를 등장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설정하고 빛과 어둠이 공존했던 당시의 암스테르담을 시대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빛과 어둠의 마술사라 불렸던 렘브란트의 삶을 엿볼 수 있는데, 명성을 날리던 시기를 지나 파산으로 인한 경제적인 곤란과 너무나도 사랑하던 아들의 죽음 등의 불행을 겪는 말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화가로서의 수입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 또 다른 직업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무명 화가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으며, 화가가 추구해야 할 바를 논하는 장면에서 예술가의 고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라스프하위스 감옥에 투옥된 염색 장인의 자살에 연이은 간수 오셀의 애인 살인 사건...  오셀과 함께 간수로 일하고 있던 코르넬리스는 사건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어째 초장부터 불안한 출발을 보인다. 어설픈 탐정 노릇을 하려다 툭하면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사건을 만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거기다 아름다운 여인들 앞에서 흔들리는 남심(男心)이라니! 그래서 독자는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코르넬리스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

  앞서 언급한 두 사건의 공통분모로 떠오는 것이 렘브란트 스타일로 그려진 초상화 그림으로, 코르넬리스는 사건 현장에서 사라져 버린 이 그림에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렘브란트 스타일이긴 하나 그가 사용한 적이 없는 파란색이 사용된 그림. 과연 블루는 진정 죽음을 부르는 빛일까? 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제목에도 등장하는 파란색은 10세기 경에 성모 마리아의 옷 색으로 사용되기 전까지는  저주, 죄악, 죽음, 악마의 사악함 등을 상징하는 색이었다고 한다. 이 책의 기본적인 설정이 허무맹랑하게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현대에 들어서도 색의 상징적인 의미-이는 나라, 문화, 종교, 경제 등의 요소에 따라 다르거나 바뀌기도 하지만-를 중시하고 색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팩션 소설인 만큼 저자도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를 조사하였을 터,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실적인 부분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이야기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렘브란트와 함께 실존인물임에도 조금 엉뚱하게 여겨졌던 레슬링 코치 로베르트 코르스, 세계를 무대로 뻗어나가던 동인도 회사, 수중 감옥 등등... 이 작품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렘브란트의 생애나 그의 그림 등의 관련 정보들을 찾아본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띠지에 적힌, 작품 출간이 렘브란트 탄생 400주년과 맞물린 점을 강조하기 위한  '기념 대작'이라는 광고 문구는 조금 과장된 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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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5-05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때에는 블루는 악마의 색이라고 엄청 배척당했데요..^^
 
팔란티어 1 -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
김민영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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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전 6권>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던 작품으로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3권으로 출간되었다. 덕분에 책 한 권 한 권의 두께가 상당한데, 일단 내용 속으로 빠져들면 "팔란티어"란 게임에 매료되어 접속할 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주인공 원철처럼 독자는 이 책 <팔란티어>를 끝까지 읽고 싶어서 다른 일들을 미루어 두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추리(현실)와 판타지(게임 배경)와 결합된 작품으로 홈즈, 미스 마플에서부터 필립 말로우 등의 개성있는 탐정들을 만날 수 있는 추리소설과 <반지의 제왕(예문판으로 나온 '반지 전쟁'을 읽음)>에서부터 <드래곤 라자>, <묵향> 등의 판타지 소설을 두루 좋아하는 나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3권을 읽고서야 이 책의 구판의 제목인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는 가상현실의 바이블인 <실리콘 미라지>의 저자인 '스티븐 옥스타칼니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우선 과거의 일로 가슴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원철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벽을 쌓고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인물이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팀에 속한 유능한 프로그래머인 그는 느닷없이 배달된 가상현실 게임인 <팔란티어>에 빠져든다. 원철의 친구이자 형사인 장욱은 백주 대낮에 한 청년이 국회의원의 목을 베어버린 의문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면서 <팔란티어>라는 게임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또 한 인물은 게임 <팔란티어>안에서 원철이 생성한 '보로미어'라는 전사계급 캐릭터로 엘프, 놈, 드워프 같은 다양한 종족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에서 위저드, 레인저 등의 동료와 함께 원정을 떠나 괴물들을 없애면서 경험을 쌓아간다.

- 저자는 톨킨이 창조한 판타지 세계를 게임의 배경이나 인물 설정의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반지의 제왕>의 등장인물의 이름인 보로미르를 변형한 '보로미어'나 모리아나 로한 같은 지명, 이 책의 제목이자 게임의 이름이기도 한 "팔란티어" 또한 그 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2011년)를 시대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저자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는 방식의 업무 환경을 지향하고 있는 '노바'라는 기업과 그에 속한 '블레이드 러너' 팀을 통해 이윤 추구라는 절대 목적만 남은 비인간적인 집단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개인주의를 꼬집고 있다.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작품 제목처럼 우리는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전통', 가치관', '도덕', '법' 등을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할 것들을 배우지만 정작 어른이 되어 사회의 일원이 되면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입장부터 생각하는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저자는 원철을 통해 돈 몇 푼에 거리낌 없이 자연을 파괴해 나가는 인간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장욱 형사가 'EBWM'니 'DLD' 같은 생소한 첨단 장비가 사용되는 <팔란티어>라는 게임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조사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는 정신분석학의 기본적인 이론(이드/자아/초자아, 의식, 전의식, 무의식 등)을 접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현실의 원철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주는 게임상의 캐릭터 보로미어가 원철의 무의식 세계에서 비롯된 또 다른 자신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내 무의식의 세계에는 어떤 모습의 내가 존재하는지 궁금해진다.

 컴퓨터와 더불어 PC통신, 그리고 이어서 인터넷의 보급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사이버 공간이나 게임이 개인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컴퓨터 게임을 즐기고 있다. 부부가 공동의 취미를 가지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남편의 회유(?) 덕분에 게임이 주는 매력을 경험해 본 터라 팔란티어에 빠져드는 원철의 행동에게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게임에 몰입하게 되면 해야 할 일을 등한시 하게 되는 등의 폐해가 생겨나는 것이 사실이므로 중독 되지 않도록 스스로 자제할 수 있을 만큼만 즐겨야 할 것이다. 장르소설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평가가 다를 터인데, 몇몇 부분에서 어색한 점이 느껴지긴 했으나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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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의과대학을 나왔다는 작가의 이력을 읽으면서 비슷한 이력을 지닌 작가분을 떠올렸음..
침내 어난 리의 타~~  우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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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04-19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재미있는 리뷰입니다.
그런데 전 게임치라서..읽어도 이해가 안될지도 모르겠네요^^

울보 2006-04-19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66009

아영엄마 2006-04-19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아녀요. 게임 내용이래봐야 마법 또는 칼을 써서 괴물을 죽였다 뭐 그런 수준인데요 뭐.. 이 책은 소설이지 게임설명서가 아니어요~ ^^
울보님/ 아직 안 주무시네요. ^^

반딧불,, 2006-04-2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366697

앗, 66666이 언제 지나갔답니까?


아영엄마 2006-04-2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그러게요? 후다닥~ 가버렸네요. ^^;
 
아이거 빙벽 밀리언셀러 클럽 35
트레바니언 지음, 이수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첩보물은 자주 접해보지 않은 분야로 영화로도 제작-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에 의해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보지는 못했음-되었다는 이 작품에 어떤 매력이 숨어있는지 궁금해 하며 읽어보았다. 첩보물하면 대표적으로 007 시리즈가 떠오르는데, <아이거 빙벽>의 주인공 조나단 헴록은 제임스 본드 못지 않은 임무 수행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여성들을 단박에 매료시키는 성적인 매력을 지녔으며 그림을 식별하는 천부적인 능력도 지녔다. 그러나 인간적인 면을 살펴보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성격에 여성을 단지 욕망의 배출구 정도로 여기는 상당히 냉혹하면서도 냉정한 면모를 지닌 남성이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초반에는 이 작품에 큰 매력을 못 느꼈는데-작품해설에 이 작품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뉜다는 점에 공감이 감- 먼저 책을 읽는 남편은 이 작품이 스릴도 넘치고 재미있었다면서 자기는 이런 분야의 책이 좋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절륜한(?)한 정력을 지닌 주인공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점을 논외로 하고라도 작품 앞부분에 조나단이 'CII'의 우두머리가 지시하는 사건을 맡네, 안 맡네 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조금 장황하게 나오는지라 재미가 떨어졌는데, 비자발적이긴 하나 주인공이 암살 임무를 맡기로 한 중후반부부터는 내용에 생동감과 긴박감이 느껴져 읽는 속도에 탄력이 붙어 한나절 만에 금방 읽어버렸다. -작품에 'CII'라는 첩보조직이 등장하길래 'CIA'말고 또 다른 조직인가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CIA를 빗대어 지은 가상의 이름이라고 한다. ^^; 첩보조직의 우두머리 격인 미스터 드래곤의 병약함도 그렇거니와 요원이나 포프의 무능함 등에 저자가 미국의 첩보활동과 CIA를 우스운 꼴로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히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특히 주인공이 아이거 북벽 등반에 참가하여 임무를 수행한다는 설정이라 후반부로 가면 산악 등반과 관련된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아이거 북벽은 실제로 등반을 위해 도전했다가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대단히 위험한 산악지역-참고로 아이거 북벽은 세계적인 클라이머 라인홀트 메스너가 세계 3대 어려운 벽의 하나로 꼽을만큼 오르기 힘든 곳이라고 함-으로 우리나라 산악인 중에도 목숨을 잃은 분이 있다고 한다. 등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조나단도 아이거 북벽 등반에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겨우 살아 돌아온 것으로 나오는데 임무 수행을 위해 다시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로 팀을 구성되어 마침내 아이거 빙벽에 오르게 된 네 사람... 조나단에게는 등반대 대원 중 정보부 요인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어 암살하는 임무까지 부여되었으나 첩보조직원의 무능함에 오히려 그 자신이 표적이 되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다. 그런데 험난한 등반 과정에서의 사고, 뒤이어 등반대를 덮친 예기치 못한 기상 변화 때문에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이 급박하게 닥치는지라 조나단이 표적에게 당하는 것과 빙벽에서 되돌아가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큰 위험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였다. 죽음의 바람이 몰아치는 아이거 빙벽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대원들. 과연 이들 중 몇 명이 살아 돌아 올 것인가! - 사족을 달자면 산악 등반 장비들의 용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빙벽을 타는 등장인물들의 동선이나 움직임 등을 제대로 읽어내거나 상상해보지 못한 점이 아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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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04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영화에서 마지막 로프에 매달려서 진실을 알았을 때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허무하고 체념한 듯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sooninara 2006-04-04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ㅋㅋ 너무 학구적이시라서..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이리저리 비틀기 한거라 생각하니 괜찮더군요.
냉전시대나 스파이에 대한 환상을 비틀기..
마지막에 반전..죽은 사람만 억울하다인지..ㅠ.ㅠ

아영엄마 2006-04-0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음.. 역시 새벽별님은 학구파입니다. 저는 어려운 용어는 그냥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는 정도거든요...^^;;
메피님/저는 영화를 못 봤어요~~ (클린트의 눈빛을 언제 함 봐야될텐데..)
수니나라님/아, 님도 이사가기 전에 받아서 보신다고 하셨죠. 암튼 초반을 빼면 그럭저럭 볼만한 내용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