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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종종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말은 하였어도 내가 일본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백야행>이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또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읽어보는 것인데 그간 읽어왔던 서양 작가들의 추리소설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사건 자체가 빠르게 진행되는데다 경쾌한 느낌을 주는, 수식어구들이 붙지 않은 짧은 문장들이 책을 읽는 속도에 가속을 붙여주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이 책을 다 읽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게임의 묘미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것! 제목에서부터 과연 이 게임의 승리자는 누가 될 것인지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인 사쿠마 순스케는 흔히 하는 말로 한창 잘 나가는 남자이다. 결혼에 대한 부담은 애초에 가지지 않고 있으며 직장 내에서도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낸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 그가 닛세이 자동차회사에 부회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자신의 기획안이 백지화되고, 더구나 프로젝트 팀의 리더 자리까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자 분노와 굴욕감에 휩싸인다. 가쓰라기와의 대결을 다짐하던 순스케의 감정이 분출된 것이 바로 '유괴게임'으로, 순스케는 자신을 유괴하여 돈을 받아달라는 한 여성의 말을 실제로 실행하기로 계획하면서 일생일대의 게임에 뛰어든다. 처음부터 이들 둘은 공조하기로 합의를 보고 일을 벌이게 되는데 주인공은 다른 유괴범들이 범했던 실수를 거울삼아 자신의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분석하고, 확인해가며 완벽한 유괴 게임을 진행한다. 이 게임이 한 단계 한 단계 진행될 때마다 보여주는 순스케의 치밀하기 그지없는 행동 하나 하나에 독자는 혀는 내두르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현대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주는 편리함을 마음껏 제공한다. 순스케는 돈을 내라는 협박장은 팩스로 전송하고, 또한 이메일과 바로 확인이 가능한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상대방의 의사를 타진한다. 그 외에 위치추적장치(GPS)가 언급되고, 인터넷을 통해 교통상황을 체크하며, 스캐너로 스캔된 사진이 휴대전화로 전송되는 등 연락을 위해 신문을 이용하던 과거의 유괴범들의 행동방식과는 커다란 차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한편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도 침착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여 주는 가쓰라기 또한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유괴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가끔 TV를 통해 접하는, 유괴된 자식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애를 끓이는 부모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아버지. 과연 그 역시 이를 게임으로만 생각하는 것인지, 딸의 안전에 관심이 없는 냉혹한 부모인 것인지 독자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옮긴이는 주인공인 사쿠마 순스케라는 인물의 사회성을 되새겨보라고 제안하고 있다. 순스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혼자 살면서 아침식사도 챙겨 먹고, 집안도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게 유지하며, 스포츠센터에 다니며 운동도 규칙적으로 한다. 시간 관리에도 신경을 쓰는 그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시간낭비라 여겨 피우지 않으며 일에 있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인생의 단계마다 줄곧 '가면'을 쓰고 살아 온 사람이다. 상황에 걸맞은 가면을 쓰고 상대가 말을 걸 때면 그 가면 아래에서 혀를 날름 거리며 다음에는 어떤 가면을 쓸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아 온 남자.... 이 작품이 일본에서 연재 당시의 제목이 "청춘의 데스마스크"였다고 하는데, 작품상에서 순스케가 자신이 개발한 '청춘의 가면'이란 게임을 가쓰라기 부회장에서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원하는 얼굴을 얻은 못한 플레이어를 위한 비장의 카드인 '가면'은 과연 우리가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가면을 쓰고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