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버스터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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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6년은 여느 때보다 일본 문학 작품이 많이 출간된 해였는데 나 역시 작년에 몇몇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유>, <모방범> 등으로 미스터리 문학(사회파 추리소설) 쪽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미야베 미유키는 미스터리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한다. 일전에 읽기 시작한 <브레이브 스토리> 역시 미스터리 쪽인 아닌 판타지 문학이며, 두 개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 <드림 버스터>는 SF 계열의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SF 문학 쪽은 호감을 가지는 정도이지만 '미미 여사'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저자의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읽어 보기를 청하게 된다.

  처음에 '드림 버스터'라는 제목이 생소하여 무슨 뜻인지 궁금했었는데 이는 주인공의 직업을 일컫는 용어로, '고스트버스터즈 (Ghostbusters, 1984) '라는 영화를 떠올려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이 작품은 두 개의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도 두 부분으로 진행되는데, 주인공인 셴과 마에스트로가 거주하는 ‘테-라’라는 행성과 이들이 활동하는 지역인 지구의 일본이 주 무대이다. 사람의 꿈을 통해 그 사람을 지배해 버리는 존재를 잡아 들이는 일을 하는 드림 버스터란 직업이 생겨난 것은 테-라에서 무리한 실험으로 사고가 일어난 후부터이다. 그 사고로 다른 공간인 지구와 연결되는 구멍이 생겨나고, 실험대상이 되었던 사형수들의 '의식'이 지구로 도망쳐 오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즐거운 글을 쓰고 싶다'는 저자의 마음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작품 내용이 무겁지도 않지만 이야기 속에서 다루는 소재들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흉악범들의 '의식'에 의해 꿈을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매사에 자신감이 부족한 여성이나 학대 받는 아이 등 현실이나 내면에 큰 아픔을 지녔거나 갈등, 혼란을 겪는 이들이다. 저자는 작품 속에 사회 문제를 반영하는 작가답게 이들의 내면 묘사에도 충실하다. 누군가의 꿈 속에 존재하는 의식을 잡기 위해 드림 버스터가 출동할 때마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지라 흥미를 가지고 읽어나가기 수월하며 재미가 있다.

 저자인 미.미. 여사가 게임도 탐닉한다고 하던데 작품 출시일에 맞춰 "대항해 시대"라는 온라인 게임에 이벤트 형식으로 드림 버스터 미션이 들어가기도 했었단다. 실험대상이 된 흉악범 중의 한 명이 셴의 어머니인 점 또한 앞으로의 전개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흥미로운 요소이다. 저자는 테-라의 척박한 환경이나 부족한 물자로 어려움을 겪는 생활, 무모한 실험 등을 통해 인구 과잉, 환경 오염, 자원 부족 등의 원인으로 먼 미래에 지구에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드림 버스터가 또 어떤 꿈 속으로 출동하게 될 지, 언제쯤 셴이 엄마의 '의식'과 조우하게 될지 흥미를 가지고 시리즈 다음 권이 출간되기를 기다리고 있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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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취향에 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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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 구원한 길 없는 절망감과 두려움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 일이 내 맘처럼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복도, 운도 지지리도 없다며 애꿎은 삶을 탓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을 접하고 거대한 산 앞에 선 것 마냥 크게 좌절감을 겪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초능력이라도 있어서 단박에 어떤 일을 해결하거나, 상대방이 내 말을 듣게 만들어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복권 번호를 알아 맞출 수 있는 능력이나 운이 있다면 금상첨화! <마왕>은 이사카 코다로가 "나 자신이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쓴 작품으로, '파시즘'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초능력을 소재로 차용하여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를 발휘하고 있다.

 생각해. 생각해. 언제나 심각한 얼굴을 하고, 동생의 표현의 빌자면 "이 세상을 복잡하고 까다롭게 생각하는 일만이 삶의 보람"인 형 안도는 늘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상상하고, 고찰한다. 어느 날 상대에게 자신이 의도한 말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 안도는 자신의 능력을 이리저리 시험해 보고, 30보 거리 내에서 통용되는 것임을 확인한다. 전철 안에서 대학 친구를 만나 주목 받고 있는 야당 대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무솔리니, 파시즘 등이 화두로 떠오른다. 일렬로 박혀 있는 수박의 씨를 보며 '파시즘'을 생각하고, 대중의 통일된 흐름이 가져 올 결과를 두려워하는 안도. 젊은 시절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이 바뀔 거란 믿음을 가졌던 안도는 선거유세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한다. 

 현대로 접어들어 TV, 비디오, 게임기 등과 같은 문명의 이기의 발달에 속도가 붙을수록 사람들의 사고 능력은 점점 저하되고 있는 것 같다. 멍하니 앉아 아무 생각 없이 TV나 비디오를 보고, 게임에 빠져들어 현실을 잊고 살기도 한다. 생각을 하지 않고 무리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누군가 짠~ 하고 나타나서 자신들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심리가 커지게 된다. 책에서 개혁을 부르짖는 정치가 이누카이는. "5년 안에 내가 이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내 목을 날려라!" 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젊은 사람들의 시선까지 사로잡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정치판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권력을 쥐어 줄 표를 얻기 위해 그럴싸한 문구나 웅변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자 애쓴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번엔 다를 거야 하는 바람으로 투표용지에 표를 찍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임 깨닫게 된다. 정치인들의 공약(空約)과 이익추구, 몸 사림과 변절에 실망하고 돌아선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두 번째 이야기인 <호흡- 동생 준야의 이야기>는 형 이야기 편에서 동거 중인 동생의 여자 친구로 나오던 시오리가 화자로 등장한다. 오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결혼해서 준야의 아내가 된 시오리는 늘 남편과의 가위바위보 내기에서 지고 만다. 준야와 시오리는 경마장에서 준야의 운을 시험해 보고, 10/1의 확률에서는 늘 운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준야는 독재자와 함께 처형되어 거꾸로 매달린 여인의 뒤집힌 치마를 바로 잡아 준 사람처럼 되고자 한다. 커다란 홍수의 흐름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언제까지고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사람...

 최근에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다룬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를 읽은 터라 비슷한 소재를 등장시킨 이 작품에서 이사카 코다로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 놓을 것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파시즘과 민족주의를 죽음을 부르는 '마왕'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 대중이 선동과 분위기에 휩쓸려 한 방향만 쳐다보게 될 때 마왕은 소리 없이 뒤에서 대중을 덮치고, 우롱하여 죽음으로 내몰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왕의 존재를 일깨워 주는 아이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접하면서 <러시 라이프>, <사신 치바>, <중력 삐에로>, <마왕>까지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연달아 읽었다. 작가는 깜찍하게도 이번 작품에 <사신 치바>에 등장하는 치바를 슬쩍~ 동원시키고 있다. 조사할 기간이 별로 나질 않는다는 그의 대사는 <사신 치바>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금방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큰 주재를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결말이 미완의 느낌으로 남는 것이 조금 아쉽게 여겨진다.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옮긴이의 말을 보면 저자가 이번 작품에서는 '대화문의 글자 수 맞추기'를 시도하였다고 하는데 언어간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로 그 묘미를 느낄 수 없는 것 또한 아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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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오빠 2007-01-09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정말많다.

아영엄마 2007-01-1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길게 쓴다고 잘 쓰는 건 아닙니다. ^^;;
 
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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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

 살아오면서 나는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뒤에 남겨진 사람들은 얼마나 나를 그리워할까, 나의 빈자리를 얼마나 크게 느낄까..., 그런 생각들을 해 보면 삶보다는 죽음에 큰 의미가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친척들이나 부모님의 장례을 치르면서 죽음도 삶처럼 우리 인생의 한 부분일 뿐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죽음을 앞둔 노인의 말처럼 괴로운 일은 주위 사람이 죽는 것이지 자신의 죽음은 두려운 일이긴 하나 슬퍼할 겨를이 없는 일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꿈에 저승사자가 보이기도 한다는데 일본작가 이사카 코타로는 사람의 눈에도 보이고 말도 나누는, 조금 특이한 형태의 사신을 창조했다.

 치바는 사고나 사건으로 죽게 될 사람을 조사하여 ''가'', ''보류''를 정하여 보고하는 임무를 띤, 책임의식을 갖고 착실하게 일하는 사신(死神)이다. 사망 일주일 전에 파견되어 조사를 하는데 그는 인간의 죽음에 의미나 가치를 두지 않으며 별 관심도 없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이나 직위를 가졌든, 그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두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든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든지, 불치의 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등의 애절한 상황은 치바가 죽음의 순간을 결정하는데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치바는 정확하다는 말을 듣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6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십 대의 아가씨도, 야쿠자도, 살인자도, 칠십 넘은 노인도 사신의 조사 대상이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사람이 젊다거나 사랑에 빠졌다고 해서 치바가 온정을 베풀지는 미지수인지라 과연 그가 조사 대상에게 어떤 패-''가''냐 ''보류''냐-를 던질지 궁금해 하며 한 편, 한 편을 읽어나가게 된다. 사신 치바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 초연한 모습-사신으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지만-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탐정 역할을 자처하기도 하는 등 무뚝뚝하면서 초연한 듯한 그 모습은 메마른 듯하면서도 다양한 색채로 가슴을 적셔주는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천사는 도서관으로 모인다 - 혹 정말 그런 영화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검색을 해봤는데 <베를린 천사의 시>와 이를 리메이크한 작품인 <시티 오브 엔젤>이라는 영화에 도서관이 천사들이 모여 사는 장소로 나온다고 한다. ^^ 반면 사신은 음악을 좋아한다. 장르는 상관이 없다. 인간의 죽음에는 흥미가 없지만 음악이 없어지는 것-인간이 다 죽어서-은 괴로운 일이며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래서 조사를 하러 인간세상으로 오게 되면 음반 매장으로 간다. 치바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정체''이고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음악''으로, 자신의 임무에 대한 성실함이 없었다면 음반 매장이나 커피숍에 가서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문하는 방법도 모르면서 피자 주문 전화를 해보고 싶다며 방법을 물어 봐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는 치바가 어느 순간 던지는 한 마디는 나름대로 진지한 허무 개그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치바가 다른 사신과 다른 점을 꼽자면 그가 일을 할 때면 늘 비가 내리는지라 맑은 하늘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늘 인간의 죽음을 접하다 보니 사람이 하는 일은 거의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던 치바가 처음으로 푸른 하늘을 보게 된 날, 이해불가로 여겨지던 인간의 한 면을 알게 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인간에 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인간은 자신에 대해 모르는 건지, 야쿠자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연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신 치바를 통해 인간의 특성을 짚어내며 우리의 삶을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게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죽음이 삶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죽을 날을 알지 못하며 ''오래 산다는 보장은 없어''도 삶을 살아간다. 인간은 죽음이 어떤 순간에, 어떤 형태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설령 치바와 같은 사신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신 치바>는 등장인물들이 치바와의 만남을 통해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을 찾아가는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죽음을 염려하기 보다는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하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사카 코타로는 <러시 라이프>에서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사건 속으로 연결되는 묘미를 선보였었다. 독자는 <사신 치바>를 통해 그러한 묘미-러시 라이프보다는 임펙트가 약한 듯 하지만-를 또 한 번 느끼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또 어떤 독특한 캐릭터와 사건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을까? 주목할만한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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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15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참 독특했어요. 표지도 이뻤구요. 치바가 매력적이더라구요^^

짱꿀라 2006-12-1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소중한 부분을 사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보여집니다. 잘 읽고 갑니다.

아영엄마 2006-12-1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인간의 감정에는 무심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모습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물론 실제로 대면해서 사정 안 봐주면 미워할 듯...^^;;)
산타님/이 세상에는 소중한 것도, 사랑해야 할 것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 ^^

체랑 2006-12-28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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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렬한 붉은 색조와 기묘한 비례의 신체를 가진 한 인물이 한 쪽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야시>. '일본호러소설 대상 수상작'으로 섬뜩하게 얼어붙는 호러의 느낌보다는 현실과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 주는 아련한 공포와 환상적인 느낌이 담백하게 결합되어 있는 작품이다. 

  "바람의 도시"와 "야시"는 연계된 작품이 아니지만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둘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자는 선택 받은 대상에게만 허용되는 '고도'가, 후자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야시'가 존재한다. 두 곳 다 현실의 공간 속에 존재하지만 선택적으로 열리고 닫히는 공간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관조하는 다른 세상, 다른 내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과연 살갗에 소름이 돋게하는 은근한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이 '호러'라는 장르의 상을 수상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길을 잃고 낯선 곳을 헤매게 되었을 때 찾아오는 불안감과 공포의 감정을 두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친구들과 정신 없이 뛰어 놀다 처음 보는 골목 풍경을 접하고 당황했거나 낯선 곳에서 부모의 손을 놓치고 영원히 집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야시>는 우리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이런 경험적인 공포의 감정을 일깨우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는 작품이다.

 "바람의 도시"는 한 소년이 어린 시절 길을 잃었을 때 우연하게 가본 길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한나절의 모험 삼아 친구와 함께 찾아 나서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고도'라 불리는 그 이상한 길은 마치 4차원의 세계처럼 특정한 장소에만 현실세계를 향한 문이 열려 있는, 인간에게 허용되지 않은 공간이다. 주인공은 예기치 않게 죽음을 맞이한 친구를 살리기 위해 고도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난 렌과 여행길에 오른다. 

 나는 내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면 종종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떠올리곤 한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한 쪽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고, 살아가는 동안 종종 가보지 않은 다른 길을 생각하며 그 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을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말미를 장식하는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란 문구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야시"는 일단 발을 들이면 뭔가를 사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시장과 그 곳에서 길을 잃은 한 형제의 슬픈 운명에 관한 이야기다. 야시가 선다는 소식을 접한 유지는 친구인 이즈미와 시장이 서는 곳을 찾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뭐든지 팔며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도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시장. 뭐든지 베는 검, 노화를 늦추는 약, 키 크는 약, 생물, 재능, 젊음, 지식까지도 파는 그 곳에서 형은 한가지 재능을 사기 위해 동생을 판다. 언제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곳도 아니며, 어떤 사람이든 단 세 번밖에 갈 수 없는 그 곳에서 형은 동생을, 동생은 자유를 찾으려 한다.

  만약 내가 야시에 들어가 무엇이든 사야 하고, 돈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내놓아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사고 어떤 것을 내놓게 될까? 작품을 읽다 보면 내 모든 것을 내놓고서라도 사고 싶은 가장 소중한 것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늘 다른 세상을 꿈꾸는 나에게 다른 공간을 엿보게 준 이 작품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이미지와 과장하거나 부풀리지 않은 간결함으로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아쉽다. 작품 자체는 충실하게 마무리되었으나 이런 류의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너무 짧아서 아쉬움이 가득 남는다. 그러나 작가의 발걸음이 이 두 작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갓 시작이지 않은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또 다른 발걸음을 기대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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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2-12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시시한 리뷰군요 호홋. 농담이구요 야시가 야시장인가봐요. 새벽에 이렇게 깨있는 분을 뵈니 반갑습니다앗. 참고로 전 가지않은 길에 대해선 거의 생각을 안해봐요.... 임상을 했으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놀랍게도 없다니깐요. 그게 생각없이 사는 사람의 특징이죠^^

똘이맘, 또또맘 2006-12-12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의 말씀대로 야시에서 돈대신 다른무엇을 내놓아야 한다면 무엇을 내놓아야 할까요???? 리뷰를 읽다보니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찼습니다.... 에구 머리아퍼... 생각을 많이 하게하는 리뷰네요 ㅠ.ㅠ

짱꿀라 2006-12-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내 삶과 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면 종종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떠올리곤 한다."라는 문장 중에 가지 않는 길이란 곳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정말로 가지 않은 길이 사람에게는 존재할까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가지 말아야 할 길도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속에는 꼭 한두가지는 있는 것 같은데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웃음가득한 날이 되시기를 바라며......

아영엄마 2006-12-1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님께선 자신에게 딱~ 맞는 길을 찾으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
똘이맘, 또또맘님/이런 시장이 있다면 하찮게 여긴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닫게 해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산타님/님의 댓글 또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시는군요. 늘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하 밀리언셀러 클럽 43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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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무서워 할 걸 뻔히 알면서도 "전설의 고향"을 보기 위해 TV앞에 모여 앉아 미리 준비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것도 모자라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까지 열심히 보았던 것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꿈에 볼까 두렵고 무섭지만 실눈을 뜨고서라도 살짝 엿보고 싶은 마음.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에게 공포를 즐기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공포(호러) 영화가 만들어지고 공포 소설이 출간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 머리끝이 쭈뼛쭈뼛 서고 무엇인가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찾아오는 공포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공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그 실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살아오면서 쌓여 온 고정관념과 상식들로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대할 때 심리적인 충격과 공포가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작가는 사람들의 뇌리에 박힌 인식으로는 납득하지 못할 것들로 독자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단편집인 <스켈레톤 크루>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커진 동물이나 곤충들, 기다란 촉수, 체액을 빨아먹는 괴물, 죽음을 몰고 다니는 인형이나 사람 등등을 만날 수 있다. 상권의 첫 번째 작품 <안개>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으로 죽음을 내포한 안개에 둘려 싸인 폐쇄된 공간에 갇힌 인간들이 드러내는 절망과 광기를 그린 작품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기에 일어날리 없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질 때 인간은 당황하고, 공포를 느끼고, 서서히 이성을 잃어간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은 이성보다 본능을 자극하게 되는데 어떤 이는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부부관계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를 미약하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를 앞에 두고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보다는 타인을 재물로 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려 하는 광기에 물든 사람들이 주는 공포가 더 끔찍하게 여겨진다. 저자의 작품 중 <토미노커>란 책에 주인공이 반핵주의자로 나오는데 그 작품을 읽으면서 스티븐 킹이 핵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안개>에서도 소문으로 들리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정부의 주도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로 인해 안개를 생겨난 것이라는 배경이 깔려 있다. 인간의 무모한 실험이나 계획이 인류를 위협하는 불행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음을 계속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단편으로 인생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기계 앞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버튼을 누르는 주인공의 심리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내가 만약 그런 기계를 가지고 있다면 과연 내 인생의 어떤 부분(또는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거나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고무 탄환의 발라드>는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작가여서 그런지 혹 스티븐 킹 자신이 타자기에 무엇인가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어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씌어진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 상상이거나 말거나 요정을 등장시킨 작품치고는 결말이 비극적이어서 역시 스티븐 킹은 동화작가가 아닌 공포소설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단편 중에 신화 속의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우선<악수하지 않는 남자>는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금으로 변하게 한 미다스 왕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악수를 하는 대상은-동물도 포함해서- 곧 죽음을 맞이한다고 여기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서바이버 타입>은 신에게 바쳐진 나무들을 벤 벌을 받아 채워지지 않는 굶주림으로 자기 자신마저 먹어치워 버린 신화 속의 인물 ''에리식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 갇힌 한 남자가 드러내는 살고자 하는 본능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생존 본능만큼이나 본능적인 욕구가 식욕으로, 인간도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먹어야 하는데 음식을 구할 수 없을 때 과연 무엇으로 극에 치달은 허기를 면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그런 상황에 쳐했다면 살기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다 소름이 돋고 만다.

 이번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 중 그다지 흡족하지 않는(<결혼 축하 연주>, <오웬을 위하여> 같이 조금은 생뚱맞은) 글도 있었고, 공포물에 속하지 않는 단편(<토드 부인의 지름길>, <리치>)도 있었다. 그렇지만 <안개>나 <원숭이>, <할머니>, <뗏목>처럼 서서히 목을 조여드는 공포가 한밤에 찾아드는 적막감과 어우러져 바깥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서늘한 바람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오르게 만드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작품의 편차가 있긴 해도 그 이름만으로도 관심이 가게 하는 작가, 스티븐 킹의 작품이니만치 그의 매니아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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