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신문에서는 북섹션보다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자영업 약탁자들]이라는 탐사기획기사이다. 기승전 치킨집(자영업)인 한국사회에서 이 기사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기사다. 물론 생각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함께 읽어볼 만한 책들은 어떤 책이 있을까 더 찾아봐야 겠다. 


 더 이상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1~2주마다 한번 배달된 종이신문을 몰아서 본다. 대충 북섹션과 토요섹션을 챙긴 후 대충 신문을 넘기다가 관심있는 기사만 쏙 빼놓곤 나머진 종이류 재활용품 행이다. 


 여전히 종이신문을 보는 건 이런 탐사보다나 기획기사 때문이다. 지면의 편집이 빠진 기사만 인터넷에서 찾아읽다 보면 간혹 맥락이 빠지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들어 5회 기획기사인데, 상대의견을 작게 배치했을 뿐인데, 웹에서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여간 이번에는 한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다. <자영업 약탁자들>이라는 기획기사다. 

기사는  ①창업컨설팅의 실체 ②창업컨설팅-프랜차이즈 공생관계 ③새도시 상가분양 ‘설계’하는 손 이라는 주제로 3일간 연재되었다. 아래 사진에도 있듯이 링크된 기사 말고도 관련기사는 몇 개가 더 있다. (각 기사 제목에 링크)


기사의 취지다. 

편집자주>한국은 사실상 세계 1위 자영업 국가다. 대략 한해 100만여명이 새로 창업하고, 80만여명이 폐업한다. 고용 규모로 보면 대기업 몇곳이 매년 생겼다 사라지는 셈이다. 이 거대한 창업 시장의 회로를 돌리는 ‘신흥 엔진’이 ‘창업컨설팅’이란 이름의 산업으로 존재한다. ‘권리금’이라는 연료를 태워 돌아가는 이 신흥 엔진은 자영업자들의 소박한 꿈과 정직한 땀마저 함께 갈아넣어 삼켜버린다. 자영업자에게 기생해 번성하는 컨설팅의 세계를 3차례에 걸쳐 깊이 들어가본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6444.html#csidx95f50b927ba32db993d2f7a53419a28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있을까. 파트타임에서 못 벋어나는 분들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내가 사장인 가게를 꿈꿀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 최대한 버틴다고 버티지만 언젠가는 나가야 되는게 현실이다. 그렇게 창업이라는 시장에 내몰린 이들을 노리는 창업컨설팅 업체가 있다. 


      


자영업의 문제는 개인들의 생존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상식적으로 뉴노멀, 성장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는 건 정해진 시장을 나눠먹는 구조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침해 문제가 발생했다. 이젠 자본과 마케팅, 인력을 갖춘 대기업과도 경쟁해야 한다.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지 알 수 없는 나도 언젠가는 이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그래도 일단 책은 계속 읽어야 할 것이고(요즘은 주기율표를 주제로 독서중이다.)


기사를 읽고 싶은 분들은 클릭

 ①창업컨설팅의 실체 

 ②창업컨설팅-프랜차이즈 공생관계 

 ③새도시 상가분양 ‘설계’하는 손


* 골목시장 분투기는 몇 해전에 읽어본 책이고, 골목의 전쟁은 슬쩍 훑어보았는데, 같이 읽은 책이 있는지 찾아 다시 읽어봐야 겠다. 자신에게 고용된 사람들도 어딘가에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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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오년 : 3.1혁명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19년 백년전 이때를 담아냈다.
˝ 3.1 만세운동은 유례가 없는 전 민족적인 혁명이었다. ...
혁명을 통해 조선 민중은 각성했다. 스스로의 힘을 자각한 민중들은 이후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의 대중운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자리잡아 간다. 혁명은 또한 조선인을 근대인으로 변모시켰다˝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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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없는 주말(사실 별 일 없지는 않다. 잠깐 집에서 보고서를..) 이라, 일주일 신문을 들춰보았다. 따로 북섹션을 들춰냈다. 


올해는 1919년 백주년이다. 3.1 운동이 있었고, 4월엔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올해는 1919년을 주제로 근대사를 다룬 책을 쭉 보려하고 있다. 3.1 관련 책은 이미 몇 권 사두었는데, 아무래도 인식의 지평의 넓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야 한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소개된 두 권의 책은 의미가 있다. 한 명은 잘 모르던 무정 김병희를 다룬 <무정 평전 - 비운의 혁명가 무정의 삶 그리고 생각> 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잘 알려진 <윤봉길 평전 - 강의한 사랑의 독립전사>이다. 


안문석 전북대 정치학과 교수가 남북한이 모두 외면한 비운의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 같은 하숙방을 쓰는 선배에게 “북한에서 해방 후 김일성보다 더 유명했던 무정 장군”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이 계기였다. 이후 ‘그토록 유명했던 무정이 왜 권력투쟁에서 졌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비롯된 다소 험난한 연구과정이 이어졌고, 정치학자로서 저자의 관심은 무정의 숙청을 전후로 한 북한현대정치사로 확장됐다.

무정의 본명은 김병희, 1904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다. ‘무정’은 중국 군관학교 시절 상관이 군인을 뜻하는 ‘무’(武) 자를 넣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1919년 15살의 나이에 3·1운동에 참가한 것이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첫 행보였다. .....

<무정 평전>은 무정의 일대기를 다루되 특히 무정이 1948년 3월 초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탈락한 일을 시작으로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 1951년 8월 사망에 이르는 과정에 중점을 뒀다. “숙청의 실제 이유는 무엇이며 무정의 숙청이 북한체제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가 추구했던 정치노선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무정의 해방 이전 무장독립운동에 치우쳐 있던 기존 연구의 공백을 메우고, 북한현대정치사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저자의 뜻이 담겨 있다. 저자는 무정이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경계한 점에 주목하면서 그를 “이념을 추구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민족을 일제를 비롯한 강대국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할까 고민한 민족주의자”로 규정하고, “이러한 무정의 고민은 목하 한반도의 고민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고 짚는다.


무정에 비하면 너무나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를 재조명한 <윤봉길 평전>은 ‘윤봉길 의사가 던진 것은 사실 도시락이 아니라 물통 폭탄이었다’는 뜻밖의 폭로를 통해 우리가 실제로 윤봉길 의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평전을 집필한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것이 ‘김구의 행동대원 윤봉길’이라는 왜곡된 프레임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상하이 폭탄 의거는 윤봉길 의사의 주체적인 독립전쟁 선포였다”고 강조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6052.html#csidxa27ee475ce2f8318765c6d6f6d8af31 


그 동안 이북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는 남과 북 모두에서 외면받은 이들이 있다. 그들에 대한 복원이 필요하다. 이때가 아니면 그분들은 계속 역사속에 남아 있질 않을 것이다. 


윤봉길 의사는 두 개의 폭탄을 준비했다. 그가 던진 것은 물통 모양의 수통 폭탄이었고, 도시락 폭탄은 자결용이었다. 회사에서 이 사실을 이야기하니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도시락 폭탄이냐 수통 폭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윤봉길 의사에 대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 


올해 쭉 1919를 중심 독서를 생각하고 있는데, 두 권의 책은 사뭇 반갑다. 올해 내 내 이런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 


이번 북섹션의 1면은 좀 낯설다. 제인스 빌? 제인스 빌이 어디야? 기사를 읽고 나서야 알아챘다. GM이 있던 그 곳이다. 

2008년이던가, 미국의 경제위기에 직격탄을 받은 곳이 바로 디트로이트이다. 미국의 자동차 공장의 상징이었던 곳. 제인스빌은 디트로이트는 아니다. 그렇다고 멀지는 않다. 미시간호 좌측 위스콘신 주, GM 공장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다. 경제위기, 한 산업으로 발전한 도시가 산업의 도태된 후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조선산업을 통해 성장한 거제를 다룬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라는 책이 떠 올랐다. 두 권의 책을 엮어 읽어야 겠다. 한국과 미국의 산업도시가 경제위기때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고 싶다. 


책에서 충격적인 대목은 바로 이 재교육 문제다. 실직자를 재교육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도와주는 정책엔 정치적 견해 차이를 떠나 누구나 동의한다. 지은이는 이를 “재교육 복음”이라고까지 한다. 블랙호크 대학도 지엠 공장 폐쇄 이후 실직자들을 위해 88개의 강의를 신설했고, 개인강사가 부진한 학생한테 추가 수업도 했다. 그런데 지은이가 위스콘신대학 조사기관과 함께 한 설문조사와 직업 재교육에 대한 분석결과는 재교육의 효과를 의심케 한다. “직업 재교육은 제인스빌은 물론 그 주변 지역에서도 구직 기회나 임금을 늘리는 데 아무 도움도 안 됐다. 이는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 시기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실직한 뒤 학교에 가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이들의 취업률은 학교를 다니지 않은 실직자보다 낮았고, 재교육을 받으러 학교에 간 해고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해고 노동자들보다 구직 후에도 더 낮은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 재교육은 아무런 효과가 없단 말인가? 지은이는 2012년 10월 <워싱턴포스트> 오피니언 지면에서 이를 설명한다. 다른 일자리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재교육을 받을 필요 없이 재취업을 했다. 반면 고용주들이 덜 선호하는 해고자들이 대학에 진학했을 가능성, 재교육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 가능성, 재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일자리들을 먼저 차지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는 “재교육이 지금보다 더 잘 이뤄져야 한다. 2년제 대학과 일자리 수요 사이의 연계가 더 긴밀해져야 한다. (…) 그러나 여전히 존재하는 불편한 진실은 일자리 맞춤형 족집게 교육으로도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앤서니 캐너베일 조지타운대 교육인력센터장은 “직업훈련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일자리가 직업훈련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반대로 생각한다”고 짚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6048.html#csidx38f338cf8ed6b3eb50f6103dab914f2  


작년 암호화폐 이후로 지속적으로 금융경제, 화폐경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몇 권의 책도 이미 모아 두었고. '신용사회'라는 장밋빛 허상 뒤의 디스토피아 라는 부제가 바로 눈에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금융경제를 이야기하면서 신용을 빼놓을 수는 없다. 지난 주 언급한 바 있는 <금융과 회사의 본질>과도 느슨하게 연결해 볼 수 있는 책이다. 


현재 우리는 신용카드로 대변되는 신용사회에 너무 익숙하다. 그런데 과연 신용사회는 누구를 위한 사회일까.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가 쓴 <현금 없는 사회>는 ‘신용 사회’의 주술 뒤에 숨은 이익집단들의 음모와 그 이유를 다양한 실례를 들어 낱낱이 폭로한다.

지은이는 현금 지불을 억제하거나 없애려는 힘있는 이익단체들이 당신을 염탐하고 돈을 빼앗아간다고 말한다. 바로 국가와 기업, 그리고 은행 들이다. “이들이 우리를 현금 없는 사회로 몰아가려는 이유는 딱 하나, 재정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우리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전자결제는 사용자가 어떤 교통수단을 탔는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먹었는지 고스란히 기록한다. 전자거래 전도사들은 이를 분석해 사용자의 취향과 생활 패턴을 파악하고, 심지어는 그가 게으른지, 바람을 피우는지까지 추론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6038.html#csidxa63a9488e2f3b56b61a289406ebfcc6 


일본 관련 커뮤니티에 자주 올라오는 글 중에 하나는 바로 신용카드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면서 탈세 운운한다. (일본은 예전부터 POS기가 설치되었고, 자영업의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사회였다.) 사실 신용카드는 비신용사회에서 먼저 확산되었다. 2000년을 전후로 마구잡이로 신용카드를 만들어주는 시기를 기억해본다면, 사실 답은 있다. 우리나라가 신용카드가 OECD에서도 압도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신뢰할 수 없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만연한 탈세와 지하경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정부는 신용카드를 강제했고, 말도 안되는 연말정산 소득공제라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현금없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제일 먼저 대두된 나라들이 저신용 국가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많은 나라들이 점점 현금없는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현금이 아닌 다른 통화수단을 사용하는 순간, 내가 어디가서 무엇을 했는지 고스란히 남는 사회가 되고 있다. 


토요일자 신문에는 독일의 예술학교 바우하우스가 한면을 차지한다. 바우하우스라는 이름은 몇 번 들어봤고, K-mooc에서 건축관련 강의를 하나 들으면서 쉽게 다가온다. 물론 그 때 자세히 읽어보려 책을 하나 사긴 했지만. 


올해는 바우하우스(1919~1933) 탄생 백 주년이 되는 해다. 외신에 따르면, 이를 기리기 위해 베를린에서 전시회, 공연, 강연 등 많은 행사가 열리고, 특히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뮤지엄에서 기념식과 전시가 준비되고 있다고 한다.


바우하우스는 지난 백년간 세계 건축과 디자인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주된 흐름이자, 지배적 원리나 법칙처럼 세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평지붕과 장식이 배제된 노출 콘크리트, 철·유리 등의 재료와 기하학적 구조로 지은 건물에서부터 대량 생산된 의자와 조명은 물론 스마트폰 등의 산업제품, 리듬감 넘치는 기하학적 형태의 그래픽, 타이포그래피, 심지어 산뜻한 누리집 디자인 등에 이르기까지 그 유산은 일상 도처에 퍼져 있다.

....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바우하우스가 오늘날 한국의 많은 미술대학 디자인 관련 학과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처럼 단순히 ‘아름답고 멋진 디자인’을 생산할 직능인 배출에 목표를 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목적은 패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에서 발생한 좌우충돌의 정치적 혼란과 극심한 경제공황의 현실에서 사회와 개인의 삶을 구해낼 ‘급진적 사회개혁 프로그램’에 있었다.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조형 활동은 이러한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시각화 과정으로 디자인 행위의 바탕에 사회철학을 전제하고 있었던 사실을 눈여겨 봐야 한다.

...

그러나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휩쓸고 지나간 쓰나미의 잔해 위에서 그 이념에 다시 주목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 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와 장기 불황 속에서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로 삶의 기준은 저하되고,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바우하우스가 제안한 ‘조립식 산업제품으로서 주택’의 필요성이 부활하고, 실물 경제와 제조업 붕괴 그리고 환경오염의 현실 속에서 인간 삶과 디자인에 대한 재고와 성찰이 심각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86170.html#csidxb39a44ae484a60f9b7c903c9c96b3f4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미 지난달 몇 권의 책을 주문했고, 3.1운동에 대한 책을 번갈아 가며 들고 다닌다. 그리고 또한 주기율표 150주년이기도 하다. UN은 올해를 주기율표의 해로 정했다. 주말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렸고, 주문을 넣은 책을 고르고 있다. 그런데 <주기율표>라는 제목의 책을 낸 프리모 레비 또한 잊을 수 없다. 프리모 레비의 책을 주문넣었다. 이번 주에 소개된 책은 일단 독서목록만 작성해두고, 잠깐 뒤로 밀어 둘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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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루시에 트리오 Jacques Loussier Trio의 리더인 자끄 루시에 타계 소식이다. 


'바흐 음악의 재즈적 해석' 佛 피아니스트 자크 루시에 별세


마음이 번잡해서인지 뒤늦게 페이스북을 통해 타계 소식을 들었다. 

자끄 루시에 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바로 바흐Bach이다. Bach의 음악을 재즈로 해석하는데 천착했던 그의 초중기 활동은 바흐였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는 클래식계에도 호평을 받는 앨범중에 하나이다. 

* 물론 여기에는 그가 클래식 전공자라는 것도 한 몫 하지 않나 싶다. 키스 자렛 Keith Jarrett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클래식계에서는 많은 혹평이 따라다닌다. 


음악 매니아라기는 그렇지만 90년대에는 재즈에 관심이 많았다. 초반에는 스윙감 넘치는 재즈나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리 할러데이와 같이 메인스트림을 따라 듣곤 했다. 그러면서 Cool Jazz나 Acid Jazz까지 찾아 듣다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앨범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Eugene Cicero와 Jacques Loussier에 이르러서는 푹 빠져들어 버렸다. 


요즘은 클래식을 듣는 시간이 좀 많은데, 재즈에서 클래식으로의 문을 자끄 루시에가 친절하게 열어 주었다. 


자끄 루시에의 CD를 찾아봤다. 일단 10개를 찾았다. 그런데 기억을 짜내고 짜내보니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도 있었고, 헨델도 있었다. 게다가 사티의 짐노페디는 어디 갔노. Play Bach라는 제목의 앨범도 샀던 기억이 있고, 대충 15개 정도를 구매한 듯 싶다. 초장기 Jacuqes Loussier CD는 광화문 교보 Hottracks나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알라딘과 합병한 음반 사이트 PHONO였다. 


자끄 루시에의 앨범을 보면 우선 Goldberg 변주곡에는 엄지를 치켜 세울 수 밖에 없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경우엔 글렌 굴드의 Glenn Gould의 55년판, 81년판에 안드레 쉬프 버전까지 4개의 CD를 가지고 있다.) 개인 취향이지만 Play Debussy 앨범과 Satie : Gymnopedies/Gnossiennes는 자주 듣는 편이다. 베토벤 7번 교향곡의 주제에 대한 변주곡 Beethoven : Allegretto Fro Symphony No.7 Theme & Variations는 색다른 느낌이다. 


자끄 루시에가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 Ravel's Bolero와 비발디 사계 Vivaldi - The Four Seasons New Jazz Arragement 는 뜬금없이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의 녹턴은 조금 다른 느낌 Impressions on Chopin's Nocturnes


(책은 3.1운동을 기념으로 1919년을 전후로 읽고 있는 중이고) 음악은 작년부터 러시아를 주제 삼아 차이코프스키를 관심있게 듣고 있는데, 잠시 별세한 이의 명복을 빌며 그의 앨범들을 찾아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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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주에 한번 정도 주말에 그동안 쌓인 종이신문과 주간잡지를 챙겨본다. 챙겨본다기 보다는 거실 한켠에 쌓여있는 신문과 잡지를 정리하지 않았다가는 와잎님께서 전부 분리수거일에 처분할 상황이라 많이 쌓이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별 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 아침 쌓여있는 신문들을 날짜별로 정리한 다음, 제일 먼저 별지로 구성되어 있는 북섹션을 챙겨본다. 최소 하루에 한 두번은 알라딘에 들어오고, 페이스북에서 몇 몇 서평가, 출판관계자들의 글을 통해 책 정보를 얻고 있지만, 종이 신문으로 보는 맛 역시 잊을 수 없다. 엄지 혹은 마우스로 넘기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는데, 아무래도 구성에서 보이는 편집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메인으로 내 세우는 책들이 있기도 하고, 화면 편집상 신문사가 내세우는 책들이 있지만, 관심갖던 분야의 책이라도 소개되면 눈에 확 들어온다. 


2011년까지는 <이달의 책>이라는 카테고리를 언론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중심으로 정리했었는데, 저작권 문제도 있고, 알라딘 서재에 글 쓸 여유가 잘 허락되지 않아서 정리에 뜸 했다. 사실 이 카테고리는 구매 대상 책들을 기록하는 역할을 했다. 

(그나저나 작년 연말부터 읽었던 주제들은 언제 정리하나, 임시라는 이름으로 카테고리만 만들어 놓고..)


오늘(3월 9일) 살펴 본 어제자 신문에서는 네개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메인으로 내 세운 책은 <팩트풀니스-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이다. 

로슬링과 그의 아들 부부가 함께 쓴 <팩트풀니스>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무지가 어디서 비롯하는지를 짚고, 세상을 사실대로 보는 길로 이끈다. ‘무지’는 어리석다는 게 아니라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팩트풀니스’(Factfulness)는 ‘사실충실성’이라는 의미로, 팩트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습관을 뜻한다. 가짜 뉴스나 선전 선동, 언론의 편파 보도와 이에 휘둘리는 세태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가짜 뉴스가 세계관을 왜곡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를 단지 오해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항상 오해하고 있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본능’들을 짚고, 이를 억제하는 방법들을 권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5067.html#csidx63fd1cedf753c059ac4a4876445fd15 


가짜뉴스 보다 세상을 극단적으로 판단하거나, 실제 상황보다 나쁜 상황으로 생각하는 본능 등에 의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평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서 만들어진 프레임 속에서 세상을 해석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과 비교해 볼 수 있는 책인 듯 싶다. 물론 일종의 한계도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건 책을 읽고 생각해 봐야 겠다. (저자의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1면 하단에는 확증편향 시대 헤쳐나갈 ‘데이터 읽기’라는 제목으로 <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는 책이 소개된다. 

메인으로 소개된 책과 데이터를 통해 확인한다는 점에서 같이 엮어 볼만한 책이다. 접근하는 방식 역시 비슷해 보인다. 

①아내가 남편보다 소득이 더 높으면 이혼율이 높아진다. ②읽진 않더라도 주변에 책이 많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한다. ③가게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면 할인해주는 것보다 플라스틱 봉지에 돈을 물리는 게 더 효과적인 환경정책이다. ④돈이 있으면 무죄 받을 확률이 더 늘어난다. ⑤담뱃세가 올라가면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건강이 더 개선된다.


당신은 이중 몇가지가 ‘진짜’라고 생각하는가? “학계·기업·정부를 넘나들며 20년 넘게 데이터 분석으로 의식주를 해결한 남자”라는 소개가 딱 들어맞는 사람, 신현호씨는 흔히 ‘감으로 때려맞추는’ 사안에 대해 그는 ‘과연 그럴까?’라고 의심한다. 그리고 갖가지 실험과 연구 논문 속에 존재하는 데이터와 차트를 들이민다. 사람들의 통념 중엔 데이터로 입증되는 것도 있고 어리석은 믿음으로 판명되는 것도 있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5069.html#csidx9bd6d46053ebce4be89d9f554e5a74f


이 내용들은 얼추 읽었던 내용이다. 저자인 신현호는 같은 신문 토요판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라는 코너를 통해 연재했던 내용이다. 어쨌든 데이터, 확증편향 등의 주제로 같이 읽을만한 주제의 책이다. <만들어진 진실>이라는 책을 어떤 책들과 함께 엮어 읽어볼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두 책과 엮을 지 고민해 봐야겠다. 



이번 북 섹션에 가장 관심이 갖던 책은 <CEO사회-기업이 일상을 지배하다>이다. 예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주제인데, 소개 기사에도 평소 가지고 있던 고민을 담아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대통령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 등장한 것은, 그러므로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시이오사회>의 공동저자인 피터 블룸 영국 방송통신대학 교수와 칼 로즈 시드니 유티에스(UTS) 경영대학원 교수는, 1980년대부터 형성돼 1990년대 말 지구적으로 확산된 ‘시이오 숭배’ 현상이 “21세기 정치 리더를 민중의 리더가 아니라 경제 리더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대중은 정치인들이 상업적이고 재정적인 성공을 위해 국가를 경영하는 ‘사업가’가 되기를 기대했고, 정치인들은 이에 부응해 사람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갖고자 하는 대신 단호한 결단력으로 일을 매듭짓는 유능한 관리자로서의 시이오를 닮고자 했다”는 얘기다.


기업 경영자들의 정계 진출이 잇따르고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한 이력이 정치인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2001년에 당선된 하버드경영대학원 출신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부통령 딕 체니를 비롯해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재무부 장관 존 스노 등 시이오 출신 장관들로 행정부를 꾸렸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타이의 탓신 친나왓 총리, 오스트레일리아의 토니 애벗 총리 등 세계 곳곳에서 “정부를 비즈니스 조직으로 여기는” 정치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이런 흐름은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들은 대체로 부자를 위해 일한다는 평을 받았고 이들의 치세 동안 빈부격차가 더욱 심해졌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러한 사실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다.


한 차례 결정적인 고비가 있긴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전세기를 타고 날아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시이오들의 모습에 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시이오들은 시장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경제 엘리트이기는커녕 회사가 망가지고 노동자들이 거리에 내몰리는데도 고액의 연봉을 챙기는 파렴치한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로 다시금 ‘시이오’가 호명됐다는 점이다. 시이오 신화는 그렇게 부활했고, 


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5068.html#csidx19e83e6a2097f3da6226f17fb2d94af 


관심이 가는 또 하나는 <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 교배>라는 책이다. 작년부터 금융에 대한 책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역사와 돌아가는 배경 등에 대한 책인데, 최근엔 기업, 회사에 대한 책을 좀 찾아보는 중이었는데, 그 고민에 맞아 보인다. 단순히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해결책으로 '기본자산제' 도입을 이야기한다는 데, 국내 학자의 연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 보이고, '기본자산제'가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다. 


김 교수는 주식회사, 금융제도, 대의제 정치제의 본질에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가 있다고 말한다. 설명하면 이렇다. 채권자는 자산의 재산권을 일정 기간 채무자에게 넘겼기 때문에 그동안은 재산권자가 아니다. 반면, 재산권자란 자산에 대해 재산권을 소유한 사람이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이 채권자이면서 동시에 재산권자일 수는 없다. 하지만 주식회사, 은행, 의회 등은 이런 모순적 사고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주주들은 평소엔 회사에 의결권과 인사권을 행사하는 재산권자로 행세하지만, 회사가 부도가 났을 때는 채권자로 돌변해 자신은 ‘단지 돈을 빌려줬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이런 ‘이종교배’는 근대 은행업의 탄생 또한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언제든 예금을 찾을 수 있는 ‘요구불 예금’은 은행이 예금주들에게 돈을 빌린 것일까, 아니면 은행이 보관해주고 있는 것일까. 대출은 반드시 상환 기간을 정하기 때문에 언제든 예금을 찾을 수 있는 대출이란 성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돈을 보관할 뿐이라면, 은행이 예금을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것은 횡령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하지만 이런 모순이 가능한 것 또한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은행이 예금을 대출해줌으로써 사회 전체의 통화량을 늘리는 ‘화폐창조’가 경기의 확장과 후퇴를 거듭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85073.html#csidx86769c5e15270cea5d97a19a15b5f00 



사실 작년에 금융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암호화화폐 논란 때문이었다. 경제학, 특히 화폐경제학은 별 쓸모없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작년 암호화화폐 논쟁에서 암호화화폐를 지지하는 측이(유명하신 과학자를 포함해서) 화폐에 대해서 1도 모르는 모습을 보면서 금융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에도 하나의 실마리를 던져줄 만한 책으로 보인다. 


이번 북섹션에서 아쉬움이 있는 건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개정판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가 너무 짧게 소개된 점이다. 절판된 기존판이 알라딘 중고가 10만원 밑으로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간의 상황들을 봤을 때 조금 더 자세한 소개가 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겨레신문은 아니었지만, 오늘자 인터넷 연합신문에서는 <역사비평 봄호>에 실린 주제에 대한 소개기사가 흥미로웠다. 평소 삼국통일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학자들의 이런 글이 반갑다. 


고대사 연구자인 이재환 홍익대 겸임교수는 삼국통일과 통일신라에 대한 재조명 특집을 시작한 계간지 '역사비평' 봄호에 기고한 글에서 "7세기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은 국제전임을 부각해 '7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 전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가 삼국통일전쟁론이나 백제통합전쟁론을 거부하는 중요한 이유는 당대에 세 나라가 동족의식을 지녔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


아울러 이 교수는 삼국통일전쟁이나 백제통합전쟁이라는 말은 중요한 참전국인 당나라를 소외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은 고구려·백제·신라와 모두 싸웠고, 개전 주체이자 전쟁 수행의 주체였다"며 "전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핵심적 위치에 있었던 당의 존재 자체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존 시각은 적당한지 의문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삼국통일전쟁'이라는 용어는 오히려 후삼국시대에 일어난 전쟁에 어울린다는 견해를 밝혔다. 고려와 후백제는 신라에서 갈라졌지만, 동질성이 매우 강한 나라였기에 통일이라는 말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넓은 시야로 구성한 7세기 전쟁 양상에 '신라의', '삼국', '통합', '통일' 같은 명칭을 붙여보면 딱히 잘 들어맞는다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며 전쟁의 민족사적 의미 부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90308165900005?input=11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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