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은 녀석 학교 시험 감독 들어가는 날이었다. 학부모 시험감독들의 대기실은 도서관이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책벌레라면 향기롭다는 책 냄새가 후각부터 자극하는 것이 여간 기분좋은 게 아니다. 서가에 좌르륵 꽂힌 책 모양새만 봐도 배부른 그 느낌은 또 어떻고. 그러나 책을 빼들고 읽어볼 여유는 없다. 교장 선생님과 인사도 해야하고,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간단한 교육도 받아야 하는데 그러는 틈틈이 안면있는 학부모도 만났으니 수다도 떨어야 해서 (아니, 일면식이 없어도 아줌마 본연의 친화력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이야기 나눌 수 있다) 책 볼 틈이 없다. 펼쳐서 읽지는 못하더라도 꽂혀 있는 책의 제목 정도는 보았다.
그렇게 무의식 중에 내 눈알은 책 제목들을 흝느라 종횡무진 바쁘게 굴렀다.
그러다 문득, 한 권의 책에 시선이 멈추었다.
상당히 익숙한.....뭔가 끄는 힘을 가진 그런 책이었다.
물론 책은 내가 읽어 본 책이었다. 감명깊게 읽었다거나 좋아하는 책에선 자연적으로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는 그것보다 훨씬 강도가 셌다. 좁은 방에서 몸을 세워 칼잠을 자는 것처럼 책들은 책꽂이에서 최소한의 자리를 차지하고 숨죽여 꽂혀 있기 마련인데 이 책은 손을 빼죽 꺼집어 내곤 나에게 흔드는 것이었다! 아기의 옹알이처럼 불분명한 언어지만 분명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담당 선생님의 잔소리같은 교육이 끝나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손짓하는 책을 향하여 곧장 걸어갔다. 책을 뽑기 위해 손을 뻗었다. 예민한 내 검지와 엄지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 옆부분은 찌르르 스치는 가벼운 전류같은 걸 느꼈다. 책을 꺼내들었다. 왼손을 펴서 책을 받치고 오른손으로 앞표지를 넘기려고 했다. 왼손에 느껴지는 착 달라붙는 느낌. 왠지 푸근하고 친숙하다. 이 느낌은 공공도서관에서 가끔 느끼던 그것과도 비슷하달까. 닳아빠진 책을 잡았을 때의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뭍사람들의 미량의 땀과 체취, 내가 울었던 대목에선 누군가도 눈물을 훔쳐내었을, 그의 극소량의 눈물 원소의 느낌. 아니,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이 책엔 더 있었다. 야릇한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것을 나의 미세한 촉각이 짚어 냈다.
앞 표지를 넘기고 속지를 몇 장 넘기다 드디어,
정체를 알게 되었다. 익숙한 그것은 한문으로 휘갈겨 쓴 내 이름 싸인이었다.
또 김OO이라고 또박또박 눌러 쓴 낯익은 우리 큰아들 글씨체도 있었다.
아하, 녀석 내 책을 학교 도서관에 기증했구나!
그러고보니 몇 해 전, 3천권의 책을 대거 정리할 때였나 보다.
책이 필요한 몇 군데로 기증한 것은 기억나지만 어느 책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
그 중에 한 권을 오늘 이렇게 만난 것이다. 이 책의 서평도 알라딘에 있다. 출판사에서 증판을 하면서 내 리뷰를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왔고 나는 흔쾌히 승락했다. 내 서평의 일부가 띠지에 인쇄되어 나왔다고 출판사에서는 기념으로 한 권 보내오기도 했다.
'내 먹을 것을 강물에 던지'는 것이 전도서를 옮긴 솔로몬의 지혜였던가.
먹을 것을 아껴가며 사 모았던 피(!)같은 우리 책들을 각지로 입양시켜 보낼 때, 그리고 서재가 없어진 집을 볼 때 시원하고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론 숨길 수 없었던 상실감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큰아들이 다녔고 작은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도서관에서 때때로 고개를 쳐들던 헛헛함을 말끔히 버렸다. 우리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읽었던 책을(특히 오늘 내가 집었던 그 책은 아들과 엄마가 번갈아가며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이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와서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읽혀지고 있으니 그것이 더 큰 행복인 것이다. 20110704ㅇㅂㅊㅁ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이다(전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