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들의 동선 문자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인근 읍 면까지 다 합하여 인구 40만인 작은 도시에 60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다 보니 '시내'라고 불리는 내 사는 곳은 촘촘한 거미줄마냥 그들의 동선이 얼키고 설켜 있다. 본의 아니게 나도 한 달 가까이 (일을 못하니 자동으로)자가격리 당해 있어서 한 발짝도 현관 밖으로 안 나가는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산 사람이라 움직여야 할 때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여 꼼꼼하게 확진자의 동선을 살피게 된다.



그들의 동선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 비슷해도 소름끼치게 비슷하다. 신천지 확진자들의 동선에 신천지 관련 행사나 모임이 있다는게 다를 뿐, 그것을 빼면 동선들은 대개 닮은 면이 있다.



20~30대 비교적 젊은 이들은 한결같이 커피 가게에 일수 도장 찍듯이 간다는 것이 신기하다. 처음엔 약 일 주일치 동선이 공개되었는데 커피 가게를 날마다 가는 사람도 적잖았다. 촌동네에 무슨 장사가 되겠나 싶어도 한 잔 커피값에 손 덜덜 떨리는 비싼 브랜드 커피 가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는 커피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나에게 커피 가게는 누군가를 만나서 밥 먹고 다음 순서로 가는 곳이다. 만난 이와 함께 회포를 풀며 이야기하는 간간이 홀짝거리며 마시는 것. 만남의 댓가를 커피값으로 기꺼이 지불하고 커피는 그저 향기로운 배경이 되어주는 곳일 뿐이다. 그러나 요즘은 많은 이들이(특히 젊은 세대) 나처럼 고루한 이유로만 커피 가게를 찾지 않는가 보다. 커피는 밥 보다 더 자주 마셔야 하는 생필품이 되었다. 커피 맛이나 향에 매료된 것인지 아니면 각성없이는 버텨낼 수 없는 세상에 살기 때문인지? 나처럼 집이나 사무실에서 커피를 내린다거나 하다못해 봉지 커피 따위로 그 기호를 채우기보다는 전문점에서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를 사는 게 일상이 되었나 보다. 



그리고 30~50세 여성들의 동선에는 빠지지 않고 크고 작은 마트가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주부가 식구들 먹거리 해결하는 사명은 여전한가 보다. 주부들의 동선에 애잖함을 보내는 건 섣부르다. 그 또래의 남성들은 회사와 집 두 군데만 찍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집과 회사만 오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짠하기 그지없다. 설마 일터와 집만 반복하며 살았을까, 다 공개 안 한 건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사람이 어떻게 거의 날마다 두 곳만 오가며 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만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코로나 이전에 나는 밖에 나가서 일하고 집에 와선 잤다. 남들도 나만큼이나 단조롭게 산다니.....



기억의 한계치까지 생각나는 그간 나의 동선은,


10(수) 집

11(목) 차로 10분거리 사무실 2시간 - 셀프주유소 - 아들자취방에음식배달

12(금) 집, 집근처 산책로 1시간

13(토) 집

14(일) 집

15(월) 집, 집근처 산책로 40분 - 드라이브스루 버거킹

16(화) 인근 아파트 1시간 - 약국20분 대기 후 마스크 구입 - 아들자취방에음식배달

17(수) 현재까지는 종일 집



흠냐........

누군가가 나의 동선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이거 산 사람 맞아? 이 사람이 확진자와 접촉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데? 라고 말할지도. 그리고 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 사람, 한 주 동안 사람 만나는 건 없어? 이러다 우울증되는 거 아냐? 이렇게 외롭게 버려져도 되는 건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외로움보다 전염병이 더 무섭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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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3-1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세드신 분들이 코로나보다 외로움이 더 무섭다 하시며 마스크 끼고 있을테니 노인회관 문 열어달라 하셨단 기사에 찡했던 기억 나네요ㅜㅜ 저도 아직은 전염병이 더 무서워서 집과 직장만 오갑니다만은.. 확진된 분들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도 참 못 할 일이에요ㅠㅠ

진주 2020-03-27 15:38   좋아요 0 | URL
저도 5주째 이러고 있네요...그저께 월급받았는데...흠 십분의일 정도 나왔어요ㅠ 생활안정지원금 대출받아서 살림꾸려보네요....
햐~~~~
이거참....제발 이젠 좀 수그러들면 좋으련만....
그나저나 달밤님은 어느 동네 사시나요? ㅎ

moonnight 2020-03-27 21:13   좋아요 0 | URL
진주님. 저도 TK.. ㅠㅠ;; 초반에 직장 근처 건물 두 군데서 확진자 다녀갔다고 방역하고 건물 폐쇄하고 해서 한참 흉흉했어요-_-;;; 코로나 걸릴까봐 걱정도 되고 걸린 줄도 모르고 수퍼전파자 될까봐 걱정도 되고 하여간에 노이로제 상태네요-_-;;;; 경제적으로도 어서 해결됐으면 좋겠는데 장기전으로 갈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에요ㅠㅠ 진주님 우리 굳게굳게 버팁시다ㅠㅠ;;;;;;

라로 2020-03-2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신문(?)에서 한국에 그런 앱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진주 님의 글로 읽으니 정말 좀 살벌한 느낌이 드네요.
그 사람들의 존엄성은 어떻게 되는 건가? 싶은...
어쨌든 저는 오늘 시험을 봤는데 4월 6일까지 숙제도 없다고 하니까
좋은지 싫은지 뭔지 모르겠었는대 아마도 무서운 건가봐요.

진주 2020-03-27 15:44   좋아요 0 | URL
존엄성이요? 존엄성도 사람이 살았을 때 의미있는게 아닐까요? 이건 단순한 감기몸살이 아니예요...무서운 전파력 때문에 혹시라도 확진자 동선과 겹치면 재깍 검사, 격리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해요. 잠복기가 길어서 늦게 발견될 수록 무의식 중에 감염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걷잡을 수없이 번지는 역병을 잡기위해선 개인의 동선정도는 탈탈 털리는 희생감수하는거지요
...

진주 2020-03-27 15:42   좋아요 0 | URL
그리고 라로님 확진자의 동선은 사설 앱에서 보는건 아니고, 우리나라 질병본부에서 공식적으로 안전문자로 보내와요. 국민의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위급한 위험을 공식적으로 알려주죠. 폰으로 다른 걸 보다가도 안전문자 뜨면 강제적으로 안전문자 반드시 확인하게끔 되어있어요

라로 2020-03-28 11:55   좋아요 0 | URL
앱이 아니군요. 안전문자로 보내는 거라니 역시 뉴스도 잘 알지 못하면서 그런 기사를 실었네요.
코로나에 대응하는 안전문자라니 정말 훌륭한 시스템이에요!
여기도 곧 그런 시스템이 도입되면 좋겠어요.
현재 여기는 재난시나 앰버 얼러트라고 키드닙핑을 하면 울리거든요.

그리고 존엄성에 대해 제가 애기를 꺼낸 이유는 아마도 제가 학교에서
사람이 죽더라도 존엄성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계속 받아와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더라도 그것이 죽음으로 연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존엄성은 언제든 지켜져야 한다고 배우거든요.
이제 제가 그런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제 생각은 여전히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은 누구의 존엄성도 헤치는 것이 아닌 현명한 방법이라 응원합니다.
제가 힘이 없지만 이런 시스템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네요.
어쩌면 전세계의 시장들이 모임을 한다니까 TK지역의 시장이 이런 정보를 나눌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제가 모르는 것을 바로잡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